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34)



이름만큼 길고 복잡했던 협상과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막을 끝낸 진보정치대통합

그 동안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라는 긴 이름의 협상이 진행되어왔다. 이름만큼 길고 복잡한 협상과정에서 협상을 진행한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웠고, 협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협상의 고비를 바라볼 때마다 아슬아슬함 느꼈다. 협상결렬의 고비를 넘기고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여 1막을 끝낸 때는 2011년 6월 1일 새벽 4시 40분경이었다.

진보정치대통합은 앞으로 9월까지 넉 달 동안 2막과 3막을 더 끝내야 한다. 이 달 안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각각 '최종 합의문'에 대한 당내 승인을 거치는 과정이 2막이고, 7월부터 9월 사이에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과정이 3막이다. 앞으로 2막과 3막에서 얼마나 더 심각한 협상장애요인이 돌출할지 알 수 없다.

진보정치대통합에 대해 논하려면 1막에서 3막까지 펼쳐지는 복잡다단한 과정이 모두 끝난 뒤에 논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지만, 일단 1막을 끝냈으므로 그 동안 민주노동당이 이루어낸 성과를 돌아보는 중간평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1막이 끝날 때 사회당이 스스로 퇴장하였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회당은 진보정치대통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협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대통합을 위한 협상을 결렬시키기 위해 협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진보정치대통합을 반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진보신당 독자파도 사회당과 똑같아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회당과 진보신당 독자파는 진보정치대통합을 반대하는 반통합론자들이다. 진보정치대통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써온 민주노동당이 반통합론자들과 협상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의미하고 불가능하였다. 진보정치대통합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반통합론자들은 타협대상이 아니라 배제대상으로 규정되어야 마땅하다.

2011년 3월에 열린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방침을 채택한 바 있는데, 그 방침들 가운데 하나는, 진보정치대통합 협상이 실패하여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불가능할 경우 진보신당은 자기들과 합의하는 세력들과 연합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진보신당 독자파가 진보신당 내부의 '최종 합의문' 승인절차에서 '최종 합의문'을 거부하는 경우, 그들은 자기들과 합의하는 세력들과 연합하여 또 다른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진보정당은 두 개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정치대통합을 저지하려는 '쎅트'의 준동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제3길'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이 아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강령은 이번에 연석회의에서 채택한 '최종 합의문'에 기초하여 작성될 것이다. '최종 합의문'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강령에서 명시할, 사회체제 건설문제를 거론하였다.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존중, 노동존중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측 자본주의와 북측 사회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전형적인 양비론이다. 그러한 양비론은 민주노동당 강령과 진보신당 강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 강령은 "남한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이 극복되면서 민중의 권익과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는 체제"라고 표현하였고, 진보신당 강령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포로가 된 남한과 낡은 국가사회주의의 틀에 갇힌 북한"이라고 표현하였다.

민주노동당 강령에 나온 천민성과 경직성이라는 이상한 개념에 대해서는 2011년 2월 17일에 발표한 나의 글 '재개정 요구하는 민주노동당의 평화통일강령'에서 비판적으로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이번에 채택된 '최종 합의문'에서는 천민성과 경직성, 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라는 개념을 쓰지 않은 대신 한계라는 모호한 개념을 썼다. 그러나 한계라는 모호한 개념을 썼다고 해서 양비론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양비론은 이른바 '제3길(Third Way)'을 들고 나온 사민주의자들의 견해다. 사민주의자들이 말하는 '제3길'은 자본주의체제의 변형인데도 그들은 그것이 자본주의체제와 다른 어떤 새로운 사회체제인 것처럼 말하여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면 '제3길'을 들고 나온 사민주의 정당들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주의연맹(SI)에 가입한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한 유럽 나라들은 그리스, 노르웨이, 스위스, 스페인, 아이슬랜드,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등이고, 아프리카 나라들은 가나, 나미비아, 남아공, 말리, 모잠비크, 앙골라, 짐바브웨 등이고, 중남미 나라들은 과떼말라, 니까라과, 에꾸아돌, 우루과이, 꼬스따리까, 빠라과이 등이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나라들은 몽골, 오스트레일리아, 파키스탄 등이다.

사민주의정당이 집권한 이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존중과 노동존중의 새로운 사회체제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한결같이 그저 그렇고 그런 나라들이다.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양비론이, 위의 나라들에서 집권한 사민주의 정당이 가는 길이라면 이 땅의 진보정당은 그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이 땅의 진보정당이 건설할 새로운 사회체제를 민주노동당의 관점에서 논한다면, 예속적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사회체제라고 표현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진보정당에는 이념적 분광이 다양한 여러 정파들이 참가하게 될 것이므로,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진보정당의 강령으로 명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민주의정당의 '제3길'을 비판적 검토 없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강령에 받아들이는 오류도 피해야 할 것이다.

상충적 대북관을 어떻게 절충하였을까?

진보정치대통합 협상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대북관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대립하였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의 대북관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의거한 통일지향적 대북관이고, 진보신당의 대북관은 이른바 '세습반대론'과 '북핵반대론'에 의거한 대립적 대북관이다. 진보신당의 대립적 대북관이 한나라당의 대결적 대북관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진보정치대통합 협상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사실상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처럼 타협의 여지가 없었던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타협하였을까? '최종 합의문'에 따르면, 새로운 진보정당은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승계문제는 국민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합의문에 따옴표를 친 문장을 집어넣은 것은 이 땅의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이변이다. 따옴표를 친 문장을 집어넣은 까닭은, 그 문장의 의미규정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견해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에 참가하는 특정정파의 견해라는 점을 나타내야 하였기 때문이다.

매우 이례적으로 따옴표까지 집어넣은 그 어색한 문장은 두 개의 구성부분을 억지로 연결시킨 것인데, 첫째 구성부분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북측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둘째 구성부분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당내 특정정파의 북측 권력승계에 대한 비판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몇 가지 논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북측 체제를 인정하는 것과 북측의 권력승계를 비판하는 것은 양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북측의 권력승계는 북측 체제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측 체제를 인정한다고 하면서 북측 체제의 핵심인 권력승계를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적 모순이다. 만일 진보신당이 북측 체제를 인정한다면, 당연히 북측 체제의 핵심인 북측의 권력승계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종 합의문'에서는 북측 체제를 인정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과 북측의 권력승계를 비판하는 진보신당의 입장이 상충적으로 병기되었다.

둘째, 새로운 진보정당이 당내 특정정파의 견해를 존중한다고 할 때, 존중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최종 합의문'에는 존중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정치적 합의문에서 그런 세부사항까지 시시콜콜 명시할 수는 없으므로, 그냥 존중한다는 막연한 표현만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차 새로운 진보정당 안에서 대북정책에 관련하여 다수파의 견해와 소수파의 견해가 충돌할 때, 다수파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소수파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인지 논란이 일어날 소지가 충분해 보인다.

셋째, 진보정치대통합 협상과정에서 진보신당은 '세습반대론'을 제기하였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세습반대론'은 최소한의 논리적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한, 극우파가 조작해낸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신당이 극우파의 궤변을 민주노동당과의 협상에 끌어들인 것은 처음부터 패착이었다.

'최종 합의문'에는 그들이 제기한 '세습반대론'이 들어가지 않았고, '권력승계비판론'만 들어갔으며, '권력승계비판론'도 새로운 진보정당의 당론이 아니라 당내 특정정파의 견해로 규정되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의 협상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등장한 '세습반대론'을 효과적으로 억지하였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얻어낸 협상성과다.

북측의 권력승계를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측의 권력승계를 세습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사회주의국가의 후계체제와 입헌군주국의 왕위세습이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사물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식대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총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정치적 요구에 따라 골라낸 선별정보만 받아들이는데, 북측의 정치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진보신당은 북측의 권력승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의 정치적 요구에 따라 골라낸 선별정보만 받아들인다. 그들이 골라내어 받아들인 선별정보가 바로 혈연관계다.

그러나 북측의 권력승계를 혈연관계라는 선별정보만으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자기들의 정치적 요구에 따라 골라낸 선별정보를 객관현실에 대한 총체적 정보라고 착각하는 오류다. 북측의 권력승계는 혈연관계라는 선별정보만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북측의 체제문제, 사상문제, 정치문제, 역사문제의 총체다. 북측의 체제문제, 사상문제, 정치문제, 역사문제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때, 북측의 권력승계를 혈연관계로만 바라보는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어 북측에 대한 접촉과 방문, 과학적인 연구, 공정하고 자유로운 토론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될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대북인식이 가능하다. 북측의 권력승계가 세습인지 아닌지에 대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한 적도 없으면서, 그리고 북측의 정치체제에 대해 연구도 하지 못했으면서, 분별 없이 '세습반대론'을 꺼내놓는 것은 이성을 저버리고 우상을 따르는 허황된 짓이다. 북측의 권력승계에 대한 공정하고 자유로운 토론은 '국가보안법' 철폐 이후에 가능하다.

유감스러운 야권연대 정체론

2011년 3월에 열린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내부방침을 채택한 바 있다. 그 당의 내부방침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같은 신자유주의 정당과는 연대할 수 없고, 2012년 대선에서 연립정부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내부방침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2012년 선거정국에서 연립정부 수립은 고사하고 야권연대마저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이 요구하는 야권연대를 거부하는 것은 정치적 소수파가 자기의 정치이념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정체성 고수가 아니라 자신을 골방에 스스로 가두어버리는 정치적 고립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야권연대문제에 대해 어떤 절충점을 찾았을까? '최종 합의문'에 따르면, 새로운 진보정당은 2012년 대선에서 "당의 후보를 출마시켜 진보정치세력의 승리를 위해 완주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하였다. 독자후보전술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최종 합의문'에 독자후보전술을 명시한 것은, 진보신당이 자기의 내부방침을 '최종 합의문'에 관철시킨 것이다. 이것은 진보신당이 얻어낸 성과다.

그런데 '최종 합의문'에는 독자후보전술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전술도 들어갔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2012년 대선에서 "신자유주의 극복과 관련된 주요정책들에 대한 가치를 확고한 기준으로 하여" 선거연대를 추진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최종 합의문'에 나온 선거연대는 선거전술의 일종인 야권연대를 뜻한다. '최종 합의문'에 야권연대전술을 집어넣은 것은 민주노동당이 얻어낸 성과다. 이 두 가지 상충되는 선거전술에 대해 아래와 같은 논점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최종 합의문'이 이처럼 독자후보전술과 야권연대전술 가운데 어느 한 쪽을 택하지 않고 둘 다 병기한 것은, 대선방침에 대한 불안정한 절충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절충의 불안정성은 앞으로 선거정국이 본격적으로 가열될 때 새로운 진보정당 내부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요인으로 부상할 것이다.

둘째, 새로운 진보정당의 2012년 대선방침을 독자후보의 출마와 완주로 규정한 것은 공동집권전략에 의한 연립정부 수립방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물론 2012년 총선에서는 4.27 재보선처럼 후보단일화라는 선거연대가 실현될 수 있겠지만, 2012년 대선에서는 후보단일화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각기 후보를 출마시키고 완주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것은 2012년 대선에 야권단일후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각계각층 대중들의 정치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며, 한나라당 대선후보와의 표대결에서 야3당의 지지표가 분산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며, 2012년 대선이 종래의 후보단일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이다.
 
셋째, 민주노동당 안에서 연립정부 수립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토론을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은 채, '최종 합의문'에 진보신당의 연립정부 반대론을 비판적 검토 없이 받아들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독자후보전술을 2012년 대선방침으로 채택하였으므로, 연립정부 수립문제에 대한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넷째, 2012년 대선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이 독자후보전술을 채택하는 경우, 의미 있는 득표율을 얻을 가능성은 없다. 예상하기 정말 꺼려지는 시나리오지만, 2012년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를 출마시키지 못하는 경우, 새로운 진보정당의 독자후보전술이 의미 있는 득표율을 얻지 못한 데다가, 야3당 지지표가 분산되어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적은 표차로 승리하여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위험이 있다.

만일 그러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경우, 2012년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워 한나라당 재집권을 저지해 달라고 절실히 요구한 각계각층 대중은 새로운 진보정당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2011년 6월 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