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의 총탄」의 김정일 정치

원리와 특징, 역사적 타당성, 성과


 

외교군사평론가 김명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제적 대명사가 되고 있는 선군정치는 21세기의 조선을 둘러싼 정세와 국제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군정치에 의해 전쟁의 위기가 화약창고라고 일컬어진 한반도에서 멀어지기 시작해, 남북화해와 통일 사업이 크게 진전되고, 남북한은 사실상 준통일 상태에 있다.

주한미군도 삭감 철수의 움직임을 시작하기 시작해, 한반도와 세계에 있어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무력화 되어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정치는 「은의 총탄」이다.

 

파월 국무 장관 아래에서 미 국무성의 정책실장을 맡고, 현재 미 명문대학의 하나인 윌리엄·메리 대학의 부학장인 밋치엘·라이스 박사는, 2006년9월9일(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 기념일),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제4차 글로벌 전략검토 회의(스위스·제네바의 콘티넨탈 호텔)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교섭에 있어서 가장 보도되지 않았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세계의 최대군사, 경제강국인 4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인구 불과 2300만, 가난한 소국에 대하여 무책이어서 핵보유도 미사일 실험도 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최대의 승자는 북한이며, 최대의 패자는 미국이다」

 

부시정권의 전고관의 이 분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정치에 의해 대미무혈승리를 거머쥐고 있는 것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이미 미사일 실험이나 핵 실험에 대한 유엔이나 미국에 의한 제재는 불과 몇개월도 경과하지 않고서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일본의 텔레비아사히의 프로그램 「새터데이 스크램블」의 사회자는 12월2일, 북한의 핵문제를 총괄하면서, 「결국 모두가 김정일의 의도대로가 되고 있는 것은 분하다」라고 한탄했다.

 

1부: 군 정치의 원리, 특징, 역사적 타당성

 

1. 군정치의 근본원리: 백두산단군정신, 다물정신, 주몽정신,

지금이야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정치의 근본원리는 백두산 단군정신, 다물정신, 고구려의 주몽정신정신이다.

[다물]은 고대 고구려어로 잃었던 조선의 옛땅을 되찾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것에 군사를 우선하고, 단군조선, 배달민족의 후예로서 영광과 긍지를 명기하고, 침략자의 병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병기를 개발하여 잃었던 조선의 옛땅을 회복하고, 침략자에게 대한 민족의 원한을 풀어 강성하는 조국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다물은 다음 세개의 구성 요소로부터 이루어진다.


 

➀ 수단: 총이 불가결하다

여기서의 총은 무기·병기, 무장 집단, 군대의 총칭이다.

총이 없으면 인민이 권력을 가질 수도 민족을 지킬 수도 없다.

군대가 민족, 국가, 정권의 방위를 위한 필수수단이다.

필요한 것은 단군민족주의의 화신인 최고사령관 김정일의 명령에 절대 복종 하는 고도로 조직훈련된 규율 있는 군대다.


 

➁ 동력: 단군민족, 주몽민족인 조선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 충성심

단군민족, 주몽민족, 조선민족으로서의 한없은 자존심, 영광, 무한한 사랑, 충성심을 느껴야만 조선인민군은 임무를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

이 애국심, 민족애가 없으면 민족과 국가, 정권을 지킬 수는 없다.

특히 조선민족을 대미승리, 조국통일과 번영에 인도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이 조선인민군의 본질적특색이며 존재 이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야말로 최고의 애국자, 민족주의자이며, 단군주의자, 주몽주의자다.


 

➂ 마음의 준비: 죽음을 각오하여 싸우는 자를 당할 자 없다

애국주의자, 민족주의자는 조선민족을 위하여 죽는 것을 영광, 명예로 생각하고 있다.

조선인민군의 전병사, 전장교가 폭탄, 포탄이며 그 어떤 하이테크 병기, 핵병기보다도 강력하다.

미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을 「에이리언」이라고 부르고, 인간이 아니다고 생각한다.

군대는 목숨을 걸어서 적병을 살상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는데도, 미군은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자신만은 살아 남고, 상대만을 못쓰게 만들자고 한다.

미군은 본질적으로 고용병이다.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의 특징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북한의 특유한 것으로 몇가지 특징이 있어, 지금까지의 군중시의 정책과는 크게 다르고, 다른 나라에서는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북한에서만 가능하다.


 

➀ 조선인민군은 정치적중립이 아니라 민족이며, 국가이며, 국민이며, 국민과의 일체화이다.

조선인민군은 단군민족, 주몽민족의 이익, 국가의 이익, 국민의 이익 때문에만 존재한다.

초대국 미국과 직접 군사대결하고 있는 상황 아래에서, 강력한 군사력인 조선인민군이 없으면 단군조선 고구려의 자존심 높은 후예로서 조선 민족, 국가, 국민도 존속할 수는 없다.

조선인민군이 군사행동으로 옮겨질 때는 최고사령관의 명령이 있을 때이며, 단군민족, 주몽민족의 이익이 손상된다고 판단할 때다.

➁ 병사 전원, 장교 전원이 죽음을 각오한 거대한 군사조직

조선인민군의전병사 전장교가 최고사령관 김정일의 명령으로 단군민족, 배달민족, 주몽민족을 위하여 무조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전원이 폭탄이며 포탄인 집단이다.

게다가, 조선인민군은 초대국 미국과 핵전쟁을 하여 미 본토에 대하여 핵선제 공격을 하고 불바다로 바꿀 수 있다.


 

➂ 적의 마음을 공격하는 심리전이기도 한다.

선군정치는 핵전쟁, 미 본토를 핵보복 공격으로 언제든지 불바다로 바꿀 수 있는 핵전쟁억지력을 구축한데 따라 초대국 미국의 마음을 직접 공격하고, 전율 시키는 심리전이다.

게다가 그 때, 북한의 위협이 미 수뇌진, 미 매스컴에 의해 확대된다.

이 심리전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이유가 두가지 있다.

첫째, 죽음을 두려워하는 미군병사, 장교의 본질적특징이다.

둘째, 조선전쟁으로 미군이 감상한 미군 역사상 처음된 참패이다.

이것들이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하여, 북한에 대하여 열등감, 서투름의식이 되고 있다.

조선전쟁으로 패퇴한 것이 마음의 상처가 되고, 미군을 상패(常敗)군대로 만들어 버렸다.

미군은 윁남 전쟁, 제1차 걸프전쟁, 유고 전쟁에서는 모두 승리 없이 정전협정에 도장을 찍었으며, 현재의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에서는 전차, 대포, 비행기, 함선도 없는 상대에게 연패하고 있다.

조선전쟁이후 미군은 조선인민군과 적어도 세번 직접 대치하였으나 곧 철수했다.

1993-94년의 제1차 핵대결시에도 미군의 동원 없이 제네바 핵합의로 끝내버렸다.

현재의 제2차 핵대결에서 부시는 「악의 추축」, 「핵의 선제공격」이라고 운운했지만 북한의 핵보유를 허용해버렸다.


 

➃ 선군정치가 노리는 것은 대미무혈승리

선군정치의 당면 목적은 대미무혈승리이지만, 최종목적은 김일성주석의 유언을 따라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것.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네바 핵합의의 다음해에 선군정치를 공식적 진척시킨 것은 이미 미국의 마음을 직접 공략하고 대미무혈승리를 시야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전쟁으로 미군이 참패한 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한에 무혈연전 연패하고 있는 미 역대정권.

초대국인 미국이 「악의 추축」, 「폭군」, 「핵 선제공격」이라고 말을 난발하는 것 자체는 위협의 작정이지만, 이미 군사력으로는 패배하고 있는 증거다.

김정일은 모처럼 만든 핵미사일이지만, (사용해서 대미승리를 하는 것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서 대미무혈승리를 거두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독에는 독을 써서 억제하는 것처럼 총에는 총으로, 핵에는 핵으로, 미사일에는 미사일로 무력화한다.

대미무혈승리의 목적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하고 조선의 내정에 간섭해서 미군의 무력화 배제하고, 조선 분단의 38도선을 없애고, 내왕혼 상태에 종지부를 찍어 같은 지붕 즉 연방국가의 지붕 밑에서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군정치의 특징을 말하면 죽음을 각오해서 총은 가지지만 그것을 발포할 일 없이 무혈승리하여 단군민족, 주몽민족인 조선 민족의 비원인 남북통일을 평화리에 이룩하는 것이다.

 

3 선군정치의 타당성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실시하는 것에 타당성이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조선을 둘러싼 정세가 요구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공표하고, 총을 전면에 밀어낸 배경에는 북한을 둘러싸는 정세가 급변하고, 북한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한 사실이 있다.

북한이 체험한 「고난의 행군」은 사실상 제2차 조선전쟁에 상당하는 것이며, 기사회생의 길은 조선인민군을 모든 정치, 경제, 사회활동의 주력으로 내세우고 정면에서 강행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각오한 정책」이었다.

물론, 미국에 아양떠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군민족, 배달민족, 고구려의 직계라는 자존심, 긍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급변한 정세 란것은 다음 4점을 들수 있다.


 

➀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1989년부터 1991년에 사회주의제국(諸国)이 붕괴되었다.

최후의 소련도 1991년8월 사실상붕괴, 12월25일에 완전히 소멸했다.

이것은 북한에 있어서 바터 무역 시장의 상실이었다.

이것은 동시에 유사(有事)에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 제국(諸国)에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고, 국제적으로 북한은 고립무원이 되었다.

 

➁ 대외무역의 중단과 미증유의 재해에 의한 경제와 국민 생활의 피폐

국내에서 입수할 수 없는 물품, 예를 들면 석유나 일부 공업제품들은 외화가 없어도 바터 무역의 사회주의진영에서는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터 무역시장이 없어지고, 북한 경제는 큰 상처를 입었다.

석유나 콕스와 같은 필수연료의 수입이 격변되여 북한의 경제 활동은 사실상 정지했다.

거기에 자연 재해가 습격했다.

1994년에는 냉해, 1995년과 1996년에는 대수해, 1997년에는 고조로 이어졌다.

비축해  있었던 식량도 대수해로 유실해버렸다.

그 결과, 1991년의 한사람당의 국민 소득은 2400불이었지만, 1993년에는 1000불, 1996년에는 500불이하에 주춤했다.

➂ 전설의 민족적 영웅이며 건국의 아버지 김일성주석의 서거, 미국에 의한 북조선의 붕괴를 기도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미증유의 자연 재해가 계속되고, 경제가 급속히 피폐되는 속에서 조국을 일본제국주의 로부터 해방하여 미국과의 전쟁상태가 계속되는 속에 북한을 50년간 영도해온 전설의 민족적 영웅이며 건국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1994년 서거했다.

같은 해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외교의 압박을 받아서 할 수 없이 북한과 제네바핵합의에 조인했으나, 김일성주석 사망 후 몇 년안으로 북한은 붕괴된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제네바 핵합의의 이행을 고의적으로 태만했다.

미국은 북한에 약속한 년간 50만톤의 중유공급과 경수로 2기의 건설을 모든 구실을 동원하여 지연했다.

한편, 북한의 붕괴를 다그치기 위하여 소위 「5027」작전계획을 포함하는 모든 군사적 선택사항을 추구하는 한편 「기획탈북작전」을 준비했다.


 

➃ 조국통일의 지연에 대한 애국자, 민족주의자로서의 강한 자책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국통일을 보지 못하고 김일성주석이 서거한 것에 대하여 조국해방 50년이 지나도 남북통일을 국민에게 마련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단군민족, 배달민족, 고구려의 영광과 긍지를 소중히 여기는 애국자, 민족주의로서 대해서 강한 자책감을 느꼈다.

김일성주석이 서거한 1년후의 1995년7월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문방문을 한 한국의 통일활동가 박용길여사 (문익환 목사의 부인)와 접견한 자리에서 「김정일은 조국통일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조국통일을 달성하지 않으면, 김정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조국통일의 최대의 장애물인 미국에 의한 핵위협에 기초한 군사적 간섭을 무력화 배제할 결의를 보여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조선의 역사적 전통에 일치한다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조선의 두가지의 역사적 전통에 일치한다.

하나는 군사를 우선하는 전통, 또 하나는 군민일치의 전통이다.


 

(1) 군사를 우선하는 고대로부터의 전통: 東夷「동이」활을 구사하는 사람들

고대 중국은 중화라는 말로부터 아다 싶이 자기들을 화하(華夏)(문명, 세계의 중심)라고 자칭하고, 중국 주변의 제민족을 야만인라고 경멸했다.

그 때의 중국이 쓰던 표현이 흥미 깊다.

그것들은 「오랑캐·반·오랑캐」이지만, 서방의 민족은 「오랑캐」로 「창을 가진 사람」, 남방은 「반」으로 벌거지, 북방은 「오랑캐」로, 짐승을 의미했다.

그러나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고조선이나 고구려는 「동이」, 즉 「거대한 활과 화살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창과는 달리 활과 화살은 장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병기다.

고구려의 창건자 주몽도 당시의 고구려말로 「활과 화살의 명인」을 의미했다.

이로부터 고대중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조선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알수 있다.

주몽은 군사중시책, 다물정책을 실천하고 중국의 철기무기보다 강한 새무기인 강철의 칼과 활과 화살을 개발했다.

고구려는 이 정책에 의해 잃었던 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고, 중원까지 영토를 확대하고, 세계 강국으로서 적어도 700년이상 그 후계국인 발해를 합치면 실로 1000년 가까이 또 고려를 합치면 1400년이상 존속한 셈이다.

고려의 최무선은 1380년, 화포탑재함대를 이끌어 일본 왜구해적선 500척을 깡그리 태워버렸다.

고려의 화포탑재함대100여척는 1389년,  왜구의 소굴 대마도를 화공 했다.

이조의 이순신 제독도 조선 독특한 거북선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조선 전통의 장거리화포에 의한 함포사격으로 사정이 짧은 화승총의 일본 수군을 격파, 침략자 일본군에 대한 승리를 결정적인 것으로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2)조선의 전통군민일치

조선에서는 고대로부터 전쟁이라고 하면 (국내의 호족, 귀족이 싸우는 내전은 드물어서) 외국침략군과 싸우는 것을 가리켰다.

따라서 인민들은 전쟁은 마지못해 동원된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외국들은 침략군을 맞아 치므로 전쟁은 국토방위전이며, 싸움터는 언제나 조선의 땅에서 터졌다.

왕족, 귀족이 도망쳐도 인민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방위는 정규군과 인민이 일체가 되어 싸웠으며, 또 (정규군과 달리) 각지에서는 인민이 무급의 의용군을 조직했다.

정규군이 패배하고, 수도가 함락해도,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인민이었다.

그러므로 인민은 간단히 항복하지 않고 최후까지 죽음을 걸어서 저항했다.

예를 들고 당은 신라와 연합되어서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함락시켜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랴오둥의 안시성을 비롯한 지방의 유력거점과 부대는 완강한 저항을 계속함으로써 당은 그 평정(平定)에 고생했다. 고구려 멸망후 곧 고구려의 후계국으로 발해를 세우고, 신라의 남조에 대항하는 북조로 되었다.

일본의 토요토미군이 조선에 침입하여 각지에서 조선의 정규군을 타파하고, 서울을 점령했다.

이왕조는 성을 개성, 평양, 신의주에 여기저기 도망쳤지만, 이순신에 의한 수군의 활약과 각지 인민들에 의한 의용병의 봉기가 일본 침략군을 격퇴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3) 김일성 주석의 20년 가까이에 걸치는 항일무장 투쟁과 3년간 조선 전쟁의 경험

김일성주석이 국가적지원과 근거지가 없더라도 일본 관동군 100만을 상대로 항일해방투쟁을 계속하고, 최후 승리를 이룩할 수 있었던 최대의 요인은 무장 투쟁을 우선하면서 그 과정에 인민을 각성, 교육하고 조직을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일본과 끝까지 싸워 조선민족의 영웅군대로, 희망의 별로 조국에 개선 한 것은 김일성주석이 인솔하는 항일유격대의 조선인민혁명군이 었다.

김일성주석은 창건후 얼마 안되는 조선인민군을 지휘하고, 세계최강의 미국과 그 동맹군과 맞서 3년간의 근대전을 벌려 전 인민을 동원한 대공포화로 미군의 제공권을 무력화시키고 지상전에서는 물량과 화력으로도 미군을 압도하여 미군에 처음되는 참패를 맛보게 했다.

미군에 승리한 요인들중의 하나에 전인민을 동원한 군수물자의 생산과 전선에로의 끊임없는 보급이었다.

 

2부 성과: 「은()의 총탄」인 성군정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은의 총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좋은 것만을 가져 다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국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이행하기 위해서 1995년1월1일, 공식적으로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난 후 오늘까지의 성과를 보면 일목요연하다.


 

성과 1 : 북한 독자적인 핵우산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

5000년에 걸치는 조선인민의 비원의 하나는, 조선의 땅을 전쟁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적지를 전쟁터로 바꾸는 적지직격 능력을 갖춘 강력한 국방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 비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현한 것이다.

한반도를 북한 독자적인 핵우산 아래로 두고,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했다.

즉 단군민족, 배달민족의 땅 조선에서 전쟁을 멀리했다.

지난날에는 중국의 중원의 일부까지 지배한 단군 조선, 고구려, 시베리아까지 영토가 있었던 발해. 그래도 고려, 이씨 조선은 한반도 전역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깊숙히 일본본토에 대한 적지공격 능력을 가진 일은 없었다.

고대로부터 조선의 영웅들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국토가 훨씬 작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달성한 것이다.

단군도, 주몽도, 을지문덕도, 이순신도, 김정일 선군정치의 쾌거를 칭찬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의 역사는 외래침략자와의 중첩되는 전쟁의 역사었다.

침략자를 격퇴할 수 있어도 적지를 공격할 수 없고, 되풀이됨에 따라 적의 공격에 피폐하고, 내부분열이 생기고 결국은 패배했다.

또 승리를 해도, 국토는 폐허로 되든, 그러지 않으면 빼앗겼다.

그러나 이것은 벌써 옛이야기로 되였다.

북한은 전쟁억지력을 극적으로 강화, 미-러-중에 뒤잇는 세계 제4위의 핵무기보유국이 되고, 5000년의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은 멀리 떨어진 초대국 미국을 포함한 침략국을 단숨에 섬멸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력을 건설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언제든지 마천루가 우뚝 솟은 뉴욕과 같은 미 본토나 도쿄를 화염지옥으로 바꿀 수 있게 되고, 미국은 조선에서의 전쟁에 주저하게 되었다.

금후 조선을 둘러싼 전쟁은 조선을 전쟁터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미 본토나 일본을 핵전쟁터로 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에 의한 핵선제 공격으로 단군조선, 주몽고구려의 후계국인 북한을 훌륭히 지킬 수 있었다.

이라크는 부시 미국의 무력침공을 받아 붕괴되였고, 이라크 전토가 전장이 됨으로써 이라크 인민의 희생은 수없이 많지만 북한은 핵보유를 자랑하고 미 본토직격 미사일과 핵탄두실험를 해도 미국은 핵보유국 북한과의 교전을 피하고 있다.

사회주의진영이 소멸하고 북한이 고립무원이라고 생각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선제공격과 체제붕괴를 기도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1년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취임, 실질적으로 선군정치를 전개, 조국을 미국에 의한 선제 핵 공격의 마수로부터 훌륭하게 수호, 미국에 의한 국제적 고립압살정책을 타파하고, 부시의 핵 선제공격 독트린을 무력화시켰다.

또한 세계의 핵보유국 4강으로서 등장하고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도 몇개월 지나지 않는 사이에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핵 보유국에도 불구하고 2000년에는 이탈리아, 캐나다, 독일 등 유럽 제국과도 국교를 정상화하고, 사실상 국교가 없는 것은 미국, 일본, 프랑스만.

그러나 프랑스에는 대표부가 있다.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 타임즈」 2006년11월 22일자는 「미국에 의한 제재가 지나치게 약하고, 매우 빨리 유명무실화했다」, 「미국은 핵 보유 북한과는 공존하지 않는다고 대담한 발언을 했지만, 그것도 말만」, 「북한의 위협은 지금 거의 잊어지고  있다」고 지적.

이전 국방차관보 하버드대학 케네데이행정대학원 원장인 조셉·나이는 2003년3월 12일자 로스앤젤레스·타임즈지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아니라 이라크에 집중한다는 결정은 북한의 대미억지력이 기능하고 있는 증거다. 같은 이유로 클린턴도 연변에 대한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

이 결과,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오랜 50여년이상 미국의 엄혹한 위협을 받아왔지만 북한의 국민은 대미승리에 대한 자신심에 넘치고 일치단결해 왔다.

 

성과 2 : 미국에 의한 고립화·압살책을 핵미사일외교로 정면돌파, 미국과의 외교교섭에 들어가고 유럽·북미 각국과는 국교수립

1993년5월29일 조선 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은 일본 열도를 뛰어넘어 호놀룰루의 미 태평양군 총사령부앞바다와 괌의 앤더슨 미 공군 기지앞바다로 미사일을 시사하고 클린턴 정권을 위협, 6월2일-11일부터의 북한과 미국교섭을 성공시켰다.

2006년9월13일의 CNN에 의하면 당시를 회상한 카터 이전 미국대통령은 클린턴정권이 북한과 교섭에 응한 최대 이유는「미국이 북한을 더욱 압박했을 경우 북한은 한국을 공격하고 하루밤사이에 100만명이상이 사망할 것이라고 게리·랏크 주한미군사령관이 진술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다음해 1994년10월21일 클린턴 정권은 북한에 대하여 핵무기에 의한 위협도 사용도 하지 않고 10년후인 2003년까지 경수로 2기를 건설 제공, 경제제재도 해제, 대사급의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을 약속하는 제네바 핵합의를 맺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시작하고 나서 3년째의 1998년8월31일, 북한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 미국은 1999년10월 페리 보고를 발표하고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2000년1월 이탈리아와 국교수립, 5월 오스트레일리아와 국교수립, 8월 일본과 국교정상화교섭 재개,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명록의 방미와 북미공동콤뮤니케, 마데렌·올브라이트 방조, 2001년1월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와 국교수립, 2월 캐나다와 스페인과 국교수립, 3월 독일, 룩셈부르크, 그리스, 브라질, 뉴질랜드와 국교수립, 4월 쿠에토와 국교수립, 5월 바레인과 EU와 국교수립, 6월 터키와 국교수립, 2003년12월 아일랜드와 국교수립.

남은 나라는 미국, 일본, 프랑스만이며, 프랑스에 상주 북한 대표부가 있다.

북한과 국교수립한 나라들은 미국이 북한에 의한 핵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용인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에서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을 진척시킨 것이 미국에 의한 고립·압살 정책을 타파하는 요인으로 되었다.


 

성과 3 : 경제적 역경부터 탈출하고, 매년 플러스 성장, 경제적 번영에로의 기초를 닦는다.

군사우선의 선군정치에 있어서 북한경제는 그 무게에 견디어낼 수 없고, 경제는 갈수록 점점 쇠퇴하고 파탄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이다.

외화수입도 모두 군사에 돌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국에 의한 금융제재가 있어 미사일 실험과 핵 실험과 관련된 유엔 제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아래서 높은 사기와 고도한 규율을 가진 (핵무장한) 조선인민군이 미군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북한국민이 전쟁재발의 불안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서 경제, 사회문화, 스포츠 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을뿐 만아니라, 조선인민군도 경제건설을 추진하는데서 큰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마저 인정하고 있듯이 선군정치가 공식으로 시작된 1995년의 다음해부터 소위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지만 경제는 서서히 회복을 시작하고 매년 플러스 성장을 계속해왔다.

거기에 기초하여 2002년7월부터는 획기적 사회주의시장경제개혁을 도입했다.

그것이 더욱 경제 활성화에 연결되고 핵 실험 후 2006년10월 IMF총회에서 미국의 시테이반쿠굴푸는 미 재무장관 헨리·폴섬에 제출한 북한 경제에 관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다음 경제 대국이 될 기초를 닦았다」고 전망을 제시하였다.

그 보고서는 「북한의 경제상황은 1980년대 후반 혹은 1990년대 전반의 중국의 경제상황에 필적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 중국은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제재가 계속 가해지고 있는 불리한 조건 (한데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군정치에 의해 경제상황이 크게 개선한 것이다.

이전 미 국무성 북한담당자 었던 케네스·키노네스박사는 일본의 월간지 「세계」의 2006년9월호에서 「북한은 부시가 취임했을 때보다도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 훨씬 강대해졌다」고 지적했다.

2006년10월 16일자 미국 주간지 「뉴스 위크」에서 이전 워싱턴·포스트 도쿄 특파원이며 현재 워싱턴의 국제정책센터 아시아부장인 세리그·해리슨은 「평양에서는 이전보다도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어 자동차도 자전거도 늘어나고 길 가는 사람들의 복장도 좋아지고, 레스토랑이나 상점도 많아지고 있다」라고 지적.

11월4일 AP통신에 의하면 핵 실험에 대한 제재가 있어도 유럽 기업이 북한에 들어가 석유의 탐사를 시작하고 있다. 유럽의 복수의 대기업이 북한에서 합병을 사업에 착수하고 있다.

이러한 국방, 경제면에서의 성과는 북한 선수가 국제 스포츠 분야에 놀라운 활약을 하게 된 것에도 나타나 있다.

선군정치시작의 다음해, 1996년 미국 아틀란타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북한 계순희는 세계의 유도여왕 다무라 료코를 타파했다.

남북한에서 처음으로 북한 여자팀이 세계 축구 챔피언이 되고, 남자팀이 U-19의 아시아 챔피언이 되었다.

여자 체조팀이 도하의 아시아대회에서 일본에 이겼다.

현재 북한 각지에서 스포츠 시설의 확충과 신설이 진척되고 농장, 공장, 기업 등에서 축구, 배구, 유도, 탁구 등 스포츠 클럽이 무수히 생겨 나고 대중화되고 있다.

미국의 3대네트워크의 하나 ABC텔레비전은 12월4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북한의 학교에 가보면, 길을 돌아다니면, 아이들의 훈련 교육이 얼마나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는지 안다. 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종교적 열의 비슷하게 연습에 시간을 내고 있다. 어린이들은 제복과 학습 기구를 마련 해 준 어버이 경애하는 김정일을 위해서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나라가 아무리 가난해도 학습 기구가 아무리 적어도 어린이들은 모든 방법으로 수련에 헌신적으로 나서고 있다. 매스 게임은 정말로 경이적이다」

 

성과 4 : 남북화해와 사실상의 준통일 상태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미국이 핵위협으로) 단군 조선의 땅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38도선에 55년만에 큰 구멍을 뚫고, 남북 민족화해에 큰 전진을 이루게 하고 사실상 준통일상태 (내왕혼)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말할수 있는 근거로 3가지 들 수 있다.

근거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미사일 외교에 의해, 페리 보고가 나오고, 유럽에 북한을 승인할 물결이 이고 남북정상회담이 실현.

1998년의 인공 위성발사로 북한의 대미직격 국방력을 과시하여 미국을 전율케시켜, 전쟁과 체제타도를 체념하는 페리 보고를 내게 하고, 유럽·북미 각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촉진시킨 것이다.

이 국제적 조류에 놓치지 않도록 2000년3월, 김대중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고 6월에 실현된 것이다.

한국국내의 반공보수의 반발을 피하는 방책으로서 「태양정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마치 한국은 경제적 우위에서 남북대화를 진척시키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때 김대중이 평양에 가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태어난 6.15공동선언은 그 후의 정치, 경제, 문화의 분야에서 남북의 민족화해와 협력을 촉진하게 하었다.

 

근거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정권과 교섭하고 김대중의 평양 방문에 지지를 표명시켰다

클린턴정권은 김대중의 평양방문에 회의적이어서 남북정상회담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2000년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명록이 방미하고, 클린턴 정권에 남북정상회담과 공동 선언에 대한 지지를 표명시켰다.

북미공동콤뮤니케에 의한 미국정부에 의한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지지 표명이 없었더라면, 김대중정권은 국내적으로 큰 궁지에 빠졌을 것이다.


 

근거 3: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조선인민군이 미군과 교섭 한국측에 실질적 당사자능력을 갖게 했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 남북철도와 도로 연결이 합의되었지만 38도 선의 통과 공사를 할 때 조선인민군대표가 미군측대표와 판문점에서 담판하고, 한국군에 잠정관리권을 넘겨주게 했다.

비무장지대남측 2킬로는 조선정전 협정시에 유엔군으로서 조인한 미군의 관리 하에 있고, 한국측이 철도나 도로 등을 공사 할 때 에도 모두 미군의 사전허가가 필요했다.

한국군사령부가 미군 사령부와 교섭했지만 미군은 거부했다.

이대로라면 한국측에 당사자능력이 없고 남북공동선언은 이행 불가능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거기에 조선인민군이 개입하고, 미군과 교섭해서 한국측에 실질적인 당사자능력을 갖게 한 것이 2000년11월17일의 판문점 북·미 교섭합의었다.

당시 한국군 장교의 사이에서는 김정일과 조선인민군에 감사하는 목소리가 오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