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67)

 
오늘의 협동조합운동과 내일의 진보적 국가체제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협동조합기본법 제정과 협동조합운동의 명암
 
2011년 12월 29일 국회가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이 법을 발의하였는데, 한나라당도 반대하지 않아 순조롭게 제정되었다. 협동조합이란 기업체의 협동적 소유와 기업활동의 민주적 통제를 실현한 생산자들의 연합체인데, 한나라당이 그런 협동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전향적 태도'를 취한 것은 이례적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깔려있는 듯하다.
 
첫째, 이제껏 농업협동조합과 신용협동조합 운영경험에서 입증된 것처럼, 새누리당은 협동조합쯤은 얼마든지 시장경제의 장악력으로 통제, 관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에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 유엔은 올해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하였다. 세계적 범위에서 발생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전반적 파산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몸부림이 유엔에도 영향을 미쳐 협동조합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 땅의 정치권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국회의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분석적으로 고찰하고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의미의 협동조합운동은 1844년 12월 21일 영국의 로취데일에서 소비조합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소비자들이 단합하여 상점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거기에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파는 협동상점을 개설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만에 영국에서는 근 1,000여 개의 소비조합이 생겨났다.
 
그런 소비조합운동을 바탕으로 1895년에 결성된 것이 국제협동조합련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는 이 연맹에는 현재 세계 각국의 248개 전국적 범위의 협동조합들이 가입하였다. 이 연맹은 1923년에 7월 첫째 토요일을 '국제협동조합의 날'로 정하였다. 유엔은 이 연맹 창설 100주년을 맞았던 1995년에 7월 첫째 토요일을 '국제협동조합의 날'로 정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협동조합운동은 사회민주주의와 친화성을 갖는다. 협동조합운동이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새로운 경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개선하여 '착한 자본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상호친화성을 공유한다.
 
협동조합운동이 특정한 경제단위 안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개선하려는 운동이라면, 사회민주주의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개선하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협동조합운동은 특정기업경제를 개선할 수는 있어도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개선하지는 못한다. 자본주의시장경제는 개선이 불가능한 경제체제다. 불치의 병에 걸린 중환자에게 목숨은 붙어 있으되 생존할 가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자본주의시장경제도 전반적 파산위기 속에서 연명하고 있으되 존속할 가망은 보이지 않는다.
 
병상에 누워 인공호흡기를 끼고 숨을 쉬는 중환자, 바로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몰골이다. 명백하게도,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대안경제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지, 개선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존속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는데도, 세상은 자본주의시장경제 이후의 새로운 대안경제에 대해 너무 무심하다. 수구세력이 조장한 오해와 무지 때문에 그처럼 무심하게 된 측면도 있지만, 진보세력의 사상이론적 한계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있다.
 
서유럽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자유주의 사상이 자본주의시장경제 이후의 새로운 대안경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결정적으로 제약하였다. 새로운 대안경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 그처럼 제약당했으니,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대체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경제로 대체할 가능성을 전망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개선하려는 사회적 운동이 바로 협동조합운동이다.
 
협동조합운동은 기업활동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거부하고 조합원들끼리 자율적으로 기업활동을 통제하려는 자유주의 사상전통에 뿌리를 둔 것이다. 자유주의 시각으로 보면, 기업활동에 대한 국가적 통제는 곧 관료적 억압이고, 자기들끼리 기업활동을 통제하는 것은 곧 협동적 자율이다.
 
이처럼 국가적 통제를 거부하고 협동적 자율을 주장한 서유럽의 자유주의 전통은, 국제협동조합련맹이 규정한 협동조합의 기본성격에도 녹아 있다. 그 규정에 따르면, 협동조합이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기업을 통해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요구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합한 자율적인 연합체(autonomous association)"다.
 
그런데 이 인용문을 읽고 보니, 이전에 어디서 읽어본 듯이 눈에 익다.
 
국제협동조합련맹의 협동조합 성격규정은, 1881년에 출판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고전에서 프레드릭 엥겔스가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연합체의 기초 위에서 생산을 재조직한다"고 쓴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엥겔스의 책에 나오는 문제의 서술부분은 이런 문장으로 씌여 있다. "사회계급과 함께 국가도 불가피하게 조락할 것이다.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연합체의 기초 위에서 생산을 재조직할 사회는, 그것이 속할 국가기구 전체를 유물전시관으로 보내서 청동도끼와 물레 옆에 놓아둘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엥겔스는 국가조락 또는 국가기구 철폐가 사회계급관계 폐절와 함께 불가피할 것이고, 국가기구가 생산협동조합으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엥겔스의 생산협동조합 전망과 국제협동조합련맹 창설이 상호연관되었음을 밝혀줄 역사기록을 찾아내기는 힘들지만, 엥겔스가 생산협동조합을 전망한 때로부터 11년 뒤에 국제협동조합련맹이 창설된 것은 양자의 상호연관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나 패역하고 압제적인 자본주의국가기구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으로 장차 대체될 것이라는 엥겔스의 전망은 오류로 판명되었다. 그의 사상전개에서 그런 오류가 생긴 까닭은, 사회계급관계 폐절 이후에 출현할 새로운 국가체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회계급관계 페절 이후에 출현할 새로운 국가체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그가 국가적 통제 자체를 거부하는 자유주의 사상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 사상이 새로운 국가체제에 대한 엥겔스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약하였던 것이다
 
퇴색한 생산협동조합 발전전망
 
19세기 말엽에 엥겔스가 전망한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은, 사회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는 진보적 인류에게 강렬한 정치적 상상력을 공급하였지만, 그가 종내 벗어나지 못한 자유주의 사상전통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의 발전전망을 퇴색시켰다. 세 가지 점에서 퇴색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이 사회계급관계 폐절 이후에 출현할 새로운 진보적 국가체제와 상호모순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오였다. 사회계급관계가 폐절되면, 생산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그에 따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을 결성하게 되는데, 그러한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화에 조응, 부합하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 위에 새로운 국가체제가 성립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생산관계와 진보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국가체제는 결코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낡은 생산관계를 청산하면, 당연히 낡은 국가체제도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낡은 국가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체제가 출현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새로운 생산관계를 꿈꾸는 정치적 상상력을 키워가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그 관계 위에 성립될 새로운 국가체제를 꿈꾸는 정치적 상상력을 키워갈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계급관계가 폐절되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을 자발적으로 결성할 것이라고 상상한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이었다. 경험은 그런 성급한 결론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었음을 입증하였다.
 
이를테면, 사회계급관계가 폐절되기는커녕 사회계급적 모순이 더 격화된 사회에서도 협동조합이 결성될 수 있다. 예컨대, 지금 미국에는 29,000여 개 협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데, 200만 명이 가입되었고, 그 협동조합들의 연간 총재정규모는 6,520억 달러에 이른다.
 
그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만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진보의식화되지 못하였으면, 다시 말해 사회계급관계가 폐절되었는데도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을 자발적으로 결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계급관계 폐절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 결성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회계급관계 폐절과 함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의식화가 동반되어야 그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을 자발적으로 결성할 수 있다.
 
셋째, 사회계급관계 폐절 이후에 출현할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은, 사회계급관계 폐절 이후에 출현할 진보적 국가체제 안에서 지속적으로 공고화되고 전면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회계급관계가 존재하는 낡은 국가체제에서도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이 결성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실험적 의의만을 가질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은 사회계급관계가 폐절된 진보적 국가체제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과 진보적 국가체제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호불가결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과 진보적 국가체제가 상호불가결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기업체의 전사회적 소유 곧 국유화를 실현하였을 때, 그 때 비로소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을 전사회적으로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계급관계 폐절 이후에 출현할 진보적 국가기구는 기업체의 전사회적 소유를 실현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의식화를 추동함으로써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을 전사회적으로 완성하는 길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이끌어 간다. 국유화를 실현하지 못한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실패할 위험이 큰 실험일 뿐이다.
 
진보적 국가체제를 향한 정치적 상상
 
협동조합운동은 기업체의 전사회적 소유와 기업활동에 대한 국가적 경리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체의 협동적 소유와 기업활동에 대한 협동적 경리에 기초한다. 조합원들의 기업체 공동소유와 기업활동에 대한 협동조합의 민주적 통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기업체의 공동소유와 기업활동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왜 기업별로만 가능하고, 전사회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까닭은, 국유화와 계획경제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무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를 국유화하고, 시장경제를 계획경제로 대체하는 경우, 협동조합운동이 추진하는 기업체의 공동소유와 기업활동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기업의 벽을 뛰어넘어 전사회적으로 확대, 실현될 것이다.
 
조합원들의 기업체 공동소유와 기업활동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조절하고 지도할 관리위원회가 기업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기업체의 전사회적 소유와 기업활동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전사회적 조절하고 지도할 진보적 국가기구가 국가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자율적 관리위원회를 요구하면서도, 진보적 국가기구를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진보적 국가체제의 출현은, 자유주의 사상전통에서 착각하는 기업활동에 대한 성가신 국가개입이 아니며, 기업활동에 대한 관료적 억압은 더욱 아니다. 진보적 국가체제는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 위에 성립한 새로운 기업과 그 활동의 안전을 제국주의깡패국가의 침탈로부터 보호할 것이며, 새로운 기업활동을 지속적인 혁신과 발전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엥겔스가 살았던 19세기 말엽에는 생산활동이 아주 단순해서 생산협동조합이 생산활동을 이끌어 갈 수 있었지만, 오늘날 너무 복잡하고 방대해진 기업활동을 생산협동조합이 단독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를테면 주요산업부문의 거대기업에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이 결성된다 해도, 그런 거대기업이 요구하는 막대한 자본조달은 생산협동조합의 처리능력범위를 벗어난다. 또한 주요산업부문의 거대기업에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협동조합이 결성된다 해도, 그런 거대기업이 요구하는 첨단기술개발은 생산협동조합의 제한된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엥겔스가 살았던 19세기 말엽에는 막대한 자본조달과 첨단기술개발을 요구하는 거대기업이 없었으므로 생산활동을 생산협동조합에서 이끌어가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매우 복잡해지고 방대해진 기업활동을 전사회적으로 조절하는  임무, 그런 기업활동이 요구하는 자본조달과 첨단기술개발을 추진하는 임무는 진보적 국가기구가 수행하는 것이다.  
 
사회계급관계 폐절 이후에 출현할 진보적 국가체제는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실현함으로써 기업체의 협동적 소유와 기업활동의 협동적 경리를 기업체의 전사회적 소유와 기업활동의 전사회적 통제로 완성할 것이다.
 
이것은 다음 세대가 수행해야 할 미래과업이 아니라, 머지 않아 이 땅에 세워질 자주적 진보정권이 주요산업 국유화와 민주적 통제를 실현하는 변혁과정에서 추진해야 할 과업이다. (2012년 2월 2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