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잃은 것과 얻은 것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에게 불리한 객관적 조건
3. 결정적 패인은 주체에게 있다
4. 승수효과의 한계와 계급득표전략의 주공전술
5.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대선패배를 겪은 민주노동당의 연말 분위기는 매우 침울하다. 요즈음 산중수복(山重水復)이라는 사자성어가 유행한다더니, 민주노동당이야말로 길은 보이지 않고 난관이 많은 형국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난히 복잡하고 어수선하였던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었으나 득표결과가 싸늘했기에 그러할 것이며, 불리한 조건에서 힘겨운 싸움으로 대선정국의 낮과 밤을 이어갔던 당활동가들과 열성당원들이 2008년 4월 9일에 실시될 총선에서 승리할 전망을 볼 수 없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패배의 아픔을 겪지 않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달성하리라고 생각하였다면 그것은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다. 일곱 해 전에 민주노동당이 첫걸음을 뗀 진보정치의 길은 풀향기 날리는 가벼운 산책길이 아니라 거센 풍파가 몰아치는 험하디 험한 항로이다. 그 험한 항로를 떠나 민주노동당이 개척한 진보정치운동은 앞으로 2007년 대선에서 겪은 것보다 더 쓰라린 패배를 얼마나 더 겪게 될지 모른다.

패배가 패배로 끝나지 않으려면 패배에서 소중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패배에서 교훈을 찾으려면 패인을 올바르게 분석하여야 한다. 잘못된 패인분석은 또 다른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패인분석에서 오류를 피하려면, 성급한 단정, 논리적 비약, 고정관념의 작용, 주관적 해석을 배제해야 할 것이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패인을 올바르게 분석하지 못하고 적당히 넘어가면, 2008년 총선에서 연속패배를 피해 가지 못할 뿐 아니라, 당의 발전전망마저 잃어버리고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이 갈림길에 이르렀다는 말은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2.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에게 불리한 객관적 조건

선거평가에 쓰이는 방법론 가운데서 유형학적 방법(typological method)이 있다. 유권자의 표심이 공약(promise)이 아니라 인상(impression)에 의해서 결정되는 선거를 평가할 때 그 방법이 유효하다.

2007년 대선후보들을 유형학적 방법으로 구분하면, 네 유형의 대선후보들이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권자의 눈에 이명박과 문국현은 경영인형 후보로 보였고, 이회창은 고위관료형 후보로 보였으며, 정동영은 상담자형 후보로 보였고, 권영길은 투사형 후보로 보였다.

신식민주의시장경제의 위기와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민생파탄이 심화되는 소용돌이 속에서 맞은 2007년 대선정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일자리 창출을 갈망하는 유권자의 여론이었다. 여론조사기관이 2007년 11월 13일에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묻는 물음에 대한 응답(복수응답)은 실업문제 해결 65.8%, 사회양극화 완화 48.5%, 경제성장 47.4% 순으로 나왔다. 또한 대선후보의 취업정책 중에서 최우선적인 과제를 묻는 물음에 대한 응답(복수응답)은 일자리 특별법 제정 40.3%, 노동자 평생교육 및 훈련 시스템 구축 39.4%, 국가고용책임제 실현을 위한 국가시스템 구축 31.8%, 매년 60만개씩 5년 동안 300만개 선진국형 일자리 창출 30.6%, 중소기업부 신설 및 500만 개 일자리 창출 30.6% 순으로 나왔다.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묻는 물음에 대해서 응답자의 36.5%가 실행력이라고 답했다.

그러한 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표심은 일자리를 지켜줄 능력이 있고 일자리를 만들어줄 능력이 있는 경영인형 대선후보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기업성공신화로 치장한 경영인 출신의 이명박이 압승하고, 또 다른 기업성공신화로 치장한 경영인 출신의 문국현이 약진할 수 있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이명박과 문국현이 일자리를 창출한 능력을 가졌는지를 검증할 수 없었고, 검증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런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인상이 중요하였다. 그들은 그러한 인상을 주는 대선후보에 표를 던졌던 것이다.

선거결과에서 나타난 대로, 경영인형 대선후보 이명박은 한나라당 안에서 돌발변수로 등장한 새로운 정적 이회창이 자기에게 돌아갈 표를 상당히 갉아먹었는데도, 그리고 '가족행복시대'를 떠드는 상담가형 대선후보 정동영이 추격전을 벌였는데도 그 두 경쟁자를 각각 여유 있게 따돌리고 압승의 고지에 올랐다. 또 다른 경영인형 대선후보 문국현은 선거용 정당을 급조하였으면서도 투표결과에서 민주노동당을 크게 앞지르는 예상 밖의 돌풍을 일으켰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투사형 대선후보가 내걸었던 '세상을 바꾸자'는 선거구호보다 경영인형 대선후보가 내걸었던 '500만 개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거구호를 더 절실한 현실감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눈에 비친 문국현은 수구성향의 경영인형 대선후보 이명박과 대조되고, 진보성향의 투사형 대선후보 권영길과도 대조되는 '진보성향'의 경영인형 대선후보였다. 이명박의 경제회생공약이나 문국현의 일자리창출공약은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지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달리 선택할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주목하는 것은, 이명박의 압승과 문국현의 약진이 그들을 중심으로 각각 결집한 두 종류의 상이한 정치세력이 주체적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신식민주의시장경제의 위기와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민생파탄이라는 객관적 조건에 영합하여 얻어낸 것이라는 점이다. 객관적 조건에 영합하여 얻어낸 압승과 약진은 일단 화려한 성공으로 보이지만, 기초가 없는 부실공사와 같은 것이다. 만일 압승과 약진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객관적 조건이 사라지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무너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압승한 것은 중도우파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심판'도 아니었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도 아니었다. 그의 압승은 그가 선동한 허구적 경제회생담론을 절실한 느낌으로 받아들인 유권자들의 감성적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정권교체를 '국민적 심판'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다.

다른 한편, 투사형 대선후보로 나선 권영길은 이명박이나 문국현처럼 '일자리를 마련해줄 경영인'으로 될 수도 없거니와, 그러한 인상을 주어서도 아니 되었다. 그에게 경영인형 대선후보로 나서줄 것을 주문하는 것은 그와 민주노동당이 경멸하고 혐오하는 자본가의 인상으로 변신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에게서 반경영인적 인상이 느껴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이처럼 유형학적 방법으로 대선후보를 평가하면, 가장 불리한 조건에 처한 대선후보는 반경영인적 인상을 가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였다.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에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표심이 쏠릴 수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는 한 가지 원인만 작용한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민주노동당의 대선패인은 복합적이다. 문제는 여러 가지 원인들을 무질서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가장 주된 원인, 가장 결정적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패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물음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하여 존재하는 정당인데, 2007년 대선에서 그들은 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그 물음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면서 2007년 대선에서 왜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일까?

어떤 행위의 주체가 겪은 가장 큰 패인은 언제나 그 주체에게 있다. 물론 불리한 객관적 조건도 패인으로 작용하지만, 일차적인 원인 또는 가장 큰 원인은 행위의 주체에게서 찾아야 한다. 패인을 파헤치는 분석과 평가에서 주체적 관점을 세워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3. 결정적 패인은 주체에게 있다

선거결과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나서는 문제는 득표전략의 성패에 대한 평가이다. 득표전략에 오류와 결함이 있으면, 득표결과가 나빠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동당의 득표전략은 다른 정당의 득표전략과 달랐다. 전략적 차별성을 가진 독자적인 전략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민주노동당의 득표전략이 수구우파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의 득표전략을 모방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을 그러한 정당들의 영원한 아류로 전락시키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민주노동당의 득표전략은 사회계급관계가 반영된 계급득표전략이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까닭은, 민주노동당이 몰계급적인 '국민정당'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연합정당이기 때문이고,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에게 향하는 표심은 사회계급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그 어떤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얻는 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표이지 지역, 연령, 성에 따라 구분되는 유권자의 몰계급적 표가 아니다.

그에 비해서, 다른 정당들의 득표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몰계급적 득표선동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저들의 몰계급적 득표선동은 '국민적 인기'에 영합하여 득표하는 선거전략 곧 인기영합득표전략이다. 그러한 몰계급적 선거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유권자의 논리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그 대신 감성적 사고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특수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정국에서 그러한 특수기능을 발휘한 것은 자본주의언론시장이 지배하는 각종 언론매체들이었다.

다른 정당들의 몰계급적 인기영합득표전략과 달리, 민주노동당의 계급득표전략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표심을 움직여서 그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게 하고 민주노동당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게 하는 선거전략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표심을 움직이려면, 그들의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고 그 요구를 실현하는 사회발전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의지와 사회발전전망을 압축적으로 담은 것이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대선공약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민주노동당의 대선공약을 알려주면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면서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는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반응이 나온다. 선거공약에는 공감하지만 실제로 당선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그들의 반응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눈에 무기력해 보인다는 뜻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무기력해 보이는 정당과 그 후보에게는 선거공약이 마음에 들어도 표를 주지는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눈에 힘있는 정당으로 보일 수 있는 방도는, 그들의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는 정치적 의지를 실천행동으로 직접 입증하는 것밖에 다른 길은 없다.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는 정치적 의지를 실천행동으로 입증하는 것은 4-5 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선거운동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계급의식화사업을 추진해야 가능한 일이다.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서 노동계급의 생산현장과 근로대중의 생활현장을 찾아갔을 때, 선거 때만 찾아오지 말고 평소에도 찾아오라고 했던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민주노동당의 계급득표전략이 일시적인 선거운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계급의식화사업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2007년 대선패인을 민중경선제를 실시하지 못한 것에서 찾는 사람도 있지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서 지속적인 계급의식화사업을 추진하지 못한 조건에서는 민중경선제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민중경선제는 계급득표전략에 복무하는 선거전술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의식화를 실현하는 두 가지 방도는 일상적 정치교육과 맞춤형 정치선동이다. 일상적 정치교육은 노동계급의 생산현장과 근로대중의 생활현장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대중단체들 속에 조직된 기층당조직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맞춤형 정치선동은 노동계급의 생산현장과 근로대중의 생활현장을 지역별, 단위별로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밀고 나가는 것이다.

노동계급 가운데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앞장서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를 지지하고, 근로대중 가운데서도 전농 회원들이 앞장서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를 지지해야 계급득표전략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얻은 매우 낮은 득표결과는 계급득표전략이 실패하였음을 말해준다. 특히 민주노동당 강세지역들에서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의 득표율이 매우 낮았던 것은 계급득표전략이 사실상 마비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전농 속에 기층당조직들을 든든히 건설하지 못한 것이 계급득표전략이 실패한 원인이다.

계급득표전략이 실패한 원인을 당내 정파갈등구도에서 찾으려 하거나, 아니면 통일강령을 실천한 당활동이 유권자들에게 친북적인 인상을 주어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비과학적인 패인분석이다. 만일 당내 정파갈등이 패인이라면, 당내 파벌들이 추악한 싸움판을 벌여 탈당, 분당, 합당, 창당이라는 고질적인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수구우파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부터 대선에서 패했어야 하는데 선거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또한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통일강령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고, 2007년 10월에 있었던 노무현 방북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이 높았던 것을 생각하면, 2007년 대선패인을 통일강령을 실현하려는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에서 찾으려는 것은 오류이다.

4. 승수효과의 한계와 계급득표전략의 주공전술

2004년 4월에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득표결과와 2007년 12월에 실시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득표결과를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얻은 득표결과에 대해서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약진이라고 평가하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정당투표에서 280만 표(득표율 13%)를 얻었으며, 지역후보투표에서 92만 표를 얻었고, 10석을 차지하여 원내진출에 성공하였다.

민주노총과 전농 속에 기층당조직들을 든든히 건설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계급득표전략이라는 개념조차 아직 갖지 못하였던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흔히 '운동권'이라고 부르는 진보정치세력들이 민주노동당에 결집한데 있었다. 이전에는 분산되어 있었던 진보정치세력들이 2004년 총선정국에 민주노동당에 결집함으로써 총선득표에서 승수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은 결집력의 승수효과였다.

그러나 총선득표에서 나타난 승수효과는 승수효과일 뿐이지,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은 아니다. 2004년 총선에서 나타난 승수효과는 2007년 대선에서 다시 나타날 수 없었다. 결집력이 불러온 승수효과는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 득표율이 13%이었으니 2007년 대선에서도 그에 못지 않게 득표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것이야말로 2004년 총선의 득표결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인식착오이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약진하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기반이 든든히 구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운동권'이 민주노동당에 결집함으로써 승수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음을 파악하였다면, 그때부터 오늘까지 삼 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전농 속에 기층당조직들을 건설하고 계급의식화사업에 당력을 집중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계급의식화사업에 당력을 집중하지 못하는 부주의와 태만이 지난 삼 년 동안 민주노동당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계급의식화사업에 당력을 집중하지 못한 조건에서 계급득표전략이 실패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민주노동당의 계급득표전략이 성공하는 길은 기층당조직 건설운동에 달려있다.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패배를 딛고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은 기층당조직 건설운동을 밀고 나갈 당활동가를 더 많이 체계적으로 길러내는 정치교육사업이다. 당이 길러낸 당활동가들은 노동계급의 생산현장, 근로대중의 생활현장에서 전개하는 기층당조직 건설운동의 주역이 될 것이다. 당활동가 육성사업과 기층당조직 건설운동은 민주노동당의 운명이 걸린 사활적 과제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08년 총선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넉 달이다. 계급득표전략은 넉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활동가 육성사업과 기층당조직 건설운동은 장기계획에 따라 수행되는 당의 전략사업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계급득표전략을 밀고 나갈 준비를 아직 갖추지 못한 민주노동당이 2008년 총선에서 2004년 총선의 득표율에 미치지 못하는 패배의 가능성이 불가피하게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대선과 총선의 연속패배는 창당 8년 차에 접어드는 민주노동당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을 안겨줄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총선패배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비상대책을 세우고 거기에 당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계급득표전략을 밀고 나갈 준비가 없이 맞게 될 2008년 총선에서 패배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비상대책은 전술운용에 달려있다. 전략을 수행할 수 없는 조건이므로, 전술을 잘 운용하여 전략적 한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계급득표전술단위는 현장분석에 의해서 설정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어느 집단, 어느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인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제기하는 다양한 요구들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에 어떤 공약과 구호로 응답할 것인가, 계급득표전술단위에 어떤 역량을 배치할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가진 매우 한정된 자원과 역량으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표심을 무차별적으로 얻어보겠다는 것은 전략만 알고 전술을 모르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계급득표전략에는 반드시 주공전술이 따라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2008년 총선에서 계급득표주공전술을 잘 써야 계급득표전략을 밀고 나갈 준비를 갖추진 못한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당력을 집중하여야 할 주공전선은 노동계급 가운데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표심을 움직이고 근로대중 가운데서도 농민의 표심을 움직이는 것이다.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의 고강도 착취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윤수탈에 신음하는 85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신식민주의무역협정의 재앙으로 농업기반이 송두리째 파괴될 위기에 처한 350만 명의 농민들이야말로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몰아줄 계급투표의 거대한 기반이다. 민주노동당이 2008년 총선에서 1천2백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의 표심을 움직이는 전술운용에 성공한다면 2007년 대선패배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5. 글을 맺으며

지금 민주노동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선거패배 그 자체가 아니라, 선거패배의 쓰라린 현실을 대하는 민주노동당의 관점과 태도이다. 한 차례의 선거패배로 열패감에 빠져 전진의 발걸음을 멈추는 진보연합정당이 있다면, 그런 진보연합정당은 일찌감치 진보의 깃발을 내려야 한다. 진보의 깃발을 들고 낡고 썩은 세상을 바꾸려는 진보정치운동은 안팎에서 몰아치는 시련의 연속이거니, 온갖 시련에 맞서 싸우는 사상과 운동만이 진보의 깃발을 당당하게 올릴 수 있으리라.

진보와 사이비진보가 갈라서는 근본적인 차이는, 성공과 순경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역경에서 나타난다. 진보는 실패와 역경이 아무리 크고 깊어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험한 싸움길에서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최후승리를 믿는 강철의 신념이 번번이 그를 다시 일으키는 법이다. 그러나 사이비진보는 한 번 쓰러지면 영영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진보로 위장하였던 탈을 내던진다.

진보에게는 그것이 겪는 모든 실패, 그것을 잠시 쓰러뜨린 모든 패배가 다 쓰라린 교훈이며 쓰디쓴 보약이다. 그래서 진보는 실패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보의 깃발 아래 절망은 없다. 신념과 의지가 살아있을 뿐이다.

패배의 아픔을 무감각하게 대하며 둥글둥글 넘어가자는 맹목적 낙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패배에서 교훈을 찾고 일어나 진보의 깃발을 다시 움켜쥘 때, 민주노동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당활동가들과 열성당원들의 심장 속에 최후승리의 신념과 의지가 살아있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이 2007년에 겪은 대선패배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값진 성과이다. (2007년 12월 2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