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나라당은 그 무슨「정통성」과 「정체성」을 운운하며 「대선필승」에 몸부림치고 있다.

한나라당이 부르짖고 있는 「정통성」과 「정체성」이란 이승만「자유당정권」의 「반공」그루터기에서 독버섯 으로 돋아나 박정희의 「공화당」과 전두환의 「민정당」, 노태우의 「민자당」과 김영삼의 「신한국당」의 「용공」조작책동을 이어온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통일적 속성이며 체질이다.

한나라당은 원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반공」을 생존수단으로 삼고 「용공」조작으로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비호하고 남북대결을 고취해온 반역의 패당들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은 자주,민주, 통일을 위한 애국적민중의 투쟁을 「용공」으로 매도 탄압하던 역대 한나라당의 만고죄악을 만천하에 폭로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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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의 「반공」으로 말하면 제2차세계대전후 제국주의 「반공」두목으로 등장한 미국이 남조선을 저들의 세계지배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전초기지, 보루로 만들고 이북을 침략하기 위해 사대매국역적들에게 쥐여준 폭압의 도구, 통치의 수단이었다.

따라서 친미사대매국노들이 일으킨 「반공」광증과 「용공」조작책동은 어느 것이나 다 미국의 식민지지배와 반북침략책동을 뒷받침하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서 그 악랄성과 교활성, 횡포성에서 전례없는 광기를 띠었다.

이 땅에서 미국의 첫 「반공」투사집단은 이승만의 「자유당」이었다.

1904년에 미국군함을 타고 미국에 건너가 미국산 우유와 버터를 핥으며 친미노복으로 길러진 이승만은 해방후 미군용기로 김포공항에 내린 첫날부터 「반공」에 혈안이 되었다. 미국의 지령밑에 한낱 꼭두각시 「반공」단체에 불과한 단독「정부」를 조작하였고 1948년 12월1일에는 「반공」과 「용공」조작을 관제화하기 위한 보안법을 만들어 냈다. 결과 이 땅에서는 친미를 위한 「반공」,「용공」조작의 둥지와 「법적 토대」가 마련되게 되었다.

처음부터 민중의 버림을 받고 그 어떤 정치적지반도 없었던 「자유당」반역집단은 「반공」으로 대미「충성」을 보이고 「용공」조작에 의한 민중탄압으로 「정권」을 유지해왔다.

「자유당」패거리들은 미군정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적인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일떠선 각계민중의 투쟁을 「좌익세력」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것으로 「용공」조작의 피비린 서막을 열었다.

민중의 자의에 의해 세워진 「인민위원회」들을 강제 해산하고 1946년에는 9월총파업, 10월인민항쟁을, 1948년 4월에는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제주도4.3봉기를, 10월에는 여수,순천일대의 애국적 군인폭동을 「좌익세력」의 난동으로 몰아 유혈적으로 탄압하였다.

미군의 직접적 지휘밑에 이승만일당이 「빨갱이소탕전」의 명목으로 감행한 야수적 살육만행에 의해 제주도에서만도 거의 모든 마을들이 초토화되어 피바다, 불바다에 잠겼으며 제주도민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7만여명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한편 「자유당」패거리들은 정치적 적수들을 제거하기 위해 1947년7월에는 인민당당수 여운형을, 1949년 6월에는 미군정과 「단정」을 반대하고 통일정부수립을 지향하는 백범 김구를 암살하였으며 연공통일을 주장하는 애국적인사들을 무리로 제거함으로써 열세에 놓인 위기를 수습하고 북으로 쏠리는 민심에 칼을 박았다.

「자유당」은 미국을 등에 업고 「단선」,「단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둘로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일방이 타방을 반드시<점령>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공산주의자들과는 같이 살수 없다』고하면서 이북의 정치제도를 따르거나 찬양하는 일체 활동을「용공」으로 몰아 검거 학살처형했다. 6.25전쟁개시를 계기로 하여서는 「보도연맹」이라는 「용공」사건을 조작하고 「국군」까지 내몰아 좌익성향단체에 가입한 전적이 있다는 터무니없는 죄명으로 무려 3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으며 전쟁전기간 미군과 함께 수백만의 동족을 살해하는 대범죄를 저질렀다.

휴전후에도 이승만일당은 입만 벌이면 「북진통일」을 부르짖으며 평화통일세력을 탄압하는데 피눈이 되었으며 1958년 7월에는 「대통령」후보자로 나섰던 조봉암을 『빨갱이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하면서 「간첩」혐의자로 몰아 처형하였다.

이렇듯 이승만의 「자유당」통치는 진보적 통일인사 들에 대한 「용공」조작과 학살로 얼룩진 피비린 자취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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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군사파쇼독재집단인 「공화당」 역시 민중탄압으로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비호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한 「친미반공당」이었다.

일찍이 여수, 순천군인폭동진압에서 「공로」를 세워 「신생<대한민국>을 살려놓은 숨은 <공로자>」라는 치욕의 평가를 받은 「반공」독사를 우두머리로 하는 군부 집단은 4.19를 지지하는 민중들을 「자유체제를 무너뜨리려는 공산주의세력」으로 몰아붙이며 미국을 등에 업고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군사정변 이틀후인 1961년 5월 18일 「용공」조작의 서막으로 「민족일보사사건」을 날조하여 조용수사장을 비롯한 진보적인사들을 북과 연계시켜 처형하였으며 1주일도 못되는 사이에 「사회당 사건」, 「혁신당사건」, 「사회대중당사건」, 「민주청년동맹사건」 날조 등으로 23개의 정당과 238개의 사회단체를 강제 해산시키고 불과 몇 달사이에 28만3천명의 각계민중을 체포,투옥,처형하였다.

집권 후 미국에 찾아가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의 편에 서 있다』고 대미충성을 맹약한 독재집단은 자기들의 최고목표는 「용공척결」이라고 기염을 토하면서 「헌법」에 「반공」을 「국시」로 쪼아 박고 보안법을 더욱 개악하였으며 1961년 「중앙정보부」를 조작하여 완벽한「반공」체제를 구축하였다.

「공화당」의 「반공」무리들은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용공」으로 몰아 처형할 목적밑에 「우회간첩단사건」을 날조하였으며 1967년에는 「동백림사건」을 조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해외에서 납치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하기에 이전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밴프리트도 「공화당」집권자를 가리켜 「100% <반공>분자이며 100% 친미적 인물」이라고 하였다.

「자유당」이 「단선」,「단정」으로 민족분단을 조장한 원조였다면 「공화당」은 「두개조선」을 정책화하여 민족분열을 영구화에로 이끌어 간 원흉집단이며 이승만의 「북진통일」을 「승공통일」로 탈바꿈하여 북남대결을 격화시킨 악당들이었다.

「공화당」일당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남북교류를 주장했던 「사회당」당수 최근우,「사회대중당」정치 위원 이훈구를 비롯한 수많은 통일애국인사들을 재판도 없이 학살하였으며 이북의 구호미를 받자고 한 언론인들, 서신 및 인사교류, 다방면적인 합작을 주장한 단체들과 인사들을 「간첩단」,「공작단」,「용공당」으로 몰아 처형하였다.

『북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는 한 통일은 안된다』고 떠벌여 온 「공화당」패거리들은 조국통일의 3대원칙이 천명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후에도 『대화는 대화이고 <반공>이라는 우리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 없으며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반공>에서 능동적인 <반공>으로 바꾸어 나갈 뿐』이라고 떠벌이면서 1972년 10월 영구분단과 「반공」을 위한 「유신체제」를 조작하고 「정권」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간첩단사건」을 연이어 날조해냈다. 1974년 한해동안에만도「공산혁명을 위한 지하조직」으로 규정하고 「국가반란」을 기도했다는 죄를 꾸며 1천여명을 체포하여 250여명을 군사재판에 넘긴 「민청학련사건」을 비롯하여 「서해사건」, 「울릉도사건」,「인민혁명당재건사건」,「추자도사건」,「동해사건」,「8.15저격사건」,「땅굴사건」등 10여건의 「용공」조작사건들을 날조하였다.

집권말기에는 「용공」조작을 유신독재「정권」연장의 최후수단으로 삼고 1979년9월 「통일혁명당재건사건」을, 10월에는 「남민전사건」을 조작하여 애국민중과 청년학생들을 대중적으로 검거,투옥,처형하였다.

실로 5.16과 함께 시작된 「공화당」일당 집권 18년은 「반공」으로 통일운동을 가로막고 「용공간첩 사건」조작으로 수많은 민중을 학살한 죄악으로 점철된 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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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광주살인마」로 불리우는 전두환의 「민정당정권」역시 「용공」조작의 피를 마시며 돋아나 「용공」탄압으로 집권을 부지한 「반공광신당」이었다.

전두환살인마는 자주와 민주, 통일을 요구하는 광주 민중들을 「이북의 배후조종」을 받은 「용공」분자로 몰아붙이고 미국의 배후조종밑에 계엄군을 내몰아 광주 시를 피의 목욕탕으로 만들었다. 연이어 「비상계엄령」으로 「정당」,국회를 봉쇄하고 정치적반대파들을 「용공분자」로 몰아 지하감옥에 끌어갔으며 지어는 당시「대통령」까지도 「용공」용의자로 몰아 권좌에서 쫓아냈다.

12.12숙군쿠데타와 5.17폭거 등 살인광란극으로 「대통령」감투를 뒤집어 쓴 전두환파쇼독재자는 불안 정한 「정권」유지의 최대변수를 선임자들처럼 「용공」조작에서 찾으면서 1980년 12월 31일 「비상계엄」하에서 보안법에 「반공법」의 독소조항들을 첨가, 체계화하여 반북대결과 파쇼화를 위한 만능의 악법으로 개악하였다.

선임「반공정권」의 반통일체질을 그대로 승계한 「민정당」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북과 대결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제5공화국의 기본정치목표』이며 「국민들의 머리를 <반공>으로 개조하는 것이 안보문제의 초점」이라고 반북대결의 본색을 드러내놓으면서 「반공궐기대회」, 「반공강연회」, 「반공단합대회」 등 「반공사상주입」광대극을 대대적으로 벌여놓았다.

심지어 「히틀러소년단」의 재판인「<한국>청소년 연맹」이라는 「반공」소년단체를 만들어 어린학생들속에까지 「승공」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기만적인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이라는 것을 내놓은 전두환은 미국의 조종하에 「교차승인」에 앞서 「교차접촉」을 실현하고 「유엔동시가입」에 앞서 「유엔단독가입」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단계론」을 내놓고 「정부」에 앞서가는 그 어떤 통일론의도 「용공」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함으로써 7.4남북공동성명을 전면부정해버렸다.

『북과는 대결만이 있을 뿐이고 평화통일은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을 대공교두보로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어온 전두환일당은 청년학생들의 1980년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과 1982년「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1985년「서울미문화원」점거사건 때에는 직접 나서서 「용공」과 「북의 선동」을 떠들며 「수사전담반」까지 만들어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은 물론 종교인 까지 체포하여 쇠고랑을 채우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1986년10월에는 『<국시>는 <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신민당」 국회의원 유성환을 「용공분자」로 몰아 철창속에 가두었고 건국대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청년학생들을 「연공」에 걸어 난폭하게 탄압하였다. 「민족해방전선사건」,「광민사사건」, 「부림사건」,「제2광주사태획책사건」,「통일혁명당 고려대사건」,「해외교포유학생사건」 등 「민정당」의 파쇼독재집단이 일으킨 「용공」소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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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특수전학교에서 친미교육을 받고 전두환과 함께 미국의 「반공」전쟁터인 윁남전쟁마당에 뛰어들어 친미주구로 맹활약한 쌍둥이 「반공맹수」인 「민자당」의 노태우 역시 「용공조작」에는 뒤떨어지지 않았다.

1987년 6월 2일 「민정당」의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던 노태우는 이른바 「6.29선언」이 「6.29기만선언」으로 낙인되어 인기가 대폭 하락되고 대권의 꿈이 깨질 위험수위에 이르게 되자 그 출로를 「용공」조작에서 찾고 1987년 11월「남파부부간첩사건」에 이어 충격적인 「칼기폭파사건」을 조작했다.

「대통령」감투를 쓴 이후에는 「정권」안보를 위해 1991년 5월 154회 국회에서 다수 국회의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회의장도 아닌 중앙홀에서 무선마이크로 보안법개악을 단 35초만에 통과시켜 「용공」 조작의 법율적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1989년4월 「안기부」, 「보안사」,「경찰」을 포괄하는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용공세력」척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990년 10월부터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노태우일당은 청년학생들과 각계민중을 「체제전복세력」으로 몰아붙여 탄압하는데 무려 15만의 군경과 460만의 예비군을 출동시켰다.

『죽음의 공포만 주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통치철학으로 1988년 4월 「반제반파쇼한국민중전선건설회발족 선언문사건」,「사로맹사건」, 「남매간첩사건」등 「용공사건」을 조작하여 수많은 민중을 감옥으로 끌어가고 교수대에 매달은 것이 바로 노태우의 「민자당정권」이었다. 결국 노태우집권시기에 전두환집권때 보다 양심수는 무려 3배나 늘어났다.

노태우일당은 경향각지에서 통일운동이 고조될 때 에는 「대화창구일원화」의 간판을 내걸어 차단했고 「이북바로알기」운동이 확산될 때는 「체제수호」의 구호를 흔들며 탄압선풍을 일으켰다. 1989년5월에는 조선대학교 교지 「민주조선」창간호에 이북을 소개한 논문을 발표한 조선대학교 이철규학생을 「용공분자」로 몰아 3백만원의 현상금까지 걸고 지명수배하던 끝에 그를 무참히 학살하여 수원지에 처넣었다.

노태우는 나라의 통일을 주장하는 「전대협」을 「용공이적단체」로 몰아붙이면서 1988년6.10남북학생회담과 8.15남북학생회담을 무산시키고 1991년에는 8.15범민족대회와 북남청년학생통일대축전을 막기 위해 제2단계「범죄와의 전쟁」놀음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이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해 사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임수경,문규현신부를 보안법상의 「잠입탈출죄」,「찬양고무죄」,「회합통신죄」에 걸어 철창속으로 끌어갔다.

그리고 1988년「적십자회담」,「국회회담」,「경제회담」,「고향방문단 교류」등 북남대화가 활성화 되자 이른바 「5개간첩단사건」이라는 것을 날조하여 이 모든 회담들을 무산시켰으며 「한국자유연맹」,「호국청년연합회」,「승공연합」,「재향군인회」등 「반공」반통일단체들을 조직정비하여 반북대결을 격화시키는 망동을 일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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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일당은 정신병적인 집권욕을 가지고 국민을 배신하는 3당야합으로 「반공」파쇼독재자들의 품에 기어들어가 정권을 잡고 「용공」조작을 업으로 일삼은 반역의 무리들이다.

「민자당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은 대선에서 승산이 없게 되자 그 출로를 휴전선일대에서의 충격적인 「반북」사건에서 찾으려 하면서 1992년 「국군」 특수부대원들을 인민군복장으로 위장시켜 휴전선일대에서의 「국군」에 대한 기습사건을 시도하였다. 「대통령선거」를 한달정도 남기고서는 출판물들이 『대선을 앞두고 위기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용공>조작이다』라고 평한 그대로의 「남한조선노동당사건」을 조작발표하여 권좌를 차지했다.

김영삼의 「신한국당」은 민주의 변절자들과 우익보수세력들이 한 곳에 모인 역대 한나라당족속들의 「반공」사상의 총 아성이었고 반북대결세력의 총 집결처였다.

집권하자마자 『북을 단순히 동족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하면서 미국을 등에 업고 북과의 전면대결전에 나선 김영삼 역도는 1993년 5월 「북진통일」과 「승공통일」의 변종인 「제도통일론」을 내놓았다. 7월에는 「통일정책의 3대기조」와 「3단계통일방안」이라는데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가 보장되는 통일』을 제창했으며 『자유가 없는 통일은 더욱 불안전하며 번영이 없는 통일에는 문제가 더 많다』는 「통일무용론」을 흔들면서 「승공통일」,「흡수통일」의 야심을 드러내 놓았다.

또한 그를 합리화하기 위해 「반공」교육내용을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공산주의몰락과 북의 장래」등 보다 악랄하게 만들고 극우보수단체들을 동원하여「호국정신권양대회」요,「규탄궐기대회」요 하는 「반공대회」를 연이어 벌여놓았으며 일시 중단했던 초,고등학교들에서의 「반공웅변대회」까지 부활시켰다.

이른바 「좌경폭력세력」에 대한 탄압을 「정부의 당면과제」로 선포하고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애국적민중들을 탄압하기 위한 「신공안정국」을 조성한 「신한국당」일당은 「북에 맹종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조처해야 한다」고 떠들며 「주사파파동」을 일으켰다.

선거전에는 보안법철폐를 외쳐대던 김영삼은 선거때에는 보안법을 「자유민주주의체제수호」의 불가분리의 요소로 미화분식했고 「대통령」감투를 쓴 다음에는 「<보안법>폐지는 주<한>미군철수보다 더 위험한 것」이라고 떠들면서 「안기부」를 비롯한 폭압기구를 총 발동하여 민주세력을 「체제전복세력」,「용공이적 세력」으로 몰아 탄압선풍을 일으킴으로써 집권한지 10개월동안에만도 무려 470여명의 애국민중을 「용공분자」로 몰아 체포구속했다. 1993년 4월 25일 「전대협」이 「한총련」으로 발족하자 「한총련」을「북의 조종을 받는 <이적단체>, <좌경사상오염의 근원지>」로 몰아 강제해산시키려고 하였으며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도 「용공」과 「체제전복」으로 몰아 탄압했다.

「신한국당」패거리들은 선임집권자들보다 한수 더 떠서 「용공」조작사건마다에 어마어마한 「간첩단」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내놓군 하였다. 1993년에는 「김삼석.김은주 남매간첩사건」을, 1994년에는 「이화춘간첩사건」,「북한장학금교수간첩사건」을, 1995년에는 「박충렬 간첩사건」,「박창희교수간첩사건」을,1996년에는 「김동식간첩사건」,「신규영사건」등을 연속 날조하여 「정권」안보의 제물로 삼았다.

김영삼역도는 1994년 6월 이른바 「구국전위사건」을 날조하고 자주,민주,통일을 주장한 안재구를 체포하여 「북조선의 지시」에 의한 반국가활동을 한 「간첩」 으로 몰아 사형을 구형하였으며 1996년 8월에는 연세대 8.15통일축제준비장을 「이적성」에 걸어 초토화하고 1996년 말에는 「무장공비침투사건」을 날조하여 「비상경계령」까지 내리는 「반공」소동을 일으켰다.

더우기 용납할수 없는 것은 이북이 역사에 유례없는 대국상을 당했을 때 전「국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동족에게 총구를 들이대었는가 하면 조의표시를 위한 통일인사들의 북행길을 총칼로 가로막고 평양을 다녀온 박용길장로를 옥중으로 끌어가는 만행를 감행하였다.

김영삼「신한국당」패거리들이야말로 북남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고 「신공안한파」로 남쪽땅을 「용공」조작의 난무장으로 전락시켜 애국민중의 피로 물들인 천추에 용납못할 반민족적, 반민중적, 반통일적 반역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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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친미 「반공당」들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 바로 오늘의 한나라당이다.

미국이 입을 벌이는 대로 「반공」나발을 불어댐으로써 「한국의 이부쉬」로 불리우던 한나라당의 첫 총재 이회창이나 「반공」우익대변지인 「조선일보」편집국장과 5,6공시기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히틀러와 같은 「반공」광기를 부려 「최틀러」로 불리우던 두번째 대표였던 최병렬을 비롯하여 모두가 친미「반공」을 업으로 하는 「한국」판매카시즘들이다.

한나라당집단은 「반미는 곧 용공」이라는 등식으로 이남에서『반미감정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반미구호를 외치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익에 손해를 불러오는 망국이다』, 반미시위는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키는 망동이다』고 하면서 반미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용공」조작에 혈안이 되어왔다.

오늘 대선을 노린 한나라당패거리들의 반북대결 소동과 「용공」조작책동은 극한점에 이르고 있다.

다리부러진 짐승 한곬에 모인다고 집권의 자리에서 쫒겨나 한나라당에 둥지를 튼 우익보수세력들은 이 땅을 다시금 파쇼화에로 되돌려 세우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색깔론」이라는 「마녀잡이」구호를 내걸고 「용공」조작의 칼날을 민주세력뿐 아니라 현당국에까지 마구 휘둘러대고 있다.

한나라당은 공안당국을 부추겨 인터네트에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학술적 주장을 실은 동국대학교 강정구교수를 「한미동맹관계」와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라고 하면서 검거소동과 재판놀음을 벌이게 하였으며 합법단체인 「한총련」과 「범민련」,「전교조」를 「용공」단체로, 민주세력들을 「친북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사법처리」할 것을 강박하고 있다. 보안법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한국>을 <간첩>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하면서 악법폐기를 발의한 국회의원들을 「북의 노동당원」으로, 「빨갱이빨찌산」으로,「정부」를 「노동당의 별동대」로, 「청와대」를 「적와대」로 매도해 나섰다. 2005년 12월 「사립학교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반미친북교육을 하자는 것』이라고 소동을 피우며 이것은 「친북좌경세력」을 진출시켜 사립학교들을 「혁명수행집단」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주의빨갱이 법안」이라고 떠들어댔다.

한나라당의 이런 「용공」조작광기를 두고 언론들은 과거 『독재의 모든 정치적, 물리적 유산을 이은 무쏠리니의 검은 셔츠부대』라고 규탄했고 정치권내에서까지 『군부독재집단의 후예가 사회전체를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유신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 21세기 이 사회의 한복판을 활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조소와 개탄의 목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다.

민족적 반목과 대결을 위한 한나라당패거리들의 필사적이고 악랄한 「반북」소동은 역대 선임 「반공」 광들의 범죄적「용공」조작책동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이들은 6.15공동선언을 「공산화통일선언」으로, 2000년 6월 15일을 「국치일」로 매도하며 1항은 「미군철수로 이어지고」 2항은 남의 「민주주의체제를 양보한 것」이므로 『목숨을 걸고 저항할 것』이라고 고아대면서 6.15선언을 파기하기 위해 「청와대」의 사전 「밀약설」,「협의설」을 날조하고 「대통령탄핵」을 들고 나왔는가 하면 「통일부」장관을 TV드라마에 나오는「간첩」에 비유하며 그의 사퇴를 강박해 나섰다. 「6.15공동선언」실천에 나선 범민련남측본부 전의장과 전사무처장을 보안법위반에 걸어 「간첩혐의」누명을 들씌웠고 현대아산의 정몽헌회장에게는 「대북송금의혹」과 「이적행위」감투를 씌워 그를 죽음에로 몰아갔다. 6.15공동선언탄생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갖가지 혐의를 씌워 옥고를 치르게 하였다.

한편 한나라당의 역적무리들은「주적개념」삭제문제가 일정에 오르게 되자 큰 변이나 난 것처럼 『안보의 지축이 흔들리고 있다』느니, 「주적개념은 분명히 해야 하며 일보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느니, 『여전히 북은 국가로서가 아니라 반국가단체로,북정권은 협의할 대상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되어야 한다』느니 하며 반북대결을 부르짖었다. 『금강산관광은 이북에 퍼주기로 북의 핵고폭시험자금으로 이용될 수 있다』,동서해안의 철도,도로연결은 『북의 남침통로를 개설해주는 것으로 될 수 있다』,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개막행사에서 북과 남이 단일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은 『스포츠가 정치선전마당으로 이용될 수 있다』, 『6.15공동선언발표 6돌행사가 진행된 광주는 「북의 해방구」였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용공」망언을 일삼았다. 최근에는 이북의 선군정치와 자위적 억제력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북의 「동조세력」,「간첩」으로 몰아붙이며 「민권연구소」상임연구원에게 형벌을 가하는 등 새로운 「간첩단」사건들을 날조하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패거리들은 미군철수론이 나돌자 새로운 「남침위협」을 유포시켜 미군이 없으면 「서울 방어선이 무너진다」고 아우성치며 국회에서 「미군 철수반대결의안」을 조작하는 추태를 벌이었고 『통일 정책보다 안보정책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떠들며 이라크전쟁에서 써 먹은 미국제 첨단군사장비들을 끌어들일 것을 강박하고 있다.

이북의 자위적 전쟁억제력이 강화되는데 따라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의 북침전쟁책동에 편승하여 「원산상륙」과 「전쟁불사론」을 외치며 민심을 소란시키고 반북대결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다.

실로 파헤쳐볼수록 한나라당이야말로 친미로 서식하고 「용공」조작으로 연명하는 사대매국의 무리들이며 민중의 지향을 억누르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역의 집단이다.

민족의 피로 일신의 영달과 집권을 추구해온 한나라당의 역대「용공」조작의 죄악은 그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 버릴  수 없다.

대세의 흐름에서 밀려나 「반공」의 하수구속에 처박힌 우익보수패잔병집단인 한나라당이 제아무리 몸부림치며 「용공」조작광기를 부려도 그것은 물에 빠진자가 짚오라기 잡는식의 가소로운 몸부림에 불과 하다.

히틀러와 무쏠리니, 도죠의 비참한 말로가 보여주듯이「반공」광신자들의 운명이란 파멸뿐이다.

이런 악의 집단이 정권을 다시 잡게 되면 이 땅은 「유신」시대보다 더한 파쇼와 폭압의 광풍속에 휘말리게 될 것이며 우리 민중은 지난 60여년 당한 것 보다 더 비참한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삼천리강토는 미국의 핵전쟁마당이 되고 민족의 희망이고 미래인 6.15공동선언도 물거품되고 말 것이다.

각계 애국민중은 6.15시대에 역행하여 낡아빠진 「용공」조작으로 집권의 망상을 이루어보려는 한나라당역적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이 땅 에서 영영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

 

주체96(2007)년 2월 6일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