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출명장 김정일 국방위원장 <1>

김정일장군연구서울시민위원회 (2007년 9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족자주의 앞길을 밝히는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지장이다>

 예로부터 장수는 지장, 맹장, 덕장이 있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결전에 나선 장수들의 기질과 능력을 판단하는 주요한 징표로 되었다. 무릇 한 나라의 무력을 책임지고 사활을 건 전쟁에 나서는 장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가 없는 장수는 결국 수많은 병사들을 죽음에로 내몰고 외세의 교활한 간섭과 침략을 버텨내지 못한다. 
 그러기에 선조들은 지장을 귀중히 여겨왔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서희와 같이 외교담판으로 영토를 지켜낸 지장도 있었다지만 최고의 지장은 바로 항일유격대로 일제의 백만 관동군을 물리치고 조국광복의 대업을 이룩한 김일성 주석과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선군혁명영도의 새 장을 열어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하겠다. 
 만주의 광야에서 일본군의 수적, 기술적 우세는 결국 포위 기습전, 일행천리 전술과 같은 신출귀몰한 전략이 아니고서는 이겨낼 수 없는 것이며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 투쟁 승리는 바로 위인의 예지와 지략의 산물 그 자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역사가 90년대에 펼쳐졌으며 고립무원이나 다름없는 국제 정치 환경에서 최강을 자랑하는 제국주의 미국을 총대로 무릎 꿇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야 말로 지장 중의 지장이라고 할 것이며 우리 민족사를 민족자주의 방향으로 확고히 지향시키는 영도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천재성과 지략은 이미 어린 시절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항일무장투쟁의 총포성을 듣고 항일유격대와 함께 생활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 총명성을 인정받았다. 
 항일유격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탄생을 민족사의 경사로 백두광명성의 탄생으로 열렬히 반겼다고 한다. 북한에서 백두산 근방에 발견된 구호목들에도 이런 구호들이 쓰여 있어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이처럼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 여사 그리고 항일유격대원들의 희망과 기대를 안고 태어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군대의 병영에서 총포성을 듣고 항일유격대의 영활한 군사활동을 보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산과 만주 광야에서 일제와 싸운 항일 유격대 속에서 투철한 애국의 심장과 넋을 배우며 자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린 시절의 총명함에 대해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주 어린 나이에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수학적 원리를 배우면서 단순한 수학적 산법을 뛰어넘어 진흙덩이나 물방울 같은 것은 두개를 합치면 하나로 되는데 그저 단순한 하나가 아니라 양적으로 두개 만한 크기를 가진 더 큰 하나가 된다는 것을 주장해 교사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이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장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일심단결의 위력이 이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철학적 원리를 깨우친 것이라고도 하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릴 때부터 세상의 비밀을 다 알고 싶어하고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풀어보고 싶어했다고 한다. 다섯살때에 정원의 꽃밭을 거닐며 이 세상에는 검은 꽃과 풀색 꽃이 없다는 것과 그 이치도 알아내고 유치원 시절 <지> 자를 가지고  지구, 지도, 지주와 같은 단어를 꼽아내며 그 개념까지 완벽하게 정의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런 명석함이 무엇에도 막힘 없고 자신감 있으며 모든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지략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기초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처럼 어린 시절에 완숙하고 총명했던 것은 남다른 성장배경과 함께 우리 민족사의 두 차례나 되는 전쟁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다는데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항일유격대와 함께 컸고 10대에는 6.25 전쟁이라는 대전쟁의 불길 속에서 자랐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수난 그리고 승리가 중첩된 역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누구보다도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주었고 자주적인 운명개척의 길을 밝히는 지략을 갈망하며 익혔던 것이다.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청년시절에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다재다능한 사상이론가, 군사지략가로 되었다.  

 청년시절은 인생에 있어서 세계관이 정립되고 가장 왕성하고 활발한 지적 활동을 벌이는 시기라고 하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놀라운 예지와 사상이론가의 자질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실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치일선에 나설 때에도 항일투사들을 비롯한 원로들의 지지를 받게 된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등중학교 시절과 대학시절에 역사와 사상, 문화와 군사 전반에 걸쳐 창조적이고 역사적인 활동으로 이름이 났었다. 10대에 우리나라 역사에 구석기 시대가 있었으며 신라가 이룩한 삼국통일은 제대로 된 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최초로 과학적인 논문으로 제시해 역사에 대한 투철한 주체적 입장과 놀라운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름난 사상이론가로 알려진 것은 선행시대의 철학을 분석하고 주체사상의 체계화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0년대에 맑스-레닌주의를 비롯한 선행 철학고전을 탐독하고 분석한데 기초하여 북한의 지도사상, 주체사상을 체계화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치열한 사색과 과학적 구상력을 지니고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해 새롭고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이를 해명해 우리 시대의 정신적 무기뿐 아니라 인류의 먼 앞날에 가서도 제기될 수 있는 철학적인 모든 문제에 완벽한 과학적 해답을 주었다.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주체사상의 체계화라는 대업을 20대의 나이에 이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야말로 사상이론의 대가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상이론의 대가로 철저한 주체적 입장과 창조적 안목을 갖춰 어떤 대적과의 대결에서도 승리를 이끌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지장으로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또한 군사활동에서도 지장으로서 업적을 쌓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대학시절 군사야영장에서 군 간부들을 놀라게 한 군사운영의 원리도 밝히고 군사 관련 논문도 썼으며 청년시절에 이미 명사수로 육해공 각종 병기에 통달한 군사가로 알려져 있다. 
 60~70년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치의 일선에 등장하는 시기로, 북한이 내적으로는 종파문제로 외적으로는 미국과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로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했던 시기이다. 특히 판문점 미류나무 사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은 미국이 수많은 해공군무력을 들이밀어 전쟁으름장을 놓는 첨예한 대결을 불러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첨예한 군사적 대결 시기에 이미 정치일선에 있었으며 김일성 주석과 함께 미국과의 전반 외교대결전을 지휘하였다.   
 북한은 미국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에 맞서 한편으로는 어떤 대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원칙적이고 단호한 외교전을 한편으로는 전쟁을 불사하는 군사적 준비를 다그쳤다. 이처럼 단호하면서 능수능라한 외교전에 결국 미국은 푸에블로호의 북한 영해 침범을 사과하고서야 그 선원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고, 세계 면전에서 대망신을 사게 되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과의 첫 대결에서 승리를 이끌어 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역사적 대결 과정에 미국 정치세력의 동향과 그들의 약점을 철저히 파악하게 되었고, 90년대 북미대결전은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탁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3.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략은 역사적인 90년대 미국과의 대결전을 승리로 이끌어 내었다. 

 90년대 구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서거, 연이은 가혹한 자연재해. 말 그대로 90년대에 북한은 탄생 이후 가장 엄혹하고 험난한 시련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 시련이 더 엄혹하고 험난했던 것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패권국가와의 전면대결을 동반한 시련이었다는데 있다. 한마디로 90년대 북한은 21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진 나라였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북한의 최고사령관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를 염려했으나 호시탐탐 북한으로 밀려드는 검은 바람은 강력한 선군바람으로 인해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엇보다 세계 진보적 민중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주었다. 당시 북한이 부딪힌 난관은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자주화운동의 차원에서 짊어진 난관이었으며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주어져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이런 사상이론적 문제에 해답을 주기 위해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며 주체에 기초한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94년 11월 1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는 노작을 발표하였다. 그 노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과학으로서 사회주의는 의연하며 사회주의의 파산은 사회주의를 변질시킨 기회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고 밝히며 사회주의 정치는 자주정치, 인덕정치로 그 길을 밝혀가야 한다는 것을 뚜렷이 밝혀 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 노작에 대해 수많은 진보적 사상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세계적 차원에서 사상강국으로서 북한의 위치가 더욱 확고해 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천에서도 북미대결전을 승리로 이끌며 선군영도를 창조해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총대와 동지애로 다져진 선군의 힘과 이에 기반한 정치외교적 공세를 양날의 칼로하여 총포성없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선군영도를 창조해 냈다.
 미국에 맞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국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타협과 무자비성, 시기적절하고 능수능란한 외교전을 펼쳤다. 
 우리를 건드린 자 용서치 않는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 소멸시켜 버리고 말겠다는 것이 북한의 배짱이었고 실천적인 태도였다. 이런 원칙적이고 단호한 입장은 미국이 구소련과 관계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강의한 태도였다. 또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으며 미본토에 대한 타격력과 무자비한 보복무력을 비롯한 강력한 군사력으로 받침되었기에 미국은 전쟁을 일으키려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노심초사했으며 그때마다 미국은 북한의 미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첨단 미사일 능력, 핵능력, 강력한 포 무력과 기동능력 등을 보고 질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도 온 몸 곳곳에 비밀장치를 해놓고 온갖 것을 꺼내놓는 마술사 같은 북한의 능력 앞에 미국은 기를 펴지 못했다. 
 성의있는 대화에는 응한다, 자주성의 원칙에서 대화가 아니면 나서지 말라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군사력이 통할 것 같지 않으면 대화를 통해 시간을 벌고 내부붕괴전략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북한은 성의있는 대화, 자주성의 원칙에 입각한 대화가 아니면 받아주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일심단결을 다지고 군사력 증강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대화공간을 통해 무슨 환상을 심으려는 미국의 기도도 통하지 않아 미국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자주성에 기초한 북한의 대화전략에 빨려 들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남북관계와 조중, 조러관계가 발전하였고 일본도 북한과 관계 개선의 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대북고립봉쇄전략의 붕괴를 의미하게 된다. 

 미국은 초기에 북한의 이런 태도에 대해 마지막 발악이라느니 조금만 누그러뜨리면 스스로 몰락할 것이라며 내부와해를 시도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미국의 기도를 앞질러 보았다. 북한이 강경하게 나오면 미국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할 것 같이 덤벼들지만, 그때마다 북한은 새로운 억제력을 공개하거나 일심단결의 위력을 시위해 미국의 지배층들이 경악케 하여 결국 미국은 반북 캠페인만 벌이다 손을 들고 마는 형국을 반복하고 만 것이다. 전임자들이 북한에 이렇게 당한 것을 알고 북한에 무시하기 전략, 내부붕괴전략으로 일관해온 부시에 대해서 북한은 핵억제력을 공개하는 비상한 담력으로 핵보유국의 위치에 올라서며 미국의 유일패권성을 여지없이 짓뭉개는 전략을 편 것이다. 
 이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놀라운 지략에 대해 미국마저도 자신들은 전략이 없는데 북한은 일관된 전략을 지니고 있으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결심이 단호하고 타격이 무자비하다며 놀라워하고 있다. 더욱이 90년대 북미대결전의 전 과정을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은 결국 미국이 북한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며 그 전반 과정을 주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놀라운 외교력을 예술이라고까지 극찬하였다. 

 북한에게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집중되는 미국의 봉쇄와 자연재해는 실제 북한 민중들의 삶에 심각한 난관을 조성하였다. 미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질식상황에 놓여 있는 북한이 백기를 들게 될 것이라 보면서 압박의 도수를 갈수록 높여갔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은 그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고난의 행군으로 돌파하였으며, 선군지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영도라는 새로운 사회주의정치방식을 정립하여 인류사의 정치사상 발전에 거대한 전진을 가져왔다.
 피눈물을 흘리며 선군의 총대로 미국의 대포위전선을 분쇄하고야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략은 이처럼 철저한 사상이론적 배경과 과학적 타산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은 북미대결을 승리로 이끌며 강성대국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4.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략은 선군과 핵으로 평화와 자주통일을 이룩하는데서 펼쳐지고 있다.

 2000년대는 90년대와 또 다른 시대이다. 정세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북한으로 넘어왔으며, 북한의 군사경제력은 날이 갈수록 장성, 강화되어 더 이상 3년 이내 북한 붕괴론과 같은 비과학적 낭설이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실제 북미관계 전반을 보더라도 미국은 아웃복서 같이 북한의 주변을 맴돌면서 국제적 봉쇄망을 좁히고 원격공격을 시도하고 있으나, 북한은 핵억제력과 미사일이라는 궁극의 주패장을 꺼내서 미국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0년대에 전화위복, 역전의 지략을 보여주었다면 2000년대에는 전면공세의 지략을 보여주고 있다.
 불은 불로 다스린다. 이것이 북한이 2006년 핵시험을 성과적으로 강행하면서 내놓은, 핵으로 비핵화와 통일을 이룩한다는 논리이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몰랐으나 현실이 이 말대로 가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최근에 6자회담이 진전되고 북미회담이 일정에 오르며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2006년 가을 북한이 핵시험을 할 때만 해도 전쟁이 오늘 내일 한다더니 지금은 전쟁위협이 누그러지고 북미관계의 훈풍이 분다고 서방 언론들부터 법적 떠들어대고 있다. 
 북한 고위 관리들의 말에 의하면, 2006년 가을 핵시험을 하고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제 고생은 끝났다, 민중들이 잘 살게 하는 것만 남았다고 언급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오늘의 정국을 내다 본 선견지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의미를 몰랐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가. 지금 미국은 북의 핵억제력에 전전긍긍하며 테러지원국을 해제한다, 적성국교역금지법을 해제한다 하면서 제발 북의 핵능력에 접근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은 돈을 수억달러 쏟아부어서라도 북의 핵능력의 정보에 접근하려 안달이다.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정치세력의 동향과 군사력을 잘 알고 있으나 미국은 지금도 북한의 핵미사일이 무슨 기술로, 원리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승리하지만 적을 모르면 패배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원리이다. 
 지금의 북미대결 형국도 결국 이런 원리의 연장이며 나를 알고 적을 아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자주통일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제 조국통일과 그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며 우리 민족의 운명도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 

 지장중의 지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있기에 우리 민족이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고 자주통일의 밝은 앞날을 내다보고 있으며 그 실현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민족사에 있어 최고봉의 명장이라는 것에 대해 응당 기뻐하며 자주통일의 앞길에 서광을 비쳐주는 원천임을 똑바로 알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