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전개한 총선투쟁의 의의와 한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들어가는 말
2. 제17대 총선결과에 대한 미국의 평가
3. 남(한국) 정치권이 미국식 양당체제로 개편된 원인
4. 민족민주운동의 주체적 관점에서 제17대 총선결과를 평가한다
5. 글을 마치며

 

1. 들어가는 말

제17대 총선결과에 대한 남(한국) 대중언론의 다양한 보도내용을 요약·정리하면,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차지, 민주노동당의 약진, 반개혁수구세력의 약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승리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분석적 평가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수사적 표현을 늘어놓은 것이다.

나는 민족민주운동권이 제17대 총선결과를 평가하는 데서 대중언론의 수사적 표현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족민주운동권은 자기의 주체적 관점에서 총선결과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운동권의 관점과 대중언론의 관점이 같을 수 없으므로, 제17대 총선결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같아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제17대 총선결과에 대한 민족민주운동권 일각의 분석과 평가가 대중언론의 수사적 표현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민족민주운동권 일각의 총선평가가 대중언론의 수사적 표현과 견주어 비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준 것은,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뿐이다.

민족민주운동권 일각의 총선평가가 대중언론의 수사적 표현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은, 총선정국과 관련하여 대중언론이 유포한 이러저러한 그릇된 정보들이 민족민주운동권 일각에 스며들면서 정세인식이 일정하게 혼동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중언론이 유포하는 그릇된 정보를 가지고 정세를 잘못 읽으면, 마치 시력을 상실한 것처럼 자기가 서 있는 곳도 알지 못하게 되며 나아갈 길도 찾지 못하게 된다. 만일 민족민주운동권이 제17대 총선결과를 정확하게 분석·평가하지 못하면, 앞으로 정세를 인식하는 데서 오류에 빠질 위험을 피하기 힘들게 될 뿐 아니라, 이번 총선투쟁에서 얻은 성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며, 총선투쟁에서 드러난 편향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되풀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족민주운동권이 자기의 주체적 관점에서 제17대 총선결과를 분석·평가하는 것은 실무토론이 아니라 정치과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총선 이전에 발표한 몇몇 글들에서 나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진보세력 대 남(한국)을 지배하는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대결이라는 기본인식을 가지고 총선정국의 본질을 논하였고, 그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 바 있다. 나는 총선결과에 대한 분석·평가도 그와 같은 기본인식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진보세력이라는 말은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민족민주운동권, 민중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노동운동권, 농민운동권, 빈민운동권, 사회변혁과 민주개혁을 지향·추구하는 사회운동세력, 그리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지지세력을 통칭한다. 남(한국) 사회에서 진보세력으로 통칭되는 사회정치역량은 이념적, 정파적으로 분화되어 있고 조직적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이번 총선정국에서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투쟁하였다.

이번 총선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투쟁한 주체는, 민족민주운동권의 용어를 빌린다면, 통일전선(united front)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그 결집력이 아직 약하기 때문에 강고한 통일전선체를 건설하여 총선투쟁을 전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계각층 진보세력이 노동자와 농민의 양대 기본계급을 주도역량으로 하여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투쟁한 것은 명백하다. 당연히, 그 통일전선의 투쟁대상은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이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이번 총선정국의 판세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 대 미국 및 친미예속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투쟁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번 총선투쟁은 1960년 7월 말 4.19혁명의 열기 속에서 네 개의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한 이후 44년만에 처음으로 진보정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미국과 미국을 추종하는 친미예속세력을 상대로 하여 대결한 것이었다.

민족민주운동권은 제17대 총선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끊임없이 강화·발전시켜 강고한 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한 전진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 이정표는 노동자와 농민의 양대 기본계급을 주도역량으로 하고 각계각층 진보세력이 결집하는 통일전선전략을 완수하는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다. 이론전개만이 아니라 실천투쟁으로 통일전선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17대 총선투쟁은 우리 나라 통일전선운동사에 실로 중대한 의의와 성과를 남기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나에게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전개하는 총선투쟁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고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현장감각을 익히기 위해 인터넷에 실린 총선투쟁에 관련된 수많은 현장소식과 체험기록을 거의 빠짐없이 읽었으며, 위성방송을 통하여 전달되는 남(한국) 텔레비전 보도를 날마다 주의 깊게 시청하였다.

그 과정에서 내가 본 것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을 상대로 하여 벌인 정치대결에서 이겨야 한다는 결의를 가지고 투쟁하였다는 사실이다. 승리하리라는 결의를 가지고 남(한국) 전역에서 낮과 밤을 이어 진공적으로 투쟁한 수많은 당원들, 활동가들, 지지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오로지 역사진보와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에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바쳐 남(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장을 통일전선운동의 서사시로 기록하였다.

2. 제17대 총선결과에 대한 미국의 평가

"미국은 핵우산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정보우산으로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남(한국)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2004년 3월 15일 미국의 대표적 우익언론 『월 스트리트저널』이 탄핵국면에 관하여 보도한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정보망을 남(한국) 각계각층에 깔아놓은 미국이 이번 총선정국에서 비밀정보수집공작과 비밀정치공작을 추진하느라고 매우 분주하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남(한국)지부(ORS)의 비밀정보수집공작,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와 공보원(USIS)의 공식여론조사를 통해서 시시각각 정보보고서가 작성되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 제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간 중앙』 2004년 4월 호에 실린 기사의 적중한 표현을 빌리면, 남(한국)의 정치정세를 파악하는 미국 정보망의 움직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남(한국)에서 현지정보망이 보내오는 정보보고서를 읽으면서 남(한국)의 제17대 총선과정을 세밀히 파악하였고, 총선결과를 분석·평가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악관은 제17대 총선과 관련하여 자기의 견해를 내보이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정례적인 대언론설명회에 나타나 총선결과에 관하여 의례적인 발언을 남긴 것이 전부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이 세계를 지배·경영하고 있다고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의 총선결과에 대한 자기의 분석과 평가를 언론에 내비침으로써 쓸데없이 정치적, 외교적 파문을 일으키는 짓은 하지 않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만이 아니라 미국 정치권도 남(한국)의 제17대 총선결과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총선평가내용이 미국 언론의 총선평가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 언론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미국 정치권의 총선평가내용을 반영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언론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미국 정치권의 의도와 동향을 파악하는 매우 예민한 동물적 감각을 가진 집단이다. 외부에 내보이지 않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미국 정치권의 총선평가내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은 총선결과에 대한 미국 주요언론의 보도내용을 분석하는 것이다.

『합동통신(Associated Press)』을 인용한 『뉴욕타임스』 2004년 4월 16일자 기사는 '남(한국), 진보정치시대에 진입하다(S. Korea Enters Progressive Politics Era)'라는 제목을 달고,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승리한 것은 보수적인 의원들이 오랫동안 지배하였던 나라에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시대(a new era of progressive politics)를 열어놓은 것이다." 신문은 "40년만에 처음으로 자유적 경향의 의회(the first liberal-leaning parliament in four decades)"로 변화했다고 평가하였다. 『로이터통신』을 인용한 『뉴욕타임스』 2004년 4월 16일자 기사는, "자유정당(liberal party)이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남(한국)에서는 새로운 정치시대가 열렸다."고 지적하였다.

『워싱턴포스트』 2004년 4월 16일자 기사는 '코리아의 선거, 국회에서 권력을 교체하다( Korean Vote Shifts Power in Assembly)'라는 제목을 달고, "이번 선거는 박정희가 집권한 1961년의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자유정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여 국회를 장악하는 초유의 일이었다."고 적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4년 4월 16일자 기사는 '남(한국)의 노무현 지지자들, 입법부를 왼쪽으로 밀어가다(Supports of S. Korea's Roh Push Legislature to the Left)'라는 제목을 달고,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남(한국)의 투표자들은 남(한국) 역사상 가장 좌경적인 국회(the most left-leaning National Assembly in the nation's history)를 구성하였다."

제17대 총선결과에 대한 미국 주요언론의 보도내용을 분석하면서, 지적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미국의 주요언론은 한나라당을 보수정당(conservative party)으로 불렀으며, 열린우리당은 좌경정당(left-leaning party) 또는 자유정당(liberal party)으로 불렀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열린우리당을 좌경정당이라고 불렀으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자유정당이라고 불렀다. 나의 판단으로는, 열린우리당을 자유정당으로 인식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견해가 더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민주운동권은 미국 언론이 자유정당이라고 부르는 열린우리당을 보수정당 또는 개량정당으로 부르기도 하고, 미국 언론이 보수정당이라고 부르는 한나라당을 수구정당 또는 극우정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글에서는 개념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미국 언론의 구분법을 따르기로 하였다.

미국의 주요언론은 민주노동당(Democratic Labor Party)을 좌익정당(leftist party)으로 불렀다. 사회변혁과 역사진보를 추구하는 정치이념이 가혹한 탄압을 받아오고 있는 남(한국) 사회에서는 좌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사항이고, 좌익이라는 개념을 무조건 혐오·배격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므로 좌익이라는 말 대신에 진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변혁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말할 때, 좌익이라는 말과 진보라는 말은 같은 뜻으로 쓰인다.

2) 미국 주요언론의 구분법에 따르면, 남(한국)의 정치지형은 자유정당, 보수정당, 좌익정당이 대립하는 삼당체제로 개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미국 주요언론이 제17대 총선결과를 삼당체제로 개편되었다고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주요언론의 총선평가는 제17대 총선에 의하여 남(한국) 정치권이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two-party system)로 개편되었다는 점에 집중되었다. 미국 언론은 자기들이 좌익정당이라고 부르고, 남(한국)에서는 진보정당이라고 부르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를 내건 민주노동당이 열 석을 얻어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하였다고 짤막하게 보도하였으며, 『뉴욕타임스』는 기사 맨 마지막에 "제3당은 열 석을 얻은 좌익정당인 민주노동당이었다."는 단 한 줄의 문장을 기록했을 뿐이다. 남(한국)의 언론이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비중 있게 보도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나는 미국의 주요언론이 남(한국)의 대중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사실을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외면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주요언론의 시야에서 바라보면, 제17대 총선으로 남(한국) 정치권이 미국식 정치체제인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로 개편된 것만 크게 확대되어 보였을 것이므로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은 보도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3) 좌익정당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할 만큼 폭압적이었던 1956년 11월에 창당했던 진보당이 이승만 친미예속정권의 파쇼적 탄압으로 무너진 1958년 2월 이후 몇몇 진보정당들의 좌절경험만 기록되어 있는 남(한국) 정치사에서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은 실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권이 민주노동당 국회진출의 의의를 강조하는 것은 그러한 사회정치적 경험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 150년 동안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가 거의 절대화된 권력구조라고 인정할 만큼 압도적이고, 소수좌익정당들이 사회정치적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 있는 정치지형에 길들여져 있는 미국 언론에게 민주노동당이 열 석을 얻어 국회에 진출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 미국 언론의 시야에서는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이 정치사적 의의를 갖는 사변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대중언론이 특기할만한 정치이변도 되지 못한다.

미국 언론이 주목하는 제17대 총선의 정치사적 의의는, 남(한국) 정치권이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로 개편되었다는 데 있다.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에 놓여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 수립은 150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미국식 정치체제가 남(한국) 정치권에 이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치권의 양당체제를 장악한 민주당(Democratic Party)과 공화당(Republican Party)이 미국 제국주의의 두 얼굴이라면, 남(한국) 정치권의 양당체제를 장악하게 된 열린우리당(Our Open Party)과 한나라당(Grand National Party)은 친미예속의 두 얼굴이다.

대중언론의 구분법에 따르면, 미국 중산층의 정치이념은 자유주의(liberalism)이고, 미국 독점자본가계급의 정치이념은 보수주의(conservatism)이다. 미국 민주당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중산층과 독점자본가계급의 타협을 유도하는 자유정당의 전형이며, 미국 공화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면서 독점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의 전형이다. 민주당 대 공화당의 양당체제가 주입한 이념공세에 짓눌려 있는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 도시빈민, 서민, 소수민족집단들은 자기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정치이념인 진보주의(progressivism)를 알지 못한 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오락가락하고 있지만, 기층민중의 정치이념이 진보주의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미국의 소수좌익정당(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진보정당)들은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양당체제의 압도적인 장악력으로 통제 당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기층민중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발이 묶여있는 상태에 있다.

지난 150년 동안 미국식 양당체제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여야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양당체제에서 각축전이 벌어진다고 해서 미국의 정치권이 불안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의 정치권이야말로 안정되어 있다. 그것은 양당체제의 압도적인 장악력과 배타적 독점력에서 오는 정치적 안정이다.

미국 정치권에서 기층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은 없다. 민주당 대 공화당의 양당체제가 거의 절대화된 권력구조로 고착된 미국 정치권에서 기층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은 정치권에 아예 발을 디딜 틈조차 없는 것이다. 그 까닭은, 독점자본가계급의 지배력이 압도적이고, 독점자본가계급의 지배에 맞서는 정치세력은 중산층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산층이 독점자본가계급의 지배에 맞서기는 하지만, 양당체제는 그 맞섬을 사활적 투쟁이나 적대적 대립으로 격화시키지 않으며, 권익확대를 위한 상호경쟁으로 엄격히 제한한다. 따라서 독점자본가계급과 중산층의 상호경쟁은 양당체제 안에서 정치적 절충과 타협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지난 시기 남(한국)의 군사독재정권 집권기에는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이익만이 배타적으로 관철되었는데, 중산층이 신흥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이후, 남(한국)의 청와대, 정치권, 대중언론에서는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과 신흥중산층의 상호경쟁이 정치적 절충과 타협으로 수렴되는 것을 이른바 '대화와 타협의 상생정치'라고 부른다.

독점자본가계급과 중산층은 양당체제 안에서 자기들의 상충적 이해관계를 절충과 타협으로 조절하여 '상생정치'를 추구할 수 있지만, 독점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기층민중의 이해관계를 절충과 타협으로 조절할 수 있는 정치방식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상생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기층민중의 권익추구를 통제·차단하면서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신흥중산층의 이해관계를 절충·타협하겠다는 뜻이다. 남(한국)의 정치권이 제17대 총선을 기점으로 하여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의 양당체제로 개편된 것은,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신흥중산층의 이해관계를 절충·타협한다는 뜻에서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주요언론에 반영된 내용은 제17대 총선 이후 남(한국) 정치권이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로 개편되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주요언론은 제17대 총선으로 남(한국) 정치권에 미국식 양당체제가 수립되어 '상생정치'가 실현되고, 그에 따라 사회정치적 안정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지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국정안정'이라는 말은 미국식 양당체제의 안정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3. 남(한국) 정치권이 미국식 양당체제로 개편된 원인

지난 시기 남(한국)에서 군사독재정권의 오랜 집권연장은 자유주의 정치세력마저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던 폭정으로 이어졌고, 따라서 미약하나마 형성일로에 있었던 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보수주의로 일색화되는 이상현상이 일어났다. 군사독재정권은 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을 보수주의로 일색화하였던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을 양대 기본계급으로 하는 기층민중의 사회정치의식도 보수주의로 유도하였다. 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이 보수주의로 일색화된 이상현상은 군사독재정권이 오래 전에 퇴장한 오늘 해소된 것이 아니었고, 이번 총선과정에서도 다시 나타났다.

서울의 '강남'이라는 주거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이른바 부유층은 사회계급구성으로 보면 독점자본가계급이 아니라 신흥중산층이다. 강남의 중산층은 중소자본가계급, 고소득 기업경영인,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총선결과를 보면, 강남의 중산층은 열린우리당을 외면하고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한국)의 신흥중산층이 중산층의 권익을 대변하는 열린우리당을 외면하고 독점자본가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은, 남(한국) 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이 지난 시기 군사독재정권의 폭정에 의해서 심하게 굴절되어 보수주의로 일색화된 이상현상이 중산층 의식이 점진적으로 변화를 겪는 과정 속에서도 상당부분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지금까지 남(한국)의 정치권에는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들만이 판을 독점해왔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회창-최병렬로 이어진 오랜 기간동안 줄곧 집권당으로, 또는 원내다수당으로 출현하였던 공화당-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정당계보는 물론, 김대중과 김영삼의 당권다툼 속에서 야당으로, 집권당으로 전전하였던 민주당-신민당-평민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의 정당계보도 또한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의 흐름이었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모두 독점자본가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이었다는 것은,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이 천문학적 규모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해온 대상이 양대 정당계보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지금까지 남(한국) 정치권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끝없이 정쟁을 벌여왔으나, 그것이 곧 자유정당과 보수정당이 분립한 미국식 양당체제는 아니었고, 간판만 서로 다른 보수정당들끼리 정쟁을 벌이는 보수정당 분립체제였던 것이다.

남(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은 군사독재정권이 주입한 보수주의로 일색화되어 있었으므로 중산층은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질 수 없었고, 자기의 정치적 요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 조건에서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유정당은 출현할 수 없었다. 남(한국)의 중산층은 이전의 총선들에서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들 가운데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데 만족하여야 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남(한국) 사회에서는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기층민중은 자기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조직적 투쟁에 참여하면서 지난 시기 군사독재정권이 자기 속에 주입하였던 보수주의와 결별하게 되었다. 생존권쟁취투쟁에 나선 기층민중의 의식 속에는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주의적 성향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은 차츰 민족민주운동권이 전개하는 반미자주화운동, 반독점민주화운동, 조국통일운동에 접근하면서 기층민중의 사회정치의식을 급속히 발전시켰으며, 마침내 노동자, 농민, 서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출현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민중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새로운 투쟁구호가 제기된 것은, 진보정당의 출현에 대한 민중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남(한국) 기층민중들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점진적인 변화는, 양적으로 늘어난 신흥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강화·발전될수록 기층민중의 독자성이 부각되고, 그에 따라 신흥중산층은 기층민중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군사독재정권 집권기에 야당(보수정당)과 재야세력이 연대하여 형성한 이른바 '민주세력'은 기층민중의 사회정치세력과 신흥중산층의 사회정치세력으로 차츰 분화되었던 것이다.

'민주세력'이라는 이름의 미분화상태에서 벗어난 신흥중산층의 사회정치세력은 독자적인 사회정치의식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자유주의다. 신흥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 속에 자유주의가 확산되는 변화는 그들이 자기의 권익을 대변하는 자유정당의 출현을 요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미국은 자기가 지배하는 남(한국) 사회에서 자기들의 정당을 갖고 싶어하는 신흥중산층의 정치적 요구를 무턱대고 외면하거나 방치할 수 없었다. 새천년민주당은 신흥중산층이 요구하는 자유주의적 색채를 선명하게 드러낸 자유정당이 되지 못했다.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는 새천년민주당을 내세워서는 신흥중산층의 증대되는 정치적 요구를 적절하게 해소해줄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한나라당과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똑같이 부패무능한 새천년민주당은 소모적인 정쟁에만 몰두하였을 뿐, 정작 미국의 지배전략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신흥중산층의 이해관계를 절충·타협하는 '상생정치'를 실현하기에는 그 대외적 영상이 너무 낡았고 무기력하였다. 미국이 남(한국) 지배전략을 관철하는 데서 새천년민주당은 한 마디로 부적격한 무능정당이었다.

미국이 자기의 지배전략을 관철하는 데서 절실히 요구된 것은, 자유주의를 선명하게 표방하는 새로운 정당을 등장시켜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신흥중산층의 이해관계를 절충·타협하는 '상생정치'를 실현하고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의 안정세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열린우리당이 분당사태로 급조되고, 사상 초유의 탄핵국면이 조작되고, 결국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급부상한 일련의 정치권 변동은 미국의 지배체제 안정화 전략이 은밀히 관철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치지형의 변동은 계급관계의 변동을 전제로 하며, 계급관계의 변동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제17대 총선으로 남(한국)의 정치지형이 변화한 것은, 남(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계급관계의 변동을 반영한 것이었다. 남(한국) 사회의 계급관계가 변동되었다는 말은, 노동자와 농민을 양대 기본계급으로 하는 기층민중과 그 밖의 계급계층들 사이의 관계에서 변동이 발생하였다는 뜻이다.  

남(한국)을 지배하는 미국의 견지에서 볼 때, 신흥중산층의 사회정치의식 속에 자유주의가 확산되고 그에 따라 자유정당의 출현을 요구하게 된 것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층민중의 사회정치의식 속에 사회변혁을 지향한 진보주의가 확산되고 그에 따라 진보정당의 출현을 요구하게 된 것은 미국에게 간과·방치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사회변혁을 지향한 진보주의가 남(한국) 기층민중의 사회정치의식 속에 확산되고 그에 따라 진보정당이 출현하는 것을 미국이 간과하거나 방치할 경우, 진보정당이 기층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약진적으로 국회에 진출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불과 몇 해 안에 미국의 지배체제는 위기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다.

1) 남(한국) 중산층의 태생적 취약성이다. 남(한국)의 중산층이 태생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라는 사실은 그 계층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부실하다는 데서 확인된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의 중산층이 서있는 사회경제적 기반과 비교할 때, 남(한국)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기반은 너무 부실하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중소기업의 부실화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1997년의 금융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편입 이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침체는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중산층 일부는 이미 빈곤층으로 전락하였다.

남(한국)의 중산층이 7년 동안이나 계속된 경제침체로 거의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케이비에스(KBS)방송 문화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수립 이전인 1997년까지 자신이 부유층이라고 생각한 인구비율은 13.4%, 중산층이라고 생각한 인구비율은 71.8%, 빈곤층이라고 생각한 인구비율은 14.9%였는데, 2003년에 이르러 부유층으로 자인한 인구비율은 9.8%, 중산층으로 자인한 인구비율은 61.1%, 빈곤층으로 자인한 인구비율은 29.0%로 각각 변동되었다. 2003년 현재 남(한국) 사회의 인구 가운데 약 6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남(한국) 사회가 발달된 자본주의나라의 계급구성에 근접하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중소기업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회계층으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상당수는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자신이 중산층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중산층 인구비율은 5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것마저도 차츰 분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땅히 자유주의를 자기의 정치이념으로 가져야 하는 신흥중산층이 보수주의의 굴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 중요한 원인은 분단체제의 이념적 경직성에서 찾을 수 있다. 분단체제는 자유주의의 이념적 공간마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교류·협력이 눈에 띄게 진척되고, 이념적 경직성을 강요하였던 분단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근 중소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입주하려고 몰려든 것은, 남북경제협력에 참여한 중산층이 분단체제가 강요한 보수주의의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남(한국)의 신흥중산층은 앞으로 몇 해 안에 보수주의의 이념적 경직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주의로 전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산층의 이념적 변화는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양대 기본계급으로 하는 기층민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중간지대에, 중산층이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사회계층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념적 변화를 겪고 있는 중산층이 장기적 경제침체와 태생적 취약성으로 차츰 분해·소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산층의 분해와 소멸은 노동자와 농민을 양대 기본계급으로 하는 기층민중 대 미국을 추종하는 독점자본가계급의 계급모순이 격화되는 것을 뜻한다. 신흥중산층의 분해와 소멸로 계급모순이 격화되는 것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위기상황이 발생하는 첫 번째 원인이다.

2) 남(한국)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비약적으로 강화·발전될 가능성이다. 앞으로 남(한국) 기층민중의 사회경제적 처지가 이전보다 개선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발표된 경제지표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민족민주운동권이 대외예속경제라고 부르는 남(한국)의 수출의존형 경제는 자본주의 국제시장에서 미국, 일본, 중국의 거대한 삼각파도에 휘말리면서 난파위기에 빠지고 있다. 미국 경제와 일본 경제에 대한 이중적 종속이 이른바 자유무역협정체제의 급속한 확장으로 더욱 심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공장'이라고 부르는 중국이 신흥경제강국으로 등장하여 남(한국)의 기술수준을 맹렬히 추격하면서 수출시장마저 급속히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수출이 양적으로 증가해도, 연료, 원자재, 부품의 자급률과 기술개발의 자립성이 떨어지면 수출로 얻은 이익이 수입을 통해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간다. 이런 현실은 수출의 외화가득률로 가늠되는데, 2000년 현재 남(한국) 수출의존형 경제의 외화가득률은 20년 전의 수준으로 추락한 63.4%를 기록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수출의존형 경제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어놓겠다는 장밋빛 전망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된 나라가 10년 안에 2만 달러로 올라서지 못하고 정체되는 경우,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1만 달러 아래로 추락하는 것은 자본주의나라의 경제현실에서 공식처럼 인정되고 있다. 현재 남(한국)은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지 이미 8년이나 지났는데도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1년 반 안에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할 가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환란 이후 경제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단기적인 유동성 처방만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남(한국) 경제가 난파위기에 빠질수록 불행과 고통은 기층민중에게 가중되며, 그에 따라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은 증강된다. 남(한국)의 기층민중인 노동자, 농민, 서민은 생존권쟁취투쟁을 통하여 계급적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민족민주운동권에서는 민중의 자주의식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표현한다.

자기들에게 가중되는 불행과 고통의 근본원인이 미국 독점자본에 대한 남(한국) 독점자본의 예속이 심화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한 경제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한 현실을 알게 된 기층민중이 생존권쟁취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차츰 반미자주적 성향을 띄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반미자주적 성향을 띄게 되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권쟁취투쟁의 반미자주화 경향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위기상황이 발생하는 두 번째 원인이다.  

3) 남(한국)의 대중과 북(조선)의 인민이 교류·협력하는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 6.15 공동선언에 의해서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이 추진되고 있음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과 남(한국)의 반통일세력은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을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축소하려고 책동하고 있지만, 남북관계개선은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남(한국)의 기층민중과 북(조선)의 근로인민이 교류·협력하는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끼리 공조하자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이 남(한국) 기층민중의 사회정치의식 속에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남(한국)의 기층민중 속에서 민족공조의식이 확산되는 것은, 그들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남(한국)의 기층민중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인식하는 것은 노동자, 농민, 서민이 남(한국) 사회에서 가장 반미자주적인 사회계급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뜻한다. 남(한국) 기층민중의 사회정치의식 속에 민족공조의식이 확산되는 것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위기상황이 발생하는 세 번째 원인이다.

4) 북(조선)의 대미공세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붕괴로 유도할 가능성이다.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조·미 대결에서 미국이 북(조선)의 대미공세로 압박을 받으며 궁지에 밀려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이전에 발표한 글들에서 여러 차례 논하였으므로 여기서 다시 논하지 않는다. 다만 북(조선)의 대미공세는 아직 전략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북(조선)의 대미공세가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면서도 아직 전략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궁지에 몰린 부시 정부가 예상 밖으로 매우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의 완강한 저항은,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농축우라늄 개발의혹을 조작하여 반격을 가하면서, 클린턴 정부가 응하였던 조·미 양자회담을 거부하고 양자회담을 6자회담으로 교체하고, 대화를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시간 끌기 작전'에 매달리는 일련의 책동으로 나타났다. 그로써 조·미 대결은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다. 최근 이라크 전선에서 미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라크는 조지 부시의 베트남이 되고 말았다는 비명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원된 스페인, 온두라스, 도미니카공화국을 비롯한 친미동맹국들이 철군으로 돌아서면서 미국 주도의 연합전선이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9.11사태에 관한 정보보고를 받았으면서도 방치하고, 이라크 침략전쟁 명분을 조작하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그 모든 과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임기 말의 부시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것은 조·미 대결에서 북(조선)의 대미공세에 힘을 실어주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라크 전선에서 패배를 면치 못하게 된 부시 정부가 재집권에 치명타를 입지 않으려면, 북(조선)과의 대결에서 한 발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된다. 부시 정부가 한 발 물러서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거하려는 북(조선)의 대미공세가 전략적 승리에로 한 발 다가서는 것이다. 북(조선)의 대미공세가 전략적 승리에로 한 발 다가설 가능성이 있음을 감지한 워싱턴과 서울의 이른바 '안보문제전문가'들은 요사이 주한미군 문제와 한·미 동맹 문제를 자주 거론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철거함으로써 북(조선)의 대미공세가 전략적 승리에로 한 발 다가서는 것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위기상황이 발생하는 네 번째 원인이다.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볼 때 제17대 총선은, 남(한국) 내부의 정세와 조·미 관계가 이처럼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에 유리하게 전환되고 있는 조건에서,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을 대상으로 벌인 정치대결이었다. 총선정국에서 미국이 취해야 하였던 조치는, 남(한국) 정치권에 자유주의를 선명하게 표방한 새로운 정당을 등장시켜 종래의 보수정당 분립체제를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로 개편하는 한편, 진보정당의 국회진출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탄핵소추를 자행한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국민연합의 폭거에 분노한 대중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서 저들의 아성을 타격했고, 2003년부터 한나라당 해체투쟁을 전개해오던 민족민주운동권 일부세력이 가세하였다. 탄핵반대투쟁이 위력적으로 전개되자 한나라당은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탄핵국면에서 주목할 것은, 분노한 대중의 탄핵반대투쟁으로 한나라당이 궁지에 빠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탄핵국면 이전에 형성되고 있었던 부패무능정당 대 진보정당의 총선대결구도가 탄핵국면으로 무너지면서, 특정세력에 의해서 왜곡된 대결구도, 이를테면 친노세력 대 반노세력의 대결구도, 또는 민주개혁정당 대 반개혁수구정당의 대결구도가 판세를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로써 부패무능정당 대 진보정당의 총선대결은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총선대결로 교체되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민족민주운동권이 지난해 말에 제기한 부패국회, 식물국회, 방탄국회, 특권국회, 난투국회를 해산하라는 반국회투쟁구호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던 도중에 탄핵국면이 조성되어 그 투쟁구호마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분노한 대중의 탄핵반대투쟁은 총선정국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세 확산으로 이어지면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기반을 상대적으로 약화시켰고 민주노동당의 총선투쟁에 불리한 조건을 만들어놓았다.

총선정국에서 그런 사태가 발생한 근본원인은, 보수정당으로 일색화되었던 남(한국) 정치권에 자유정당을 내세워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로 개편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에 따라서 탄핵국면 조작각본이 기획되고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4. 민족민주운동의 주체적 관점에서 제17대 총선결과를 평가한다

제17대 총선결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국민연합이 몰락한 것은 넉넉히 예상한 결과였으나,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예상을 뒤엎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예상득표수에 미치지 못하는 표를 얻었고, 반면에 열린우리당 득표율의 절반 정도로 참패할 것으로 예상하였던 한나라당은 예상득표수를 훨씬 넘어서는 표를 얻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득표율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총선결과를 의석수가 아니라 득표수로 평가해야 지지세의 판도와 흐름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득표수에 주목하였다.

탄핵반대투쟁에 밀려 한때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의 절반 정도까지 폭락했던 한나라당은, 총선정국 후반에 이르러 위기에서 벗어나 열린우리당을 맹렬히 추격하였다. 위기에 빠졌던 한나라당이 얼마나 맹렬하게 열린우리당을 추격하였는지는 투표결과가 말해준다. 투표결과에 따르면, 정당투표에서 열린우리당이 826만 표를 얻었던 것에 비해, 한나라당은 772만 표를 얻었고, 지역후보 투표에서는 열린우리당이 895만 표를 얻었던 것에 비해, 한나라당은 808만 표를 얻었다. 정당투표에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게 불과 54만 표밖에 뒤지지 않았고, 지역후보 투표에서는 87만 표가 뒤졌을 뿐이다. 한편, 정당투표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에게 492만 표 앞섰고, 지역후보 투표에서는 무려 716만 표나 앞섰다. 4년 전 제16대 총선에서 747만 표를 얻었던 한나라당은 이번 총선에서 772만 표를 얻어 지지율 변동이 거의 없었다. 이런 형편을 헤아려보면, 이번 총선에서 약진한 정당은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사실상 한나라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경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조작한 탄핵국면은 분산되어 있었던 자유주의세력이 탄핵반대의 구호 아래 총결집하는 효과를 낳았으며, 동시에 유동층의 가세효과까지 유발하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는 그러한 이중적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열린우리당 지지율을 수직으로 상승시키는 돌풍을 일으켰다.

다른 한편, 탄핵을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세력을 자극하여 반작용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의 대응결집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 뿐 아니라,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이르러 한나라당의 지지세 상승을 촉진하는 새로운 변수가 작용하였다. 그것은 박근혜의 에바 페론(Eva Peron)식 대중선동으로 영남권 유권자들의 지역감정이 자극되어 한나라당 지지율이 반등세를 타고, 반면에 정동영의 노인층 폄하발언으로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삭감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조작한 탄핵국면은 민주노동당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탄핵국면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 안에서 심리동요와 인식혼동을 유발하였고, 더 나아가서 유동층 안에 형성되고 있었던 민주노동당의 잠재적 지지기반 일부를 열린우리당에게 빼앗기는 상실효과를 낳았다. 기존 정치권에 대해 혐오와 절망을 느끼고 있던 유동층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돌아설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한때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나, 탄핵국면이 돌출하자 그 조건이 사라진 대신 열린우리당에 대한 유동층의 지지율이 수직으로 상승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정당득표수는 280만 표였는데, 민주노동당의 지역후보 득표수는 무려 188만 표나 줄어든 92만 표에 그쳤다. 반면에 열린우리당의 경우, 정당득표수는 826만 표였고, 지역후보 득표수는 그보다 69만 표가 늘어난 895만 표였다.

다른 정당들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정당득표수에 비해 지역후보 득표수가 더 많았는데, 유독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는 왜 지역후보 득표수가 188만 표나 줄어든 반대현상이 나타났을까? 188만 표가 줄어든 현상이 말해주는 것은,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던진 진보세력이 열린우리당이 자칫 한나라당에게 패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빠져 지역후보에 대한 투표에서는 열린우리당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사실이다.

총선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의 5만 당원들은 끝까지 분투하였으나,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취한 투표전술은 민주노동당에게 두 표를 주는 전술과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에게 각각 한 표씩 나누어주는 전술로 갈라졌으며, 그 밖의 동조세력 일부는 민주노동당 지지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열 석을 훨씬 넘겨 원내교섭단체 구성까지 넘볼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당투표 2,150만 표 가운데서 열린우리당은 826만 표, 한나라당은 772만 표를 얻었던 것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280만 표를 얻는데 그쳤다.

4년 전 제16대 총선에서 무너져가던 자민련이 187만 표로 열 일곱 석이나 얻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280만 표로 열 석을 얻어 국회에 진출한 것을 '약진'이라는 수식어로 묘사하기에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1960년 7월 4.19혁명 직후에 진행된 총선에서 네 개 진보정당이 민의원 다섯 석(득표율 6.6%), 참의원 세 석(득표율 3.3%)을 차지하였던 것에 비하면,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열 석(정당득표율 13%)을 차지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제16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지지표는 23만 표(1.2%)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280만 표(13%)를 얻어 무려 열 배가 넘는 폭증현상을 보였다. 반면에 자민련은 제16대 총선에서 187만 표(9.8%)를 얻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60만 표(2.8%)를 얻어 무려 68%가 줄어드는 급감현상을 보였다.

나는 제17대 총선결과를 평가할 때,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전개한 총선투쟁을 평가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의의와 성과는 그 평가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전개한 총선투쟁을 평가기준으로 하여 총선결과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평가가 가능하다.  

첫째,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형성한 진보세력 가운데 상당부분은, 미국의 탄핵국면 조작책동의 목표가 급조된 소수정당인 열린우리당을 강화시켜 총선에서 승리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음을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둘째,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형성한 진보세력 가운데 상당부분은, 탄핵국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심리적으로 동요함으로써 투표전술에서 행동통일을 보장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전열 일부가 흐트러졌다.

셋째,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미국의 양당체제 이식책동을 저지·파탄시키지 못했고, 탄핵국면으로 위기에 빠졌던 한나라당이 재기·약진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남(한국)의 대중언론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여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선 것을 두고 탄핵주도세력에 대한 '국민의 심판'라고 평가하였으나, 정당지지표의 흐름을 살펴보면 다른 측면이 드러난다. 탄핵주도정당인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국민연합의 정당득표수는 모두 986만 표인데 비하여 탄핵반대정당인 열린우리당의 정당득표수는 826만 표다. 160만 표 차이로 탄핵반대정당이 뒤진 것은 탄핵주도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당히 높았음을 말해준다.

넷째,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형성한 진보세력은, 남(한국) 정치사에서 44년만에 진보정당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획기적인 성과를 얻어 승리하였으나, 통일전선의 대승리는 아니었다. 만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그 대신 민주노동당이 스무 석을 얻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였다면, 그것은 미국의 양당체제 이식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종래의 보수정당 분립체제를 새로운 삼당체제로 개편한 통일전선의 대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선결과는 열린우리당이 크게 강화되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한나라당이 예상을 뒤엎고 약진하여 집권여당을 견제하는 안정의석을 차지하였으며, 민주노동당은 국회진출을 제한적으로 성공시키는 데 그친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이 자유정당과 보수정당이 의회권력을 배타적으로 분점하는 양당체제를 이식하는 한편, 한때 원내교섭단체 구성까지 넘보며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차단하려고 책동하였던 총선전략을 일정하게 관철시켰음을 뜻한다.

다섯째, 분당 이전의 새천년민주당의 성향과 현재 열린우리당의 성향을 분석할 때, 후자의 개혁성과 대북(조선) 화해·협력성이 양적으로 증대되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남(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파쇼독재와 보수정치를 반대하는 신흥중산층의 자유주의가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것이다.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은, 반독점민주주의(antimonopolistic democracy)를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이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지향하는 열린우리당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기층민중과 중산층의 사회계급관계에서, 진보정당과 자유정당의 정당성격에서, 사회변혁노선과 사회개량노선의 정치노선에서, 그리고 반독점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이념에서 상호대립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반독점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의회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전술적 공조를 취하는 문제다. 반면에, 반독점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통일전선의 대중투쟁에서 기층민중이 열린우리당과 전술적 공조를 취할 가능성은 없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제17대 총선결과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논점으로 나서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과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 개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민족민주운동권 일각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역사적인 국회진출에 감격한 나머지, 정치지형의 변화를 감성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과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 개편이 가지는 정치사적 의미를 균형 있게, 포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만 바라보고, 후자를 옳게 보지 못하는 것은 주관주의에 빠지는 것이며, 반대로 후자만 바라보고 전자를 옳게 보지 못하는 것은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주관주의와 패배주의를 피하는 길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 안정화 전략에 따라 관철된 미국식 양당체제 개편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고, 그와 더불어 통일전선의 전략적 관점에서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현실적 한계를 짚어보는 것이다.

미국의 견지에서 볼 때, 남(한국) 정치권에서 이른바 '상생정치'를 실현하는 것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하는 데서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였다. 따라서 이번 총선정국에 대응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전략적 방침은 '상생정치'가 가능한 미국식 양당체제를 남(한국) 정치권에 이식해서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하려는 것이었다.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한나라당이 안정의석을 차지한 것은, 보수정당들끼리 난투극을 벌이던 종래의 정치권을 '상생정치'가 가능한 미국식 양당체제로 개편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설정하였던 총선전략목표가 일단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총선전략목표가 달성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차지는 반독점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치의 실현과는 무관한 것이다. 정강정책도 없이 급조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였고, 반개혁수구세력의 본산인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퇴출된 것이 아니라 안정의석을 차지한 것이 반독점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치의 실현과 무관한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논할 것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전개한 총선투쟁이 보여준 의의와 한계이다.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자기의 정치력, 투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위력적인 통일전선을 아직 형성하지 못한 불리한 조건에서 총선투쟁에 나서야 하였다. 그런 까닭에 통일전선의 결집력과 투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하였다.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각계각층 대중의 사회정치역량을 폭넓게 포괄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 한계는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원내의 소수진보정당에서 명실공히 다수진보정당으로 강화·발전됨으로써 뛰어넘어야 할 한계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에 약진적으로 진출한 것이 아니라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 당했고, 소수정당의 지위에 머물러야 하였다. 이것은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통일전선의 투쟁이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이라는 성과 이상을 얻지 못했음을 뜻한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소수정당이 과반의석을 가진 집권당이나 그에 버금가는 안정의석을 차지한 야당에 대하여 견인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처한 현실적 한계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은 종래의 보수정당 분립체제가 무너지는 가운데 진보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놓았으나, 진보정치 실현을 가로막는 미국식 양당체제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앞에는 이와 같은 현실적 한계가 놓여있지만, 실천투쟁 속에서 주체역량을 강화하면 그 한계를 뚫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또 뚫고 나가야 마땅하다. 한계를 뚫고 나가는 돌파투쟁의 방향각을 가늠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민족민주운동권의 반미자주화투쟁,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 다양한 사회진보세력의 민주개혁투쟁, 그리고 전민족적 차원의 615 공동선언실현운동에 능동적으로 결합하여 의회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통일전선의 대중투쟁과 진보정당의 의회투쟁을 결합하는 것은 통일전선역량을 강화하는 불변의 전략이다. 통일전선의 대중투쟁과 진보정당의 의회투쟁이 결합하면 엄청난 동반상승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둘째, 국회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 안정화전략에 따라 이식된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를 끊임없이 타격하여 그 존립기반을 약화시키는 정치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자유정당 대 보수정당의 양당체제를 장차 진보정당, 자유정당, 보수정당의 삼당체제로 개편하고, 더 나아가서 진보정당 대 자유정당의 양당체제로 개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개편은 한(조선)반도 정세발전방향에 걸맞는 정치지형을 창출하는 것이다.

셋째, 국회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자유정당에 대한 진보정당의 전략적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유동적인 중간세력을 자기편에 끌어들여 조직력을 부단히 강화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원의 양적 증가추세를 살펴보면, 2003년 10월에 3만5천 명이었는데, 불과 넉 달 남짓한 기간에 5만5천 명으로 늘어났다. 당원증가추세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한 조건에서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 나간다면, 제18대 총선 이전에 10만 명 당원을 손쉽게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순전히 산술적으로 추산하는 것이지만, 제17대 총선에서 당원 5만 명이 280만 표를 만들어냈으므로, 제18대 총선에서 당원 10만 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표는 최소한 560만 표 이상이 될 것이다.

넷째, 민주노동당이 사회변혁노선을 추구하는 데 비하여 열린우리당은 사회개량노선을 추구하므로 민주노동당이 의회투쟁에서 열린우리당과 전략적 차원에서 공조할 가능성은 없다. 다시 말해서, 반미자주화, 반독점민주화, 조국통일의 전략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의회투쟁에서는 열린우리당과 공조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미자주화, 반독점민주화, 조국통일의 전술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의회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적극적으로 공조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라크 추가파병안을 철회하기 위하여 열린우리당의 파병반대세력과 공조하는 것,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하여 열린우리당의 폐지찬성세력과 공조하는 것, 그리고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국회회담을 추진하기 위하여 열린우리당의 화해협력세력과 공조하는 것 등이다. 사회정치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공조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통일전선의 반미자주화운동, 반독점민주화운동, 조국통일운동이 전진함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의회투쟁이 크게 강화될 경우, 거꾸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과 공조하여 민주노동당의 의회투쟁에 반격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다섯째,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이 의회주의(parliamentarism)로 흘러갈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다. 의회주의란 국회에 진출한 진보정당이 기층민중과 각계각층 대중의 역동적이고 변혁적인 투쟁력을 홀시하거나 외면하면서 통일전선운동이 아니라 의회투쟁에만 집착하는 오류를 뜻한다. 진보정당의 의회투쟁은 통일전선의 대중투쟁과 결합하는 조건에서만 존재의의를 갖는다.

여섯째,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역량을 끊임없이 강화·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보정당 중심의 강고한 통일전선체를 건설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투쟁이다. 그 투쟁과정에서 강고한 통일전선체가 건설되면, 그것은 적어도 앞으로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다.

일곱째, 1958년에 있었던 이승만 독재정권의 진보당 탄압사건이나 1961년에 있었던 5.16군사반란세력의 사회대중당 탄압사건이 말해주고 있는 대로, 민주노동당이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위력적인 진보정당으로 나서게 될 경우,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이 진보정당을 분열·파괴하는 공작을 추진할 위험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5. 글을 마치며

2004년 2월 14일 새벽, 어둠 속에서 올해 쉰 살이 된 노동자 한 사람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착취와 천대에 저항하던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는 분신자살 직전에 이런 유서를 남겼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며,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기득권 가진 놈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제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차별과 멸시, 박탈감, 착취에서 오는 분노,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

노동자들의 고통과 투쟁은 이 시각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생존권쟁취투쟁을 대중정치투쟁으로 이끌어주는 것,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임무다.   

"차라리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차라리 거리의 풀 한 포기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차라리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으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내게 미래란 보이지 않는다. 태어날 때 내 의지로 태어나지 못했으니까, 죽을 때라도 내 의지로 할 수 있다면..."

경기도 평택시에서 살았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2004년 3월 22일에 남긴 유서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연탄배달원, 여관청소원, 식당종업원으로 생계를 잇던 그 소녀의 어머니는 1998년 뇌종양으로 쓰러졌고, 아버지는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다 2002년 7월 심장병으로 숨졌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소녀가장으로 살아야했던 그 여학생은 병석에 누워있는 어머니와 나이 어린 두 여동생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밥솥에 가득 밥을 지어놓은 뒤 방에서 목을 매달아 슬픔과 상처뿐인 열 다섯 해의 짧은 생을 접었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이 지배하고 착취하는 사회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는 기층민중의 불행과 고통을 나누고, 그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는 진보정치의 실현,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의회투쟁이 나아갈 길이다.

2004년 4월 15일 남(한국)의 노동자, 농민, 서민은 좌절과 고난으로 얼룩진 역사의 장을 넘겨 마침내 자기의 손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역사의 기록은 머지 않은 장래에 완성될 것이다. 2000년 1월 30일에 발표된 민주노동당 창당선언문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우리는 이제 새 시대, 새 세상을 여는 힘찬 발걸음을 시작한다. 이미 보수정치의 벽은 변화를 향한 민중의 열망 앞에 균열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함께 부패와 억압, 차별을 낳는 보수정치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나아가자." (2004년 4월 2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