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59)
 

민주주의 본질, 코뮌주의 이상, 사회주의 미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민주주의 본질을 재해석한다

역사적 견지에서 바라보면, 이 땅에서 추진되던 공화국 건설이 일제의 식민지강점과 미국의 분할지배로 좌절되고 100년 동안 지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의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이 땅에서 100년 동안 그 건설이 지체되고 있는 공화국이란 민주주의를 실현한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분할지배를 청산한 통일공화국이다. 현 시기 이 땅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회역사발전과정에서 민주공화국과 통일공화국은 그래서 동의어다.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화국 건설과업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 이 땅의 헌법에 민주공화국이 명시되었지만, 그것은 헌법조항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이 아니다. 민주공화국 건설은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

민주공화국 건설이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본질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였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한반도 분할지배를 청산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수구세력들은 그 무슨 '자유민주주의'를 자꾸 떠들지만, 그렇게 떠드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 뭔지 모르는 무지의 노출이며, 자기들의 반민주적 정체를 감추려는 위선과 위장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민주주의가 실현하는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라는 가치를 실현할 뿐 아니라, 평등이라는 가치도 실현한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민주공화국 건설을 완성하면,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가 함께 실현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인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듣기에 따라서는 좀 진부한 느낌을 주지만, 100년 동안 지체되고 있는 민주공화국 건설과업을 수행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그 양대 가치를 해방이라는 사회정치적 개념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해방이라는 사회정치적 개념으로 재해석한 자유란 '제멋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기'가 아니라, 낡은 사회체제가 강요한 억압과 소외에서 벗어난 해방이다. 또한 평등이란 사회적 획일화가 아니라, 낡은 사회체제가 강요한 차별과 착취에서 벗어난 해방이다.
 
억압과 소외를 강요하는 낡은 사회체제에서 민중이 자신을 해방하여 자유를 실현하고, 차별과 착취를 강요하는 낡은 사회체제에서 자신을 해방하여 평등을 실현한 공화국, 그런 나라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가 실현된 진보적 민주공화국이다.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의 완성태가 바로 사회주의이며,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진보적 민주공화국의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자유를 실현하였으나 평등은 실현하지 못했고, 사회주의는 평등을 실현하였으나 자유는 실현하지 못했다는 말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에 대해 무지한, 이치에 맞지 않는 허튼 소리다.

이 땅의 사회변혁운동이 실현하려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를 아직 완성하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의 완성에 근접한 발전단계의 민주주의,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행단계의 민주주의다.

이 땅의 사회변혁운동이 진보적 민주주의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을 제시하고, 그 양대 강령을 구현할 정치주체인 통합진보당을 건설한 것은, 100년 동안 지체되고 있는 민주공화국 건설과업을 수행하는 정치적, 조직적 태세를 이제야 비로소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우리식 두 단계 사회변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허균, 맑스, 엥겔스, 까베

변혁과 진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현실로 바꾸는 투쟁이며 운동이므로, 미래를 그려보는 정치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과학적 변혁사상과 정치적 상상력을 합성하여 변혁과 진보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억압과 소외, 차별과 착취를 강요하는 낡은 세상을 등지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미래사회를 그렸던 동서고금의 사상가들과 문필가들의 발자취가 인류역사에 남아있다.

우리 역사를 읽어보면, 호민론을 주장하며 진보정치활동을 펼친 허균(1569-1618)의 발자취가 돋보인다. 그가 후세에 남긴 명작 '홍길동전'은 봉건체제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싸우던 홍길동이 노비인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나는데, 그가 찾아가는 새로운 세상이 바로 율도국이다.

당대의 뛰어난 진보적 사상가이며 문필가이며 정치활동가였던 허균은 결국 봉건수구세력에게 체포되어 49살에 능지처참형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가 400여 년 전에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렸던 미래사회 율도국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고, 사회주의 이상을 향한 영감을 후대에 안겨주었다.
  
서양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고전사상가를 손꼽으면, 칼 맑스(1818-1883)와 프리드릭 엥겔스(1820-1895)가 있다. 칼 맑스는 1871년에 쓴 저서 '프랑스 내전'에서 자본가계급의 억압적 통치체제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민주적 통치체제로 인류역사에 처음 등장한 파리코뮌(Paris Commune)을 미래 이상사회의 정치체제로 생각하였다.

그가 파리코뮌에서 얻은 정치적 상상력은 계급사회의 몰락과 함께 국가도 불가피하게 조락할 것이라고 예견한 '국가조락설'을 제기하였다. 칼 맑스가 파리코뮌에서 정치적 상상력을 얻었던 때로부터 13년이 지난 1884년 그의 사상적 동지였던 프리드릭 엥겔스는 자신의 저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서문에서 "사회계급과 함께 국가가 불가피하게 무너질 때,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연합체의 기반 위에서 생산을 재조직할 사회"가 출현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 두 고전사상가는 사회계급이 철폐되고 국가가 조락하면서 출현하는,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연합체가 조직하는 미래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계급철폐와 국가조락을 전제한,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 공동체를 상상하는 그들의 사상을 코뮌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코뮌주의 이상을 설파하였지만, 그들이 설파한 코뮌주의 이상은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한계와 그들 자신의 사상적 제한성 때문에 그들은 코뮌주의 이상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추상화처럼 그려놓았다. 추상화된 코뮌주의 이상을 과학적으로 설계하려는 사상이론적 노력이 그들의 사후에 끊임없이 뒤따랐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억압과 소외, 차별과 착취를 강요하는 낡은 세상을 등지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실천가들이 나타나 코뮌주의 이상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썼다. 그렇게 애쓴 동서고금 실천가들 가운데 두 사람을 손꼽으면, 프랑스의 코뮌주의 사회운동가였던 에띠엔느 까베(Etienne Cabet, 1788-1856)와 남미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대통령 우고 챠베스(Hugo Chavez)가 있다.
 
에띠엔느 까베는 자신과 뜻을 같이한 코뮌주의 동료 69명을 이끌고 1848년에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코뮌건설의 힘겨운 노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 뉴올리언즈에 상륙한 그들은 텍사스를 거쳐 미시시피강변에 있는 일리노이주 나우부에 정착하였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1850년대에 그곳에서 코뮌건설에 성공하였으니, 그들이 미국땅에 건설한 코뮌을 아이캐리언 공동체(Icarian Community)라 부른다.

당시 그 코뮌에서는 505세대가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캐리언 공동체는 재정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로 다시 이주하였으나 결국 재정파산을 당했으며, 때마침 미국에서 일어난 내전(남북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바람에 1898년에 와해되었다. 미국에 건설되었던 코뮌의 수명은 50년이었다.

진보적 민주공화국에 건설된 사회주의 코뮌

2011년 8월 17일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코뮌은 186개다. 세계 각국에 산재한 코뮌들은 종류와 형태가 매우 다채롭지만, 공동노동과 공동소유, 공동의사 결정과 상하위계 축소, 가사 및 육아 공동책임과 양성평등, 생태환경 보전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현존하는 코뮌들은 낡은 사회체제를 바꾸려는 변혁운동을 외면하고 낡은 사회체제 안에서 자기들끼리 폐쇄적인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맑스와 엥겔스가 꿈꾸었고, 까베가 실천에 옮겼던 코뮌주의 이상은 비좁은 폐쇄공간에 들어앉아 왜소화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초에 이르러 코뮌주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민주공화국이 출현하였으니, 그 나라가 바로 베네주엘라다. 베네주엘라에 사회주의 코뮌(socialist commune)이 건설된 것이다.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 코뮌이 맑스와 엥겔스가 상상하고, 까베가 시도하였던 이상주의 코뮌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코뮌주의 이상을 사회주의 미래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 현실과 코뮌주의 이상을 결합하여 사회주의 미래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주엘라 각지에 건설된 사회주의 코뮌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의 코뮌적 완성이다.

진보적 민주공화국 안에 건설된 사회주의 코뮌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떠할까?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 코뮌은, 최대 400가구가 한 단위로 결집하여 건설되었는데, 2010년 현재 농촌코뮌 93개, 도시코뮌 65개, 도농코뮌 26개가 건설되었다. 사회주의 코뮌에 망라된 가구는 총 5,900가구다. 그 코뮌들은 총액 2,300만 달러를 투자한 706개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 코뮌은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이탈한 사회적 생산체제(social-productive system), 자급자족하는 농업생산체계, 그리고 코뮌협의회(communal council)이라 부르는 독자적 지방행정조직과 재정운영체계를 갖추었다.

베네주엘라의 코뮌건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안에 사회주의 코뮌이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진보적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여야 사회주의 코민을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베네주엘라의 코뮌건설은 진보적 민주공화국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도를 받아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추진되었다. 베네주엘라 의회는 '대중권력법(Law of Popular Power)'을 제정하여 사회주의 코뮌의 행정기관인 코뮌협의회에 더 많은 자치권을 이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11년 12월 1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