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남 동포들을 잊지 않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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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이남동포들도 관람하도록 하시어 「아리랑」이 우리 민족끼리시대를 구가하는 노래, 민족이 함께 부르는 「통일아리랑」으로 되도록 하신데도 깃들어있다.

2005년 가을 평양에서 대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성황리에 열리었다.

조선노동당창건 60돌과 조국해방 60돌을 맞으며 또다시 개막된 「아리랑」공연은 날이 갈 수록 더욱 고조되었다.

이북의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리랑」공연을 보려고 기차와 버스, 자동차를 타고 평양으로 달려왔다.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풍치수려한 대동강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5월1일 경기장은 「아리랑」공연관람객들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로 이러한 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도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게 하기 위해 마음쓰고 계시었다.

전선시찰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이남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번에 제16차 남북상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왔던 남측당국대표단 성원들이 「아리랑」공연을 다 보고 갔고 남측 통일부 장관도 「아리랑」공연을 보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한 것만큼 다 데려다 보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오면 우리가 대우를 잘해주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하루밤 재워서 보내면 다 좋아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6.15자주통일시대가 열린 때로부터 적지 않은 이남동포들이 평양을 다녀갔지만 짧은 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인 예는 일찍이 없었다. 더욱이 공연관람을 위해 대규모집단이 들어온 일은 더욱 없었다.

이것은 「아리랑」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이남민중의 절절한 소망을 헤아려보신 민족의 어버이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이었으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구상하실 수 있는 민족사적인 사변이었다.

이남동포들의 「아리랑」관람길을 열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사업이 잘 진행되도록 깊이 관심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남동포들의 「아리랑」공연관람단을 「평양참관단」으로 부르도록 해주시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통로와 체류기일, 참관장소도 확정해주시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평양에 오는 이남동포들을 숙식시키기로 했던 양각도 국제호텔에 조선노동당창건 60돌 경축행사에 참가하게 될 국내대표들을 들이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였다.

해당 부문의 일꾼들은 이남 관람자들을 초청하는 사업을 주관하던 남측의 여러 단체들에 숙소관계로 10월 5일경부터 12일까지는 「아리랑」공연관람이 어려울 것 같으므로 평양참관단 일정을 조절해줄 것을 통지했다.

하지만 남측성원들은 당창건 60돌 경축행사기간에 평양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하면서 양각도국제호텔 1개 방에 4명이나 6명이 들어도 좋고 복도를 침실로 해서 한개 층에 수 십명씩 숙식하거나 5월1일 경기장에서 천막을 치고 자도 좋다고 하면서 평양참관을 계속하도록 해 달라고 거듭 간청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양각도 국제호텔에 들기로 예정되었던 조선노동당창건 60돌 경축행사 국내대표들을 모두 다른 여관에 옮기고 양각도 국제호텔 뿐 아니라 다른 호텔도 통째로 남측참관단이 이용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언제나 남녘겨레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그분의 뜨거운 동포애에 일꾼들은 물론 이남동포들도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관심과 은정어린 조치에 의해서 이남동포들의 「아리랑」관람조직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었으며 2005년 9월 26일부터 하루에 수백명의 이남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1박2일간에 걸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여러곳을 참관하게 되었다.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 경기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열기로 끓어 번졌다.

이북민중들이 『우리는-』 하고 구호를 외치면 이남동포들은 『하나다!』 라고 화답하고 뒤이어 또다시 『조국-』 하면 『통일』 하고 화답해 나섰다.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울며 웃으며 손을 맞잡는 광경은 우리 민족의 통일염원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온 세상에 과시하는 격동적인 모습들이었다.

「아리랑」공연을 관람한 경남대학교의 한 교수는『김정일영수님께서는 〈아리랑〉공연을 펼치시어 지난날 눈물의 〈아리랑〉을 부르며 흩어져갔던 동포들이 〈강성부흥아리랑〉을 부르며 그리운 조국으로 모여오게 하는 민족의 〈대잔치〉를 차려주시었다.

우리들은 공연을 보며 겨레의 가슴에 대대로 간직된 〈아리랑〉의 노래로 민족의 넋을 정화시켜 주시고 민족분열의 비애를 민족통일의 열망으로 승화시켜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태양의 품에 온 넋을 맡기고 심장의 박동을 맞추었다.

온 겨레가 흠모하며 따르고 인류가 칭송해마지 않는 21세기의 태양 김정일영수님을 모시어 태양민족의 존엄과 영예는 온 세상에 더욱 높이 떨쳐질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그것은 온 이남민중이 터치는 심장의 외침이었다.

2005년 10월 「아리랑」축전기간에는 평양산원에서 분열 60년이래 처음으로 남쪽 아기가 태어나는 반갑고도 희한한 일이 생겨나 온 겨레를 기쁘게 하였다.

10월 10일 저녁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로 1998년에 평양을 방문한바 있는 황선(「통일연대」대변인)여성은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던 도중 갑자기 오는 진통으로 하여 평양산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원래 그는 해산예정일이 이미 지난 몸이었다. 그랬음에도 그는 시어머니와 함께 「아리랑」공연 관람길에 올랐다.

그는 입원한지 1시간도 못되어 밤 10시에 귀여운 옥동녀를 순산하였다.

이렇게 그는 이남민중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평양산원에서 통일동이를 낳게 되었다.

황선 여성은 입원해있는 기간 무상치료제 혜택으로 산후치료는 물론 종합적인 치료와 함께 모든 산모들과 꼭같이 산꿀과 귀중한 보약제, 영양제들을 공급받았다.

그리하여 산모의 건강상태와 아기의 발육상태는 대단히 좋아졌다.

황선 여성이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게 되었을 때였다.

그가 비행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보고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갓난 애기가 비행기동음에 놀랄 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불편할 수 있으므로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가게 하되 차를 천천히 몰아 산모와 애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라고 사려 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었다.

해당 일꾼으로부터 장군님의 육친적인 사랑의 소식을 전달받은 황선 여성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친부모의 사랑인들 이보다 더 다심할 수 있으랴!

그는 평양산원 의료일꾼들의 뜨거운 환송 속에 산원문을 나섰으며 복받은 옥동녀를 안고 판문점으로 당당히 나갔다.

그후 황선 부부는 우리 겨레는 하나라는 뜻에서 아기에게 『윤겨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렇듯 이남 동포들에게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어느 특정한 개별적인 인물이나 계층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남녘겨레 모두에게 베풀어지는 사랑과 은정이다.

그 사랑, 그 은정 속에 오늘도 이 땅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민족사랑, 겨레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꽃펴나고 있으며 장군님을 민족대단결의 중심으로 끝없이 흠모하고 따르고 있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민족사랑의 정치로 이남민중의 운명도 미래도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