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을 다시 읽는다

<연재기고>제2차 남북정상회담 어떻게 볼 것인가 2

박경순 (한국진보연구소 상임연구위원)
 

 

8월28일-3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특히 의제와 관련한 많은 논란들이 오가고 있다. 통일뉴스는 박경순 한국진보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의 연재 기고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게재한다. 장기 연재 기고인 만큼 독자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1.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의의와 정치적 과제
2. 6.15공동선언을 다시 읽는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7년의 성과와 과제>
3. NLL문제의 진실과 해법
4. 남북경협의 현황과 향후 과제
5.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방향과 방도
6.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
7.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전망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면서 6.15공동선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6.15공동선언은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문건인데, 이것은 단순한 합의 문건이 아니다. 그것은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의 자주통일의 이정표를 제시한 역사적인 선언이며, 남북관계 발전과 조국통일운동을 추동해 온 기관차였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면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역사적 합의와 문건이 나올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높아가고 있다. 제2차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하면서 제1차 정상회담의 결실인 6.15공동선언을 다시 분석해 보고, 그 성과와 남겨진 과제를 점검해 본다.

1. 6.15공동선언의 탄생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58분, 김대중 대통령이 탑승한 전용기가 평양순항공항에 내려 트랩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트랩을 내리기에 앞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평양을 잠시 응시하다가 트랩을 서서히 내려왔다. 트랩에서 내려온 김대중 대통령을 맞은 것은 바로 북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양 정상이 뜨거운 손을 맞잡는 순간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시작됐다.

북측의 뜨거운 환대에도 불구하고, 양 정상의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북정상들은 그동안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고, 이 과정에서 격렬한 토론과 논쟁도 있었고 결렬위기도 겪었다. 하지만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지향하는 양 정상의 심정과 의지로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6.15공동선언이라는 옥동자를 낳았다. 양 정상은 2000년 6월 15일 새벽(정확히는 6월 14일 자정 무렵) 두 손을 맞잡고 번쩍 들면서 6.15공동선언 합의사실을 내외에 선포했다.

6.15공동선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남북 공동선언문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이산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 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2. 6.15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

6.15공동선언은 단순히 두 정상의 합의사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염원과 의지의 결정체이며, 자주통일운동의 역사에서 커다란 획을 그었다. 6.15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는 지대하며, 그 생활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결적 남북관계를 화해 협력적 남북관계로 바꾸어 놓았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으로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형성 발전되어 왔던 화해 협력적 흐름을 시대의 대세로 뒤바꾸어 놓았다. 6.15공동선언으로 과거 대결적 남북관계는 화해 협력적 남북관계로 전변되었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의 거대한 흐름이 뒤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어졌다. 광범한 국민 대중들은 반공반북이데올로기의 포로상태에서 벗어나 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됐으며, 이제 더 이상 격멸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화해협력, 공존공영, 단결 단합해야 할 동포로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교류와 협력, 단결과 단합, 대화와 협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했고, 민족대단합의식이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둘째, 자주통일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6.15공동선언은 자주통일선언이며, 민족대단합선언이다. 6.15공동선언의 발표로 칠천만 민족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이정표를 가질 수 있게 됐으며, 자주통일운동을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갖고 목적지향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나침반을 갖게 된 것이다.

민족의 통일은 본질상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문제인 것이며, 외세와 반통일 세력과의 치열한 투쟁을 동반하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사업인 것이다. 따라서 민족적 대단결과 단합을 통해 전민족적 역량을 총결집해야만 실현 가능하다. 민족적 단합과 단결을 이룩하고 조국통일운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밀고나가기 위해서는 민족공동의 통일강령과 이정표가 확실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림 없이 자주적 통일운동을 추진해 나갈 수 있으며,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

6.15공동선언은 남북의 양 정상이 합의한 남북공동의 통일강령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이념적 기치 아래에서’ ‘어떤 원칙에 기초해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통일을 실현해야 하는가 하는 제반 문제들이 다 망라되어 있다. 남북이 합의하고 통일의 방향과 방도가 총망라되어 있다는 바로 이점에서 6.15공동선언은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며, 통일의 이정표로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의 이정표를 갖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6.15공동선언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이다.

3. 6.15공동선언 제2항에 대한 과학적 해석

6.15공동선언에는 조국통일의 근본이념과 실현방도가 잘 밝혀져 있다.

6.15공동선언 제1항에는 조국통일을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조국통일을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것, 이것이 바로 6.15공동선언의 핵이며 기본사상이다. ‘우리 민족끼리’야말로 조국통일운동에서 견지해야 할 기본정신이며 이념이다. 그것은 외세의 개입을 반대하는 민족자주사상이며,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에 의해서 통일을 이룩해 나가자는 민족대단합사상이다.

6.15공동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부분이 바로 공동선언 제2항이다. 공동선언 제2항에서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고 보고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혀져 있다.

이 조항을 두고 남측의 많은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남측의 ‘연합제’안을 북측이 수용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국가연합형태의 통일방안을 당면 통일방안으로 제출하고 있다. 반면에 진보적 통일운동단체들에서는 반대로 남측이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통성이란 ▲영구분단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 ▲양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한 데 기초해서 ‘체제 공존’형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 ▲외교 국방권은 양 지역정부가 갖고 있는 데서부터 출발해 통일정부 구성을 시작한다는 것 등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가연합’이 아니라 ‘연합제’라고 규정한 점을 유념해야 한다. 사실 남측의 역대정부가 제시한 연합제 안은 ‘국가연합제안’이다. 국가연합이란 원래 두 개의 국가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one korea’가 아닌 ‘two korea’ 노선으로 분단영구화론이다. 따라서 이것은 통일방안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연합을 북측이 인정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합제안’이란 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연합의 부정적 본질을 거세하고, 통일국가를 지향하되 잠정적으로 두 개의 주권적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한데 기초해서 외교권과 국방권을 지역정부가 대부분 갖고 있는 형태에서 통일정부 구성을 시작하는 방안을 가리킨다.

결국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성이 있다고 보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것은 체제공존형 통일정부 구성을 목표(실질적으로 연방제 통일정부)로 통일을 지향하되, 현실적으로 남북 양 지역정부가 갖고 있는 외교 국방권을 인정한 기초위에서 단계적으로 통일을 실현해 나가자는 방안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형태적으로 연합제에서 통일정부 구성을 시작하되 연방제 통일국가로 목적의식적으로 지향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으로서 남북 통일방안을 예술적으로 결합한 창조적 통일방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6.15공동선언의 생활력

2000년 제1차 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발표 이후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는 몰라보게 전변했다. 6.15공동선언의 힘으로 발전해온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의 변화발전에서 이룬 성과는 그 이전 분단 55년 동안 이룩된 성과를 훨씬 뛰어넘은 것으로 놀랄만한 성과를 이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15공동선언의 힘으로 전진해 온 남북관계 변화 발전과정에서 이룩된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적대적 대결상태에서 벗어나 화해협력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다.

6.15공동선언은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그 이전에도 남북 교류협력이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남북관계의 기본 틀은 여전히 적대적 대결관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광범한 국민 대중들은 반북대결의식의 포로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질적으로 바뀌었다. 광범한 대중들은 이제 더 이상 북한을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 공동 번영해야 할 동반자 관계로 인식하였다. 또한 한반도 전쟁의 근원이 북한의 남침이라는 여론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은 더 이상 남침은 없다고 느끼고 있으며, 오히려 미국이야말로 한반도 전쟁위기를 낳는 근원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동안 수차례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해 북한핵실험이 실시된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북핵문제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민권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핵실험 이후 KBS 1라디오 「김방희, 지승현의 시사플러스」에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어느 나라에 있는가?”라는 문항의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여기에서 정작 핵을 개발한 북한은 37.2%인데 비해 미국은 44.3%라는 수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또한 북 핵실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도 남북의 민족공조를 통해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지지가 53.1%였고, 미국에게 대북압박정책 포기를 요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13.1%였으며, 미국의 대북제재 동참 지지여론은 27.6%에 지나지 않았다.

둘째, 남북의 교류 협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우선 남북교역액을 보면 2000년 4억2천5백만 불이었던 남북교역액이 2006년도에는 13억4천9백만 불로 증가해, 6년 동안 300%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 남북 인적 교류현황을 보면 2000년 한 해 동안 방북인원은 7280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6년에는 100834명으로 무려 14배 이상 증가했다. 남북교류협력은 이처럼 통계수치상의 변화보다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업이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상징적 징표로 될 것이다. 또한 2005년 북한의 아리랑 공연에 수천명의 남측민중들이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는 것도 현 남북관계 발전의 성숙도를 잘 보여주는 지표로 될 것이다.

특히 남북의 경제적 교류협력은 민족경제의 공동번영을 위한 유무상통의 경제협력을 지향하는 단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최근 남측은 경공업 원료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북측은 지하자원 개발권을 남측에게 부여하는 새로운 경제협력 방식이 도입되고 실험되고 있다.

셋째 당국과 민간 차원의 대화와 협상, 사회문화적 교류와 협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핵실험의 여파로 당국사이의 대화가 부분적으로 단절된 적이 있기 했지만 장관급 회담을 기둥으로 각종 당국간 대화와 협상이 지속되어 각종 남북 당국간 현안문제들을 해결해 왔으며, 특히 경제협력을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통신 통행 통관에 관한 절차와 협약을 제정해 실천하고 있다.

또한 남북 경제협력을 보다 활성화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해 나가기 위한 경제협력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고 있으며, 개성공단 내에 남북 공동의 사무소를 개소해 일상적인 접촉과 협상을 진행시켜나감으로서 경제협력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남북 장성급 회담을 개최함으로서 군사적 차원의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초보적 협상을 진행시켜가고 있다.

당국간 대화와 더불어 민간차원의 대화와 교류협력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통일운동을 위한 남북 해외 공동의 통일운동기구인 6.15공동위가 결성되어 전 민족적 통일운동을 활기차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지원과 협력사업도 활기차게 펼쳐져 왔다.

넷째, 우리 민족과 미국의 대결구도가 전면화 되면서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한 민족공조 역량이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됐다. 조국의 자주적 통일은 그 누가 선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자체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이룩해야 할 민족적 과업이며, 국내외 반통일세력과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개척되는 법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자주통일운동의 주체적 역량을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것이다.

6.15공동선언 이후 광범한 대중들 속에서 반북대결의식이 청산되고 민족자주의식, 민족대단결의식이 비약적으로 성장발전함으로서 과거 남북대결구조가 ‘우리 민족과 미국’의 대결구도로 전변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범한 대중들이 자주 통일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자주통일운동의 주체역량이 비약적으로 강화 발전되었다. 이것이 6.15공동선언이 가져다 준 위대한 결실이다.

이상과 같은 모든 것들은 현재의 남북관계가 6.15공동선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달라졌으며, 그 어떤 광풍이 몰아쳐도 결코 흔들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작년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 대중들이 남북대화와 남북화해협력을 지지하고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중단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사실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이와 같은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은 결코 6.15공동선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6.15공동선언의 힘에 의해 남북의 화해협력관계는 힘차게 전진해 올 수 있었다고 본다.

5. 6.15공동선언과 제2차 정상회담의 과제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의 발전과정은 6.15공동선언의 힘과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는 결코 순탄한 길만을 걸어왔던 게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험로를 헤쳐 왔다고 봐야 한다. 당국 간 대화의 주춧돌인 남북장관급 회담만 해도 1년 가까이 중단됐던 적이 두 번이나 있을 정도로 중단과 회복을 거듭해왔다. 남북관계 발전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장관급회담이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었을 정도이니 다른 것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과 국내 반통일세력들의 ‘6.15공동선언 죽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두 가지 방식으로 ‘6.15죽이기’를 시도했다.

첫째는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북 강경압살정책을 펼침으로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북한 핵 개발의혹을 핑계 삼아 한국정부로 하여금 ‘선(先) 핵문제 해결 후(後)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정책을 선택하도록 압박했다.

둘째는 남북관계 ‘딴죽걸기’이다. 미국은 소위 대북송금의혹을 폭로하면서 반통일세력을 앞장세워 대북송금 특검을 관철시켜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철도도로 연결사업 에서도 소위 군사분계선 관리권을 내세워 간섭하고 방해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노골적으로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고 있는 반(反)통일세력들은 미국의 후원과 지지아래 퍼주기 논쟁, 대북 송금 특검 등 남북관계 발전에 발목잡기로 일관해 왔다.

남북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미국과 반통일세력들의 방해와 간섭 때문만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 탓도 크다. 무엇보다도 6.15공동선언의 이행관철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선 핵문제 해결, 후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그릇된 정책노선에 매달려 수 년 동안 시간을 허비하고, 남북간 많은 오해와 불신을 확대시키고, 남북관계 발전에 암초를 던져놓았다.

그 결과 참여정부 시기 남북관계는 답보와 정체를 크게 면치 못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대북화해협력 정책이라는 기본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탓에 과거처럼 대결적 남북관계로 후퇴하지는 않았지만, 칠천만 민족의 여망에 부응해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발전시키고, 6.15공동선언 관철의 결정적 국면을 창출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단순히 결정적 국면을 창출하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결정적 위기까지 몰아갔다. 북 핵 실험국면에서 쌀 비료 지원 중단방침은 남북간 기본신뢰를 허물고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는 비이성적 방침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참여정부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6.15공동선언을 확고히 지지하고, 그 이행을 위한 실천적 태도를 갖고 남북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모든 여야 정치인들에게 남북 간 기존 합의를 존중하도록 요청했던 것은 매우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다름 아닌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큰 것을 추구하지 않고 실절적인 성과를 도출하는데 힘을 도출하는데 힘을 쏟겠다고 언명했는데,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무슨 새로운 커다란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초점이 있다기보다, 남북정상이 다시 만나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과 그 이행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6.15공동선언 이행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해와 애로점들을 평가하고 그것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실천적 회담이 되어야 한다. 현재 6.15공동선언 이행에서 걸린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교류협력의 단계를 뛰어넘어 정치군사적 화해협력의 단계로 발전하는데 걸림돌로 되고 있는 소위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둘째는 6.15공동선언 제 2항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찾는 문제이다. 특히 6.15공동선언 제 2항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찾는 문제는 매우 절박한 과제이다. 칠천만 민족에게 자주통일의 구체적 전망과 실천적 경로를 제시해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다. 제2항에서 제시한 방향대로 통일정부를 구성해 나가기 위한 민족통일기구를 내와야 남북관계는 공고한 토대위에 올라서고, 통일의 대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은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6.15공동선언을 완전히 이행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도를 제시함으로서 조국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여는 통일회담으로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