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실현’의 전환적 국면을 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연재기고>제2차 남북정상회담 어떻게 볼 것인가 5

박경순 (한국진보연구소 상임연구위원)

 

 

8월28일-3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특히 의제와 관련한 많은 논란들이 오가고 있다. 통일뉴스는 박경순 한국진보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의 연재 기고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게재한다. 장기 연재 기고인 만큼 독자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1.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의의와 정치적 과제
2. 6.15공동선언을 다시 읽는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7년의 성과와 과제>
3. NLL문제의 진실과 해법
4.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경협
5. ‘한반도 평화실현’의 전환적 국면을 열 제2차 남북정상회담

6.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
7.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전망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2.13합의>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려는 구상을 공공연히 내비쳤고, 이에 발맞춰 이해찬 전 총리가 평양과 워싱턴을 드나들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를 중요 정치현안으로 부각시켰다. 이해찬 전 총리는 당면 최대의 현안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라면서 이를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과 미ㆍ중 4개국 정상이 모여 한반도 종전(終戰)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되다 보니, 모든 언론에서는 앞 다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일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선언이 발표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다수의 견해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구체적 조건과 현실에 대한 과학적 타산 없이 주관적 요구와 바람을 쏟아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기대는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를 왜곡시키면서, 과도한 기대와 그로 인한 실망을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실현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갖는 의의와 어떤 구체적 논의와 합의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를 예상해본다.

1. 6.15공동선언에서 평화의제가 빠진 이유

6.15공동선언에는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빌미로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1차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와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고 난 후 제 일성(一聲)은 ‘이제 더 이상 한반도에는 전쟁은 없다’는 선언이었다. 이것은 남북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6.15공동선언에 담기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남북이 자주적으로 한반도 평화문제를 풀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문제는 매우 복합적이며 복잡한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중에는 남북이 풀어야 할 문제도 있지만, 남북이 풀 수 없는 문제들도 허다하다. 사실상 한반도 평화문제에서 남북이 풀어야 할 문제들보다,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할 문제들이 훨씬 더 본질적이며, 핵심적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평화문제에서 핵이라 할 수 있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교체문제,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이 한국정부에게는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그 문제들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 합의를 할 수 있겠으며, 설령 그 어떤 합의가 나온다 한들 그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문제의 본질적이고 핵심적 문제들이 해결될 전망이 구체적으로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간 풀어야 할 평화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합의를 도출해 내고 실천하기 어려운 게 한반도 군사구조의 현실이다. 과거 1991~92년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 백지화된 까닭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무력의 불사용과 무력침략의 포기, 대립되는 의견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 불가침의 경계선과 구역의 명시, 남북 군사공동위 구성 및 운영 등의 불가침에 관한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한 기틀을 쌓았다.

그런데 미국이 돌연 ‘북핵 의혹’을 부풀어 NPT 규약에도 없는 특별 핵사찰을 강요했고, 북한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함으로서 한반도는 전쟁일보 직전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아 갔다. 미국의 이 같은 돌발적인 도발로 인해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 직후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남북이 아무리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낸다한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군은 자동적으로 ‘미국의 전쟁’에 동참해야 하는 게 한국의 슬픈 운명인 것이다.

1993~4년의 ‘한반도 전쟁위기 사태’는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바뀌거나, 미국의 독단적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자위적 전쟁억지력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간 그 어떠한 군사적 합의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료하게 입증됐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이러한 조건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변화도 불투명했고, 미국의 독단적 전쟁을 억지할 수 있는 자위적 전쟁억지력도 아직 확보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그 어떤 평화의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무리였다. 바로 이점이 6.15공동선언에서 평화의제가 빠진 이유이다.

2. ‘한반도 평화’ 의제에서 제1차 정상회담과 다른 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남북 간 협의와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제1차 정상회담과는 다르다.

첫째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이다. 북한 핵무기 보유와 핵실험에 대한 가치판단과는 별도로 그것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억제함으로서 미국이 손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이견을 가진 전문가들은 없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옳건 그르건 1990년대 이후 줄곧 한반도 전쟁위기를 야기해 왔던 미국의 대북선제공격 전략을 제어함으로서 북미대화와 협상국면을 촉진시키고 있고,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다.

둘째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완화와 그 결과물인 <2.13합의>이다. <2.13합의>의 본질은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전략의 포기선언이며, 북미평화공존 의지의 구체적 표현이다. 2.13합의를 통해 미국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북미관계정상화로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을 국제적으로 밝혔다. 이러한 <2.13합의>로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고, 한반도 긴장이 부분적으로 완화되면서,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북 핵실험과 2.13합의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수정되고, 한반도 긴장이 부분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 의제 중에 남북이 풀어야할 평화 의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3. 남북이 풀어야할 ‘한반도 평화’ 문제

‘한반도 평화’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중층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그중에는 남북 간 풀어야 할 문제들도 있고, 남북 간 풀 수 없는 문제들도 많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일부에서는 남북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론을 내세우며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에 대한 합의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문제의 구체적 현실에 대한 무지, 아니면 한반도 평화문제의 본질에 대한 의도적 왜곡이다.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 교체를 통한 공고한 평화보장체계의 구축 ▲ 북미관계정상화 실현 ▲남북 군사적 대결구조의 화해협력구조로의 전환 ▲ 남북화해협력과 자주적 통일의 실현이라는 4대 핵심요소가 실현되어야 한다. 이중에서도 핵심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교체문제인데, 이를 위해서는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 평화관리체계의 구축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정부의 책임과 권한 밖에 있다. 한국정부의 독자적 판단과 결심에 따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남북 사이에서 이 문제들을 협의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교체를 통한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문제는 결코 남북정상회담의 중심의제로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문제들을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정부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서 한 축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포괄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논의 차원이지, 남북 사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답이나 결론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에 ‘중심적 의제’로는 될 수 없다.

남북이 풀어야 할 한반도 평화문제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교체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아니라 남북 불가침과 군사적 긴장완화,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군사 분야에서의 화해협력구조의 구축 문제이다. 즉 남북 군사적 대결구조를 군사적 화해협력구조로 전환시킴으로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을 구축하는 문제일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적론의 철폐 문제, NLL 문제, 군사적 충돌 방지와 국방 분야의 남북협력 문제 등이 주로 협의될 것이다.

이중에서 초점으로 되고 있는 부분은 ‘NLL 문제’이다. 일부에서는 NLL 문제는 절대로 의제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억지주장이다. 이 문제가 남북 사이에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되고 있는데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우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정상회담에서 논의되는 순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된 수준을 부정할 수 없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된 수준이란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 제10조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 해온 구역으로 한다.”를 말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NLL은 해상경계선이 아니며, 해상경계선은 남북이 협상을 통해 정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NLL의 재설정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될 가능성은 낮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기존 남북 간 합의된 4대 합의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천명한 마당에 이미 합의된 NLL 재협상 문제를 거부할 명분도 까닭도 없다. 문제는 NLL 문제해결이라는 구체적 현안에 대한 해법을 뛰어 넘어, 이를 포함해 남북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사적 화해협력(신뢰구축)을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중심적 과제로 설정하느냐의 여부이다.

남북정상이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사적 화해협력을 향후 남북관계 발전의 중심과제로 설정하는데 합의한다면, 이를 위한 큰 틀의 원칙과 방향, 구체적 방도와 제도적 장치가 정상회담의 성과물로 제시될 것이다.

4. ‘한반도 평화’ 실현의 새로운 장을 열 제2차 정상회담

만약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을 위한 큰 틀의 원칙과 방향, 구체적 방도와 제도적 장치가 합의된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있어서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제1차 정상회담 이후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교류협력의 초보적 단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의 작용 탓이지만, 주로 정치군사적 대결구조의 온존 탓이 크다. 2002년 제2차 서해교전의 경험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6.15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특히 군사 분야에서는 한 치의 진전도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장성급 회담이 간헐적으로 열리긴 했지만, 주적론, 한미합동군사훈련, NLL문제에 막혀 번번이 무산되는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방향과 방도에 대한 합의가 이룩된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변으로 될 것이며, 남북관계 발전의 질적 도약을 촉발할 것이다. 이러한 합의가 도출된다면 2.13합의 국면과 맞물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며,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의 가능성이 열린다면 그것은 자주통일의 결정적 디딤돌로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문을 열 이번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