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 반환과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

 

 

<차례>
1. 맹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수수께끼
2. 한미군사동맹체제에 불어온 변화돌풍
    2-1) 북침전쟁계획 수정보완작업

    2-2) 군사정세의 변화요인들

3.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이 가져오는 몇 가지 결과들

    3-1) 군사작전임무 이양과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3-2) 주한미국군 철군과 주한미국군사령부 해체
    3-3)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에 따른 침공준비와 전쟁연습

4. 반제항쟁사에 다시 묻는다

1. 맹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수수께끼

지금 노무현정권과 한나라당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싸움을 벌이고 보수언론들이 부채질을 하는 바람에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아도 한미군사동맹체제는 끄떡없다는 목소리와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으면 '국가안보'가 위태롭게 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면서 부질없는 말싸움을 벌이는 것은 그들의 인식수준이 천박하기 짝이 없음을 드러내줄 뿐이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조선인민군의 '남침 가능성'이 고정관념으로 박혀있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남침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데로 끌고 간다. 그들이 한미군사동맹체제를 애호, 신뢰하는 까닭, 그래서 부쉬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반환문제를 꺼내기가 무섭게 조건반사적으로 그 문제를 한미군사동맹체제의 존폐문제에 결부시키는 까닭은, 그들의 머리 속에 주한미국군을 '남침 방벽'으로 믿는 맹신이 깊숙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60년 동안 변치 않았던, 그리하여 천년 뒤에도 변치 않기를 바랐던 맹신을 그들이 믿고 따르는 미국이 마구 뒤흔들고 있다. 맹신자들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미연합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틀어쥐고 자기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를 바라는데, 북(조선)이 핵무장을 선언하고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하는 '위급한 시기'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면서 주한미국군까지 감군하겠다니 그들에게는 너무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겠다는 부쉬정부의 결정을 감히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넘겨받자니 맹신이 깨질 것 같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맹신자들의 머리 속은 한없이 혼란스럽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남(한국)군 지휘부가 맹신이 깨질세라 갈팡질팡 말싸움을 벌이며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정작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의 정치군사적 의미를 차분히 논할만한 사회적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아래에서 논하겠지만,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은 부쉬정부가 추진하는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결과들 가운데 하나이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만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철군과 주한미국군사령부 해체도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과정에서 생겨나는 결과들이다. 그러므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문제는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이라는 폭넓고 근본적인 정치군사적 동향 속에서 인식해야 마땅하다.

이 글이 논하는 범위는 부쉬정부가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는 동향을 분석하고, 그 체제를 개편하는 원인까지 들춰내는 것이다. 부시정부는 한미군사동맹체제를 왜 개편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는 이 물음은 맹신자들의 지능으로서는 풀기 힘든 수수께끼이다. 그렇지만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문제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고,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에 연동되어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줄줄이 일어날 군사정세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다.

2. 한미군사동맹체제에 불어온 변화돌풍

2-1) 북침전쟁계획 수정보완작업

변화를 모를 것 같았던 한미군사동맹체제에도 마침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선들바람이 아니라 거센 돌풍이다.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군사정세를 바꿔놓는다는 뜻에서 변화돌풍인 것이다. 바람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 위의 모든 것을 뒤흔들며 휘몰아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도 일반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밀실에서 진행되면서 한(조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군사정세를 뒤흔들고 있다.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는 변화돌풍은 언제 몰아치기 시작하였을까? 미국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주한미국군사령부, 태평양군사령부의 비밀주의에 가로막혀 그 실상을 정확히 포착하기 힘들고, 더욱이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는 변화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때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2년 기간이었다고 생각된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2년 기간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 기간에 미국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태평양군사령부(PACOM)가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으로 이어질 중대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그 조치는 미국군의 북침전쟁계획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군 지휘부가 추진한 북침전쟁계획 수정보완은 백악관이 추진한 제국주의군사전략의 수정보완과 연계되어 진행된 것이다. 부쉬(George W. Bush)가 집권하자마자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제국주의군사전략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었다. 2001년 상반기에 백악관은 약 20개의 위원회를 동원하여 미국의 군사전략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 작업이 마무리된 2001년 7월 7일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와 군부 고위지휘관들은 수정, 보완된 제국주의군사전략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그 보고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적국의 대량파괴무기(WMD)라는 것, 해군과 공군의 장거리 작전능력, 정밀타격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것, 지상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백악관이 제국주의군사전략 수정보완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일개 야전군사령부인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북침전쟁계획 수정보완작업을 먼저 시작하였다. 그 까닭은, 군사문제를 다룰 때 정치권과 거리를 둔 야전군사령부가 정치권에 의해 좌우되는 백악관보다 훨씬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침전쟁계획 수정보완작업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진행한 작업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1999년에 이른바 '개념계획 5029-99(Concept Plan[CONPLAN] 5029-99)'를 작성하였다. '개념계획 5029-99'는 외부에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그래서 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북침전쟁계획이 분명한데, 관련된 언론보도를 읽으면 다음과 같은 단편적인 내용이 엿보인다.

'개념계획 5029-99'의 내용은 북(조선)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또는 미국군이 북(조선)에서 급변사태를 일으키면 대량정밀타격(high-volume precision strike)으로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고 북(조선)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개념계획 5029-99'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급변사태 발생, 대량정밀타격, 정권붕괴라는 세 가지 전쟁개념이다. 북침전쟁계획에 들어있는 새로운 전쟁개념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지만, 현대전은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으로 개전되고, 선제공격의 성패에 의해서 전쟁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것은 현대군사학이 현대전의 경험을 통해서 논증한 하나의 공식이다. 그러므로 미국군이 북(조선)에게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북침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미국군 지휘부와 제국주의전략가들에게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문제는 선제공격 그 자체가 아니라 대량정밀타격으로 선제공격을 가하는 데 있다. 강조점은 대량정밀타격에 찍힌다. 대량정밀타격에 최신 정찰, 통신기술과 결합된 전술핵무기가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다.

주목하는 것은, 급변사태 발생, 대량정밀타격, 정권붕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전략적으로 배합하여 새로운 전쟁개념을 내온 미국군 지휘부의 전략적 발상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개념계획 5029-99'를 내오기 이전에는 대량정밀타격이나 급변사태라는 개념은 아직 전쟁개념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묶이지 않을 듯한 그 두 개념을 하나의 전쟁개념으로 배합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미국군의 선제공격전략에서 보면, 북(조선)의 전략거점들을 선제공격으로 파괴하는 것이 북침전쟁에서 승리하는 지름길이므로, 대량정밀타격으로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미국군이 대량정밀타격으로 전략거점을 파괴한다고 해서 북(조선)의 전쟁수행력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유고슬라비아의 전쟁경험에서 보듯이, 미국군의 대량정밀타격은 상대의 전쟁수행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하물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유고슬라비아의 군사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북(조선)의 전쟁수행력을 대량정밀타격으로 제거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군 지휘부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군의 대량정밀타격이 북(조선)의 전쟁수행력을 제거하지 못한 조건에서 조선인민군의 대량보복(massive retaliation)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조선인민군의 대량보복이란, 미국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식의 격렬한 보복전이다. 1995년 1월 26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게리 럭(Gary Luck)이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 '최종결과: 믿을 수 없는 고난을 겪는다(Bottom Line: Unbelievable Hardships Would Occur)'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미국군과 조선인민군은 여러 차례 핵교전을 주고받는 전쟁(war of multiple nuclear exchanges)을 벌이는 것이다. (Washington Post 1995년 4월 13일)

따라서 북(조선)에 대한 미국군의 대량정밀타격은 미국 본토에 무방비상태로 널려있는 전략거점들이 대량보복의 재앙과 참화를 입는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미국군 지휘부가 생각해낸 책략은 북(조선)에서 이른바 '급변사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급변사태란 무장폭동이나 내란을 뜻한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북(조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급변사태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안에서 급변사태를 일으켜 전쟁지휘체계를 마비시키고, 밖에서는 대량정밀타격으로 전략거점을 파괴한다면 북(조선)의 전쟁수행력을 제거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제국주의 미국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북(조선)정권의 붕괴는, 대량정밀타격과 급변사태를 하나의 전쟁개념으로 배합한 '개념계획 5029-99'에서 작전목표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무장폭동이나 내란 같은 급변사태는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요구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군 지휘부는 미국군이 북(조선)에서 급변사태를 일으키기 위하여 특별한 군사작전을 벌여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특별한 군사작전이란 정부와 군부에 파고 들어가 고위관리들과 군사지휘관들을 매수, 포섭하는 침투작전, 정부와 군부와 인민을 무기력과 불만으로 끌어가는 심리교란작전, 전쟁수행에 필요한 전략자원을 소모, 고갈시키는 봉쇄작전 같은 특수전(special warfare)을 뜻한다.

침략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침투작전, 교란작전, 봉쇄작전을 밀고 나가 결국 상대의 전쟁수행력을 마비시켜버린 사례는, 미국군이 이른바 '충격과 두려움 작전(Operation Shock and Awe)'을 개시한지 3주만에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정권이 맥없이 무너진 이라크침략전쟁에서 입증된 바 있다. 말하자면, 미국군이 북침전쟁에 적용할 '개념계획 5029'는 이라크침략전쟁에서 먼저 실전연습을 거친 셈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제국주의 미국이 이전에 도발한 침략전쟁들과 구별되는 이라크침략전쟁의 특징은, 집요한 봉쇄작전으로 이라크의 전략자원을 소모, 고갈시킨 뒤에, 통합특전사령부 산하의 특수작전군, 국방부 산하의 특수작전병, 중앙정보국 산하의 특수공작단을 총동원한 침투작전과 교란작전으로 비정규전을 벌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전쟁수행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공군과 해군의 대량정밀타격으로 이라크의 전략거점들을 순식간에 파괴하고, 신속기동군을 동원한 정규전으로 바그다드를 점령하여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라크침략전쟁에서 미국군이 벌인 특수전에 대해서는 2004년 11월 12일에 발표한 나의 글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다시 읽는 한(조선)반도 군사상황'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개념계획 5029'의 실효성이 이라크침략전쟁에서 입증되었다고 판단한 미국군 지휘부는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Operation Plan[OPLAN] 5029)'로 완성하는 작업을 밀고 나갔다. 개념계획이란 말 그대로 개념적으로 군사작전을 작성한 것인데 비해 작전계획은 시간별 상황에 따라 전개하는 군사작전을 수천 쪽에 걸쳐 상세하게 작성한 것이다. '작전계획 5029' 완성작업은 북침전쟁도발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작전계획을 완성하는 목적이 북침전쟁준비에 있음을 알았으면서도, 남(한국)군 지휘부는 미국군 지휘부가 하자는 대로 북침전쟁계획 완성작업에 끌려 들어갔으니,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2003년 11월 15일 서울에서 열린 제25차 한미군사위원회(Military Committee Meeting[MCM])가 북침전쟁계획의 완성을 공모한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미국군과 남(한국)군 합동참모본부 의장들은 앞으로 1년 동안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로 발전시켜나가자고 합의하였다. (『신동아』 2005년 4월호) 그 합의에 따라, 2004년 12월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작성 중인 '작전계획 5029'를 검토하였다.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그 작전계획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신동아』 2005년 4월호)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방문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던 2005년 4월에도 남(한국)군 합동참모본부는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 '개념계획 5029'를 보완, 발전시켜줄 것을 청원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4일)

김대중과 그의 고위관리들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작전계획 5029'를 작성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임기를 마치고 물러갔다. 주한미국군사령부의 북침전쟁계획에 대해서 남(한국)군 합동참모본부의 고위지휘관들만 알고, 어떻게 청와대 국가안보회의는 모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러한 사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두 가지 요인 때문에 그러하다.

첫째, 남(한국)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친미예속성에 얽매인 맹신자들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특히 국방부 고위관리들과 합동참모본부의 고위지휘관들의 맹신은 거의 병적이라 할만큼 심하다. 그들은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주한미국군 고위지휘관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그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정책적 지시를 받기 때문에 다른 고위관리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친미예속성에 얽매이게 된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것은 청와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사령부의 결정이므로, 주한미국군사령부의 군사기밀인 북침전쟁계획을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북침전쟁계획을 작성하는 정책적 권한과 책임은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주어져 있다. 작전계획 수립에 관해서는 실권도 능력도 책임도 없는 남(한국) 국방부의 고위관리들과 남(한국)군 합동참모본부의 고위지휘관들은 미국군 작전참모들이 영문으로 작성하는 수 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북침전쟁계획을 어깨 넘어 구경이나 하면 다행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태평양군사령부의 지휘가 아니라 워싱턴에 있는 합동참모본부의 지휘를 받고, 주한미국군사령부 작전실에서 작성된 북침전쟁계획은 미국군의 전쟁계획이므로 당연히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에게만 보고된다. 주한미국군사령부의 미국군 작전참모들이 작전계획을 작성한 경우, 남(한국) 국방장관은 그 계획에 관하여 남(한국) 대통령에게 보고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작성한 모든 종류의 작전계획들은 남(한국) 대통령의 최종승인을 받지 않고 남(한국) 국방장관의 전결사항으로 처리된다. (『신동아』 2005년 4월호) 그러니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고위관리들이 아무 것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새로 들어선 노무현정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북침전쟁계획 완성작업을 파악하였던 때는 2004년 말이었다. 그리하여 2005년 1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작전계획 5029' 작성작업을 중단해 줄 것을 미국 국방장관에게 청원하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무현정부는 '개념계획 5029'에 남(한국)의 주권행사를 제약하는 요소가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려는 부쉬정부의 의사에 반대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고위관리들이 '작전계획 5029' 작성을 중단해달라고 청원한 까닭은, 그들에게 없었던 반전평화의지가 갑자기 생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가공할 북침전쟁계획에 관한 정보가 만일 언론에 흘러나갈 경우 남(한국)사회에 전쟁공포가 밀려오지나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며, 또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연쇄적으로 이탈하여 가뜩이나 허덕이는 남(한국)경제가 재기불능의 치명상을 입지나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무현정부가 아무리 중단을 청원했어도, 그러한 중단청원 따위는 부쉬정부의 의지를 가로막을 수 없었다. 일본언론은 부쉬정부가 노무현정부의 반대로 작성작업을 중단한 '작전계획 5029'를 다시 작성하기 위한 재조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 무렵 서울에 다녀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도 노무현정부가 미국군의 작전계획 작성에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하였다. (『日本經濟新聞』 2005년 5월 25일)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2005년 6월 4일 싱가포르에서 국방장관 윤광웅과 만난 자리에서 '개념계획 5029'를 보완, 발전시키자고 하였고, 윤광웅은 그의 말을 따랐다. 당시 언론보도는 두 국방장관이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로 격상시키지는 않으면서, 보완,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고 보도하였으나(『연합뉴스』 2005년 6월 4일), 그것은 미국 국방부와 남(한국) 국방부가 주고받은 '말장난'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개념계획을 보완, 발전시키는 것은 곧 작전계획으로 완성한다는 뜻이지 다른 것으로 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꼭 1주일 뒤인 2005년 6월 1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상황은 아주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노무현과 만난 자리에서 부쉬는 미국군과 남(한국)군은 북(조선)의 급변사태에 대처할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남(한국)에서 정치쟁점으로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월간중앙』 2005년 8월호) 이것은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가 노무현정부의 중단청원을 묵살하고 '작전계획 5029'를 완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한때 세간에 떠돌았던, 한미동맹에 이상기류가 흐른다는 소문이나 노무현정부 안에서 일어난 이른바 '자주파 대 동맹파의 갈등'에 관한 소문 따위는 결국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쉬가 말 한 마디를 내던지자 꼬리를 감추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에 '작전계획 5029'를 완성하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언론보도는 찾을 수 없다. 그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부쉬정부와 노무현정부가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이다.

'작전계획 5029'를 완성하는 작업은 한미정상회담 이후 주한미국군사령부 작전실에서 계속 진행되어 마무리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사령부는 2005년 안에 '작전계획 5029'를 완성하는 목표를 세워놓고 작성하였다고 하였으니(『신동아』 2005년 4월호), 완성예정시점으로부터 퍽 오랜 시간이 흐른 2006년 8월 현재, 북(조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섯 가지 급변사태에 대처한 특수군사작전을 수 천 쪽에 이르는 문서에 시간별로 자세하게 기록한 '작전계획 5029-05'라는 이름의 북침전쟁계획은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문서고에서 집행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백악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주한미국군사령부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전쟁집단이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정밀유도무기로 기습적인 타격을 가하여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려는 북침전쟁계획을 완성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부쉬정부는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거나 침략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확인한다"고 기록한 9.19 공동성명 채택에 참가하였다. 모순과 배반의 극치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완성한 '작전계획 5029-05'는 태평양군사령부가 작성한 또 다른 북침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30'과 일맥상통한다. 작전계획을 작성하는 작업을 지시하고 결재하는 책임자인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태평양군사령부에게 군사정세의 변화동향에 맞춰 각자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을 작성하라고 지시하였을 것이므로 그 두 가지 북침전쟁계획이 일맥상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평양군사령부가 럼스펠드의 지시에 따라 '작전계획 5030'을 작성하고, 그것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언론에 보도된 때는 2003년 7월이었다. (U.S. News & World Report 2003년 7월 21일) 태평양군사령부가 '작전계획 5030'에 따른 실전연습을 2004년 9월에 시작한 것으로 보아서, 이 작전계획은 2004년도에 '작전계획 5030-04'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어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작전실에 제출되었을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작전계획 5030-04'는 태평양군사령관이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도 북(조선)의 전략자원을 소모, 고갈시키고 북(조선)의 정부, 군부, 인민을 동요시키는 다양한 '저강도 작전'을 전개하는 북침전쟁계획으로서, 이른바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작전목표로 하고 있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작전계획 5029-05'를 아직 작성하고 있을 때, 태평양군사령부는 한 걸음 빠르게 자기들이 작성한 '작전계획 5030-04'를 실행하기 위한 실전연습에 들어갔다. 2004년 9월, 세계에서 가장 넓은 활주로를 가진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한 비(B)-2 스텔스 전폭기와 에프(F)-15 전투기를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기 위한 작전계획에 따라 발진할 수 있는 경계태세로 대기시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NBC 텔레비전방송 2005년 5월 6일 보도) 괌에서 북(조선)까지 직선거리는 4천km이므로,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전폭기는 4시간만에 북(조선) 상공에 도달할 수 있다.

부쉬정부는 2004년 6월 23일과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 자기 대표를 내보내 그 무슨 평화적 수단과 외교적 노력을 떠들면서도, 2004년 9월 '작전계획 5030-04'에 따른 북침전쟁 실전연습에 들어감으로써 제국주의세력에게 숨겨진 진짜 의도는 평화적 수단이나 외교적 노력이 아니라 변함없이 무력침공과 정권교체에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작전계획 5029-05'와 태평양군사령부의 '작전계획 5029-04'는 2006년 2월 3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uadrennial Defense Review[GDR])가 드러낸 제국주의전쟁전략과 일맥상통한다. 그 보고서는 대량파괴무기 제거작전의 중요성이 차츰 커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합동군사령부를 창설하여 특수전에 대한 즉각적인 지휘와 통제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한 전쟁전략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약 3천 명으로 편성된 해병대 특수작전단위를 신설하고, 육해공군의 특수작전병력을 15%씩 늘일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판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에 들어있는 특수작전군(Special Operation Forces)이라는 개념은, 대량파괴무기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대량파괴무기를 장악하고, 그것을 무력화하고 파괴하는 전문훈련을 받고, 세계 어느 곳에나 몇 시간 안에 침투하는 작전단위를 뜻한다. 미국 통합특전사령부(Special Operation Command[SOCOM])가 지휘하는 특수작전군은 지상군 델타포스(Delta Force), 특전단, 제160특수전 항공연대, 해군의 씰(SEAL), 공군 특수군으로 편성되었다.

2006년판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에서는 2001년판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가 밝힌 1-4-2-1 방식(본토방어-유럽, 동북아, 서남아, 중동 네 지역에서 침공억제-2개 전쟁 동시 수행-1개 전쟁에서 승리)이 1-2-1 방식(본토방어-반테러전 및 비정규전 동시 수행-1개 전쟁에서 승리)으로 수정되었다. 2개의 비정규전을 동시에 전개하는 가운데, 한 전쟁에서 적대정권과 그 군사력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6년 2월 4일) 이른바 '원 플러스(One-Plus)'라고 부르는 새로운 군사전략이 그것이다.

2006년판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의 특징은, 반테러전과 비정규전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반테러전, 비정규전이란 '작전계획 5029-05'에 나오는, 북(조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섯 가지 급변사태에 대처하는 북침특수작전을 뜻한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작성한 '작전계획 5029-05'와 마찬가지로, 대량정밀타격으로 선제공격하여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는 전쟁개념을 사용한 또 다른 북침전쟁계획은 미국 전략군사령부(STRATCOM)가 작성한 '작전계획 5026-03'이다.

'작전계획 5026-03'은 공중타격력과 정밀유도무기를 동원하여 조선인민군의 핵무기, 생화학무기, 미사일기지, 공군기지, 지휘소, 통신시설을 순식간에 파괴하는 북침전쟁계획이다. 이 작전계획에는 정밀유도식 통합직격탄(Joint Direct Attack Munition[JDAM])으로 파괴할 북(조선)의 전략거점 700 개가 열거되어 있다. (『신동아』 2005년 6월호) 전략거점 하나에는 약 10개의 전술타격점(aiming point)이 있으므로, 북(조선)의 전략거점이 700 개라는 말은 미국군이 파괴하여야 할 전술목표가 약 7천 개라는 뜻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2005년 10월 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 앞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2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34차 한미연례안보회의(Security Consultative Meeting[SCM])에서 채택한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작전기획을 위한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미합중국 국방장관의 군사위원회에 대한 전략기획지침'에는 조선인민군의 대량파괴무기와 지휘통제체계를 파괴하고 무력화하는 '작전계획 5026'을 2003년 7월까지 수립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연합뉴스』 2005년 10월 10일)

그것만이 아니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1998년 말에 작성하였던 여섯 단계 북침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98'을 '작전계획 5027-04'로 수정, 보완하였다. 2002년 12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34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결정한 바에 따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작전계획 5027-04' 수정보완작업을 마친 때는 2004년이었다. 여섯 단계 작전을 네 단계 작전으로 줄임으로써 공격작전으로 전환하는 시간을 줄이고 이른바 '공세적 방어전략'을 강화하였다. 한미연합해병대가 동서해안에 상륙하여 제2전선을 구축하고 특수작전군이 북(조선) 내륙지역에 침투하여 동시다발로 평양을 포위함으로써 북(조선)정권을 붕괴시키는 북침전쟁계획이다. 원래 '작전계획 5027'에는 1998년 말에 작성하기 시작하여 2000년에 완성된 '시차별 전력배치 목록(Time-Phased Force Deployment List[TPFDL])'이 첨부되었는데, 군사정세의 변화로 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그 목록은 2004년에 수정, 보완된 '작전계획 5027-04'에서 삭제되었다. (『신동아』 2005년 6월호)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Security.org)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작전계획 5027-04'에는 북(조선)의 특정목표를 선별적으로 파괴하는 정밀타격작전, 최고지도부 암살작전, 전략거점 기습작전 등이 포함되었다. 명백하게도, 이러한 작전들은 특수전이 아니고서는 전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처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작성한 '작전계획 5029-05(급변사태 대응 특수작전)', '작전계획 5027-04(공세적 특수작전)'는 해외주둔 미국군 재배치 계획(Global Posture Review[GPR])에 따라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전략사업과 일치하는 북침전쟁계획들이다. 또한 태평양군사령부의 '작전계획 5030-04(저강도 작전)', 전략군사령부의 '작전계획 5026-03(장거리 타격작전)'은 2002년 3월에 언론에 보도된 핵전쟁태세검토(Nuclear Posture Review[NPR]), 2002년 5월에 언론에 보도된 국방계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DPG]), 그리고 2002년 8월에 언론에 보도된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NSS])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 속에서 작성된 북침전쟁계획들이다.

2-2) 군사정세의 변화요인들

위에서 살펴본 대로, 한미군사동맹체제에 변화돌풍이 불기 시작한 때는 1999년이었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그 해에 '개념계획 5029-99'를 작성하였던 것에 대해서는 위에서 논하였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1999년에 열렸던 제31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국방장관 조성태와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William S. Cohen)이 2년 동안 '한미동맹 미래 공동협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합의하였다. (『프레시안』 2006년 2월 15일)

그 보고서에는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3단계 통일방안'이 들어있다. 물론 그것은 통일방안이 아니라 제국주의 미국의 지배 아래에 있는 친미예속정권이 추진하는 흡수통합방안과 흡사하지만, 제국주의전쟁전략을 수행하는 미국 국방부가 '3단계 통일방안'을 작성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3단계 통일방안'에 따르면, 화해협력단계인 제1단계에서는 남(한국)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북(조선)체제가 내부불안정을 겪거나 북(조선)의 사회경제 기반시설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전망하였다.

제2단계는 평화공존단계인데, 이 단계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게 된다. 평화협정을 맺을 당사자는 남(한국)과 북(조선)이다. 남북(북남)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함께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한미 두 정부의 대화를 지속한다.

제3단계는 통일단계인데, 이 단계에서 남(한국)군이 한(조선)반도를 주도적으로 방위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되고, 남(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실현된다. 통일과정에서 북(조선)에서는 정권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일부세력들이 저항할 우려가 있고, 특히 북(조선)주민이 남(한국)에 대량으로 밀려들어와 남(한국)에서 사회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한국일보』 2006년 2월 15일)

주목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가 자기의 '3단계 통일방안'에서 남(한국)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에 나오는 국가연합단계를 없애고, 그것을 평화공존단계로 대체하였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의 '3단계 통일방안'은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당사자가 남북(북남)이 될 것이라고 지적함으로써, 미국 국방부는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것은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미국 국방부는 그 협정의 국제법적 구속을 받지 않고 한(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전쟁전략을 여전히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가 국가연합단계를 없애고 그 대신 집어넣은 평화공존단계에서 노리는 것이 한(조선)반도의 평화정착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의 무장해제인 것은 명백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한(조선)반도에서 미국 국방부가 노리는 것은 여전히 북침전쟁인 것이다.

1999년에 열렸던 제31차 한미연례안보회의의 결정에 따라 작성된 '한미동맹 미래 공동협의 결과 보고서'에 기초하여, 미국 국방부는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결정적인 전략문서를 작성하였는데, 그것이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 관한 약정서(Terms of Reference[TOR])'이다.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문제는 그 '약정서'에 전면적으로 밝혀져 있다. 그 '약정서'는 2002년 12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34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국방장관 이준과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교환함으로써 공식채택되었다. (『한국일보』 2006년 2월 15일)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한미 전략회의였던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uture of the Alliance Talks[FOTA])도 그 '약정서'에 따라서 진행된 것이다.

'약정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서 내용을 뚜렷이 알 길이 없지만, 1999년에 작성된 '한미동맹 미래 공동협의 결과 보고서'에 기초하여 작성되어 2002년에 공식채택된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 관한 약정서'에 따라서 한미군사동맹체제가 개편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한미군사동맹체제의 개편방향이 미국 국방부의 '3단계 통일방안'이 가리키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1999년 9월 15일 '페리 보고서(Review of United States Policy toward North Korea: Findings and Recommendations)'가 당시 대통령 클린턴(William J. Clinton)에게 제출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보고서에 담긴 정책기조는 미국이 외교적 노력으로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는 경우 미국은 한(조선)반도 분단체제를 평화적으로 관리(peaceful management)할 것이고, 만일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할 경우 미국은 마지막으로 군사적 선택(military option)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페리 보고서'에 나오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정책기조는, 같은 해에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3단계 통일방안'과 일맥상통하고, '페리 보고서'에 나오는 군사적 선택이라는 정책기조는 주한미국군사령부, 태평양군사령부, 전략군사령부가 각기 작성한 북침전쟁계획들과 일맥상통한다.

1999년에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을 작성하고, 그 이듬해에 미국군 지휘부가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내부협의에 들어가고, 다른 한 쪽에서 백악관이 한(조선)반도 정책을 수정하여 '페리 보고서'를 내놓았던 일련의 움직임은, 1998년 8월 31일 북(조선)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를 발사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내가 발표한 글들에서 여러 차례 논한 대로, 북(조선)이 백두산 1호를 발사한 것은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백두산 1호 발사의 군사전략적 의미는 조선인민군이 미국군의 선제공격에 맞서 대량보복을 가할 수 있는 핵무장력을 보유하였다는 것이다.

북(조선)이 백두산 1호를 발사하여 대량보복능력, 핵무장력을 입증하자, 미국은 기존의 북침전쟁계획, 제국주의군사전략, 대북(조선)정책을 가지고서는 북(조선)을 상대할 수 없게 되었다. 대량보복능력, 핵무장력을 보유한 북(조선)을 상대하는 새로운 북침전쟁계획, 제국주의군사전략, 대북(조선)정책이 요구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은 북(조선)의 대량보복능력, 핵무장력에 대한 미국의 군사전략적 대응인 것이다.

제국주의 미국은 한(조선)반도 군사정세를 바꿔놓는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을 1999년부터 무려 7년 동안이나 밀실에서 진행하여 왔다. 노무현정권과 한나라당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놓고 말싸움을 주고받는 천박한 '안보논란'에 골몰하는 사이에, 미국 국방부는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작업을 자기가 정한 일정에 따라 마무리할 것이다.

3.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이 가져오는 몇 가지 결과들

3-1) 군사작전임무 이양과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2003년 7월 제3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부쉬정부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장악해왔던 열 가지 군사작전임무를 남(한국)군에게 넘겨주겠다고 통보하였다. 넘겨주겠다는 군사작전임무란, 대화력전 지휘통제임무, 해상에서의 특수작전부대 차단임무, 근접항공지원 통제임무, 주야간 탐색구조임무, 주보급로 통제임무, 신속지뢰 설치임무, 후방지역 제독임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임무, 공대지 사격장 관리임무, 기상예보임무이다. 전후 50년 동안 그러한 핵심적인 군사작전임무를 모조리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장악해왔으니, 한국군사령부는 허수아비사령부라는 비난을 피할 길 없다.

군사작전임무를 넘겨주고 넘겨받는 과정은 인수인계절차를 규정한 문서를 주고받는 식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군사작전임무는 곧 군사작전능력이므로, 남(한국)군이 주한미국군으로부터 넘겨받을 군사작전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를 알아보는 작전능력 평가절차가 요구되는 것이다. 언론에는 자세히 보도되지 않지만, 2003년 7월 이후 지금까지 주한미국군과 남(한국)군 사이에는 남(한국)군의 군사작전능력에 대한 평가작업이 진행되어왔던 것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2005년 8월 31일 남(한국)군과 주한미국군 지휘부가 대화력전 지휘통제임무를 반환하기 위한 평가회의를 열고 그 임무를 2005년 10월에 남(한국)군으로 넘기자고 합의하였던 것(『연합뉴스』 2005년 9월 3일)이 그러한 사례이다.

그리하여 2006년 8월 현재 주한미국군은 열 가지 군사작전임무 가운데 상당부분을 이미 남(한국)군에게 넘겨주었다. 주보급로 통제임무, 기상예보임무는 2006년 12월에 넘겨줄 것이고(『연합뉴스』 2005년 9월 3일), 해상에서의 특수작전부대 차단임무, 주야간 탐색구조임무는 남(한국)군의 요청으로 아직 넘겨주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5일)

주목하는 것은, 2006년 7월 13일과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ecurity Policy Initiative[SPI])에서 부쉬정부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장악해온 열 가지 군사작전임무 이외에 다른 군사작전임무도 추가로 남(한국)군에 넘겨주기로 하였다는 점이다. 군사작전임무를 추가이양하는 문제는 부쉬정부가 이미 2004년 2월에 열린 제7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내놓은 바 있다. (『연합뉴스』 2004년 5월 21일) 추가이양이란 사실상 모든 종류의 군사작전임무를 남(한국)군에게 넘겨주는 것이므로, 주한미국군을 전면적으로 철군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주한미국군이 자기의 군사작전임무를 남(한국)군에게 넘겨주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남(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남(한국)군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군사작전임무는 작전통제권 행사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작전통제권 반환문제에 관한 논란은 요즈음 일어났으나, 그 문제는 15년 전에 제기된 것이다. 1991년 남(한국) 국방부는 평시작전통제권을 1993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을 1995년 이후에 넘겨받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1991년에 열린 제23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미국 국방부에게 반환을 청원하였다. 미국 국방부는 1996년 이전에 평시작전통제권을, 2000년 이후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약속' 대로, 미국 국방부는 1994년 12월 1일에 평시작전통제권을 남(한국)군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연합위임권(Combined Delegated Authority[CODA])은 넘겨주지 않았다. 연합위임권이란 북침작전계획을 작성하고 발전시키는 권한, 북침전쟁연습을 준비하고 실시하는 권한, 조기경보를 제공하는 연합정보관리에 관한 권한 등 여섯 가지 핵심권한이다. 미국 국방부는 남(한국)군에게 작전통제권을 넘겨주는 시늉만 하고,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만 넘겨주는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2003년 4월에 열린 제2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부쉬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는 문제를 공식거론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뒤로 2005년까지 이태 동안 전시작전통제권 반환문제는 언론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쉬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반환문제를 다시 꺼낸 것은 2005년 9월 28일과 30일에 열린 제4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부쉬정부와 노무현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반환문제를 제37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논의하자고 합의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10월 21일)

2005년 10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제37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는, 한 달 전에 합의한 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는 문제를 논의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는 작업을 "적절하게 가속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10월 21일) 2005년 12월초에 열린 제5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는 문제를 논의할 실무단위를 2006년 2월부터 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노무현은, 2006년 6월 9일 청와대에서 6.10 민주항쟁 관계자들과 만찬을 나누면서 다섯 해 남짓한 기간 안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스스로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9일) 그가 다섯 해 남짓한 기간이라고 표현한 것은 2012년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부쉬정부의 계산은 노무현정부의 계산과 달랐다. 2006년 7월 13일과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에서 부쉬정부는 2012년 이전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겠다고 서둘렀던 것이다. 반환시기와 관련해서 부쉬정부는 2009년을, 노무현정부는 2012년을 주장하게 되었다. 2006년 8월 8일 미국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는 때에 관해서 노무현정부는 2012년을, 부쉬정부는 2009년을 주장하는 바람에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8일)

부쉬정부는 자기의 새로운 군사전략을 추진하는 일정에 따라서 전시작전통제권을 2009년에 넘겨주려는 것이고, 노무현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을 준비가 아직 미흡하다는 구실로 2012년에 넘겨받으려는 것이다. 준비가 미흡하다는 말은 무력증강사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남(한국)군의 '국방중기계획'이 끝나는 때가 2011년이므로 그때 가서야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 8월 3일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임치규는, 감시정찰능력, 지휘통제통신능력, 정밀타격능력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으로 행사하기 위한 3대 조건이라고 지적하고, 2007-2011년 국방중기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되면 2012년께 전시작전통제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능력을 구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3일) 남(한국)군은 무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을 끝낸 뒤인 1994년에 평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은 경험이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시기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하는데, 2004년 10월 6일 미국 국방부는 주한미국군 감군작업을 완료하는 시기를 2008년 9월말로 확정지었다고 노무현정부에게 통보한 바 있으므로, 2009년 초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는 반환시기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한미국군의 역할을 바꾸는 역할변경문제이다. 2006년 6월 15일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웰 벨(Burwell B. Bell)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면 주한미국군의 역할이 지원역할로 바뀔 것이라고 말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15일) 2006년 8월 8일 미국 국방부 고위관계자도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면 주한미국군이 전투작전에서 지원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8일)

일반적으로, 지원역할이란 방조역할을 뜻하므로 주한미국군이 지원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위에서 논한 대로, 한(조선)반도에서 북침전쟁을 도발하는 것도 미국군이고, 그 전쟁을 주도하는 것도 미국군이다. 제국주의침략전쟁의 주도권, 책임, 수행능력은 전적으로 미국군에게 있다. 북침전쟁에서 미국군이 남(한국)군의 군사작전을 지원하거나 방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세계전쟁사를 살펴볼 때, 미국군이 지원역할, 방조역할을 맡았던 전쟁은 한 차례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미국군이 북침전쟁의 지원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말은, 수정, 보완된 제국주의군사전략에 따라 새로운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뜻이다. 2006년 3월 7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태평양군사령관 윌리엄 팰런(William J. Fallon)이 미국군의 새로운 역할이 무엇인지를 시사하는 발언을 남긴 것은 기억할 만하다. 그는 미국군이 지상군보다 해군과 공군 위주로 지원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6년 3월 24일, 2006년 8월 8일)

명백하게도, 저들이 말하는 지원역할이란 북침전쟁에서 미국군이 공중작전과 해상작전을 맡고, 남(한국)군에게는 지상작전을 맡긴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해상과 공중에서 대량정밀타격으로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는 역할을 미국군이 맡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역할수행은 2006년판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와 여러 종류의 북침전쟁계획들에 나타난 것처럼, 공중작전과 해상작전에서 대량정밀타격을 가해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려는 제국주의전쟁전략과 일치한다.

3-2) 주한미국군 철군과 주한미국군사령부 해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어 한(조선)민족이 통일의지를 드높이고 있었을 때, 워싱턴에 있는 미국 국방부청사의 어느 밀실에서는 미국 국방부, 태평양군사령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고위지휘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주한미국군을 감군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미국언론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지상군을 약 5년에 걸쳐 감군하는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검토에 착수하였다는 것이다. 미국군은 장거리 타격력을 증강한 해군과 공군을 보유하게 되었고, 장거리 수송력을 증강한 지상군을 보유하게 되었으므로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미국군을 감군 또는 철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Washington Times 2000년 9월 29일)

미국군 지휘부가 미지상군을 감군하는 논의를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침략전쟁의 돌격대인 이른바 원정군(expeditionary force)의 전투력을 비상히 증강하는 전략사업이 2000년 현재 완성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남(한국) 같이 전투종심이 너무 짧은 위험지대에 미국군을 전진배치하지 않고,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을 공격하는 장거리 타격능력, 오차 없이 정확하게 타격목표를 파괴하는 정밀타격능력, 병력충원과 물자보급을 비롯한 지원비용을 줄이는 전쟁비용 절감능력을 극대화하는 등의 이른바 효과기반작전(Effects-Based Operation[EBO])을 전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외에 배치한 미지상군을 감군하는 정책이 적용된 첫 번째 대상은 주한미국군이다. 그 까닭은, 주한미국군이 지상군 위주로 편제된 작전단위이기 때문이다. 주한미지상군이 제아무리 중무장한 병력이라 해도 전방진지에 고착, 배치되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 집중공격으로 궤멸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2000년 3월 7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에서, 3월 15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서, 4월 5일 중앙정보국 본부에서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토머스 슈워츠(Thomas A. Schwartz)가 비공개로 보고한 바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기습공격으로 들이치는 경우 주한미국군은 세 시간만에 궤멸되고 만다는 것이다. (『월간중앙』 2003년 4월호) 주한미지상군은 이미 오래 전에 군사전략적 가치를 잃어버렸다.

주한미국군 감군은 병력수와 군사장비를 줄이는 재래식 군비감축문제가 아니라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 관한 약정서'에 따라 진행되는 군사체제 개편문제이므로 주한미국군 감군이 주한미국군 지휘구조를 개편하는 전략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3년 5월말 미국 국방부는 해외주둔 미국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주한미국군 지휘구조 개편안'을 작성하였다. (『시사저널』 제735호, 2003년 11월 27일)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2003년 7월에 열린 제3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부쉬정부는 노무현정부와 함께 한미연합지휘관계를 '연구'하기로 합의하였다. 언론은 부쉬정부가 노무현정부와 함께 한미연합지휘관계를 '연구'하기로 합의한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부쉬정부의 그러한 '합의'는 주한미국군 지휘구조 개편안을 작성해놓고 나서 그것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취하는 은폐행위이다. 미국정부는 자국의 군사지휘구조 개편문제를 절대로 그 어떤 동맹국정부와도 협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며, 더욱이 노무현정부 같은 친미예속정부와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은 부쉬정부 고위관리들에게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2003년 2월 13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주한미국군기지를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는 계획을 '찬동'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주한미국군 감군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Washington Post 2003년 2월 14일) 그의 말은 현실로 되었다. 2003년 6월 5일 제2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부쉬정부는 주한미지상군 1만2천500 명을 감군하겠다는 의사를 노무현정부에게 처음으로 밝혔다. 미국언론도 부쉬정부가 주한미국군 3만7천명 가운데 3분의 1인 1만2천 명을 감군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주한미국군 잔류병력을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출병시키는 원정군(신속기동군)으로 재배치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Associated Press, 2003년 10월 19일)

2003년 11월 중순,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미국군 재배치작업이 진행되는 극동을 둘러보았다. 그는 괌과 오키나와의 미국군기지를 둘러보고 서울과 도쿄를 방문하였다. 극동방문길에 있었던 11월 13일 그가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부쉬정부는 주한미국군 개편에 관한 협의를 여섯 달 안에 시작할 것이고, 주한미국군 개편에 관한 협의를 2-3년 안에 끝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14일)

2003년 11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제35차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럼스펠드는 주한미국군사령부, 주한미8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 주한유엔군사령부를 평택기지로 옮기는 문제를 노무현정부에게 통보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17일) 그 회의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이라는 낯선 개념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낯선 개념 속에 그토록 엄청난 군사정세의 변화전망이 축약되어 있는 줄은 그 당시에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2004년 2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부쉬정부는 해외주둔 미국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계획을 노무현정부에 공식통보하였다. 이라크전선에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감군한다는 것이다. 그 회의에서 부쉬정부는 전력투사근거지(Power Projection Hub[PPH]), 주요작전기지(Main Operating Base[MOB]), 전진작전거점(Forward Operating Site[FOS]), 협력방위위치(Cooperative Security Location[CSL])로 구분하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설명하면서, 주한미국군기지는 전력투사근거지와 주요작전기지의 중간급에 해당하는 기지, 또는 주요작전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5월 19일)

2004년 6월 6일 서울에서 열린 제9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리처드 롤리스(Richard Lawless)는 2005년 12월말까지 이라크 차출 병력 3천6백 명을 포함하여 주한미국군 1만2천500 명을 감군하겠다고 공식통보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7일)

2004년 7월 12일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리처드 롤리스, 국무부 특별대사 에번스 리비어(Evans J. R. Revere), 국방부 관리 한 사람, 그리고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김숙, 청와대 국가안보회의 정책조정관 위성락, 국방부 국제협력관 한민구로 구성된 3인위원회에서 부쉬정부는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규모와 시기, 감군할 부대와 장비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을 노무현정부에게 통보하였다.

주일미국군을 감군하는 경우 일본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교환각서가 있지만,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경우 남(한국)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교환각서는 없다. 주한미국군 감군문제는 부쉬-노무현의 전화통화에서 통보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부쉬-노무현 전화통화에 관해서는 『연합뉴스』 2004년 6월 5일 보도 참조) 미국정부가 내놓은 감군계획문서에는 "사전협의(prior consultation)"라는 표현이 들어있으나, 남(한국)정부와 논의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정부와 논의하는 때에도 실효적 사전협의는 없으며, 미국정부는 사후통보 정도로 이해하고 운영하고 있다. (주한미군 지역적 역할에 관련한 청와대 문서)

2004년 10월 6일 남(한국)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부쉬정부가 주한미국군 1만2천500 명을 2005년 말까지 감군하겠다고 통보한 뒤로 넉 달 동안 협의한 끝에 당초 계획보다 3년이 늦춰진 2008년 9월말까지 감군하기로 합의하였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6일) 이와 관련하여 언론은 이라크에 남(한국)군을 파병해주는 대가로 주한미국군 감군시기를 3년 늦춘 것으로 해석하였다. '감군충격'에 놀란 노무현정부는 당시 국가안보회의 의장이었던 정동영을 워싱턴에 급파하였다. 정동영은 럼스펠드를 만난 자리에서 남(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하였음을 거론하면서 주한미국군 감군시기를 늦춰달라고 청원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8일) 이라크침략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것을 막으려는 반대여론을 깔아뭉개면서 노무현정부가 기어이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였던 배경에는 주한미국군 감군시기를 3년 뒤로 늦추려는 의도가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가 부쉬정부에게 애걸하다시피 하여 감군시기를 3년 뒤로 늦추었다고 해서 감군일정이 2008년에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미국은 2008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한미국군을 빼내갈 것이다.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감군일정은 남(한국)의 친미예속세력이 반대하는 전면철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Economist에 따르면, 미국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주한미지상군을 거의 모두 철군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이다. (『연합뉴스』 2005년 11월 29일) 2006년 3월 7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태평양군사령관 윌리엄 팰런은 주한미국군의 추가감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8일)

미국언론에서 주한미국군의 감군 또는 전면철군을 논하는 대표적인 언론인은 리처드 핼로런(Richard Halloran)이다. 그는 2008년까지 또는 그 이후의 군사정세를 논하면서, 주한미지상군은 점차적으로 감군되거나 거의 전면철군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Japan Times 2005년 10월 10일) 그는 2008년 이후 미국정부는 주한미국군을 "상징적 수준의 병력(small token force)"만 남겨놓고 철군하든지 또는 전면적으로 철군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월 벨의 임무는 "남(한국)에서 (주한미국군 주둔의) 막을 내리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Real Clear Politics 2006년 7월 28일)

리처드 핼로런이 말한 대로, 주한미국군을 상징적 수준의 병력만 남겨놓고 철군한다는 말은, 정보 및 통신업무를 담당한 소수의 병력만 남겨놓고 주한미지상군과 주한미공군을 모두 철군한다는 뜻이다. 2004년 5월 25일 주한미8군사령관 찰스 캠벨(Charles C. Campbell)이 주한미8군사령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국군 501정보여단과 제2통신여단을 계속 주둔시킬 방침이라고 말한 것(『연합뉴스』 2004년 5월 25일)은 그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지금까지 주한미국군 감군문제는 주로 주한미지상군을 감군 또는 철군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왔지만, 주한미공군도 동반철군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8월 3일 연방의회 조사국(CRC) 연구원 래리 닉쉬(Larry Niksch)는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회견하면서 미국정부는 주한미공군을 한(조선)반도에서 빼내 아예 공군력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남(한국)정부와의 분란소지를 미리 없앨 수 있다고 말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3일) 주한미공군을 동반철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2001년 5월 14일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operation)가 미국 공군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정책보고서 '미국과 아시아: 미국의 새로운 전략과 병력구조(The United States and Asia: Toward a New U.S. Strategy and Force Structure)'에서 지적한 대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과 특수전 능력이 주한미공군의 작전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940년 하와이에서 창설되었으며, 1986년 남(한국)에서 재창설된 주한미공군에 대한 지휘권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아니라 태평양공군사령부(PACAFC)가 갖고 있다. 일본, 괌, 알래스카에 배치된 미공군도 태평양공군사령부의 지휘를 받는다.

주한미공군이 매향리 폭격훈련장을 폐쇄한 뒤에, 직도 폭격훈련장에서 자동채점장치를 갖추고 공중타격훈련을 실시하겠다고 하면서 남(한국) 국방부를 압박하는 것은, 고착주둔기지인 오산과 군산의 공군기지를 전투비행대대가 들락날락하는(flow in and out) 순환훈련기지로 전환하려는 태평양공군사령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평택기지 역시 주한미지상군의 고착주둔기지가 아니라 신속기동여단이 들락날락하는 순환훈련기지로 건설될 것이다.

주한미국군을 전면적으로 철군하기 이전이라도 주한미국군 감군은 한미연합군사령부 해체로 직결된다. 리처드 핼로런은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신속기동여단(Stryker Brigade Combat Team)으로 개편하는 것과 더불어 한미연합군사령부를 해체하고 주한미국군사령관을 4성급 지휘관에서 3성급 지휘관으로 내려 임명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Washington Times 2003년 11월 24일)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되었다. 2006년 2월 28일 노무현정부의 소식통은 미래 한미지휘관계 유형을 연구하는 합동참모본부에서 현행 한미연합군사령부를 대신하여 연합작전을 협조하고 전개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6년 2월 28일) 어떤 사람들은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한 뒤 남(한국)에는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사령부가 두 개의 독립사령부(independent command)로 공존할 것으로 내다보지만, 그러한 전망은 빗나갈 것이다. 한미연합군사령부 해체는 주한미국군사령부 해체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주한미국군사령부 해체문제를 논하는 언론인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사람은 리처드 핼로런이다. 그는 2008년 이후에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주한미8군사령부가 하와이로 옮겨갈 것으로 내다보았다. (Japan Times 2005년 10월 10일)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주한미8군사령부가 하와이로 옮겨간다는 말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주한미국군에 대한 지휘권이 태평양군사령부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주한미공군에 대한 지휘권은 이미 태평양공군사령부가 갖고 있으므로, 리처드 핼로런이 예견한 대로, 태평양지상군사령부(USARPAC)가 주한미지상군에 대한 지휘권을 주한미국군사령부로부터 넘겨받는 것이다. (Japan Times 2005년 10월 10일)

미국언론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지상군사령부를 현재의 행정사령부에서 신속기동력을 갖춘 작전사령부로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며, 그에 따라 3성급 지휘관을 4성급 지휘관으로 격상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언론은 태평양지상군사령부를 작전사령부로 개편하기 위해 1천650 명 병력을 추가로 하와이에 배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Associated Press 2006년 8월 11일) 이처럼 주한미지상군에 대한 지휘권을 태평양지상군사령부가 넘겨받으면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자동적으로 해체된다.

실제로, 미국정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는 문제를 논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2003년 11월 하순 하와이에서 열린 미일 안보실무회담에서 미국정부 관리는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 있는 지상군 제1군단사령부를 일본 가나가와현에 있는 자마(座間)기지로 옮기고 주일미국군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共同通信』 2004년 3월 2일) 리처드 핼로런은 태평양군사령부 대변인 존 싱글리(John Singley)의 말을 인용하면서, 주한미국군사령부, 주한미8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 주한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될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Washington Times 2004년 2월 2일)

부쉬정부가 노무현정부에게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는 문제를 제기한 때는 2005년 10월 중순이다. 당시 부쉬정부는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주한미8군사령부를 하와이로 옮기거나 축소하거나 해체하는 문제를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협의하자고 공식제의하였다. (『한국일보』 2005년 10월 17일)

명백하게도, 미국정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은 자기의 제국주의군사전략을 추진하는 전략사업의 일환이다. 미국정부가 자기의 제국주의군사전략을 군사정세의 변화동향에 맞게 수정, 보완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해체된다고 해서, 군사정세의 긴장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제국주의 미국이 수정, 보완한 북침전쟁계획을 밀고 나감으로써 군사정세의 긴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주한미국군을 감군하고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는 움직임과 더불어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이 침공무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하면서 북침전쟁준비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3-3) 새로운 북침전쟁계획에 따른 침공준비와 전쟁연습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작전계획 5029-05'를 완성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주한미국군의 무력증강을 다그쳤다. 2003년 5월 31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는 '향후 3년간 주한미국군 전력증강계획'을 발표하였다. 전력증강사업은 이미 2000년부터 추진되어온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주한미지상군을 감군하는 대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150개 항목에 1백10억 달러를 들여 무력증강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를테면, 무인정찰기 프레더터(Unmanned Aerial Vehicle Predator)로 정찰능력을 증강하고, 한 발에 1만8천 달러나 하는 정밀유도식 통합직격탄으로 무장하고, 최신형 공격헬기 에이에이취(AH)-64디(D) 아파치 롱보우(Apache Longbow)를 배치한 것이다.

주한미국군의 무력증강사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주한미국군 제2사단의 동향이다.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완료된 때는 2005년 5월 중순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개편작업을 서둘러, 당초 일정인 2007년보다 2년이나 앞당겼다. (Stars & Stripes 2005년 3월 6일)

2005년 5월 14일 주한미국군 제2사단이 제1여단을 신속기동력을 갖춘 제1중무장 여단전투단(heavy 1st Brigade Combat Team)으로 개편하였다. 이 전투단은 에이피씨(APC) 또는 브래들리 장갑차로 무장한 제9보병 제2대대와 제7기갑 제4수색대대, 팰러딘 자주포로 무장한 제15보병 제1대대, 엠(M)1에이(A)1 에이브러햄 전차로 무장한 1개 전차대대, 무인정찰기로 무장한 통신부대와 헌병부대와 정보부대가 통합된 비티비(BTB)대대, 병참부대와 병기정비부대와 의무부대가 통합된 제302지원대대로 편제된 행동부대(Unit of Action[UA])이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17일)

이틀 뒤 5월 16일 주한미국군 제2사단은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미국군기지 캠프 스탠리에서 다연장로켓포(MLRS)부대 2개 대대를 주축으로 하는 포병여단을 창설하였다. 이 포병여단은 기존 다연장로켓포 2개 대대(제37포대 제6대대, 제38포대 제1대대)와 제702여단 대대, 통신대대로 편제되었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17일)

같은 날, 주한미국군 제2사단은 아파치 롱보우 공격헬기 24대로 무장한 제6기갑 제3대대와 제2항공 제1대대, 유에이취(UH)-60 블랙호크 공격헬기와 씨에이취(CH)-47 시누크 헬기 30대로 무장한 제2항공 제2대대, 제52항공 제2대대로 편제된 다목적항공여단(MFAB)을 창설하였다. 다목적항공여단은 주한미8군 직할 제17항공여단이 해체되고 이 부대가 보유한 유에이취(UH)-60 공격헬기와 씨에이취(CH)-47 시누크 헬기를 제2항공여단으로 통합함으로써 개편된 것이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17일) 이로써 주한미국군 제2사단은 보병, 항공, 포병, 장거리 신속기동력을 갖춘 미래형 사단(Unit of Employment[UEX])으로 완전히 개편되었다. 제2사단의 주축인 제1중무장 여단전투단, 다목적항공여단, 포병여단은 각각 약 2천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된 제2사단은 다른 항공부대, 기갑부대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신속하게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 제2사단은 평시에 제1중무장 여단전투단을 지휘하다가, 유사시 미국 본토 등에서 증원되는 다섯 개의 행동부대와 함께 작전에 투입된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17일)

위에서 논한 대로, 주한미국군 감군 또는 전면철군과 더불어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해체될 것이므로 앞으로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제국주의전쟁전략을 밀고 나가는 작전지휘는 태평양군사령부가 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태평양군사령부가 개편이라는 명목을 내걸고 전쟁준비와 무력증강을 어떻게 다그치고 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태평양군사령부는 아시아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영토인 괌을 새로운 군사전략거점으로 개조, 보강하고 있다.

2004년 6월 23일 미국 국방부 시설환경담당 부차관보 레이먼드 뒤부아(Raymond F. Dubois)는 한(조선)반도와 괌의 군사전략적 관련성을 언급하면서 괌의 미국군기지 재배치안이 2005년 5월까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24일) 2006년 8월 8일 미국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괌이 미국군의 주요한 전방작전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8일) 태평양공군사령관 폴 헤스터(Paul Hester)는 최신예 에프(F)-22 랩터 전투기 1개 비행대대 18대를 2008년 중반부터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할 방침을 밝혔다. (『연합뉴스』 2006년 8월 5일)

이러한 움직임은 2001년 5월 14일 미국 랜드연구소가 미국 공군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정책보고서 '미국과 아시아: 미국의 새로운 전략과 병력구조'에서 괌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주요군사전략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과 일치한다.

2003년 2월 28일 태평양공군사령부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비(B)-52에이취(H) 폭격기 12대, 비(B)-1비(B) 폭격기 12대를 배치하였다. (『신동아』 2003년 9월호) 2004년 9월부터 태평양공군사령부는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한 비(B)-2 스텔스 전폭기와 에프(F)-15 전투기를 북(조선)의 전략거점을 파괴하기 위해 발진하는 경계태세로 대기시키기 시작하였다. (NBC 텔레비전방송 2005년 5월 6일)

미국 국방부는 괌에 공군력을 집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해병대 병력도 괌으로 이동하였다. 2005년 10월 말 미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채택한 주일미국군 재배치에 관한 중간보고에서는 오키나와에 있는 미국군 해병대 제3원정군사령부를 괌으로 옮기고, 1만8천 명 병력 가운데 3천-5천 명을 줄이기로 하였다. 제3원정군사령부는 미국 해병대의 3개 사단사령부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에 배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2005년 10월 9일)

둘째, 태평양군사령부는 주한미공군기지들에 전폭기를 순환배치하고 있다.

2003년 5월 14일 태평양공군사령부는 군산 공군기지에 에프(F)-117 스텔스 전폭기 여섯 대를 추가로 배치하였다. (『신동아』 2003년 9월호)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2004년 10월 19일에 펴낸 보고서 '군사적 균형(Military Balance) 2004-05'에 따르면, 미국 공군은 뉴멕시코주 홀로먼 공군기지에 배치된 스텔스 전폭기를 군산 공군기지에 순환적으로 배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태평양공군사령부는 2003년 5월 30일 오산 공군기지에 에프(F)-15이(E) 전폭기 24대, 공군요원 800 명을 배치하였다. (『신동아』 2003년 9월호) 2005년 5월 하순 태평양공군사령부는 에프(F)-117 스텔스 전폭기 15대를 남(한국)에 배치하였다. (New York Times 2005년 5월 30일)

셋째, 태평양지상군사령부를 개편, 보강하고 육군 제1군단사령부를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미국언론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1천650 명 병력을 추가로 하와이에 배치하고,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지상군사령부를 현재의 행정사령부에서 신속기동력을 갖춘 작전사령부로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며, 그에 따라 현재 3성급 지휘관을 4성급 지휘관으로 격상시킬 가능성이 있다. (Associated Press 2006년 8월 11일) 태평양지상군사령부는 주한미국군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지상군을 지휘하면서 시설과 병참 등 행정사령부의 기능을 맡고 있다.

일본언론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육군 제1군단사령부를 일본 가나가와현 자마기지로 옮기더라도 주한미국군은 제1군단사령부 밑에 두지 않고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지상군사령부 직할부대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또한 제1군단사령부는 아시아 전역의 미지상군을 지휘하게 되며 4성급 지휘관을 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이라고 한다. (『産經新聞』 2004년 8월 22일)

4. 반제항쟁사에 다시 묻는다

한미군사동맹체제와 미일군사동맹체제가 개편보강작업을 마치는 2012년까지 여섯 해 동안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군사정세는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힘든 변화와 전환을 겪을 것이다. 그 변화와 전환에는 북침전쟁계획을 계속 보강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침략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제국주의침략의지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북(조선)의 사회주의수호의지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 나라의 상충적인 의지가 한층 더 날카로운 정치군사적 대결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글의 초점이 제국주의 미국의 북침전쟁계획을 분석하는 데 맞춰졌으므로, 이 글을 맺으면서 부쉬정부가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고 침략무력을 증강하는 목적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목적은 부쉬정부 고위관리들이 언론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처럼 북(조선)정권의 교체이며, 그들이 작성한 여러 종류의 북침전쟁계획들에 명시된 것처럼 북(조선)정권의 붕괴이다. 그들이 말하는 정권교체나 정권붕괴는 사회주의체제를 폭력으로 전복, 파괴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폭력으로 전복, 파괴하려는 미국군의 북침전쟁은 조선인민군의 대량보복에 의해서 파탄될 것이다. 미국군의 북침전쟁과 조선인민군의 대량보복에 대해서는 이전에 내가 발표한 글들에서 몇 차례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만일 미국군이 북침전쟁을 도발한다면, 그 북침전쟁이 조선인민군의 대량보복에 의해서 파탄된다 해도, 한(조선)민족이 재앙을 피할 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군은 북침전쟁을 도발할 때 반드시 한국군을 전쟁에 밀어 넣을 것이므로 한(조선)민족 그 누구도 바라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할 동족상잔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조선)민족이 동족상잔의 재앙을 입지 않으려면, 미국군의 북침전쟁계획을 무력화, 파탄시켜 재앙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한(조선)민족은 동족상잔의 재앙을 피하고 자기의 운명을 지킬 수 있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군의 북침전쟁계획을 파탄시켜 재앙의 근원을 제거하는 과업은 남(한국)에서 사회변혁을 실현하는 과업, 그리고 조국을 통일하는 과업과 서로 뗄 수 없는 연관관계에 있다. 명백하게도, 그 세 가지 과업의 연관관계를 맺어주는 최고의 통합개념은 자주화이다.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은, 전쟁의 재앙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남(한국)의 사회변혁을 실현하고 조국을 통일하는 세 가지 과업의 공통분모이다. 한(조선)민족의 21세기 운명은 그 공통분모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세 가지 과업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한(조선)민족의 근대사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근대사를 돌아보면, 청나라와 제정러시아를 연달아 격파한 제국주의 일본이 한(조선)반도를 포악한 무력으로 점령하고 한(조선)민족이 가진 모든 것을 강탈하였을 때, 그리하여 이천만 민중이 제 이름 석 자도 지키지 못하게 된 때가 있었다. 그처럼 가혹한 시련과 도전 속에서 이천만 민중이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남는 길은 분산, 분열된 힘을 결집하여 식민지강점정책에 맞서 싸우는 반일항쟁이었다.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한 모든 반제자주역량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반일항쟁을 밀고 나갔더라면, 식민지강점의 늪에 빠지지 않았으리라.

해답은 계속된다. 악의 축으로 불린 파시스트 일본, 독일, 이탈리아를 격파한 미국이 한(조선)반도 분할점령정책으로 북위 38도선을 분단선으로 고착시켰을 때, 그리하여 삼천만 민중의 삶이 남북으로 갈라져 통일조국의 운명을 지키지 못하게 된 때가 있었다. 그처럼 가혹한 시련과 도전 속에서 삼천만 민중이 통일임시정부를 세우고 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길은 분산, 분열된 힘을 결집하여 분할점령정책에 맞서 싸우는 반미항쟁이었다. 친미예속세력으로 변신한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반제자주역량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반미항쟁을 밀고 나갔더라면, 제국주의분할점령의 올가미를 벗겨낼 수 있었으리라.

한(조선)민족은 피의 항쟁을 거듭하였으나,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강점도 막지 못했고 제국주의 미국의 분할점령도 막지 못했다. 20세기에 닥쳐왔던 두 차례의 시련과 도전에서 한(조선)민족이 승리하지 못한 근본원인은, 제국주의세력을 압도할 만큼 위력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통일전선을 형성하였더라면, 이 민족은 분단과 전쟁을 모르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미군정시기에 친미예속세력으로 변신한 친일파민족반역자들은 소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 제국주의 미국에게 충성을 바치며 기생하는 친미예속세력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비롯한 남(한국)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권력과 재부를 틀어쥐고 있다. 이것은 친미예속세력을 제외한 반제자주역량을 하나의 전선에 결집시키는 것이 60년 전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투쟁임을 말해준다. 60년 동안 간고분투의 가시밭길을 끈질기게 헤쳐온 이 민족은 오늘도 힘들고 어려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가혹한 시련과 도전이 소용돌이친 분단시대 60년이 흘러 어느덧 세기가 바뀌었으나, 제국주의분할점령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민족은 아직도 제국주의북침전쟁의 핵폭풍에 휘말릴 위험에 마주서 있다.

100년이 넘도록 수백만 민중의 붉은 피로 써온 반제항쟁사에 다시 물어야 한다. 이 민족은 무슨 힘으로 현재 조성된 정치군사적 난관을 극복할 것인가?

제국주의북침전쟁의 핵폭풍에 휘말릴 위험 앞에서 반제자주역량의 분산과 분열이 파멸이자 죽음이라면, 단결과 통일은 전진과 승리로 다시 일어서는 삶 그 자체이다. 뿔뿔이 흩어지고 갈라진 반제자주역량이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워보았자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이 민족의 100년 반제항쟁사에 새겨진 피의 교훈이며 불변의 철칙이 아닌가.

반제자주역량의 단결과 통일은 정치적 언사를 넘어 정치적 실천으로 다가온다. 반제자주역량을 단결, 통일시키는 정치적 실천이란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통일전선 형성은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지켜 자주적으로 살아가려는 민족이 선택하는 유일한 전략이다. 오늘 군사정세는 그 유일한 전략을 선택하라고 이 민족에게 요구하고 있다. (2006년 8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