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개시한 정권교체 역공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정전 이후 남북관계사에서 처음 있는 일

2009년 1월 17일 북측의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성명을 발표하였고, 그로부터 13일이 지난 1월 30일에는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뒤로 북측이 초강경한 어조로 이명박 정권을 맹비난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1월 30일 이전까지만 해도 반이명박 공세는 〈로동신문〉이나 〈민주조선〉을 통한 언론공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언론공세가 아니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전면에 나서서 잇따라 초강경한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성명발표는 남북관계사에서 선례를 찾기 힘들다.

더욱이 북측 군부가 남측 정권 및 군부를 상대로 성명을 발표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한 사례는 1998년 12월 2일과 1999년 9월 2일에 있었다. 앞의 사례는 1998년 10월부터 ‘작전계획(OPLAN) 5027’에 들어있는 북침공격 시나리오를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려주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미국 군부에게 “미제침략군의 도전에 섬멸적인 타격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내용의 반미성명을 발표한 것이고, 뒤의 사례는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북측이 새로 설정한 서해해상 군사분계선을 발표하는 특별보도 형식의 성명이었다.

이례적인 일에는 반드시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는 법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잇따라 발표한 성명들에 담긴 북측의 진의는 무엇일까?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발표한 성명은 북측 군부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대남부서들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남측에서는 통일부를 정부부처로 두었지만, 북측에서는 나라의 통일사업을 내각이 아니라 당 중앙위원회의 대남사업부서들이 담당한다. 남측의 집권당은 대변인을 내세워 자기 의사를 표명하지만, 북측의 당 중앙위원회 대남사업부서들은 대변인을 두지 않는 대신에 자기 의사를 대변하는 기관을 따로 두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당 중앙위원회 대남사업부서들을 대변하는 기관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발표한 성명은, 원문표현을 그대로 적으면, ‘매국역적 리명박 역도’와 ‘괴뢰군부 호전광들’에게 보낸 것이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은 ‘리명박 역도’와 ‘역적패당’에게 보낸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극도로 자극하는 원문표현을 걷어내고 다시 읽으면, 전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남측 군부에게 보내는 성명이고, 후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게 보내는 성명인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라고 극렬하게 비난하였다는 점이다. 북측 군부가 발표한 성명은 이명박 대통령을 ‘매국역적’이라고 비난하였다. 이것은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을 민족반역자로 낙인찍었음을 말해준다. 북측에서는 민족반역자에 대해서 역도니 역적이니 하는 말을 쓴다.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도’라고 비난하지 않고 정상회담까지 개최하였던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역도’라고 극렬하게 비난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을 대화상대가 아니라 타도대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만이 아니라 한나라당까지 ‘역적패당’이라고 맹비난한 것은 이명박 정권을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다는 뜻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졌던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도 북측은 남측 역대대통령들을 ‘역도’라고 비난하였고,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는 1994년 7월에 김영삼 정권이 이른바 ‘조문파동’을 일으킨 직후부터 ‘역도’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북측이 남측의 이전 정권들에 대해서도 극렬하게 비난한 적이 있으므로, 현 정권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것은 특이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북측은 이전에 남측 역대정권들을 극렬하게 비난하면서도, 특정시기에는 그 정권들과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로 대화하였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권과는 7.4 남북공동성명을 채택하였고, 전두환 정권과는 밀사를 교환하면서 비공개로 대화하였고, 노태우 정권과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였고, ‘조문파동’으로 성사되지는 못하였지만 김영삼 정권과는 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그런데 북측이 이명박 정권과 상대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서 그 정권을 아예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으니 사태는 심각해질대로 심각해진 것이다. 남측 일각에서는 남북이 서로 긴장을 풀고 대화를 재개하여야 한다든지, 이명박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할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북측에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든지 하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북측이 앞으로 이명박 정권을 상대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 까닭은, 이번에 발표한 성명에서 밝힌 것처럼 북측이 남측의 역대정권들과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로 합의한 사항들을 모두 무효화하는 마지막 조치까지 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과거사를 돌아보면, 북측이 극렬하게 비난하였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에나 김영삼 정권 시기에도 남측 정권과 합의하였던 정치적 공약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6.25 전쟁이 정전된 이후 남북관계사 55년 동안에 북측이 남측 정권과 합의한 정치적 공약을 전면적으로 무효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북측이 이명박 정권을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음을 선언한 것이다.

무효화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북측이 최근에 발표한 두 편의 성명에 담긴 내용은, 북측이 이전의 남측 정권들과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로 합의하였던 조항을 모두 무효화하고, 전면대결태세를 취한 상태에서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요약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은 “북남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을 무효화한다”고 밝혔는데, 그 성명에 들어있는 남북이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한다는 표현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전문(前文)에도 들어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그 정식명칭이 말해주는 것처럼, 남북이 정치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화해조항와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불가침조항을 담은 합의문서이다. 따라서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로 합의한 사항을 북측이 무효화한 것은 곧 남북기본합의서의 관련조항을 모두 무효화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북이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로 합의한 조항들 가운데서 이번에 북측이 발표한 성명의 취지에 직결되는 조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4조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남북기본합의서 제4조를 이행하면 그것이 곧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화해와 불가침을 실현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제4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부속합의서 제15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테러, 포섭, 납치, 살상을 비롯한 직접 또는 간접폭력 또는 비폭력 수단에 의한 모든 형태의 파괴, 전복행위를 하지 아니한다”고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이 “북남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한 것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지 않기로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제4조를 무효화하였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무효화한 북측의 선언을 다시 읽으면, 북측이 이명박 정권을 파괴, 전복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것은 비난공세나 대결공세를 넘어서, 이명박 정권에게 근본적인 위협을 들이댄 것이다.

물론 북측이 이명박 정권을 파괴, 전복할 만한 조건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명박 정권을 파괴, 전복하기 위해서 폭력수단을 동원할 만한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북측이 실제로 이명박 정권을 파괴, 전복하는 활동을 벌이는 경우, 2008년 10월 11일 북측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한 미국이 이번에는 아예 ‘테러국가’로 지정하는 화를 입힐 수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무효화하였다는 북측의 선언을, 북측이 이명박 정권을 파괴, 전복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과잉해석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무효화한다고 선언한 북측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상대할 수 없는 이명박 정권을 상대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정권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정권교체 요구에 북측의 의도가 실려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을 새로운 민주정권으로 교체하는 정치적 임무와 역할은 북측이 맡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남측의 정당들과 정치세력들이 맡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남측의 정당들과 정치세력들에게 북측이 자기들도 정권교체를 요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명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북측이 이전에 남측 정권들과 채택하였던 정치군사적 합의사항을 전면적으로 무효화하는 마지막 조치를 단행한 것을, 일반적인 의미의 대남공세가 아니라 정권교체 요구가 담긴 반이명박 공세라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원래 정권교체(regime change)라는 개념은 북측을 봉쇄, 압박하는 미국과 남측 정권의 적대정책에서 공동으로 사용해오는 전략개념이다.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북측이 정권교체라는 전략개념을 이명박 정권에게 쓰게 되었다. 북측이 역공세에 나선 것이다.

북측의 성명발표와 이명박 정권의 이중위기

북측이 두 편의 성명을 잇따라 발표한 것에 대해서,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을 훑어보면, 그들이 북측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남측 언론에서 보도한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은 한결같이 북측의 경고조치나 위협이라고 지적하였고, 최고 수준의 대남압박 또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압박이라고 해설하였다. 또한 북측에서 그러한 경고, 위협, 압박이 나온 배경에 대한 그들의 해설을 훑어봐도, ‘북방한계선’을 ‘침범’할 의도에서 그렇게 하였다느니 또는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구태여 말해주지 않아도 누구나 알 만한 소리들 뿐이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 이처럼 뻔한 수준에서 맴도는 근본원인은, 그들이 본문(text)과 상황(context)의 상관관계를 놓치고, 본문 자체만 놓고 자구(字句)를 따라 해석하기 때문이다. 해석학(hermeneutics)에서는 그러한 해석방법을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파악한다는 뜻에서 축자적 해석(逐字的 解釋, literal interpretation)이라 부른다. 본문을 작성하게 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본문과 상황이 어떻게 관련되었는지도 말하지 않는 축자적 해석은 기껏해야 일차적 의미밖에 전해주지 못한다. 축자적 해석으로는 알 수 없는 본문의 진의를 파악하려면, 본문을 작성하게 된 상황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측이 매우 이례적으로 두 편의 성명을 발표하게 된 상황은,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남북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된 상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동안 이명박 정권이 대결주의적 대북정책을 고집하는 바람에 남북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며, 두 편의 성명이 남북관계 단절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도 그 성명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편의 성명이 나오게 된 상황은 무엇일까? 그 상황은 이명박 정권을 이중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남측의 현 정세이다. 다시 말해서, 이명박 정권이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에 빠지고 있는 위급한 정세가 북측이 두 편의 성명을 발표하게 된 상황인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빠져든 경제위기는 한 두 해 지나면 그럭저럭 빠져나올 만한 가벼운 경기침체국면이 아니라, 남측 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파탄위기이다. 그래서 경제위기가 아니라 경제파탄위기라고 해야 정확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전례 없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그 손실충격을 받은 미국의 주요동맹국들인 영국과 일본의 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파산위기에 빠졌는데, 미국, 중국, 일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남측의 경제가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는지를 여기서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에 관해서는 2008년 11월 24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검은 9월은 오지 않는다’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다른 한편, 이명박 정권에게 경제파탄위기와 함께 몰려온 정치위기는, 남측에서 각계각층이 집결한 ‘반이명박 연대전선’이 구축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8년 12월 4일 서울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의 제안에 따라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 연석회의’가 열렸는데, 민주노동당, 민주당, 진보신당은 물론 창조한국당과 사회당까지 참가하였고, 노조와 사회단체들이 폭넓게 참가하였다. 각양각색의 정당, 노조, 사회단체들이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연대전선에 총집결하는 것은, 1987년에 6월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된 이후 22년 만에 처음 일어나는 획기적인 사변이다.

획기적인 사변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09년 1월 29일 서울에서는 400여 개의 정당, 노조, 사회단체들이 참가의사를 표명한 ‘폭력살인진압규탄 및 MB악법저지를 위한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 공동기자회견’이 열렸고, 그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대로, 2009년 2월 1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정당, 노조, 사회단체의 지도부 및 성원들과 일반시민들 1만여 명이 참가한 ‘폭력살인진압규탄 및 MB악법저지를 위한 국민대회’가 열렸다. ‘반이명박 연대전선’이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여름에 일어난 촛불시위투쟁은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여학생들의 소박한 촛불집회로 시작되었지만, 올해는 정당, 노조, 사회단체들이 총집결하여 ‘반이명박 연대전선’을 구축하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정치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정치위기가 아니라 정치대결위기라고 해야 정확하다. 정당, 노조, 사회단체들이 총집결한 ‘반이명박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이명박 정권과 대립을 격화시키는 것은, 경제파탄위기에 빠져 비틀거리는 이명박 정권에게 정치대결위기까지 중첩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2009년 1월 20일 합동진압작전을 밀어붙인 경찰특공대와 용역깡패들이, 생존권을 지키려고 아우성치던 철거민 다섯 사람을 참혹한 죽음으로 내몬 ‘용산참사’는 ‘반이명박 연대전선’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민생파탄으로 고통을 겪는 노동자, 농민, 실업자, 자영업자, 도시중산층, 청년학생들이 절망과 체념을 박차고 정당, 노조, 사회단체들이 구축하는 ‘반이명박 연대전선’에 대거 합류하면 항쟁폭발은 시간문제로 될 것이다.

과거사를 돌아보면, 1979년 10월부터 1980년 5월까지 다섯 달 남짓한 기간에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이 잇따라 일어난 원인은, 민생경제파탄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중첩되고 심화된 이중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그 당시의 이중위기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한 이중위기를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위기에 빠졌는데도 “아직 괜찮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면서 화를 키울 만큼 위기관리에 무능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3의 위기가 밀려오는 서해해상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발표한 성명은 “전면대결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과 “강력한 군사적 대응조치가 따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 군부가 전면대결태세를 취하고 군사행동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북측이 남측 정권과 합의한 상호불가침 조항을 폐기하였다는 뜻이다. 북측은 7.4 남북공동성명에 나오는 “쌍방은 (줄임)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조항을 폐기한 것이고,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의 불가침 조항들을 폐기한 것이며, 10.4 선언에 나오는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합의한 조항을 폐기한 것이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은 “북남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해상 군사경계선에 관한 조항들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북측이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 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기로 공약한 10.4 선언의 합의사항도 무효화하였다는 뜻이다.

상호불가침 조항의 전면폐기는 서해해상 군사경계선에 관한 조항의 전면폐기로 이어지는 것인데, 북측이 서해해상 군사경계선에 관한 합의조항을 폐기한 것은 아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연평도에서 백령도에 이르는 황해남도 연안수역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해상군사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남측 해군의 북상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이 있고, 북측이 그어놓은 서해해상 군사경계선이 있다. 경계선의 충돌은 무력충돌을 예고한다. 북측은 서해해상 군사경계선을 남측에게 요구하는 반면, 남측은 ‘북방한계선’을 고수하고 있는 연평도 앞바다는 이미 두 차례나 해상무력충돌이 일어난 최고로 위험한 수역이다. 위험수역에서 일어날 남북의 무력충돌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북측 군부가 전면대결태세를 취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무력충돌이 될 것이다.

둘째,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 위험수역은 남측에게는 군사작전에 불리하고 북측에게는 군사작전에 유리한 곳이다. 황해남도 해안지대에는 지하요새화된 북측의 지대함 미사일기지들과 장거리 해안포기지들이 많이 배치되었으므로, 남측 해군 함정이 그 수역에 들어서면 북측이 배치한 사거리 120km의 최신형 지대함 미사일(KN-02)과 장거리 해안포가 불을 뿜는 사정권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측의 폭격기에서 발사하는 사거리가 길고 명중률이 높은 최신형 공대함 순항미사일(명칭미상)은, 대공방어무기가 전혀 없는 남측 해군의 초계함(PCC)과 울산급 프리깃함(FFK), 그리고 대공방어무기라고는 사거리가 15km밖에 되지 않는 빈약한 대공미사일(RIM-7 Sea Sparrow)을 장착한 케이디(KD)-1 경구축함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다. 북측의 공대함 순항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남측의 군함은, 사거리 120km의 대공미사일(SM-2)을 장착한 케이디(KD)-2 구축함 여섯 척과 2008년 12월 22일에 작전배치한 케이디(KD)-3 이지스 구축함 한 척밖에 없다.

그런데 2002년에 미국이 2억5천만 달러나 쏟아부어 실시한 해상전투 모의실험인 ‘천년 도전(Millennium Challenge) 2002'에서는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으로 구성된 항공모함 전투단마저도 수많은 미사일고속정과 방사포고속정이 달려드며 미사일과 방사포를 한꺼번에 발사하는 ‘벌떼습격작전’을 받는 경우, 항공모함 한 척과 순양함을 비롯한 군함 16척이 격침되는 충격적인 패배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남측의 구축함 편대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1999년 6월 15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남측 함정과 북측 함정이 뒤엉켜 남북의 꽃게잡이 배들을 통제하는 와중에서 남측 고속정 두 척의 기습적인 선체충돌 공격으로 해상무력충돌이 벌어졌을 때, 남측의 고속정과 포항급 초계함이 북측의 청진급 경비정에게 발포하면서 지속된 쌍방의 교전시간은 불과 14분이었다. 교전시간이 그렇게 짧았던 까닭은, 북측의 지대함 미사일들과 해안포들이 발사준비에 돌입하고 사거리 46km의 함대함 미사일로 무장한 북측의 미사일고속정이 기동하는 순간, 남측 함정들이 교전현장에서 황급히 달아났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해상무력충돌은, 북측 해군사령부가 2000년 3월 23일에 발표한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남측에서 완전히 무시하자, 북측 경비정이 정조준 함포사격으로 남측 고속정을 격침시키는 바람에 순식간에 끝나버린 것이므로, 사실상 무력충돌이라고 볼 수 없는 격침사건이었다. 북측 경비정으로부터 함포사격을 받고 남측 고속정이 침몰하는 것을 본 포항급 초계함 두 척이 함포사격을 하다가 황급히 달아난 까닭도 역시 북측의 지대함 미사일, 해안포, 미사일고속정을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불가침조항을 폐기하고 군사행동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북측의 선언이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오판한 것처럼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겠다는 선언이나 오바마 정부의 관심이나 끌어보겠다는 행동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무력충돌위기로 몰아넣기 위한 선언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파탄위기와 정치대결위기를 겪는 이명박 정권에게 무력충돌위기까지 가중시키려는 공세인 것이다. 물론 북측의 선언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선전포고는 아니며, 북측이 무력충돌위기를 조성한다고 해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남측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측이 무력충돌위기를 조성하는 목적이 북측에서 내부결속을 꾀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하지만, 그러한 분석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오류이다. 외부위협을 끌어들여 내부결속을 꾀한다는 식의 황당한 발상은, 내부적으로 분열과 갈등이 위험수위에 이른 나라들에서나 혹시 통할 수 있을지 모르고, 과거경험을 말하자면 지난 시기에 ‘북한의 남침위험’을 외우면서 남측 국민들에게 ‘총력안보’를 강요하였던 군사독재정권의 정권유지책동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심화되는 이중위기의 충격이 견디기 힘들어 비틀거리는 이명박 정권에게 무력충돌위기까지 더해져 긴장상태가 극도에 이르면, 가뜩이나 수익성이 떨어져 불안감을 느끼는 외국자본들이 서울의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자금유출이 확산될 것이고, 증시붕괴로 남측의 경제가 완전히 파탄되면 이명박 정권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경제파탄위기, 정치대결위기, 무력충돌위기가 한꺼번에 심화되는 삼중위기의 발생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급변사태(sudden change)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역공세가 시작되다

미국과 남측의 정보기관들과 보수언론들이 퍼뜨려놓은 바람에, 급변사태는 으례 북측에서 일어나겠거니 하는 고정관념이 두껍게 형성되었다. 그들은 ‘식량난’과 ‘대량아사’로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곧 일어날 것처럼 선동하였는데, 10년 동안이나 선동해도 급변사태가 일어나지 않자 2008년 9월부터는 슬그머니 말을 바꾸어 ‘건강이상’으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처럼 선동하기 시작하였다. 허나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들의 말바꾸기는 괴담유포 수준의 정보조작과 여론조작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고 믿으면서 급변사태에 개입하기 위한 ‘충무계획’을 붙들고 있다. 통일부의 ‘충무9000’, 국방부의 ‘충무3300’, 건설교통부의 ‘충무4800’, 농림수산식품부의 ‘충무4100’, 지식경제부의 ‘충무4200’, 국토해양부의 ‘충무4900’을 포괄하는 방대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만들어놓고, 해마다 ‘충무훈련’까지 실시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급변사태의 위험이 닥친 곳은 북측이 아니라 남측이다. 급변사태의 위험이 북측에 있고 남측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정세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이다. 급변사태가 북측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정보조작과 여론조작에서 벗어나서 정세동향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직면한 것은 일반적인 위기가 아니라 급변사태이다. 이에 관해서는 2009년 1월 5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2009년의 급변사태, 진보정치의 대응’에서 논한 바 있다.

주목하는 것은, 만약 남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경우 북측이 개입할 것이라는 점이다. 남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났는 데도 북측이 무관심하고 수수방관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남측 정권이 북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측도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측의 급변사태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남측의 급변사태는 위에서 논한 삼중위기가 중첩, 심화되고, 이명박 정권이 탄압하면 할수록 더 확대되는 ‘반이명박 연대전선’에서 마침내 대중항쟁이 폭발하여 결국 이명박 정권이 퇴진하는 시나리오로 예상할 수 있다. 남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때를 누구도 예언할 수는 없지만, 삼중위기의 중첩과 심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의 격화, ‘반이명박 연대전선’의 구축, 이명박 정권의 무능과 위기관리 실패는 급변사태의 불가피성과 임박성을 말해주는 4대 요인이다.

이명박 정권이 퇴진의 벼랑끝에 몰릴 때 그 정권을 구해줄 구조의 손길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내놓을 수 있는데, 오바마 정부는 구조해봐야 사태수습을 기대할 수 없는 정권을 애써 구조해주기보다는 포기와 교체를 통한 사태수습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요즈음 조성되는 내외정세를 읽어보면, 남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이명박 정권이 퇴진하는 시나리오는 가상보다 현실에 훨씬 더 가깝게 보인다.

북측이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면, 남북기본합의서와 10.4 선언에서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내부문제 불간섭 조항을 위반하는 것인데, 북측이 발표한 성명에서 그 조항을 무효화하였으니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더라도 합의를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북측이 남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내부문제 불간섭 조항을 무효화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북측이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시기와 방법은 당시 조성된 상황에 따라 북측이 선택하는 것이어서 외부에서는 예상할 수 없지만,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목적은 알 수 있다. 북측이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목적은, 급변사태를 정권교체의 결정적인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북측은 이명박 정권이 새로운 민주정권으로 교체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없어지고 따라서 2012년까지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겠다고 선언한 나라의 통일전망이 어두워질 뿐이라고 보고 있다. 남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이명박 정권이 퇴진하고, 나라의 통일문제를 협의할 새로운 민주정권이 남측에 세워지면 그 정권과 협력하여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종국적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한다는 것이 북측의 새로운 대남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남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이명박 정권이 퇴진할 때, 새로운 민주정권의 집권주체는 ‘반이명박 연대전선’을 이끌어온 남측의 정당들이 될 터인데, 남측의 ‘반이명박 연대전선’이 급변사태에 대한 북측의 개입을 반대하건 반대하지 않건 북측의 급변사태 개입은 남측의 정권교체과정에서 중대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측의 급변사태에는 북측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개입할 것이다. 미국이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목적은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데 있다. 오바마 정부는 ‘한미동맹’을 유지해줄 정당이 집권한다면 이명박 정권의 퇴진을 굳이 막지 않을 것이다. 남측에서 우파정권이 퇴진위기에 몰리면, 오바마 정부는 자기들과 정치성향이 유사한 중도우파정당을 정권교체대안으로 여기고 적극 지지할 것이다.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 주제이므로 생략한다.

북측이 두 편의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한 것은 남측의 급변사태에 개입할 준비를 이미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오랫동안 정권교체 공세를 받아오던 북측이 이제는 정권교체 역공세에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