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18)



주미철만 알고 주산국은 모른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두 단계 사회변혁의 연속성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진보는 사회변혁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다. 사회변혁을 외면한 진보는, 말로만 떠드는 사이비 진보다.

사회변혁이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인데, 세상을 어떻게 바꾼다는 뜻일까? 이전 글들에서 논한 내용을 상기하면, 사회변혁이란 사회체제의 성격부터 바꾸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체제 자체까지 바꾼다는 뜻이다. 인간개조에 비유하면, 사람이 지닌 나쁜 성격부터 고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의 본성까지 총체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회변혁은 단번에 완성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체제의 성격을 바꾸는 1단계 변혁을 거쳐, 사회체제 자체를 바꾸는 2단계 변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전에 발표한 글들에서 논한 것처럼, 우리식 사회변혁은 두 단계 사회변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속적 성격을 자주적 성격으로 바꿔야, 예속적 성격에 의해 기형화된 자본주의체제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체제의 성격을 바꾸는 것에 따라 사회체제도 상당 부분 바뀌게 된다. 예속적 성격을 자주적 성격으로 바꾸는 1단계 변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체제가 온전히 유지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 체제도 상당 부분 바뀌게 된다. '상당 부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두 단계 사회변혁에서 1단계와 2단계는 분절적으로 전개되지 않으며, 2단계 변혁과 상호중첩된 연결요소가 1단계 변혁 과정에서 생겨나 두 단계 사회변혁의 연속성을 보장하게 된다. 만일 1단계 변혁에서 상호중첩된 연결요소를 창출하지 못하면, 사회변혁은 1단계로 끝나고 말 것이다. 상호중첩된 연결요소를 창출하지 못한 까닭에, 두 단계 사회변혁이 발전도중에 유산되어버린 뼈아픈 실패경험은 세계변혁운동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단계 변혁을 2단계 변혁으로 연속 추동하는 상호중첩된 연결요소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위에서 논한 대로 예속적 성격을 자주적 성격으로 바꾸는 1단계 변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체제를 상당 부분 바꾸게 되는데, 바로 그 '상당 부분'이 상호중첩된 연결요소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요산업 국유화가 '상당 부분'이며 상호중첩된 연결요소다.

주요산업 국유화(nationalization of major industry)는 두 단계 사회변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명백하게도, 주요산업 국유화는 우리 사회의 예속성을 자주성으로 바꾸는 전환점이며 동시에 낡고 썩은 자본주의체제와 영영 헤어지는 결별점이다.

외래자본이 잠식하고 토착자본이 지배하는 이 땅의 주요산업을 국유화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자주화된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외래자본이 잠식하고 토착자본이 지배하는 이 땅의 주요산업을 국유화하지 않고 우리가 낡고 썩은 사회체제와 결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주요산업 국유화라는 경제강령을 제시한 새롭고 진정한 민주주의다. 이 땅에 실현될 사회변혁은 주요산업 국유화를 경제강령으로 하는 우리식 사회변혁이다.


북미 협상과 주요산업 국유화 준비

지금까지 우리는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중심에 놓고 우리 사회의 자주화 과업을 생각해왔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주한미국군 철군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군사강령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지적하는 것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군사강령만이 아니라 경제강령도 중시해야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두 강령이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음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베네주엘라는 자주화를 실현할 때 주요산업을 국유화하는 경제강령만 수행하면 된다. 그 나라에는 외국군이 주둔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군 철군강령이 애초에 제기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와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는 주요산업을 국유화하는 경제강령과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는 군사강령이 동시에 제기된다.

주요산업을 국유화하는 정치적 결정은 우리 사회에 등장하게 될 진보정부(또는 자주적 민주정부)가 내릴 것이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정치적 결정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내릴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을 영구히 주둔시키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자진해서 철군하지는 않을 것이고, 따라서 강압적으로 철군시키는 수밖에 없다. 주한미국군을 강압적으로 철군시키려면 영구주둔 욕망에 사로잡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초강경한 압박력으로 옥죄어 강제해야 한다. 전 세계를 지배, 장악하는 매우 강력한 제국주의세력의 본산을 옥죄고 강제하는 힘은 그야말로 초강경한 힘이어야 한다.
 
북측이 장장 40여 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아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피땀 어린 노력을 기울여 축적한 것이 바로 그러한 초강경한 힘이다. 지금 북측은 초강경한 힘을 가지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옥죄고 강제하여 주한미국군을 강압적으로 철군시키려는 대공세를 벌이는 중이다.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북측의 대공세에 동원되는 초강경한 힘의 실체는 미국의 핵과학자들을 경탄케 할 정도로 발전된 첨단 핵억지력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강압적인 철군 공세에 대응하여, 아시아 대륙에 마지막으로 남겨둔 미국군이 서태평양으로 밀려나지 않게 하려고 현상유지 술책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술책은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그들에게는 양자택일밖에 없다. 양자택일에는 북측의 대공세에 맞서 버티며 주한미국군을 유지하는 길이 있고, 북측의 대공세에 밀려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길이 있다. 전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너무 위험천만한 길이다. 왜냐하면 지금 북측이 대공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므로, 북측과 미국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지난 17년 동안 북측과의 대결에서 타격을 무수히 받으면서도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이제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북측이 2009년에 은하 2호를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실시한 때로부터 2010년에 최첨단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하고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기습적으로 대응한 때에 이르기까지 2년 기간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 몰아넣은 대공세기였다.

앞으로 북측과 미국의 협상기간이 몇 해 더 걸릴 수 있지만, 협상결과는 예측할 수 있다. 북미 협상결과는, 두말할 나위 없이 주한미국군의 단계적 철군이다.

북측의 대미협상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측의 대미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당면과제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이 객관정세의 변화방향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자기의 정치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기본상식인데, 북측이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기 위해 미국을 상대로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이는 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북미 협상과정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위에서 논한 대로, 주한미국군 철군 강령과 주요산업 국유화 강령이 우리 사회를 자주화하는 양대 강령이고, 그 양자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이므로,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앞으로 몇 해 기간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에게 주어질 임무는 주요산업을 국유화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주요산업 국유화는 결코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주요산업 국유화 계획을 작성할 사회과학 연구역량이 필요하다는 점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내외 반대세력의 온갖 방해를 뚫고 그 계획을 실행할 강력한 정치역량이 요구되는 것은 실로 아름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이 주요산업을 국유화할 준비를 미처 갖추지 못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세력이 그처럼 방대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면, 주요산업 국유화를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가 낭패를 당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이 삼균주의 경제강령보다 못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그들의 정치적 한계에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에 주요산업을 국유화하는 경제강령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보신당은 국유화 강령을 자기의 강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보신당 내부사정에 대해 외부에서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그 당이 주요산업 국유화 강령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주요산업 국유화 강령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였을까? 그 경제강령을 놓고 당 안에서 토론회조차 하지 못하였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이 주한미국군 철군 강령만 제기하고 주요산업 국유화 강령을 당 안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신자유주의를 배격하는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를 배격하는 결정적인 '무기'인 주요산업 국유화에 무관심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중심으로 보편적 사회복지를 실현하려는 민주노동당이 보편적 사회복지를 위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할 주요산업 국유화에 무관심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요즈음 민주노동당에서는 강령개정위원회가 강령개정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강령개정위원회에서 주요산업 국유화 강령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강령개정위원회에 제출된 강령개정 초안에는 "한미 군사동맹 체제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킨다"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주요산업을 국유화한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생산수단의 소유구조를 다원화하여 민중이 참여하는 경제운영을 통해 민생중심의 경제를 확립한다"고 모호한 필치로 표현된 것이 전부다.
 
주요산업 국유화와 생산수단의 소유구조 다원화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생산수단이라는 말이 주요산업 생산수단인지, 중소기업 생산수단인지, 농어업 생산수단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다원화라는 말이 국유화, 공유화, 사유화라는 뜻인지, 국유화와 사유화라는 뜻인지, 국유화와 공유화라는 뜻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누구가 알 수 있도록 정확하고 분명한 개념과 용어가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담겨야 마땅한데, 왜 주요산업 국유화라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서술하지 않고, 생산수단의 소유구조 다원화라고 부정확하고 모호하게 표현한 것일까? 주요산업 국유화를 좌파 경제강령으로 보았기 때문에, 중도좌파정당의 강령에서 그런 좌파강령을 제시하기가 좀 거북해서 그렇게 하였을까? 주요산업 국유화가 좌파 경제강령이 아니라 중도좌파 경제강령이라는 점은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대산업기관의 공구와 시설을 국유로 하고, 토지, 광산, 어업, 수리, 임업, 소택과 수상, 공중의 운수사업과 은행, 전신, 교통 등과 대규모의 농, 공, 상 기업과 성시, 공업구역의 공용적 주요산업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은 중소기업은 사영으로 함. (줄임) 국제무역, 전기, 수도, 대규모의 인쇄소, 출판, 영화극장 등을 국유, 국영으로 함." 이것은 1941년 3월 김구가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기초하여 작성하여 임시정부 주석의 명의로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의 일절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이 70년 전에 선포된 조소앙의 삼균주의 경제강령보다 후퇴하였다고 지적한다면,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을 국유로 한다.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줄임)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둔다.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절한 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통제, 관리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이것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헌법 조항의 일부다.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려는 민주노동당의 경제강령이 63년 전 이승만 정부가 제정한 헌법의 경제조항보다 후퇴하였다고 지적한다면,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2011년 1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