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역도의 만고죄악을 고발한다

( 1 )

최근 이 땅에서는 유신독재자를 찬미하는 바람이 어지럽게 불고 있다.

유신독재자의 「치적」과 「공적」이 요란스레 유포되고 역적의 그 무슨 「넋」을 기리기 위한 『박정희기념도서관』이라는 것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속에 유신의 핏줄을 이은 박근혜가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느니 뭐니 하며 제2의 유신정권을 세울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친마바람을 일구고 있다.

『구국전선』편집국은 유신독재의 죄악의 행적을 파헤침으로써 우리 민중들, 특히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 글을 연재로 발표한다.

1. 희대의 군사파쇼독재자

박정희 도당은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후 파시스트 히틀러와 도죠도 무색케할 군사파쇼독재를 강행하여 이남천지를 철창없는 감옥으로 숨막히는 암흑지대로 전락시켰다.

박정희 역도는 우선 저들에 대한 일체 반항을 탄압하기 위하여 파쇼폭압기구들을 늘이고 새로운 악법들을 무더기로 조작함으로써 자기의 군사파쇼 통치체제를 구축하였다.

역도가 정권강탈이후 제일 먼저 조작해낸 것은 미국의 통치수법을 그대로 본따 만든 비밀정보 특무기관인 중앙정보부였다.

중앙정보부는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은 물론 국민의 일거일동까지도 감시장악하고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체 요소들을 탄압제거하였다.

중앙정보부는 수 만명의 기관성원과 수십만에 달하는 비밀정보원들을 가지고 있었는 바 이들이 각 정당, 사회단체, 출판기관, 회사, 공장, 학교, 병원, 농어촌부락, 동, 반 심지어 산중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사찰에 이르기까지 다 들어 박혀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어느 한 교수는 『중앙정보부의 삼엄한 감시와 표독한 눈초리 때문에 이 땅에서는 핏줄을 나눈 부자와 형제지간에도 서로 속셈을 털어놓고 말할 수 없으며 스승과 제자간에도 마음 놓고 회포를 풀 수 없고 이웃끼리도 서로 의심을 품게 하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박정희 역적은 그후 중앙정보부의 권한을 더욱 무제한하게 확대하여 경찰, 사법, 군내의 모든 정보수사기관을 이에 복종시킴으로써 이남판도를 거미줄처럼 엉킨 하나의 거대한 파쇼테러 폭압망으로 뒤덮었다.

역도는 이렇게 중앙정보부를 강화하는 한편 경찰기구와 인원을 대폭 증강하였다.

역적패당은 「경찰증강 4개년계획」을 세우고 경찰서와 지서, 파출소들을 확장하고 경찰인원들을 대폭 늘임으로써 해방전 전 조선강토에 늘여놓았던 일제경찰의 최고수자보다 2배 이상 되게 하였다.

이와 함께 군사파쇼 독재체제를 갖추고 이를 합법화하기 위하여 무려 4천여건에 달하는 악법을 조작 및 개악하였다.

미국의 충실한 주구 박정희 역도는 파쇼폭압의 주되는 예봉을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정의의 투쟁에 떨쳐 나선 애국자들과 민중들, 진보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데 돌렸다.

군사정변후 몇 달 사이에만도 군사파쇼독재에 항거하는 10만여명의 애국자들을 체포, 구금, 학살하였으며 특히 통일혁명당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 해방전략당 사건, 적화공작단 사건 등 수많은 사건들을 조작하고 수많은 변혁운동가들과 애국자들을 감옥과 교수대에서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이 파쇼교형리들은 변혁운동가들과 애국자들에게 전기고문, 물 고문, 참대 고문, 비행기 고문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야수적 고문을 들이댐으로써 살인마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파쇼패거리들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의 생존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 8시간 노동제와 노조결성 및 그 활동의 자유, 단체협약과 파업의 자유 등 생존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노동관계법」, 「근로기준법」, 「노동쟁의조정법」에 걸어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근로대중의 합법적 권리인 노동3권을 박탈함으로서 근로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사소한 가능성마저 봉쇄하였으며 농민들의 민주주의적 단체의 조직을 봉쇄하고 농촌각지에 4에이취구락부, 국민운동 재건청년회, 경찰행정 자문위원회 등 각종 어용단체들을 조직하여 반동사상을 고취하였으며 농민들의 투쟁을 탄압하였다.

이외에도 역도는 집단부락화와 강제철거, 주민등록법 등을 통하여서도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였다.

역도는 군대와 경찰 심지어 장갑차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수많은 청년학생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학살하였다.

박정희 역도는 1971년초 청년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대열에 중무장한 경찰 기동대와 전투경찰대를 내몰아 야수적으로 탄압하는 한편 비행기까지 띄워 최루탄을 쏘아댐으로서 학생들을 질식시키거나 중경상을 입히는 천인공노할 만행도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1972년 7월과 9월에는 서울대학교에서 900여명, 경상북도에서만도 12740명을 각각 퇴학 및 정학처분하였으며 이것도 부족하여 10월에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풀어 모든 대학을 폐쇄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박정희 일당은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는 물론 야당과 언론 출판기관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역도는 쿠데타직후 단 6일동안에만도 23개의 정당과 283개의 사회단체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놈들은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과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투쟁한 사회대중당, 사회당의 지도자들을 야수적으로 처형하는 한편 사회당사건, 혁신당사건, 교원노조사건 등 각종 사건들을 조작하고 나라의 평화통일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이 정당, 사회단체들을 해체하고 그 성원들에게 사형과 중형을 들씌웠다.

박정희 역도는 또한 혁신세력과 야당세력을 탄압할 목적으로 정치활동 정화법을 조작하여 무려 4100여명에게 정치활동을 금지시켰고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휘둘러 쿠데타 후 불과 1주일 사이에 8000여명의 개혁세력과 정치적 반대파를 검거투옥하였다.

또한 자기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언론에 대해서는 『국민총화를 저애』한다는 굴레를 씌워 탄압하면서 언론을 이른바 유신정신과 역도의 치적을 찬양하는 어용도구, 영구집권을 위한 부속물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사태에 당시 한 언론인은 『이남에는 언론이 없는 언론계와 명색뿐인 〈언론자유〉만이 존재할 따름이다』라고 개탄하였으며 한 주민은 『오늘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질식상태에 처해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바로 이것이 유신독재자가 지난 날 우리 국민들에게, 이남에 선사한 자유이고 정치이다.

각계 민중은 유신의 전철을 밟으려는 보수패당의 행태를 절대로 묵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