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조국통일 3대헌장과 우리 민족의 과제』중에서

 

 

민족의 드높은 통일열망을 한몸에 체현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관철에로 온 겨레를 불러일으키시기 위해 끊임없는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83(1994)년 7월 8일 우리 민족은 5천년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대국상을 당하는 너무나도 가슴아픈 현실에 직면하였다.

그때로 말하면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크나큰 격동속에 북남최고위급회담의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그 준비를 다그치고있던 시기였다.

바로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신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보상할수 없는 20세기의 가장 큰 손실이였고 우리 민족과 온 인류의 최대의 슬픔이였다. 온 겨레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잃은 비통감으로 몸부림쳤다. 삼천리강산이 피눈물의 바다에 잠겼고 산천초목도 비분에 떨고있었다.

그러던 주체83(1994)년 7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사정에 의하여 일단 연기한다는 전화통지문이 남측에 공식통고되였다. 여기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필생의 뜻을 받들어 민족의 운명,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으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갑자기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아직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였던 7월 8일이였다. 너무도 크나큰 상실의 아픔에 휩싸여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의 앞에는 하나의 문건이 놓여져있었다. 그 문건으로 말하면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된 문건이였다. 문건에는 어버이수령님의 활달한 친필이 방금전에 쓰신것처럼 생생한 자욱으로 남아있었다.

김일성주석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해하시며 한 일군을 조용히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절절하신 음성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문건을 보시고 1994년 7월 7일 날자와 존함을 활달한 필체로 쓰신것이 마지막 비준문건이라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비준하여주신 귀중한 문건을 잘 보관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중대보도가 나간 7월 9일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취소가 아니라 일단 연기한다고 함으로써 그 유효성을 선포하도록 해당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당시 일군들은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심으로써 북남최고위급회담은 할수 없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운명과 전도를 두고 깊이 생각하시였다. 그이의 심중에는 그토록 환희에 휩싸여 기대와 희망을 안고 기다려온 북남최고위급회담문제를 놓고 겨레가 받게 될 좌절감과 실망감이 가슴아프게 안겨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중단하고 손맥을 놓고있는 관계부문 일군들에게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회담을 일단 연기할데 대한 전화통지문을 남조선당국에 보내도록 일일이 가르치심을 주시였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알리는 공화국의 중대조치가 전화통지문을 통해 남측에 공식통고되게 되였으며 그것이 2000년 6월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6. 15공동선언채택과 같은 민족사적사변으로 이어졌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김일성주석의 서거 100일 중앙추모회가 거행된 주체83(1994)년 10월 16일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반드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 철석의 통일의지를 다시금 표명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분렬을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시며 조국통일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노력과 온갖 정력을 다 기울이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을 그처럼 간절히 바라시였지만 통일의 그날을 보시지 못하고 서거하셨습니다. 조국통일을 이룩하는것은 수령님의 유훈이며 온 민족이 통일된 조국에서 화목하게 잘살도록 하시려는것이 수령님의 뜻이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성취하여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꽃피워야 합니다.》

김일성주석의 령전에서 다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절대불변의 통일의지는 7천만겨레에게 새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온 강산에 통일의 열풍을 안아온 힘의 원천으로, 민족의 심장속깊이 뿌리내린 억센 마음의 기둥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철석의 통일의지를 안으시고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억년 아물수 없는 슬픔의 상처를 남긴 피눈물의 그해에도 8. 15범민족대회를 계속하게 하시여 온 겨레가 통일에 대한 희망과 신심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원래 제5차 범민족대회개최문제는 주체83(1994)년 5월 26일 제2차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에서 이루어진것이였다. 여기에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를 민족공동의 대축전으로 빛내이기 위하여 8월 15일에 기본대회를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의 주관밑에 서울에서 하면서도 평양과 도꾜에서도 각기 대회를 진행하며 서로 대표단을 교환, 파견하기로 합의하였었다.

그런데 그해 7월 뜻밖에 대국상을 당하여 온 강토가 눈물의 바다로 변하게 되자 범민련 북측본부와 관계부문의 일군들은 이런 때 어떻게 범민족대회와 같은 행사를 벌려놓겠는가고 하면서 8. 15범민족대회를 그만두는것이 마땅한 도리로 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리하여 범민련 북측본부에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를 그만둘데 대하여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와 해외공동사무국에 통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주체83(1994)년 8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의 일군에게 범민족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이번에 진행하는 8. 15범민족대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범민족대회인것만큼 수령님의 전민족대단결사상을 받들어 통일운동을 힘있게 전진시켜나간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색있게 크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리하여 공화국에서는 주체83(1994)년 8월 11일 범민련 북측본부대변인의 이름으로 제5차 범민족대회를 계획대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동안 진행하게 된다는것과 8월 13일에 해외측 범민족대회에 참가할 5명의 대표들을 일본 도꾜로 보내며 8월 14일에는 서울대회에 참가할 10명의 대표들을 판문점을 통하여 서울로 파견할것이라는것을 선포하였다.

드디여 평양에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의 막이 오르게 되였다.

주체83(1994)년 8월 13일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셔져있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동상앞에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 개막행사일정으로서 통일실천결의집회가 큰 규모에서 특색있게 진행되였다.

1만 5 000여명의 각계층 인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통일실천결의집회에서는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받들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밑에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겨 실현할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8월 15일 4. 25문화회관에서는 기본행사일정으로서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대히 개최되였다.

대회에는 공화국의 정부, 정당, 사회단체의 일군들을 비롯하여 범민련 북측본부와 범청학련 북측본부 대표들, 범민련 해외본부대표단과 공화국을 방문하고있는 해외동포들 그리고 평양시안의 각계층 근로자들이 참가하였다. 또한 취재를 위해 공화국의 신문, 방송기자들과 미국 CNN TV방송회사취재단, 영국 BBC방송회사 TV취재단, 카나다 CBC방송국 기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내외기자들이 붐비였다.

대회에서는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의 보고에 이어 토론들이 있었다. 보고자와 토론자들은 온 겨레가 민족자주의 립장을 확고히 견지하고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기치아래 굳게 뭉치며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따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대회에서는 제2차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결정에 따라 제5차 범민족대회 공동문건들이 채택되였다. 참가자들의 지지와 찬동속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5차 범민족대회의 공동결의문, 7천만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 세계의 평화애호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미국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가 랑독되였다.

이밖에 대회기간에 진행된 조국통일대토론회, 조국통일을 위한 청년학생연단, 결의모임형식의 《통일문화의 밤》 등 다채로운 통일축전행사들을 통하여 참가자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통일유훈을 받들어 기어이 조국통일을 이룩할 철석의 의지를 굳게 가다듬었다.

한편 14일 판문점 북측지역 판문각앞마당은 서울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파견되는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을 바래우기 위해 평양과 개성에서 달려온 범민련성원들과 수백명의 각계층 근로자들로 꽉 들어찼다.

오전 11시 제5차 범민족대회 서울대회에 참가할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이 판문각앞마당으로 나오자 군중들은 공화국인민들의 뜨거운 통일열망을 안고 서울로 향하는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민족공동의 통일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나가려던 북측대표단의 판문점통과는 남조선강점 미군과 김영삼파쑈독재《정권》의 차단행위로 하여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북측대표단은 판문각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제5차 범민족대회를 범죄시하고 북측대표단의 남행길을 가로막아나섰으며 반공화국대결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는 남조선당국자들의 무분별한 책동을 단호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문민》파쑈집단은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의 판문점통과를 가로막고 제5차 범민족대회(서울)자체를 《리적행위》로 《범죄》시하면서 대회관련자들을 체포구속하는 등 대회를 탄압해나섰지만 남조선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련합》과 《한총련》을 비롯한 65개 학생, 시민단체들은 제5차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를 결성하고 대회의 성과적개최를 위한 운동을 활발히 벌리였다.

반통일분렬주의자들의 극악한 탄압속에서도 1만 7 000여명의 청년학생, 재야인사, 로동자, 서울시민들은 서울범민족대회를 열었다.

서울범민족대회는 비록 반통일분렬주의자들의 악랄한 방해책동으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였지만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통일의 력사적숙원을 기어이 성취하려는 7천만겨레의 의지를 담은 단결의 대회, 통일의 대회로서 남녘겨레의 드팀없는 통일의지를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일본 도꾜에서도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제5차 범민족대회에 이어 그 다음해에 진행된 조국해방 50돐 민족통일대축전 역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주체84(1995)년 첫날 아침 다박솔중대에 대한 현지시찰로 위대한 선군정치의 전면적실현의 큰 자욱을 새기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날 해당 부문의 책임일군들을 가까이 부르시여 수령님의 통일유훈을 하루빨리 실현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기는데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해 정초에 련이어 일군들에게 조국통일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조국해방 50돐이 되는 1995년에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으며 그로부터 며칠후에 또다시 조국해방 50돐을 계기로 전민족적범위에서 거족적인 통일운동을 벌려나갈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이렇게 새해 정초부터 조국해방 50돐 민족통일대축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 준비사업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월 18일 또다시 해당 부문의 책임일군을 통하여 민족통일대축전준비정형을 료해하시고 그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조국해방 50돐 민족통일대축전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현명한 령도밑에 큰 규모에서 특색있게 진행될수가 있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