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입]

'납북’으로 둔갑한 ‘통영의 딸’과 반북모략

- <사람일보>에 실린 글 -

북에 살고 있다는 이른 바 ‘통영의 딸’ 신숙자 씨 구출활동이 가관이다. 국토대장정, 100만 엽서 청원운동, 미국 순회 활동 등을 펼치더니 급기야 유엔 북인권 특별보고관까지 나섰다. 남편 오길남 씨의 근거 없는 증언으로 일파 만파로 확산되는 꼴이 갈수록 태산이다.

1985년 신숙자 씨 가족의 입북은 남편 오길남 씨의 주장대로 납북이 아니라 자진 입북이라는 것이 유럽동포들 사이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특히 오길남 씨에게 입북을 권유했다는 누명을 받고 있는 윤이상 선생이 당시 서독의 ‘한인회보’에 공개한 자필 기고문을 통해 확인됐다. 더불어 오길남 씨와 관련이 있는 유럽동포가 인터넷에 올린 글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윤이상 선생 기고문과 유럽동포의 글에 의하면 오길남 씨는 당시 병을 앓고 있던 부인 신숙자 씨 문제, 그리고 서독에서 민주화운동을 한 경력(민주사회 건설협의회<민건회>) 등으로 어려움에 빠지자 자진 입북했다.

오 씨는 북에서 차관 대우를 받으며 활동하다가 그곳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부인 등을 남겨둔 채 혼자 재망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 씨는 이후 6개월 간 미국과 독일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 윤이상 선생을 통해 북에 남겨 놓은 부인과 딸을 데려오려고 했으나, 결국 성사가 안 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되는 부분은 1991년 1월 윤이상 선생이 북에서 가족의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와 사진 등 가족 소식을 가져와 오 씨에게 전해줬으나, 오 씨의 반응이 전혀 시큰둥했던 사실이다. 윤 선생은 기고문에서 “그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아내의 간절하고 확실한 소리, 두 딸 아이의 간절한 목소리를 듣고도 태연하였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보고 ‘왜 아이들이 못 났는가...’하면서 히히적 거렸다....그는 ‘이제 가족 찾는 것을 단념하였습니다’고 잘라 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윤이상 선생은 또 “나는 그 자리에서 호통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며 쫓아내다시피 하였다”며 “이상의 글은 나의 속임 없는 진실의 전부이며 남한 정보기관이 나에게 책임을 돌린 사항들(입북 권유와 재입북 강요, 오길남에 대한 협박 등) 따위는 전적으로 정치공작”이라고 강조했다.

오길남 씨 주장에 신뢰성이 없는 것은 재미동포 안용구 씨의 반박에서도 드러났다. 안용구 씨는, 지난 9월 오 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1985년 당시 윤이상 선생과 함께 입북을 권유한 인물로 지목한 재미동포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안 씨는 최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오길남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며, 내가 오 씨에게 북한행을 권유했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날조”라고 밝혔다. 안 씨는 이어 “예전에는 윤이상이 북한행을 강권했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왜 나까지 언급하는지 모르겠다”며 “오 씨가 월북한 1985년 이전에는 독일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오길남 씨와 반북 단체들의 호들갑에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고향 경남 통영의 문화계도 반발하고 나섰다.

‘윤이상 선생을 생각하는 통영예술인 일동’은 지난 8월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윤이상과 오길남·신숙자 부부의 월북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오길남 가족의 헤어짐은 오길남의 월북으로 인해 기인한 것이지 결코 윤이상 선생의 탓이 아니다. 선생의 월북 권고에 대한 증거는 없으며 이는 일방적인 매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통영의 딸’ 구출이라는 미명 아래 펼쳐지는 수구언론과 반북단체들의 호들갑이 도를 넘고 있다. 근거 없는 주장에 편승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벌이고 있는 무책임한 행동이 망신을 살까 우려된다. 반북 모략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근거 없는 ‘북 인권’과 ‘납북자’ 문제의 전형을 다시금 보고 있다.

(2011.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