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낡은 유물인가 ?

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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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던 공약과 달리 이 한해동안에 한국 경제를 IMF때보다 억 망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한국사회 전반은 물론 남북관계까지 최악의 위기에 몰아 넣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논하되,이렇게 된 상황에서 바른 진로를 모색해서 민심을 이끌고 나가야 할 진보진영의 현 주소는 과연 어떠할까?
대선 결과를 둘러싸서 벌어졌던 논쟁이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에로까지 번져 간지 한해가 지났는데 과연 이 같은 분열과 상황이 수습되었겠는가?
누군가가 “반신자유주의”를 내걸으면 그에 대해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가해지고, 또 누군가가 국회 앞 농성 등 행동에 나서려 하면 그 방법에 대해서도 비판이 가해지고,그 비판에 대해 다시 반박이 가해지는 등 지금도 진보운동 내에서는 논쟁이 왕성하다.
물론 논쟁은 필요한 작업이다.그러나 지금처럼 자기 것이 다 옳다면서 상대의 잘못만 비난하는 식의 논쟁이,또한 복잡한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논쟁을 들어도 사람들이 “옳거니”하며 뭔가를 깨닫게 하기에는 거리가 먼 찻잔 속의 태풍식의 논쟁이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
저만큼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고 지금의 상황을 타파해야 하겠다고 외치기는 하면서도,그를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뭉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상이몽하는 상황이나,그런 진보세력을 보고 촛불을 든 시민들이나 노동자,농민들이 실망하여 불안해 가고 있는 현실이 그에 대한 대답이 아니겠는가?
주의주장을 달리 하는 단체들이 이름만 모은다고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거나,각자의 선명성만 내세우고 상대의 잘못에 대해 비판할 뿐이라고 진보 이론가들이 비판을 받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60년 전에 있은 남북연석회의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해방된 조국이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던 1948년 4월,남쪽의 41개 정당,사회단체 396명을 포함한 남북의 여러 정당,사회단체 대표들 695명이 평양에 모여 진행했던 남북연석회의 그 자체에 대해서 여기서 언급하자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이 때 회의 참가자들이 제각기 자기의 사상이나 주의주장에 집착했더라면 반공우익의 대표자적인 김구나 항일빨치산 대장 김일성과 같은 공산주의자가 자리를 같이 하고 이 같은 회합이 열릴 수도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는 것이다.
그럼 이 같은 회합이 어째서 열릴 수 있었는가? 더 말할 것도 없이 공통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통점이란 외세에 의한 나라의 분열을 막고 통일독립을 이룩하자는 것이요,이 근저에는 일제와 맞서서 벌였던 독립투쟁에서 발휘되었던 민족애,민족 수호의 정신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회의에 참가했던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은 훗날에 공동성명에서 남북연석회의가 우리 민족도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며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세계 어느 우수한 민족과 같이 주의와 당파를 초월하여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행동으로써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연합이나 단합은 공통성에 토대 해야 가능하다는 것인데,이 공통점에서 핵심은 이해관계나 이념면에서의 공통성이라는 것을 60년 전의 경험은 말해주고 있다.
혹시 그거야 60년 전의 일이고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거나,사상과 주의주장이 다른 사람끼리 단합하고 연대하며 힘을 모은다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민족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지 않겠는가.
인간도, 또한 그 인간의 집단인 민족도 자기 이익을 지키려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공통의 이념적 요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를 민족주의라고 한다면 구태여 부정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으로 특히 근대 이후 민족주의는 한반도에서 강한 영향력을 미쳐 왔다. 일제시기 독립운동에서나 해방 분단 후 독재에 항거했던 한국의 민주화투쟁이나 거족적인 통일운동 등 모든 투쟁과 운동의 근저에는 민족이 깔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진보진영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민족,민족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처럼 다뤄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함의 하는 “배타성”이 사회적 진보를 저해한다고 매도되기까지 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민족을 떠나서 반만년의 한반도 역사를 논할 수 있을까?
근대에 이르러 한반도에서는 봉건적 왕권통치의 질곡 속에서 내우외환이 거듭되는 가운데 외세의 개국강요로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게 되였는데,이는 본질에 있어서 민족문제 였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기에 제기되었던 국권회복과 독립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민족해방에 관한 문제였으며,해방 후 오늘까지 온 겨레에게 지상의 과제로 제기되어 있는 외세에 의한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을 끝장내고 통일을 이룩하는 문제 역시 우리 민족이 본위 아니게 강요 당한 비극적 운명에서 벗어나는 문제로서 결코 계급,체제 문제가 아닌 민족문제 이다.
동족상쟁의 비극을 겪은 지 10년도 안된 1960년의 4.19항쟁 때 “미국은 간섭 말라”고 외쳐진 사실과 그 후 급격히 민족자주 통일기운이 앙양되던 가운데 “가자,북으로! 오라,남으로!만나자,판문점에서!”,”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 가도 못하느냐”고 외쳐진 사실,그리고 1980년의 광주항쟁을 계기로 국군의 살육만행을 통해서 이 나라 군 통수권을 쥔 미국의 정체를 깨닫던 민심이 “반미의 무풍지대”라고 불리 운 한국에서 “양키 고홈”을 외치게 되고 그것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진 사실들은 또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것이 안 병욱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이 민중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유대관계와 민족주의 이념에 기반 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일을 과거사로 보고 민족주의가 이제는 낡았다고 하는 이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경제적 위기상황은 어떠한가.물론 경제를 살리겠다고 들뜨던 자칭 CEO 이 명박 정부의 실책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산 경제 이념인 신자유주의에 추종했다가 요즘의 미국 발 금융위기의 영향에서 빚어진 것이니 근본 모순은 노사간의 계급적 모순이기 전에 한국민 대 미국이라고 하는 민족적 모순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2008년 봄부터 가을까지 끈질기게 벌어졌던 촛불시위 또한 무엇이겠는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생존을 위협 받은 데 대한 분노의 분출임은 틀림 없다.그러나 그 본질은 이 명박 정부가 국민의 생명이야 어떻게 되든 캠프 데이비트에 머문 대가로 부시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무작정 사들이기로 약속한데 대한 분노, 다시 말해서 한국민의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려 놓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민족을 떠나서 한반도 역사나 한국사회가 놓인 현 상황을 논할 수 없다면 그 출로나 대안을 모색해야 할 진보진영 역시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덮어 놓고 외면함이 진정 시대에 합당한 것인지 심사숙고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의미로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의 개념정의나 이론도 아니고 또 민족의식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인 민족분단, 민중 차별과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존여건, 신자유주의 초 국적자본의 야만적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그 점에서 여전히 진보적 민족주의의 할 일은 남아 있는 것이다. “는 안병욱 교수의 지적은 주목할만하다.

 ②
한국에서는 “이제 20세기 민족주의 시대를 넘어 21세기 국제협조, 국제연대의 시대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민족주의를 과거의 유물과 같이 보는 경향이 농후한데, 요즘에는 진보적이라고 하는 인물들 속에서 민족은 “가공의 산물”이며 민족주의는 “호전적 국수주의”, 심지어 “반역”이라면서 이를 해체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반면에 사람들이 비난하는 보수언론으로 분류될 [주간조선](07.8.21)은 “세계화시대라는 21세기에 민족주의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면서 “잠시동안 민족주의는 ‘20세기의 낡은 유물’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한 결음 더 나아가 ‘1990년대가 세계화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민족주의시대’라는 주장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잡지 기사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가 2006년 4월 “세계화 한 국제사회에서 자본의 이동과 자유무역이 국가간 장벽을 허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민족주의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한 내용을 소개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현상인데, 문제는 민족주의에 대한 이 같은 거절반응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민족주의 자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일 것이다.

민족주의란 말은 1409년에 세워진 독일의 라이프치하 대학에서 처음으로 씌어졌다고 하지만 대중적으로 통용되지 않았고 18세기에 와서 헤르더라는 사람의 글에서 다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유럽에서 먼저 쓰이게 된 것은 이 지역에서 자본주의가 먼저 형성되고 민족의식의 정립과 확산의 시대를 맞았던 역사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고 번역된다. 그러한 의미로는 민족주의가 국제적으로 보편성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개념이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이 이해되고 인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 및 국가 형성의 경위나 유지방식이 나라마다 또는 시대마다 다른 것으로 해서 민족중의에 대한 이해나 실천 역시 다양하다.
어쨌든 국가가 있어 애국주의가 생긴 것처럼 민족이 있어 민족주의도 생긴 것인데, 이는 결국 자기 민족에 대한 애착심과 그 이익을 지키려는 것으로 집약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국의 어떤 학자는 “민중들의 자연발생적 민족주의는 역사적 정당성을 담고 있다”고 하면서도 민족주의는 “권력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 위험한 개념” 또는 “저항적 민족주의도 순식간에 폭력적 민족주의로 둔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강 철구 교수에 의하면 한국의 일반 청년남녀 들도 민족주의가 전쟁과 종족학살, 외국인 차별을 가져오는 비윤리적인 이념인 만치 어쩐지 받아들이기에 거북스럽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고 민족주의에 대한 오해와 인식 부족, 다시 말해서 한마디로 민족주의라고 해도 그 중에는 여러 유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분함이 없이 천편일률식으로 보는 주장 또는 인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에는 자국의 팽창과 강대화를 도모하기 위해 자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타민족을 억압하려는 사상이나 행동으로서 나타나는 유형도 있고, 반대로 피지배 민족이 해방과 독립을 주장하며 지향하는 유형도 있고 반대로 피지배 민족이 해방과 독립을 주장하며 지향하는 유형도 있다. 이 같은 유형은 강대국민족주의(패권주의라고도 한다)와 저항민족주의 등으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민족이 있어 민족주의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민족을 낳았다면서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관념론의 극치이자 이론놀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듭 말하건대, 나라가 있어 애국주의가 생겨난 것처럼 민족이 있어 민족주의가 발생했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결코 그 어떤 추상적 또는 관념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이다.
민족주의는 또한 시대와 나라에 따라 그 과제와 담당세력을 달리 했으며, 권력이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 내세우는 민족주의의 성격이나 기능도 제가기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민족주의가 아시아와 유럽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해서 ‘동아형 민족주의’와 ‘유럽형 민족주의’로 구분하는 견해도 있으며, 민족이 외세의 침략을 반대해서 싸운다는 의미로 ‘저항민족주의’ 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중동 나라들이 에너지 자원을 지킨다는 의미로 ‘자원민족주의’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민족주의에 대해서 고찰하자면 철저한 주체적 시각이 요구된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외부로부터의 잦은 침략에 맞서 싸웠고 근대에 와서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서 민족이 존망의 위기를 겪었으며, 해방 후에는 외세가 강요한 분단으로 인해서 반세기여 동안이나 온 겨레가 고통을 겪고 있는 한반도의 경우 서구식 관점과 시각에서 민족문제, 민족주의에 대해서 논의될 수 없다.

또 한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은 민족주의 그 자체는 위에서 본 것처럼 자기 민족에 대한 애착심과 자기 민족의 이익을 지키려 하는 이념으로서 발생했으나 이것이 열강이나 권력의 이용물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 ‘한국적 민족주의’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서 중석 교수의 지적처럼 박정희가 자주 언급한 민족주체성은 외세비판, 그것과 연결된 민족 자주성의 강조를 오히려 철저히 금압하고 주한미군 유지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미군의 횡포에 침묵으로 일관하였다는 점에서 민족주의로 위장한 냉전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었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진보세력에서까지 ‘탈 민족주의’가 주장되게 된 배경도 이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강 철구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갑자기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와 관련해서 지구화의 영향을 꼽았다.
지구가 하나가 되고 있다고 하는 미국 지구화론 자들의 주장이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론 자들에 의하면 지금은 국경의 문턱이 낮아지고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시대이며,수 많은 국제기구나 유럽연합 같은 것이 이미 그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민족국가는 멀지 않아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구화론 은 미국에 의해서 추구되는 “세계화”(Globalization)와 신통히도 일맥상통한다.
“세계화”란 실지에 있어서 세계를 미국이 원하는 모양대로 획일화하자는 것이며 본질에 있어서 미국화라는 것은 이미 세상에 드러난 지 오래다.
미국은 특히 부시 행정부하에서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세계화”를 노골적으로 추구해 왔었다.
한 예를 들면 이 “세계화”에 의해서 민족의 기본 징표인 언어의 소멸이 보다 가속화될 것이며, 앞으로 100년 사이에 세계에 존재하는 언어의 5~9할이 소멸된다고 예언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세계화”전략을 반대하는 문제는 일반적인 정치,외교문제가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들에게 있어서 자주냐 예속이냐, 생존이냐 소멸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횡포한 전략을 대변하는 지구화론 을 갖고 민족주의를 매도하는 주장을 단지 논리적 차원에서만 볼 수 있겠는가?
김동춘 교수가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은 미국 발 대자본의 이해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는 점, 과거 제국주의 논리의 현대판인 자유무역, 시장만능주의가 그것을 즐긴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라는 경종을 울린 것을 결코 무심히 대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이 같은 탈 민족주의론이 진보세력 내부에서는 “통일지상주의”운운하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외세에 의한 분단을 종식시키는 통일 논의와 통일 지향을 외면할 뿐 아니라 민족,민족주의에 관한 진보세력의 견해나 주장이 “북한의 견해와 닮았다”거나, 심지어 “주체사상 환자들과 명확한 선을 긋고, ‘민족해방’이념을 합리화,현대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방북에로 이어져 가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 차원을 넘어서 지금의 탈 민족주의가 결국은 무엇을 추구하려는 것인가 하는 위구심과 경계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탈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