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7일 우리민족끼리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넣은 만고역적을 단죄한다

리명박역도의 반통일대결망발백서
 

지금 북남관계는 괴뢰역적패당의 극악무도한 도발적망동으로 최악의 파국에 처해있다.

리명박역도가 북남관계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파괴하여왔는가 하는것은 그의 추악한 망발들이 력사의 산 기록으로 낱낱이 고발해주고있다.

조국통일연구원은 극악한 동족대결광신자인 리명박역도의 반민족적, 반통일적정체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이 망발백서를 낸다.

 

북남공동선언에 대한 도전적망발

 

6. 15이후 좋게 발전하던 북남관계가 파국에 처하게 된것은 무엇보다 리명박역도가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부정하고 그 리행을 가로막은데 있다.

역도는 집권하기전부터 공동선언들을 부정하는 흉심을 드러냈다.

2007년 5월 10일 리명박역도는 괴뢰대통령선거 출마선언문에서 6. 15공동선언발표이후의 경이적인 북남관계의 발전을 《북에 끌려다닌 남북관계》니, 《잃어버린 10년》이니 하고 모독하였다.(《파이낸셜뉴스》2007. 5. 10)

그런가 하면 2007년 8월 29일 남조선주재 미국대사와의 면담에서 역도는 《로무현정부와 민주당이 민족공조라는 측면에서 남북관계를 중요시하지만 나는 전통적우호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한다.》고 도전해나섰다.(《세계일보》 2007. 8. 29)

특히 2007년 11월 27일 선거유세장에서 역도는 선언리행에 대해 《퍼주기》니 뭐니 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따지겠다.》고 줴쳤다.(《래일신문》2007. 11. 28)

괴뢰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역도는 북남공동선언들을 더욱 로골적으로 부정하는 망발들을 줴쳤다.

역도는 2008년 1월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원론적인 수준이며 구체적이지 않다.》고 10. 4선언을 터무니없이 시비하면서 그 리행을 회피하려는 속심을 드러냈으며 2008년 2월 1일 기자회견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인들이 평양에 가서 수표하고왔다고 하여 후임자가 리행하는것은 아니다. 우선 할것, 나중에 할것, 못할것을 구분하겠다.》고 하면서 선언리행을 사실상 전면부정하였다. (《련합뉴스》2008. 1. 14, 2. 2)

특히 리명박역도는 북남공동선언의 기본핵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대해서까지 악랄하게 모독, 유린하였다.

2008년 2월 25일 《대통령》취임사에서 역도는 《대북정책을 리념의 자대가 아니라 실용의 자대로 풀어가겠다.》고 떠벌였는가 하면 3월 1일 《대통령》취임후 첫 《3. 1절기념사》와 4월 3일 괴뢰군장성들의 임명식이라는데서는 우리 민족끼리는 《편협한 민족주의》이고 《배타적민족주의》이며 《그것으로 남북관계를 해결할수 없다.》고 망발하였다.(《아시아경제》 2008. 2. 25, 《KBS》2008. 3. 1, 《통일뉴스》 2008. 4. 3)

리명박역도는 이처럼 북남공동선언들을 부정, 유린하면서 청와대는 물론 통일부, 정보원 등 괴뢰정권의 각 부, 처들에서 6. 15공동선언, 10. 4선언관계자들과 지지자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6. 15관련단체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며 지어는 여당패거리들과 정치폭력깡패들을 내몰아 북남공동선언에 도장을 찍은 두 전직 《대통령》을 모해, 박해하여 끝끝내 죽음에로 몰아넣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역도가 북남공동선언에 대해 얼마나 적의를 가졌는가 하는것은 그가 집권기간 여러차례 진행된 민간단체들의 공동선언발표기념행사에 한번도 머리를 들이밀지 않았으며 선언리행에 대한 말한마디 하지 않은 사실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있다.

온 민족과 전세계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환영한 민족공동의 통일리정표인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을 역도가 무참히 짓밟음으로써 북남관계는 애초부터 파국의 나락에 굴러떨어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악랄한 북남관계부정망발

 

리명박역도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에 따라 진행되여오던 북남대화들을 하루아침에 중단시키고 북남관계를 전면차단하였다.

역도는 집권직후인 2008년 3월 14일 괴뢰통일부에 《북에 어떤 대화제안이나 접촉도 하지 말라.》고 지령하였으며 이어 3월 26일 통일부의 첫 업무보고에서 《이제까지 해오던 협상자세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면서 북남대화를 전면부정해나섰다. (《통일뉴스》 2008. 4. 3, 《련합뉴스》 2008. 3. 26)

그에 대한 비난이 내외에서 크게 일어나자 리명박역도는 2008년 4월 13일 대국민기자회견에서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 기존틀이 새롭게 정립되는 조정기간을 거치고있다. 정부는 그런 관점에서 원칙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하고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으며 6월 3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가진 회견에서 6자회담을 걸고 《남북관계만 진전시키는 별도의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머니투데이》 2008. 4. 13, 《뉴시스》 2008. 6. 6)

리명박역도는 북남대화와 북남관계를 가로막기 위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핵포기》니, 《진정성》이니, 《원칙고수》니, 《북태도변화》니 하는 등 별의별 구실을 다 가져다붙였다.

역도는 2008년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 등에서 《선핵포기》니, 《퍼주기》니 하면서 북남협력사업에 차단봉을 내리였는가 하면 11월 12일 《북이 자세를 바꾸기를 기다리고있다. 기다리는것도 전략》이라고 줴쳤다. (《련합뉴스》 2008. 3. 26, 《뉴시스》 2008. 11. 12)

리명박역도는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한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에 대해서도 줄곧 외면하였다.

우리는 괴뢰보수패당이 집권한 첫날부터 남조선당국에 북남관계를 악화시키는 행위를 그만두고 북남대화에 성근하게 나올것을 거듭 요구하면서 그와 관련한 건설적인 제안들을 성의껏 내놓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리명박역도는 《남북관계에서 후퇴한것은 없다.》, 《분단 60여년에서 1년간 경색된것은 있을만 한것이다.》라는 소리를 줴쳤을뿐아니라 대화를 하면 《북의 권력만 강화시켜주는 꼴이 된다》, 《대화를 안하는것이 대북정책을 살리는 길》이라고 하면서 도전해나섰다. (《통일뉴스》 2008. 8. 18, 2009. 1. 31, 《문화일보》 2011. 2. 17)

지어 역도는 《원칙없는 회담을 하지 않겠다.》, 《지금의 남북관계가 가장 정상적인 궤도로 가고있다고 본다.》, 《임기중에 정상회담을 한번도 안해도 좋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련합뉴스》 2009. 11. 6, 2010. 4. 23, 《동아일보》 2010. 11. 15)

리명박역도는 저들족속들에게도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버리라.》, 《내 임기 5년동안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어도 좋다.》, 《남북관계가 잘 된다는 말을 들으려 하지 말고 장기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북남대결에로 적극 부추겼다. (《한겨레》 2008. 11. 3, 《프레시안》 2008. 11. 26)

2008년 12월 31일 역도는 그 무슨 업무보고라는데서 당시 통일부 장관이 당국대화와 경제협력, 인도주의적사업, 특사파견 등을 다음해 추진하려 한다고 제기하자 《대화재개가 우리의 목표로 되여서는 안된다.》고 욕설을 퍼붓다 못해 나중에는 그의 목을 떼고 극악한 반통일대결분자인 현인택을 그 자리에 들여앉혔다. (《중앙일보》2009. 1. 5, 《KBS》 2009. 2. 12)

남조선에서 현인택에 대한 원한이 높아가는데 따라 2011년 2월 1일 TV좌담회에서 통일부 장관 등 보수강경파들을 교체할 생각이 없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데 대해 역도는 《북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단마디로 잘라버렸다. (《매일경제》2011. 2. 1)

역도는 금강산관광사업과 관련해서는 저들의 불찰로 일어난 불상사인 관광객사건을 코에 걸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약속, 신변안전보장조치》를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중단시키고 관광재개를 거부해나섰는가 하면 도발적인 함선침몰사건과 연평도사건을 악랄하게 걸고들면서 《더이상의 대화와 협력은 무의미하다.》고 공언하고 그 무슨 《인정》과 《사과》를 북남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있다. (《KBS》 2008. 7. 16, 《련합뉴스》 2010. 5. 24, 2011. 4. 1)

이 모든것은 리명박역도에게 북남대화는 물론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으며 어떻게 하나 트집을 잡아 방해하자는 흉심밖에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추악한 반공화국핵소동망발

 

조선반도에서 핵문제가 발생하게 된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핵무기반입과 핵전쟁소동, 핵위협때문이라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명박역도가 미국의 북침핵전쟁책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적극 협력, 추종해나서면서 상전과 함께 우리의 《핵포기》만을 떠들며 그것을 북남관계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것은 순전히 우리를 무장해제하여 침략적목적을 달성하자는것으로써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남조선에서 이전 괴뢰통치배들도 반공화국핵소동에 매달려왔지만 리명박역도처럼 외세와 야합하여 핵문제를 전면에 내들고 반대화, 반평화, 반통일대결목적에 악용해보려고 발악한자는 없다.

리명박역도는 2007년 11월 19일 방송기자들과의 토론회와 그에 앞서 있은 9월 10일 《중앙일보》 기자와의 회견에서 《북핵을 페기시키는것이 남북관계현안중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자기는 《로무현, 김대중정권과 달리 핵페기를 념두에 두고 대북정책을 실시하겠다.》고 줴쳤다. (《MBC》2007. 9. 10, 《경향신문》 2007. 12. 27)

그것도 부족하여 역도는 2007년 11월 30일 《북이 핵페기와 개혁, 개방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그 어떤것도 기대할수 없다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망발하고 2008년 2월초 언론들과의 회견에서 《북핵페기가 남북관계의 대전제》라고 공언한데 이어 2008년 2월 25일 《대통령》취임사에서 《비핵, 개방, 3 000》을 《대북정책》으로 공식 선포하는데 이르렀다. (《노컷뉴스》 2007. 11. 30, 《자주민보》 2008. 2. 7, 《KBS》 2008. 2. 25)

2008년 7월 11일 18대 《국회》개원연설과 9월 26일 외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역도는 《북핵포기》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선결과제》, 《가장 큰 관건》 등으로 못박으면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북남관계를 한걸음도 전진시키지 않으려는 속심을 더욱 로골적으로 드러냈다. (《KBS》 2008. 7. 11, 9. 26)

리명박역도는 2008년 4월중순과 11월, 2009년 9월 등 미국행각과 미국상전을 만나는 여러 기회마다 반공화국핵모의를 벌려놓고 《임기중 대북정책의 목표는 북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는것》이라느니,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핵전파문제가 심각해질수 있다.》느니, 《지난 20년간 핵회담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느니 하면서 극히 불순하기 짝이 없는 《그랜드 바긴》이라는것을 들고나와 반공화국핵소동을 더욱 집요하게 벌렸다. (《이데일리》 2008. 4. 16, 《KBS》 2008. 11. 17, 《통일뉴스》2009. 9. 22)

역도는 2009년 8월 31일 일본수상으로 올라앉게 된 하또야마와 가진 전화통화와 2011년 1월 15일 일본외상과의 면담에서도 《남북문제는 근본적으로 북이 핵을 포기하는것이 대전제이다. 핵포기없이는 어떠한것도 불가능하다는것이 정부의 립장이다.》, 《북이 핵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지를 전제로 회담에 림해야 한다.》, 《북의 우라니움농축문제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로 가져가야 한다.》고 지껄여댔다. (《중앙일보》 2009. 9. 1, 《MBC》 2011. 1. 16)

리명박역도가 조선반도《유사시》 미국본토방위때와 같이 핵무기를 적극 사용하도록 하는 《확장억제력》을 미국상전에게 애걸하고 남조선에 미국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들을 빈번히 끌어들이면서 《북핵은 절대로 용납할수 없다.》고 떠들고 북의 《핵포기》를 북남대화와 북남관계의 전제조건으로 내드는것이야말로 철면피하기 그지없는 망발이다.

하기에 남조선의 각계층과 내외여론들도 리명박역도의 무모한 망발에 핵문제의 본질도 모르는 강변, 남북관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구실이라고 비난하고있다.

리명박역도의 악랄한 반공화국핵소동으로 하여 북남관계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었다.

 

극악한 체제대결망발

 

력사적인 7. 4공동성명과 북남공동선언들에는 북과 남이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라의 통일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 우리민족끼리리념에 기초하여 실현할데 대한 문제들이 밝혀져있다.

리명박역도는 이 북남관계의 기본원칙, 조국통일3대원칙을 란폭하게 짓밟고 그 누구의 《변화》와 《개방》이니,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이니 뭐니 하며 체제대결을 악랄하게 추구함으로써 북남관계를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넣었다.

역도는 2007년 2월 6일 외신기자초청간담회 등에서 《실질적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적인 대북개방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전 대통령들과 다를것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을것》이라고 망발하였는가 하면 12월 20일 《대통령》당선 기자회견에서도 《과거 정권들처럼 북에 대해 비판을 삼가하고 북의 비위를 일방적으로 맞추지 않겠다.》, 《북에 대해 할 말을 하겠다.》는 동족대결악담을 마구 줴쳤다. (《KBS》 2007. 2. 7, 12. 20, 《동아일보》 2008. 4. 4)

역도의 체제대결망상은 집권후 더욱 로골화되였다.

리명박역도는 2008년 11월 미국을 행각하여 《오바마와 잘 협의하면 효과적으로 북을 변화시킬수 있다.》고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 통일하는것이 궁극적목표》라고 망발하였다. (《통일뉴스》2008. 11. 19)

2009년 6월 13일 미국신문 《월 스트리트 져널》과의 기자회견에서 역도는 《과거 정부들은 북인권문제를 거론하는것이 남북관계를 저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껄여댔으며 2010년 4월 20일에는 청와대에서 먹자판을 벌려놓고 그 무슨 《기본권》이니, 《행복권》이니 하면서 체제대결흉심을 드러내다 못해 나중에는 우리의 축포야회행사까지 악랄하게 비방중상하였다. (《프레시안》 2009. 6. 13, 《련합뉴스》 2010. 4. 20)

역도는 괴뢰통일부의 임무와 직능도 남북관계개선과 화해협력이 아니라 《흡수통일》로 정하고 그에 대비하도록 하였는가 하면 온갖 어중이떠중이 인간쓰레기들까지 긁어모아 삐라살포와 반공화국모략방송을 강화하라고 고아댔다. (《아시아경제》2010. 12. 29, 《문화일보》 2011. 2. 17, 《통일뉴스》 2011. 4. 12)

지어 역도는 2011년 5월 8일 도이췰란드행각시 동포간담회에서 《1989년 서도이췰란드 수상이 베를린장벽이 50년은 더 갈것이라고 했는데 10개월후에 무너졌다.》고 하면서 남북통일도 그렇게 올수 있다고 떠벌였는가 하면 2011년 6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족속들을 모여놓고 《통일은 도적같이 한밤중에 올수 있다.》는 망발까지 줴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매일경제》 2011. 5. 9, 《파이낸셜뉴스》 2011. 6. 21)

실로 리명박역도의 체제대결망발은 그 악랄성과 극악무도성에 있어서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으로서 온 겨레의 커다란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무분별한 군사적대결과 전쟁망발

 

최근 북남관계가 전쟁위기에까지 직면한것은 리명박역도가 집권후 지금까지 미국을 등에 업고 군사적대결과 북침전쟁책동에 광분하면서 군부호전광들을 도발적망동에로 내몬데 있다.

역도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남조선강원도 최전방부대부터 찾아가 전쟁열을 고취하였으며 2008년 1월 11일 괴뢰국방부를 돌아보고는 《강한 안보의식》이니 뭐니 하며 북침전쟁태세를 강화할데 대해 훈시하였다.(《KBS》2007. 12. 31, 《파이낸셜뉴스》2008. 1. 11)

2008년 3월 12일에는 괴뢰 제3야전군사령부에 나가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세계 최강의 북군사력을 눈앞에 두고있다.》, 《튼튼한 한미간 협력과 안보의식이 중요하다.》고 떠벌였는가 하면 8월 18일 《국무회의》에서는 《국지전분쟁가능성》을 공공연히 떠들어댔다. (《노컷뉴스》 2008. 3. 12, 《네이버》 2008. 8. 18)

특히 리명박역도는 2008년 9월 26일 공화국기를 표적물로 걸고 벌린 괴뢰군합동화력시범훈련장에 찾아가 군부호전광들을 춰주면서 《현대전은 전선이 따로 없다. 완벽히 대응할수 있도록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피대를 돋구었으며 2010년 5월 4일 괴뢰군 주요지휘관회의 등에서 《북과 적대상태》니, 《특수한 정황》이니 하면서 《주적개념을 확립하라.》고 고아댔다. (《련합뉴스》2008. 9. 26, 《경향신문》 2010. 5. 4)

역도는 2010년 5월 24일 《천안》호사건과 관련한 대국민담화와 2010년 6월 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족속들과의 간담회 등에서 《불과 50㎞앞에 가장 호전적인 집단이 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단호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라.》, 《백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고 줴쳤는가 하면 2010년 11월 23일과 12월 23일 괴뢰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소와 최전방 괴뢰군부대에 가서는 《교전규칙을 뛰여넘는 대응을 해야 한다.》, 《대반격을 가해야 한다.》,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것이다.》, 《북쪽을 향해 눈을 부릅떠야 한다.》 등의 극악한 망발도 마구 내뱉았다. (《KBS》 2010. 5. 24, 《아시아경제》 2010. 6. 9, 《련합뉴스》 2010. 11. 23, 《뉴시스》 2010. 12. 23)

역도가 얼마나 대결과 전쟁에 환장이 되였는가 하는것은 2011년 6월 24일 청와대에 괴뢰국회 국방위원회 위원들을 불러다놓고 《연평도포격때 북을 타격하지 못한것이 천추의 한이다. 울화통이 터져 정말 힘들었다.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겠다. 참을수 없다.》고 줴친데서 집중적으로 드러나고있다.(《동아일보》 2011. 6. 24)

최근 괴뢰군부패당이 감히 우리의 체제와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표적사건, 구호사건과 같은 극악무도한 도발적망동을 감행한것은 리명박역도의 이러한 망발과 악담, 훈시에 따른것으로서 그 장본인은 다름아닌 리명박역도이다.

이상의 리명박역도의 망발은 남조선언론들에 공개된것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리명박역도의 망발을 다 렬거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 남조선의 각계층은 리명박역도의 극악무도한 반통일대결망발을 두고 《대통령의 혀가 국민전체를 참화속에 빠뜨리고있다.》, 《리명박의 대북정책은 독사의 정책》, 《리명박은 입닥치고 살아라.》 등으로 치솟는 격분에 넘쳐 단죄하고있다. (《민중의 소리》2008. 11. 29, 《경향신문》 2010. 5. 25, 《통일뉴스》 2011. 5. 12)

매국역적 리명박역도의 극악한 만고대역죄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을것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온 민족과 함께 역적패당을 기어이 심판하고야말것이다.

 

주체100(2011)년 7월 6일

조국통일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