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민전 대변인 9.24 논평
 

오늘 우리 민중은 경향각지에서 반미, 반보수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고 있는 시기에 9월 총파업 65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으로 부터 65년전인 1946년 9월 15일, 당시 철도노동자들은 미군정에 폭압중지와 민주주의 노동법령의 실시, 양곡분배와 임금인상등의 요구조건을 제기하고 1주일안으로 관철되지 않을 때에는 총 파업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여 그들을 탄압해 나섰다.

이에 격분한 7,000여명의 부산지구 노동자들은 일제히 파업에 들어갔다. 24일에는 서울지구 1만 5,000여명의 철도노동자들과 대전, 안동, 대구, 인천, 목포, 수원, 리리 등지의 8,000여명의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에 합세하였다.

그들은 총파업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선언서를 발표하여 투쟁의 목적을 밝히고 각계층이 여기에 합류해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총 파업은 순식간에 이남전역에 파급되었다.

9월 25일부터는 출판, 체신, 식료, 전기, 토건, 해운 등 각지 산업부문 30여만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투쟁의 불길은 학교, 병원, 은행 등에까지 파급되어 학생, 교사 ,공무원, 시민들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합세하게 되었다.

파업은 서울, 대구, 부산, 광주, 인천, 대전 등 주요 도시들과 지방의 60여개 군을 휩쓸었으며 미국의 식민지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질겁한 미군과 파쇼경찰은 총칼로 파업을 탄압하여 나섰다.

격분한 파업참가자들은 경향각지에서 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렸으며 10월에는 9월 총 파업이 전 민중적인 반미구국항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9월 총 파업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미국의 식민지통치지반을 밑뿌리채 뒤흔들어 놓았으며 이남의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의 혁명성과 그 위력을 크게 시위한 것으로 하여 오늘도 전해지고 있다.

9월 총 파업이 있은 때로부터 65년이 되어오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민중은 미국의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은 그때보다 더한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 땅에 침략의 발을 들이민 순간부터 각계 인사들과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한 미국은 오늘도 피비린 살육을 거리낌없이 자행하고 있다.

광주민중봉기를 총칼로 탄압하도록 배후조종한 것도 미국이며 길가던 중학생들을 장갑차로 깔아 죽인 당사자도 미국이다.

서울과 대전, 평택, 경기도 등 경향각지 그 어디에 가나 이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면서 온갖 범죄를 감행하고 있는 미군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그칠새 없이 울려 나오고 있다.

미군에 의해 삼천리강토는 황폐화되고 이 땅은 핵 전쟁의 전초기지로 전락되었다.

더욱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침략자 미국을 할애비로 섬기면서 그에 적극 동조하는 보수당국의 반 민족적, 반민중적인 처사이다.

저들의 집권야욕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서슴치 않는 보수당국은 민중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미친쇠고기를 이 땅에 끌어들이고 미국과 함께 동족을 겨낭한 침략전쟁연습을 매일과 같이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다.

상전의 요구대로 막대한 국민혈세를 미국제 무기구입에 탕진하고 주한미군의 기지 이전비용까지 부담하다보니 민생은 더욱 더 도탄에 빠지고 있다.

특히 고엽제매립을 비롯하여 미국이 이 땅에서 감행한 범죄의 진상을 까밝히고 사죄와 응분의 대가를 받아내야 하겠으나 오히려 「한미동맹」을 역설하면서 덮어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존권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청년학생들의 시위는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사태가 그것을 그대로 입증해 주고 있다.

현실은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보수당국이 있는 한 우리노동자들의 생활은 절대로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일치단결하여 반미, 반보수투쟁을 힘있게 벌여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근로민중이 주인된 새 사회창출로 65년전 9월 총 파업 노동자들의 꿈을 성취해야 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