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성장과 그 정치적 의미에 대하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12년 전의 체험담

2. 혹독한 시련의 원인

3. 성장기에 들어선 사회주의계획경제

4.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사회주의사상진지

5. 혁명의 노래와 사회주의혁명정신

6. 사회주의상품유통과 사회주의종합시장

7. 사회주의자력갱생의 견지와 포기

8. 사회주의계획경제 성장의 정치적 의미


 

1. 12년 전의 체험담


 

12년 전에 내가 겪은 체험 한 토막을 글머리에 싣는다. 중국대륙이 불볕더위로 펄펄 끓고 있었던 1995년 7월 초순, 나는 베이징 수도국제공항 출국장을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었다. 수도국제공항에서 현대적인 시설의 제2청사가 완공된 때는 1999년 11월이었으므로 그전에는 낡고 비좁은 옛 청사를 사용하였는데, 탑승교(boarding bridge)가 제한적이어서 평양행 고려항공(Air Koryo) 여객기를 타려면 버스처럼 생긴 차량을 타고 활주로 건너편에 세워둔 여객기까지 이동해서 공항용 사닥다리(trap)를 타고 기내에 들어가야 하였다.

한여름 불볕이 쏟아지는 활주로에서는 엄청난 복사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폭염을 뚫고 고려항공 여객기에 올라, 자리에 앉고 보니 냉풍기(air conditioner)가 모조리 꺼져 있는 게 아닌가. 냉풍기를 꺼놓은 채 오랫동안 활주로에 세워둔 여객기의 기내온도는, 이글거리는 불볕과 복사열이 합세하여 동체를 달궈버리는 바람에 장작불을 지핀 가마솥처럼 뜨거웠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른 탑승객들보다 서둘러 여객기에 올랐던 나는 160석이 그들먹하게 채워질 때까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비지땀을 쏟는 수밖에 없었다. 속옷까지 땀으로 젖었으니,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린다는 말을 그때처럼 실감한 적은 없었다. 나중에는 숨쉬기조차 힘들어져서 앞좌석 등받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참아야 했다.

외국인 탑승객들은 냉풍기를 왜 틀어주지 않느냐고 볼멘 소리를 냈고, 기내승무원들은 “미안합니다. 비행기가 리륙하면 냉풍기가 인차 작동됩니다”고 영어로 대답하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나이가 든 탑승객인 북녘 동포가 비지땀을 쏟으면서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찜통더위를 참아내던 그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기내 냉풍기를 틀어주려면 활주로에 세워둔 여객기 엔진을 완전히 꺼놓지 않고 계속 틀어놓아야 하고, 엔진을 켜놓는 만큼 값비싼 항공연료가 소모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그때 나는 북(조선)이 겪고 있었던 유류난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으나, 찜통더위로 펄펄 끓는 고려항공 여객기 안에서 유류부족의 심각함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북(조선)에서 쓰는 휘발유와 디젤 가운데 50% 정도를 조선인민군이 군용으로 쓴다는 미국인 연구자의 최근 추정자료(『연합뉴스』 2006년 4월 24일)를 생각하면, 북(조선)의 유류난은 안보문제에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12년 전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던 내 귓전에는 ‘사회주의의 멸망’을 떠들어대는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의 요란한 흑색선동이 들리는 듯하였다. 그들이 말했던 ‘사회주의의 멸망’이란 북(조선)의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급격한 체제붕괴를 뜻하였고, 그들이 지목한 체제붕괴의 원인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파산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시 북(조선)이 겪는 식량난, 유류난, 전력난에 주목하라고 소리쳤다.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이 내놓은 ‘붕괴가설’에 따르면, 식량공급(food supply)이 끊겨 북(조선) 인민들이 굶주리고 있고, 유류와 전력 같은 동력자원공급(energy supply)이 끊겨 북(조선)의 공장과 기업소들이 거의 문을 닫았으므로, 1989년에 있었던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체제붕괴에서 경험하였듯이 북(조선)에서도 수많은 난민들이 조중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하는 미증유의 사태를 막지 못하여 결국 체제가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은 1995년부터 붕괴가설의 ‘이론적 근거들’을 조작해 내놓으면서,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는 앞으로 3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므로 1998년쯤에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97년 3월에 자체로 실시한 컴퓨터 모의실험에서 북(조선)의 ‘급격한 붕괴’라는 실험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6년 1월 20일) 자본주의언론시장이 ‘붕괴가설’을 퍼뜨리는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맞장구를 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하여 1994년 후반부터 여섯 해 동안 북(조선)은 결사전의 각오와 혁명적 투쟁정신으로 시련의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야 하였다. 지난 시기 ‘혈맹’이니 ‘사회주의형제국’이니 하는 듣기 좋은 외교용어를 쓰던 주변나라들도 시련에 처한 북(조선)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북(조선)도 그들의 지원을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그 여섯 해는 북(조선)의 역사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르는 최대 시련기로 되었다.

북(조선)이 여섯 해 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은 그 시련이야말로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socialist planning economy)와 사회주의자력갱생(socialist self-reliance)이 완전히 파산한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가 하루빨리 망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으니, ‘사회주의의 멸망’을 확신한 것은 그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붕괴가설’을 믿는 정치적 미신이 세상을 휩쓸고 다니며 진보세력들의 인식마저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을 때, 나는 북(조선)이 반드시 시련을 이기고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반론을 전개하였다. 그 무렵 나의 집필활동은 ‘붕괴가설’이라는 미신을 깨뜨리고 사회주의라는 과학이 승리할 것임을 논증하는 투쟁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온 남(한국)의 진보적 정치활동가들이 직접 겪은 터라 이 글에서 굳이 논할 필요도 없지만, 북(조선)의 ‘고난의 행군’은 남(한국)의 진보세력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소련의 해체가 남(한국)의 평등계열 정치활동가들에게 혼란, 좌절, 이탈을 몰고 왔다면, ‘고난의 행군’은 남(한국)의 자주계열 정치활동가들에게 유사한 현상을 몰고 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투쟁대오에서 함께 싸우던 정치활동가들이 ‘붕괴가설’에 미혹되어 좌절하거나 신념을 저버렸으며, 시민운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개량운동에 몸을 내맡기기도 하였다.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배신자와 낙오자도 적지 않았다.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이 퍼뜨린 ‘사회주의의 멸망’이라는 미신은, 오늘 남(한국)이 신자유주의세계화로 나아가지 않으면 망할 것으로 믿는 또 하나의 미신과 뒤엉켜,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재앙으로 밀어 넣고 있는 중이다.


 

2. 혹독한 시련의 원인


 

나는 이 글에서 북(조선)이 여섯 해 동안 겪었던 혹독한 시련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사회주의의 멸망’이라는 미신을 타파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실상과 사회주의건설의 발전전망을 논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980년대 북(조선)은 사회주의국제시장(socialist international market)에서 통용되던 사회주의우호가격(socialist-friendly price)으로, 그것도 물물교환 형태의 구상무역(compensation trade)으로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석유를 넉넉하게 사들일 수 있었다. 지난 시기 사회주의국제시장에서 통용된 사회주의우호가격은 당시 자본주의시장가격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고, 북(조선)의 교역량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한 것은 사회주의국제시장과의 교역이었다.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과 사회주의국제시장의 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전략적 수입품목이 석유였다는 점이다. 석유가 나지 않는 북(조선)에서는 석유수요의 전량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당시에는 북(조선)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연평균 250만t의 석유를 사들였다.

북(조선)은 사회주의우호가격으로 사들인 석유를 농업부문에 공급하여 사회주의협동농장의 기계화(mechanization), 관개화(irrigablization), 화학화(chemicalization)를 일찌감치 실현하고 그에 힘입어 농업생산력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북(조선)은 식량수출국이었다.

그런데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소련산 석유수입은 중단되었고,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로 변신한 중국은 대외교역에서 사회주의우호가격을 폐지하였다. 그에 따라 북(조선)은 자본주의시장가격으로 석유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더욱이 북(조선)은 시장사회주의로 변신한 중국과 교역하면서 모든 거래를 외화로 결재해야 하였는데, 물물교환형식의 구상무역에 치중해온 북(조선)에게 석유를 사들일 만큼 넉넉하게 비축된 외화가 있을 리 없었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북(조선)의 교역량은 70%에서 갑자기 30%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석유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 전반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석유공급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북(조선)의 협동농장에서 쓰는 농기계 가운데 80%가 멈춰 섰고, 협동농장에 화학비료, 농약, 농자재를 공급하는 화물운송도 침체되었다. 화학비료를 주지 못하자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았고, 농약을 치지 못하자 병충해가 극심해졌으며, 농자재를 공급받지 못하여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농업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때 해마다 여름철에 연속적인 수해를 입어 가뜩이나 어려워진 농업생산이 더욱 심한 피해를 받았으나, 자연재해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조선)의 농업생산력을 끌어내린 주된 요인은 아니었다. 

그런데 만일 사회주의국제시장이 유지되어 북(조선)이 1980년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정상적으로 석유를 사들일 수 있었다면,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련을 겪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식량난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은 북(조선)의 사회주의농업경리에 어떤 결정적인 모순과 결함이 있어서 농업생산력이 곤두박질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면서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비방, 중상하였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5대 석유수입국으로서, 석유비축량이 76일치 밖에 되지 않아 석유공급위기에 가장 취약한 남(한국)에서 만일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조선)이 겪은 것처럼 석유공급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면 3년이 아니라 3개월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북(조선)에서 농업생산력 감소는 식량난으로 이어졌다. 당시 나는 북(조선)이 겪는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으나, 그 무렵 해외동포 방문자로 평양을 찾아간 나에게 차려진 밥상에 전무후무하게 잡곡을 넣은 밥이 오른 것을 보면서, 그리고 식량을 구하러 배낭을 메고 농촌으로 내려가는 도시근로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식량부족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창문의 불빛은 어두웠고, 공장의 기계동음은 들리지 않았다. 해외동포 방문자에게 차려주는 식탁이 내게는 너무 부담스러웠고, 유류난을 겪고 있는 터에 승용차를 타고 돌아다니자니 미안한 생각이 앞섰다. 1990년대 후반기 북(조선)의 식량난은 영양실조→면역력 저하→질환→사망으로 이어지는 고통과 불행을 몰고 왔다.

북(조선)에 시련이 닥쳐오자,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은 그나마 형식적으로 열어놓았던 조미회담의 대화창구를 닫아버리는 한편, 제국주의경제봉쇄의 고삐를 틀어쥐고 선제핵타격을 앞세운 북침전쟁연습에 광란하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조선)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련을 겪었는지를 전해주는 자료는 외부에서 찾을 길이 없으나, 1997년 1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는 참기 어려운 시련도 많았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주의를 없애버리기 위한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책동이 더욱 악랄해졌으며 경제건설에서의 난관도 말이 아니였습니다. 적들의 반공화국, 반사회주의책동에 식량난까지 겹치다보니 난관과 시련이란 말할 수 없었으며 그것을 뚫고 전진하기가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누구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이 엄혹한 투쟁을 항일혁명투쟁시기의 <고난의 행군>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처음 평양을 방문하였던 1994년 12월 20일은, 북(조선)이 3년 안에 망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자본주의언론시장에 나돌고 있었고,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이 퍼뜨리는 ‘붕괴가설’에 미혹되어 절망한 일부 해외동포들이 방북의 발길을 머뭇거리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북(조선)이 겪는 전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으나,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기공급이 끊어지는 바람에 인민대학습당에서 찾은 자료를 정리하던 손길을 멈추고 창 밖을 바라보면서 전력부족의 심각함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2000년 6월 13일에는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6.15 공동선언에 서명하였던 김대중 같은 정치인마저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조선)이 겪는 시련이 오죽하였으면 북(조선)이 ‘상처 입고 쫓기는 짐승’과 같다는 모욕적인 표현을 썼겠는가.   


 

3. 성장기에 들어선 사회주의계획경제


 

나는 이 글의 내용을 1990년대 후반기에 북(조선)이 겪은 시련을 되돌아보는 회상으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회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침체기를 벗어나 성장기에 들어섰음을 살펴보는 것이다. 남(한국)의 최근 언론보도에서 그러한 변화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언론보도는 1997년에 방북하였을 때 찍어둔 사진과 이번에 방북하여 동일한 대상을 다시 찍은 사진을 함께 실어 북(조선)의 생활환경이 10년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그 보도기사를 쓴 기자는 “양각도 호텔 47층 전망대에 매일 올라 관찰해보니 평양 체류 기간 내내 밤 11시까지 대부분 건물의 창이 환하게 빛났다”고 적었다. 10년만에 방북한 어떤 방문객은 그 기자에게 10년 전에는 밤에 불빛구경이 힘들었으나 지금은 야경을 되찾았다며 “감탄하였다”고 한다. 기자는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대동강호텔을 개축하는 공사장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큼직한 조감도를 걸어놓은 것이나 평양의과대학 소아과 병동 신축공사장에 탑식 기중기(tower crane)를 설치하고 철골기둥(H-beam)을 세우는, “평양에서 처음 보는 세련된 공사현장”을 목격하였고, 평양시 외곽의 형제산구역에 있는 신미협동농장의 농촌문화주택들이 파스텔 색조로 몰라보게 단장된 모습과 더불어 모내기가 한창인 논둑마다 농업근로자들이 타고 온 자전거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농촌풍경을 목격하였고, 대성산 유원지와 문수거리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가 하면, 아파트 외벽의 낡은 타일을 벗겨내고 산뜻하게 칠하는 도색작업이 평양 시내 곳곳에서 한창 진행되는 도시미관 공사현장을 목격하였다. (『중앙일보』 2007년 5월 24일)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동강 강변을 풍치 좋은 휴식공간으로 정리하는 제1단계 공사가 2006년 7월에 착공되어 2007년 4월에 완공되었고, 지금은 제2단계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조선신보』 2007년 6월 7일)

2007년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130여 명이나 되는 남측 경제대표단을 따라 방북하였던, 다른 언론사의 기자는 얼마 전 이런 기사를 실었다. “지난해보다 먹고살기가 훨씬 나아졌다. 선전만은 아닌 듯했다. 북쪽 안내원들은 물론이고, 접촉할 수 있었던 몇몇 평양시민들의 이구동성이었다.” “북쪽 인사들은 여러 차례 남쪽 자본 유치의사를 밝혔다. 안보와 먹고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바탕 위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도 읽혔다.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평양의 전력사정은 나아졌다는 게 지난해 평양을 방문했던 남쪽 인사들의 공통된 인상이다. 경제의 인프라가 그나마 호전된 것이다. 여기에 핵무기 보유가 가져다준 ‘자신감’이 ‘이젠 경제로!’로 자연스럽게 모아지는 듯했다.” (『한겨레 21』 제661호, 2007년 5월 23일)

2007년 5월 25일부터 한 주간 동안 평양, 평안북도 정주, 함경남도 함흥, 황해남도 배천 등을 둘러본 남(한국)의 농촌경제연구원 소속 연구원은 “북한 평야지대에선 대부분 저수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물이 풍족해 모내기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며 연료난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양기와 트랙터 등 농기계도 풀가동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농촌생산활동이 안정을 되찾았으며 과수, 채소, 뽕나무를 비롯한 특수작물재배의 다양화에 신경 쓰는 등 소득 증대원 모색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년 6월 5일)

다른 방북기사는 평양에 컴퓨터 기술보급판매소가 해마다 부쩍 늘어나고, 평양의 기념품판매소에서 일하는 직원의 말에서 청년층이 엠피(MP)3, 디지틀 카메라 같은 최신형 전자제품들을 애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2007년 6월 3일) 

위에 옮겨 적은 내용들은 현장취재기사나 목격담이다. 현장취재기사나 목격담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성장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와 관련된 각종 통계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전해주지 못한다. 다음과 같은 객관적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2002년 7월부터 경제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중요산업시설을 보수하고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현대화하였다. 이를테면, 남측 언론에서 보도한 대규모 공장과 기업소들만 해도 룡성기계련합기업소, 흥남비료련합기업소, 구성공작기계공장, 희천공작기계공장, 평양326전선공장, 락원기계련합기업소, 두단오리공장과 광포오리공장, 평양화장품공장, 평양기초식품공장, 경련애국사이다공장, 대동강맥주공장 등이다. (『연합뉴스』 2005년 11월 8일) 중소규모 공장과 기업소들도 시설보수공사와 과학기술도입으로 현대화되고 있는 중이다.

둘째, 대외교역규모가 늘어났다. 북(조선)의 2005년도 무역은 1991년 이후 최대규모인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민족내부거래인 남북(북남)교역까지 합하면 40억5천700만 달러가 된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8일) 조중 무역규모를 살펴보면, 2001년 7억4천만 달러에서 2005년에는 15억8천만 달러로 늘어났다. 다섯 해 동안 연평균 28%의 증가율을 보였다. (『연합뉴스』 2006년 10월 18일) 

셋째, 전력생산량이 늘어났다. 2004년 3월 2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2차 회의 결과에 따르면, 2003년의 전력생산량은 지난해에 비해 21%나 급증하였으며, 2004년의 전력생산목표량은 지난해에 비해 20%나 늘려 잡았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4년 4월 18일)

자료에 따르면, 북(조선)이 2006년에 중국으로부터 사들인 원유수입량은 지난해에 비해 0.2%가 늘어난 52만4천40t이었으며(『연합뉴스』 2007년 1월 26일), 중국으로부터 원유(crude oil)를 사들인 수입액은 지난해에 비해 24.9%가 늘어난 2억4천690만 달러였다. (『연합뉴스』 2007년 3월 13일) 중국산 수입석유는 북(조선) 석유수요의 약 80%를 차지한다. 원유수입량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원유수입액이 크게 늘어난 까닭은, 조중원유거래에 폭등한 국제유가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24일 북(조선)은 서해 대륙붕에 묻혀있는 석유를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5억 달러 규모의 협력사업에 합의하였는데(『연합뉴스』 2005년 12월 27일), 석유를 생산하려면 긴 시간이 요구되므로 지금으로서는 중국에서 사들이는 수밖에 없다. 북(조선)이 중국에서 매달 사들이는 원유수입량은 약 5만t이다.

북(조선)이 원유수입량을 늘이지 않았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았으면서도 전력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력발전과 화력발전의 설비개선과 증산에 집중적으로 힘썼기 때문이다. 북(조선) 내각의 전기석탄공업상은 전력생산량이 급증한 원인에 대해서 화력발전소의 기술문제를 해결하고 설비를 보수하였고, 수력발전소에 신형 수차를 들여오고 구조물을 보수하였으며, 기술혁신으로 중유를 절감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4년 4월 18일) 특히 1998년 3월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수많은 중소형 수력발전소들이 지방산업과 농촌지대의 전력수요를 상당부분 충당하고 있다.

넷째, 식량공급이 정상화되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자료에 따르면, 북(조선)의 2004년도 화학비료 생산량은 지난해에 비해 75%가 늘어난 5만6천524t이었다. (『연합뉴스』 2005년 1월 7일) 비료증산은 곡물생산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2005년 10월 1일부터 북(조선) 전역에서 식량공급이 정상화되어, 식량공급기관인 양정사업소에서만 식량을 공급하게 되었다. (『조선신보』 2005년 10월 27일)

한편, 북(조선)이 2006년에 중국으로부터 사들인 옥수수, 쌀, 밀가루 같은 곡물수입량은 지난해에 비해 53%나 줄어든 20만7천250t이었으며(『연합뉴스』 2007년 1월 26일), 중국산 곡물수입액은 지난해에 비해 66%나 줄어든 1천689만 달러였다. (『연합뉴스』 2007년 2월 12일) 이처럼 곡물수입량을 크게 줄인 것은 식량공급이 정상화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섯째, 육류 단백질 공급이 늘어났다. 토끼, 닭, 오리, 돼지, 염소, 거위, 소, 양을 기르는 대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WFP)의 보고에 따르면, 2003년 현재 북(조선)에서는 토끼 1천957만6천 마리, 닭 1천871만1천 마리, 오리 461만3천 마리, 돼지 317만8천 마리, 염소 271만7천 마리, 거위 124만7천 마리, 소 57만6천 마리, 양 17만1천 마리를 기르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11일) 특히 북(조선)이 중국에서 사들이는 돼지고기는 2000년 75만 달러, 2001년 516만 달러, 2002년 971만 달러, 2003년 5천642만 달러로 늘어났으며, 2004년 1월부터 9월까지 1억1천74만 달러를 기록하여 지난해에 비해 243%나 폭증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11월 16일) 육류와 젖가공류 공급이 늘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섯째, 인민경제를 빨리 발전시키기 위한 과학기술개발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2007년은 북(조선)이 지난 2003년부터 추진해온 제2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을 달성하는 마지막 해이다. 북(조선)은 2012년까지 추진할 제3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고, 그에 따라 과학기술발전에 힘을 집중하는 중이다. (『연합뉴스』 2007년 4월 12일) 2007년 4월 11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1기 5차 회의에서는 올해 과학기술부문에 지출하는 국가예산을 지난해에 비해 60.3%나 더 많이 배정하기로 의결하였다. 2006년에는 과학기술부문에 지출하는 국가예산을 지난해보다 3.1%밖에 증액하지 않았던 것(『연합뉴스』 2007년 4월 11일)에 비하면, 인민경제부문에서 기술혁신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국가예산배정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것만이 아니라, 모든 공장과 기업소들이 순소득의 2%를 자체적으로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비용으로 책정하고 이를 철저히 집행하도록 의결하였다. (『연합뉴스』 2007년 4월 12일)

일곱째, 1970년대부터 각지의 생산현장에 파견되어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의 열기를 불러일으켰던 3대혁명 소조원들이 2000년 이후 다시 맹렬하게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에 파견되어 생산현장에 현대적인 과학기술을 보급하고 기술혁신운동을 이끌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21일) 3대혁명이 사회주의계획경제에 성장동력을 공급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덟째,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전략산업인 정보기술산업(information technology industry)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2003년에 말단 행정단위인 리(里)까지 광케이블 통신망(fiber-optic cable)을 설치하여 북(조선) 전역에 인트라넷(intranet)을 구축하였고, 다종다양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software program)을 개발하였으며, 2002년에는 이동통신(mobile communication)을 시작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8일) 북(조선)에서 컴퓨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방은 중소형 수력발전소를 가장 많이 건설한 자강도이다. (『조선신보』 2004년 2월 28일)

아홉째, 산림자원을 보호, 복구하기 위하여 힘쓰고 있다. 2000년에 산림법 시행규정을 발표하였고, 2001년부터 산림조성 10개년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산림자원을 보호하고 복구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이 ‘급격한 붕괴’가 있을 것으로 ‘예언’하였던 1998년 8월 22일 북(조선)은 『로동신문』을 통해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이 당면한 전략목표임을 천명하였다. 요즈음 북(조선)에서 많이 쓰는 ‘강성대국의 려명’이라는 말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성장속도를 가속화하여 인민경제의 발전수준을 한층 더 높이 끌어올려 기어이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사회주의강성대국에 관한 담론은 막연한 희망의 언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머지 않은 장래에 달성하게 될 전략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사회주의사상진지


 

북(조선) 인민들이 시련의 가시밭길에서 주저앉지 않고 투쟁하여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본주의이윤동기와는 너무도 다르기에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판단기준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그러므로 오직 사회주의계획경제에만 배타적으로 힘을 공급하는 성장동력의 원천이다. 명백하게도, 사회주의계획경제에 힘을 공급하는 성장동력의 원천은 사회주의사상진지(socialist ideological position)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사상진지가 공허한 선전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경제란 오로지 물질적 요인에 의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믿어버리는 자본주의경제성장론의 고정관념이다.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회주의사상진지가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알 길이 없다. 북(조선)의 경제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자본주의경제성장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붕괴가설’이라는 미신을 믿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북(조선) 인민들이 겪은 고된 시련뿐이지만, 사회주의라는 과학을 믿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들이 구축한 사회주의사상진지이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련을 뚫고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성장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지표로 나타나는 물질적 요인들이 아니라 사회주의사상진지에서 나타나는 사상적 요인들이었다.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성장한 원인을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성장요인과 동일한 물질적 요인으로만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지 못하는 무지와 편견일 것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사상진지가 공허한 선전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가지고서는, 혹독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정상화시킨 과정과 현실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오늘 북(조선)에서 혁명적 군인정신이라고 부르는 사회주의혁명정신(socialist revolutionary spirit)은 개별적 인간의 두뇌 속에서 맴도는 추상관념이 아니라 당조직과 대중단체를 통하여 발휘되는 발전동력이다. 사회주의혁명정신은 사상진지에서 사상사업을 통해서 발휘되는 법이다. 북(조선)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사상진지에서 사상사업을 밀고 나가는 사상령도거점을 유일사상체계(monolithic ideological system)라 한다.

사회주의혁명정신을 인민들 속에서 불러일으키고, 자주적 사회주의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신념화, 생활화하는 사상진지는 추상적인 선전문구가 아니라 북(조선) 전역에서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각급 당조직들이다. 사회주의사상진지에서 벌어지는, 낡은 사상, 반동적 사상과의 투쟁에 의해서 사회주의사상전선(socialist ideological front)이 형성된다.

주목하는 것은,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성장하느냐 침체하느냐 하는 문제가, 일차적으로 자주적 사회주의의 지도사상을 신념화, 생활화하는 사회주의사상전선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생산관계에서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선결적이고 사활적인 과제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조선)이 겪은 시련은,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이라는 혁명구호를 외치면서 사회주의사상전선에서 벌인 사상의 결사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북(조선)의 현실이 입증하는 것처럼, ‘고난의 행군’은 사회주의사상진지를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하게 강화시켰다. ‘고난의 행군’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주의사상진지에서 멀어져 등을 돌리고 조중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어가 탈북자로 전락해버린 예외적 소수도 있으나, 북(조선)의 전체 인민들은 사회주의사상진지를 옹호, 고수하면서 사회주의사상무장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그러므로 예외적 소수인 탈북자의 시각에 의존하여 북(조선)의 현실을 인식하려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뒤틀린 인식착오이다.

북(조선)에 구축된 사회주의사상진지가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오늘도 전해져 온다.

1998년 3월 29일 오후 6시 경 건조한 바람이 초속 20m로 불고 있었던 함경북도 무재봉 산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불길이 치솟았다. 산불은 바람을 타고 매우 빠르게 번져갔다. 무재봉에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항일선열들이 혁명구호를 새겨 넣은 구호나무들이 보존된 항일혁명사적지가 있는데, 사나운 불길은 그곳을 향하여 무서운 소리를 내며 밀려가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불바다 속으로 서슴없이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무재봉에 주둔하는 인민군부대에서 달려온 20명의 군인들과 구호나무 해설강사들이었다. 평소에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구호나무 인근에 진흙과 물병을 준비해두었기에 그들은 진흙을 물에 이겨 구호나무마다 급히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길은 불과 몇 초 사이에 들이닥쳤다. 구호나무에 불길이 닿으려는 순간, 진흙을 물에 이겨 바를 겨를조차 없게 된 그들은 진흙덩이를 구호나무에 붙이고 가슴으로 그 나무를 끌어안았다. 진흙덩이를 미쳐 손에 잡지 못한 여성군인들은 자기 군복 윗도리를 벗어 구호나무 글발을 덮고 겹겹이 끌어안았다. 타래 치는 불길이 사정없이 덮쳤다. 그들 가운데 17명은 살점이 익어 떨어져나가고 온몸이 타버리는 고통을 견디며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구호나무들이 서있는 곳 아래쪽 골짜기에는 개울물이 있었으므로 그 골짜기로 몸을 굴렸더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불길에 휩싸인 그들 가운데 누구도 불길을 피하지 않았다. 구호나무를 겹겹이 끌어안은 그들이 끝까지 지킨 것은 사회주의사상진지 바로 그것이었다.

1998년 11월 5일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부업선 151-609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던 조선인민군 병사 12명과 어로공 3명은 뜻하지 않은 기관고장으로 조난을 당하였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배는 침몰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순간이 닥쳐온 것을 직감한 그들은 배의 갑판을 뜯어내어 급조한 뗏목에 자기들 가운데서 가장 나이 어린 병사 두 사람을 태웠다. 동지들과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울부짖는 어린 두 병사의 몸을 밧줄로 묶어 뗏목에 고정시켰다. 그 두 병사의 품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물기가 스며들지 않게 담아 밀봉한 보관함과 조선인민군 근무증명서, 공민증, 항해문건, 편지를 넣은 작은 꾸러미가 안겨져 있었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배에 남은 13명의 병사들과 어로공들은 혁명구호를 외치며 최후를 맞았다. 

동해의 거친 파도에 떠밀리며 석 달 동안이나 해류를 따라 흘러간 뗏목은 일본 아오모리(靑森)현 어느 바닷가에서 주민들에게 발견되었다. 석 달 동안 망망대해를 표류하면서 거의 형체마저 알아볼 수 없게 부패되고 맹어들의 습격으로 훼손된 병사의 시신 곁에 남아있었던 마지막 편지는 그들의 결사적인 전투를 이렇게 전해주었다.

“이 배는 조선인민군 부업선 151-609호이다. 배에는 군인들과 로동자 15명이 탔다. 양망 도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배에 물이 새여 들어온다. 식량도 물도 다 떨어졌다. 모두가 지쳤으나 서로 고무하며 물도 퍼내고 물구멍도 막으며 투지 좋게 싸웠다. 만약을 생각하여 초상화를 내리워 따로 모시였다. 앞으로 이것을 먼저 받게 되는 사람들은 우리 배의 행처라도 알려달라. 모두가 김정일 장군님의 전사답게 마지막까지 잘 싸웠다고 전해달라.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장군님이시여, 부디 건강하십시오. 김정일 장군 만세! 강성대국 주체조선 만세!” 망망대해에서 맞은 최후의 순간까지 그들이 지킨 것은 사회주의사상진지 바로 그것이었다.

위에 나오는 극적인 체험은 특별한 경우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사회주의사상진지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위에 나오는 극적인 체험은, 다른 사회에서도 간혹 찾아볼 수 있는 우연사가 결코 아니다. 고난과 시련과 자연재해도, 그리고 자신과 이 세상을 갈라놓는 무서운 죽음의 공포마저도, 강인한 신념과 의지를 지니고 사회주의사상진지를 끝까지 지킨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하였다.

북(조선)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구축한 당조직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외부에서 찾을 길 없으나, 최근에 있었던 사례에서 당의 조직력을 엿볼 수 있다.

2006년 11월 6일 량강도 일부지역에서 전염률이 매우 높은 홍역(measles)이 발생하였는데, 보건성에서는 불과 한 달 동안에 1천600만 명 이상의 인민들에게 홍역예방접종을 실시하였다. 접종진행상황을 현지에서 지켜본 세계보건기구(WHO) 평양사무소 직원들은, 하루 평균 61만 명씩 예방접종을 실시한 성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연합뉴스』 2007년 4월 20일) 예방접종을 하루 평균 61만 명씩 실시하는 것은 각지방의 당조직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를 말해준다. 주목하는 것은, 그러한 조직력을 가진 당조직들이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구축해 놓았다는 점이다. 만일 북(조선)의 당조직들이 사상중시노선을 허술하게 여겨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구축하지 못하였다면, 사회주의혁명정신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정상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5. 혁명의 노래와 사회주의혁명정신


 

시련의 폭풍우가 몰아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조선)에서는 절망과 좌절의 신음이 들리지 않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는 힘찬 메아리가 들렸다. 죽과 강냉이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북(조선) 인민들은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과 건설현장, 학교와 인민군 초소, 가정과 길거리에서 ‘사회주의 붉은기를 높이 추켜들고 끝까지 싸우자’는 혁명의 노래를 불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혁명의 노래를 불렀고, 조선인민군과 인민대중도 혁명의 노래를 불렀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선길에서도,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기쁠 때도, 힘겨울 때도” 불렀고, 지금도 애창하는 ‘불변의 지정곡’은 ‘동지애의 노래’이다. (『로동신문』 2001년 2월 5일, 2002년 4월 29일) ‘동지애의 노래’는 북(조선) 인민들이 가장 널리 애창하는 혁명의 노래이다. 시련의 폭풍우 속에서 혁명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회주의와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인민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1998년쯤에 무너질 것이라고 떠들었으나, 북(조선)은 1998년 5월 30일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사막 차가이 지하핵실험장에서 성공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제국주의반동세력의 허를 찔렀으며, 그로부터 석 달 뒤인 8월 31일에는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를 대기권 밖의 위성궤도로 쏘아 올림으로써 제국주의무력위협에 또 한 차례 파탄의 쐐기를 박는 사회주의반제투쟁의 놀라운 위력을 과시하였다. 지하핵실험장에서 지축을 뒤흔들었던 거대한 폭발음도, 그리고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오르는 우주발사체의 굉음도, 북(조선) 인민들이 부르는 혁명의 노랫소리에 공명되어 사회주의생산현장을 혁명적 열기로 더욱 들끓게 하였을 것이다.

혁명의 노래는 사회주의반제전선에서만 울려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산업기반(infrastructure)을 일으켜 세우는 건설현장에서도 울려 퍼졌다. 혁명의 노래가 울려나온 사회주의건설현장 가운데 초대형 건설현장을 손꼽아보면, 1999년 10월에 완공한 광명성제염소, 2000년 10월에 각각 완공한 안변청년발전소와 청년영웅도로, 2002년 10월에 완공한 개천-태성호 물길공사, 1998년에 착공하여 2005년에 완공한 대규모 토지정리공사 등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1998년부터 발전설비용량 1만kw 이하의 수많은 중소형 수력발전소를 곳곳에 건설하면서, 그리고 축산전문협동농장, 목장, 축산물가공공장을 비롯한 축산기지를 곳곳에 건설하면서, 그리고 양어장, 물고기가공공장을 비롯한 양어기지를 건설하면서 그들은 혁명의 노래를 불렀다.

또한 1996년 7월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제26차 올림픽경기 유도부문에 열 여섯 살 최연소자로 출전한 계순희 선수가 당시 84연승으로 기염을 토하던 일본인 유도선수 다무라 료꼬를 한 판 승부로 꺾고 금메달을 쟁취하였을 때, 그리고 3년 뒤인 1999년 8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7차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경기에 출전한 정성옥 선수가 섭씨 35도를 넘는 폭염 속에서 일본선수를 앞지르고 내달려 승리의 월계관을 머리에 얹은 저력을 과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을 때도 북(조선) 인민들은 혁명의 노래를 불렀다.

북(조선)에서 혁명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떤 특별한 계기에 벌어지는 예술공연이 아니라,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이어가는 사회주의정치활동이자 사회주의문화생활이며 사회주의경제선동이자 사회주의조직생활이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보급하는 노래악보를 자주 싣는 것은, 조선로동당이 혁명의 노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말해준다. 이 지구 위에 형형색색 정당들이 수없이 많으나, 노래보급에 앞장선 정당은 조선로동당밖에 없을 것이다.

북(조선)에는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혁명의 노래도 있고,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경음악단,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같은 전문예술인집단이 공연하는 혁명의 노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 병사와 학생, 가정주부와 노인을 가리지 않고 전체 인민이 각자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손풍금, 기타, 하모니카, 탬버린 같은 서양악기와 피리, 젓대, 해금, 장구, 북 같은 민족악기들을 직접 연주하면서 소박하게 부르는 혁명의 노래이다. 북(조선)에서 혁명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우리식 군중예술활동’의 핵심적 요소이다. 북(조선)의 인민대중은 수많은 예술소조를 통해 군중예술활동을 펼쳐나간다.

남(한국) 대중이 1991년에 부산에서 처음 생겨난 뒤로 2005년 현재 3만5천 여 개로 늘어난 노래방을 드나들며, 그리고 3만5천 여 개나 되는 단란주점에서 폭탄주를 기울이며 노래방 도우미와 함께 대중가요를 부르고 있을 때, 북(조선) 인민은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을 넘나드는 예술소조와 함께 혁명의 노래를 불렀다.

일반적으로 노래는 정서적 표현을 담아내는 음악예술의 한 형식이지만, 북(조선)에서 들려오는 혁명의 노래는 사회주의혁명정신을 공급하는 ‘사상의 양식’이다. 일반적으로 노래는 생활의 여유를 즐기는 정서활동이며 때로 심리치료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북(조선)에서 들려오는 혁명의 노래는 사회주의혁명정신의 집단적 발현이다. 사회주의혁명정신을 ‘사상의 양식’으로 섭취하는 사람들만이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혁명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시련의 광풍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회주의혁명정신을 지닌 사람들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조선) 인민들은 혁명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사상적 일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더 정확하게 지적하면, 혁명의 노래를 부른 것은 그들의 사상적 일체성을 위력적으로 과시한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장, 기업소, 군부대, 학교, 사회단체들만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의 각급 행정기관들에는 예술선전대가 있고, 기동예술선전대와 먼바다예술선전대도 조직되어 있다. 각도마다 활동하는 예술선전대는 1972년에 창설되었는데, 창설 이후 30년 동안 창작한 작품이 1만2천 여 편이나 되고 예술선동을 20여 만 회나 벌였다고 하니(『로동신문』 2003년 2월 21일), ‘우리식 군중예술활동’으로 축적한 경험과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가 혁명의 노래를 중시하고 당이 앞장서서 노래를 보급하고 인민들이 혁명의 노래를 애창하는 것은, 북(조선)이 건설한 사회주의가 다른 나라들이 건설한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매우 중대한 차별성이다. 노래와 혁명이 일체화된 북(조선)의 사회주의에서 ‘음악정치’라는 새로운 사회주의정치개념이 나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6. 사회주의상품유통과 사회주의종합시장


 

지나온 기간을 돌아보면, 북(조선)이 1990년대 중반 사회주의계획경제에 몰아닥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경제성장의 동력을 회복하기까지에는 대략 5년의 회복기가 요구되었다. 올해 2007년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5년의 회복기를 넘어 성장기에 들어선 시점이다. 오늘 북(조선)의 경제지표가 말해주는 것은,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의 왜곡선전과는 정반대로,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성장의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정상화된 것을 두고 자본주의시장경제(capitalist market economy)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는 식의 왜곡선전을 늘어놓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정상화되면서 상품유통이 이전보다 확대된 것을 가리켜 자본주의시장화(capitalist marketization)를 촉진하는 ‘경제개혁(economic reform)’이 시작되었다고 왜곡하는 것이다. 북(조선)이 자본주의시장화를 촉진하는 ‘경제개혁’을 시작하였다는 ‘정보’가 지난 20년 동안 자본주의언론시장에 떠돌았으나, 그것은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이 조작한 헛소문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에서 시장형태로 운영되는 사회주의상품유통(socialist commodity circulation)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회주의상품유통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한 구성부분이다. 자본계급의 사적 이윤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자본주의상품유통의 형태를 일반적으로 자유시장(free market)이라 한다면, 경공업부문에서 생산한 의류, 신발, 가전제품, 주방기기, 화장품 같은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사회주의상품유통의 형태를 북(조선)에서는 종합시장(general market)이라 한다.

사회주의계획경제에는 세 종류의 상품유통체계가 존재하나니, 국내에서 생산한 원료와 자재를 공장과 기업소들 사이에서 유통하는 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 다른 나라에서 사들인 원료와 자재를 공장과 기업소들 사이에서 유통하는 수입물자교류시장, 그리고 인민생활에 요구되는 경공업제품을 유통하는 사회주의종합시장이 그것이다. 북(조선)에서 사회주의상품유통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일원화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므로, 북(조선)의 종합시장은 중국과 베트남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와 거리가 멀다. 북(조선)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양립할 수 없으나, 사회주의종합시장은 존재한다.

북(조선) 인민들은 국영상점이라는 사회주의공급체계를 통해 자기가 요구하는 소비품을 사들이는데, 경공업생산력이 아직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한 조건에서 인민들이 요구하는 모든 소비품을 넉넉하게 공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생활용품 공급에서 부족분을 채워주는 것이 사회주의종합시장이다. 시장은 자본주의경제체제에만 존재하는 전유물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오래 전부터 아직 발달되지 못한 원시형태로 존재해왔고,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완전히 제거한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시장은 사회주의상품유통의 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시기 북(조선)에는 농산물과 토산품을 사고 팔던, 흔히 ‘장마당’이라고 부른 농민시장(farmers' market)이 있었다. 협동농장이나 국영농장에서 일하는 농업근로자들은 가구당 30평까지 허용된 텃밭에서 감자, 옥수수, 배추, 고추, 무, 마늘 같은 채소를 재배하였는데, 텃밭에서 나온 농작물 가운데 잉여분을 농민시장에서 팔 수 있었다.  그러한 농민시장을 확대, 개편한 것이 오늘의 사회주의종합시장이다. 사회주의종합시장에서는 개인, 국영기업, 협동단체들이 상품을 팔고 있으며, 양곡을 제외한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은 물론 경공업제품도 거래된다. 개인, 국영기업, 협동단체가 함께 판매한다는 뜻에서, 그리고 생활용품을 종합적으로 판다는 뜻에서 종합시장이라 한다. 사회주의종합시장은 인민대중의 물질적 요구를 반영하여 개설되고, 인민위원회가 계획적으로 조절하는 사회주의상품유통의 한 형태이다.

공장과 기업소에서 생산한 경공업제품은 사회주의국영상점에서 국정가격으로 판매하는데, 그에 비해 사회주의종합시장에서는 국정가격보다 조금 싸게 판매한다. 사회주의종합시장에서 만일 가격변동을 ‘자유화’하면 자본주의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게 되어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해당 인민위원회에서는 물가안정을 위하여 종합시장의 가격을 적절하게 통제한다. 사회주의종합시장에서는 최고가격을 제한하는 가격통제를 실시하여 물가를 임의로 올리는 것은 금하고, 시장 밖에서 거래하는 것을 금하고, 화물차 등 대형수송수단을 이용하여 다른 지역에 가서 판매하는 것을 금하고, 판매상품을 생활용품에 국한시키고, 국가기구가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상품이나 생산수단을 파는 것을 금한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31일)

북(조선)에서 2003년에 처음으로 개설한 사회주의종합시장은 평양시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 종합시장이다. 이 종합시장에는 2004년 현재 1천400여 개의 매대가 있고, 하루 평균 10만-15만 명이 찾고 있다. (『조선신보』 2004년 9월 7일) 사회주의종합시장은 북(조선) 각지에 거주지의 인구에 비례하여 개설되었다. 명백하게도, 사회주의종합시장은 자본주의시장화를 촉진하는 ‘경제개혁’의 현장이 아니라, 사회주의상품유통을 담당하는 국영기업의 한 형태이다.


 

7. 사회주의자력갱생의 견지와 포기


 

사회주의자력갱생이란 중공업 발전을 우선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함께 발전시키는 사회주의경제건설노선이다. 사회주의자력갱생노선을 따르면, 제한된 자원, 자금, 기술을 중공업 발전에 우선적으로 동원하기 때문에 경공업과 농업의 발전이 뒤쳐지고, 그에 따라 인민경제부문에서 긴축과 절약이 요구되는 불가피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와 달리, 사회주의자력갱생노선을 포기하는 경우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안겨주는 막대한 자본과 발달된 기술을 동원하여 경공업과 농업을 급속히 발전시킬 수는 있으나 신식민주의경제예속을 막지 못하게 된다.

북(조선)에서 오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정상화되고 성장기에 들어선 것은, 인민경제부문의 긴축과 절약으로 생활용품이 부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더욱이 ‘고난의 행군’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내 견지하였던 사회주의자력갱생이 정당한 노선이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북(조선)이 소비품 부족의 어려움이나 ‘고난의 행군’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여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돌아섰다면, 오늘처럼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정상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대로, 뒤떨어진 생산력을 발전시킨다고 하면서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돌아선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시장마다 외국산 경공업제품이 넘쳐나고 있으나, 사회주의계획경제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중요산업은 민영화(사유화)되어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넘어가고 있으며,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점진적으로 소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고통과 정치적 혼란은 고스란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사회주의자력갱생의 포기와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점진적 소멸은, 성장과 번영의 길을 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시적으로 불러일으켜 인민대중을 현혹하지만, 사회역사발전의 긴 과정에서 바라보면 신식민주의경제예속으로 밀려가는 역행이다. 사회주의자력갱생은 신식민주의경제예속을 넘어서는 유일한 역사적 대안이다.

북(조선) 사회주의계획경제의 발전수준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도 중공업부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북(조선)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의류, 신발, 가전제품, 주방기기, 화장품 같은 경공업제품에 눈길을 돌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경제발전수준을 가늠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공업제품의 발달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가지고서는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실상을 절반밖에 파악하지 못한다.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는 중공업부문이 우선적이므로,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실상을 파악하려면 중공업부문의 발전수준과 자립수준을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남(한국)의 자본주의시장경제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서로 다른 발전경험을 비교해보면, 북(조선)이 중공업부문에서 도달한 발전수준과 자립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남(한국)에서는 1962년에 일본 닛산자동차 부품을 사들여 ‘새나라 자동차’를 조립하였고, 1966년에 일본 도요타자동차 부품을 사들여 국산화율 20%의 승용차 ‘코로나’를 조립하였고, 1968년에 미국 포드사의 기술에 의존하여 승용차 ‘코티나’를 조립하였던 것에 비하여, 북(조선)에서는 1958년에 ‘천리마호’ 트랙터, ‘승리-58형’ 화물자동차, 8m 타닝반, 굴착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하였고, 1961년에는 1만4천 여 종, 18만 개의 부품을 자체로 생산하여 조립한 전기기관차 ‘붉은기호’를 서른 다섯 차례나 실패를 거듭한 끝에 2년만에 만들어내고, 같은 해에 지하 100-120m를 지나가는 평양 지하철 공사에 착공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면서 남(한국)의 신식민주의경제예속은 경제성장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으나 더욱 심화되어간 반면, 북(조선)의 사회주의자력갱생은 경제성장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으나 더욱 강화되어갔다. 신식민주의경제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한국)의 자본계급이 첨단전자제품을 생산하고 대형승용차를 수출하고 화려한 상품광고에 파묻혀 있을 때, 사회주의자력갱생의 길을 개척해온 북(조선)에서는 자력으로 만든 우주발사체를 발사하고 각종 미사일을 수출하고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구축하였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력갱생을 고수한 북(조선)과 그것을 중도에 포기한 중국에서 각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이다.

대형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 자연히 침수지구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아야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침수지구 주민을 위해 시행하는 대책은 얼마 되지 않는 보상금을 주고 떠나라는 퇴거통지를 보내는 것이 전부인데, 침수지구의 가난한 주민들이 지방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가지고 도회지에 나가 새 집을 장만하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

2005년 12월 중국 광둥(廣東)성 산웨이(汕尾)시에서 지방정부가 대형 화력발전소를 세우겠다고 하면서 보상금은 한 푼도 주지 않은 채 지역주민의 토지와 농경지를 발전소 건설사업주에게 팔아버렸다. 그러한 야만적 처사에 반발한 지역주민들은 칼, 몽둥이, 화염병, 사제폭약으로 무장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지방정부관리 여덟 명을 인질로 잡고 대치하였던 시위대는 최루탄을 발사하고 총격을 가하며 진압작전을 벌인 1천여 명의 무장경찰병력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다섯 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내고 진압되었다. (『연합뉴스』 2005년 12월 8일) 이것은 1989년 6월 베이징에서 일어났던 천안문사태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유혈폭동이었다.

이러한 폭동은 자본주의시장화를 촉진하여 경제성장을 이끌어 가는 이른바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socialism with the Chinese characteristics)’에서 계속하여 일어나는 위험천만한 요인이다. 요즈음에 일어난 대규모 폭동을 헤아려보면, 2005년 4월 10일 저장(浙江)성 뚱양(東陽)시 주민폭동, 2006년 10월 하순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시 학생소요사태, 2006년 11월 8-9일 광둥성 포산(佛山)시 농민폭동, 2007년 1월 17일 쓰촨(西川)성 다저우(達州) 주민폭동, 2007년 3월 9-12일 후난(湖南)성 주민폭동, 2007년 6월 6일 하난(河南)성 정조우(鄭州) 학생소요사태 등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폭동의 연속은, 1993년 3월 29일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는 조항을 명기하고 국영기업이라는 개념을 국유기업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결국 사회적 소유의 생산수단에 대한 관리를 ‘자유화’하였던 이른바 ‘경제개혁’의 비극적 결과이다.

그런데 발전소 건설사업과 관련하여 폭동이 일어난 중국과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는 나라가 있으니, 자본주의시장화를 거부하고 사회주의자력갱생을 견지하는 북(조선)이다. 특히 지방정부가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위해서 현지의 토지와 주택을 사들이는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곳은, 량강도 삼수군에 있는 대형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이다.

2006년 3월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발전소가 건설되면 침수지역에서 많은 철거세대들이 생기게 되겠는데 그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내가 삼수발전소 건설장에 온 것은 언제를 어느 정도 쌓았는가 하는 것을 직접 볼 뿐 아니라 발전소건설과 관련하여 침수지역에서 철거하는 주민들의 살림집 건설문제에 대하여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집을 지어도 본래 살던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삼수발전소 건설과 관련하여서는 두 개 전선, 다시 말하여 발전소건설과 철거세대주민들의 살림집건설을 다같이 밀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도 기본은 살림집건설입니다. 사회주의의 기초는 인민이며, 인민에 의거하고 인민의 지지를 받아야 사회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로동신문』 2007년 5월 19일)

삼수군에서는 그날로 살림집건설 지휘부가 조직되었다. 량강도 도시설계연구소가 살림집 설계를 맡고, 6.18 건설돌격대 혜산시 려단이 살림집 건설공사를 맡았으며, 량강도의 여러 지방행정기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석탄공업성, 화학공업성 등 내각의 성급 기관들도 살림집 건설에 동참하였다. 거대한 삼수발전소를 완공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었으나, 침수지역 철거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는 데 힘과 정성을 쏟은 결과, 불과 한 달 남짓한 사이에 혜산시 모정리에 180 가구가 입주할 새로운 주택단지가 훌륭히 건설되었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10일) 그와 더불어 2006년 6월 15일 삼수발전소가 착공한지 2년만에 완공되었다.

삼수발전소 침수지역 철거세대들이 무상으로 공급받은 새 문화주택에 들어가던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준 ‘사랑의 선물’까지 받게 되자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신문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로동신문』 2007년 5월 19일)

오늘 남(한국)의 아파트건설은 난개발과 투기행위가 소란을 피우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추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는데 비하여, 북(조선)에서는 사회주의식 주택건설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사상진지를 구축하여 사회주의사상사업을 최우선 과업으로 밀고 나가는 사회주의발전전략,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통하여 수령의 사회주의사상령도를 실현하는 사회주의발전전략은, 북(조선) 이외의 사회주의건설과정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발전전략이 지닌 독창성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8. 사회주의계획경제 성장의 정치적 의미


 

요즈음 조미관계의 변화동향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운데는 북(조선)을 대하는 미국의 의도가 과연 바뀐 것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종류의 물음은 조미관계의 변화가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관계에서 일어난 세력관계의 변화라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의 의도’란 미국 인민 2억9천800만 명의 의도가 아니라, 제국주의세계체제를 틀어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과 미국계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의도를 뜻한다. 그들의 의도는 제국주의정책 또는 제국주의전략으로 구체화된다. 그런 뜻에서 말하는 ‘미국의 의도’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과 미국계 제국주의독점자본의 근본속성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제국주의세계체제가 무너지고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체제가 세워질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부쉬정부가 이전과 달리 다소 유화적인 태도로 북(조선)을 대하는 까닭은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과 미국계 제국주의독점자본의 근본속성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진 부쉬정부가 북(조선)의 정치적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태도로 북(조선)을 대하는 것이다.

만일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에서 북(조선)이 사회주의반제투쟁의 전략적 우세를 지속적으로 보장하지 못하여 반제공세의 압박력이 느슨해진다면, 그리하여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북(조선)의 정치적 요구를 무시해도 되는 경우라면, 현재 조미관계에 조성된 정세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역공으로 다시 뒤집힐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고 그 관계의 정상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북(조선)은 사회주의반제투쟁의 전략적 우세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면서 반제공세의 압박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지난 시기 클린턴정부가 북(조선)의 ‘핵문제’를 도발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시작된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이 이어져온 14년 동안, 북(조선)의 사회주의반제투쟁은 사회주의혁명무력의 안받침을 받은 사회주의정치역량에 의해서 전략적 우세를 유지해왔으면서도 14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략적 승리를 쟁취할 수 없었던 데는 까닭이 있었다. 그것은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로 조성된 세력관계에서 때때로 정체현상이 일어나곤 하였기 때문이다.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로 조성된 세력관계에서 정체현상이 일어난 까닭은, 사회주의반제투쟁을 밀고 나가는 북(조선)의 사회주의정치역량을 받쳐주는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상당기간 동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북(조선)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침체현상은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과 미국계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북(조선)이 머지 않아 무너질 것이라는 ‘급격한 붕괴’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북(조선)은 사회주의반제투쟁의 전략적 우세를 변함없이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한 전망은 오늘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성장기에 들어섰다는 현실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사회주의계획경제의 성장은 사회주의반제투쟁의 물질적 기초가 강화되었음을 뜻한다. 북(조선)의 사회주의반제투쟁이 이전보다 강화된 물질적 기초 위에서 전개될 때, 그 투쟁의 전략적 우세는 물질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유지,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북(조선)이 사회주의반제투쟁의 전략적 우세로 조성해놓은 현재의 조미관계의 변화방향이 거꾸로 뒤집어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2007년 6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