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보에서 전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이 땅에 빛나게 수놓아오신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들가운데는 일제에 의하여 빼앗기고 짓밟혔던 이 강토의 옛지명들을 다시 찾아주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들도 있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항일전의 나날 유격대원들에게 일제식민지통치자들은 우리 나라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와 문화전통을 외곡말살하고 민족적인 모든 것을 없애 버리려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기어이 일제를 때려부수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국을 광복하신 다음 일제가 우리 나라의 지명에까지 남긴 잔재도 완전히 숙청하고 옛지명을 살리도록 현명하게 영도하시었다.

돌이켜보면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책동의 마수는 우리 나라 지명을 일본식으로 개칭하는데도 깊이 뻗쳤다.

지명은 세대를 이어오며 전하여지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지명에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 언어유산이 고이 간직되어 있으며 자랑찬 생활유습이 깃들어 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책동의 일환으로 우리의 고유한 지명들을 일본식으로 고치는 범죄도 서슴없이 감행했다.

일제는 1910년대 조선의 토지를 강탈하기 위한 지도측량을 하면서 수많은 지명들을 일본식으로 고치었다.

일제는 이미 1903년에 산줄기와 산봉우리, 계곡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쳤으며 그이후 조선의 지역과 마을,고장들의 이름들을 마구 고쳐놓았다.

일제가 만들어낸 지명인 「겸이포」는 러일전쟁시기 일본군 공병장교였던 「겸이(겐지)」가 군수물자를 부리울 포구를 찾아 대동강을 오르내리다가 고른 장소라 하여 붙인 포구이름이다.

우리 나라의 지명을 일본화하기 위한 책동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 보다 악랄하게 감행되었다.

서해안에 있던 농장이름 「불이농장」은 이 농장을 경영하던 「불이(후니)」라는 일본놈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산이름을 놓고보아도 조선의 산을 강제로 빼앗아 소유하고  「일본산」(황해남도 안악군) ,「마루야마산」(함경북도 은덕군),「고마다산」(자강도 자성군)이라고 했으며 일제의 신사당이 있었다 하여 「진쟈산」(평안북도 운산군) 이라고 고쳐부르게 했다.

이밖에도 「헤이다골」,「마다니골」,「나가골」,「네꼬모또마을」,「사꾸라촌」 등 일본식이름들은 포구,농장,산,마을(골)뿐만아니라 다리,거리, 심지어 바위,소의 이름에도 있었다.

광복후 지명에서 일본식이름들을 하루빨리 없애는 것은 사회생활의 모든분야에서 일본잔재를 청산하고 조선의 고유한 민족문화를 발전시켜나가는데서는 물론 주체성과 민족성을 높여나가는데서도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조국이 광복된지 며칠이 지난 주체34(1945)년 8월 어느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일제의 잔재세력과 일제잔재요소를 철저히 숙청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시어 평양시 환영군중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의 연설들과 회의, 담화들에서도 일제잔재를 철저히 쓸어 버리고 모두다 높은 민족적 긍지와 새로운 민주주의정신을 가지고 새 생활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물론 지명에 남아있던 일제잔재까지 깨끗이 청산하도록 조치도 취해 주시었다. 그리하여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평양특별시의 구제도실시에 관한 결정서」(1946.9.16)를 비롯한 여러건의 결정서들에 의하여 도시들에 있던 일본식행정지명들이 청산되고 본래의 이름을 되찾거나 새로 만들어 쓰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우리 나라 자연지명에  남아있던 일제잔재들을 철저히 조사장악한데 기초하여 그것을 없애기 위한 조직적대책도 취해 주시었다. 그리하여 자연지명에서는 본래의 지명을 되찾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새로 지명을 지어부르게 되었다.

일제시기 황해북도에 있던 「겸이포」는 본래의 이름 「송림」에 「항」을 붙여서「송림항」으로,함경북도 은덕군에 있던「마루야마산」은 읍의 앞에 있다고 하여「앞산」으로,「군부덕」은 어랑군 어랑천 북쪽에 있다 하여 「물북덕」으로,안악군 월산리에 있던 「일본산」은 칡이 많다고 하여 「칡메」로,종성군 하삼봉리에 있던 「헌병대골」은 「바람골」로 일제가 지명에 남긴 잔재들을 청산하고 우리 지명으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명조사사업을 보다 심화시키자면 사회과학자들의 힘만으로는 곤난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내각에서 도와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그리하여 주체55(1966)년 내각 명령 제13호「고유한 조선말지명을 조사할데 대하여」가 발표되었으며 전국적범위에서 지명조사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사업을 통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광복전 일본식지명이 완전히 숙청되게 되었다.

참으로 광복후 행정지명에서부터 자연지명에 이르는 일제의 잔재청산은 숭고한 조국애 ,민족애를 지니신 어버이주석님의 현명한 영도의 빛나는 결실이다.

어버이주석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더욱 활짝 꽃피워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본식지명은 물론 옛날 외래어가 섞인 지명까지도 순수 우리말 지명으로 민족적특성이 살아나고 현대적미감에 맞게 고쳐부르도록 하여주시었다.

절세의 애국자들이신 어버이주석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속에서 조국의 지명들은 민족의 슬기와 기상을 떨치며 온 누리에 빛나고 있는 것이다.

(박  사    김 성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