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6)
 
도시중산층, 우리식 변혁담론에 나타나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누가 사회계급구조의 중간부를 차지했을까?


 
민중이라는 말은 북측이나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고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많이 쓰인다. 

 
일반대중과 소통하는 진보담론에서는 노동계급 개념과 근로대중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민중이라는 통칭개념을 쓰지만, 진보적 정치활동가들 사이에서 논하는 변혁담론에서는 그 두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여 쓸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도 넓은 의미에서 근로대중(working mass)에 속하지만, 노동계급 개념과 근로대중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여 쓰는 까닭은, 노동계급이 사회변혁에서 특유한 지위와 역할을 지니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미래에도 특유한 사명과 임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사회변혁에서 어떤 지위와 역할을 지니는지, 그리고 장차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 어떤 사명과 임무를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한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민중 개념이 이전보다 드물게 쓰이게 되었고, 그 대신 시민 개념이 더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시민 개념의 사회적 용도가 민중 개념의 사회적 용도를 능가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언어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민 개념을 쓰는 중도성향의 사회운동가들이 우리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넘어섰음을 뜻한다.

 
원래 민중 개념에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통칭하는 사회계급적 의미가 담겨있는 데 비해, 시민 개념은 사회계급적 의미를 배제한 몰계급적 개념이다. 시민 개념을 가지고 사회계급관계를 바라보면, 노동자 위에서 지배자와 착취자로 군림하는 자본가도 시민으로 보이고, 자본가 밑에서 지배와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도 자본가와 똑같은 시민으로 보인다.

 
이처럼 시민 개념을 가지고서는 사회계급관계를 전혀 인식할 수 없는 데도, 중도성향의 사회운동가들이 그 개념을 널리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사회계급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민중 개념의 사회적 용도보다 시민 개념의 사회적 용도가 훨씬 더 많아진 것은, 사회계급구조가 변화하였음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사회계급구조의 변화란, 자본가계급에 속하지도 않고 노동계급이나 근로대중에도 속하지 않은 신흥 사회계층이 사회계급구조의 중간부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우리 사회는 위아래로 양 끝이 뾰족하고 허리가 매우 굵은 방추형으로 변모되었다. 사회계급구조의 중간부를 차지한 신흥 사회계층을 도시중산층이라 부른다.

 

 
두 가지 현상이 말해주는 것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소득분포에 따른 도시중산층 가구수는 1982년 66.7%에서 1987년 70.4%로 늘었고, 1992년에 75.2%로 정점을 찍었다가, 금융위기를 겪은 1998년에 66.8%로 격감하더니, 그 이후 70%로 회복되지 못하였는데, 2008년 현재 63.3%를 기록하였다.

 
도시중산층이 급증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구조가 바뀌었다는 말은, 이전 시기에 공업과 농업으로 양분되었던 산업구조에 서비스업이 출현하여 크게 팽창하였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서비스업 업종은 336개를 헤아린다. 이것은 서비스업이 비대해졌음을 뜻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도시화 추세는 1960년 39.1%, 1970년 50.1%, 1980년 68.7%, 1990년 79.6%, 2000년 88.3%, 2009년 90.8%로 나타났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흘러들면서 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서비스업의 비대화와 도시화 폭증추세는 도시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도시중산층 인구가 급증하였음을 말해준다.

 
서울시가 조사용역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서울시 인구 가운데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76.6%, 상위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3.7%, 하위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9.7%로 나타났다. 그런데 2010년 10월에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자료에 따르면, 자신을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 가운데 85.9%, 서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12.1%로 나타났다. 서민이란 도시중산층보다 소득과 자산이 적은 사회계층을 뜻하므로, 서민은 곧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통속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조사결과는, 도시중산층 귀속감의 비율이 75.6%에 이르고, 서민층 귀속감의 비율도 85.9%에 이른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사결과다. 도시중산층 귀속감과 서민 귀속감이 이처럼 서로 엇갈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실제로는 서민이면서도 자기가 도시중산층에 속한다고 보는 현실이탈적 귀속감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서비스업 노동계급은 정신노동, 기술노동, 지능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다. 지식정보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생산노동의 방식과 노동계급의 처지를 바꿔놓았다. 그런 환경에서 서비스업 노동계급은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지닌다. 이를테면, 출퇴근 시간에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가진 노동계급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8월 현재 직장인 계층은 경제활동인구 2,483만6,000명 가운데 63.5%를 차지하는 1,420만1,000명이다.

 
둘째, 서비스업 업종이 336개로 세분화된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에 미치는 서비스업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서비스업에 접촉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공간이 크게 확장되고, 서비스업에서 창출된 사회적 재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에서 결정적으로 높아질수록,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도시중산층에 대한 자발적 귀속감을 갖게 된다.

 

 
직장인, 자영업자, 중소기업가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도시중산층이 절대다수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내부 실상에 해부학적으로 접근하면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지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 드러난다. 경제활동인구에서 절대다수는 여전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변혁담론에 제기되는 도시중산층 문제를 해명하려면, 각종 통계에 나타난 도시중산층 가운데서 고유한 도시중산층과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가진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구분법에 따르면, 도시중산층은 직장인, 자영업자, 중소기업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역은 이렇다.

 
첫째, 직장인 계층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정신노동자, 기술노동자, 지능노동자들이므로, 이들은 노동계급에 속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 8월 현재 직장인 계층은 1,420만1,000명이다. 그 가운데서 판매·봉사직 노동자는 529만1,000명, 전문·기술·관리직 노동자는 514만3,000명, 사무직 노동자는 376만7,000명이다. 그에 비해, 원래 노동계급이라 부르는 생산직 노동자는 817만2,000명이다. 따라서 직장인 계층으로 분류되는 노동계급은 64%이고, 생산직 노동자로 분류되는 노동계급은 36%다.
  
둘째, 자영업자 계층은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거나 5명 미만을 고용하고 영업하는 사회계층이므로, 이들은 사실상 근로대중에 속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자영업자는 597만명인데, 그 가운데서 5명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한 자영업자는 152만7,000명,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은 자영업자는 444만3,000명이다. 2008년 현재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 가운데 31.3%를 차지한다. 한국노동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자영업자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370만원인데, 이것은 임금노동자 1인당 연평균 소득 2,569만원의 53.5%밖에 되지 않는다. 2007년 현재, 월평균 실질소득이 200만원을 밑도는 자영업자는 60%다. 이것은 자영업자 계층 가운데 대다수가 가난한 영세자영업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셋째, 중소기업가 계층은 5명 이상 300명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한 중소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사회계층이므로, 이들은 자본가계급의 중하층에 속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중소기업이 304만4,000개이므로, 중소기업가 계층은 대략 304만명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소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대기업에 기생하는 하층계열사로 편입되었으므로, 중소기업가 계층은 자본가계급에게 친화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가 계층의 일반적 성향이 그렇다 해도,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개별적 중소기업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식 변혁담론과 도시중산층

 
도시중산층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생겨난 산물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오늘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 시기에 나온 고전적 변혁담론은 도시중산층이 생겨나기 이전의 사회계급관계를 논하였으므로, 도시중산층 문제를 인식할 여지가 없었다. 고전적 변혁담론에서 중시한 것은 노동계급이었고,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급과 농민의 전략동맹이었다. 노농동맹을 중시하던 시기에는 도시중산층이 아직 생겨나기 이전이었으므로 근로인텔리(working intellectuals)라는 개념을 썼는데, 도시중산층의 맹아라고 볼 수 있는 근로인텔리도 노동계급과 동맹관계를 맺는 사회계층으로 인식되었다.

 
고전적 변혁담론에 나오는 노농동맹전략은 당시 중간계급으로 지칭한 중농(中農)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노농동맹전략에서 중농 문제가 중시된 까닭은, 공업화 수준이 아직 높지 않고 농업생산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에 농민계층에서 중농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노농동맹전략에 따르면, 부농과 대지주는 사회계급적으로 청산할 배격대상으로 인식되었고, 빈농과 소작농은 사회변혁운동으로 끌어들일 포용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면 중농은 어떤 대상으로 인식되었을까?

 
노농동맹전략에서는 중농 전체를 싸잡아서 포용대상 또는 배격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포용대상, 중립화대상, 배격대상으로 나누어 세심하게 대하였다. 사회변혁운동 고양기에 사회변혁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중농은 적극 포용하였고, 사회변혁운동 준비기에 중농이 사회변혁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을 때는 그들을 중립화시켰고, 사회변혁을 반대하는 중농은 배격한 것이다. 그와 다르게, 중농 전체를 싸잡아서 일괄적으로 사회변혁의 걸림돌로 매도하고, 중농의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였던 급진주의자들의 좌경적 오류는 중농을 자본가, 지주, 부농의 편으로 밀쳐내어 사회변혁의 동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정치적 자해로 되었다.

 
지난 시기 노농동맹전략에서 제기된 중농 정책을 이해하면, 오늘날 변혁담론에서 도시중산층을 어떻게 인식하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변혁담론은, 사회변혁운동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힘으로만 밀고 나갈 수 없으며, 반드시 도시중산층으로부터 추진동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변혁운동이 도시중산층으로부터 추진동력을 공급받는다는 말은 도시중산층 전체를 일괄적으로 사회변혁운동에 참가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원래 노동계급인데도 도시중산층 귀속감을 가진 직장인 계층은 사회변혁운동으로 끌어들여야 할 포용대상이다. 임금노동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가난한 자영업자 계층도 사회변혁운동으로 끌어들여야 할 포용대상이다. 중소기업가 계층은 사회변혁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중간지점에 묶어두어야 할 중립화대상이다.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제기한 도시중산층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중도좌파정당이 도시중산층의 중도우파정당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