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은 통일혁명당(반제민전의 전신) 전라남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최영도동지의 서거 41돌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으며 변혁운동가들과 각계 애국민중은 통일된 강산에서 온 겨레가 화목하게 살 그 날을 그리며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나라의 통일을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영웅적으로 싸운 열사의 고귀한 삶을 감회깊이 추억하고 있다.

1923년 4월 5일 전남 무안군(현재 신안군) 임자면 삼두리의 빈농가에서 출생한 최영도동지는 어려서부터 일제의 발굽밑에 짓밟히는 민족의 설음과 고통을 폐부로 절감하며 외세에 대한 항거정신과 애국심을 키워왔다.

최영도동지는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시며 조국해방의 은인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영도자로 절대적으로 숭앙하고 열렬히 경모하면서 주석님의 노선과 방침에 따라 이남변혁운동과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해 헌신해왔다.

그는 통일혁명당 서울시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종태동지 등과 함께 민족의 영수이신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사상과 통일방략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전위당창당을 위한 간고한 투쟁을 벌여 1964년 3월 통일혁명당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전라남도 당위원회 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투쟁했으며 전위당건설과 변혁운동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는 주석님의 혁명사상을 자신의 뼈와 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파쇼통치배들의 부정선거를 단죄하는 시위 등 수많은 반미반정부투쟁을 조직전개하여 미제와 친미주구들의 식민지 파쇼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또한 그는 자기 고향인 임자도를 중심으로 변혁운동의 주력꾼을 꾸리기 위한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여 나갔다.

언제나 신심에 넘쳐 변혁운동에 자기의 한몸을 깡그리 바쳐 나가던 최영도동지는 1968년 7월 불행하게도 파쇼당국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불굴의 신념을 지닌 최영도동지는 감옥과 재판정을 투쟁무대로 삼아 원수들을 단죄규탄했다.

그는 원수들의 면전에서『김일성장군님의 혁명사상은 인류가 처음 아는 최고봉의 혁명이념이며 우리의 진로를 휘황히 밝혀주는 등대이다. 김일성장군님은 민족과 인류의 마음 속에 높이 솟아있는 혁명의 태양이시다.』라고 외쳐 파쇼교형리들을 전율케 했다.

이에 질겁한 교형리들은 1969년 1월 25일 그를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그러나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만물이 태양을 등지고 그늘에서 살 수 없듯이 우리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정치적 생명을 저버리고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웃으며 우리 곁을 떠나갔다.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최영도동지가 희생됐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시며 전민이 그를 추모하도록 하시었으며 그후 그를 「조국통일상」수상자로 내세워주시었다.

최영도동지의 생은 비록 길지 않았어도 그의 고귀한 삶은 혁명가는 자기 수령, 자기 영도자를 어떻게 받들어 싸워야 하는가를 깨우쳐준 삶과 투쟁의 본보기였다.

우리 반제민전의 전위투사들과 이 땅의 애국민중에게 삶의 참된 가치를 깨우쳐준 최영도동지의 넋은 오늘도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싸우는 우리 민중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변혁운동가들과 각계 민중은 투철한 수령관의 체현자인 최영도동지처럼 희세의 선군영장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통일강국 건설구상을 한마음 한뜻으로 받들어 더욱 힘차게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