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위헌판결, 민족민주세력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 '성동격서' 국면, 민족민주세력에게 요구되는 경각성과 투쟁력


김동백 (2004년 10월 25일)

 

1.
노무현정권이 추진해온 행정수도이전계획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렸다. 언론은 연일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있고, 인터넷을 비롯한 곳곳에서 논쟁이 뜨겁다. 언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정권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식민지대리정권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는 식민지대리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식민지 지배체제의 일부분인 이남의 헌법재판소를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일까? 두 질문에 대한 민족민주운동가의 대답은 모두 "그렇지 않다"이다. 
이번 판결을 위해 헌법재판소는,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부담을 무릅쓰고 '관습헌법'이라는 생소한 개념까지 동원하였으며, 관례적으로 취해 온 '보신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나 정치적인 사안에 직접 개입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무리하고 이례적인 행동을 그들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그들 스스로의 '결단'이 아니라면 그 '결단'을 내리게 한 것은 누구였으며,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2.
행정수도이전계획은 충청도지역의 표심을 열림우리당에게 몰아주기 위해 고안된 득표전술이며, 식민지 예속경제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한 경기침체를 모면하기 위해 고안된 경기부양책이다. 지방경제의 주축인 중소기업을 끊임없이 몰락시키는 식민지 경제의 기형성이 치유되지 않는 한 수도를 어디로 옮기더라도 지역균형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명백하다. 민중을 생존의 벼랑끝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폐기되지 않는 이상 '한국판 뉴딜정책'을 아무리 실행해도 내수진작과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요컨대, 행정수도이전은 개혁이나 민생과 아무런 인연이 없으며, 행정수도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친미보수세력들 사이의 정쟁에 불과하다. 개혁이나 민생과 인연이 없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개혁과 반개혁의 전선으로 포장하여 본질적인 전선을 덮어버리고 정국을 호도하는 것, 이것이 행정수도이전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이다.

3.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호시탐탐 정국을 호도할 기회를 노리던 행정수도이전논란을 전면으로 급부상시켰다. 반면에 본질적인 전선을 형성하고 있던 국가보안법철폐문제는 정국의 2선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열린우리당이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정국을 친미개혁세력과 친미수구세력의 극단적인 정쟁으로 몰아갈 경우 참된 민주개혁의 과제인 국가보안법철폐문제는 완전히 실종되고 말 것이다. 민족민주세력이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위험성은 바로 이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정국의 주도권을 상당부분 한나라당에게 넘겨주었다. 동시에 열린우리당에서는 '4대개혁입법'도 어렵게 되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상생의 정치'라는 미명하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대체입법 또는 형법개정이라는 이름의 국가보안법개정에 합의해도 열린우리당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지게 된다. 민족민주세력의 철폐투쟁에 의해 위축되어가던 보안법개정의 가능성이 다시 넓어지고 있는 것, 이것이 민족민주세력이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위험성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수도이전을 개헌이 필요한 사안으로 못박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에서는 권력구조개편문제와 수도이전문제를 병합하여 개헌을 추진하자는 안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서 권력구조개편문제란 그 이름이 어떻게 붙여지더라도 본질적으로 내각제개헌일 수밖에 없다. 수도이전문제를 빌미로 하여 내각제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 이것이 민족민주세력이 주목해야 할 세 번째 위험성이다.

4.
앞서 밝힌 세 가지 위험성은 정확하게 미국이 원하고 또 추진해오던 사안들이다. 친미개혁세력의 사이비개혁성을 유지시켜 민중의 변혁열망을 거세하는 것, 친미수구세력을 온존시켜 식민지배체제를 실질적으로 지탱하게 하는 것, 국가보안법을 유지시켜 변혁의 도화선이 될 민족민주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저지하는 것, 이 모두가 미국의 식민지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목표들이다. 행정수도이전계획에 대한 위헌판결은 미국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추동하여 벌인 사건으로 보인다. 일견 관련이 없어 보이는 행정수도이전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켜서 다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치는 '성동격서'의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5.
'성동격서'는 상대방의 방심을 이용하는 전술이다. 민족민주세력은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적들의 행동 뒤에 숨어 있는 의도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조기에 파탄내어야 한다. 어느때보다도 비상한 각오로 투쟁력을 배가하고 국가보안법철폐투쟁을 완강하게 전개하여 여론을 주도하여야 한다. 현재의 국면을 구실로 노골화될 열린우리당의 기만성을 제때에 폭로·규탄하여 저들이 한나라당과 야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여야 한다. 한나라당과 친미수구세력을 실지로 몰락시킬 수 있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여 식민지 지배체제의 한쪽 기둥을 이제는 송두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개헌론이 제기될 수 있는 사소한 징후도 묵과하지 말고 제때에 타격하여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투쟁의 결실을 눈앞에 둔 지금, 어느때보다도 높은 경각성과 투쟁력이 민족민주세력에게 요구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