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공황과 한국 진보운동진영의 과제

박경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미국의 금융공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국의 금융공황은 ‘제국의 몰락’의 서막
2. 미국 금융공황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모순의 폭발과정
3. 미국 금융공황은 월가의 투기적 금융체제에 대한 역사적 심판
4. 미국의 금융공황과 한국진보운동의 과제

 

전 세계적으로 '달러제국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24일 논평에서 "음울한 현실 속에 사람들은 미국이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세계의 부를 착취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이제 세계는 국제경제에서 미국이 점해온 지배적 지위와 달러화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저기에서 미국식 자본주의를 규탄하고 단죄하며, 새로운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1. 한국경제는 미국 금융공황의 첫째가는 희생양

이번 미국 금융공황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공황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터지고 있고, 한국경제가 그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발 금융공황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까닭은 월가의 금융 세계화 전략 결과 전 세계 금융시장이 월가의 초국적 금융독점자본의 지배 수탈체제로 바뀌어 버렸고, 미국의 금융시장과 구조적으로 융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즉 월가의 초국적 금융독점자본은 자기나라에서 발행한 수많은 파생금융상품들을 해외 금융시장을 통해 판매했고, 세계 모든 나라 금융기관과 투자회사들은 미국의 파생금융상품을 대대적으로 사들였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의 금융공황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금융공황으로 파급되고 있다.

그 와중에서 한국경제가 미국 금융공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경제는 그 외형적 규모에서는 세계 12~3위권 내에 속해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미국 금융위기에 가장 취약하다. 그것은 월가의 금융독점자본이 한국 금융시장의 명맥을 완벽하게 틀어쥐고 자신들 돈벌이의 먹잇감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0년대 말~9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의 시장개방을 강요했고, 그중에서도 금융시장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미국의 금융시장 개방 압력에 굴복, 금융제도 선진화라는 이름아래 금융시장 개방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리고 월가의 초국적 독점자본의 수중에 장악 당하게 됐다. 특히 97년 IMF사태 이후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월가의 금융독점자본의 수탈공간으로 전변되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주식시장 금융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주식열풍 펀드열풍이 수차례 휘몰아쳤는데, 그것들은 모두 월가의 금융독점자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IMF 이후 우리나라 금융시장이란 월가의 금융독점자본이 한국 민중들이 피땀 흘려 생산해낸 부가가치를 퍼내가는 마르지 않는 저수지 그 자체였다. 이것은 지난 수년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뽑아간 수익은 어마어마하다. 2008년 초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배당금만 하더라도 2조 9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주식배당금에 불과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배당금 외에도 주식거래를 통해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챙겨간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 자본이 전체 시가총액의 30%이상을 유지하며 최대의 실세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외국인들의 매수/매도 동향이 증시변화의 가장 큰 변수로 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주무르면서 주가를 조작하고 그를 통해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챙겨가고 있다. 주식시장 게임플레이어들 중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승자로 되고, 국내 개미군단이 패자로 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종속성은 필연적으로 미국 발 금융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생적 능력을 앗아갔고, 우리나라는 세계적 범위에서 금융위기 통화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첫째가는 희생양이 되곤 했던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말레이시아와 우리나라 상황비교는 이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 당시 외환통제를 실시했고, 그 결과 외환위기를 무난히 극복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IMF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혹독하고 참담했다.

이번 미국의 금융공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금융독점 자본가들은 자국 내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같은 금융종속국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월가 금융독점자본의 첫째가는 희생양이다. 이것은 미국금융공황의 여파가 한국금융시장에 직접적 충격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번 9~10월 금융위기 국면에서 한국의 주가 환율 변동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던 데서도 잘 드러난다.

2. 신자유주의적 금융종속의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융자유화, 세계화를 핵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미국의 금융공황 사태로 그 종말을 맞이했다. 이제 더 이상 미국식 자본주의는 지고지선의 제도도 아니며, 미래 사회를 구원해 주는 구세주도 아니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반대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선, 허구와 사기, 비효율성과 비생산성을 스스로 고백했다. 미국식 모델은 더 이상 우리의 미래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배집단들은 여전히 미국 따라 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흐름에 무저항으로 편승하고 있다. 세계적 범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금융위기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흔들고 있고,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지금 세계 각국과 통화스왑(통화맞교환제도)을 체결하고 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한국도 그 대상국에 포함시켜 줬다. 한국의 지배집단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통화스왑 속에 숨겨져 있는 비수를 보지 못한 채 ‘이제 달러위기에서 한숨 돌렸다’는 것에만 안도해 환호와 만세를 부르고 있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통화스왑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에 즉각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눈이 어두워 금융종속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고통과 수모를 잊어서는 안 된다. IMF 이후 전개된 한국경제의 고통스런 현실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종속으로부터 초래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은 한국경제를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구세주도 해결사도 아니었으며, 반대로 지배와 종속의 미끼에 불과했다. 우리들은 경제 붕괴에서 벗어났다고 환호했지만, IMF 구제 금융에 강력히 저항했던 말레이시아 역시 멀쩡했다.

오히려 말레이시아와 다르게 우리나라는 구제 금융 대가로 소중한 경제주권을 깡그리 내줬으며, 그 후유증으로 한국경제는 지금까지 기나긴 저성장의 늪에 빠져버렸다. 수출이 증대됨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확대되지 않으며, 서민경제는 갈수록 악화되며, 중소기업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락가락하고, 노동자들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도시 자영업자들은 경기 침체에 눈물을 흘리는 ‘고통의 경제’가 구조화되었다. 금융시장(주식시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돈벌이 공간으로 변해버렸고, 수많은 개미군단은 돈맛도 보지 못한 채 깡통계좌를 맞보아야 했던 비참한 세월을 잊어서는 안 된다.

IMF 이후 구조화된 ‘고통의 경제’는 IMF 구제금융이 가져온 당연한 귀결이다. IMF 구제금융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값 비싼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는 고리채이다. 그 어떤 고리채보다 더욱 고약한 고리채이다. 그것은 한국경제를 깡그리 채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고리채이다. 지배와 종속, 착취와 수탈의 전면화라는 대가를 갖다 바치고 겨우 목숨을 구걸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금융종속이며, 앞에서 서술한 한국경제의 우울한 현실은 모두 이로부터 초래된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종속의 악순환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구조화된 ‘고통의 경제 체제’는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3. 지금이야말로 진보적 대안을 모색할 적기이다

지금 미국의 금융공황으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허구성과 취약성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미국식 자본주의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구조화된 ‘고통의 경제’에서 벗어나, 서민대중의 삶이 지켜지고, 건강한 성장이 이뤄지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로 된다. 그런데 미국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눈이 어두워 금융종속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놓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허상이 폭로된 지금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기대와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길을 주체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종속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진보적 대안을 적극 모색해 나가야 한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미국식 자본주의 탈피를 외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진보적 대안을 주체적으로 모색해 나갈 수 있는 호기이다.

종속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대안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는 금융적 종속을 핵으로 하는 종속적 경제체질을 구조적으로 혁파하고, 자주적 경제체질을 뿌리내려 나가야 한다. 한국경제는 ‘미국이 기침하면 감기 걸린다’고 할 정도로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놓여 있다. 이러한 경제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의 안정적 발전과 서민대중들의 안정된 삶은 없다. 또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금융위기 통화위기 때마가 첫째가는 희생양으로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금융 독점자본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축소 제거해 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대안과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강화하고,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외국자본의 규모를 적절하게 조절 통제해 나가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수출중심의 경제체질을 내수중심의 경제체질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또한 국내 기간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국가적 통제를 강화해 나가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금융중심의 발전전략에서 벗어나 산업생산력 확대발전 중심의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

둘째는 시장만능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전면적으로 폐기 수정해 나가고, 민중통제형 경제정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노동시장유연화, 자본규제 철폐, 민영화, 금융화를 핵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 금융시장을 비롯한 각종 시장에 대한 적절한 민중적 통제체제를 수립하고, 노동시장을 안정화시키고, 자본의 방종을 규제해 나가야 하며, 생산적 투자를 활성화해 산업발전을 이룩해 나가야 한다.

셋째는 재벌과 부유층 중심의 경제체제를 서민대중 중심의 경제체제로 바꿔 나가야 한다. 이제 재벌 부유층 중심의 경제체제는 그 한계에 봉착했다. 수출은 더 이상 경제발전의 중심축이 될 수 없다. 수출 확대가 서민경제 활성화로 연결되던 연결고리가 파괴되었으며, 수출이 아무리 확대되어도 내수는 살아나지 않는 기형적 경제구조가 고착되었다. 이제는 수출이아니라 내수이다. 내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고 새로운 성장 동력도 만들어낼 수 없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한갓 헛된 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금융 산업은 건강한 산업발전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내수 활성화와 산업생산력 확대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내수활성화와 산업 발전전략의 핵은 대중구매력 확대와 중소기업의 육성에 있다. 대중구매력의 확대와 중소기업 육성은 긴밀히 결합돼 있다. 대중구매력이 확대되어야 중소기업이 살아날 수 있고, 중소기업이 성장 발전해야 고용이 확대되고, 대중구매력이 활성화된다. 내수활성화와 중소기업 육성전략을 현실화시키려면 재벌 부자중심의 경제체제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벌중심 경제체제와 서민경제 활성화 전략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한국 진보운동세력은 이상과 같은 진보적 경제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는 한편 국민대중의 생활적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고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 나가야 한다. 미국의 금융위기로부터 촉발된 현재의 경제위기 국면에서 각 나라와 계급 계층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경제위기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경제적 고통 분담을 둘러싸고 첨예한 계급적 대립과 갈등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서민대중들은 주식과 펀드 투자에서 수 십 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맛보고 있으며, 수년 동안 피땀 흘려 모은 노동의 대가를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불상사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들 서민대중들의 절박한 생활적 고통과 요구를 외면한다면 진보세력의 설 땅은 점점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세력들은 과감히 서민대중 속으로 파고들어가 그들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야 한다. 특히 금융위기를 서민대중에게 전가함으로서 해결하려는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 지배계급들의 음모에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당면대중의 절박한 이익을 위한 투쟁을 외면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갈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새로운 사회와 대중이익 수호의 기치를 들고 투쟁으로 결집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