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79)



정파연합 파탄으로 증폭된 분당위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애초에 왜곡과 선동이 있었다

통합진보당 건설과 야권연대 실현, 이것은 지난 반 년 동안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정력적으로 수행해온 당면과업이었고, 그들이 이룩한 성과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지난 반 년 동안 어렵사리 획득하고 쟁취한 통합진보당 건설과 야권연대 실현이라는 큰 성과를 한꺼번에 잃어버릴 위험에 빠져있다.

당 안팎에서 그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온갖 행패가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이 처한 현 상황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버렸다. 당 안팎에서 분당설이 떠도는 것은 위험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준다.

당지도부를 장악하기 위한 신당권파와 구당권파의 공정한 경쟁은 어느 정당에서나 불가피한 일이므로 어느 한 쪽을 비난할 수 없지만,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는 것이 충돌과 분쟁의 촉발요인이었다.

신당권파와 구당권파가 당지도부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공정하게 경쟁했어야 정상인데, 비례대표 당내경선이 "총체적 부정선거"였다고 왜곡하면서 비례대표 당선자와 후보자 전원을 사퇴시키자는 무분별한 선동이 벌어진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분당위험에 빠뜨린 결정적 원인은 바로 그 왜곡과 선동에 있다.

만일 왜곡과 선동이라는 말이 눈에 거슬린다면, 최근에 드러난 중요한 사실을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신당권파가 언론에 공개한 부정사례를 다시 조사했더니 부정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를테면, 2012년 5월 23일 <주권방송>의 '추정 60분' 제작단이 밝힌 진상조사위원장의 사실왜곡, 그리고 5월 24일 <민중의 소리>에 실린 핵심적인 진상조사위원의 사실왜곡 등은 진상조사위원회를 장악한 신당권파가 사실을 왜곡하고 전원사퇴를 선동하였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들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이냐 개혁적 국민정당이냐

왜곡과 선동으로 뒤틀리고 꼬인 상황에서 신당권파는 구당권파 인사들에 대한 출당조치를 강행하겠다고 결정하였다. 신당권파의 출당조치로 구당권파가 당지도부에서 밀려나면, 신당권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는 것은 절차문제만 남게 될 것이다.

정파이익에 몰두한 나머지 당권에 집착하는 것은 당내 분쟁을 일으키는 부정적 요인이지만, 어느 정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고 당을 이끄는가 하는 것은 당권에 집착하는 문제와는 다른 문제다. 그 문제는 당의 정체성에 직결된 매우 중대한 문제다.
   
신당권파의 주도세력은 국민참여당 계열과 새진보통합연대 계열의 중도우파연합체인데, 특히 국민참여당 계열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국민참여당 계열의 비중이 압도적인 중도우파연합체가 당지도부를 장악하고 통합진보당을 이끌어 가면 어떻게 되는가?

보나마나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이 변화될 것이다. 당의 정체성 변화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개혁적 국민정당으로 주저앉다는 것을 뜻한다.

통합진보당이 개혁적 국민정당처럼 변모되면,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은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고, 또 다른 개혁적 국민정당인 민주통합당과의 정쟁 또는 야합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어느 정파가 통합진보당을 이끄는가 하는 것은 어느 정파가 당지도부를 장악하는가 하는 정파문제를 넘어서 진보적 대중정당이냐 개혁적 국민정당이냐, 야권연대냐 야권야합이냐를 결정하는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진보를 제거한 개혁, 변혁을 대체한 개량

당 밖에서는 수구우파가 통합진보당이 제3당이 되었으니,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개혁적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고, 사이비 진보인사들이 '진보의 재구성'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당내 행사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라, 당지도부가 현충원을 참배하라, 당의 편향적 대북관을 바로잡아라"고 하면서 자발적으로 '사상검증'을 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라고 강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수구우파와 사이비 진보인사들이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나 '진보의 재구성'이란 진보를 제거한 개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고, 변혁을 대체한 개량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개혁적 국민정당으로 변신하라고 강박하는 것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회변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뢰한들의 행패가 아닐 수 없다.

만일 통합진보당이 그들의 강박과 행패를 견디지 못해 민주통합당과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통합진보당은 존재가치와 존재의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존재가치와 존재의의를 잃어버릴 바에는 차라리 통합진보당을 자진 해산하고 민주통합당으로 집단입당하는 편이 더 좋은 게 아닐까.

통합진보당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당원들은 통합진보당을 개혁적 국민정당으로 변질시키려는 당 안팎의 불순한 기도를 배격해야 하며,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악의 분당사태를 막아야 한다

통합진보당 건설의 초석이 된 정파연합은 어느 정파가 다른 정파를 정략적으로 잠시 이용하다가,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서로 결별하는 식의 정파야합이 아니다. 그런 정파야합은 수구우파정당에 모여든 파벌들의 이합집산이다. 통합진보당은 여러 정파들이 통합하여 건설한 진보적 대중정당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통합진보당의 정파연합이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정면충돌로 깨지고 말았다. 신당권파의 구당권파 출당조치 강행은 정파연합의 완전한 파탄을 의미한다. 정파연합 파탄은 통합진보당을 분당으로 끌어간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당권파와 신당권파가 완전히 갈라서는 분당사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붕괴이며, 진보정치의 좌절이다.

당내 분쟁이 극도로 격화되어 하는 수 없이 분당하면, 뜻이 통하는 정파끼리 각자 새로운 당을 창당하면 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중들로부터 고립되어 존재감을 상실한 군소정당이나 건설하겠다는 얼빠진 소리나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과 당원들은 최악의 분당사태를 막아야 한다. 구당권파와 신당권파가 정면충돌을 피하고 대화하면서 양보와 타협의 해법을 함께 찾는다면, 어찌 최악의 분당사태를 막지 못하겠는가.

구당권파와 신당권파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앞세워 분당사태를 막아야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2012년 5월 2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