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연대전략, 어떻게 볼 것인가

2008년 7월    최정도

 

지난 2006년 말 당시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제안한 ‘소득연대전략’을 당의 일각에서 면밀한 사전검토도 없이 당의 전략으로 공론화함으로써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일부 사람들의 소득연대전략(사회연대전략)을 지금도 주장하는 상황이고 언제든 심각한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소득연대전략의 골자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동결이나 추가 과세 등을 통해 발생하는 사회적 여유자금을 국민연금 형태로 운용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 완화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자계급 내부의 임금 양보’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소득분배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연대전략은 노동자계급의 양보를 통해 계급적 연대와 단결을 강화하고 나아가 정부와 자본에 ‘도덕적 압력’을 가하여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해 근로대중에 대한 자본의 착취와 억압이 무제한적으로 확대되고 빈부격차가 전례 없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사회변혁운동의 실천적 요구에 부응하여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기반을 강화하고 노동운동진영의 단합을 실현할 데 대한 과제가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제출된 소득연대전략은 그것이 불러올 사회 정치적 파장과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한다.

소득연대전략의 제안자들은 그것을 노동자계급의 전투적 연대를 보조하는 방책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사명에 비추어볼 때 정치적으로나 이론적, 실천적으로나 수용할 수 없는, 위험하고 비과학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소득연대전략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가?

1) 계급적 원칙, 변혁적 원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변혁운동을 주도하는 진보정당의 노선과 전략의 생명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기층민중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고 실현하려는 계급적 원칙, 변혁적 원칙이다. 물론 변혁운동의 환경과 조건은 끊임없이 달라지며 그에 맞게 투쟁노선과 전략전술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하지만 계급적 및 변혁적 원칙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고수하고 철저히 구현해야 한다.

소득연대전략은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근본 활동원칙에 어긋난다.

우선, 소득연대전략은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이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이른바 ‘자기책임론’에 그 사상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계급적 원칙은 무엇보다 사상이론에 반영되며 어떤 사상이론에 기반하는가에 따라 그것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략인지가 규정된다.

소득연대전략은 부르주아 국가정책의 사상 이론적 기초인 신자유주의에 바탕하고 있다.

자유개인주의는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신흥 부르주아지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봉건적 구속을 반대하고 ‘자유방임’을 표방하며 등장한 것으로 1930년대에는 자유경쟁을 옹호, 찬양하면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제한된 범위의 간섭’을 주장하는 사상이론으로 변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회 경제적 위기와 모순이 첨예화되면서 자유주의는 시장기구의 역할을 중시하고 시장경쟁원리의 철저한 확립을 위해 경제생활에 대한 부르주아 국가의 간섭을 최대한 제한할 것을 요구하는 현대 신자유주의로 변모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론’과 경제의 ‘세계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며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정책의 이론적 기초로 자리잡았다.

신자유주의론자들은 재정규모가 작고 유지비용이 적게 드는 정부, 즉 시장경제에 간섭하지 않는 정부가 ‘작은 정부’라면서 ‘시장만능론’, ‘자기책임론’, ‘규제완화론’을 파생시켜 왔다.

신자유주의의 ‘자기책임론’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복지정책을 제한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기만적으로 시행되어오던 사회보장제도를 개편하여 모든 사업을 민간부문으로 이관하게 하며(민영화) 사회적 집단 내에서 ‘상호 부조’와 ‘연대 원리’를 구현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소득연대전략의 논리는 바로 이같은 ‘자기책임론’의 ‘연대 원리’를 받아들여 노동자 집단 안에서 양보와 연대를 실현하자는 것인데 이는 노동자계급을 희생시켜 자본측에 이익을 주고 정부의 반민중적 정책을 두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고 있다.

소득연대전략은 또한 현대 자본주의의 교활한 착취 및 지배 방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고 무저항주의와 계급적 타협을 유도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고용관계의 특징은 상시고용제(정규직)와 임시고용제(비정규직)로의 분리이며 그것은 자본가계급과 부르주아 국가의 교활한 착취 및 지배 방식에서 비롯된다.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에 심화된 세계적 경제 위기로 기업의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자본가들은 고용기간이 고정되지 않고 임금을 적게 줄 수 있는 임시노동력을 대대적으로 광범위하게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자본가들은 시간제, 파견제, 계약제 고용 형태의 임시노동력을 활용해 인건비와 생산비 절감을 꾀하고 있으며 갈수록 극심해지는 경기 변동에 대응해 고용 규모를 마음대로 조절하면서 근로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규제완화론’에 따라 1980년대부터 부르주아 국가가 추진해온 노동규제 완화, 구조개혁은 자본가들의 임시고용 확대를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

‘규제완화론’은 자본가의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정부의 각종 규제와 규범들을 완화하여 자본가의 ‘기업 의욕’과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하면서 노동대중에 대한 자본의 착취 심화를 조장하는 반민중적 궤변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규제완화, 구조개혁 책동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목표로 하여 노동시장 구조를 변화시키고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노동법의 신설 및 개악 조치들을 양산시키는 방향으로 관철되었다.

오늘 자본주의 국가 일반에서 임시고용은 제조업, 서비스업을 비롯한 경제의 모든 분야로 무차별 확대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질적 구성도 변화해 반숙련공, 무기능공에 국한되지 않고 상당한 기술기능과 전문지식을 가진 기능공, 기술자, 전문인력 등 근로자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상황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97년 이후 미국의 직간접적 간섭 및 통제 속에서 반민중적인 노동법과 정리해고제의 도입, 구조조정이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전체 노동자의 임금도 대폭 삭감되었다.

오늘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30%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자본측은 비정규직화를 통한 임금 인하로 일시적으로 떨어졌던 이윤률을 급속히 회복(1996년 4% → 2000년 5.7%)시킬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일자리 불안의 심화와 함께 최저생계비마저 위협받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같이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노동운동이 앙양된 환경에서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이 고안해낸 교활한 착취 및 지배 방식에 의하여 고용구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되고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의 소득격차가 극대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투쟁, 특히 비정규직 철폐로 투쟁의 예봉을 돌리기보다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소득을 나누는 것을 진보정당의 전략으로 삼자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더욱이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해 자본의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것은 자본가계급의 본성을 망각하고 광범위한 대중 속에 자본가들이 그 어떤 ‘선심’을 베풀 수 있다는 환상마저 조성하여 무저항주의와 계급적 타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극단적인 이윤 추구는 자본의 생리이며 이윤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본성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가계급의 노동자들에 대한 자발적 양보란 없으며 있다면 오직 노동자계급 자신의 투쟁으로 쟁취한 것뿐임을 뚜렷이 보여준다.

노동 수탈을 통한 이윤 추구를 생존방식으로 삼는 자본의 본성과 교활한 착취 수법을 직시하지 않고 자본가계급의 그 어떤 ‘이성’에 기대를 걸면서 계급적 원칙에서 벗어난 길로 나간다면 그것은 노동운동의 발전과 앙양이 아니라 퇴보를 가져오는 심각한 결과를 빚어내게 될 것이다.

소득연대전략은 또한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의 복지정책(소득임금연대)을 노동계급적 원칙에서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들의 경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70~80년대에 이르러 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국내에서 노동운동을 약화, 와해시키며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데서 더욱 교활한 통치 수법과 약탈 방식을 고안해내게 되었다.

여기서 독점자본가들은 국내에서 노동귀족을 대대적으로 육성하며 노동운동을 우익․어용화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하여 노동대중의 반발과 저항을 무마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집권하고 부르주아적 복지정책을 표방하게 되었으며 독점자본가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노동귀족들이 부르주아 정부에 협력하여 ‘소득임금연대전략’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이들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환상과 기대감이 상당기간 존재하게 되었으나 그것은 한갓 기만이었으며 실업자 급증, 실업의 만성화 등에서 보듯이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키지는 못하였다.

유럽의 노동운동조직들이 내놓은 ‘소득임금연대전략’은 그 계급적 본질에 있어서 자본가계급의 기만적인 복지전략의 중요한 공간인데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사람들과 노동운동진영의 일부에서는 그것을 계급적 이익이라는 견지에서 신중하게 분석해보지 않은 채 수용하려 하였다.

소득연대전략의 제안자들은 부유세(누진소득세) 문제도 계급적 입장에서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소득연대전략이 부유세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는 주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득 양보를 부유세와 관련지은 것은 결국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부유한 기득권층’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원래 누진소득세 문제는 20세기 초 레닌이 부르주아 혁명 단계에서 노동자계급의 당의 전술적인 투쟁전략으로 제기한 것이며 그 주요 내용은 대자본가와 대토지 소유자들에게 누진소득세를 적용하여 착취자들의 소득을 재분배함으로써 노동대중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진소득세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자본가와 부정축재한 관료집단이며 노동자들을 비롯한 노동대중이 그 대상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근로자들의 처지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층 근로자들을 누진소득세의 과세대상으로 볼 수는 없으며 더욱이 한국 사회와 같은 기형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부유세의 과세대상으로 될 만한 소득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식을 해야 한다.

사회 양극화의 본질은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계급격차 심화와 고정화이며 정규직 근로자들은 결코 ‘부유한 계층’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사회 양극화를 논할 때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부유세의 연장선에서 보는 것은 계급적 입장에서 비켜나 착취계급과 근로계층을 혼동하고 노-자 대립을 노-노 대립으로 왜곡시키는 원칙적으로 잘못된 견해이다.

2) 노동운동과 진보진영 전체의 단결을 저해하고 분열을 조장시킬 수 있는 전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 시기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 변혁역량을 강화하여 변혁운동을 힘 있게 추동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운동과 진보진영 전체의 단결을 더욱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보수우익세력의 권력독점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적 역량의 단결 문제는 더욱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진보정당의 모든 전략과 정책노선은 마땅히 변혁운동역량의 단결을 강화하는 견지에서 제시되고 관철되어야 한다.

그런데 소득연대전략은 이러한 한국변혁운동 발전의 중대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에서 적지 않은 장애를 조성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소득연대전략은 보수우익세력의 노동운동 분열 책동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할 수 있다.

지금 친미보수세력들과 보수언론들은 정규직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사실을 지적하며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그들의 노동운동조직을 ‘귀족노조’로 몰아붙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반목, 대립하도록 부추기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민주노동당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당’으로 왜곡하면서 그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상대적 차이가 노동운동의 단합 실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운동진영의 단결을 가로막는 근본 요인이 될 수는 없다.

또, 진보정당이 현실적으로 결집력과 투쟁력에서 우월한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조들을 중요 기반으로 삼으면서 점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속으로 당 역량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은 진보정당운동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그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진보정당이 노동자계급 내부의 소득분배전략을 추구한다면 친미보수세력들의 분열이간책동에 동조하고 기여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또한, 소득연대전략은 노동운동진영 전체를 지엽적인 소득분배 문제에 매달리게 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 사상적, 조직적 단합 실현에 난관을 초래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단결을 위한 연대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은 사회변혁운동에서 노동자계급의 사명과 역할에 부합하는 정치 사상적, 조직적 연대이다.

물론 경제적 고리를 통한 연대도 긍정적 작용을 하지만 그 경우에도 대자본 투쟁에서 노동자계급 내부 집단들 또는 노조들 간에 직접 물질적으로 기여하는 형태로 되어야 한다.

소득연대전략은 사실상 부르주아 정부를 통한 노동자계급 내부의 임금 양보의 실현을 그 기본내용으로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노-자 협조, 노-정 협조를 조장함으로써 노동운동의 개량주의적 변질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정세와 조건이 불리해질수록 노동운동의 정치 사상적, 조직적 단합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실천투쟁을 통한 연대연합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방도와 묘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진보정당이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투쟁이 아니라 그 어떤 양보를 요구하는 길로 나간다면 노동운동진영 내부의 균열과 분열을 조장하고 정치적 퇴보와 조직적 이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소득연대전략은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내부에서 정파 간 이론대립을 격화시킬 수 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변혁운동 발전의 근본 담보는 연합전선운동의 주체세력이며 변혁운동의 주도적 역량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내부에서 각 계파들 사이의 사상 이론적, 전략전술적 문제들에서 입장 차이를 줄여 나감으로써 일치성을 확고히 보장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일부 정파의 그릇된 의견을 일면적으로 수용해 당의 이념적 지향과 거리가 먼 소득연대전략과 같은 타협적, 개량주의적 색채가 짙은 전략전술적 방안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면 새로운 분쟁을 촉발시킬 뿐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소득연대전략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이론논쟁에 그치지 않고 정파간 대립 격화로 이어져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단합과 행동통일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 내의 인사들은 변혁운동의 전략전술적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것은 모두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사명, 계급적 원칙, 변혁운동 발전의 현실적 요구에 부합할 때 의의를 가지는 것이며 공론화 이전에 충분한 사전 논의와 조율을 거쳐 통일적인 전략 수립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마땅하다.

3) 한국 사회의 현실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한, 실현 불가능한 전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의 전략은 언제나 현실에서 출발하고 변혁운동의 현실적 요구를 옳게 구현해야 한다. 현실과 괴리된 전략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운동실천에서 생활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소득연대전략의 제안자, 지지자들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왜곡하고 노동자계급의 지향과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했다.

미국의 손에 명줄이 쥐어져 있어 자체의 구조와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예속적 및 기형적인 한국 사회에서 복지제도, 고용제도는 여타의 자본주의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을 보여주는 국민연금만 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입률은 12%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는 소득연대전략이 시행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부분은 별다른 혜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개량주의 정당이나 노동운동단체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합법적 진보정당으로서 변혁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주체세력이므로 사회민주주의를 정치강령으로 내세우는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같은 부르주아 정당들과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전투적인 조직체로서 독점자본가들과 부르주아 국가의 시녀로 전락한 유럽의 귀족화된 노조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이는 소득연대전략이 남의 것을 교조적으로 모방한 것으로써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정체성과 사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소득연대전략을 제안한 사람들은 한국 노동자계급의 지향과 요구, 그들의 투쟁력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현대적 산업체계 속에서 생산적으로 결집된 사회집단으로 그 어떤 계급계층보다 단결력이 강하고 선진적이며 변혁운동의 주력군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국 대기업 노동자들은 그 어떤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근본이익, 나아가 전체 노동대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회변혁투쟁의 선봉부대로 보아야 한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강행되어 온 과정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가 확대, 심화되고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일부를 양보 받는 형태로 자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고 있다. 또, 현실적으로 자본가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정권과 긴밀히 밀착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소득을 양보한다고 해도 그 자금이 고스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돌려질 수 있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지금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실현하는 유일한 길은 제국주의의 초국적 자본과 한국의 예속자본의 교활한 지배․수탈 방식, 분열이간 책동을 반대하여 단합된 역량으로 투쟁을 벌여 나가는 것뿐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전반적 노동자계급의 의식수준이나 이해관계의 견지에서 볼 때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들이 소득연대전략을 환영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현 시기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 실현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타결로 경제 전반, 특히 노동시장이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에 더욱 부합하게 개편되고 있는 정세에 대처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을 조직적으로 결집하며 미국 독점자본 등 제국주의의 초국적 자본과 그에 추종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예속자본의 교활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파탄시키고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단결된 역량으로 힘 있게 벌여 나가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는 단순히 노동자계급의 사회 경제적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계급적 및 대중적 기반을 강화하고 노동운동의 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투쟁과제이다.

민주노동당은 계급적 및 변혁적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제도정치 무대에서의 합법적 정치투쟁과 대중투쟁을 밀착시켜 힘 있게 조직, 전개해 당면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나감으로써 자기의 근본이념을 옳게 구현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목표를 달성하는 길로 힘차게 전진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