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위원회의 빗나간 한반도 정세전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5년마다 한 차례씩 발표하는 전략보고서

2008년 11월 하순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가 18개월에 걸쳐 작성한 전략보고서를 내놓았다. ‘2025년 세계동향: 변화된 세계(Global Trends 2025: A Transformed World)’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2025년의 세계정세변화를 전망하는 중장기 전략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만 보더라도, 국가정보위원회가 미국 국가정보계(Intelligence Community)의 전략적 정보분석을 주도하는 기관임을 직감할 수 있다.

실제로 국가정보위원회는 1,500명의 요원을 거느리며 15개 국가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의 자문에 응하면서, 국가정보평가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s)의 작성과정에 관여한다. 이것은 그 위원회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책수립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한 역할을 맡은 위원회에서 5년마다 한 차례씩 발표하는 중장기 전략보고서를 내놓았으니,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전략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부분이다. 전략보고서는 한반도 정세전망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하였지만, 해당부분에 테(box)를 두르고 따로 소제목을 달아놓아 본문보다 돋보이게 하였으니, 한반도 정세전망의 중요성을 의식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반도 문제를 논한 부분의 소제목은 “비핵화된 코리아?(A non-nuclear Korea?)”로 되어 있다. 소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한반도 정세전망에서 중핵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이다.

전략보고서는 한반도에서 비핵화 문제가 통일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한반도 정세변화에서 비핵화와 통일의 상호연관성을 지적한 것은 옳지만, 그 실현 경로를 논한 내용을 읽어보면 전략보고서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오류와 억측이 심하다.

그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이렇게 전망했다

전략보고서는 “한반도가 2025년까지는 통일되어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전략보고서가 작성된 2008년부터 2025년까지는 무려 17년이라는 긴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한반도가 통일되는 때를 어느 해라고 정확하게 ‘예언’할 수는 없지만, 현 시기 정세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살펴보면 한반도가 통일되는 시기는 17년 뒤로 미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10년 안으로 앞당겨질 것이다. 통일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분단시대는 2012년에 전환기를 만난 뒤에 가시적인 통일과정에 들어설 것이며, 그때부터 통일을 실현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여 몇 해 안에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예측하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이 앞으로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느릿느릿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북측이나 미국에게 똑같이 시급한 과제이며, 동아시아 정세가 시급한 해결을 요구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완결되는 때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시급한 비핵화 과제가 10년 안에 실현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말을 통일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비핵화 실현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로막은 걸림돌이 제거된다는 뜻이다. 일단 평화통일의 걸림돌이 제거되면, 통일과정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급속도로 진척될 것이다.

둘째, 2012년에 가시적인 통일과정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하는 까닭은, 2012년에 남과 북에서 동시에 커다란 정세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해에 남측에서는 이명박 정권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권을 세우기 위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고, 북측에서는 그 해까지 강성대국 건설을 끝내겠다고 선포한 바 있으며, 미국은 그 해에 한미연합군사령부를 해체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반환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런데 전략보고서는 한반도의 통일시기를 너무 늦춰 잡았다. 이것은 한반도가 비핵화되는 시기를 너무 늦춰 잡은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한반도의 비핵화 과제가 시급하다는 것은 시사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인데도, 전략보고서에는 왜 그러한 명백한 사실이 반영되지 않은 것일까? 이 의문은 이 글의 뒷부분에서 풀린다.

전략보고서는 한반도가 통일되는 방식에 관해서도 언급하였다. “혹시 그때(2025년)까지 한반도가 단일국가(unitary state)로 통일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남북연합(North-South Confederation)을 실현하게는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가 통일되는 방식은 단일국가로 통일되는 것과 ‘남북연합’을 실현하는 것 두 가지이다.

단일국가로 통일된다는 말은, 남북의 서로 다른 체제를 어느 한 체제로 통합시킨 단일체제국가가 세워진다는 뜻이다. 전략보고서가 남측의 자본주의체제가 무너지고 한반도 전체가 북측의 사회주의체제로 통합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북측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고 한반도 전체가 남측의 자본주의체제로 통합되어 단일체제국가가 세워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은,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북측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상상하는 ‘급변사태’란 대량탈북과 난민유입, 그리고 정변과 내란을 뜻한다. 그들은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원인을 ‘식량위기설’과 ‘건강이상설’로 설명한다. 그들이 ‘급변사태’와 ‘건강이상설’을 어떻게 연관지었는지에 대해서는 2008년 9월 22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건강이상설에 연계된 컨플랜(CONPLAN) 5029’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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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이 ‘급변사태’와 연관지어놓은 ‘식량위기설’은, 북측이 식량난을 겪었던 1990년대 후반부터 퍼뜨린 것이다. 사회주의 국제시장이 무너진 충격에 더하여 미국이 가중시킨 경제제재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던 1990년대에 식량난을 겪은 사회주의 나라는 북측과 쿠바이다. 그 시련의 시기를 북측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라 불렀고, 쿠바에서는 ‘특수시기’라 불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북측과 쿠바는 식량문제를 해결하였는데, 해결방식은 서로 달랐다.

북측과 쿠바를 비교하면 북측의 실상 알 수 있다

식량난을 겪던 시기에 쿠바는 농업생산력을 높여 식량을 자급하는 자력갱생을 포기하고 식량수입에 의존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에 쿠바의 식량수입은 17억 달러였고, 그 가운데 6억 달러어치 식량은 미국에서 사들인 것이다. 2008년도 식량수입은 22억 달러에 이르렀다. 쿠바의 식량수입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식량자급을 포기하였다는 뜻이다.

외화가 있어야 다른 나라에서 식량을 사올 수 있는데, 쿠바의 주된 외화수입원은 관광업이다. 쿠바 정부는 1995년에 외국관광객 74만 명을 받아들여 11억 달러를 벌었다. 1999년에는 160만 명을 받아들여 17억8천만 달러를 벌었으며, 외국합작호텔을 58개나 허가해주었다. 2007년도 관광수입은 22억 달러였고, 2008년도 외국관광객은 전년에 비해 9.3%가 늘어난 235만 명이다. 쿠바는 농업생산력을 높이는 힘든 길을 외면하고 관광업을 확대하는 쉬운 길을 택하였던 것이다.

관광업을 확대한다는 말은 외화수입이 늘어나는 동시에 대외시장이 개방되고 자영업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쿠바에서는 노동계급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전체 노동인구의 3%에 이르는 15만명이 정부가 허가해준 118개의 자영업 직종에서 개인수익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파악한 자영업자가 15만명이니, 지하경제에 퍼져있는 자영업자는 얼마나 더 많은지 모른다.

자영업의 번창은 중산층이 형성되었음을 뜻하고, 중산층의 형성은 사회계급관계가 분화되고 지하경제가 확산되면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정착되고 있음을 뜻한다. 오늘의 쿠바는 자영업 번창과 지하경제 확산→사회계급관계 분화와 중산층 형성→자본주의 생산관계 정착과 사회주의체제 와해로 이어졌던 소비에트형 사회주의의 실패 전철을 밟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쿠바가 도시형 유기농업에 성공하여 식량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선전하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것은 쿠바의 사회주의 영농체계가 조용히 와해되기를 바라는 외부세계의 농업전문가들이 꾸며낸 허구가 아니면 사회주의에 무관심하고 유기농업의 기능적 우월성만을 내세우는 환경생태론자들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쿠바에서 도시형 유기농업에 종사하는 자영농 인구는 35만 명이나 되는데, 공무원의 평균월급이 19달러인데 비해 자영농은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자유시장에 내다 팔아서 월평균 71달러의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쿠바의 도시형 유기농업은 유기농법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기발한 착상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농업발전을 가로막고 사회계급관계를 분화시키는 불길한 온상이다.

쿠바 농촌에서 경작하지 않는 땅(유휴농지)이 끝없이 늘어나는 데도, 도시에서 비좁은 텃밭을 차지하여 개인농사나 지으려는 것은 비사회주의적 현상이다. 쿠바의 유휴농지는 2002년에 이미 전체 농지의 46%에 이르렀는데, 2007년에는 55%로 늘어났다. 쿠바에서 유휴농지가 급증하여 농업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까닭은, 농민들이 국영농장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쿠바의 국영농장은 1988년에 전체 경지면적의 70%를 차지했는데, 2008년에는 3분의 1로 줄었다.

농민들이 국영농장에서 빠져나가는 까닭은, 높은 개인수익을 보장해주는 ‘자영농의 유혹’에 끌렸기 때문이다. 유기농법을 국영농장에 도입하고 나라의 농업생산력을 높여 다함께 잘 살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나라의 농업기반이 무너지건 말건 자영농으로 ‘돈벌이’에 열중하는 개인이기주의는, 사회주의체제의 발전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쿠바 정부도 자영농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를 억제할 수 없고, 농업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유휴농지를 임대해주는 선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쿠바에서 땅을 사고 팔지는 못하지만, 농지임대조치는 국영농장이 문을 닫고 도시형 유기농업이 번창하면서 사회주의 영농체계가 약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북측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쿠바와 다른 길을 택하였다. 북측에서도 관광업이 있지만 쿠바처럼 관광업에 몰입하지는 않으며, 관광업을 해도 사회주의적으로 한다. 이를테면, 대집단체조 및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다. 2007년도에 북측에 들어가서 ‘아리랑’을 관람한 중국인 관광객은 3만명이다.

북측에서 사회주의농업의 식량자급 목표를 포기하였다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유휴농지가 늘어나고 협동농장이 폐업하고 자영농이 출현하는 사태는 북측에서 상상할 수 없다. 개인수익사업에 중독된 중산층이 출현하고 지하경제가 확산되는 것 역시 북측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보수언론은 북측이 만성적 식량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보도하지만, 최근 북측의 식량생산통계만 훑어봐도, 그것이 허위보도임을 알 수 있다. 북측의 식량문제에 관해서는 2008년 10월 27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아사괴담, 진실은 무엇일까?’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다만 북측에서 그 동안 추진해온 ‘감자혁명’이 성공하여 2008년에 감자 300만톤을 생산하였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불가사의한 건설열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통계자료에는 쿠바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2007년에 4천500 달러에서 1만1천 달러로 급증한 것으로 나와 있고, 북측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1천900 달러에서 1천700 달러로 떨어진 것으로 나와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1천700 달러라면, 케냐나 코트드부아와 같은 최빈국 수준이다. 북측의 1인당 국민총생산을 최빈국 수준으로 낮춰놓은 것은, 경제상식이 있는 사람의 눈에는 통계조작으로 보인다. 북측의 경제와 최빈국의 경제가 같은 수준에 있지 않음을 말해주는 사례는 아래와 같다.

중국과 더불어 거대한 ‘신흥시장’으로 떠오른 인도는 북측의 중요한 무역대상국이다. 북측의 3대 무역상대는 중국(30.4%), 남측(24.1%), 인도(10.7%)인데, 북측은 2005년까지 인도에 거의 수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2006년부터 인도에 대한 수출이 급증하였다.

수출급증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수출품목이다. 인도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한 나라인데, 인도가 북측에서 수입하는 품목은 천연색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 쓰이는 전자, 전기제품이다. 만약 어떤 최빈국에서 전자, 전기제품을 생산한다면 그것도 불가사의한 일이거니와,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게 전자, 전기제품을 수출하기까지 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정보기술자문회사 쥐피아이 컨설턴씨(GPI Consultancy)의 대표 폴 치아(Paul Tjia)가 2008년 4월 16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회견한 바에 따르면, 북측의 정보기술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만약 어떤 최빈국에서 정보기술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최빈국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발전수준에 있는 북측을 미국 중앙정보국의 통계자료에서 최빈국 수준으로 낮춰놓았으니, 그런 통계조작을 누가 믿겠는가.

북측의 원유수입은 2004년까지 중국에 거의 100% 의존해왔다. 그런데 2005년부터 중국에 대한 원유수입 의존도가 41%로 급감하였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러나 북측의 유전개발 실상을 알면, 그러한 급감현상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북측의 유전개발에 대해서는 2008년 3월 22일에 발표한 나의 글 ‘숙천유전에서 밝아오는 석유부국의 여명’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북측이 만성적 식량난을 겪는다는 헛소문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방북체험을 통하여 혼란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 2008년 9월 27일자 평양발 기사가 좋은 예이다. 바버라 데믹(Barbara Demic)이 평양발로 보도한 흥미로운 기사의 제목은 “북측에 불가사의한 건설열기가 한창이다(North Korea in the Midst of a Mysterious Building Boom)”로 되어있다. 굶주리고 헐벗은 살풍경을 보겠거니 예상하고 평양에 도착한 미국인 기자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많은 아파트, 극장, 호텔, 도로가 현대적으로 개조되고 꾸며지거나 새로 건설되는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105층짜리 류경호텔의 내외장공사를 진행하고, 2012년까지 살림집 10만채를 건설하는 대공사를 밀고 나가는 건설열기를 목격하고 짐짓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 미국인 기자에게 북측의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최종훈 참사는 말했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의지한다면 우리의 꿈은 2012년까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자체의 기술과 자재, 자체의 노동력과 힘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한편, 그 무렵 평양을 다녀간 남측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윤덕룡 연구위원은 그 미국인 기자에게 “그것은 수수께끼이다. 북측은 외부세계에 자기들이 굶지 않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사실이 아닌데, 그 자금이 도대체 어디서 나는지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저들의 방북체험담에서 나오는 불가사의, 수수께끼, 놀라움 따위의 말들은, 굶주리고 헐벗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방북하였을 때 건설열기가 한창인 것을 보고 느끼는 당혹감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식량난과 건설열기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일까? 그들이 북측에서 허깨비를 본 것이 아니라면,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식량난은 헛소문이고, 그들이 직접 보고 느낀 건설열기가 진실이다. 헛소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노라고 선포하고 지난 10년 동안 경제건설을 추진해온 북측의 실상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현실이 아니라 헛소문에 기초하여 한반도의 정세를 전망한 것이 아닐까.

우화(寓話)는 현실이 아니다

전략보고서는 2025년까지 단일체제국가가 생겨나지 않을 경우, ‘남북연합’이 실현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남북연합’ 실현이란, 북측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햇볕론자들이 제시한 전략목표이다. 북측의 ‘급변사태’와 체제붕괴가 대결주의자들의 ‘허위광고’라면, 북측의 ‘개혁개방’과 체제변화는 햇볕론자들의 ‘전매특허’이다. 햇볕론이란, 길손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북풍과 햇볕이 힘자랑을 하였는데 햇볕이 이겼다는 이솝우화(Aesop Fable)를 남북관계에 투사한 대북정책론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들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북조선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장롄구이(張璉瑰) 교수가 <동방조보>(東方早報) 2009년 1월 6일자에 발표한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햇볕정책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남북관계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에 따르면, 남측은 햇볕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대북경제협력을 위한 비용만 지불하였을 뿐이며, 남북관계의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한 쪽은 북측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지난 10년 동안 남측이 북측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고, 북측이 남측에 미친 영향이 급증하였다고 하면서, 북측의 체제변화를 촉진하려는 햇볕정책의 목표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햇볕론자들은 개혁개방으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지만, 문제의 핵심은 북측이 개혁개방을 배격한다는 데 있다. 북측의 보도자료를 인용한 <연합뉴스> 2008년 8월 27일자 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7년 9월 당간부들에게 “우리는 절대로 개혁바람에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뻗치니 견디지, 개혁개방을 했다면 벌써 망한 지도 오래됐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혁개방에 공감한다고 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있는 한 절대로 개혁개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확고한 결심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햇볕론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확고한 결심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북측 인민들이 아직 ‘돈맛’을 몰라서 그렇지, 일단 ‘돈맛’을 알면 개혁개방을 안 하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 우긴다. ‘햇볕’에 대한 맹신은 북측의 5천원짜리 최고액권 한 장을 끼워넣은 전단을 가득 실은 풍선을 북쪽 하늘을 향해 띄우면서 북측 인민들이 ‘돈의 유혹’에 빠져주기 바라는 미신과 비슷해 보인다.

북측이 햇볕정책을 배격하는데, 그 정책의 목표인 ‘남북연합’이 실현될 수 있을까?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우화는 현실이 아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체제붕괴나 체제변화에 의해서 단일체제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의 정치적 공동노력에 의해서 통일공화국(unified republic)을 건설하는 것이다. 남북의 체제를 서로 인정한 기초 위에서 정치회담을 통해 나라의 주권을 하나로 통합하여 통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합리적인 방도이자 현실적인 방안이다. 통일공화국을 건설하는 평화통일론에 대해서는 2008년 9월 16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통일학의 평화통일론 해명방식’에서 자세히 논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문제는 다시 비핵화와 철군이다

전략보고서는 “만일 미국이 북측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지시키려는 외교적 노력을 한반도가 통일되는 시기까지 계속하게 된다면, 통일시기에 북측의 핵기반시설과 핵능력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문제가 불확실하게 남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비핵화 일정이 불확실하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워싱턴에서는 북측이 끝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워싱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 전망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 원인은, 2006년 10월 9일 북측이 핵보유국임을 공개적으로 실증해보인 데 있다. 그 실증은 북측이 핵무기를 가졌는지 아니면 갖지 못했으면서도 가진 척하는지 알 수 없었던 핵모호성을 제거하였다. 북측은 핵모호성을 스스로 없애고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핵보유국은 핵무기비확산체제(NPT Regime) 안에 있는 핵보유국과 그 체제 밖에 있는 핵보유국으로 나뉜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과 함께 전자에 들고, 북측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함께 후자에 든다.

미국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Joint Operation Command)가 2008년 11월 25일에 펴낸 ‘2008 합동작전환경 평가서(Joint Operation Environment 2008)’는 북측,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을 아시아의 5대 핵보유국이라고 지적했고, 미국 국방장관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2009년 1,2월 합병호에 발표한 글 ‘균형 잡힌 전략(A Balanced Strategy)’에도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하였다고 언급한 대목이 들어있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핵무기비확산체제 밖에 있는 핵보유국을 서로 다르게 대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보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인 방조한다.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보유에 대해서 말하기는 하지만, 그 두 나라의 핵무기가 위험하다고 지적하지 않으며 비핵화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오직 북측이 가진 핵무기만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비핵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왜 그러한 것일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전략에 숨겨진 의도를 살펴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적대국을 ‘관리’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응정책에서 기본공식은 적대국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다. 북측은 미국이 건국한 이래 아마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을 괴롭혀온 적대국일 것인데, 그러한 북측 정권을 친미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의 총적 목표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도가 ‘급변사태 유발’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만일 핵보유국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핵무기, 핵물질, 핵기술, 핵과학자들이 ‘급변사태’의 대혼란 속에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핵확산의 공포가 워싱턴을 덮치는 것이다. 핵보유국에서 ‘급변사태’를 일으킬 수 없다는 데 미국의 깊은 고민이 있다.

북측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에서 ‘급변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교체하려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려면, 먼저 북측의 핵무기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북측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해결하기 힘든 난제 중의 난제이다. 그들이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것이 달러로 핵무기를 사서 해체하는 우크라이나식 비핵화 방안이다. 전략보고서는 “통일된 한반도가 경제재건을 위한 막대한 재정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므로,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한반도가 국제사회로부터 인정과 경제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식 비핵화 방안을 북측에 적용해보겠다는 시나리오는 너무 황당무계해서 논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통일공화국 정부가 북측에 보관되어 있던 핵무기를 미국에게 팔아서 북측의 경제재건을 위한 재정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은 현실과 동떨어진 우스개 소리로 들린다.

통일공화국이 북측의 경제재건을 위한 막대한 재정부담을 떠안을 것이라는 전략보고서의 예측은, 북측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교체하는 데 막대한 재정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저들이 제시한 체제교체 방도는 체제붕괴와 체제변화인데, 전략보고서는 “비핵화(denuclearization), 비군사화(demilitarization), 난민유입(refugee flows), 재정재건(financing reconstruction) 등과 같은 새롭고 지속적인 도전들을 주변강국들이 새로운 차원의 협력으로 관리하는 것이 한반도의 통일에 따라오는 전략적 결과들이 될 것”이라고 전망함으로써, ‘급변사태’에 의한 체제붕괴의 가능성과 ‘개혁개방’에 의한 체제변화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었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것처럼, 체제붕괴나 체제변화에 관한 전망은 괴담 수준의 헛된 전망이다. 국가정보위원회는 괴담 수준의 헛된 전망을 내올 것이 아니라,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명백하게 규정한 대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현실전망을 내와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반도의 비핵화란 북측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에 상응하여 미국은 한반도 핵전략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 핵전략을 포기한다는 말은, 그 전략을 수행하는 무력단위인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고서 한반도 핵전략을 포기할 방도는 없다. 비핵화와 철군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2008년 10월 20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비핵화 제2단계의 ‘시간표’를 읽는 법’에서 자세히 논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에 대해 아직 불확실한 것만큼, 북측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핵무기 포기문제에 대해 아직 불확실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핵화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에 달려있다. 북측은 이미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천명하였으나, 미국은 아직 한 차례도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