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82)
 

새날이 올 때까지 애국가를 부르리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별이 빛나는 깃발', '라 마르세이예즈', 그리고 '애국가'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이석기 국회의원의 말을 두고 수구세력이 또 다시 생트집을 잡았다. '애국가'가 국가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모략적 이념논쟁으로 몰고 가려는 수구세력의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법리적으로 따진다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다만 국가를 대신하여 국가처럼 관습적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관습국가(慣習國歌)'라는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두고, 수구세력은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애국가'를 부정하는 망언이라느니, 국가(國歌)를 부정하는 망발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추잡한 소동을 피웠다.

이 땅의 수구세력이 열심히 추종하는 그들의 종주국이 국가를 어떻게 제정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애국가'의 법적 지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Star-Spangled Banner)'은 1812년에서 1815년까지 지속된 미국과 영국의 전쟁 중에 태어났다. 1814년 8월 24일에 있었던 블래든스벅 전투에서 미국군을 무찌른 영국군은 미국 수도 워싱턴 디씨를 점령하고 불태웠다. 미국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패배였다.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깡패국가가 되어 전 세계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려 날뛰고 있지만, 당시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세운지 불과 38년밖에 되지 않았던 미국은 신대륙의 동북부지역에 있는 15개 주들이 합중국으로 통합한 나약한 신생독립국이었다. 늙은 제국주의깡패국가 '대영제국'은 자기의 지배권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을 전복시켜 재식민지화하려고 무력침공을 개시하였으니 그것이 미국사에 '1812년 전쟁'으로 기록된 대영전쟁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쏟아지던 1814년 9월 13일 밤,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력으로 공인되던 영국 함대는 워싱턴 디씨 북쪽에 있는 항만거점 포트 맥헨리(Fort McHenry)를 맹렬한 함포사격으로 초토화하였다. 19척 전함으로 편성된 영국 함대의 함포사격은 25시간 동안 밤새도록 계속되며 포트 맥헨리를 폐허로 만들었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녘, 야간포격으로 폐허가 된 포트 맥헨리를 절망의 눈빛으로 멀리서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야에 놀라운 광경이 비쳐들었다. 가로 9.1m, 세로 13m나 되는 거대한 미국 국기가 파괴된 건물벽에 높이 걸려있었던 것이다. 포연과 불길 속에서 살아남은 그 깃발은 침략군의 무력공격에 굴하지 않은 투쟁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미국인 프랜시스 스캇 키(Francis Scott Key)가 격동적인 심정으로 불굴의 깃발을 칭송하는 애국시 한 편을 단숨에 써내려갔으니 그것이 바로 미국 국가로 불려지는 '별이 빛나는 깃발'의 가사다.

전화의 불길 속에서 태어난 노래 '별이 빛나는 깃발'은 미국 해군이 군가로 불렀고, 나중에는 미국 국민들 속에서 애국가로 널리 애창되었는데, 마침내 1931년 3월 3일 연방의회 의결을 거쳐 미국 국가로 제정되었다.

1792년 4월 25일 프랑스 혁명군 장교 클로드 조셉 르흐게 드 릴(Claud Joseph Rouget de Lisle)이 프랑스 혁명의 불길 속에서 지은 애국가 '린군의 전쟁노래(Chant de guerre pour l'Arm e du Rhin)'도 1795년 7월 14일 프랑스 국가회의 의결을 거쳐 프랑스 국가로 다시 태어났으니, "일어나라, 조국의 아들딸들아 영광의 날은 왔노라"로 시작되는 애국가는 그렇게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이예즈(La Marseillaise)'로 제정된 것이다.

미국의 애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이 미국 국가로 제정되기까지 무려 11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 117년 동안 미국에는 국가가 없었다. 다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애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이 국민들 속에서, 그리고 국가행사에서 관습적으로 불려지고 있었을 뿐이다.

국가제정임무를 외면해온 직무유기

어떤 노래가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가지려면 입법부 의결을 거쳐 제정되어야 한다. 어떤 노래가 국민의례에서 오래 관습적으로 불려진다고 해서 그 노래가 자동적으로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땅의 국민들이 국민의례에서 부르는 '애국가'는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하였다.

2010년 7월 27일 대통령훈령 제272호로 공표한 '국민의례 규정'은 중앙행정기관이 시행하는 국민의례 절차와 방식을 규정한 것이지 '애국가'의 법률적 지위를 규정한 것이 아니며, 그런 대통령훈령으로 '애국가'가 국가의 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주장 자체가 무식한 소리다.

수구인사들 가운데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들먹이며, '애국가'를 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21일 갑자기 '관습헌법'이라는 생뚱맞은 자의적 개념을 들고 나와, '관습헌법'에 따라 서울을 수도로 인정하고,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관습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그런 위헌결정은 노무현 정부의 수도이전계획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판결이었다. 당시 법학자 10명 가운데 6명이 '관습헌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설령 헌재의 그런 정치적 판결을 인정하더라도, 헌재가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한 판례가 없다.

놀랍게도, '애국가' 저작권은 스페인 국적자에게 있었다. '애국가' 저작권을 가진 그 스페인 국적자는 '애국가' 를 작곡한 안익태의 유족이다. 그 스페인 국적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게 신탁하여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 유족이 묵인해주어서 넘어간 것이지, 법리적으로 따진다면 '애국가'를 국민의례에서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제창해온 것은 저작권보호법 위반행위였다.

외국인이 저작권을 행사하는 '애국가'를 이 땅의 국민들이 공식 국가로 착각하고 60년 동안이나 국가처럼 불러온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그런 참담한 현실을 60년 동안 방치해온 주범은, 국민의례를 거행할 때마다 '애국가'를 누구보다 목청 높여 잘도 부른다는 이 땅의 수구집권세력이다.

'애국가' 저작권이 외국인에게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자, '애국가' 저작권 보유자인 스페인 국적자는 2005년 3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하였다. 치욕스럽게도 57년 만에 '애국가' 저작권을 외국인으로부터 기증받았으면, 그 노래를 즉시 국가로 제정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국회는 2007년 1월 16일 '대한민국 국기법'을 법률 제8272호로 의결하여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도, '애국가'는 국가로 제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고 정확히 지적한 이석기 의원을 무분별하게 비난할 게 아니라,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4년 동안이나 국가를 제정하지 않은 정부와 국회에게 국가제정임무를 외면해온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념을 주입받고 그들의 감정에 동화된 '애국시민'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이석기 의원의 지적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과학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고, '애국가'가 국가라고 우기는 수구세력의 억지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실체로 믿어버리는 미신에서 나온 것이다. 수구세력은 자기들의 미신을 '국민정서'라는 말로 미화하고 분식하기를 즐긴다. '애국가'가 국가가 아니라는 정당한 지적은 '국민정서'에 배치되기 때문에 비난과 배격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법이다.

수구세력은 자기들의 궤변과 억지를 '국민정서'니 '국민의 눈높이'니 하는 따위의 그럴 듯한 말들로 은폐, 치장한다. 명백하게도, 수구세력이 말하는 '국민정서'니 '국민의 눈높이'니 하는 말들은 진보정치의 기준으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정서'니 '국민의 눈높이'니 하는 것은 수구집권세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교육, 언론, 홍보를 통해 국민에게 자기들의 이념을 주입시키고 국민을 자기들의 감정에 동화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애국가'에 대한 '국민정서'와 '국민의 눈높이'도 당연히 그러한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의 결과물이다. 수구집권세력은 '애국가'가 국가로 제정되지 않은 진실을 감추고 그 노래를 마치 국가처럼 국민의례에서 부르는 오랜 관행을 통하여 '애국가'에 대한 자기들의 이념을 국민의 머릿속에 주입하였고, '애국가'에 대한 자기들의 감정에 국민의 감정을 동화시켰다.

이 땅의 역대 정권들 가운데서 '애국가'에 대한 그러한 이념주입과 감정동화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정권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이다. 이를테면,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모든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직전 '애국가' 연주곡을 장내에 틀어놓는 관행을 강요하였다. 영화를 감상하러온 관객들은 어두컴컴한 장내에서 '애국가' 연주곡이 끝날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수구세력의 이념을 주입받고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어야 비로소 '애국시민'이 될 수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날마다 오후 5시만 되면, 모든 관공서들과 각급 학교들에서 국기하강식을 하면서 '애국가' 연주곡을 확성기로 크게 틀어놓았다. '애국가' 연주곡이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면, 길거리를 가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연주곡이 들리는 쪽으로 우두커니 서서 수구세력의 이념을 주입받고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어야 비로소 '애국시민'이 될 수 있었다.

이석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애국가'는 독재정권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애국가'의 국민적 제창이 군사독재정권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의 수단으로 전락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는 왜 '애국가'를 화제에 올렸을까?

이석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왜 하필이면 '애국가'를 화제에 올렸을까? 수구언론매체들은 전체 맥락을 잘라버리고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단문만 달랑 끄집어 내놓고 그를 비난공격하였지만, 이석기 의원이 '애국가'를 화제에 올린 맥락은 통합진보당의 당내 우파가 밀어붙이는 우경화 조치를 반대한 것이었다.

통합진보당 공식행사에서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은 유시민 전 공동대표다. 그는 2012년 5월 10일에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 회의에서 "통합진보당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일까? 중앙당의 공식행사에서 꼭 애국가를 틀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 스스로의 주관적인 이념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양식 속에서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것은 그가 '애국가' 제창문제를 '국민정서'로 이해하고, 통합진보당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처럼 그런 정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 전 공동대표가 간과한 것은, 위에서 논한 것처럼, '애국가'에 대한 '국민정서'가 수구집권세력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그런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국민정서'를 따르는 것은 수구집권세력의 이념주입과 감정동화에 대한 용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이 창당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은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를 해왔으며, 민중의례를 거행하면서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지금은 노래방 곡목수록집에도 들어 있는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만 해도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금지곡으로 탄압을 받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이 부르는 '님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투쟁가가 아니다. 그 노래에 깃들어 있는 것은, 광주민중항쟁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총을 들고 끝까지 싸우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 전남도청에 쳐들어간 파쇼게엄군의 흉탄에 쓰러진 윤상원 열사의 고귀한 투혼이다. 원래 그 노래는 광주민중항쟁에서 살아남은 윤상원 열사의 동지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지어 부른 것이다.

윤상원 열사가 총을 들었던 광주민중항쟁 현장에서는 광주시민과 시민군이 함께 부를 투쟁가가 없었고, 모두 따라 부를 만한 노래는 '애국가' 밖에 없었다. 그래서 광주시민과 시민군이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진행한 대중집회를 촬영한 기록영화에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시민군들과 광주시민들은 바로 그 '애국가'의 국민적 제창을 강요해온 군사독재정권의 총탄과 대검에 맞아 피를 흘리며 학살당했다. 만일 윤상원 열사와 시민군들이 희생되지 않고 살았더라면, 광주학살주범이 국민적 제창을 강요한 '애국가'를 당연히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윤상원 열사를 뒤를 이은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군사독재정권 하수인들의 고문과 최루탄과 쇠파이프에 희생당했지만, 열사들의 장렬한 최후는 영원히 죽지 않는 넋으로 살아나 수구집권세력을 퇴진시키고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결의와 맹세로 승화되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 나오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가 바로 그런 참된 애국심의 발로인 것이다.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못하는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이 모든 군중집회와 공식행사들에서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이제껏 불러온 것은 민주열사들의 뒤를 이어 수구세력과 맞서싸우는 투쟁의 일환이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진보적 근로대중의 피맺힌 열망이 담겨있으며,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사회변혁을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자취가 어려있는 것이다.

애국가를 부르며 흔들리지 않으리라

애국가는 어느 특정노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들은 모두 애국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고유명사 '애국가'를 일반명사 애국가와 구분하기 위해 따옴표를 붙였다. 일반명사 애국가와 고유명사 '애국가'를 똑같은 것으로 혼동하면서, 이 세상에 애국가는 '국민의례'에서 불려지는 '애국가'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와 오해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조국의 미래에 바친 민주열사들의 뒤를 이어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참된 애국자들이며, 그들이 참된 애국심으로 부르는 애국가가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지난 4.11 총선 때 선거운동현장에서 만난 몇몇 유권자들이 "당신들은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하였는데, 통합진보당은 그런 질문에 에둘러 답하지 말고 '애국가' 대신 애국가를 부르는 사연을 대중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수구세력이 친일부역자들이 만든 '애국가'를 부를 때,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근로대중은 민주열사들이 넋이 깃든 애국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수구세력이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애국가'를 부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수구세력에 맞서싸우는 정신무장을 '애국가' 제창으로 해제시키고 진보정치를 감히 길들여보겠다는 음흉한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다른 한 편, 통합진보당의 당내 우파가 저들의 그런 음흉한 저의를 무딘 감각으로 대하면서 '애국가'를 당내 행사에서 부르자고 제안한 것은, 통합진보당을 진보적 대중정당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통합진보당 활동가들과 당원들이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마다, 수많은 민주열사들은 그 애국가의 한 구절처럼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투지를 북돋아주고 있다. 수구세력의 모략과 협박이 혹심해도, 통합진보당의 당내 우파가 동요해도 통합진보당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으리라.

오늘의 시련과 난관을 뚫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더 힘있게 부르며 변혁과 진보의 길로 나아가리라, 이 민족이 위대한 통일조국의 새 국가를 목메어 부를 새날이 올 때까지... (2012년 6월 1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