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운동의 자세: 신념화, 양심화, 도덕화, 생활화

김현환

 

주체사상은 지식과 사상을 구별해 보고 있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지식"은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 그리고 그 운동법칙을 반영한 의식형태이고 사상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이다. 나는 한동안 왜 주체사상이 <지식>과 <사상>을 구별할까 하고 궁금해하였다. 나는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에 헌신하는 과정 속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되었다. 나는 나의 학교 친구들 중에 아주 뛰어난 과학자들도 많고 사회과학자들, 언론인들, 예술인들도 많이 있다. 나는 그들이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 그리고 그 운동법칙을 발견하여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을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친구들이 사회과학분야에 종사하면서 사회현상의 본질과 합법칙성, 그리고 사회의 운동법칙을 분석하여 글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왔다.

   그런데 이들 중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사회변혁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을 비롯한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다. 그들 중 상당수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계급사회에서는 그들의 고귀한 지식마저 지배층의 지배논리, 즉 거짓의식(false consciousness)으로 지배층에 이용당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지식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자연과학적 지식도 지배층이 이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나 고문기구가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주체사상에서는 인간의 집단인 사회를 자연사적 과정으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를 자연처럼 지식으로만 서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자연에는 주체가 없지만 사회에는 인간이라는 주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를 "물질적 조건"을 중심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며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운동의 주체"인 민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김정일위원장은 1992년에 쓴 [사회주의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당의 총노선]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기에 주체인 민중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을 반드시 지식일반, 즉 문화일반에서 따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결론이다(위 책). 그리고 계급사회에서 생산수단과 정권을 소유한 지배계급은 그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요구와 이익을 반영한 <반동사상>을 가지게 되며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민중은 그들도 지배층들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어떤 지배와 예속도 반대하고 운명의 주인으로 자주적으로 살려는 <자주적인 사상>을 갖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중의 성원>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데서 "사회계급적 처지"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것을 절대화하여서는 안 된다.[김정일:사회주의는 과학이다. 1994년] 지금 이남에서 노동계급들 중 상당수가 보수기독교회에 나가면서 지배논리에 사회화되어 자기들을 실제로 옥죄는 한미동맹강화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반대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집회에 참가하였다. 한편 지난 60년간 우리 민족을 실제로 지배해온 미군의 철수와 보안법폐지를 위한 운동에 상당수의 중산층들과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인간의 "사상과 행동은 사회계급적 처지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인간이 "혁명적 영향을 받고 선진사상을 체득하면 사회계급적 처지는 어떠하든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민중의 성원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기본척도는 어떤 사회계급적 토대를 가졌는가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 하는데 있다."고 밝혀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하면서 동지를 구할 때 그의 지식이나 사회계급적 처지를 중요하게 고려는 하되 절대화하지 말고 진보적인 사상, 즉 자주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아야 한다. 지식이 아무리 많다고 하여 사상의식이 높은 것은 아니다. 지식의 높이가 사상의식의 높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 낮은 많은 농부들이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익을 위하여 사회변혁운동과 민족의 자주해방운동에 나서는 반면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전혀 그러한 운동에 나서지 않는 다면 누가 더 사상의식이 높은 것인가?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하여 박식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미국대학에서는 맑스주의가 철학강좌 중 하나로 강의되고 있다.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을 아무리 지식으로 많이 안다고 하여 그들이 반드시 사회변혁운동에는 나선다고 볼 수 없다. 사회주의변혁사상을 지식으로만 받아드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주체사상도 지식으로만 받아드리는 분들이 있다. 주체사상에서는 주체사상을 비롯한 진보적인 사회주의사상을 "신념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을 사상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의 본질과 합법칙성, 그리고 그 운동법칙을 밝힌 사회과학적 지식을 그냥 머리 속에만 간직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다면 죽은 지식이 되어 버린다. 그 지식은 민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익을 반영한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하여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럴 때 지식은 엄청난 에너지로 바뀐다. 사회변혁운동을 위한 지도사상이 지극히 정당하고 옳은 것이며 바로 나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내것화>하는 것, 즉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내것화가 바로 신념화이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 인터넷을 열어 몇 개의 중요한 사이트를 열어 본다. 최근에 임영주씨가 쓴 당면한 정세분석과 자주민주통일운동의 방향에 대한 글, 그리고 일본동포인 한계옥 교수가 쓴 미군의 세계적 재편에 관한 글, 최근의 이연희씨가 쓴 탈북자문제에 대한 분석, 그리고 많은 주옥같은 성명서들을 읽고 우리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운동의 지침서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하려면 반드시 이러한 객관적인 정세분석과 적들의 동향, 그리고 주체역량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사실상 이러한 객관적 정세와 주체역량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것을 성공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서는 방대한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매순간 일어나는 정세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올바른 사상적 노선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맑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세밀한 과학적 분석이 없었다면 사회주의변혁이론이 나왔겠으며 사회주의혁명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들 사회과학자들을 존경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옥같은 운동의 가이드라인을 단지 지식으로만 받아드리고 신념화하지 않는 다면 어찌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성공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의 적들은 거짓의식인 반동적인 사상을 신념화하고 단결하여 엄청난 힘을 과시하고 있는데...

   기독교회에서는 성경공부를 하여 성경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설교와 기도, 찬송을 통하여 그것을 내것화, 즉 신념화한다. 그것도 일주일에 일요일 새벽기도회, 대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구역예배, 등 최소한 5번은 모여 이 신념화를 계속 반복한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성서가 지식이 아니라 진리자체이며 구원의 길이라고 믿게(신념화)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기독교에만이 구원이 있다고 신앙하고 그것을 전파하러 어디든지 간다. 신념화된 지식은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지금 부쉬의 높은 지지율을 지탱시켜주는 것이 신념화된 우익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한 분들이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정당하고 과학적인 훌륭한 지도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신념화하고 그것을 이웃에게 전파하여 동지로 삼는 일을 기독교인들보다도 게을리 한다면 우리 운동을 성공시킬 수가 없다. 동구와 소련의 사회주의가 붕괴된 것은 기독교인들처럼 지도사상을 열심히 연구하고 신념화 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웃에게 전파하지 못한데 그 원인들 중 하나가 있다.      나는 민족운동을 하면서 이러한 신념화의 문제를 많이 고민하여 왔다. 나와 같이 기독교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보수적이고 문자주의적인 기독교를 믿을 때는 열심히 모였고 헌금도 열심히 하였고 봉사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내가 자유주의신학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보수주의, 문자주의 신학에서 해방하였다. 그것은 해방신학으로 가기 위한 의식화의 한 과정으로 좋은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러는 과정에 그들의 열정이 살아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이 의식화되어 가면서 열성이 더 가열되기를 바랐는데 그 반대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고민하던 차 이북을 드나들면서 그 해결책을 이북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북을 방문할 때마다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항상 신나는 부흥회를 경험하였다. 이북에서는 노동현장이나 학교교실, 행사장, 등에서 그들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해설하고 그것을 신념화하기 위하여 노래도 부르고 총화(신앙간증)시간도 가지며, 영화도 보고 잘한 사람에게는 표창도 한다. 토요일에는 전 민중이 모두 각 조직별로 학습을 한다. 나는 이북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를 안내하는 지도원들이나 학자들의 말에 감동을 받아 눈시울을 적시곤 하였다. 그리고 밤에 티비를 통하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내용들이 내 가슴 한복판을 때려 나를 울리곤 하였다. 때때로 그 영화와 드라마 속에 나오는 노래들은 내 폐부를 쑤시고 들어와 나를 울렸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과거에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고 새롭게 살 결심을 하곤 하였다. 나는 이러한 지속적인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나는 이북사회를 하나의 커다란 교회처럼 느낄 때가 많다. 이러한 주체사상의 신념화과정을 통하여 이북민중은 사회주의변혁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한 사상으로 일심단결을 이룩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신념화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각자의 개인의 이익에 따라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운동조직 속에서 조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개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패거리를 지어 다니며 운동을 분열시키는 경우를 가끔 목격한다. 그것은 조직원들이 신념에 따라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이익에 따라 운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운동에서 어느 줄을 서면 자기에게 이익이 될까 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신념화가 안된 사람들이다.

   다음으로 주체사상에서는 변혁을 위한 지도사상을 신념화한 후 그것을 <양심화>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사상이 정당하고 옳은 것이며 바로 우리 자신들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들 것으로 만든 후, 즉 신념화한 후 그것을 누가 보든 말든 실천하는 것을 양심화라고 말한다. 아무리 신념화된 지도사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남이 보면 실천하는 척하다가 남이 보지 않으면 실천하지 않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것은 양심화가 되지 않은 것이다. 성직자가 보는 앞에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가 보지 않는 데서는 멋대로 행동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신앙이 양심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부들 앞에서는 열심히 주체사상을 외우고 실천활동도 열심히 하다가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주체사상을 양심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이 보든 말든 우리가 하고자 하는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이 정당하고 옳은 것이고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시종일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양심화가 된 것이다.
   셋째로, 주체사상에서는 지도사상을 신념화, 양심화 한 후 그것을 <도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화란 우리가 하고 있는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이 남들이 보기에도 참으로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종교인들이 사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참으로 모범이 되어야지 다른 불신자들과 차이가 없거나 더 사회문제를 야기하면 그것은 도덕화가 되지 못한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돈벌이를 하거나 병을 고쳐준다고 남의 재산이나 빼앗거나 여성을 농락한다면 그것은 남들이 객관적으로 보아도 좋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덕화가 되지 못한 것이다.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하는 분들 중 일부가 지도사상을 잘 외우고 있고 그것을 신념화 양심화 하는데 까지는 되어 있는데 남이 보기에 덕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도덕화가 되지 못해서 그렇다. 우리 주위에서 보면 지도사상에 대해 박식하고 그것을 신념화, 양심화한 일부 운동조직원들이 우리의 내부정보를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조직원은 전화만 잡았다 하면 수십 분 동안 조직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들먹이면서 험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간부의 직책을 맡은 일부 운동원들이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며칠씩 이유 없이 사무실을 비워 사무를 엉망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북과 교류사업을 하면서 보면 일부 사람들이 이북의 높은 간부들과 만날 경우 열심히 사진을 찍어 자기들이 마치 대단한 인물이나 된 것처럼 보이게 하여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분들이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 사진을 부유한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돈을 걷어 북에 선교를 하려고 한다면서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다 그들이 도덕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운동가들과 사회변혁운동가들이 타에 모범이 되어야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든다. 타에 모범이 되지 않으면 조직이 민중으로부터 고립되어 버린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덕화란 특수한 종교그룹들이 내세우는 도덕군자가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주체사상에서는 지도사상을 신념화, 양심화, 도덕화 한 후 그것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사상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를 살아야 한다. 나는 김일성주석님을 존경하고 경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여기서 지금 주석님을 살아야 한다고 오래 전 글에서 강조한 바 있다. 교회예배나 열심히 참석하는 것보다 예수처럼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먹을 것을 주고 병을 고쳐주며 안식일 법 같은 억압의 법으로부터 신자들을 해방시켜 주는 실천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다 십자가를 지는 고통까지도 맛본 기독교인들만이 예수를 생활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하는 분들도 운동활동 따로 가정생활과 개인생활 따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 하루 일상생활이 운동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나도 우리의 체취에서 민족애와 민중애, 조국애가 흘러 넘치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러나 말은 쉽지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물질화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복판 미국 땅에서 살면서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는 생활 속에서는 자본주의식으로 살면서 사회변혁사상을 외치고 있다. 너무 나의 생활과 거리가 먼 이상을 허공에 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엄습한다. 나는 때때로 바닷가에 위치한 팔로스 버디스 시의 수백만 딸라하는 해변가 호화 주택들이 늘어선 거리를 따라 산책을 하곤 한다. 저들이 과연 내가 떠들어대는 사회변혁사상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고 자문해 보곤 한다. 서울시에도 한강을 중심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고 한다. 강남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외쳐대는 조국의 자주화와 통일, 민주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은 아마 "너희들도 게으름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우리처럼 잘살 수 있으니 자주, 민주, 사회변혁, 운운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하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먼저 이웃 중의 한 사람이라도 동지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운동이 6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 비교하면 많이 진보하였다. 우리의 지도사상을 끊임없이 신념화, 양심화, 도덕화, 생활화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살건 우리가 하는 민족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이 정당하고 우리 자신의 이익에 맞는 것이기에 그것을 신념화, 양심화, 도덕화, 생활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하나라도 더 동지를 얻는 일부터 열심히 해나가야 겠다.

*필자는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