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를 잘 알자 (3)

2007년 2월  대한민국선군정치연구위원회

 

  선군은 북한에서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강성대국건설의 붕우리를 하나 하나씩 점령하면서 그 정당성과 활력을 검증받은 사상이자 정치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북한의 선군정치는 북한에서의 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운동 그리고 세계 자주화운동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선군정치가 과연 어떤 활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한다. 어떤 정치방식이든 그 정당성과 활력은 구체적인 실천에서 나타나며 그 폭과 깊이도 구체적인 성과에서 확인되고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선군이 가지고 있는 활력과 폭, 깊이도 구체적인 실천성과를 가지고 논할 수 있을 것이다.

 1. 선군은 북한이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강성대국 건설로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시대적 배경에서도 언급했듯이 북한의 90년대 고난의 행군은 북한의 혁명과 건설의 운명을 건 격전이었다. 정치적 영도와 일심단결의 구심이었던 김일성 주석의 서거, 마치도 세계에서 고립된 섬처럼 조여오던 제국주의의 전쟁책동과 봉쇄, 그동안 형제국으로 친선과 우호 관계에 있던 수많은 나라들과의 정상적인 교역이 마비됨으로써 경제와 산업 전반의 순환고리가 끊어져 발생한 심각한 경제난, 수년간 지속된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대대적인 농경지의 유실.
 이런 정황을 보고 제국주의자들은 북한이 3년 이내에 망하고 말 것이라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으며(결국 희망사항에 불과한 짓이었다) 세계의 많은 진보적 인사들조차 북한의 장래에 대해 우려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위기 상황을 혁명군대를 앞세워 타개하겠다고 결심하고 다박솔 초소를 시작으로 선군대장정의 길에 오르게 된다. 그 결과 북한은 선군의 나라가 되었다. 

 북한의 선군은 무엇보다 제국주의의 전쟁책동을 막아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의 대북압박과 고립정책의 끝은 결국 전쟁이다. 미국은 구소련과 동유럽처럼 평화적 이행전략을 추진하기에 너무나도 견고한 사상의 강국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전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라크에 대한 봉쇄 정책의 끝이 2002년 이라크 전쟁이었듯이 북한에 대해서도 힘빼기 전략으로 최대한 힘을 빼놓고 전쟁으로 결판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93, 94년에도 미국은 대북전쟁의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돌입했다. 특히 94년에는 한반도에 10만의 미군병력을 증파하고 대북선전포고를 하려는 상황에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미제네바 합의 채택 이후에도 98년 금창리 건을 빌미로 전쟁도발을 구체화하려 들었다. 지금의 부시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작전계획 5030이네 우발계획이네 하면서 공격적인 대북전쟁계획이 세워졌으며 2002년 대북전쟁을 위한 시뮬레이션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전쟁전략은 언제나 결정적 단계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선군으로 다져진 북한의 막강한 군력 때문에 미국의 승리가 담보되지 못한다는 충격적 사실 때문이었다. 그동안 미국이 3차례 이상 진행한 바 있는 대북전쟁 시뮬레이션은 전쟁 개시 90일 안에 미군 사망자 5-6만, 하루평균 전쟁 비용 57-71억 달러, 남북에서 수백만의 사상자라는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을 결심하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결과였다.   더욱이 시뮬레이션은 북한이 핵미사일로 무장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하였는데, 이 경우에도 미국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결국 패배하게 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시뮬레이션이 핵미사일로 무장한 북한과의 전쟁을 대입하여 전개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미국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핵개발에 자물쇠를 채우고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면 북한은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자신들의 예상이 전혀 들어맞지 않은데 있다. 대북전쟁 시뮬레이션은 날이 갈수록 더 참담한 결과를 내놓고 있는데 그것은 북한의 군사력이 재래식 군사력에서 미사일과 핵으로 무장한 첨단군사력으로 완전히 무게이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대북전쟁을 결심하려면 모든 것을 내걸고 싸워야 한다. 북한과의 전쟁은 지금처럼 자국 밖에서의 전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서 이런 군사적 능력이 미국의 대북전쟁책동을 막아내는 물리적 힘이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구소련도 그 군사적 능력은 지구를 수십 번 박살낼 만큼 막강했지만 혁명군대가 사상으로 무장하지 못하고 사상이 무장해제 당하면서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그런데 북한의 선군은 군사력 만능주의가 아니다. 북한의 선군은 피가 흐르는 총대동지 사상이며 철저히 사상론에 입각한 사상이자 정치방식이다. 선군의 진짜 위력은 여기에 있다. 북한이 재래식 무기로 무장했을 때에도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 위력을 두려워 한 것은 선군으로 다져진 사상의 군대, 철벽의 군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첨단 무기로 무장하기까지 하였으니 미국의 대북전쟁책동은 결정적으로 격파되고 말았다.
 선군은 이처럼 미국의 대북전쟁책동을 사상적으로 군사적으로 격파함으로써 북한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켜냈다. 

 다음으로 북한의 선군은 경제강국건설의 돌파구를 열었다.

 북한이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돌파하면서 전반적인 경제 개건과 현대화를 단행했으며 경제적 기초를 새롭게 축성하는 사업에 달라붙었다. 당장에 식량이 부족하고 공장을 돌릴 연료, 원료가 부족했으나 광물이나 기계를 팔아 식량을 사오지 않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라도 기계를 지키고 경제적 토대를 새롭게 쌓아 올렸다.
 북한에서 경제적 기초를 새롭게 축성하는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에너지와 식량이었다. 국방공업을 강화하고 경공업을 발전시키며 전반 첨단산업을 새롭게 일떠세우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식량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북한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강도를 모범으로 도처에 중소형 발전소를 세우고 안변청년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수력발전소를 건설했으며,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감자농사혁명, 두벌농사혁명 방침을 제시하고 강원도를 시발로 평안북도, 황해남도, 평안남도에 대한 대대적인 토지정리를 단행했다.
 그리고 산소열법 용광로와 같이 외부로부터 전량 수입하는 코코스에 의존하지 않는 제철법을 개발하면서 제철, 금속, 기계공업의 전반적 토대를 새로 축성해 갔으며 청년영웅도로와 같은 기념비적 건설도 적극 밀고 나갔다.
 2000년에 들어서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확고히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선군과 자력갱생에 기초한 경제기초 축성사업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이처럼 북한에서 벌어진 경제강국건설을 위한 투쟁 전반에서 혁명군대는 어려운 모퉁이를 맡아하는 주력군으로 돌파구를 열어냈다. 북한의 혁명군대는 안변청년발전소를 수년만에 건설해 냈고 토지정리 사업을 거의 통째로 맡아서 진행했으며 개천-태성호 물길 공사에서도 주력부대로 나섰다. 북한에서 굵직하게 전개된 에너지와 식량 확보 사업의 선두에는 혁명군대가 있었다. 구월산 유원지와 같은 휴양지 건설도 최고사령관의 명령으로 단행되고 메기공장, 닭공장도 시범적으로 꾸리는 등 북한에서 혁명군대는 총만 쥔 군대가 아니라 경제건설의 돌파구를 열어내는 민중의 군대로 되고 있다. 북한 선군정치의 주력군인 혁명군대는 경제강국건설의 돌파구도 열어 주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선군은 북한의 국제적 지위를 높여 주었다.   

 한동안 세계는 미국 중심의 일극 자본주의세상인 것처럼 생각되었으며 북한은 고립된 섬처럼 국제적 활동 자체가 차단되고 그 국제적 지위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선군정치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결정적 힘이 되었다. 원래 외교라는 것은 힘에 기초한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구사해도 힘이 약한 국가는 결국 외교전에서 패배하게 된다. 북한은 98년 인공위성 발사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연속적으로 미국의 대북붕괴전략을 파탄시킴으로써 세계의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들 사이에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소위 강대국들 사이에서도 북한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러시아 같은 경우 자신들은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미국을 능수 능란하게 요리하는 북한을 보고 손을 잡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외교관계를 완전히 복원하였다. 러시아는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의 평양 정상회담과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소원한 관계를 일소하였다. 또한 2000년부터는 북중 간에 정상회담을 비롯한 고위급회담이 여러 차례 열리고 일본조차 2002년에는 평양 조일 공동선언에 합의, 관계정상화의 방향을 잡아놓았다.
 더욱이 90년대 초까지 외교관계가 없었던 영국, 이탈리아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가 이루어짐으로써 북한은 이제 국제적으로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 자주국가, 정치군사강국, 외교강국이 되었다.

2. 선군은 우리 민족의 소원인 조국통일을 강력히 추동하고 있다.
 
 북한의 선군은 무엇보다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조국통일은 전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고 남북 간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는 것으로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하지만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조건과 환경을 주체의 힘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한반도가 동북아 지역의 요충지로 세계 강대국들의 이해와 요구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외세의 개입과 간섭, 특히나 무력간섭을 막아내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바로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략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은 어떻게든 우리 민족을 타고 앉으려고 대북전쟁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의 선군이 이를 번번이 퇴치하여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들씌울 뻔한 전쟁위기를 막아주고 있다. 만약에 북한의 선군의 힘이 약했다면 미국은 유고나 이라크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을 것이다.
 지난해 장관급회담에서 북측 대표가 남측도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북한이 지나치게 반미적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만약에 우리 민족이 외세의 개입과 간섭에 고분고분하다면 전쟁이 일어나도 열백번은 더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떳떳하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력으로 평화를 지켜야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 위치상 그것은 필수적 요구이다. 북한의 선군의 힘은 이를 보장하는 강력한 군력의 힘이고 한반도 평화의 지렛대와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선군은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약화시켜 남북관계 발전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누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을 기억하며 남북관계 발전의 분수령으로 평가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관계는 자주와 평화, 화해와 단합의 기치 아래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장관급회담을 비롯하여 남북정부간 대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으로 이제 남북 간의 협력 사업은 공존, 공리, 공영의 원칙 속에서 확고히 발전해 가고 있다. 또한 해마다 6.15, 8.15축전이 남과 북에서 남북해외 동포들의 참여 속에 성대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남북노동자, 남북농민, 남북청년학생, 남북여성들간의 통일대회가 열리고 6.15 민족공동위원회가 나왔다.
 남북의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단일기를 들고 공동으로 입장하고 있으며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한의 응원단이 통일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남북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6.15선언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6.15 선언 자체가 선군을 배경으로 해서 탄생되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계속된 선군 공세 앞에 더 이상 강경일변도 정책을 취할 수 없다고 보고 페리 보고서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이렇게 나오자 그동안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눌려있었던 남측 정부에서 이제는 남북대화로 나가야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미국 역시 이것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만 자신들도 북한과 있는 그대로의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가 결합되어 남북 간의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나왔고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만약에 선군이 없었다면 미국은 북한과 있는 그대로의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친미적인 정치 형태가 체질화된 남측 정부도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6.15공동선이 나오고 나서 수년간 많은 정세 변화가 있었다. 미국에서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부시 행정부가 나오고 남측에서는 노무현정권이 탄생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등장은 분명 남북관계 발전의 암초다. 부시 행정부는 남측정부의 대북지원에 투명성 문제가 있다며 시비를 걸고 개성공단사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흘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미 선군을 배경으로 열린 남북관계 발전의 길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은 남북 간의 화해와 단합이 얼마나 귀중하며 절실한가를 실생활에서 체험했으며 북한의 선군은 그동안 남측에서 체질화된 친미정치가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니라는 것을 선명히 알려주고 있어 자주적으로 살려는 남측 민중들의 의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선군은 남측의 친미보수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선군에 대한 남측 친미보수세력의 반응은 그야말로 알레르기성이다. 그들은 체질적으로 북한의 선군을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이 섬겨왔던 미국이 한반도에서 갈수록 패퇴의 길에 들어서자 이제 자신들의 정치적 잔명이 다했음을 느끼고 더욱더 발악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선군은 친미정치가 올바른 정치가 아니라 자주정치가 올바른 정치이며 막강한 군력이 있다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로지 친미만이 살길이고 그것밖에 생각해 보지 못한 친미보수세력에게 북한의 선군은 청천벽력이고 날벼락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핵에 대해 우리 민족의 자위력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 같은 민족인 우리가 아니라 미국과 같은 호전세력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에 든든한 것이다. 하지만 친미보수세력들은 미국과 자신들을 떼 놓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을 겨냥한 핵은 자신들 머리 위에 드리운 핵이 된다.
 북한의 선군은 갈수록 친미보수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자주정치의 정당성을 확증함으로써 진보개혁세력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형성해주고 있다. 그것으로 남측에서 자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개혁세력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조국통일의 그 날은 더 앞당겨 질 것이다.  

3. 선군은 세계 자주화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내고 있다.

 북한의 선군사상, 선군정치는 새시대의 요구, 선군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왔다. 선군시대는 세계를 포괄하는 시대 규정으로 선군은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지는 사상이자 정치방식이다.

 북한의 선군은 무엇보다 세계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회주의다운 사회주의 국가는 북한과 쿠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베트남 같은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실제에 있어 많은 부분 사회주의에 기초한 국가운영, 경제운영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세계 정세를 배경으로 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는 한갓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주체의 원칙을 지키면서 선군에 기초한 강성대국건설이라는 사회주의 건설의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진해 왔다. 특히 올해 북한에서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이 이미 달성된 조건에서 경제강국건설에서 획기적 진전을 이루겠다는 국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그 성과가 주목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유포된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은 이제 자본주의식으로밖에 되지 않는다'는 환상에 대한 일대 타격으로 된다.
 기실 지금 세계는 초국적 자본의 수탈로 국가 자체가 부도가 나는가 하면 전 세계 부의 50%이상이 5%이내의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극심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병폐가 이처럼 심각함에도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제국주의자들의 악선전으로 형성된 사회주의에 대한 그릇된 이해는 세계 민중들의 자주적인 진출을 가로막아 왔다.  
 하지만 북한의 선군정치는 사회주의는 과학이며 사상과 총대에 기초한다면 필승한다는 것을 확증해 주었다. 이제 북한은 사회주의 재건 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중남미 대선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이어 볼리비아, 니카라과, 칠레, 파라과이 등지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았으며 베네수엘라에서는 주요 수출상품인 석유에 대한 국유화 및 사회주의 헌법 개정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의 선군정치로 사회주의 재건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뚜렷한 징표이다.

 북한의 선군은 다음으로 제3세계의 자주화운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자들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자주적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뚜렷한 정치방식을 밝혀주었다. 지금 중동의 이란과 시리아와 같이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의 불길에 잠길 수 있는 국가들에서 군력을 강화하고 미국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 선군정치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란은 자신들의 자주적 권리인 핵개발에 대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간섭을 배격하고 독자적인 핵활동을 재개하면서,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이란이 처한 조건과 핵활동 내용이 다르겠다지만 흡사 90년대 북한의 대미외교전을 따라 하는 듯하다. 이란은 세계원유생산의 중심국가라는 점을 이용해 호루무츠 해협 봉쇄를 대미항전 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압박에 대항한 군사훈련을 수 차례 전개하고 있다. 이란의 군사훈련에서는 신형의 중단거리 지대지 미사일, 스텔스 공대공 미사일, 잠수함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조만간 인공위성 발사를 예견하고 있어, 그동안 이란이 얼마나 군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는가를 알게 해 준다. 
 이란이나 시리아 외에도 아프리카의 국가들 그리고 유럽의 진보적 인사들 속에서도 북한의 선군정치에 대한 지지와 옹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 북한의 선군정치는 제3세계 여러 국가들에 아무리 나라가 작고 인구가 적어도 북한과 같이 선군노선을 견지한다면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북한은 새롭게 펼쳐지는 선군시대 자주화운동의 발원지로 되고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