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강점 64년, 이 나날은 미군이 우리 민중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온갖 불행과 재난을 들씌운 피의 역사, 치 떨리는 죄악의 역사이다.

언제인가 한 출판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리였었다.

『강도, 강도 해도 이 땅에 기어든 미군만큼 잔인무도하고 파렴치한 강도는 없을 것이다. 보통 강도들은 범죄를 감행할 때 주춤거리는 기색도 엿보이고 사회적인 규탄과 법적 징벌을 두려워하는 심리적 구속 감도 있다는데 이 땅의 미군범죄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은 자기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털끝만 한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당초에 우리 민중을 주인은 고사하고 같은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는다.… 이런 강도의 무리를 두고 온 민중이 치를 떨며 이를 갈고 있다.』

정녕 그렇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 중엽에 이 땅에 피묻은 군홧발을 들여놓은 미침략군은 우리 민중의 표현 그대로 「남의 집에 뛰어든 강도무리, 인두겁을 쓴 살인자」였다.

국제법은 모든 사람은 자주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것과 매 개인은 생존, 자유 그리고 인신불가침의 권리를 가지며 누구도 고문 또는 참혹하고도 비인간적이며 불명예스러운 대우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에게는 국제법 같은 것은 안 중에도 없었다. 이 땅을 강점한 첫날부터 우리 민중을 애당초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학살하였다.

1946년 10월 미「군정」을 반대하여 들고일어난 우리 민중의 투쟁을 비행기와 탱크, 화학무기까지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2만 5 000여명을 무참히 학살한 미군은 이어 1948년 제주도 4. 3봉기 시기에는 도민들을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밧줄로 목매달아 죽이고 생매장하거나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등 악착한 방법으로 7만 여명이나 학살하였다. 그 이듬해인 1949년 한 해 동안에는 무려 10만 명이 넘는 무고한 민중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았다.

우리 민중에 대한 미군의 학살만행은 결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쟁시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전후시기에도 가장 야만적인 방법으로 계속 되었다.

최근연간 지난 6. 25전쟁시기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만행의 진상들이 연이어 드러나 사회각계의 커다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해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미국 국립문서 보관소에서 입수한 6. 25전쟁과 관련한 미군의 문서와 기록을 통해 1951년 1월 20일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발생한 「곡계굴민간인폭격사건」은 미군이 저지른 것이며 이로하여 200명 이상의 피난민이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에 앞서 1950년 9월 10일 미공군이 월미도의 민간인 지역을 의도적으로 초토화하면서 부녀자와 노인을 비롯한 228명을 학살하였다는 자료를 공개하였으며 지난 전쟁시기 미군의 민간인 학살사건과 관련한 학술회의를 조직하고 미군의 학살만행을 국제법에 대한 난폭한 유린으로 단죄하였다.

한편 지난해 7월 5일에는 미국의 AP통신이 국립문서 보관소 등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던 비밀해제 기록물들을 조사한데 기초하여 1950년 여름과 가을 국군과 경찰이 미국의 묵인 밑에 최소한 10만 여명의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는 자료를 보도한바 있다.

역사의 흑막이 하나 둘 벗겨지고 침략자, 살인자로서의 미국의 범죄적 정체가 밝혀짐에 따라 그것이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도 간단치 않다.

원수를 지금껏 은인으로 섬겨왔단 말인가고 절규하면서 숱한 사람들이 엄청난 사실 앞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숭미사상에 물 젖어 한생을 친미로 살아온 사람들로서는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은 6.25전쟁시기 고유한 의미에서의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인간 살육전을 벌였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세균전, 화학전만행과 신천대학살사건, 영동군 노근리양민대학살사건 등은 더 언급하지 말자.

최근에 새로 발굴된 몇 가지 자료들만 가지고서도 인간의 탈을 쓴 야수의 무리, 피를 즐기는 살인악마 미국의 정체를 밝히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근연간 이남과 미국 등지에서는 지난 6.25전쟁시기 미제가 우리 민중의 벗으로가 아니라 적으로 행동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동한 자료들이 연속 발굴되고 있다.

부산과 대전을 비롯한 경향각지에서 수천명의 주민들을 학살하는데 미군이 관여한 자료들과 함께 수천명의 주민들이 집단생매장당한 장소들이 새로 발굴되었다. 미국에서 새로 발굴된 자료들에 의하더라도 미군은 북을 동경하였다는 이유로 수 만명의 주민들을 학살하도록 조직지휘하거나 직접 가담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문서고에서 발견된 어느 한 자료에는 미군대좌가 3 500명의 좌익세력을 집단학살할 것을 승인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연이어 드러나고 있는 6. 25전쟁시기 미군의 민간인 학살만행은 세계전쟁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야만적인 반인륜적 범죄이다.

이것은 미국이 전쟁시기 애국적 인사들과 민중들을 체계적으로 소멸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시에 그것은 미국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뼈아픈 불행과 고통을 덮씌운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것을 만천하에 그대로 고발해주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나물을 뜯는 소녀를 꿩이라면서 쏘아 죽인 1957년의 「군산소녀총격사건」, 1958년 2월 미공군정비창에서 구두닦이하던 14살 난 소년을 「도적」으로 몰아 칼로 무릎과 팔을 마구 찌르고 상자에 넣어 헬기로 실어다 내던져 죽인 「부평소년헬기궤짝사건」, 나무하는 농민을 노루라고 하면서 쏘아 죽인 1962년의 「파주나무꾼 사살사건」, 1981년 6월 여러 명의 주민들을 「M-16」소총시험발사를 위한 과녁으로 조준 사격하여 즉사시킨 「총기난사사건」 등 양키살인마들에 의해 저질러진 살육만행들을 꼽자면 끝이 없다.

특히 우리 여성들에 대한 미군의 야수적인 만행은 민족적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고 있다. 미군야수들은 도처에서 부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능욕하고 집단적으로 윤간하면서 저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칼로 찔러 죽이고 목을 졸라 죽이었다. 여인들을 붙잡아다가 머리를 깎고 하반신에 페인트 칠, 골탄 칠을 하여 거리에 내쫓고는 쾌락을 느끼며 히히닥거린 것이 미군야수들이다.

우리 겨레는 1992년 10월 미제야수놈이 경기도 동두천에서 한 여성에게 달려들어 수욕을 채우려다 실패하자 흉기로 그의 육체를 완전히 만신창으로 만들었던 윤금이 살해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일찍부터 극도의 패륜패덕과 살인마적 기질로 길들여진 양키식인종들만이 감행할 수 있는 가장 야수적이고 몸서리치는 인간학살만행이었다.

우리 민중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장기를 뜯어내어 죽이고 세균무기의 실험대상으로 삼아 죽이고 쥐약까지 먹여 죽이다 못해 온 광주시를 피바다로 만든 미제살인귀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의 한 도로에서 나 어린 신 효순, 심미선 여중학생들을 백주에 장갑차로 무참하게 깔아죽인 것을 비롯하여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미군의 살인만행들과 범죄적 행위들은 끊기지 않고 계속 감행되고 있다.

인류역사에는 강점군의 만행자료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지만 주한미군처럼 그렇게까지 잔인하고 포악 무도하게 민중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생명을 무참히 난도질한 예를 아직 알지 못한다.

참으로 제 땅에 침략군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하여 우리 민중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 재난은 이루 다 형언할 수가 없다. 양키침략군이야말로 남의 나라에 기어든 강도무리이며 인두겁을 쓴 극악한 야수의 집단이다.

묻건대 이런 치 떨리는 인간백정의 무리 주한미군을 과연 이 땅에 그대로 두어야 하겠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미제침략군에 의해 우리 민중이 당하는 불행과 치욕을 방관시하거나 속수무책으로 대한다면 그로부터 초래되는 악 결과는 더욱 참혹할 것이다. 현실은 우리 민중이 침략자 미군에 대한 치솟는 증오와 분노를 안고 피의 복수를 위해 반미자주화, 미군철수 투쟁에 거족적으로 떨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각계각층 민중과 단체들이 반미자주, 미군철수를 위한 대중적 투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리고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완강하게 싸운다면 제아무리 포악한 침략자들이라고 해도 견디어내지 못하고 종당에는 제 소굴로 쫓겨가게 되고야 말 것이다.

전국민은 양키침략군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수백만 우리 동포형제들의 피맺힌 원한을 풀기 위한 반미총결사전에 한 사람같이 떨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