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활동 속에서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일성주석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김일성주석은 사상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론 활동은 학자들처럼 고요한 서재에서가 아니라 생사를 가늠하는 혁명투쟁의 실천 속에서 진행되었다. 혁명의 수뇌로서 무수한 동지들과 반제국주의 투쟁을 하는 과정 속에서 수뇌의 한 번의 실수는 무수한 동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가 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김주석이 읽은 과거의 혁명이론은 맞는 것도 있지만 그것을 절대화하여 교조적으로 받아들였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주석이 만주에서 어린 나이에 반일투쟁을 전개하면서 많은 사색을 하고 깨달은 것은 기존의 혁명이론을 포함하여 모든 사상은 교조적으로, 사대적으로가 아니라 항상 실천 속에서 비판적으로 대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사상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 나라에서 나온 사상, 혁명의 선배들이 정립한 사상들이라고 해서 사대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그것들이 지금 우리의 실정에 맞는 사상인지를 검증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예리한 통찰이었다.

김주석과 함께 초기 반일혁명활동을 한 청년들 중에는 일본에 유학한 김혁, 차광수 박소심, 등 많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이론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나이도 김주석보다 위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체적인 반일혁명활동 속에서 체계화된 김주석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높이 평가하였고 그의 지도력을 깊이 신뢰하였다. 김주석은 맑스-레닌주의 사상을 지닌 동지들에게 맑스-레닌주의는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인 영국, 또는 덜 발전된 자본주의나라인 러시아의 현실과 혁명경험을 일반화 하여 나온 사상이며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자는 혁명이론과 전략전술이었지 조선처럼 식민지 반봉건 사회를 해방시키는 사상과 혁명이론, 전략전술은 될 수 없지 않느냐고 명백히 지적해 주었다. 그의 통찰이 옳았던 것이다.

길림에서 김주석은 그보다 나이도 많고 맑스-레닌주의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한 서울출신의 엘리트인 박소심선생과 자주 논쟁을 하였다. 소심선생은 자기가 책에서 읽은 대로 식민지 민족해방은 종주국에서 먼저 일어나고 종주국 프로레타리아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소심선생의 이론대로라면 중국이 공산화된 것이 1949년도니까 조선혁명가들은 그때까지 중국혁명에나 매달려 있어야 되었고 일본의 총련은 지금까지 일본의 프로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하기만 기다리다 아직 결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청년 김주석은 물론 종주국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하면 조선혁명에도 도움이야 되겠지만 <자체의 혁명역량>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것만 준비되면 종주국의 프로레타리아 혁명에 관계없이 식민지 민족은 자체의 힘으로 혁명에 승리할 수 있다고 소심선생을 일깨워 주었다. 소심선생이 늘 말하듯 <맑스-레닌주의 고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는 식의 교조주의,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으로서는 결코 조선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면서 청년 김주석은 <민족자주적 입장>에서 사색을 거듭하며 조선혁명의 지도사상을 구상했던 것이다.

둘째로, 청년 김주석은 혁명실천활동 과정에서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에 의거하여 투쟁해야만 성공한다는 것을 실체험을 통하여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1920-30년대 조선민족해방운동을 한다는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민중을 떠나 상층부의 몇 사람들이 모여 말공부만 하면서 서로 의견이 다르면 싸움질이나 하여 파벌만 만들고 전혀 혁명실천은 하지 않고 남에게 승인이나 받으러 다니는 꼴을 보고 김주석은 동지들과 함께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에 의거하여야 하며 자기 자신이 투쟁을 잘하면 남에게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자각 속에서 혁명이론을 새롭게 창출해 내었던 것이다.

즉 혁명의 주인은 민중이며 민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깨우쳐 조직동원해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과 혁명에 나서는 모든 문제를 남의 사상과 경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혁명실천 속에서 창출된 김주석의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고 김주석과 동지들은 고전 책들의 해석을 가지고 책상머리에서 서로 다투며 파쟁이나 일삼지 않고 직접 민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해 나갔으며 일반 대중까지도 다 동원하여 반일애국투쟁에 나서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1929년 가을 김주석은 중국국민당 반동경찰에 체포되어 길림감옥에 갇히게 되어 1930년 5월 초까지 옥중생활을 하였다. 이 옥중에 갇혀있는 동안 그는 그의 혁명실천활동을 토대하여 혁명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1930년 6월 30일부터 7월2일 사이에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그는 그동안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여 체계화한 그 유명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조직동원되어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운동의 지도자들은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 자신이 주인이 되어 혁명투쟁을 전개하도록 하여야 합니다....또한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고 자기의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우리는 이 교훈으로부터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인민 자체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핵심 내용이고 이때를 주체사상의 창시일로 잡고 있다. 주체사상의 핵심 알맹이가 여기에 다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논문에서 김주석은 종래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조선혁명의 성격>을 밝혀주었다. 교조주의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조선혁명의 성격을 자본주의에 대한 경험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조건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애국적 지주들과 재벌들까지도 타도하자고 나섰다. 그러나 김주석은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적인 일본제국주의를 우선 타도하고 조선을 해방시키는 것과 함께 그 당시 상존하고 있던 봉건적 제 관계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여야 할 기본적인 임무로부터 출발하여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였다. <조선의 별>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김주석과 그의 동지들이 민중 속에 들어가 오랜 공을 들여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의식화시켜 동지로 만들어 놓으면 교조주의 맑스주의자들이 성급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내세워 타도 부르죠아지를 외치며 마을을 불지르고 애국적 지주와 자산계급들을 테로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혁명의 성격을 올바로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주석이 1945년 9월 처음으로 원산에 도착하여 그곳의 지도자들을 만나 보니 국내에서도 당장 사회주의 정권을 세워야 된다는 좌경모험주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주석과 항일혁명1세들은 민중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깨우쳐 사회주의 정권이 아닌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김주석이 어찌하여 인간, 민중중심의 사상을 갖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 자신이 민중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 속에서 김형직 아버님의 친구들인 손정도 목사 등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직접 혁명활동을 시작하면서 민중 속에 들어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민중의 힘을 의지해야 혁명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하였다. 특히 젊은 청년들과 산 속에서 무장을 하고 반일투쟁을 하면서 믿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을 때 민중의 아들들인 동지들의 불굴의 혁명정신, 신념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눈으로 덮인 산속에서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필요한 식량도, 소금도, 심지어 총도 일제로부터 빼앗아 왔다. 동지 중 한 명이라도 배신하면 모두 사지로 몰릴 수 있었다. 그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혁명동지들 자신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었다. 김주석이 왜 그렇게 항일무장 투쟁을 하다 희생된 동지들을 못 잊어 하냐면 그들이 결국 김주석 자신과 살아남은 동지들의 생명을 대신하여 죽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철학의 <근본원리>는 이러한 실제적인 혁명투쟁 한가운데서 김주석 자신이 체험한 인간의 무한대한 잠재력과 위대성에 대한 경험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다. 인간, 민중이 모든 것의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인간, 민중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이 철학의 근본원리는 종래의 철학사를 바꾸어 놓았다.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철학의 근본원리로 놓고 모든 것을 고찰하는 사람중심의 주체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김주석이 창시하고 김정일총비서가 심화발전시켜 체계화한 주체사상의 전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고 단지 주체사상이 혁명실천활동 한가운데서 창시되었다는 점만을 강조하였다. 이미 여러 글에서 주체사상의 요지에 대하여 발표하였고 내가 10년간 이북을 드나들면서 주체사상 학자들과 대담한 내용을 중심으로 발간한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란 책에서 이미 중요한 내용이 소개 되었기에 여기 글에서는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