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4)
 
사회변혁은 왜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특이하고 예외적인 사회변혁


 
이제까지 세계적 범위에서 진행된 모든 사회변혁은 두 단계로 진행된 사회변혁이었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10월혁명이다. 그 역사적 사변을 부르는 고유명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은 민주주의변혁단계를 거치지 않고 급진적으로 사회주의변혁단계로 진입하였다. 특이하게도, 사회주의 10월혁명은 무단계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사회변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급진주의적 좌편향이 나타났고, 그러한 좌편향이 불러온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반대방향으로 선회하는 우편향도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사회변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러시아 사회주의10월혁명의 경우에는 피할 수 있었던 좌우편향을 피하지 못하는 통에 희생이 너무 컸다. 그처럼 대내적으로 좌우편향의 우여곡절과 커다란 희생을 겪고, 대외적으로 제국주의연합세력의 무력침공을 당하면서도 러시아 사회주의10월혁명이 지속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이 그처럼 무단계적, 급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때까지만 해도 두 단계 변혁론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고, 따라서 사회변혁은 오직 무단계적, 급진적으로만 실현되는 줄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올바른 사회변혁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지만, 20세기 초 유럽은 사회변혁운동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사회변혁이 곧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던 나라는 사실 러시아가 아니라 독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사회변혁은 러시아에서 실현되었고, 독일에서 추진되던 사회변혁운동은 유산되고 말았다. 1920-30년대 독일 사회변혁운동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에른스트 텔만(Ernst Thälmann, 1886-1944)이 만일 두 단계 변혁론을 알았더라면, 당시 독일의 사회변혁운동은 좌편향을 피할 수 있었고,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역사인식에 가정법을 동원하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라지만, 만일 러시아만이 아니라 독일에서도 사회변혁이 실현되었더라면, 세계사는 상상을 초월하여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오늘 유럽식 급진적 변혁담론이 두 단계 변혁론을 부정하는 것은, 세계사에서 딱 한 차례만 있었던 특이하고 예외적인 경험에 집착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무단계적이고 급진적으로 실현된 사회변혁은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예외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예외적으로 일어났던 사회변혁을 일반화하는 인식론적 오류에 빠질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두 단계 사회변혁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참고로 하여 우리식 변혁담론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사회변혁에도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어떤 사회가 급진적으로 뒤바뀌어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통속적인 표현을 쓸 수 있는 경우는 전쟁과 사회변혁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 대비하여 군 수뇌부는 전쟁 시나리오를 연구한다. 전쟁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사회변혁 시나리오도 있다. 사회변혁운동은 사회변혁이 일어나는 경우에 대비하여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못한 사회변혁운동은 사회변혁을 실현할 결정적인 기회를 만난다해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세계 사회변혁운동사에서 그러한 실패교훈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변혁운동은 어떤 시나리오를 준비하였을까? 우리 사회변혁운동이 진행해온 사회변혁에 대한 연구와 토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므로, 이 글에서 어떤 정밀한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논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지만 비록 정밀하게 짜여진, 높은 수준의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아직 논하지 못하는 수준에 있더라도, 초보 수준의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논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변혁담론은 급진적 사회변혁과 두 단계 사회변혁으로 대별되므로, 초보 수준의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논한다면 그에 따라 두 유형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식 급진적 변혁담론에서 논하는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고, 우리식 두 단계 변혁담론에서 논하는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급진적 변혁담론도 아니고, 단계적 변혁담론도 아닌 어떤 제3종 변혁담론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제3형태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

 
진리는 이 두 가지 사회변혁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에 있다. 과연 어느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진리를 말해주는 것일까? 

 

 
급진적 변혁담론의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작성되는 경우

 
급진적 변혁담론에서 무단계적인 사회변혁이 일어나는 시나리오가 작성되는 경우,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사회변혁요인들이 엮어질 것으로 보인다.

 
첫째, 좌파정당과 중도좌파정당이 형성한 공동전선이 우파정당 및 중도우파정당과 겨룰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둘째, 진보성향의 노조가 벌인 총파업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

 
셋째,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으로 빈부격차가 극도로 심화되는 바람에, 우파 정권 또는 중도우파정권에 대한 노동계급, 근로대중, 도시중산층의 반감과 저항이 일어난다.

 
넷째, 사회주의에 대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서적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다섯째, 미국의 군사적 지배와 내정간섭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사회변혁과정에 미국이 개입할 우려가 없다.

 
만일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사회변혁요인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사회변혁이 일어나면, 명백하게도 그것은 두 단계 사회변혁이 아니라 무단계 사회변혁일 것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사회변혁요인들 가운데,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요인은 하나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위의 다섯 가지 사회변혁요인들과 상치되는, 사회변혁운동에 매우 불리한 요인들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사회변혁요인들과 상치되는, 사회변혁운동에 매우 불리한 요인들은 지금 우리 사회변혁운동이 몸소 겪고 있는 현실이므로, 이 글에서 그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논할 필요는 없다.

 
주목하는 것은, 급진적 변혁담론과 무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우리 사회변혁운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급진적 변혁담론은 현실을 떠난 몽상적 담론이다. 이 땅에서 급진주의자들의 정치세력화가 불가능한 까닭은, 그들에게 가혹한 정치탄압이 가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몽상적 변혁담론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의미 있게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계적 변혁담론의 사회변혁 시나리오

 
이처럼 급진적 변혁담론과 무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사회변혁의 진리를 말해주지 못하므로 결론은 자명해진다. 우리 사회변혁운동이 찾아야 할 진리는, 단계적 변혁담론과 두 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에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변혁운동이 단계적 변혁담론과 두 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하는 까닭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우리 사회변혁운동은 민족적 자주성과 계급적 자주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사회변혁운동이기 때문에 두 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한다. 물론 민족적 자주성과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 계급적 자주성이란 사회주의변혁단계에서 요구되는 계급적 자주성이 아니라,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 요구되는 계급적 자주성이다. 유럽의 사회변혁운동은 계급적 자주성만 실현하면 되지만, 우리 사회변혁운동은 민족적 자주성과 계급적 자주성을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 실로 버거운 과업을 걸머지고 있다. 그처럼 버거운 과업을 수행하려고 하면서, 사회주의변혁단계에서 요구하는 높은 수준에서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예견하는 급진적 발상은 현실을 모르는 인식착오다.

 
둘째, 우리 사회변혁운동은 도시중산층의 사회정치적 비중이 커진 자본주의사회를 개변하는 사회변혁운동이기 때문에 두 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한다. 사회변혁운동에 대해 정서적 거부감을 느끼는 도시중산층의 비중이 사회정치적으로 증대된 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계급적 요구만 배타적으로 제기하는 변혁담론은 급진주의 오류로 흐르게 된다.  

셋째, 우리 사회에는 급진적 사회변혁운동을 이끌어갈 좌파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두 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조건에서는 좌파정당이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사회주의운동도 등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좌파정당이 존재할 수 없고, 진보정당만 존재할 수 있는 조건에서 전개되는 사회변혁은 민주주의변혁단계에서 진행되는 사회변혁이다. 물론 그러한 민주주의변혁단계가 장차 사회주의변혁단계로 전화, 발전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넷째, 전반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두 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사회변혁운동에 참가하여야 할 주체인데도, 사회변혁운동에 주체적으로 참가하기는커녕 반공이념을 주입당한 오랜 질곡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그처럼 열악한 환경에 있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담론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변혁운동이 민주주의적 개념과 용어를 적극 받아들이고, 민주주의사상과 민주주의적 발전전망을 당면과제로 제기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섯째, 우리 사회변혁운동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특별한 이중과업을 병행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두 단계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의 이중과업은 그 자체가 사회변혁운동의 고유한 과업은 아니지만,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과 무관한 사회변혁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이미 오래 전에 유명무실해져서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정전협정을 하루빨리 폐기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다른 나라 사회변혁운동에는 결부되지 않고 우리 사회변혁운동에만 결부된 특별과업이다. 또한 분단체제를 타파하고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도 다른 나라 사회변혁운동에는 결부되지 않고, 우리 사회변혁운동에만 결부된 특별과업이다. 민족적 자주성과 계급적 자주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처럼 특별하게 결부된 이중과업까지 병행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이 땅의 사회변혁은 매우 복잡한 경로를 거쳐야 하며, 따라서 단계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0년 9월 2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