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3)

-재미교포 김상일-
 

콧대높은 나라 미국이 유일하게 사과하고 무릎 꿇는 대상이 바로 북이다.

「푸에블러」호 사건 때 죤슨 대통령이 북에 사과하고 승무원들이 무릎 꿇는 모습들을 보았을 것이다.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때도 경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국제정치상식으로 이해 못할 일이다.

북이 강대국의 코를 끌고 다니고 지금도 건재할 수 있는 비결을 나는 지도자의 지도력 때문이라고 본다.

그 한 단면을 김일성사령관이 최용빈이 변절자가 되어 앞에 나타났을 때 그의 위장전술(오그랑수)을 간파한데서 엿볼 수 있다고 본다. 「오그랑수」란 「꼼수」혹은 「속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보화시대는 과거 소박하던 때와는 다른 가상공간속에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아직 너무나도 농경사회 혹은 굴뚝산업화시대의 의식구조를 가지고 정보화시대에 임하고 있다. 그러다가 당한 것이 바로 IMF이다. 마치 호랑이가 어머니한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할 때에 말은 『안 잡아먹는다』이지만 말귀는 『잡아먹는다』이다.

최용빈의 사례를 통해 「아는 것을 알지 못한」사례를 하나 생각해보기로 하자. 최용빈은 힘이 장사이고 한다하는 싸움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자 처자식을 버리고 일본의 적통치지구로 내려가 버린다.

최용빈은 그후 5년이 지나 김일성사령관유격대를 다시 찾아온다. 그는 사령부천막에 들어서자 마자 곤두박질을 치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최용빈은 유격대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산중에서 고생하던 얘기를 묻지도 않는데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제부터 그의 언행에서는 그가 「아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드디어 그가 밀정이라는 정체가 밝혀진다.

김일성사령관이 식사를 했는가고 묻자 그는 요 아래에서 밥을 끓여먹고 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산중에서 혼자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보여주려는 듯 배낭속에서 쌀자루, 말린 가재미, 술을 꺼내놓는다.

그런데 유격대를 찾느라고 산중을 오래 헤맸다는 사람의 쟁개비가 그을음 하나 묻지 않고 새 것대로 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최용빈은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을 알고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최용빈은 내가 자기를 어떻게 본다는 것도 모르고 고뿌에 술을 가득 붓고 나서 다시 만난 기념으로 마시자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 청을 거절하자 그는 갑자기 술고뿌를 쥔 손을 덜덜 떨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노기에 차있었으니까 아마 자기 정체가 다 드러났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8권 64페지)

우리는 종종 철없는 아이들에게서 이런 사례를 발견하군 한다.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 있는데 자기자신만은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어른들이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오그랑수」라 한다.

최용빈은 「토벌대」3개 부대로 유격대가 있는 골안을 포위해놓고 이렇게 나타나 오그랑수를 쓰다 정체가 들통이 난 것이다.

이러한 포위망 속에서 오그랑수의 속셈을 간파해야 아니,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지도자만이 자신과 자신이 이끌어가는 대중을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만약 김일성사령관이 최용빈의 수에 속아넘어갔다면 그 순간 일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토벌대」3개 부대라면 유격대의 수에 비교해 적지 않은 수였다. 용기만으로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장보다 지장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불패의 신화를 남긴 이유도 다름 아닌 일본의 오그랑수를 먼저 간파하고 더 높은 수로 대처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균은 일본의 오그랑수에 빠져 넘어가 칠천량전투에서 수천명의 군사를 몰살시키고 자기도 죽고 말았다. 이순신이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불구하고 원균은 대군을 이끌고 일본이 파놓은 함정 속에 스스로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중국 퉁화성일대와 랑림산맥의 호랑이라 불리던 양세봉 사령도 밀정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눈치를 채지 못해 죽었다.

해방후 김구 선생도 밀정 안두희의 손에 죽었다. 안두희가 찾아왔을 때에 김구 선생은 처음부터 그의 언행을 수상하게 여겼어야 할 것이다. 그의 눈치를 살피고 말귀를 알아들었어야 할 것이다. 실로 눈치와 말귀는 핵 폭탄보다 큰 힘을 갖는다. 남을 믿는 덕 하나만으로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영웅의 3가지 조건가운데 「꾀」란 바로 말귀를 알아듣고 눈치를 파악하는 힘이다. 그런데 덕이 없는 꾀란 잔꾀가 되고 이를 오그랑수라 한다. 꾀가 없는 덕은 썩은 고목이다.

정체가 드러난 최용빈은 이제 김일성사령관을 회유, 설득하기 시작했다. 만저우 천지는 일본군대가 쫙 깔려 있다, 김장군은 할만큼 다했다, 당장 귀순한다 해도 허물을 묻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산에서 내려오면 지린성 성장자리를 주겠다고 하더라고 주어섬기었다.

이를 두고 김일성주석님은 『사람이 자기만을 생각하면 결국 이렇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김일성주석님은 높은 의식수준이 결코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도 아니고 타고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중 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민중보다 현명하고 똑똑함은 없다는 것이 김일성주석님의 민중관이고 철학이었다. 철두철미 민중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혜를 구했던 것이다.

사대주의와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자들만이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속임수에 그대로 속아넘어갔다. 민중이 현명한 이유는 지능지수가 높아서도 아니고 똑똑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들이 가진 것이 없는 사심없는 마음 때문이다.

김일성주석님은 이런 마음을 애국, 애족, 애민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