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와 이명박정권의 등장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북측 사회주의체제에서 일어난 정세변화
   1) 사회주의공업화 2차 발전단계로의 전진
   2) 사회주의육성세대의 사상강화와 새로운 방식의 사회주의정치

2.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일어난 정세변화와 조국통일운동의 전개
   1) 북측의 반제국주의핵전략과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
   2) 남측의 개혁개방정책과 북측의 민족통일전선전략
   3) 미국의 개혁개방정책 추진과 조국통일운동의 전개방향

3. 남측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일어난 정세변화
   1) 신식민주의경제위기를 벗어나려는 최후의 회생전략
   2) 신식민주의체제의 전반적 위기와 '한미동맹관계'의 공고화
   3) 기업경영식 실용독재로 변신한 수구우파정권의 등장
   4) 연대전선의 형성과 정치세력관계의 변화동향

 


1. 북측 사회주의체제에서 일어난 정세변화

1) 사회주의공업화 2차 발전단계로의 전진

요즈음 북측언론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경제강국건설담론이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북측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측의 사회주의공업화가 1차발전단계에서 2차발전단계로 넘어갔음을 말해준다. 우선 북측의 사회주의공업화 1차발전단계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북측은 1차발전단계에서 사회주의군중노선과 집단주의혁신운동을 밀고 나가는 추진거점을 창설, 고수하고 강화, 발전시켰다. 현장생산활동과 현장정치활동의 결합체가 사회주의군중노선과 집단주의혁신운동의 추진거점이다. 그 결합체는 생산현장 당위원회의 집단지도체계이다.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과 국영농장에 세워진 당위원회의 집단지도체계는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강화, 발전시켜온 독창적인 사회주의경리체계이며, 실패로 끝난 소련식 사회주의경제건설노선과 갈라진 분기점이기도 하다.

서구좌파, 그리고 그들의 이론을 직수입한 남측좌파는 북측의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실증적으로 연구하지 않았으므로 북측의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소련식 사회주의경제건설의 모방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소련식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실패가 1950년대 사회주의농업집단화의 포기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 사회주의공업화의 포기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소련식 사회주의경제건설은 역사기록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와 달리, 북측은 1948년에 시작한 사회주의공업화와 1958년에 완성한 사회주의농업협동화를 계속 강화, 발전시켜왔으며, 올해 사회주의공업화 60주년, 사회주의농업협동화 50주년을 맞았다.

(2) 북측은 1차발전단계에서 사회주의자립경제의 축적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사회주의국제시장에 진출하였다. 한 나라가 가진 자금, 자원, 기술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므로, 사회주의자립경제가 일정하게 발전하면 축적한계에 이르게 된다. 지난 시기 소련이 사회주의자립경제의 축적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세운 것이 사회주의국제분업체계인데, 북측은 사회주의국제분업체계에 들어오라는 소련의 요구를 물리치고 사회주의자립경제노선을 고수하였다. 사회주의국제분업을 거부한 북측은 소련의 견제조치를 받으면서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북측에 대한 소련의 견제조치는 중소분쟁으로 사회주의진영이 분열되면서 무력화되기 시작하였고, 북측은 사회주의국제시장 진출과 남남협조로 축적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사회주의국제시장의 진출은 자국에서 나지 않는 자원을 사회주의우호가격으로 들여오고, 상품과 기술을 상호교환하며, 경제발전에 요구되는 자금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지금 북측의 사회주의공업화는 '고난의 행군' 이후 약 5년동안의 회복기를 지나서 2차 발전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3) 경제정책의 중심이 경제위기관리에서 과학기술개발로 옮겨졌다.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사회주의공업화 2차발전단계의 일차적 과제이다.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2012년까지 제3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하고 선진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전자공학, 나노공학, 생명공학, 우주공학 같은 첨단공학기술개발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생산현장에 과학기술을 보급하고 기술혁신운동을 촉진하는 3대혁명소조원 활동이 2003년부터 부쩍 강화되었으며, 공장과 기업소는 2007년부터 순소득의 2%를 자체적인 기술개발비용으로 책정하고 있다.

(4)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국방공업의 선도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립경제의 발전이 국방공업의 선도역할에 의존하게 된 것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기존의 경제발전전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국방부문 중공업을 발전시키면 민간부문 중공업이 연관되어 발전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북측의 국방부문 중공업 발전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그것의 연관효과가 커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국방부문 중공업이 민간부문 중공업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 까닭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제2경제와 인민경제의 상호연관관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제2경제와 인민경제의 상호연관성을 높이면, 민간부문 중공업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5) 사회주의자립경제의 축적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자본주의세계시장과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세계시장과 접촉하는 두 개의 통로는 조중경제협력과 남북(북남)경제협력이다. 제국주의경제제재가 무력화될 때, 북측은 그 두 개의 통로를 통하여 사회주의공업화 2차 발전단계의 완성에 요구되는 자금, 자원, 기술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조중경제협력을 통해서는 생산재 생산에 요구되는 자재, 부품, 기술, 그리고 소비재를 생산하는 경공업시설을 들여갈 것이고, 남북(북남)경제협력을 통해서는 북측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남북(북남)공동으로 개발하는 자금과 기술, 그리고 북측의 중앙경공업 발전에 요구되는 자재, 부품, 기술을 들여갈 것이다. 2005년 12월 24일 북측은 중국과 5억달러 규모의 공동석유개발사업에 합의하였다.

(6) 북측에서는 인민경제선행부문이라고 부르고 남측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이라고 부르는 경제부문을 개조, 확충, 신설하기 위해 전사회적으로 힘을 집중하고 있다. 토지, 발전소, 철도, 도로, 항만, 통신, 주택, 상하수도의 현대화사업과 신설사업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테면, 2003년부터 전력생산량이 해마다 평균 20%씩 증가하고 있다. 원유수입은 현상유지상태인데도 전력생산량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은, 발전소 건설, 발전설비 현대화, 석탄증산 등의 효과에 따른 현상이다. 2003년에 말단행정단위까지 광케이블통신망을 설치하고 인트라넷을 구축하였다. 2001년부터 산림조성10개년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2005년에 대규모 토지정리공사를 완료하였으며, 2002년에 평안남도에서 개천-태성호 자연흐름식 물길공사를 완공하였고, 2005년에 평안북도에서 백마-철산 자연흐름식 물길공사를 완공하였으며, 2006년부터 황해북도에서 리상-미루벌 자연흐름식 물길공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2005년 10월 1일부터 비공식부문의 식량거래가 중단되고 양정사업소에서 정상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게 되었으며, 중국으로부터 곡물수입량이 급감하고 그 대신 육류수입량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평양에서는 2012년까지 10만세대 살림집을 건설하는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7) 사회주의상품유통이 활성화되었다. 생산부문에서는 국내에서 생산한 원료와 자재 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원료와 자재를 기업과 기업끼리 팔고 사는 사회주의물자교환시장이 형성되었고, 소비부문에서는 개인, 국영기업, 협동단체들이 경공업제품을 판매하는 사회주의종합시장이 생겨나 사회주의국영상점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온 기존의 사회주의공급체계가 더 풍성해졌다.

북측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진전은, 비단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만 의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조선로동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주의정권구조가 한층 더 강화되는 것이며 동시에 제국주의반동정권과 맞서 싸우는 사회주의반제투쟁의 물질적 기초가 강화되는 것이다.

2) 사회주의육성세대의 사상강화와 새로운 방식의 사회주의정치

북측은 사회주의공업화 1차발전단계에서 사회주의이행세대의 사상개조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힘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야 하였던 까닭은, 사회주의국유화와 사회주의농업집단화를 완성하였다고 해서 인민대중이 자동적으로 사회주의사상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의 낡은 체제에서 태어나서 그 체제의 영향 아래 살다가 사회주의체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를 사회주의이행세대라 한다. 사회주의이행세대에게 비사회주의적인 낡은 사상의식잔재가 남아있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낡은 사상의식을 없애고 사회주의계급의식과 집단주의협동정신을 갖게 하는 것은 사회주의체제에서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임무이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방도가 사상개조이다. 사상개조는 인민대중을 자주의식화하는, 가장 힘들고 어려우며 오랜 기간에 걸쳐 수행하는 최대과업이다. 북측은 그 과업을 독창적인 3대혁명노선에 따라 수행해왔다. 3대혁명노선이란 사상개조를 앞세우면서 기술혁신과 문화혁신을 동시병행하는 것이다.

2008년은 사회주의농업협동화를 완료한 1958년부터 시작된 사회주의건설단계가 50년째 되는 해이다. 사회주의건설단계 50년동안 사회구성원의 세대교체가 일어나 사회주의이행세대는 사회주의육성세대로 바뀌었다. 사회주의국유화와 사회주의농업협동화를 완료한 이후에 태어나서 그 체제 안에서 자라난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를 사회주의육성세대라 한다.

사회주의체제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회주의육성세대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사회주의사상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이행세대에게 아직 남아있는 낡은 사상의식잔재를 없애고 사회주의계급의식과 집단주의협동정신을 갖는 개조과제가 주어졌다면, 새로운 사회주의육성세대에게는 사회주의계급의식과 집단주의협동정신을 강화하는 단련과제가 주어진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육성세대는 선행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주의계급의식과 집단주의협동정신을 단련하는 사상강화사업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주의육성세대의 사상강화사업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식의 사회주의정치가 선군정치(Songun Politics)이다. 선군정치란 다른 사회집단들보다 더 공고하게 사회주의계급의식과 집단주의협동정신을 단련한 인민군대가 앞장서서 인민대중의 사상강화사업을 전사회적으로 밀고 나가는 사회주의정치이다. 물론 대외적 관계에서 바라보는 선군정치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추진하는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반제군사전선을 앞세우는 반제자주정치이지만, 대내적 관계에서 바라보는 선군정치는 인민군대가 앞장서서 인민대중의 사상강화사업을 전사회적으로 밀고 나가는 사회주의정치이다.


2.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일어난 정세변화와 조국통일운동의 전개

1) 북측의 반제국주의핵전략과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

어떤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는 목적은, 전쟁억지력을 확보하거나, 전쟁수단을 획득하거나, 국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은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 목적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다. 만일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이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 목적 가운데 어느 하나라면, 북측은 결코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으며, 또한 만일 북측이 핵무기를 영구히 보유한다면, 남측의 사회변혁운동은 북측을 상대로 반핵평화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북측은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의 감시망을 따돌리면서 천문학적인 자금과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핵무기를 자진해서 폐기하겠다고 공약하였고, 비핵화공약에 따라 실제로 2007년 11월초부터 영변의 3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작업을 개시하였다. 2008년 1월 현재 영변 원자로의 8000여개 연료봉을 불능화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핵전략으로는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은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함이다.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전에는 미국이 북측을 아예 상대하지 않고 고립과 봉쇄로 일관된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앞세워왔지만, 북측이 핵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자 미국도 어쩔 수 없이 고립과 봉쇄를 부분적으로 풀면서 정치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계급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가관계에서도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역시 힘이다. 북측의 핵무기 보유는 조미관계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북측의 핵무기 보유가 조미관계를 변화시키고, 조미관계의 변화가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변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켜 비핵화(denuclearization)라 한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북측이 의도하는 대로, 북측의 핵무기 포기와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 포기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다.

미국이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와 조미관계 정상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이 엿보인다. 그것은 주한미국군 철군과 '핵우산 방위공약' 폐기이다. 북측의 반제국주의핵전략이 지향하는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완전히 포기하는 때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고 '핵우산 방위공약'이 폐기할 때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고 '핵우산방위공약'을 폐기하는 것과 북측이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서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 철군과 '핵우산방위공약' 폐기가 불가피하게 '한미동맹관계'의 단절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동맹관계'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므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고 '핵우산방위공약'이 폐기되면 그 조약도 사실상 백지화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사실상 백지화되면 '한미국교관계'는 남아있을지 모르나 '한미동맹관계'는 끊어질 것이다.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은 북측의 반제국주의핵전략이 추구해온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북측이 '한미동맹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핵개발사업을 추진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북측이 비핵화를 실현하여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것은 조미국교수립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한미동맹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목적이다.

조미관계가 정상화되면 북측의 핵무기를 폐기시킬 수 있음을 미국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까지 일방적으로 핵포기부터 선행하라고 요구하면서 조미관계정상화에 나서지 않은 까닭은,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자칫 '한미동맹관계'가 끊어지지나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측에게 핵포기부터 선행하라고 요구하면서 자기의 의무사항인 조미관계정상화를 지연시키는 술책을 써왔다. 미국이 조미관계정상화를 지연시키는 것은, 북측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올 때까지 지연시킨다는 뜻이다.

미국은 조미관계정상화를 지연하는 술책에 의존하면서 자국의 대북정책을 따르는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을 앞세워 북측을 개혁과 개방으로 끌어내려는 '햇볕정책'을 추진하게 하였다. '햇볕정책'은 김영삼정권시기에 '북방정책'이라는 개념과 뒤섞어 쓰였는데, 그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중도우파정권으로 등장한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이다.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이 추진한 '햇볕정책'은 지난 시기 서독의 사민주의정권이 동독의 사회주의체제를 개혁과 개방으로 끌어낸 '동방정책'의 조야한 모조품이다. 조야한 모조품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중도우파정권이 사민주의정권의 정책을 어설프게 흉내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햇볕정책'과 '동방정책'은 사회주의체제를 개혁과 개방으로 끌어내려는 똑같은 목적을 지녔다는 점에서 개혁개방정책인데, 개혁과 개방에 성공하여 사회주의체제를 자본주의체제로 흡수통합하는 최종단계에 이르면 흡수통합정책으로 된다.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은 지난 10년동안 '동방정책'의 조야한 모조품을 가지고 북측을 개혁과 개방으로 끌어내 보려고 안간힘을 써왔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 사민주의정권의 개혁개방정책이 성공하였던 반면, 남측 중도우파정권의 개혁개방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사민주의정권과 신식민주의예속정권의 질적 차이에도 있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은 북측의 자주적 사회주의와 동독의 소련의존적 사회주의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지 못한 무지에 있고, 또한 개혁과 개방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북측의 자주적 사회주의와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인 중국 및 베트남의 시장사회주의의 질적 차이를 알지 못한 무지에 있다. 결국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은 개혁개방정책의 실패와 함께 물러나고, 그 정책을 줄곧 반대해온 수구우파정권이 들어섰다.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이 지난 10년동안 추진하였던 개혁개방정책이 실패로 끝났으므로 이제 미국에게 남아있는 선택가능성은 조미관계정상화를 지연시키려는 술책을 포기하고 자신이 직접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는 것밖에 없다. 6자회담에서 조미관계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미국이 지연술책에 의존하여 앞으로 10년동안 더 버틸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만일 지난 10년동안 남측에서 반미자주화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이 확산되었더라면, 미국이 지연술책에 의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을 제치고 자신이 직접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할 겨를도 없을 만큼 궁지에 몰렸을 것이고, 아마 지금쯤 '한미동맹관계'는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측에서 주한미국군철군운동은 세력화되지 못하였고, 북측의 반제국주의핵전략이 중도우파정권의 개혁개방정책을 견제하면서 미국의 지연술책에 맞서 싸우는 공방전이 길게 이어졌다.

북측은 반제국주의핵전략의 목적인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을 추구하고, 미국은 조미관계정상화를 지연시키는 술책에 의존하고, 남측의 주한미국군철군운동은 세력화되지 못하였고, 이명박정권의 등장으로 개혁개방정책이 중단된 것, 바로 거기까지 한(조선)반도정세는 변화되었다.

2) 남측의 개혁개방정책과 북측의 민족통일전선전략

지난 10년동안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이 남북(북남)관계에서 왕래, 교류, 협력을 추진해온 목적은 나라의 통일이 아니라 북측체제의 변화이다.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은 개혁개방정책으로 남북(북남)관계가 발전하였다고 선전하였지만, 그 정책이 추구한 목표는 남북(북남)관계의 통일지향적 발전이 아니라 북측체제의 자본주의적 변화이다. 지난 10년동안 남북(북남)관계에서 외형적 변화가 일어났는데도 그 관계가 실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까닭은,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이 무모하게도 북측체제를 변화시키려는 개혁개방정책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이 남북(북남)관계의 통일지향적 발전을 위해 힘썼다면, 지금쯤 남북(북남)관계가 정상화되어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본궤도에 들어섰을지 모른다.

개혁개방정책이 남북(북남)관계의 통일지향적 발전을 외면하고 북측체제를 자본주의시장경제로 유인하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남북(북남)관계가 발전하지 못한 현실적 한계는 개혁개방정책의 추진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북측이 남측 중도우파정권의 개혁개방정책에 맞서서 추진해온 것이 민족통일전선전략이다. 분단체제에 묶여 비정상화된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고 분단체제를 평화적 방도로 해체함으로써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려는 전민족적인 정치연대를 북측에서는 민족통일전선(national united front)이라 부른다. 

북측의 통일전략이 전민족적인 정치연대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까닭은,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통일정부를 세우는 힘이 전민족적인 정치연대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통일정부를 세우려는 조국통일운동이 전민족적인 정치연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산되어 있으면,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반통일세력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분산되어 있는 조국통일운동이 전민족적인 정치연대를 형성할 때, 반통일세력을 압도하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남북(북남)관계에서는 통일부의 개혁개방정책과 통일전선부의 민족통일전선전략이 소리 없는 힘겨루기를 계속해왔다. 10년동안의 힘겨루기에서 완전히 실패하여 부서해체를 눈앞에 둔 쪽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온 통일부이고, 부분적인 성공을 거둔 쪽은 민족통일전선전략을 추진해온 통일전선부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남측과 북측에서 각각 아래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1) 북측에서 선군정치가 시작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군정치의 등장은 통일부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를 뜻한다. 통일부의 개혁개방정책은 선군정치의 등장으로 불능화되고 말았다.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은 북측이 선군정치를 시작하였을 때 진작 개혁개방정책을 접어두고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어야 한다. 그러나 선군정치의 등장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지 못한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은, 실패가 예정된 개혁개방정책에 습관적으로 의존하면서, 북측체제를 개혁과 개방으로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전략적 판단착오로 자기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2) 남측에서 대북적대감과 반북의식이 약화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햇볕정책'의 열기가 10년동안 녹였던 것은 북측의 사회주의체제가 아니라 남측의 대북적대감과 반북의식이었다. 대북적대감과 반북의식에 사로잡힌 수구우파세력이 곳곳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통일부의 개혁개방정책은 대북적대감의 빗장을 걸어놓았던 남측을 개방하였고, 반북의식을 무력화시키는 개혁을 실현하였다. 이것은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이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한 뜻밖의 결과이다. 북측의 시각에서 보면, 대북적대감과 반북의식의 약화는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기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생겨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지난 10년동안 남북(북남)관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북측체제를 개혁하고 개방하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그런데 출범을 앞둔 이명박정권은 개혁개방정책을 중단하고 이른바 '비핵개혁3000'이라는 전략구상을 내놓았다. 그 구상을 살펴보면, 앞으로 이명박정권이 북측에게 요구할 것은 핵포기, 그리고 개혁과 개방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는 이명박정권이 한(조선)반도 정세변화에 대해서 얼마나 둔감한가를 드러내주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

(3) 이명박정권은 출범하기도 전에 북측에게 핵포기를 독자적으로 요구할 것처럼 허풍을 떨고 있으나, 핵포기를 요구할 지위도 없고 그 요구를 관철시킬 능력도 없는 이명박정권이 미국을 대신하여 북측에게 핵포기를 요구하면, 미국으로부터 칭찬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북측과 국제사회로부터 얻게 될 것은 미국을 추종하면서 분별없이 좌충우돌한다는 비웃음이다.

(4) 중도우파정권이 지난 10년동안 시도해오다가 이미 실패로 끝나버린 개혁개방정책을 이명박정권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시대착오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원래 수구우파의 시각은 태생적으로, 경향적으로 비뚤어져 있어서 시대변화와 정세발전을 바라보지 못하고 10년전에 나왔던 케케묵은 발상을 맹목적으로 되풀이하는 습관성 착오에 빠진다는 사실이 이번에 이명박정권의 등장으로 재확인되었다.

앞으로 남북(북남)관계에서 이명박정권이 보여줄 분별없는 좌충우돌식의 행동이나 습관성 착오는, 남북(북남)관계의 통일지향적 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다.

3) 미국의 개혁개방정책 추진과 조국통일운동의 전개방향

주목하는 것은, 남북(북남)관계에서 혼란을 일으킬 이명박정권의 배후에서 미국이 한(조선)반도정세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려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요즈음 조미관계에 조성된 분위기를 살펴보면, 올해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부쉬정부는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임기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우왕좌왕한다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부쉬정부가 북측에게 핵물질 생산량만이 아니라 핵무기 보유량까지 '자백'하라고 부당하게 요구하고, 우라늄농축 혐의와 핵기술 해외수출 혐의까지 제기함으로써 자기 발목을 스스로 지연술책에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북측이 핵물질생산량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핵전략의 뇌관'을 제거하는 것과 같아서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북측이 핵물질생산량을 공개하였는데도 부쉬정부가 북측에 감춰둔 핵물질이 더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역공을 펼치면 비핵화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북측은 우선 부쉬정부에게만 핵물질생산량을 비공개적으로 통보해주고 그들의 반응을 떠보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런데 부쉬정부는 북측이 통보한 핵물질생산량 이외에도 감춰둔 분량이 더 있을 것이라는 혐의를 두면서, 한술 더 떠서 핵물질 사용용처까지 밝히라고 요구하였다. 물론 그러한 혐의와 요구는 비공개적인 것이었지만, 생산량과 사용용처를 모두 밝히라는 것은 핵무기보유량을 밝히라는 뜻이다. 이것이 부쉬정부가 말하는 “정확하고 완전한 신고”이다. 그러나 핵물질 은닉혐의와 핵물질 사용용처 공개를 북측이 받아들일 리는 없다.

북측이 핵물질 은닉혐의와 핵물질 사용용처 공개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부쉬정부가 그러한 부당한 요구를 내놓은 까닭은, 조미관계가 정상화된 이후에 추진할 대북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조미관계정상화는 북측의 개혁개방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므로, 미국이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려면 독자적인 개혁개방정책을 준비해 두었어야 하지만, 지금 부쉬정부는 그러한 개혁개방정책을 아직 준비하지 못하였다. 

북측이 조미 두 나라가 관계정상화를 위한 정치회담을 시작하는 것은, 2009년 1월에 출범할 미국의 차기정부가 개혁개방정책을 준비한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개혁개방정책은 제국주의유화정책이다.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유화정책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시장개방에서 출발한다. 투자할 터이니 시장부터 개방하라는 것이다.

북측의 경공업부문에 대한 투자는 남측의 중소자본이 개성공업단지에서 이미 시작하였고, 2007년 7월 '남북(북남) 경공업-지하자원 개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남측의 경공업 원자재와 북측의 지하자원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제국주의독점자본은 북측의 경공업부문에 대한 투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은 북측의 지하자원개발과 사회간접자본개발, 그리고 중공업부문과 서비스업부문을 장래의 투자대상으로 예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측의 사회간접자본은 사회주의자력갱생노선에 따라서 개발하는 중이어서 개방할 가능성이 없고, 북측의 중공업부문은 국방공업이 주도하기 때문에 개방과는 인연이 없으며, 농업부문과 서비스업부문은 인민경제생활과 직접적으로 잇닿아있는 부문이므로 외부에 개방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눈독을 들일 수 있는 것은 북측의 지하자원개발이다. 북측에 묻혀있는 값비싼 주요광물 20여종의 매장량은 막대한데, 그 시장가격은 3719조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1만3000㎢에 이르는 서조선만분지(평안남도 남포 앞바다 대륙붕)와 2000㎢에 이르는 안주분지(평안남도 숙천군)의 유전개발에 눈독을 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북측은 서조선만분지를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이미 합의하였고, 안주분지의 덕천유전에서는 1998년에 처음으로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2000년 현재 연간 220만배럴(30만t)의 원유를 생산하였는데 지금은 생산량이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북측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어서 원유생산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원유가 묻혀있고 자력으로 원유를 생산하는 비공개산유국이다.

미국이 장차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도 북측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투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것이다. 북측이 제정한 합작법, 외국인투자법, 외국인기업법은 세금납부, 토지사용, 재투자에 관한 내용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반사회주의선동가들이 '사회주의법령의 잔재'라고 부르는 사회주의적인 내용이 함께 들어있어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윤수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독점자본이 400억달러규모의 국제공동투자단(consortium)을 설립하면 북측을 개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 이명박정권은 현실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

만일 남측정권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의 차기정부까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북측은 민족통일전선전략에 힘을 집중하여 남북(북남)관계를 미국의 쳐놓은 '금지선' 너머로 끌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미국은 남측정권과 함께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하려고 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남측의 중도우파정권이 추진해온 개혁개방정책이 중단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곧 출범할 이명박정권의 개혁개방정책 중단조치는 미국의 그러한 요구에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차기정권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는 경우, 기존의 개혁개방정책을 중단한 이명박정권은 국제정치관계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 조미관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비해, 남북(북남)관계는 이명박정권의 개혁개방정책 중단조치로 굳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것은 지난 시기 조미관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남측 언론매체들이 '통미배남'이라고 표현했던 정치적 고립상태에 이명박정권이 빠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명박정권의 정치적 고립은 남측의 조국통일운동에게 새로운 투쟁기회를 안겨줄 것이다. 남측의 조국통일운동은 이명박정권에게 남북(북남)관계를 경색시킨 정치적 책임을 묻는 압박공세를 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측의 조국통일운동은 6.15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것은 중도우파정권이 시도해오다가 실패한 개혁개방정책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정한 의미의 통일전략이다. 6.15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은, 지난 시기 중도우파정권에 의존하지 않았던 통일운동조직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통일운동조직들은 상설연대체에 결집되어 있으므로, 앞으로는 상설연대체가 조국통일운동을 주도하면서 6.15남측위원회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할 것이다.

이명박정권이 지난 시기 중도우파정권과 달리 민족공동행사를 지원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방해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러한 경우 민족공동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상설연대체는 오랜 투쟁에서 단련된 남측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족공동행사 성사투쟁에 참가하도록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민족공동행사는 6월 15일과 8월 15일에 조국통일운동역량을 분출시키는 하나의 계기이다. 평소에 꾸준히 힘을 축적, 강화해야 민족공동행사를 통해서 조국통일운동역량을 힘있게 분출시킬 수 있다.

조국통일운동역량을 축적, 강화하는 유일한 방도는 민주노조운동의 기층단위와 각계층 대중운동의 기층단위에서 각각 운동역량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과 각계층 대중운동이 광범위한 기층단위에서 조국통일운동역량을 조직화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상설연대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전민족적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기 위한 것이다. 조국통일운동역량이 기층단위에서 조직화되지 않고서는 상설연대체도 강화할 수 없고, 상설협의기구도 창설할 수 없다.


3. 남측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일어난 정세변화

1) 신식민주의경제위기를 벗어나려는 최후의 회생전략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애초에 기대한 것처럼 민생경제를 회생시킨 것이 아니라 예외 없이 파산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말았다. 구제금융을 받아서 민생경제를 되살리기는커녕 구제금융 수혜통로를 타고 침투한 제국주의금융자본이 신식민주의체제에서 막대한 이윤을 수탈하고,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은 자본주의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강도를 높이는 바람에 민생경제가 전반적으로 파탄되어, 또 다시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경제위기-구제금융-이윤수탈-경제위기 심화-제2차 구제금융으로 이어진 악순환은 아이티에서 22회, 라이베리아에서 18회, 에꾸아돌에서 16회, 아르헨티나에서 15회나 일어났다.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같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이 자본주의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몰락하는 까닭은, 신식민주의공업화를 추진할 성장동력이 처음부터 미약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제한된 성장동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측의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은 제한된 성장동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에 속한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으나, 그것이 민생경제의 회생이 아니라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윤수탈과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의 고강도 착취로 이어졌음은 현실이 입증한다. 그런데도 남측에서 아르헨티나가 겪은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남측의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이 노동조합이 없는 해외신흥시장(overseas emerging market)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위기탈출로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2006년 현재 노동조합을 회피해서 중국으로 빠져나간 남측기업은 4만3130개이다.

그러나 남측의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노동계급을 착취해온 위기탈출로는 차츰 막혀버리고 있다. 특히 2008년 1월 1일부터 중국에서 노동계약법이 발효되었고, 150만개 노조와 1억7300만명의 조합원을 둔 중화전국총공회가 외국계 기업들에서 노조결성을 적극 추진하는 추세에 밀려 무단철수하는 남측기업들이 늘고 있는 현실이 그러한 사정을 말해준다.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의 위기는 위기탈출로 해소할 수 있는 일시적인 침체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파산위기이고, 파생적인 위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위기이자 회생전망을 갖지 못하고 심화되는 위기이다. 그 위기의 근원은 신식민주의공업화가 제한된 성장동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여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이 차츰 불능화되고 있다는데 있다.

신식민주의공업화가 제한된 성장동력의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은 관광업, 물류유통업, 금융업에서 회생전략을 찾으려 한다. 남측에서는 제1차 세계석유파동 직후인 1975년에 관광업을 전략산업으로 채택하였고, 금융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문화관광부를 신설하여 국제행사관광 유치와 국제경기관광 유치에 몰두하면서 관광업 진흥으로 회생전략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관광업진흥책은 실패로 끝났다. 2006년 관광수지적자는 85억달러였고, 2007년에는 100억달러로 추산된다. 물류유통은 남북(북남)철도가 연결되어야 살아날 수 있는 것이므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이 회생전략을 찾을 수 있는 부문은 금융업밖에 없다. 남측에서 2007년에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한 것은, 성장동력의 한계에 묶여버린 신식민주의공업화전략을 포기하고 금융시장개방을 확대하여 신식민주의경제위기를 벗어나려는 최후의 회생전략이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하는 것은, 비유로 표현하면, 심한 흉년이 들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게 된 소작농이 농사를 포기하고 지주집 몸종으로 들어가 목숨을 부지하려는 예속심화와 마찬가지이다. 노무현정권의 퇴장과 이명박정권의 등장은 신식민주의체제의 예속성을 심화시키는 우파정권들 사이의 임무교대인 것이다.

세제개혁을 통해 자본계급의 소득 가운데서 일부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떼어주는 수직적 소득재분배기능이 없는 남측에서는 고용감축, 대량실업, 비정규직 확산, 물가상승이 악화될 대로 악화되면서, 고용, 주택, 교육, 의료, 환경, 위생부문에서 빈곤의 고통을 완화하는 방빈기능과 구빈기능마저 작동하지 않는다.

오늘 남측의 현실이 보여주는 대로, 신식민주의체제의 예속심화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빈곤과 고통의 심화로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생파탄에 빠지는데, 소수의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은 자산축적을 극대화하는 호기를 맞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 느슨해졌던 사회계급관계가 다시 팽팽하게 긴장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계급관계의 긴장상태 속에 들어있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 같은 계급적대감이다. 계급적대감을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신식민주의체제의 예속심화는 신식민주의체제의 붕괴위기를 차츰 심화시킨다.

2) 신식민주의체제의 전반적 위기와 '한미동맹관계'의 공고화

남측 신식민주의체제의 붕괴위기는, 위에서 지적한 계급적대감의 확산만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심화되고 있다. 다른 요인이란 그 체제를 유지해주는 결정력이 무력화될 가능성이다. 남측의 신식민주의체제를 유지해주는 결정력은 '한미동맹관계'인데, '한미동맹관계'가 끊어지면 신식민주의체제는 무력화되어 곧바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한미동맹관계'를 위협하는 두 가지 요인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그 요인이 강한 힘을 작동시킬수록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는 심화될 것이고,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그 관계는 끊어질 것이다.

'한미동맹관계'를 위협하는 두 가지 요인은 신식민주의체제 안팎에서 동시에 생겨났다. 신식민주의체제 안에서 '한미동맹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은 남측의 사회변혁운동이다. 남측의 사회변혁운동이 장성할수록 '한미동맹관계'를 끊어버리려는 단절력이 강해질 것이다.

다른 한편, 신식민주의체제 밖에서 '한미동맹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은, 북측이 추진하는 조미관계 정상화이다. 조미관계 정상화를 '한미동맹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보는 까닭은, 북측이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을 최종목적으로 조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려면 한(조선)반도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고, 한(조선)반도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미국군의 주둔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물론 미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난 뒤에도 주한미국군을 계속 주둔시키려고 할 것이지만, 북측은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여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킬 것이다.

북측이 핵시설 불능화, 핵물질 폐기, 핵무기 폐기로 이어지는 세 단계를 거쳐 비핵화강령을 실행하는 것에 발맞추어,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국군 철군으로 이어지는 세 단계를 거쳐 관계정상화강령을 실행해야 한다. 비핵화강령의 실행과 관계정상화강령의 실행은 어느 한 쪽에서 어느 한 단계도 누락시키거나 우회할 수 없도록 탄탄하게 맞물려있다. 6자회담의 정치적 합의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주한미국군 철군은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강령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며, 따라서 맨 마지막에 비핵화강령의 실천완료와 함께 해결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측의 의지와 행동이 결연하고 단호하다는 점이다. 북측은 미국의 불능화실무단이 특급보안시설인 영변핵시설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고, 핵시설불능화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은 북측이 비핵화강령을 되돌릴 수 없는 추진궤도에 올려놓았음을 입증한 역사적 사변이다. 북측이 비핵화강령을 전면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미국이 관계정상화강령을 전면적으로 실행하도록 떠미는 결정적인 추동요인이자 압박요인으로 된다. 비핵화강령과 관계정상화강령은 조미 두 나라 사이에서만 합의한 것이 아니라 6자회담에서 무려 세 차례에 걸쳐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이므로, 북측만 비핵화강령을 실행하고 미국은 관계정상화강령을 외면하거나 중단하거나 지연시키는 파행은 일어날 수 없다. 6자회담의 공식합의는 미국이 조미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관계정상화강령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것과 같은 소동을 더 이상 일으킬 수 없도록 강제한다. 실행과정에서 앞으로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비핵화강령과 관계정상화강령이 전면적으로 실행되리라고 낙관하는 근거가 거기에 있다.

비핵화강령과 관계정상화강령이 실행된다는 말은, 미국이 머지않아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여야 한다는 뜻이며, 주한미국군을 철군한다는 말은 '한미동맹관계'가 무력화된다는 뜻이다. 조미관계가 정상화될수록 '한미동맹관계'가 단절위기에 빠져들게 된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러한 정세변화속에서, 단절위기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한미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에게 중대하고 시급한 과제로 되었다.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다급한 행동은, 요즈음 부쩍 강조하기 시작한 '한미동맹강화론'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한미동맹강화론'은 아래와 같이 네 방향에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1) 미국은 북측을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으로 끌어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전에 북측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미국의 그러한 전망대로, 만일 북측이 베트남처럼 미국의 개혁개방요구를 받아들여 반제노선을 포기하고 '협력노선'으로 돌아서면 '한미동맹관계'를 끊어버리려는 북측의 정치적 의지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베트남의 뒤를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독자적인 경제건설전망과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동북아시아 최대의 원유매장국에서 사회주의강성대국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고 선전하는 판인데, 자국의 사회주의체제를 훼손할 시장사회주의로 끌려갈 위험천만한 가능성은 없다.

미국은 북측이 베트남의 뒤를 따라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개혁개방요구를 강하게 들고나올 것이며, 탈북유인공세와 인권공세도 빼놓지 않을 것이다. 조미관계가 정상화되면 미국의 대북압박술책은 오직 개혁개방요구밖에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2)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정치부문과 군사부문에서 유지해오던 '한미동맹관계'를 경제부문으로 확장하여 전면화하고 완성할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단절위기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한미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공고화하기 위한 결정적인 책략이다. 북측이 비핵화강령을 실행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미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문제를 남측에서 민생경제가 파탄되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측면에서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3) 미국은 '한미동맹관계'를 끊고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남측 사회변혁운동을 약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남측에서 사회변혁운동이 장성할수록 '한미동맹체제'가 위협받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측 사회변혁운동이 더 이상 장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책략에 힘을 집중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방해책략은 구체적으로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분열, 변질, 와해공작으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의 방해책략이 노리는 일차적인 타격목표는 남측의 사회변혁운동역량이 집결되어 있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을 분열, 변질, 와해시키는 것은,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 가능성 가운데 50%를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북측이 비핵화강령을 실행하는 속도를 높일수록, 미국은 관계정상화강령을 실행할 수밖에 없게 되며, 조미관계가 정상화될수록 민주노동당을 분열, 변질, 와해시키려는 공작이 난무할 것이다.

(4) 노무현정권은 민생경제파탄의 책임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대중적 지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무력화되었으므로, 미국은 그러한 정권이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 가능성을 차단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수호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접어버렸다. 미국의 견지에서 바라보면,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 가능성을 차단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수호할 의지와 능력을 지닌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 가능성을 차단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수호하려는 미국의 요구에 전적으로 부응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이명박정권이다. 이명박정권이 감당하려는 가장 중요한 역할과 임무는 '한미동맹관계'를 공고화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측에 대한 개혁개방정책 추진,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강행, 사회변혁운동 약화책동, 이명박정권 등장으로 '한미동맹관계'의 단절위기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러한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남측의 신식민주의체제는 전반적 위기속으로 밀려들어가고 있다.

3) 기업경영식 실용독재로 변신한 수구우파정권의 등장

사회변혁운동의 적대세력은 사회정치담론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상의식활동을 유인, 통제한다. 특히 남측의 신식민주의정권은 사회정치담론을 선점하고, 선점효과를 극대화하였다. 그리하여 신식민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진보담론은 실종되고, 신식민주의체제의 국가예속관계와 계급착취관계를 은폐하고 위장하는 반진보담론만 언론매체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진보담론에 맞설 진보담론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변혁운동은 수구우파세력이나 중도우파세력의 반진보담론을 넘어서는 진보담론을 아직 개발하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진보담론은 세상을 바꾸는 체제변혁담론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체제변혁담론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표상개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체제변혁담론은 아직 '얼굴'을 갖지 못한 것이다.

진보담론을 개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비정규직 철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실시 같은 과제들을 진보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분배담론으로 이해한다. 진보담론을 개발하지 못하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야에 진보변혁세력과 중도우파세력의 전략적 차별성이 들어오지 않는다.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으로 이어진 중도우파정권은 수구우파정권의 성장담론에 맞서 분배담론을 내놓았지만, 출범을 앞둔 이명박정권은 실용담론을 들고 나왔다. 지난 10년동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의식을 지배하였던 성장담론과 분배담론의 대치는 이제 실용담론과 분배담론의 대치로 교체되었다. 이러한 교체현상은 수구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양당구도에 존재하는 반진보적 정치공학과 일치하는 것이지만, 이명박정권이 지난 시기 수구우파정권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수구우파정권으로 변신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세변화를 간파하지 못하여 정치적 변신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완고파 수구우파세력은 한나라당에서 갈라져 나가 '자유선진당'을 창당하였다.  

담론교체현상에서 드러난 수구우파정권의 정치적 변신은 그 정권의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가 강제한 행동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그것이 신자유주의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종하는 정치적 변신이며, 그와 동시에 단절위기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한미동맹관계'를 공고화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치적 변신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30년동안 수구우파정권이 추구했던 것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통제식개발독재이다. 군부통제식개발독재는 군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수출산업을 육성하여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신식민주의공업화에 의존하였다. 군부통제식개발독재가 남(한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몇몇 나라들에서 주로 나타났던 까닭은, 지난 시기 동아시아에서 신식민주의체제의 저개발이 사회주의체제의 확장에 유리한 조건으로 되었으므로 신식민주의공업화를 강압적으로 추진하여 저개발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뒤로 신자유주의세계화의 반동적 파장이 신식민주의예속화를 세계적 범위로 확장시키면서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재편하자, 기존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은 새로 등장한 과도체제기생자본이나 신생 신식민주의기생자본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였다. 저임금노동력에 대한 착취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존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은 그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새로 등장한 과도체제기생자본이나 신생 신식민주의기생자본과 경쟁하여 이길 수 없었다. 그 결과, 수출시장에 의존한 신식민주의공업화는 수출시장 축소와 수출경쟁력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시작하였다. 신자유주의세계화가 남측의 신식민주의공업화의 성장동력을 마비시킨 것이다.

김대중정권에서 시작하여 노무현정권으로 계승된 개량주의정치이념은, 그들의 집권기간 10년이 신식민주의공업화의 성장동력이 차츰 마비되어간 시기와 겹쳐지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1997년의 금융위기는 개량주의정치이념의 파산을 일찌감치 예고한 것이었다.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은 불가능하며, 북유럽발 사회민주주의정치이념은 공리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현실로 입증되었다.

성장동력 마비상태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한 이명박정권이 내세운 것은 실용주의(pragmatism)이다. 원래 실용주의정치이념이란 유익성과 효율성을 정치활동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실익만능주의이다. 실용주의정치이념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추구하는 것은 국가예속관계와 계급착취관계에서 최대의 실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정권의 실용주의는 소수의 신식민주의기생자본에게만 축적기회를 주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을 파탄시키는 기업경영식실용독재의 정치이념이다.

이명박정권의 등장은, 신식민주의예속정권의 역사적 유형이 군부통제식개발독재로부터 기업경영식실용독재로 변신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명박정권의 기업경영식실용독재는 개발만능주의가 아니라 실익만능주의에 기초한다. 이명박정권은 아래와 같은 전략을 동원하여 기업경영식실용독재를 강행할 것이다.

(1) 이명박정권은 남북(북남)관계, 한미관계, 남측 사회변혁운동과의 관계에서 '한미동맹관계' 공고화전략을 밀고 나갈 것이다. 남북(북남)관계에서는 '한미동맹관계'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는 6.15공동선언과 10.4평양선언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중도우파정권의 개혁개방정책을 '한미동맹관계'에서 추진하는 인권공세와 탈북유인공세로 교체할 것이다. 한미관계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영어공교육과 미국문화도입을 전면적으로 확대하여 언어식민주의와 친미의식화사업을 결정적으로 강화할 것이다. 남측 사회변혁운동과의 관계에서는 '한미동맹관계'를 반대하는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과 전농을 비롯한 사회변혁운동의 전략거점들을 정치적으로 고립화시키고 탄압하는 공세를 가할 것이다. 이명박정권이 아직 출범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탄압조짐이 보이고 있다.

(2) 이명박정권은 민생경제를 파탄위기에서 건지려는 경제회생전략이 아니라 신식민주의체제를 경제위기에서 건지려는 경제회생전략을 취할 것이다. 군부통제식개발독재나 기업경영식실용독재는 모두 성장만능주의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기업경영식실용독재는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신식민주의공업화전략을 재생할 수 없으므로 다른 종류의 경제회생전략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종류의 경제회생전략이란 신식민주의금융개방이다. 기업경영식실용독재는 신식민주의기생자본이 자기의 금융시장을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개방하여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책략에 의존할 것이다. 군부통제식개발독재가 수출시장확대에 집중하였다면, 기업경영식실용독재는 금융시장개방에 집중할 것이다. 금융시장개방은 298개의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시장개방을 금융부문에까지 확대하는 시장개방의 마지막 단계이며, 금융시장을 제국주의금융자본에게 넘겨주는 신식민주의예속심화의 결정판이다.

4) 연대전선의 형성과 정치세력관계의 변화동향

이명박정권이 기업경영식실용독재를 밀고 나가는 동안, 사회변혁운동은 대치선을 선명하게 긋고 타격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과제를 수행할 것이다. 군부통제식개발독재에서 기업경영식실용독재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등장하였던 중도우파정권은 군부통제식개발독재의 성장담론에 비해 좀더 진보적인 담론인 것처럼 위장한 분배담론을 들고 나와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의식을 혼란에 빠뜨렸으므로 그들의 시야에 전략적 대치선은 허술하게 보였고 전략적 타격목표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생존권사수투쟁에서 드러나는 전술적 대치와 전술적 타격목표들만 보였을 뿐이다.

지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분배담론을 내던지고 실용담론을 들고 출범하는 이명박정권에 걸어놓은 경제회생 기대심리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2년뒤에 신식민주의민생경제의 파탄이 전면화될 때, 그리하여 실용담론으로 치장한 경제회생정책이 한낱 허구였음을 깨달을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이명박정권에 대해서 정치적 배신감을 느낄 것이고, 혐오와 울분이 커질 것이다.

이것은 사회변혁운동의 대치선을 선명하게 긋고 타격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과제가 해결될 것임을 예고한다. 사회변혁운동의 대치선이 그어지고 타격목표가 드러나면, 자연스럽게 네 방향에서 이명박정권의 기업경영식실용독재를 타격하는 저항과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은 반민중정권에 대한 반격공세를, 한국진보연대는 친미예속정권에 대한 반격공세를, 민주노동당은 수구우파정권에 대한 반격공세를, 조국통일운동은 반통일정권에 대한 반격공세를 가할 것이다. 전황이 사회변혁운동에게 유리해질 때, 시민사회운동도 사회변혁운동의 투쟁에 가세할 것이다. 이것은 기업경영식실용독재를 타격하는 광범위한 연대전선이 형성될 것임을 예고한다.

지난 시기 중도우파야당과 재야정치세력과 도시중산층이 군부통제식 개발독재에 맞서 민주화의 기치 아래 연대전선을 형성하고 싸웠던 것처럼, 오늘은 상설연대체와 진보정당을 앞세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기업경영식실용독재에 맞서 사회변혁의 기치 아래 연대전선을 형성하고 싸울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정치세력관계의 변화동향이다. 오늘 정치세력관계는 진보정치세력, 중도정치세력, 수구정치세력이 삼자대립구도를 형성하고 힘을 겨루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삼자대립구도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구정치세력은 실용파와 완고파로 분열되었으나, 실용파가 정권을 잡는 바람에 그 파가 자연히 수구정치세력의 주동자로 되었다. 2007년 대선에서 나타난 대로, 수구정치세력의 정치적 기반은 남측 인구의 30%이다.

수구정치세력과 대결하는 것이 중도정치세력이다. 중도우파는 중도좌파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중도정치세력을 중도우파로 일색화하였으며, 지난 10년동안 중도우파정권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선에서 패배하여 정권을 잃어버렸고, 게다가 선거패배 후유증으로 일어난 내분을 수습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다. 중도정치세력의 개혁강령은 신식민주의공업화의 성장동력이 마비되어 민생파탄이 심화된 것과 함께 파산하였다. 자기의 정치적 기반인 도시중산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중도정치세력이 2012년에 재집권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진보정치세력은 체제변혁을 지향하는 체제변혁파와 체제개량을 지향하는 체제개량파가 불안정하게 동거하는 형태로 진보정치연대를 형성해왔다. 체제변혁파와 체제개량파의 정치연대는 진보정치운동의 발전수준이며 현단계 사회변혁운동의 요구이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 패하자 진보정치세력에 속해있던 체제개량파가 적록동맹을 들고 나와 독자세력화하였다. 체제개량파가 체제변혁파와의 정치연대를 청산한 것은, 진보정치운동이 분열된 것이며, 진보정치운동을 10년이나 후퇴시킨 것이다. 중도정치세력이 정권을 잃어버리고 내부혼란에 빠진 오늘의 정치상황이야말로, 진보정치세력이 수구정치세력에 맞서는 대안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호기인데 체제개량파가 정치연대를 청산하는 바람에 그 기회를 살리기 힘들게 되었다. 원래 체제변혁파는 체제개량파와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진보정치세력을 강화해야 중도정치세력을 고립시키고 수구정치세력과 대결할 수 있다. 체제변혁파와 체제개량파가 처음부터 분열되었더라도 지금이야말로 정치연대를 형성하여 수구정치세력에게 맞서야 하고, 그렇게 하여야 사회변혁운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데, 이제까지 불안정하게 동거하던 체제개량파가 체제변혁파와 결별하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으니 진보정치운동의 후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체제변혁파와 결별한 체제개량파는 중도정치세력과의 전략적 차별성을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체제개량파가 중도우파로 일색화된 중도정치세력에 자진해서 편입되지 는 않을 것이다. 체제개량파와 중도우파가 정치적으로 연대하지 못할 것이므로, 체제개량파는 중도정치세력을 지지하여온 시민사회운동의 일부만을 자기의 지지기반으로 가져가는 것 이외에는 존립근거를 찾지 못할 것이며, 이명박정권의 기업경영식실용독재를 반대하는 소수파로 남게 될 것이다. 

체제변혁파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기층조직, 계급진지, 연대전선과 '혈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운동을 기웃거리는 체제개량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체제변혁파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민주노조운동, 농민운동과 빈민운동을 비롯한 근로대중운동, 청년학생운동과 여성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으로부터 성장동력을 공급받으며 진보정치세력을 강화, 발전시킬 것이며 21세기사회변혁운동을 이끌어 갈 것이다. (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