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출명장 김정일 국방위원장 <3-마지막회>

김정일장군연구서울시민위원회 (2007년 9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믿음과 사랑의 드넓은 품으로 민중을 이끄는 덕장 중의 덕장이다.>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다가오고 있다. 북미관계정상화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로 격화되는 지각변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치는 반제자주 선군정치의 결과이다. 앞으로 북한이 세계 무대의 전면에 나설수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력과 기질, 풍모는 세계적으로 더욱 지대한 관심을 끌 것이다.
세계 역사상 수많은 영웅과 위인들이 있어왔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인류를 위해 헌신하여 그 공로로 영웅이 되고 위인이 된 자도 있다. 하지만 세계의 그 어느 영웅과 위인 중에서도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민중에 대한 충성의 대오에서 강철로 단련되어 민중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장한 위인은 없으며 금강석같은 투철한 신념으로 다져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사상이론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위인도 없다. 대다수 위인들에게 사랑과 믿음은 자기 위업의 장식에 해당하는 부분적인 업적이었다. 민중에 대한 사랑 자체가 불멸의 업적으로 칭송받는 영웅과 위인은 그야말로 드물다.
믿음과 사랑의 덕장(德將)으로, 믿음과 사랑의 화신으로 김일성 주석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위인이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혁명대오에서 발휘되는 사랑의 풍모를 사상이론적 차원에서 정립하였으며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믿음과 사랑의 최고경지를 수놓아 가고 있어 진정한 믿음과 사랑의 장군, 덕장의 풍모를 떨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부신 인간애의 풍모를 미력하나마 담아보자고 한다.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간을 중시하는 사랑의 천품을 지니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매사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위인이다. 사람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람의 지위를 중심에 놓고 역할을 앞세우면서 중시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철저히 주체의 관점에서 모든 사물현상을 대하기 때문이다. 주체란 세계의 모든 운동에서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인식실천활동의 경우에 그 주체는 사람이다. 결국 모든 것에서 주체의 역할, 사람의 역할을 결정적 요인으로 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방식은 주체에 대한 명쾌한 해석, 튼튼한 철학배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사랑, 민중관은 서구정치인들이 생색내듯 펼치는 정치적 수사, 화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는 권모술수가 아닌 믿음과 사랑으로 일관되어 있다. 믿음과 사랑은 어느 한 시기, 어느 한 분야에서만 발현되고 마는 부문적인 특징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 생애, 전 사업부문에 걸쳐 일관되고 공통되게 발견되는 김정일 가치관의 기초이다. 그러하기에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충성의 화신, 민중의 충복이라 칭송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람의 역할을 결정적 요인으로 중시하는 것은 타고난 천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그에게 민중중심의 사상관점이 확고히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민중중심의 관점이 정립된 것은 백두산에서 나서 자란 유년기 경험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는 전적으로 김일성 주석과 더불어 김정숙 여사를 비롯한 항일무장독립투쟁에 나섰던 항일빨치산들의 세심하고 애정어린 사랑의 공로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늑한 요람이 아니라 독립투쟁의 포연과 빨치산의 군가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달콤한 동요 속의 자장가가 아닌 항일애국투사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느끼며 자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5세에 불과한 유년기 시절에 이미 어머니 김정숙 여사와 함께 평양지역 보통강 개수공사에 나서서 괭이 자루를 날라주는 등 어른들의 일손을 도와 부강조국의 꿈을 키웠다. 한국전쟁 이후 복구건설 사업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평양시의 부서진 건물잔해에서 벽돌을 수집하는 벽돌수집운동의 기원을 열고 학급 학우들을 전후복구건설의 장으로 이끌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점심을 못 싸오는 학급학우들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자신도 도시락을 싸지 않았으며 등교할 때에는, 모든 동무들이 책가방을 가지고 다닐 때가 되어야 자신도 가방을 들겠다며 책가방을 마다하고 보자기에 책을 싸서 학교를 다녔다. 12세 소년의 도시락 한 통과 책가방 하나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러한 일화를 통해 민중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의 천품을 알수 있으며, 이는 정치적 요구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태어날 적부터 몸에 배인 품성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어린이는 거짓행동을 하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년기 행적은 민중을 중시하는 그의 사상관점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정확한 잣대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성은 단지 민중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도와주려는 봉사심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중을 세계 모든 운동의 주인의 지위에 놓고 사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는 진취적이고 변혁적인 견해를 정립하였다. 그러하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중을 그저 도와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속에 조국애를 심어주어 자기 삶을 올바로 빛내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56년 12월 어느 날 우리는 앵무새가 아니라며 다른 나라 방식을 베끼지 말고 주체적인 학습과 생활을 하자고 학급동무들에게 호소하였으며 하나를 배워도 조국을 위해 배우자는 입장을 강조하였다. 민중을 나라의 주인의 지위에 놓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견해는 민족성원에 대한 해석까지도 주체적 시각에서 접근하도록 하였다. 대학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 해외동포의 경우 사는 지역은 달라도 핏줄과 언어, 문화가 같은 이상 다같은 한민족이라는 주체적 견해를 확립하였다.
민중을 받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관은 이렇듯 민중을 진정한 역사발전의 주체로 인식하고 그들의 지위를 나라의 주인, 변혁의 선생으로 끊임없이 높이 세우는 변혁적 군중관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간중시, 민중중시 노선은 시류에 따라 변하는 일시적 노선이 아니라 빛나는 생과 정치의 전반에 걸쳐 면면히 녹아있는 그의 기본정치노선으로 되어 있다.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중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펼치는 덕장 중의 덕장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그야말로 무한하다. 믿음과 사랑은 민중을 변혁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정치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민중을 곧 하늘과 같이 여기는 이민위천의 사상을 실천한 김일성 주석 그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전체 민중들을 변혁의 주인, 나라의 주인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 내세우고 있다.

세계 수많은 나라들에서 저마다 민중에 대한 사랑을 내세우지만 이는 지배층 중심의 사회문제를 덮어버리기 위한 기만술책일 뿐이다. 민주세력이 집권하였다는 한국만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눈물나는 절규는 자본성장의 환호성에 묻혀버리기 일쑤이다. 해당 국가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리고 그 나라에 과연 민중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존재한다면 민중사랑은 국정홍보처의 문구가 아니라 국가정책에서 제시되고 철저히 관철되어야 한다.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고 사회의 주인이라면 응당 국가재부는 철저히 전체 민중의 입장에서 사용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민중생활의 향상이 나라의 첫번째 과제로 나서야 한다.

민중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국가전반사업의 제일목표를 민중생활 향상에 놓고 있는 것이 북한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사랑은 당의 정책에 고루 녹아있다.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은 민중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을 자기활동의 최고원칙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당 제4차대회에서 민중생활의 획기적 향상을 7개년 계획의 주요고지로 내세웠다. 나아가 북한은 1970년 11월에 있은 당 제5차대회에서 공업화가 빛나게 실현된데 대해 결산하며 중노동과 경노동의 차이, 농업노동과 공업노동의 차이, 여성을 가정일에서 해방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하는 3대기술혁명을 수행할 과업을 제시하였다.

이런 당의 민중생활 향상 시책을 앞장에서 지휘한 인물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열노동과 유해노동을 종국적으로 없애는 고리를 생산설비의 자동화에서 찾았다. 1972년 김일성 주석과 함께 황해제철소를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동화 공정의 혁신단위로 황해제철소를 지목하고 자동화추진 소조를 묶고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북한에서는 1974년에 이미 제철노동자들이 고열노동에서 해방되어 텔레비전으로 제철공정을 제어하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돈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한다며 근로자들을 위한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에서는 제철설비를 들이려고 하던 그 시절에 이미 텔레비전으로 제어되는 자동화 제철소가 북한에서 가동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민중을 중시하는 정치방식을 얼마나 비중있게 실천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 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광산의 채취광물을 수송하는 힘든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은율광산에 대형콘베이어 벨트를 건설하였으며 농업분야에서는 1971년경에 이미 트랙터를 이용한 기계농사의 불을 밝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기 아래 종합적 기계화의 불꽃은 전국으로 번져 1972년 말에 이미 북한의 트랙터운전면허증 발급자는 무려 2만5천명에 달하였다. 가사노동은 어떠한가. 나라 곳곳에 밥공장, 국수공장, 고기, 과일가공공장들이 들어서 주부들의 일손을 덜었다. 또한 1975년 평양의 낙원거리 주택을 건설할 당시에 이미 모든 입주세대들에 텔레비전, 냉장고, 전기밥솥, 세탁기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살림집 건설을 수 차례 지도하면서 건설자들이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한 부분, 이를테면 주부들의 가사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찬장의 높이를 한뼘 높인다던지, 네모 일색의 가구를 벗어나 벽시계를 둥근 것으로 하여 거실 분위기를 살리게 하는 등 세심한 지도를 펼쳤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1970년대의 상황에서 자동화공정이 일어서고, 기계농업이 실현되고, 가전제품이 일색으로 갖춰졌다. 이는 당시의 기준으로 볼때 세계최고수준의 설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막 사회주의 공업국의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북한에서 어떻게 이러한 천지개벽이 일어났던가. 당시 북한이 경제적으로 충분히 여유로웠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는 곧 돈보다 민중을 앞세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중시 정치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치는 정치가 이러하니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를 사랑의 정치라 칭송하고 당의 품을 어머니 당의 품이라 부르는 것이다.

3.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군대를 최고의 믿음과 사랑으로 단결시켜 선군노선을 실현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국애족, 애민사상은 민중에 대한 믿음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된다. 사람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다. 믿음의 정치를 펼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가장 숭고한 높이의 사랑을 체현한 정치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폴레옹은 그대들이 나를 믿기에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자신의 믿음은 나폴레옹과 다르다고 하였다. 내가 동지들을 믿으니 동지들은 나를 믿어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믿음관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믿음의 정치는 군대에 대한 믿음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북한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된 선군정치가 바로 혁명군대를 믿고 그들을 주력으로 내세워 나라전반에 제기되는 과제들을 해결하는 정치방식이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인대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정립될 수 있는 정치방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불타는 정의감과 열혈의 심장을 지닌 청년대중을 사랑해왔다. 전화의 지난날 조국을 위해 초개와 같은 목숨을 바쳤던 이수복, 안영애와 같은 이들을 국가영웅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들 영웅대오는 오늘날의 길영조, 김광철 등으로 늘어나,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과 더불어 영웅적 희생정신 등 혁명과 건설에서 혁명군대가 지켜야 할 자세를 일컫는 북한의 혁명적 군인정신의 모범으로 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군인대중 사이에서 혁명적 군인정신이 꽃피어나는 것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뜨거운 군인사랑의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외진 초소일수록 마음을 쓰고 정력적인 현지지도를 한다. 안변청년발전소가 완공되었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릎까지 물이 차는 물길굴을 직접 걸어들어가 북한군대의 투쟁현장을 몸소 요해하였으며 상대 진지들과 휴전선의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덕산 초소, 전선 중부의 오성산 지휘소 등까지 직접 방문하였고 심지어는 미군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판문점까지 직접 시찰하였다.
오성산 지도 당시에는 절벽길에 차가 미끄러져 차 옆 30센티미터 여분밖에 남지 않은 위기도 있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체없이 차에서 내려 어깨로 차를 직접 밀었다고 한다. 서해안 전방초소인 초도방어대 현지지도 당시에는 매서운 파도에 수행원의 카메라가 부서질 정도로 악천후의 날씨였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초도방어대를 찾아 군인들의 격정어린 환호에 손수 답례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후방물자 창고와 식당들을 돌아보며 군인들의 생활여건을 점검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어느 부대를 방문하였을 당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방의 화구를 가늠해보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불때는 방식을 직접 점검하였다고 하며, 351고지에서는 춥지 않다며 홀로 보초서는 병사를 찾아가 솜옷을 직접 만져보고는 눈 위에 굴러도 괜찮을 정도로 따뜻하게 하라며 교체를 지시하였으며 신참 취사병의 음식솜씨가 서투르자 요리법을 직접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지도에서 독특한 점은 군인대중의 생활과 관련된 것은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고 챙긴다는 것이다. 일선의 지휘관과 수행원들의 보고만으로도 현지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파악될 테인데 스스로 직접 확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인대중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다는 화구를 직접 들여다보아야 마음이 놓여지고 춥지 않다는 보초병의 외투를 직접 만져보아야 마음이 놓여지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인대중들에 대해서는 부모님도 다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선군정치는 곧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믿음의 정치이며 사랑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얘기하는 천만의 총폭탄 대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믿음과 사랑을 핵으로 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선군시대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랑의 지도아래 온 나라가 충성과 단합의 대화원을 이루었다고 긍지높이 노래하고 있으며, 선군의 발자욱에 자신을 적대시하는 상대는 전율하지만 민중들은 행복의 웃음꽃을 피운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치는 믿음과 사랑의 정치는 이렇듯 핵폭탄보다도 강력한 북한사회의 일심단결을 낳고 있는 것이다.

4. 하늘이 내린 덕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지애를 최고봉으로 앞세워 자주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덕망에서 무엇보다도 절정인 것은 바로 사상이 같고 뜻이 같은 동지와의 사랑, 동지애이다. 변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아닌 사람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견해는 무엇보다도 대중에 대한 정치사업을 앞세우게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중에서도 사상이 같고 뜻이 같은 동지와의 정치사업을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사랑의 심장으로 대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어 동지애의 최고봉은 바로 김일성 주석에 대한 자세에서 나타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언제나 스스로를 수령의 전사로 칭하며 보다 많은 일을 하여 김일성 주석의 사업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다며 정력적으로 사업하였다고 한다. 1958년 북한에서 있은 반종파투쟁의 나날에는 옹근 닷새 밤 닷새 날을 자지 않고 김일성 주석의 곁을 보좌하였다. 김일성 주석이 서거해 북한에서 대국상이 있을 당시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헌법을 수정하면서까지 나라의 주석직을 영원히 김일성 주석으로 모시게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자신은 국방위원장의 직책에서 사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제시하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는 정치를 실천하였다. 즉 수령에 대한 충성은 생전이나 서거 이후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변혁선배에 대한 존경과 존대가 극진한 동지애의 귀감이다. 항일독립투사 1세대들이 곁을 떠나갈 때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치하였으며 대성산 혁명열사릉을 든든하게 가꾸어 우리민족자주의 뿌리를 김일성 주석이 지도하는 항일무장투쟁으로 확고히 정립시켰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던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애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이다. 비전향 장기수는 한국전쟁 시절을 비롯하여 지난 과거에 자신의 영도자와 사상을 지키며 독재정권의 전향공작에 맞서싸운 투사 중의 투사들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들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에 대한 문제가 조국통일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6.15남북공동선언에 문서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40년 전에 발생하였던 비전향장기수 문제에 대해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그의 동지사랑이 40년 세월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아가 인간의 운명문제에 누구보다도 신중한 참된 사랑의 위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의 운명문제를 다루는 당일꾼은 누구보다도 신중하게 사업해야 한다고 수 차례 강조하였다. 변혁을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책벌을 받을 수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것마저도 책벌과정에서 일꾼에게 그늘이 갈까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얼굴 상처를 고친다고 해놓고 서투른 수술로 얼굴에 칼을 대면 사람의 얼굴을 영영 못쓰게 된다며 인간의 운명문제를 다룰 때에는 한번 더 생각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의 문제를 처리하는 당일꾼들에게만은 예외적으로 남들보다 적게 자고 적게 쉬더라도 운명문제에 소홀해서는 안된다며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커다란 과오와 책벌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도 제때에 비판할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인정을 내세우고 사정을 고려해서 예외를 두게 되면 결국에는 커다란 문제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지에 대한 비판은 곧 동지의 과오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점에서 동지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오늘 반미자주화 대오에 힘차게 전진하는 역량이 수천만을 헤아리는 조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들 모두의 정치적 삶을 책임지며 한 길로 이끌고 있다. 민족자주의 길은 순풍에 돛단 길이 아니다. 민족자주의 길은 비바람을 이겨내야 하고 눈보라도 헤쳐가야 하는 어렵고도 힘든 사업이다. 그러한 자주의 길로 나서는 천만대오의 운명을 한품에 안고 총진군의 길로 이끌어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기에 그를 두고 바로 김일성 주석 그대로인 인류최고의 덕장이라고 칭송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가 오나 눈이오나 가야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라는 가사의 <동지애의 노래>를 가장 아낀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생관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지애의 노래에는 어려운 변혁의 길에도 한 길을 같이 가는 동지에 대한 당부, 변혁에 대한 동지와의 결의가 담겨 있다. 이는 곧 인간이 자주적 삶을 개척하는 길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안주할 대신 철저히 자기 영도자를 믿고 생사를 같이하는 동지로 영원히 함께가자는 것이다. 이렇듯 뜨거운 믿음과 사랑으로 동지들을 대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기에 북한의 군민들은 <김정일 만세!> 구호를 소리높여 외치면서 세상에 유래가 없는 강력한 일심단결의 대오로 반미선군총공세를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꽃피우는 믿음과 사랑의 정치, 그리고 이를 따르는 수천만 군민의 단결의 대오는, 자주적인 운명개척의 결정적 요인은 바로 지도자의 위대성이라는 진리를 각인하게 해준다. 동지에 대한 뜨거운 믿음과 사랑으로 자주위업을 실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말 그대로 믿음과 사랑의 최고 체현자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과 수천만 군민과 숨결이 닿아 있다고 한다. 이렇듯 지도자의 드높은 덕성과 애정이 빛을 발하므로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강대하다는 미국을 상대하면서도 추호의 동요나 좌절도 없이 하나같이 단결하여 계속 전진, 계속 승리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사랑, 민중사랑이 있는 한 우리민족과 세계의 자주화운동 앞에는 승리의 미래가 확고히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희망차게 전망하게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