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코리아연구소 2005.2.11

 

이북의 핵무장선언을 분석한다

 

21세기코리아연구소 연구소장 조덕원

 

올 것이 왔다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2월 10일 이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외무성성명으로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2.10선언’이라고 부를만한 이 조치는 한마디로 핵무장선언이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이 폭탄선언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지금 벌어진 상황을 시급히 분석하고 우리의 대처방안을 내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우선 그 성명의 주요내용부터 살펴보자.

 

성명은 6자회담참가 중단과 핵무기 보유 선언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성명은 6자회담참가 중단의 원인에 대해 “부쉬행정부가 이번에 적대시정책을 초과하여 회담상대방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락인하면서 우리를 전면부정한 조건에서 6자회담에 다시 나갈 그 어떤 명분도 없다”고 지적하는 한편 “우리는 6자회담을 원했지만 회담참가명분이 마련되고 회담결과를 기대할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였다고 인정될때까지 불가피하게 6자회담참가를 무기한 중단할것”이라며 6자회담참가 중단이 잠정적 조치임을 밝혔다. 요점은 이북의 6자회담참가 중단이 전적으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때문이며 따라서 그 정책이 대북평화공존정책으로 전환되면 다시 참가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니들 하는 짓을 보니 만나봐야 별로 좋을 게 없어 안나가련다, 마음 바뀌면 연락해라”는 뜻이다.

 

동시에 성명은 핵무기 보유에 대해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확인하는 한편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것”이라며 자위적 핵억제력을 계속 강화할 것을 강조하였다. 요점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에 맞서기 위해 부득불 자위적 목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는데, 미국이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니 살기 위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 앞으로 더 많이 만들 작정이니 알아서 해라”는 정도로 풀이된다.

 

더불어 성명은 “미국의 무분별한 망동과 적대적 기도가 로골화될수록 우리는 일찌기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천만군민의 일심단결과 자위적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해온데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게 될뿐”이라고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한편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립장과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며 북미정치회담의 필요성과 코리아(Corea)반도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이북의 두 가지 조치가 어떤 원칙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밝혀주는 대목인데, “우리 힘이 쎄다는 거 알지 않느냐, 질질 끌지 말고 그만 매듭짓자”는 의미다.

 

또한 성명은 “미국은 지금 어리석게도 인민에 의해 선출된 우리 정부를 부정하고 인민의 편에 있다고 하는데 회담을 정 하고 싶다면 미국이 좋아한다고 하는 농민시장 장사군들이나 미국이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탈북자조직’대표들과나 하라는것”이라고 미국의 대북인권소동을 조소하는 한편 “이미 다 해결된 ‘랍치문제’를 걸고 가짜 유골문제까지 조작하면서 조일평양선언을 백지화하고 국교정상화를 하지 않겠다는 일본과 어떻게 한자리에 마주 앉아 회담할수 있겠는가”라며 대일본정치공세를 잊지않았다. 미국과 일본 보고 별 효과도 없는 유치한 심리전은 이만 접으라고 웃으며 하는 소리다.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이북의 성명은 힘이 있고 명쾌하다. 오늘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핵무장이니, 대화중단이니 하며 겁 없이 맞서는 나라는 이북밖에 없다. 소련이 망하고 중국이 헤매며 이라크가 엉망이 된 상황에서 조금도 동요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이북의 모습은 인류에게는 경탄의 대상이요, 미국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연구소가 2003년 7월 이후 지금까지 발표한 백여편의 논문 중 대부분이 북미정세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그러니 굳이 이 자리에서 1990년대 이후 북미대결전 15년역사나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탈퇴 이후의 흐름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하 이북의 핵무장선언이 나온 배경과 그 본질, 이후 정세전망과 진보세력의 당면과제의 순서로 설명한다.

 

왜 지금인가?

 

사실 이북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1994년 김일성주석이 카터와의 회담에서 핵무장을 언급하거나, 2002년 말 강석주부부상이 켈리차관보에게 두 종류의 핵무기와 더 강한 무기의 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북은 이 핵과 미사일 카드를 이용해 이남에서 미군철수와 북미수교, 경제봉쇄해제 등의 숙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이 경수로제공10년약속을 어기자, 2003년 1월에 미련없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고 그 이후 핵억제력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그래도 지난 2년간은 부시정권의 지연전술을 꾹 참으며 결정적인 공세를 취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2월 10일 마침내 칼을 빼든 것이다.

 

이북은 왜 2005년에 와서야 핵무장선언을 한 것일까? 우선 성명의 표현대로 부시의 연두교서와 라이스의 취임연설이 직접적 자극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년을 기다려왔는데, 앞으로 4년을 더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이 초강수를 쓰게된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더 6자회담을 해보고 나서도 쓸 수 있는 카드라는 점에서는 의문이 생긴다. 국무부 선임국장 마이클 그린이 일본, 이남, 중국을 순회하며 ‘중대한 제안’을 시사한 것으로 볼 때, 그 구체적 내용은 북미뉴욕채널을 통해 이미 이북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또 부시의 연두교서가 예년에 비하면 많이 누그러진 점도 주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북은 미국의 시간벌기용 6자회담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북이 6자회담 없이 바로 핵무장선언을 한 것은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 미군철수원년으로 빛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잘 알다시피 올해는 조국광복 60돌이자 미군강점 60년이다. 또한 선군정치 10돌이고 6.15공동선언발표 5돌이 된다. 지난해 말 남북해외는 6.15공준위 건설을 합의하며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으로 만들자고 발표했으며, 한편으로 미군철수공대위 건설을 논의, 추진 중에 있다. 이 미군철수공대위, 6.15공준위는 각각 반미와 통일을 기치로 하는 민족공조체로서 이북의 신년공동사설이 밝힌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 공조의 구체적 추진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북의 대미 군사정치적 공세와 이들 3자연대체들의 대미 대중정치적 공세가 하나로 합세하며 미군철수를 촉진하고 자주통일을 앞당기는 형국인 셈이다. 한마디로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 미군철수원년으로 빛내이기 위한 결정적 조치로서 ‘2.10핵무장선언’이 발표된 것이다.

 

한편 선언시점으로 민주개혁의 2004년을 피한 점이 돋보인다. 선언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으로 볼 때 이남에서 총선이 있고 국가보안법철폐가 쟁점이 되는 2004년을 참을성 있게 넘긴 셈이다. 지난 총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진보정당이 원내 10석을 차지하고 수구정당이 과반에 미달한 것이나 국가보안법연내처리의 가능성을 보며 선언시점에서 2004년을 피했음은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만약 2004년에 핵무장선언을 했다면 친미수구세력이 기승을 부리며 민주개혁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국가보안법2월폐지가 사실상 곤란해진 점도 선언시점을 더 미루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북이 핵무장시점을 선택하는데서는 미국의 대선결과나 6자회담 관련국들과의 외교적 관계 등도 충분히 고려되었을 것이다. 만약 미대선에서 민주당후보가 당선된다면 굳이 핵무장선언과 같은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아도 북미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수로제공약속 10년에 이어 2003년부터 2년간이나 인내하며 3차나 6자회담에 참석했기 때문에 외교적인 명분도 충분히 축적된 측면이 있다. 이라크총선에서의 친미세력의 참패와 미국의 대이란전 조짐도 선언시점을 결정하는데서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이북이 핵무장선언시점을 전략적으로 고려하며 오랫동안 인내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북은 자신의 오랜 전략적 목표인 자주통일위업을 이루기 위해 결정적인 대미 군사적 공세를 아껴오다가 적기에 터뜨린 것이다.

 

하루빨리 마무리짓겠다는 뜻

 

2.10선언에서 흥미로운 점은 6자회담참가 중단과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나로 연계시켜 발표했다는 점이다. 그 의도는 성명 곳곳에 미국의 정책전환이 이루어지면 언제든지 복귀하겠다는 표현으로서 충분히 시사되고 있다. 북미관계에서 회담중단이란 전쟁위험을 의미하며 전쟁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자위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 자위역량의 중심에 핵무장력이 있다. 한편 이는 6자회담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북미정치회담이 성과를 본다면 핵무기보유도 재고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다시 말해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도 일정한 조건이 이루어진다면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북은 핵무기보유선언을 통해 강력한 자위수단만이 아니라 강력한 협상수단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연구소는 지난 논문들에서 누차 이북은 미국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지난 2년 간의 6자회담과 같은 소극적인 협상전술을 접고 적극적인 군사공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북은 60년 간의 대미 투쟁과 협상을 통해 미국이라는 제국주의국가는 군사적 공세를 통해서만 협상탁에 나온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하였다. 다만 공세란 앞서도 밝혔듯이 다 때가 있는 법이므로 그 시점이 적절히 조절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북이 6자회담참가 중단과 함께 핵무기 보유를 바로 이 시점에 선언한 속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 미군철수원년으로 빛내이기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지부진한 북미정치협상을 하루빨리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만큼 취해진 조치도 초강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6자회담참가 중단이란 곧 북미 간 정치적 회담의 중단, 협상중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입장에서의 이북의 핵확산금지조약탈퇴와 핵무장선언은 미국의 세계패권을 위협하는 특대형사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일본의 핵무장선언을 도미노처럼 초래하여 미일군사동맹을 파탄시키고 주일미군의 철수를 추동하게 만든다. 미국에게 주한미군 주둔이 전술적 의의가 있다면 주일미군 주둔은 전략적 의의가 있다. 한마디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거점을 상실하게 되는 주된 요인이 이북의 핵개발에 있다고 볼 때,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수단으로는 전쟁과 협상 두 가지가 있는데, 지난 10여년간의 북미대결전은 전쟁은 불가능하고 오직 협상밖에 없다는 사실이 수차 확인된 바 있다.

 

그럼 이번에 이북이 6자회담참가 중단을 선언하고 설상가상으로 핵무장까지 공표해 버린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바로 미국에게 북미관계 개선(주한미군 철수)이냐, 세계패권 상실(미일군사동맹 파기)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이다. 양자택일은 보통 강대국이 약소국을 제압할 때 쓰는 방식으로서 이를 미국에게 강요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이북 뿐이다. 이북은 독특한 선군정치로 1990년대 말 신흥군사강국이 되었고, 그 이후 미국은 북미대결전에서 완전히 피동에 몰리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벼랑끝에 서 있는 것은 이북이 아니라 미국인 셈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힘겨운 상대와 전면적인 군사정치적 대결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지난 기간과 같은 옹색한 지연전술이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은 짧은 시간 안에 이북의 요구를 들어주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고 지체없이 이를 적절한 방법으로 이북에 통보하여야 한다. 이북은 단 한 수로 북미관계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어정쩡한 양면전술로 6자회담을 치러보겠다던 2기 부시정부는 국제적인 망신살 속에 일대 혼란을 맞고 있다. 다윗의 돌팔매질에 호되게 얻어맞고 비틀거리는 골리앗의 꼴이다.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공은 미국쪽으로 넘어가 있다. 이북이 6자회담불참과 핵무장을 선언하였으니 이제는 미국이 이에 화답해야 할 국면이다. 일단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앞서 밝혔듯이 전쟁 아니면 협상이라는 둘 뿐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전쟁방법은 이라크나 통하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있는 군사강국 이북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가하다. 그리고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과 미일군사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북의 보유핵무기를 해체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이북이 원하는 것과 미국이 원하는 것을 동시일괄타결의 방식으로 맞바꾸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

 

이북의 이번 6자회담불참과 핵무장 공개선언은 초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이래 벌어진 북미대결전의 다양한 사건들과 근본적으로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즉 본질상 6자회담은 정치협상이고 핵무장은 군사공세로서 이북이 사용하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인 셈이다. 이북은 미국을 상대로 이 ‘당근과 채찍’ 전술을 여러번 사용한 바 있는데, 1993~94년이나 1998~99년처럼 미국은 번번이 이에 굴복하며 이북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1994년에는 카터, 1999년에는 페리가 방북하며 대북 적대정책을 평화공존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94년 말의 북미기본합의서와 2000년 말의 북미공동코뮈니케는 이런 식의 이북의 군사적 공세에 이은 전격적인 정치협상으로 이루어진 성과들이다.

 

이북이 미국을 향해 강력한 군사적 공세를 날린 만큼 미국도 조건반사식으로 이북을 향해 군사적 공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매년 코리아반도 남단에서 북침전쟁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고 이보다 더 위협적인 미일연합군사훈련도 일본열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군사훈련들을 강화하거나 앞당겨 벌임으로써 북미정치협상 이전에 나름대로 유리한 정치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이북을 절대로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며 별다른 위협 효과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이남에서의 반전반미기운만 돋구어주며 반전반미운동의 대중화만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이남 진보세력의 선도적인 역할이 중요하게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이북을 회담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뉴욕에서의 북미간 실무협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방도가 없다. 적어도 1994년 카터(전대통령)나 1999년 페리(전국방부장관, 당시 조정관), 또는 2000년 울브라이트(당시 국무장관) 급의 특사가 방북하지 않고서는 국면을 전환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6자회담의 복귀가 아니라 북미고위급정치회담이 언제 이루어지는가의 국면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급의 정치회담이란 북미최고위급정치회담(정상회담)의 사전회담의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북미정상회담에서의 기본의제는 당연히 북미수교다. 따라서 지금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북미수교 여부에 대한 정치적 결단과 그 시점에 대한 합리적 고려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현 상황을 질질 끌며 또 다시 지연전술을 구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선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북의 핵자위력은 강해질 것이며, 일본의 핵무장이 촉진되어 미일군사동맹의 파기나 핵확산금지조약의 해체와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절묘한 시기에 공을 넘겨받은 미국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더구나 이라크전이 진행중이고 이라크총선에서의 친미세력의 참패가 마치 베트남전처럼 미국내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 와중이 아닌가. 만에 하나 미국이 지연전술을 쓴다면 이북은 십중팔구 제2의 군사적 공세를 감행할 것이다. 이북이 쓸 수 있는 군사적 공세는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처럼 무궁무진하다.

 

이북은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 위에 서 있는 나라로서 모든 사고와 방식이 유격전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유격전의 상용수법 중 하나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습공격이고 상대에게 숨쉴 틈을 주지 않는 연속타격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김일성주석의 보천보전투와 그 직후의 간삼봉전투는 대표적인 사례다. 1998년만 해도 5월 말 파키스탄에서의 지하핵 실험에 이어 8월 말 인공위성 발사라는 기습공격과 연속타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종자론에 의거하여 방식의 비반복성을 중시하는 이북으로서는 그런 의미에서 핵기폭실험이나 지하핵실험과 같은 핵차원의 공세보다는 두 번째 인공위성 발사와 같은 미사일차원의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이 또한 일본을 자극하며 미일군사동맹을 위태롭게 만들며 미국의 국제적 미사일통제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결정적 군사공세 중 하나다. 사면초가에 몰린 미국으로서는 핵공세에 이어진 미사일공세를 결코 감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당분간은 북미간에 군사적, 정치적 공방이 탁구공처럼 오고가며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모든 조건이 알려주듯이 북미간의 핵문제는 오직 정치협상을 통해 풀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시기가 언제이냐가 분석의 초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밝혔듯이 이북이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하게 원하고 그런 조건을 만든만큼 상반기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만약 미국이 지연전술을 고집한다면 이북은 연속타격을 가하면서 미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적인 전망으로 6.15 이전에 북미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 이후에 연달아 남북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고 전망할 수 있겠다. 이는 1994년처럼 카터와 같은 특사의 방북으로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고, 2000년처럼 북미관계가 사실상 풀린 조건에서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미관계의 개선의 순서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북이 자주통일원년을 빛내이려는 수단으로 핵무장선언카드를 사용한 만큼 8.15 이전에는 결정적인 국면전환을 이루어내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6.15공준위의 결성으로 알 수 있듯이 이북은 조국광복 60돌이 되는 올해 8.15를 조국통일을 위한 대축전으로, 민족공조의 대화합으로 만들려고 한다. 또한 이 흐름을 2000년 조선로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처럼 60돌기념식으로 이어가려고 할 것이다. 이북은 늘 그래왔듯이 이러한 역사적 계기들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 이북은 북미대결전의 전개방식도 특유의 종자론에 의거해서 독특하게 풀어나간다.

 

이런 국면에서 딱하게 된 것은 이남의 열린우리당정권이고 일본의 고이즈미정권이다. 우선 이남정권은 이제부터 민족공조냐 한미공조냐 하는 사활적인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전자를 선택하자니 친미예속성에 맞지 않고 후자를 선택하자니 7천만겨레가 쳐다본다. 물론 노무현정권은 이라크파병을 강행하였듯이 한미공조를 선택할 것이고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자기파괴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당장 이북이 선수를 쓴 비료 50만톤 제공의 판단부터 고민거리다. 핵무장이란 본질상 대남 군사적 공세가 아니라 대미 군사적 공세다. 좁은 코리아반도에서 핵무기의 사용이란 자해나 다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은 미국의 지령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어떠한 자주성도 발휘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일본정권의 신세는 더욱 비참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반미우익세력들은 이북의 핵무장선언을 계기로 자국의 핵무장화를 서두르며 미국으로부터 자주적 입장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일본의 핵무장화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에 일본의 반북핵소동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나면 미국의 지휘봉 따라 춤을 춘 일본에 대한 이북과 국제사회의 싸늘한 냉대만 남게 되고 일본은 더 이상 6자회담에 머리를 들이밀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6자회담이 5자회담이 된다는 것은 일본의 국제적, 외교적 고립과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진출의 파탄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조롱거리인 가짜유골소동을 일으킨 정치난쟁이 뱁새 일본은 이후 북미관계 개선의 황새걸음을 쫓아다니느라고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 조선일보를 비롯한 이남의 친미수구세력의 발악적 반북책동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고 2004년 총선에서 국회를 내놓은 이들 친미극우세력들은 마지막 지탱점인 국가보안법의 존폐가 풍전등화인 국면에서 기사회생의 계기로 2.10선언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이미 사이비개혁정권의 기회주의적 동요에 의해 국가보안법2월폐지가 어려워진 조건에서 친미수구세력의 반발책동은 이남에서의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의 갈등을 심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남 진보세력의 반보수전선과 반수구전선의 변증법적 결합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다.

 

동시에 이남민중의 정치적 각성이 비상히 고양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미 비정규법안개악과 쌀시장개방의 신자유주의 반민중정책으로 격분하고 있는 노동자, 농민 대중은 2.10선언과 북미관계, 남북관계의 전환국면을 통해 민족자주적 각성을 크게 높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남민중의 민족자주적 각성이란 곧 정치의식화를 의미하며, 진보정당이 실재하는 조건에서 민중의 정치의식화란 곧 정치세력화를 의미한다. 이미 낮은 단계 정치투쟁인 준정치투쟁의 절정단계로 치닫고 있는 이남민중은, 자신들이 제압하지 못하는 이남정권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미국을 당당히 제압하는 이북의 모습 속에서 강한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남민중이 민족자주의식을 체현하는 그 속에 반미운동의 대중화와 6월항쟁식 비약의 지름길이 있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풀리게 된다는 것은 이북이 요구하는 미군철수와 북미수교 말고도 대북경제봉쇄망이 풀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북의 핵동결을 대가로 미국은 이북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경수로제공의 부도수표를 경험한 이북으로서는 당장의 에너지공급책을 미국에 요구할 것이다. 이는 미국이 이남을 통해 개성공단에 200만킬로와트(약속된 경수로 2기의 발전양) 이상의 전력을 공급하는 대안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북은 2.10선언을 개성공단에서 일정한 성과가 이루어진 이후에 공포하였다는 점이 새롭게 부각된다. 결국 물은 곬따라 흐르는 법이다.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럼 우리 진보세력은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정세가 조성된다고 해도 진보세력은 주체의 변혁과 통일 전략에 의거해 정립된 노선을 따라 나아가면 된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전략이라고 부르는 이 노선은 한마디로 자주적 민주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정치노선과 진보적 대중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을 강화하고 지역 및 전역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조직노선, 그리고 조성된 정세에 맞는 반미자주화, 민중민주, 조국통일의 구체적 실천과업을 달성하는 투쟁노선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핵무장선언과 관련된 정세분석으로부터 도출되는 과제인 만큼 반전반미투쟁이 첫손에 꼽히지 않을 수 없다. 진보세력은 개혁세력과 손잡고 낮은 수준의 반전평화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진보세력 고유의 높은 수준의 반미투쟁을 배합하며 총적으로 올해 반전반미운동을 미군철수운동으로 지향시켜나아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미 결성을 합의한 평화연대와 ‘반미연대(파병반대국민행동)’의 역할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미 민족공조체이자 6.15공준위의 선도체인 미군철수공대위 결성을 진보세력 다수가 시급히 합의하고 이에 의거하여 대대적인 반미선전전, 반미대중전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미군철수공대위건설은 당연히 범민련남측본부가 선도하고 한총련이 주도하여야 하며 일부 민족민주세력의 소극주의적인 ‘시기상조론’을 극복하면서 전농, 민주노총 등 기층민중의 결합을 최대한 추동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 반한나라당투쟁이 강화되어야 한다. 2.10선언에 자극받아 길길이 날뛰는 친미극우집단 한나라당을 광범한 진보개혁세력의 단결된 투쟁으로 해체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친미극우세력이 이 땅에서 저지른 추악한 과거죄행을 철저히 단죄하는 투쟁, 친미극우세력이 여전히 휘두르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폐지하는 투쟁과 밀접히 결합시켜 진행되어야 한다. 과거사청산이 친미극우세력의 인적 청산이라면 국가보안법은 그 법적 청산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해체투쟁은 6.15공동선언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전략적 타격투쟁으로서 열린우리당정권 반대투쟁이라는 전술적 타격투쟁과 차원을 달리하며 전개됨으로써 친미보수세력의 분열과 약화를 결정적으로 촉진한다.

 

다음 6.15공동선언실천투쟁이 중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통일애국세력이 민족공조선언인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내외 반통일세력과 전면적으로 투쟁할 때이다. 6.15공동선언에 동의하는 세력을 최대한 6.15공준위의 체계로 묶어세우는 한편 6.15공동선언을 반대하는 반통일세력과의 투쟁을 거세게 벌이는 동시에 열린우리당정권이 반통일 한미공조가 아니라 통일지향의 민족공조로 나올 수 있도록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그리하여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전변되는 6.15 전후의 시점부터 8.15까지를 낮은 단계 민족통일전선인 민족공조를 전민족적으로 실현하는 호기로 만들기 위해 착실히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범민련남측본부는 광범한 세력을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해 선도적이면서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희생적인 면모를 보여야 할 것이다.

 

다음 반일투쟁이 강조되어야 한다. 조성된 정세는 일본의 호전적인 극우세력이 피 맛을 본 야수처럼 설쳐댈 것을 예견케 한다. 이미 일본은 가짜유골사건까지 일으키는 등 최소한의 분별력마저 상실하고 반북망동에 미쳐날뛰고 있다.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납치한 역사적 죄행을 회피하고 유치한 조작사건까지 일으키며 광분하는 일본군국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고 대중적인 규탄투쟁을 줄기차게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 기층민중의 생존권쟁취투쟁과 우리민족의 자주권쟁취투쟁을 하나로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 노동자의 비정규직차별철폐, 최저생계비현실화 투쟁과 농민의 쌀수입개방반대투쟁 등의 생존권쟁취투쟁은 조성된 정세와 자주통일원년의 원대한 구상에 맞게 반미반전, 6.15공동선언실천 투쟁과 밀접히 결합시켜 전개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학생과 재야세력의 선도적이고 연대적인 관점과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층민중이 제도 및 법률 개선을 위해 벌이는 준정치투쟁을 대중적 정권전취투쟁으로 상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주통일투쟁에 앞장서온 청년학생과 재야세력의 선도적인 연대투쟁이 절실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과 지역통일전선체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각계각층의 선도적 정치활동가들을 대부분 망라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지역통일전선의 추진체, 진보개혁운동의 선도체로서의 역할을 비상히 높여야 한다. 조성된 정세는 민주노동당이 반미 및 통일 민족공조에 앞장서고 반미반전투쟁을 대중화하는데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면해서 반미연대, 평화연대의 상설화와 함께 숙원인 민중연대와 통일연대의 통합을 선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정치사업은 중앙만이 아니라 전 지역에서 실정에 맞게 적극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진보개혁전선(민족민주전선) 형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지역통일전선과 3자연대의 전역통일전선이 하나되고, 기층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완료되어 대중적 정권전취투쟁에 분기할 때가 바로 진보운동의 결정기가 될 것이다.

 

남은 것은 승리의 영마루를 향한 예정된 노정을 다그쳐나가는 진보운동가들의 확신성있는 노력과 투쟁이다. 국면은 모든 진보세력이 반미 민족공조의 기치 아래 하나로 단결하고 결정적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헌신하고 분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세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잔물결에 동요하는 기회주의자들과 진보개혁세력의 단결을 훼방하는 분파주의자들은 대중적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미군철수공대위와 6.15공준위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 2005년을 반드시 미군철수원년, 자주통일원년으로 빛내여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뜻대로 되어가고 있다.(2005.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