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이 사회변혁의 길을 묻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사회적 운동의 본질
3. 사회적 운동의 법칙
4. 사회적 운동의 비본질
5. 세 종류의 정당과 두 종류의 오류
6. 전선형 진보정당과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
7. 민주변혁적 관점과 민족주체적 관점
8. 사회변혁의 주체적 요인
9. 글을 마치며

1. 글을 시작하며

사회변혁의 길을 묻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다. 사회변혁의 길은 과학적 진리 속에 있다는 것, 이것이 해답이다. 사회변혁의 담론은 미신, 우연, 주관관념과 인연이 없는 과학적 담론이다. 사회변혁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인식은 사회변혁이 과학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사회변혁은 과학이다. 그것은 완성된 과학적 세계관에 위에 성립한 과학이다.

사회변혁이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형이상학과 관념론이 퍼뜨리는 반동적 궤변이다. 사회변혁운동은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 운동이며, 사회변혁의 길을 밝혀주는 진리는 사회변혁의 과학에 의해서 인식된다.

오늘 제국주의국가권력과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밀고 나가는 반동의 과학을 틀어쥐고 있다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사상이론적 기초인 사회변혁의 과학이 있다. 반동의 과학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전략전술을 내온다면, 사회변혁의 과학은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전략전술을 내온다.

사회변혁의 과학이 다진 사상이론적 기초가 아예 없거나 다져놓았어도 부실하면,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전략전술이 비과학적으로 굴절되고 만다. 지난 시기 사회변혁의 길에 나섰던 여러 나라들에서 비과학적인 전략전술을 따랐던 사회변혁운동이 입은 피해는 얼마나 컸으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겪은 희생은 또 얼마나 컸던가. 사회변혁의 과학이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전략전술을 밝혀주는 문제는 사회변혁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문제이다.  

사회변혁의 과학에 대한 연구가 심화될수록 그 이론구성이 한결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이해하기 힘들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화된 연구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과 무관한 학술주의(academism)로 변질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의 연구성과가 기술공학의 매개자(technological agent)를 통해 생산활동에 수용되듯이, 사회변혁의 과학 역시 매개자를 통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변혁운동에 수용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 매개자를 전문기술자(technocrat)라 하고, 사회변혁운동에서는 그 매개자를 흔히 활동가(activist)라 부른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아무런 매개 없이 사회변혁의 과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사회변혁의 길에 나선 활동가는 사회변혁의 과학이 인식한 사회변혁의 진리를 투쟁구호로 변환시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현장 속에 투침시키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과학적인 전략전술에 의거하여 투쟁하도록 이끌며, 활동가 자신의 인식활동을 사회변혁의 과학으로 무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회변혁운동에서 활동가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맡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사회변혁의 길을 묻는 진보정당은, 사회변혁의 과학에 대한 연구가 활동가들이나 진보적 지식인들의 지적 태만과 무능에서 벗어나 더욱 심화되기를 요구하며, 사회변혁의 과학과 변혁적 대중투쟁을 결합시키는 매개활동을 요구한다. 그것은 진보정당의 요구이자 사회변혁운동의 요구이다.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사회변혁의 과학과 변혁적 대중투쟁을 매개하려면, 그리하여 사회변혁의 과학적 기초 위에서 대중투쟁을 전진시키려면, 당 안팎에서 사회변혁의 과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성행해야 한다. 이 글은 그러한 연구와 토론의 성행을 기대하면서 사회변혁의 이론적 기초 가운데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2. 사회적 운동의 본질

사회적 운동은 인류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기 시작한 아득한 때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것이다. 원시인류가 간단한 노동도구를 만들어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원시적인 생산노동에 나섰을 때, 그들은 마침내 자연의 탯줄을 자르고 원시공동체의 사회적 관계 속에 태어났다. 사회적 운동은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원초적인 형태로 시작되었다.

원초적 형태의 사회적 운동을 수행하기 시작한 최초의 담당자는 원시적인 노동도구를 손에 들고 일하며, 원시언어로 자기의 생각을 소통하고 감정을 드러내며, 원시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활하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자연의 탯줄을 자르고 태어난 세계의 주인, 곧 사회적 운동을 수행하는 담당자를 사회변혁의 과학에서는 주체(juche)라 부른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생산노동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발전하고, 차츰 발전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회적 운동을 수행하는 담당자인 주체는 자연과 사회, 그리고 사람 자신의 세 영역에서 자기의 자주성(chjusong)을 아주 느린 속도로나마 실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앞길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가 조성되었으니 그것이 계급사회의 출현이다. 원시공동체의 사회적 관계가 사회계급으로 갈라지면서 한 사회계급이 다른 사회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게 되었고, 원시공동체가 사라지고 고대국가가 세워지면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 수탈하게 된 것이다.

계급적 착취와 억압, 민족적 지배와 수탈을 수 천년 동안이나 이어온 계급사회 속에서 사회적 운동의 주체는 자신이 사회적 운동을 수행하는 주체임을 자각하지 못할 만큼 자기의 자주성을 짓밟혔다. 주체의 자주성이 짓밟히는 계급사회에서 주체가 수행하는 사회적 운동은 목적의식적 운동이 아니라 자연발생적 운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사회적 운동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불가피하게 겪어야 했던 좌절과 후퇴, 시련과 파행은 그 운동이 자연발생적 운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자연발생적 운동에 머물렀던 사회적 운동이 목적의식적 운동으로 전화발전되는 획기적인 사변은 노동계급이 인류역사에 등장한 때로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노동계급은 인류의 사회적 운동을 자연발생적 운동의 오래된 한계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목적의식적 운동으로 진전시킨 유일한 사회계급이다.

인류의 사회적 운동은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 의해서 비로소 사회변혁이라는 본질을 갖게 되었다. 그에 따라 사회적 운동은 계급사회의 낡고 반동적인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다시 말해서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변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사회적 운동은 이러저러한 형태를 취하지만 그 운동의 본질은 주체가 자기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인 것이다.

노동계급은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길을 개척한 가장 선진적인 사회계급이다. 그런 까닭에, 사회변혁의 과학은 노동계급을 근대산업사회의 부산물로 보거나 또는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구성부분으로 보는 천박한 인식을 배척한다.

노동계급이 자연발생적 운동을 목적의식적 운동으로 전화발전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그 사회계급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계급투쟁을 조직전개하였던 것에 있었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은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없애고 자기의 자주성만이 아니라 인민대중 전체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그 계급투쟁은 이전 시기에 선행한 모든 계급투쟁과 질적으로 다른 사회변혁적 계급투쟁으로 되었다.

또한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은 착취계급을 청산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온갖 계급적 차이와 비노동계급적 요소를 제거하여 사회구성원 전체를 노동계급화한다는 점에서, 선행한 모든 계급투쟁이 이르지 못한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최고단계의 계급투쟁으로 전진한다.

물론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사회변혁과 동일한 것은 아니며, 사회변혁에는 노동계급의 계급투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과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조직전개하는 반제투쟁도 있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은 여러 형태의 사회변혁투쟁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여러 형태의 사회변혁투쟁 가운데 하나라고 해서 그것이 사회변혁에서 지니는 역사적 의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반제투쟁은 제국주의체제에서 벗어나 민족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자기의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는 투쟁이지만, 계급투쟁은 반제투쟁이 수행되는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반제투쟁과 결합되어 수행될 뿐 아니라 사회변혁의 사회주의적 단계를 거쳐 계급적 착취와 억압이 청산된 새로운 사회가 세워진 뒤에도 성격과 임무를 달리하여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장구한 사회변혁투쟁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회적 운동은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 의해서 그 본질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 사회적 운동의 법칙

운동하는 모든 사물현상 속에는 내적이며 본질적이며 필연적이며 일반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일정한 조건에서 다르게 되지 않고 반드시 그렇게 되는 필연적인 연관성이다. 사물현상들 속에 존재하는 내적이며 본질적이며 필연적이며 일반적인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법칙(law)이라 한다.  

알려진 대로, 그러한 법칙을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밝혀낸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밝혀낸 기본법칙은 세 가지이다. 사물발전의 원천을 밝혀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사물발전의 형식을 밝혀준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전화하는 법칙, 사물발전의 방향을 밝혀준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기본법칙을 발전법칙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 가지 기본법칙만 가지고서는 사물현상 속에 존재하는 내적이며 본질적이며 필연적이며 일반적인 연관성을 전면적으로 밝혀낼 수 없다. 사물현상 속에는 세 가지 기본법칙으로는 풀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연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 가지 기본법칙이 사물현상 속에 존재하는 매우 복잡한 연관성을 풀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생물유기체 일반의 자연적 운동과 주체의 사회적 운동에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법칙만 인식하였을 뿐, 주체의 사회적 운동에 작용하는 고유한 법칙은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것이 발견한 세 가지 발전법칙이 자연(nature), 사회(society), 사유(thinking)에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이라고 보았지만, 생물유기체 일반의 운동에는 작용하지 않고 오직 주체의 사회적 운동에만 작용하는 법칙이 따로 존재한다. 주체의 사회적 운동에만 작용하는 고유한 법칙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자주성의 과학이라고도 부르는 사회변혁의 과학이다.

자연, 사회, 사유에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을 일반법칙(general law)이라 하고, 주체의 사회적 운동에만 작용하는 법칙을 사회법칙(social law)이라 한다. 일반법칙은 생명유기체의 일반적 운동법칙이고, 사회법칙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지닌 주체의 사회적 운동법칙이다. 사회법칙은 일반법칙과의 관계에서 고등법칙이며, 모든 형태의 사회적 운동의 고유법칙이다.

사회적 운동이 자기에게 작용하는 고유한 법칙을 갖는 까닭은, 그 운동의 주체가 사회적 운동을 통해서 자기의 본성적 요구, 곧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살아가려는 요구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운동에서 주체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은 그 법칙을 따른다.

그러므로 사회적 운동을 논할 때는, 사회법칙을 일반법칙으로부터 구분하고 사회법칙에 따라서 전개되는 사회적 운동을 인식하게 된다. 사회적 운동에 작용하는 사회법칙을 사회발전법칙이라고도 한다.

인류역사에 노동계급이 등장하고 그 계급이 주도하는 사회변혁운동이 조직전개됨으로써 사회발전법칙을 인식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사회발전법칙이 발견됨으로써, 사회적 운동에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주장은 반동적 궤변으로 전락하였다. 만일 노동계급이 인류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상상한다면, 인류는 사회발전법칙을 알지 못한 채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오래된 포로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위에서 논한 대로, 사회적 운동의 본질이 사회변혁이므로 사회적 운동에 작용하는 사회발전법칙들은 사회변혁에 작용하는 법칙들이다. 그 법칙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발생성에 대한 목적의식성의 우위의 법칙, 주체의 자주적 요구와 창조적 능력이 고도화되는 법칙, 객관적 조건에 대한 주체적 요인의 우위의 법칙, 사회적 운동의 주체가 자주적 주체로 전화발전하는 법칙, 사회변혁이 사회변혁사상에 의거하여 발생발전하는 법칙, 사회변혁이 연속적,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법칙, 사회변혁의 발전단계에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조응하는 법칙, 사회변혁과정에서 정권수립이 경제체제수립에 선행하는 법칙 등이다.

사회발전법칙은 무조건적으로 사회변혁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의 주체적 요인과 객관적 정세가 성숙되었을 때 작용한다. 그 법칙들이 사회변혁에 작용할 때, 그것을 가로막는 반작용도 생기는데, 사회변혁에 작용하는 반작용은 사회변혁역량에 의해서 제거된다.

사회발전법칙이 어떻게 현실 속에 작용하는지를 해명하는 사회변혁학설의 총체를 사회변혁의 과학이라 한다. 사회변혁의 과학이 진정한 의미의 과학으로 되는 것은, 사회발전법칙을 발견하고 그 법칙의 작용을 해명하기 때문이다.

4. 사회적 운동의 비본질

사회적 운동에는 사회변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개량도 있다. 결론부터 말해서, 사회변혁이 사회적 운동의 본질이라면, 사회개량은 그것의 비본질이다. 사회변혁과 사회개량이 본질과 비본질로 갈라지는 까닭은, 사회발전법칙이 사회변혁에만 작용하고 사회개량에는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변혁은 사회발전법칙에 따라 수행되지만, 사회개량은 그 법칙과 인연이 없다.

사회개량이 사회발전법칙과 무관한 비본질이라고 해서, 그것이 실체 없는 허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회개량은 현실이다. 사회개량도 사회변혁과 마찬가지로 현실 속에서 하나의 이념, 운동, 체제로 존재한다. 사회개량의 이념을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라 하며, 사회개량을 실현하는 운동을 사회개량운동(social reformist movement)이라 하고, 사회개량이 실현된 체제를 사회민주주의체제(social democratic system)라 한다.

사회변혁이 실현되는 경로에는 급진적 경로만 있는 반면, 사회개량이 실현되는 경로에는 점진적 경로와 급진적 경로가 있다.

사회개량이 실현되는 점진적 경로는, 자본주의체제가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 체제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사회개량을 실현할 만큼 성숙되었을 때, 자본계급과 국가권력이 결탁하여 노동계급을 이른바 사회적 합의라고 부르는 불공정한 타협으로 끌어당기고, 그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사회개량이 추진되는데, 사회개량이 공고한 사회체제로 전화될 때 그것을 사회민주주의체제라 한다.  

사회개량의 물적 기반이 조성되지 못하고 자본주의체제가 매우 불안정한 조건에서도 사회개량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남(한국)에서 노동계급이 대규모 총파업투쟁에 나서면서 사회변혁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였을 때, 그와 더불어 미증유의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회개량의 물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었을 때, 파국에 빠져들며 허우적거리던 김대중정권이 취하였던 비상조치는 위로부터 추동되는 사회개량운동의 전형이라고 할만하다. 대파국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 정권이 필사적으로 취한 행동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사이비애국주의의 주입, 그리고 파시즘의 잔재를 청산하는 국가기구의 개량이었다. 그러나 그 비상조치는 사회개량의 물적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위기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취한 것이었기에 파산을 면할 수 없었다. 지금 노무현정권은 선행정권이 취했던 궁여지책마저 파산되면서 더 깊은 파국의 수렁에 빠지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한편, 사회개량이 급진적으로 실현되는 경로도 있다. 그 경로는 민주주의혁명 또는 그와 유사한 민주화운동의 경로와 연관된다. 자본주의체제가 사회개량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을 만큼 파국적 위기에 빠져들고, 노동계급의 계급역량이 그 위기를 돌파하는 사회변혁투쟁을 이끌어가지 못할 때,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선 국가안보’라는 기만적, 반동적 구호를 외치는 극우세력이 출현하고 그에 따라 가장 반동적인 테러독재를 저지르는 파시즘체제가 세워진다. 또한 제국주의체제에 예속되어 대량수탈을 당함으로써 사회개량은커녕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마저 짓밟히는 식민지예속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적 진출을 가로막는 극우세력이 출현하고 그에 따라 가장 반동적인 테러독재인 파시즘체제가 세워진다.

그러한 테러독재 아래서 가혹하게 짓밟히는 모든 사회계급과 계층이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할 때 파시즘체제를 무너뜨리는 민주주의혁명 또는 그와 유사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이 소자산계층과 그 동맹세력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 주도권을 틀어쥔 그 세력이 승리하여 파시즘체제를 무너뜨리는 경우 위로부터의 사회개량이 추진된다.

사회개량은, 이처럼 점진적 경로이건 급진적 경로이건 간에 지배계급이 사회발전법칙과 무관하게 추진하는 사회적 변화이다. 사회개량은 지배계급이 추진한다는 점에서 비주체적이며, 사회발전법칙과 무관하게 추진된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다. 사회개량은 사회적 운동의 비본질이다.

그러므로 사회개량이 하나의 사회체제로 고착된 사회민주주의체제가 세워지는 경우, 그것은 독자적인 사회적 생산양식을 갖지 못하는 사회체제, 곧 자본주의체제의 개량적 변종인 것이다. 사회개량이 아무리 고도화된다고 해도, 그리하여 북유럽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민주주의체제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고 해도, 자본주의체제의 근본성격, 곧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자본계급의 착취적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착취의 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착취형태가 유연해지는 것뿐이다.

명백하게도, 사회개량에서는 제국주의체제에서 벗어나는 반제투쟁의 발전전망이나 자본주의체제에서 벗어나는 계급투쟁의 발전전망이 모두 부정된다.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발전전망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사회개량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길을 가로막는 이념, 운동, 체제의 차단물로 된다.

사회개량을 실현하는 이념, 운동, 체제는 계급적 타협, 사회적 합의, 평화적 이행 따위의 듣기 좋은 말을 쏟아내며 자기의 정당성을 입증하는데 열을 올린다. 사회변혁의 길을 아직 찾지 못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사회개량의 선전선동이 풍겨주는 묘한 매력은 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최면효과를 낸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수준으로 발달한 사회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사회개량을 실현하는 이념, 운동, 체제가 언제나 그러한 최면효과를 내면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해왔다.  

오늘 남(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노무현정권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그 주위에 널려있는 갖가지 사회정치집단들은, 사회개량의 정체를 뒤에 감추고 개혁이라는 아리송한 표현을 즐겨 쓰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개혁만이 살길이라는 선전선동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그들이 말하는 개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으로 실현하는 민주변혁이 아니라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발전전망을 부정하는 사회개량이다.

노무현정권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그 주위에 널려있는 사회정치집단들이 추구하는 사회개량의 이념과 운동은 사회발전법칙과 무관한 비과학적인 이념이고,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과 분리된 비주체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개량의 이념과 운동은, 남(한국)의 사회성격이 북유럽의 사회성격과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에 있는 까닭에 사회민주주의체제를 낳을 수 없는 사산의 운명을 안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운동이 진전되는 경로에서 때로 사회개량이라는 비본질적 현상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회발전법칙에 따라서 실현되는 사회변혁의 본질이 퇴색하거나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적 운동이 자기의 본질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운동으로 발전되는 것은 필연이다.  

사회적 운동의 전략적 견지에서 바라보면, 오늘 남(한국)사회 앞에 놓여있는 갈래길이 드러나 보인다. 한 갈래는 사회변혁의 길이고, 다른 한 갈래는 사회개량의 길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어느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이 달라지게 되고, 남(한국)사회의 변화방향이 달라지게 되고, 더 나아가서 한(조선)반도의 정세도 달라지게 된다.

5. 세 종류의 정당과 두 종류의 오류

오락가락 헷갈리는 보수언론의 뜬소리를 접어두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진보정당, 보수정당, 반동정당이 존재하는 남(한국)의 정치적 현실이 보인다. 오랫동안 반동정당만 판쳐왔던 남(한국)의 정치세력관계가 재편된 것은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2004년 총선에서 보여준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남(한국)사회가 진보정당의 존재와 활동이 정세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발전수준에 이르렀음을 현실로 입증한 사변이었다.

남(한국)에서 진보정당을 세우려는 시도가 시행착오와 좌절을 거듭하였던 지난 시기에, 장차 진보정당을 세우면 진보정당 대 반동정당의 양자대립구도가 형성되리라는 전망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현실은 그 전망과 어긋나 있다. 진보적 정치세력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투쟁을 밀고 나가고 있었을 때, 반동적 정치세력과 선을 그은 또 다른 정치세력이 출현하여 자기 정당을 조직하였으니 그것이 열린우리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수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변혁의 기치를 든 진보정당이고, 열린우리당은 사회개량의 간판을 내건 보수정당이며, 한나라당은 반역의 흉기를 품은 반동정당이다. 이른바 정계개편이 요란하게 진행되는 선거국면에 들어서면 이 세 정당 이외의 군소정당들이 등장하지만, 그런 정당들 역시 진보정당, 보수정당, 반동정당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사회변혁이 매우 빠르게 진전되어 사회변혁의 전략적 공세기에 접어드는 경우 진보정당의 수준을 넘어 질을 달리하는 혁명정당이 나올 수 있겠지만, 혁명정당의 출현은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다.

남(한국)사회에 현존하는 세 종류의 정당은 제각기 다른 사회계급적 기반 위에 성립하였는데, 그 정당들이 서로 다른 사회계급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영역들에서 정치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 시기 남(한국)의 정치투쟁을 도형으로 표시한다면, 투쟁의 삼각관계가 그려질 것이다.

여기서 전선이 삼각관계의 정치투쟁 안에 형성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동정당이 정치권을 배타적으로 독점하였던 지난 시기에, 그리하여 전선이 쌍방교전의 형태로 비교적 단출하게 형성된 지난 시기에 추진되었던 사회변혁의 전략전술은 훨씬 복잡하게 뒤바뀐 현실에 맞게 다듬어져야 한다.

지난 날 진보정당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소수의 진보적 활동가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사회변혁의 길을 묻곤 하였지만, 오늘 상황은 달라졌다. 사회변혁은 진보정당이 논하는 현실문제로 되었고, 진보정당이 추진하는 당면과업으로 되었다. 진보정당은 사회변혁의 길이 어디에 있으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어떻게 그 길을 가야하는지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역사발전이 사회변혁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므로, 사회변혁의 길을 묻는 진보정당의 출현은 남(한국)사회의 발전경로에서 실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이 글에서 사회변혁을 논할 때 ‘사회’라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남(한국)사회이므로, 사회변혁이란 곧 남(한국)사회의 변혁을 뜻한다.

진보정당은 그 정당이 수행하는 사회변혁의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강령을 갖는다. 이론적 부정확성이 몇 군데에서 보이지만, 그래서 사회변혁의 길을 묻게 되지만,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사회변혁의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하나의 사회변혁강령임은 명백하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변혁강령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진보정당으로 되었다. 진보정당의 강령은 사회변혁의 완결을 밝혀주는 최고강령이 아니라 그 완결로 나아가는 길 곧 사회변혁의 길을 묻는 최저강령이다.

진보정당이 사회변혁의 길을 물을 때,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는 두 종류의 오류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회개량주의(social reformism)와 혁명적 급진주의(revolutionary radicalism)가 그것이다.

사회개량주의는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에 등을 돌리는 까닭에 결국 제국주의세력에게 투항하거나 국내반동계급과 타협함으로써 정치적 뇌사상태에 빠진다. 사회개량은 사회계급구성이나 정치세력관계에 따라 갖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이념은 언제나 사회개량주의이다. 사회개량주의의 계급적 기반은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는 기회주의적인 소자산계층(petty bourgeois)이다. 사회개량주의는 그것의 비과학성, 불안정성, 모호성 때문에 그것이 제기한 사회개량조차 실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제국주의세력에 대한 투항으로, 국내반동세력과의 타협으로 귀착된다.

사회개량주의와 달리, 혁명적 급진주의는 사회변혁이 발전단계를 거치지 않는다고 보면서, 사회변혁에서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을 배타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전선형태로 결집되는 것을 부정한다. 혁명적 급진주의도 이러저러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언제나 사회변혁운동의 좌경적 분파에 의해서 제기된다. 혁명적 급진주의는 그것의 비과학성, 조급성, 분파성 때문에 제국주의세력과 국내반동세력의 공세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파산하고 만다. 혁명적 급진주의는 사회변혁의 계급적 원칙을 강조하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언사를 남발하지만, 실제로 그것의 계급적 기반은 급진적인 소자산계층이다.

사회개량주의나 혁명적 급진주의는 사회변혁운동을 분열로 끌어가는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지만, 그것의 계급적 기반은 노동계급이 아니라 소자산계층이다. 다만 기회주의적 소자산계층과 급진적 소자산계층으로 갈라지는 것뿐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계급적 기반은 소자산계층이 아니다.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의 계급적 기반을 중심에 두고 그 주위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의 대중적 기반을 결합시킨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변혁역량이 전선형태로 결집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근로대중이 결집한 전선을 형성한다고 해서, 다시 말해서 전선이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범위를 넘어서 농민을 비롯한 각계층 근로대중의 투쟁영역으로 광역화된다고 해서, 전선의 성격이 몰계급적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이 몰계급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 당이 노동계급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소자산계층이 당의 중심을 차지할 때이다.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을 계급적 중심으로 하여 건설되고 그 중심력에 의거하여 발전하기 때문에 광범위한 근로대중이 결집하더라도 몰계급적으로 변질될 수 없다.

일부 좌파적 성향의 활동가들이 전선형 진보정당을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이 퇴색된 몰계급적 정치연합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당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평면적으로 결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서 생겨난 인식착오이다.

전선의 중심은 언제나 노동계급 속에 존재하며, 전선역량의 증강은 언제나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전선형 진보정당으로 결집하여 자기의 계급계층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고, 진보정당은 그들의 투쟁 속에 자기의 전략전술을 투침시킨다.

6. 전선형 진보정당과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

진보정당에 농민을 비롯한 광범위한 근로대중이 결집하지만 그 중심에는 노동계급이 자리잡고 있으므로, 진보정당은 변혁적 관점을 갖게 된다. 진보정당의 변혁적 관점을 사회주의적 관점과 구분하여 민주변혁적 관점이라 한다. 진보정당의 변혁적 관점은 민주변혁적 관점이다.

진보정당의 변혁적 관점을 사회주의적 관점과 구분하여 민주변혁적 관점이라 하는 까닭은, 노동계급이 사회변혁을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밝혀진다. 사회변혁의 영도계급인 노동계급은 사회변혁의 발전단계에 조응하면서 전화발전되는 두 가지 변혁적 관점을 가지고 사회변혁을 단계적으로, 연속적으로 이끌어 간다. 두 가지 변혁적 관점이란 민주변혁적 관점과 사회주의적 관점을 말한다.

민주변혁적 관점은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 조응하는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이고, 사회주의적 관점은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를 경과한 이후 사회주의적 단계에 조응하는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이다.

진보정당이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 서야 하는 까닭은,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없애고 자기의 자주성만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역사적 임무가 노동계급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는 노동계급 이외의 근로대중도 노동계급과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착취와 억압을 없애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길에 나서지만, 그들은 계급적, 계층적 한계 때문에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사회변혁의 최종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멀고 험난하고 복잡한 사회변혁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 사회변혁의 역사적 임무를 완수할 사회계급은 노동계급밖에 없다.

오늘 남(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보다 훨씬 더 심한 생존파탄에 빠져있는 빈농이나 도시빈민이 노동계급보다 생존권사수투쟁에 더 전투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사회주의적 단계를 거쳐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사회변혁을 시종일관 이끌어 가는 영도계급은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 이외의 근로대중은 뒷날 사회변혁의 사회주의적 단계를 경과하여 스스로를 새로운 형의 노동계급으로 개조한 뒤에 사회주의노동계급으로서 사회변혁의 최종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변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 지배와 수탈을 강요하는 반동적 사회체제를 무너뜨리고 착취계급을 청산하는 단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착취계급을 청산한 뒤에 노동계급과 비노동계급 사이의 계급적 차이까지 해소하여 모든 근로대중을 사회주의노동계급으로 개조함으로써 그들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높은 단계로 진전되는 것이다. 사회변혁이 높은 단계로 진전되는 과정에서 초기에 건설되었던 전선형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의 당으로 전화발전하고, 노동계급의 당에 의해서 계급적 동질화와 사회적 결집력의 강화가 추진된다.

사회변혁의 과학에 기초한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은 사회변혁의 의미를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체제교체의 범위에 한정하지 않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자주화의 범위로 확대한다. 그러한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변혁이 진전될수록 근로대중이 차츰 노동계급으로 개조되어 계급적으로 동질화되며 사회계급적 차이가 해소되고, 그에 따라 사회적 결집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고전이론에서 말하였던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체’가 실현된 사회,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주성이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 사회란, 사회변혁의 과학에서 쓰이는 개념을 빌려 표현하면, 인민대중이 사회정치적 생명(socio-political life)을 함께 나누고 자주적 관계를 형성한 사회인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변혁의 전략적 수세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변혁이 아직 높은 단계로 진전되지 못한 오늘 남(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전선형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그 당의 기치를 따라 사회변혁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전선형 진보정당이 사회변혁의 과학에 기초한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에 따라 건설되고 진보정치를 발전시키는 것 역시 당연하다.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사회변혁의 길에 나선 노동계급은 근로대중과 동떨어진 자리에서 사회변혁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사회변혁의 초기단계, 곧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중심과 근로대중의 대중적 기반을 가진 전선형 진보정당의 건설은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필수적 전제이다.

7. 민주변혁적 관점과 민족주체적 관점 

민주변혁적 관점과 대비되는 것은 민족주체적 관점이다. 민족주체적 관점은 제국주의체제에서 벗어나 민족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반제투쟁의 변혁적 관점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조건반사적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일부 좌파적 성향의 활동가들은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과 민족주체적 관점을 대치시키면서, 민족주체적 관점이 부르주아민족주의의 변종이라는 혐의를 두지만, 그것은 오해와 편견이다. 그러한 오해와 편견은 민족을 국가기구(state apparatus)와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결합체로 보는 유럽 좌파세력의 인식을 절대화하거나, 민족주의(nationalism)와 국수주의(chauvinism)를 동일시하거나, 사회변혁이 실현된 뒤에는 자본계급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하는 계급적 지배의 도구인 국가 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보았던 국가조락론을 답습하거나, 노동계급의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를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낡은 관점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민족주체적 관점에는 반제투쟁의 관점만이 아니라 조국통일의 관점도 포괄된다. 반제투쟁의 관점은 계급투쟁의 관점과 결합되는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인데 비하여, 조국통일의 관점은 계급투쟁의 관점과 결합되지 않는 비변혁적 관점이다. 사회변혁과 조국통일은 성격과 임무, 동력과 대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관점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민족주체적 관점에 조국통일의 비변혁적 관점이 포괄된다고 해서 그것이 자본계급이나 소자산계층의 반동적 정치이념인 부르주아민족주의에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국통일의 비변혁적 관점이 부르주아민족주의에 연결되지 않는 까닭은, 일부 좌파적 성향의 활동가들이 가진 고정관념과는 정반대로 조국통일이 사회변혁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제국주의세력과 국내반동세력이 합동하여 밀고 나가는 반사회주의적 흡수통합으로 귀착될 것이라는 비과학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전망하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제국주의세력과 국내반동세력이 추진하는 반사회주의적 흡수통합이 아니라 그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연방제통일이다. 그들이 연방제통일을 강하게 반대하고 두려워하는 까닭은, 연방제통일이 남(한국)의 사회변혁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주체는 영구분단을 획책하는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우는 한(조선)민족인데, 남북(북남) 노동계급의 정치역량의 단합은 그 투쟁을 진전시키는 결정적인 힘을 공급한다. 다시 말해서,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적 단결의 중핵은 한(조선)반도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남북(북남) 노동계급의 계급적 단결인 것이다. 남북(북남) 노동계급의 계급적 단결은 장차 진보정당과 사회주의집권당의 정치적 대화를 소통시키는 통로로 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 두 정당의 정치적 연대를 촉진시키는 전략거점으로 될 것이다.

민족주체적 관점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남(한국)사회가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를 경과하는 과정에서 반제투쟁을 수행하는 민주변혁과 더불어, 또는 그러한 민주변혁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주적으로 실현될 것으로 전망한다. 반제자주화투쟁을 수반하는 자주적 통일을 연방제통일이라 한다.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에서 실현되는 연방제통일은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화투쟁을 매개로 하여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하는 민주변혁과 결부되는 것이다.

민족주체적 관점과 민주변혁적 관점은 서로 구분되는 두 개의 관점이지만,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조직전개하는, 그리하여 하나의 사회변혁운동 속에서 긴밀하게 연관되는 관점이다.

민족주체적 관점이 반제투쟁과 조국통일운동을 포괄하는 관점임을 알지 못하고, 그 관점을 조국통일운동에 배타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우경적 편향이고, 다른 한편 민주변혁적 관점이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포괄하는 관점임을 알지 못하고, 그 관점을 계급투쟁에 배타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좌경적 편향이다.

지금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세력은 민족주체적 관점에 배타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한 오류는 넘어서야 한다.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세력 가운데 일부가 민주변혁적 관점을 경시하거나 심지어 외면하면서 민족주체적 관점에 배타적으로 서있는 편향은, 민주주의적 단계의 사회변혁에서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하나의 변혁투쟁으로 결합되고 그 반제투쟁을 매개로 사회변혁과 연방제통일이 결부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사상의식적 결함이다.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은 민족주체적 관점과 민주변혁적 관점을 하나로 통합한 사회변혁의 최저강령이다.

물론 민족주체적 관점과 민주변혁적 관점의 통합은 무분별한 절충이나 기계적 연결에서가 아니라 사회변혁의 과학이 해명한 이론적 근거에서 가능한 일이다. 사회변혁의 과학이 민족주체적 관점과 민주변혁적 관점을 통합하는 것은, 그것이 민족적 자주성과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새로운 길을 전면적으로 밝혀주기 때문이다.

명백하게도, 사회변혁의 최저강령을 수행하는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는 민족주체적 관점이 배타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사회변혁은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사회주의적 단계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의 변혁적 관점으로 일관된 사회변혁의 과학에 의거하여 수행되는 것이지, 민족주체적 관점을 배타적으로 내세우는 민족주의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은 현 시기 사회변혁의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전략적 관점에서 반제투쟁과업을 계급투쟁과업보다 선결적인 과업으로 인식하는 것이지,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며, 계급투쟁을 경시하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회변혁의 발전단계가 지금보다 더 진전된 시기, 다시 말해서 반제투쟁과업을 완수한 단계에 이르면 계급투쟁과업만 남을 것이고, 그 투쟁과업은 계급투쟁 자체가 변화발전하는 가운데 장차 계급적 자주성을 완성하는 대장정이 지속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수행될 것이다. 제국주의체제가 지구 위에 존재하는 한, 제국주의체제에서 벗어나 민족적 자주성을 실현한 새로운 사회의 변혁역량이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자기의 민족적 자주성을 수호하면서, 아직 제국주의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나라의 반제투쟁을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반제투쟁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지만, 민족적 자주성을 실현한 새로운 사회에서 나서는 사회변혁의 일차적 과업은 계급투쟁과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을 위해서 투쟁하는 진보세력은 민주주의적 단계의 사회변혁에 대한 인식을 한층 더 심화발전시킴으로써 민족주체적 관점과 민주변혁적 관점의 결합방식을 정확하게 알아 종래의 사상의식적 결함에서 벗어나며, 더 나아가 진보정당의 변혁적 관점에서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통합적 전략전술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8. 사회변혁의 주체적 요인

사회변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체적 요인과 객관적 정세는 서로 맞물린다. 물론 주체적 요인과 객관적 정세 가운데서 결정적인 것은 주체적 요인이다. 객관적 정세가 사회변혁의 실현에 불리하게 조성되었더라도, 주체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면 불리한 정세를 뚫고 나아가 사회변혁을 진전시킬 수 있다. 모든 형태의 사회적 운동에서 결정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이다. 반면에, 객관적 정세가 유리하게 조성되었더라도 주체적 요인이 빈약하면 사회변혁은 진전되지 못한다.

사회변혁의 주체적 요인은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주체역량 곧 사회변혁역량으로 이루어진다. 사회변혁역량이 강해지면 그 역량이 사회변혁운동을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사회변혁역량이라는 포괄적 개념만 가지고서는 사회변혁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문제는 사회변혁역량에 대한 인식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사회변혁역량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기 위해서 논하는 것은 사회변혁역량의 단위와 존재형태에 관한 문제이다.

먼저 단위문제를 살펴보면, 사회변혁역량은 핵심단위(core unit), 주도단위(leading unit), 전선단위(front unit)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변혁역량의 핵심단위란 사회변혁의 과학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며 사회변혁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체의 전략전술로 이끌어 가는 정치적 전위역량이자 핵심적 지도역량이다. 사회변혁역량의 주도단위란 사회변혁의 과학으로 의식화되어 각계층 근로대중보다 한 걸음 앞서서 사회변혁의 길을 개척하는 선진적 노동계급의 조직역량이다. 사회변혁역량의 전선단위란 노동계급을 계급적 중심으로 하여 결집한 농민을 비롯한 각계층 근로대중의 광범위한 전선역량이다. 이 전선단위가 확장됨에 따라서 사회변혁을 추동하는 전선의 대중적 기반이 강화된다.

남(한국)사회변혁운동의 현실에 비추어 설명하면, 민주노총은 선진적 노동계급의 조직역량 곧 주도단위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민주노동당은 전선단위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주도단위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으로 되기에는 아직 사상의식적으로나 조직체계적으로 미흡하며, 민주노동당이 전선단위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으로 되기에도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미흡성의 극복은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중요한 것은 핵심단위가 주도단위를 이끌어 가고, 주도단위가 전선단위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핵심단위가 부실한 경우 연쇄반응으로 주도단위와 전선단위도 부실하게 되어, 사회변혁역량이 장성할 수 없다. 사회변혁역량이 장성하려면 무엇보다도 핵심단위부터 강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현 시기 남(한국)의 사회변혁역량을 강화하는 최적의 방도는 사회변혁의 정치적 전위역량이자 핵심적 지도역량의 강화 곧 핵심단위 강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존재형태를 살펴보면, 사회변혁역량은 비합법형태, 반합법형태, 합법형태로 존재한다. 위에서 말한 사회변혁역량의 세 단위 가운데서 핵심단위의 존재형태가 비합법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주도단위는 주로 반합법형태로 존재하고, 전선단위는 주로 합법형태로 존재한다. 반합법형태나 합법형태의 사회변혁역량은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데 비하여, 비합법형태의 사회변혁역량은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없다.

비합법형태의 사회변혁역량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떤 외딴 곳에 숨어있는 신비한 힘이 아니라 합법형태와 반합법형태의 사회변혁역량 속에, 그것의 깊은 곳에 녹아들어 합법형태와 반합법형태의 사회변혁역량을 소리 없이 움직이는 정치적 전위역량이자 핵심적 지도역량이다. 합법정당인 진보정당의 지도부가 비합법형태의 정치적 전위역량, 핵심적 지도역량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회변혁역량을 합법형태로만 이해하는 편향을 합법주의(legalism)라 한다. 합법주의는 사회변혁역량의 반합법형태나 비합법형태를 외면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선진역량을 강화하는 과업을 포기하는 오류에 빠지며, 정치적 전위역량이자 핵심적 지도역량을 강화하는 과업을 포기하는 오류에 빠진다. 사회변혁운동이 합법주의에 발이 묶이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며, 사회개량주의의 침입을 막지 못하게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변혁적 진출을 가로막고 그들의 정당한 투쟁을 탄압하는 ‘국가보안법’ 따위의 각종 악법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현실은 사회변혁운동의 합법주의적 편향을 부정하는 근거로 된다. 현 시기 남(한국)의 사회변혁역량이 강해지려면 비합법형태, 반합법형태, 합법형태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이 균형적으로 강화발전되어야 한다.

사회변혁역량의 존재형태는 또한 국가형태와 전선형태로 구분할 수도 있다. 국가형태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을 사회주의국가라 하며, 전선형태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을 전선형 진보정당이라 한다. 민주노동당은 전선형태로 존재하는 사회변혁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9. 글을 마치며

이 글에게 가장 주되는 관심은 진보정당 일반이 아니라, 남(한국)의 현실 속에 존재하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다. 사회개량의 파산과 그에 따른 파국적 위기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존파탄에 빠져드는 남(한국)의 현실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분산된 힘을 전선형태의 사회변혁역량으로 결집하는 정치적 임무는 민주변혁의 기치를 들고 사회변혁의 길을 개척하는 민주노동당에게 주어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조직체계, 당원대중의 활동력과 당활동가들의 사업전개력은 남(한국)사회에서 수행되는 사회변혁의 발전수준의 높낮이를 말해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민주노동당은 건설된 뒤로 다섯 해 동안 발전과 혁신의 궤도를 타고 전진하여왔으며, 어느덧 8만 명 당원과 5백만 명 지지자를 가진 정당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걸어가야 할 사회변혁의 길은 아득하게 멀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사회변혁의 길을 묻고 그 해답을 사회변혁의 과학에서 찾고 있는 중이다.

오늘 민주노동당에게 주어진 과업들은, 사회변혁의 과학에 근거하여 당의 강령에 대한 인식을 심화발전시키는 과업, 당의 발전전망과 객관정세의 변화방향에 맞게 당조직체제를 혁신하는 과업, 더 많은 노동계급을 당원으로 받아들여 당의 계급적 중심을 강화하는 과업, 당의 분회조직을 확대강화하여 당원대중의 활동력을 전투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업, 노동자당원과 농민당원들 속에서 당활동가를 체계적으로 발굴육성하고 그들의 사업전개력을 높이는 과업 등이다.

민주노동당이 사회변혁의 발전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사회변혁의 과학과 변혁적 대중투쟁을 매개하는 당활동가들이 앞장서서 당원대중을 당사업으로 불러일으켜야 하며, 당원대중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현장으로, 지역주민의 생활현장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당활동가들이 사회변혁의 과학에 대한 학습에 태만하면서, 당원대중이 대중투쟁을 느슨하게 대하면서 당의 혁신과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몽상이다.

남(한국)에서 신념과 의지,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수 천 명 당활동가를 가진 정당은 민주노동당 밖에 없으며,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수 만 명 당원을 가진 정당도 민주노동당 밖에 없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안에 혁신과 발전의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민주노동당은 자기의 풍부한 잠재력을 사회변혁역량으로 뿜어내는 정치적, 조직적 분출구를 만들어 내야한다. 당건설 이후 다섯 해를 맞은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역량분출의 시기에 들어섰다. 지금 당 안에서 제기된 당의 혁신이란 당의 잠재력을 현실로 끌어내어 발동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세는 힘의 드센 분출을 기다리고 있다. (2006년 2월 15일 작성)

 

* 이 글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월간 『이론과 실천』 2006년 3월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