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8)
 
평화체제수립과 민주주의변혁의 시나리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회변혁과 평화실현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사회변혁 시나리오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다. 연구를 심화할수록 더 많은 사회변혁 시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변혁의 미래를 전망하는 방향이 어느 한 쪽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고, 역동적으로 변화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많은 것이다.

 
2010년 10월 14일에 작성한 나의 글 '대공황, 세계대전, 사회변혁 시나리오'가 제1시나리오라면,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제2시나리오다. 제1시나리오가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우리의 주체적 의지와는 무관하게 엄습할 대파국을 전망한 것이라면, 이 글에서 논하는 제2시나리오는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전망한 것이다. 제1시나리오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폭발로 전개되는 것인데 비해, 제2시나리오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실현과 사회변혁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평화문제만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평화주의자들은 평화실현과 사회변혁이 무관하다는 착각에 빠진 반면, 사회변혁만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급진주의자들은 평화문제가 빠진 공허한 변혁담론을 논한다. 정세변화의 한 측면만 바라보는 우편향 또는 좌편향에 매몰되면, 평화체제도 수립할 수 없고 사회변혁도 실현할 수 없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이 평화실현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의 그러한 관점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우선, 한반도 평화문제를 세계분쟁지역의 평화문제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세계분쟁지역의 평화문제와 달리, 한반도의 평화문제는 단지 전쟁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문제는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미국의 제국주의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그 의미지평을 확장한다. 그 까닭은 아래와 같다.

 
2010년 9월 15일에 작성한 나의 글 '제국주의세계체제론과 식민지반자본주의론'에서 논한 것처럼, 미국이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장악유지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그들이 틀어쥔 강한 군사력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력은 정치, 경제, 문화, 사상 등 각 부문에 걸쳐 총체적으로 작용하는데, 특히 군사부문에 그 지배력의 중심이 놓여있다. 미국의 군사력이 쇠퇴하면, 제국주의세계체제도 급속히 쇠퇴할 것이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군사부문은 대미독자관계와 대미의존관계로 뒤엉켰는데, 예컨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대미독자관계에 있고, 일본, 독일, 이탈리아는 대미의존관계에 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군사부문에서 위의 두 종류에 해당하지 않는 별종이 있으니, 그것이 대미예속관계다. 65년 동안 핵우산을 설치해 놓은 것은 것도 부족해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을 지휘통제하면서 북침작전연습을 끊임없이 벌이는 것이야말로, 군사부문에서 대미예속관계가 완전히 고착된, 매우 특이한 현실이다. 이 땅의 식민지반자본주의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력은 일차적으로 군사부문에서 작용하며, 우리 사회의 식민지적 예속성은 일차적으로 군사부문에서 생성된다.

 
그러므로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곧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 자체가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과 동일하게 보인다. 우리식 변혁담론에 따르면,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과업이 민주주의변혁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므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적 사회성격을 제거하고 자주성을 실현하는 민주주의변혁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변혁은 평화체제수립과 더불어 동반적으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3단계로 전개되는 제2시나리오

 
평화체제를 수립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지배체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북측이 반제군사전선에서 승리하여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남측의 중도좌파정당이 집권하여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길이다. 이 글에서 논하는 제2시나리오는 전자인데, 후자는 이 글 다음에 집필할 제3시나리오에서 논한다.

 
제2시나리오의 3단계는 북측의 반제군사전선 승리→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종미우파 몰락과 민주주의변혁 실현이다. 3단계 시나리오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반제군사전선이라는 개념이다. 반미군사전선이라 하지 않고 왜 반제군사전선이라고 했을까? 그 까닭은, 미국군만이 아니라 일본자위대까지 상대하는 군사전선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국군이 '창'이라면, 일본자위대는 '방패'다. 미국은 일본 열도의 중요거점들을 군사전략기지와 북침발진기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군 지휘부는 '창'과 '방패'를 모두 쓸 것이기 때문에 반미군사전선이 아니라 반제군사전선이라 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북측이 과연 반제군사전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북측은 "대화에도 전쟁에도 모두 준비되어 있다"고 공언한다. 북측의 그 공언은 반제군사전선의 양면을 보여준다. 북측의 반제군사전선에는 미국이 정치적으로 굴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핵압박공세를 가하는 측면도 있고, 대미전쟁에 철저히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북측이 반제군사전선에서 핵압박공세를 가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킨다는 말은, 미국 대통령을 북미 정상회담으로 끌어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의제를 담판으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핵개발, 핵실험, 핵확산으로 전개되어온 핵압박공세의 목표는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는 담판이다. 북측은 1993년 이래 17년 동안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미국 대통령을 끌어내기 위해 핵압박공세의 강도를 계속 높여왔다. 미국은 북측의 핵압박공세에 아직 굴복하지 않고, 버티기 전술, 되돌리기 전술, 반발 전술(북침작전연습 강행과 대북제재 조치 남발)로 대응해 왔지만, 북측의 공세강도가 높아질수록 그들의 버팀목은 힘을 잃고 결국 꺾이고 말 것이다.

 
북측이 반제군사전선에서 대미전쟁 준비태세를 확립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인민군이 고속기동전과 군민총력전으로 72시간 안에 전쟁을 끝낼 준비를 갖추었다는 뜻이고, 식량, 유류, 탄약 같은 전쟁물자와 잘 훈련된 방대한 예비병력을 동원하는 전쟁수행체계를 모두 갖추었다는 뜻이다. 네 가지 관련정보가 있다.

 
첫째, 북측은 100만 대군을 '일당백 정신'과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정신력 강화에 힘써왔다. 100만 대군의 정신력은 핵폭발보다 더 무서운 에너지로 폭발할 것이다.

 
둘째, 북측은 미사일전력을 기본으로 하여 잠수함전, 전차전, 특수전, 갱도전을 절묘하게 배합한 매우 특이한 전투방식을 개발하였다. '주체전법'이라고 부르는 이 전투방식을 미국군의 전투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즉시 미국군은 '급소'를 찔릴 것이다.

 
셋째, 북측은 '주체의 령군술'이라 부르는 독특한 지휘통제술을 개발하였다. 원래 전쟁은 무기가 아니라 체계(system)으로 하는 것이다. 한국군은 3군 사령부들이 각개통제하는 합동군체제이고, 미국군은 합동참모본부와 전역별 통합군사령부가 분할통제하는 통합군체제이고, 인민군은 최고사령관이 총참모부를 통해 총괄통제하는 단일군체제다. 어떤 영군체제가 가장 위력적인지는 불문가지다. 이를테면 '주체의 령군술'은 최고사령관→총참모부→대연합부대→구분대(약 160명 병력으로 이루어진 중대 또는 독립소대)로 편제된 100만 대군의 작전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통제하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 단일군체제의 기본전투단위인 구분대 약 6,500개가 전방위 작전에 돌입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것이다.

 
넷째, 북측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및 장거리 전략미사일, 세계 최고 수준의 요격미사일 종합체, 적의 지휘통제와 통신연락을 차단하는 전자기파 무기, 신출귀몰하는 무인전투기 같은 이른바 '비대칭 무기'를 개발하여 미국군 항모강습단, 원정강습단, 공습비행단의 공격을 꺾을 전투력을 보유하였다.
 
위와 같은 각종 정보를 종합하면, 북측이 핵압박공세로 승리할 가능성 또는 72시간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뜻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그러한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제2시나리오를 논한다.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와 그 이후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를 몰고 올 평화체제 수립과정은 평화협정 체결에서 그 첫 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은 미국이 핵우산 철거, 주한미국군 철군, 한미동맹 철폐를 연쇄적으로 이행하도록 강제할 것이다. 철거-철군-철폐의 연쇄적 이행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다섯 가지 변화를 예견할 수 있다.

 
첫째, 적대적 대북정책과 예속적 한미동맹에 의존해온 종미우파의 쇠퇴와 몰락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권을 잡은 종미우파가 쇠퇴몰락하면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은 과도기를 예고한다. 종미우파가 쇠퇴몰락한 과도기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민주주의변혁과업을 제시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어낼 결정적인 기회를 중도좌파정당에게 안겨줄 것이다.

 
둘째, 대북관계가 급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대북관계의 급진적 개선은, 한미동맹 철폐로 우리 사회에 엄습할 '안보불안감'을 해소해 줄 유일한 길이다. 남측 정부가 대북관계를 급진적으로 개선하면, 남북 정상회담도 실현될 것이고, '국가보안법'도 사문화된다.

 
셋째, 한미동맹에 의존해온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도우파정당은 종미우파처럼 쇠퇴몰락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위축될 것이고, 자기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를 피하려고 변신을 꾀할 것이다. 중도우파정당은 중도좌파적 요소를 수용하는 쪽으로 변신할 것이므로, 그러한 변신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남측 시장에 투자한 미국계 자본이 철수함으로써 경제부문에서 대미예속성이 청산될 것이고, 그 대신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의존도와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질 것이다. 특히 경제부문에서 대일예속성을 청산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인데, 이 문제는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하여 해결할 수 있다.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해소하는 문제도 남북경제협력을 확대하여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경제부문에서 대외예속성의 청산과 외국자본의 일방적 철수는 가뜩이나 불안정한 시장경제를 더 위태롭게 만드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변혁의 경제자립강령을 실현할 기회이기도 하다.

 
다섯째, 낡은 질서가 무너지는 사회정치적 혼란기에는 계급계층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갈등과 투쟁이 확산격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상치 못한 대중항쟁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를 겪으며 정권교체기에 들어서는 경우, 민주주의변혁의 최선책은 중도좌파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를 받아 독자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런 최선책이 통하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변혁의 차선책은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당과 연합하여 공동정부(연립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독자정부냐 공동정부냐 하는 문제는, 중도좌파정당의 정치역량이 결정할 것이다. 다만 중도우파정당의 독자정부 수립은 우리식 변혁담론이 예상하는 최악의 경우이므로 피해야 할 것이다.

 
중도좌파정당이 독자정부를 수립하는 최선책은 민주주의변혁의 추진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고, 그 정당이 중도우파정당과 연합하여 공동정부를 수립하는 차선책은 민주주의변혁의 추진속도를 상대적으로 느리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변혁의 실현은 확정적이다.
  
정권교체기는 2012년이다. 위에서 언급한, 급격하고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2012년까지 일어날 것인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설령 2012년까지 위에서 언급한 정세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제2시나리오는 2012년 이후 상황에서도 유효할 것이다. (2010년 10월 2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