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7)
 
대공황, 세계대전, 사회변혁 시나리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대침체가 아니라 대공황이다


 
2010년 9월 30일 '지구적 금융·재정 위기와 한국 시민사회의 과제'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거기에 참석한 캐나다인 학자 조너던 닛전(Jonathan Nitzan) 교수의 발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토론토에 있는 요크 대학교의 정치경제학 교수인 그는 쉼션 비클러(Shimshon Bichler)와 함께 2009년에 펴낸 책 '권력으로서의 자본: 질서와 재편에 대한 연구(Capital as Power: A Study of Order and Creorder)'로 유명해졌다.

 
기자가 그에게 "이번 위기, 정말 그토록 심각한가?"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까지의 다른 위기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우려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자본주의의 지배층들이 자신감을 잃고 체제의 존속 자체를 걱정하는 시스템 차원의 위기 상황이다."

 
<월스트릿 저널> 2010년 9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2008년 8월 15일 미국의 국제금융회사 리먼 브라더스 홀딩스가 파산하자 유럽연합 주요국들은 부랴부랴 11월에 비공개 실무대책반을 설치하였다. 비공개 실무대책반이 설치된 뒤로,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이 파산위기에 몰렸고,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나라들도 파산위기에 빠져들었다.

 
2009년 2월 4일 세계은행 수석분석가 저스틴 린(Justin Lynn)은 2008년 여름에 발생한 국제금융위기로 국제증시가 30-35조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국제부동산 부문도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전세계의 1년 GDP에 이르는 60조 달러가 '증발'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정세는 조너던 닛전 교수가 지적한 자본주의세계시장의 붕괴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2008년 이후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연속 강타하고 있는 붕괴위기에 대한 정보자료를 이 글에서 장황하게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세계시장은 존속 여부가 불확실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옹호하는 친자본 이론가들은 이른바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신조어까지 들고 나오면서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아니므로 안심하라고 선동하지만, 자본주의세계시장이 차츰 대공황으로 근접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세계시장을 지탱하는 요인들은 각국 정부들이 마구잡이식 재정지출로 금융자본의 전면파산을 간신히 저지하는 것,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재정기구를 가동한 돌려막기식 긴급처방으로 재정파탄을 간신히 저지하는 것, 그리고 환율조작과 국채남발로 시장붕괴를 간신히 저지하는 것, 그리고 신흥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심리가 작동하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대공황을 피하려는 저들의 능력에는 명백하게도 한계가 있다.
   
오늘 대공황에 대한 공포가 엄습한 자본주의세계시장에서는 경기회복에 관한 정보조작과 기만선전으로 공포스러운 현실을 은폐하려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20개국이 긴급회의를 연속하여 개최하는 것도 그런 소동 가운데 하나다. 오죽 급했으면 서울에 몰려가 긴급회의를 또 진행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들의 소동은 위기극복대책이 아니라 임박한 파탄시기를 뒤로 미루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으며, 대공황으로 접근하는 자본주의세계시장의 위기상황을 반전시킬 능력은 그들에게 없다. 

 

 
어디서 폭발음이 들려올까?

 
자본주의세계시장의 대공황이 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위의 언론대담에서 조너던 닛전 교수는 "자본주의 지배층이 현재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계급투쟁'이 치열해지고 1, 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자본주의세계시장이 대공황에 근접할수록 위기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강대국들의 대립각은 예리해질 것이다. 오늘 세계 정세에서는 강대국들의 첨예한 대립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강대국들의 대립관계가 과열되면, 상대를 짓눌러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적대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자본과 권력의 자제력은 무의미해진다. 이것은 어떤 강대국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 다른 강대국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미증유의 사태를 예고한다. 국제관계에서 자본과 권력의 강제력 행사는 곧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세계대전의 폭발음은 동북아시아와 중동에서 들려올 것이다. 최근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미국과 일본의 심각한 갈등, 그 와중에 해양주권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정면충돌, 대만문제와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립 등은, 동북아시아에서 적대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근 중국이 북측과의 관계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미국과 일본의 연합공세에 맞설 중국을 도와줄 나라는 북측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중동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결이 격화되었고, 이란 핵문제를 빌미로 삼은 미국과 대미추종국들의 이란 압박공세가 중동의 적대적 환경을 한층 더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스라엘군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하는 날, 중동 정세는 대규모 무력충돌을 피할 수 없다.

 
대공황의 적대적 환경에서 일어날 세계대전은 군사강국들의 핵교전이 될 것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전략핵무기와 수소폭탄이 터져 인류가 전멸하고 지구가 종말에 이르게 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런 우려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이다. 전략핵무기와 수소폭탄이 터져 인류가 전멸하고 지구가 종말에 이르면, 우선 군사강국들부터 멸망할 판인데, 군사강국들은 자멸을 자초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21세기에 일어날 세계대전은 20세기에 일어났던 두 차례 세계대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핵참화를 동반한 대량파괴전쟁이 아니라 전술핵탄두와 전자무기로 상대의 '급소' 몇 군데를 정밀타격하여 전쟁수행력을 마비시켜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혹심한 전쟁피해 없이 속전속결식으로 끝나는 핵교전이 될 것이다.

 
속전속결식 핵교전이 벌어지는 경우, 핵무장을 하지 못한 나라는 망하고, 군사강국들 가운데서도 핵전쟁 대비태세가 확고한 핵보유국이 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에서 핵무장을 하지 못한 일본이 세계대전으로 망할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른 한편, 군사강국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고한 핵전쟁 대비태세를 갖춘 핵보유국인 북측이 미국에 맞선 중국과의 협공으로 대미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보인다.

 

 
전쟁이라기 보다 급변사태에 가깝다

 
동북아시아에서 적대적 환경이 격화되는 경우, 중국은 남측, 일본, 대만의 '생명줄'인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식량 및 석유수송로를 예고 없이 봉쇄할 것이다. 그럴 경우, 남측과 일본과 대만에서는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그들의 전쟁수행력은 급속히 감퇴될 것이다. 급변사태로 갈등이 고조된 중국과 일본이 우발적이건 고의적이건 무력충돌을 벌이면, 미국은 미일안보조약에 따라 무력개입을 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미국이 태평양사령부 휘하 무력으로 중국을 공격하면, 중국은 물론 북측도 대미전쟁에 나서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북측이 벌일 대미전쟁의 전장이 한반도 밖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은 일본 열도와 괌에 전진배치된 미국군기지들을 각종 고성능 미사일과 잠수함으로 기습공격하여 미국군의 '급소'를 찌를 것이며, '급소'를 타격받은 태평양사령부 휘하 항모강습단, 잠수함대, 원정강습단, 전투비행단들은 무력화될 것이다. 인민군에게 과연 그러한 급소공격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간단치 않으므로 이 글에서 생략한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할 만한 사실은,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에서 북측이 처음 공개한 각종 최첨단 미사일의 위력을 생각하면 인민군이 미국군의 '급소'를 찌를 기습공격력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인민군이 대구경 장사정포와 방사포, 단거리 미사일, 요격미사일 종합체를 동원하여 한미연합군 기지들을 기습공격하는 경우, 남측에서 전투기, 민간항공기, 헬기는 이륙할 수 없게 되고, 군항에 정박 중인 전함들도 출동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군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인민군을 상대로 지상전을 벌이는 동안, 방어선을 우회하여 고속침투한 인민군 특수부대는 제공권을 상실한 채 기지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주한미국군 2만8,000명을 포위할 것이고, 남측에 체류하는 미국인 10만여 명은 미처 일본으로 대피하지 못하고 아비규환 속에서 억류될 것이다. 미국군 2만8,000명이 적군에게 포위되고, 미국인 10만여 명이 전투지역에 억류되면 미국은 전쟁을 지속하지 못한다. 미국이 항복하면, 한국군도 전투를 중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전면전이라기 보다 급변사태에 더 가깝다. 최근 한국군이 열중하는 테러진압훈련은, 인민군 특수부대의 기습공격으로 일어날 급변사태를 상정한 대응작전연습이다. 이런 대응작전연습이 진행되는 것은, 위에 나온 전쟁 시나리오가 터무니 없는 상상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민주주의변혁은 전후처리과정에서 일어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경험한 것처럼,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세계체제를 내분과 파열에 몰아넣을 것이며, 그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이 급격히 고양될 것이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사회변혁이 촉발된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대공황의 아우성과 세계대전의 폭발음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변혁을 불러내는 '전주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논한 대로, 세계대전은 순식간에 끝날 것이므로, 전쟁 중에 사회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종전 직후 전후처리과정에서 사회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의 사회변혁이 동북아시아 전후처리과정과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예상한 시나리오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 전후처리과정을 상정한 시나리오는, 승전국인 북측과 중국이 패전국인 미국과 일본을 상대하는 과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후처리 주요과제는 승전국의 영토주권 확립, 패전국의 무장해제, 전쟁포로 및 억류자 송환, 전쟁배상 및 피해보상 등이다. 이러한 일반적 사례에 따르면, 시나리오에서 승전국으로 나오는 북측은 패전국인 미국에게 한미동맹 파기를 요구할 것이다.

 
시나리오에서 주한미국군은 인민군에게 전쟁포로로 잡혀있으므로 그들의 철군문제는 포로송환문제로 대체된다. 또한 북측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게 한국군의 무장해제를 명령할 것을 미국에게 요구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북측과 중국은 미일동맹 파기, 주일미국군기지 폐쇄, 일본 자위대 무력감축을 공동으로 요구할 것이다.

 
전후처리 시나리오에 따르면, 위에 열거한 요구를 미국이 들어주어야 북측은 미국군 포로 2만8,000명과 미국인 억류자 10만여 명을 송환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시나리오에 나오는 패전국들인 미국과 일본은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피해보상금을 북측과 중국에 각각 지불할 것이다. 일본의 독도강탈 야욕도 전후처리과정에서 자동적으로 해소된다.

 
이러한 격변으로 미국의 보호를 상실한 남측 정부는 해체되고, 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이다. 길게 논할 필요 없이, 그 동안 민주주의 변혁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해온 남측의 진보정당이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이 될 것이다. 남측에 세워질 임시정부의 역사적 임무는 민주주의변혁의 실현이다.

 
그러나 남측 유권자 가운데 10%도 되지 않는 저조한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민주노동당이 임시정부의 주역으로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것은 힘에 부칠 것이다. 진보정당은 대공황, 세계대전, 사회변혁의 시나리오를 상상력의 발동이라고 경시할 것이 아니라 연구과제로 중시하면서 대비해야 할 것이다. (2010년 10월 1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