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오르게 된 오바마 정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대통령 취임사에서 언급하지 못한 격전지

2008년 1월 20일 아메리카 합중국의 도읍지 워싱턴은 18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파로 들끓었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취임식을 먼발치에서나마 구경하려고 모여든 군중은 식장이 마련된 국회의사당 서쪽 계단 일대는 물론, 거기서 멀리 떨어진 링컨기념관까지 이르는 3km의 드넓은 국립공원길(National Mall)을 그득 메웠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의 화려한 등장에 미국 인민들만 환호한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방송전파를 타고 중계된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전 세계가 지켜보았다.

18분 31초 동안 계속된 취임연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전쟁사를 짤막하게 언급한 대목이다. 취임사의 그 대목에서 열거한 것은, 미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들인 컨코드(Concord), 게티스벅(Gettysburg), 놀만디(Normandy), 케산(Khe Sanh)이다. 미국 전쟁사를 아는 사람이나 그 격전지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컨코드는 1775년 4월 19일 미국 독립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의 첫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이고, 게티스벅은 1863년 7월 3일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에서 북군이 승리한 격전지이고, 놀만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6월 6일 미국군이 대규모 상륙작전에 성공한 프랑스 해안의 격전지이고, 케산은 1968년 4월 8일 미국군이 북베트남군과 맞서 싸운 베트남전쟁의 최대 격전지이다. 그의 취임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20세기에 미국군의 전쟁상대는 파시즘과 공산주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반파시즘전쟁으로, 베트남전쟁은 반공전쟁으로 미국 전쟁사에 기록되었다.

중국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연설을 중국말로 통역하는 중계방송 중에 미국이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다는 말을 통역하지 않은 채 슬쩍 넘어갔지만, 미국이 아시아대륙에서 벌인 반공전쟁은 그 전쟁의 의미를 인식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된 국립공원길에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격전지를 언급한 전쟁기념 조형물들이 줄이어 서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World War II Memorial)와 베트남 참전군인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격전지를 언급하지 않은 전쟁기념 조형물이 하나 더 있다. 코리아전쟁 참전군인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다.

미국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미국군이 세계 최초의 반공전쟁을 벌인 격전지가 한반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넓지 않은 땅에서 3년 동안 벌어진 전면전이 그처럼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미국 전쟁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도 가장 격렬한 전쟁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코리아전쟁 격전지 대신에 베트남전쟁 격전지를 언급하였다. 대통령이 읽는 각종 연설문들 가운데서 대통령 취임사는 매우 중요한 문서이므로, 유능한 대통령 연설문 담당관들이 작성한 뒤에 낱말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법인데, 그들이 미국 전쟁사를 잘 알지 못해서 코리아전쟁 격전지를 빼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코리아전쟁 격전지를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미국이 그 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전쟁사가들도 쉽사리 잊기 쉬운 것은,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정전이란 평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를 뜻한다. 세계 전쟁사에서 56년이 되도록 끝나지 않은 초장기화된 전쟁은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유일하다.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은 아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조인된 정전협정은, 협정을 체결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국군이 일방적으로 위반하는 바람에 사문화되었고, 정전체제를 관리해온 군사정전위원회마저 해체되었다. 따라서 오늘 한반도의 군사상황은 전쟁재발을 방지할 최소한의 국제법적, 정치군사적 장치를 갖지 못한 위험한 정전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둘째, 전쟁재발을 방지할 아무런 조건도 갖지 못한 정전상태에서,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군사력 증강과 실전기동연습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다. 미국군이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 증강과 실전기동연습을 이끌면서 현재진행형인 한반도 반공전쟁의 재발에 대비하는 전쟁준비에 몰두해왔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북측도 그에 대응해서 전쟁준비를 갖춰왔다.

셋째, 〈워싱턴포스트〉 2008년 12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신속기동군 3개 부대를 신설하여 미국 본토에 배치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신설되는 신속기동군은 핵전쟁 대응훈련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주한미국군을 이미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여 재배치한 것이, 한반도 핵전쟁을 준비하는 군사전략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군에게 한반도는 그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수많은 해외작전지역들 가운데 한 곳에 지나지 않겠지만, 칠천만 겨레에게 한반도는 민족의 운명을 간직한 보금자리이며, 그래서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삶의 터전이다. 자기의 운명을 간직한 보금자리에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삶의 터전에서 미국군이 56년이 지나도록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 민족에게 통한이며 불행이며 재앙이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남겨놓은 56년 묵은 유산이 이 민족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남긴 유산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남긴 유산은 미국군의 핵위협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불시 기동하는 미국군 항공모함 전단, 핵추진 잠수함, 전략폭격기들은 해외전시용 군사장비가 아니다. 미국군의 각종 군사장비들은 적대국 전투원만 골라서 죽이지 않고,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한 대량살육으로 몰살시키는 살인기계들이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군사비밀이어서 사람들이 너무 무감각하지만,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불시 기동하는 미국군의 방대한 군사장비들에는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정밀유도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이 실려있다.

2007년 현재 미국군 핵무기고에 잔뜩 쌓아놓은 각종 핵무기는 5천47기인데, 그 가운데 실전에 배치되어 즉각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는 2천163기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한반도를 겨눈 비(B)61 계열의 각종 전술핵무기들이다.

비(B)61 계열의 전술핵무기를 장착한 정밀유도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을 싣고 다니는 미국군 항공모함 전단, 핵추진 잠수함, 전략폭격기들이 한반도의 하늘과 바다에 수시로 나타나도 사람들은 ‘또 왔나보다’ 하면서 무덤덤하다. 아닌게 아니라, 미국군 핵무기들이 실전에서는 쓰지 못하고 대적협박용으로나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시풍조가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미국군이 설마 핵무기를 실전에서 쓰지는 못하겠지 하고 경시하는 풍조는 군사정보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미국군은 지난 냉전시기에 만들었던 협박용 핵무기들을 실전용 핵무기로 개조하여 재배치해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008년 회계연도만 해도, 미국은 협박용 핵무기를 실전용 핵무기로 개조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291억 달러나 쏟아부었다.

이를테면, 미국 해군이 14척을 보유한 핵추진 잠수함(SSBN)은 미사일을 한 척당 20기씩 싣고 잠항하는데,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한 기의 탄두부에 전술핵탄두를 6개씩 장착할 수 있으므로, 핵추진 잠수함 한 척은 전술핵탄두 120개를 바다 속에서 불시에 발사할 수 있는 것이다. 2008년 12월 4일 미국진보센터(CAP) 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해군 핵잠수함이 전세계에서 벌이는 경계순찰활동의 60%가 태평양지역에 집중되었는데, 북측은 미국군이 경계순찰목표로 지정한 3개국에 중국, 러시아와 함께 포함된다. 2008년 11월 10일 미국 해군 핵추진 잠수함 한 척이 일본 정부에 사전통보도 하지 않고 오키나와에 무단입항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는 데, 미국군 핵추진 잠수함이 동해 해수면 아래 어디서 언제 잠항하는지는 미국 군부만 알고 있다.

미국군이 실전용으로 재배치한 비(B)61 계열의 각종 핵무기 가운데서 1996년에 개발된 전술핵무기 비(B)61-11은, 재래식 대형폭탄으로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한 지하군사시설을 폭약 340kt(34만t)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깨뜨리는 지하관통 핵폭탄이다. 정밀유도장치가 달린 지하관통 핵폭탄으로 지하군사시설을 파괴하는 공습작전은 비(B)-2 스텔스 전폭기가 맡는다. 미국 본토 미주리주에 있는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스텔스 전폭기가 폭약 34만t의 파괴력을 가진 지하관통 핵폭탄 한 발을 투하하는 경우, 피폭지에서 40만 명이 핵참화로 몰살당한다고 추산한 자료가 있다. 미국은 2002년 1월 북측을 선제공격대상으로 지목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새로운 전술핵폭탄의 필요성을 거론하였고, 2003년 5월 9일에는 새로운 전술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세계에서 지하군사시설을 가장 많이 건설한 나라는 북측이다. 북측이 지하에 건설한 시설물은 다른 나라에서도 건설하는 통상적인 지하방호시설이 아니라, 전국토 요새화 군사노선에 따라 특수공법으로 건설한 8천 개소가 넘는 각종 지하요새들이다. 작전지휘소와 주민대피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미사일기지와 각종 포진지, 사단병력 수용시설과 긱종 군수공장이 지하요새화 되었으며, 심지어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공군기지 활주로와 격납고도 지하요새화 되었고, 군함과 잠수함이 드나드는 해군기지까지 지하요새화 되었다.

주목하는 것은, ‘악마의 무기’라고 부르는 미국군의 지하관통 핵폭탄이 가장 집중적으로 겨누고 있는 공격대상이 북측이라는 점이다. 미국군의 항공모함 전단, 핵추진 잠수함, 전략폭격기들이 핵탄두를 장착한 정밀유도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을 싣고 수시로 한반도의 하늘과 바다에 출몰하는 것은 해외유람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전연습을 하는 것이다. 미국군의 핵폭탄은 북측에 떨어질 것이므로 남측은 핵참화를 입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방사능 오염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2차 핵참화를 알지 못하는 허튼 소리이다. 한반도 반공전쟁의 재발을 상정한 미국군의 핵전쟁준비는 남측과 북측을 가리지 않는 민족전멸의 광란적인 전쟁범죄이다.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방심을 유도한 뒤에 기습한 가자지구 침공작전에서 하마스가 구축해놓은 지하갱도를 정밀유도폭탄을 투하하는 선제공습으로 파괴한 것처럼, 미국군도 북측의 방심을 유도한 뒤에 선전포고 없는 기습적인 선제공습으로 북측의 지하요새를 파괴하기 위한 대북침공작전을 준비하면서 실전기동연습을 해마다 여러 차례 실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북공습을 상정한 실전기동연습 가운데는 미국군 전투비행단이 계속 실시해오는 ‘핵무기공습 검열훈련’도 있다.

충격적인 것은, 2008년 12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와 미국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USJFCOM)가 각각 펴낸 보고서들에서 북측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측이 보유한 몇 개 되지도 않는 핵무기는 원시적인 수준이어서 폭격기에 싣지도 못할 만큼 무겁다는 식으로 비웃으며 과소평가해오던 미국의 국가정보기관과 군부가 이제와서 북측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된 꿍꿍이속은 무엇일까?

미국군이 북측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말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비핵국가에 대해서 핵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핵전쟁 방침을 북측에게는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군의 시각에서 보면, 위험한 정전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전술핵무기로 선제공습을 가할 제1차 공격목표인 것이다. 미국군의 한반도 핵위협이야말로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이 남긴 ‘죽음의 유산’이다.

물론 북측도 미국군의 선제공습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측은 그 동안 연마해온 대량보복능력을 동원하여 미국군의 전략거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는 대반격을 가할 것이다. 북측에게는 항공모함 전단, 핵추진 잠수함, 전략폭격기 같은 장거리를 운항하는 군사장비가 없으므로, 미국군을 대량보복할 군사장비는 미국군이 발사하는 정밀유도무기를 무력화하는 교란체계와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사거리가 긴 탄도미사일이다. 그래서 북측은 정밀유도장치 교란체계와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소형전술핵탄두를 개발하는 전략사업에 국력을 집중해왔고, 그 분야에서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핵탄두 제조능력과 장거리미사일 제조능력에 관해서는 내가 2000년 1월에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북(조선)의 대응핵전략’이라는 글을 발표한 뒤로 그 주제를 논한 글을 여러 차례 더 발표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고, 최근 사례를 지적한다.

2008년 12월 18일 워싱턴에 있는 전국보도협회(National Press Club)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태평양군사령관 티모시 키팅(Timothy J. Keating)은 “북측이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북측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소형핵탄두를 개발하였는지를 물은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 또는 아니다고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시기 북측의 핵무기 보유문제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들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태도(NCND/Neither Confirm Nor Deny)로 ‘연막’을 쳤던 사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 정부관리들이 언론을 상대할 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아리송한 말로 질문을 피해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내부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외부적으로는 인정하기 곤란할 때 쓰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2009년 1월 12일부터 닷새 동안 방북하였던 미국 국제정책센터(CIP) 아시아 담당국장 셀릭 해리슨(Selig S. Harrison)이 전한 바에 따르면, 북측 관계자가 그에게 북측이 미사일에 장착할 핵탄두를 만들었음을 시사하였다고 한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그 전쟁은 재래식 무기를 동원하는 기존방식의 전쟁이 아니라 북측과 미국이 서로 상대방의 전략거점들을 향해서 전술핵탄두를 발사하는 전대미문의 핵전쟁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와 미국 본토가 상호핵위협(mutual nuclear threat)에 노출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2009년 1월 17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면서 “조선반도 핵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미국 핵무기 대 우리 핵무기 문제”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반도와 미국 본토가 상호핵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군사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핵위협의 근원적인 청산이란 무엇일까?

2009년 1월 13일 북측 외무성이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기 일주일 전에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는 점에서, 새로 출범한 오바마 정부에게 보내는 북측의 의사가 그 담화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례적으로, 외무성 담화가 나온지 나흘만인 2009년 1월 17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외무성 대변인의 답변이 보도되었는데, 이것은 외무성 담화의 내용을 한층 더 명료하게 밝힌 일종의 ‘보충설명’으로 보인다. 따라서 외무성 담화와 대변인 답변을 함께 읽어야, 오바마 정부에게 보내는 북측의 의사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특별담화’와 ‘보충설명’에 나타난 북측의 의사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측이 해명한 것은 비핵화의 근본목적이다. 외무성 담화는 “우리가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되여온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비핵화는 “핵위협의 근원적인 청산”이라는 것이다. 외무성 담화는 “미국의 핵위협이 제거되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 없어질 때” 비핵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둘째, 북측이 강조한 것은 핵위협 청산을 앞세우는 원칙이다. 대변인 답변은 “관계정상화와 핵문제는 철두철미 별개의 문제”라고 구분하고, “미국이 조미관계 정상화를 우리 핵포기의 대가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게 된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나 경제지원 같은 것을 바라서가 아니라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북측은 미국군의 핵위협을 청산하는 문제가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보다도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며 시급하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오바마 정부가 양국 관계를 정상화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미국군의 핵위협을 청산하는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단호하게 표명한 것이다.

셋째, 북측이 제시한 것은 핵위협을 청산하는 방도이다. 외무성 담화는 “미국 핵무기의 남조선 반입과 배비, 철수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자유로운 현장접근이 담보되고 핵무기가 재반입되거나 통과하지 않는가를 정상적으로 사찰할 수 있는 검증절차가 마련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북측이 제시한 이 방도는 1992년 1월 20일 남북이 채택,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 나오는 남북 상호핵사찰이 아니다. 남측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정기적인 감시를 받으면서 핵안정의정서를 준수해오고 있는데, 그런 남측에서 북측이 핵사찰을 추가로 실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북측이 제시한 방도는, 미국이 북측의 핵무기 제조현황을 사찰하려 한다면, 북측도 그에 상응해서 미국군의 핵전쟁 준비현황을 사찰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서, 북측은 남북 상호핵사찰이 아니라 조미(북미) 상호핵사찰을 요구한 것이다.

비핵화의 범위는 곧 핵검증의 범위이다. 9.19 공동성명에서 북측을 비핵화하자고 합의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비핵화하자고 합의하였으므로, 핵검증을 실시하는 범위도 북측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 적용되어야 이치에 맞는다.

핵위협을 청산하는 첫 걸음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과정에서 당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핵검증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다. 핵검증 협상은 핵위협을 청산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된다.

부시 정부는 핵검증을 실시하자면 우선 영변핵시설에서 시료채취부터 해야 한다고 강변하였지만,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왜냐하면 북측이 미국 사찰단에게 시료채취를 허용함으로써 자국의 군사용 핵물질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핵무기에 관한 극비군사정보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이 보유한 핵물질은 다른 비핵국가들이 보유한 핵물질과 다르게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핵물질이다. 핵무기 제조시설이 없는 비핵국가가 보유한 핵물질은 핵무기 제조와는 무관한 원자로 가동에 쓰이는 비군사용 핵물질이므로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를 앞세워 사찰할 수 있다. 그런데 북측이 보유한 핵물질은 원자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 제조시설로 들어가는 군사용 핵물질이다. 2009년 1월 12일부터 닷새 동안 방북한 미국 국제정책센터 아시아 담당국장 셀릭 해리슨은, 북측이 2008년에 신고한 플루토늄 30.8kg을 모두 핵무기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북측이 영변핵시설에서 군사용 핵물질을 생산해온 것은, 2008년 11월 12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2008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 차관보(당시)가 평양을 방문하여 진행한 핵검증 협상에서 북측과 미국이 “견해의 일치를 본” 특수상황이며, “검증문제와 관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수상황”이며, “검증의 방법과 범위를 규제하는 특수상황”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바마 정부가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 따라 핵검증 협상을 추진하지 않고 미국에게만 유리한 ‘자의적 검증기준’에 따라 추진하려고 하면 협상은 또 실패하고 말 것이다. ‘자의적 검증기준’을 고집하다가 결국 외교성과를 하나도 건지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고 쓸쓸히 퇴장한 부시 정부의 실패 전철에서 오바마 정부가 배워야 할 ‘학습효과’는 선임자의 실패 전철을 되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측과 미국은 핵검증 협상을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 의거하여 이른 시일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 이른 시일 안에 핵검증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말은, 조급증이 생겨서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세,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정세가 시급한 해결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오바마 정부가 북측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면서 협상기간을 한없이 끌어 장기화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그렇게 보는 논거는 이렇다.

첫째, 이란의 핵개발 능력이 시시각각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가정보기관 모싸드(Mossad)는 이란이 올해 핵무기를 제조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북측에 이어 이란까지 핵개발에 성공하여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는 날, 아시아에서 핵확산은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질 것이며, 오바마 정부는 핵무기 비확산체제를 유지해온 미국의 권위와 능력을 잃어버린 무력한 몰골을 국제사회에 노출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란의 핵무기 보유는 중동정세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면서 이란 대 이스라엘의 정면대결을 불러올 터인데, 가뜩이나 위험천만한 중동 정세에 핵대결 위기까지 더해지는 경우 중동 산유국들이 주도하는 세계 석유시장은 위축, 마비될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의 핵개발을 올해 안에 속히 저지하려는 조바심은, 핵검증 협상을 속히 마무리하려는 조바심과 일치한다. 또한 그 조바심은 ‘미국의 재건’을 외치는 오바마 정부가 핵무기 비확산체제를 유지하는 외교능력을 미국 인민들과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절실한 요구와 상통하는 것이다. 북측과 미국이 벌이는 핵검증 협상의 추진속도가 이란이 밀고 나가는 핵개발 속도에 비례하여 빨라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만약 오바마 정부가 핵검증 협상을 질질 끄는 경우, 북측이 강경조치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부시 정부가 2008년 8월 11일에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북측은 지하핵실험 준비에 돌입하는 초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2008년 8월 15일부터 10월 4일까지 북측 언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거동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 까닭은, 그 기간에 그가 지하핵실험 준비사업을 비공개로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측의 초강경한 조치에 기가 질린 부시 정부는 2008년 10월 11일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공약을 원래대로 이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일부러, 미국과 남측의 정보기관들, 보수정객들, 보수언론들이 ‘건강이상설’을 날조, 유포한 행위는 세상을 속이려다 실패한 ‘사기미수극’으로 끝났다.

다른 한편, 일부 분석가들은 오바마 정부가 미국의 경제위기를 해소하는 국정운영에 골몰하기 때문에 핵검증 협상 재개를 뒤로 미룰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빗나간 관측이다. 2009년 1월 22일 미국 연방상원 정보위원회 인준청문회에 나온 오바마 정부의 국가정보국 국장(DNI) 내정자 데니스 블레어(Dennis C. Blair)는 북측과 이란의 핵문제를 “미국이 우려하는 단기적 외교안보문제”라고 지적하였는데, ‘단기적’이라는 말에는 이른 시일 안에 시급히 해결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2008년 12월 15일 ‘미국 전략태세검토 의회위원회(Congressional Commission on the Strategic Posture of the United States)’가 발표한 중간보고서에 나오는 적중한 표현을 빌리면, 오바마 정부는 “핵확산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꼭지점에 올라서 있는” 꼴이다.

협상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 오바마 정부

위에서 지적한 대로, 북측의 외무성 담화가 규정한 핵검증의 의미는 조미(북미) 상호핵사찰이다. 외무성 담화는 “비핵화가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단계에 가서 조선반도 전체에 대한 검증이 동시에 진행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조선반도 전체에 대한 검증’이란 북측이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 준비현황을 사찰한다는 뜻이다. ‘비핵화가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단계’에 가서 실시할 검증은 조미(북미) 상호핵사찰이고, 현 단계에서 실시할 검증은 2008년 11월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지적한 것처럼 시료채취를 배제한 “영변핵시설로 한정된다.”

그런데 한반도 전역에 대한 북측과 미국의 대칭적 검증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북측이 실현불가능한 핵검증 원칙과 방도를 꺼내놓은 것은, 핵검증 협상에 더 이상 관심이 없어서 ‘판깨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곧 재개할 핵검증 협상에서 핵위협을 근원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군사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외무성 담화에 담긴 속뜻은 북측이 오바마 정부에게 한반도 군사문제를 협의하자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핵검증 협상은 6자회담에서 진행하는 다자협상이 아니다. 북측이 자국의 핵무기에 관한 극비군사정보를 남측,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가하는 다자회담에서 공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국의 핵무기 관련 정보를 국제사회에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만약 핵무기에 관한 극비군사정보를 외부에 공개할 용의가 북측에게 있다면, 그 공개범위는 마땅히 북측이 오바마 정부를 상대로 진행할 양자협상에 엄격히 국한될 것이다. 따라서 핵검증 협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북측과 미국의 양자협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으며, 협상과정에서 주고 받는 극비군사정보는 국가기밀로 처리될 것이다.

핵검증 협상은 북측이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 준비현황을 사찰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북측의 핵무기 제조현황을 사찰하는 식의 실현불가능한 대칭적 검증방안을 타결하는 협상이 아니라, 핵위협을 상호 청산하는 군사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협상이 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008년 9월 1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정치적 해결을 통한 비핵화검증’에서 논하였다.

북측과 미국이 곧 재개할 핵검증 협상에서 다룰 의제는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난 한반도 군사문제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반도 군사문제란 북측과 미국 쌍방 모두 공개적으로 논하는 것을 피할 만큼 최고로 민감한 사안이어서 비공개로 진행하는 고위급 양자회담에서만 꺼내놓을 수 있는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이다. 북측이 외무성 담화에서 요구한 ‘핵위협의 근원적인 청산’이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와 북측의 핵무기 포기문제를 일괄타결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고 그에 상응해서 북측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괄타결은, 미국의 한반도 반공전쟁을 끝내는 종전과 평화의 길이며, 한반도 정세를 옥죄는 미국군의 핵위협을 청산하는 비핵화의 길이다.

2008년 10월 평양에서 진행된 핵검증 협상은, 부쉬 정부가 협상에서 합의하지도 않은 시료채취 문제를 협상 직후에 부당하게 들고 나오는 바람에 결렬되고 해를 넘겼지만, 오바마 정부가 출범 100일 안에 재개할 수밖에 없는 시급한 현안이다. 오바마 정부는 북측이 제기할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풀어야 하는 핵검증 협상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