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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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유격대 일행천리전략식으로 재협상하라!

 

2MB의 《별수》 없는 《꼼수》

 

자고로 전쟁마당에서나 협상술에서나 심지어 바둑판에서마저 상대방을 이기려면 상대방보다 한수() 높아야 한다. 그런데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협상술에서 MB《정부》는 별수 없는 꼼수만 내보이고있어서 우리를 실망시키고 나아가 불안케 하고있다. 계속 거짓말만 하다가 국민들의 초불앞에 무릎을 꿇고 내놓는 수란 업자들간의 《자률규제》에 기대하자는것이 고작이다.

2008 6 7일에는 부쉬한테 전화까지 해 월령 30개월 소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리해를 구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 정도면 2MB의 수량(數量)은 다했다고 할수 있다. 일개 《국가》가 미국의 장사군들의 자률에 의지해 국민들의 건강권을 내던지고있으면서도 스스로 창피한줄도 모르고있는것이 지금 《대통령》의 용량이다. 문서로 작성해두어도 불리하면 사문화시키는것이 미국인데 전화통화 하나로 부쉬의 말을 믿어달라고. 사대주의극치라 아니할수 없다.

실로 《대한민국》호는 다시 위기에 처해있다. 왜 하필이면 그리스도교장로《대통령》때마다 이런 위기가 오는지 모르겠다. 2MB 6일 소고기재협상론난과 관련,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소고기)재협상얘기를 해서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도대체 더 큰 충격이란 무엇인가? 국민의 건강권이상 더 큰 충격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거리의 한복판 차나 다녀야 할 길에 젊은 학생들이 밤과 낮을 구별하지 않고 도로를 메우고있는데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수밖에 나오지 않는데 실로 걱정이 앞서지 않을수 없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두고 《불가항력》이라고 했다. 불가항력이 올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의 입에서 지금 이런 말이 나온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지 않는가? 불가항력적상황에서도 리순신은 아직 《신에게는 13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명명백백한 《대통령》개인의 잘못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그가 취해야 할 선택은 분명하지 않는가?

그래도 우리는 지혜와 용기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탈출해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한가지 귀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귀감을 오늘 1937년 초여름 항일유격대의 소탕하전투에서 있었던 일행천리의 전술전략에서 찾아보려 이 글을 쓴다.

 

동성서격(東聲西擊)과 서성동격(西聲東擊) 유격전술

 

지금 일방적힘을 구사하고있는 미국이 오직 한 나라 북(조선)앞에서는 백기를 늘 들고말았다. 리비아의 가다피도 굴하고말았다. 그러나 도대체 북미간에 무슨 징크스가 있어서 이런 결과가 생겨나는것일가? 나는 그 비결을 김일성항일유격대의 전술과 전략에서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고록은 김일성항일유격대가 일본과 벌린 크고 작은 전투에 대한 서술로 점철돼있다.

김일성사령관과 같은 나이의 중국유격대장들은 거의 죽었다. 양정우, 위증민, 진한장 등이 잡혀죽고 병사했지만 김일성사령관만은 건재하였다. 그 비결은 다름아닌 뛰여난 전략전술에 있었다고 사려된다. 그리고 해방이후 북이 대외적으로, 특히 대미협상에서 항상 우위의 자리에 설수 있었던것도 김일성사령관의 유격전술전략의 연장에서 매사에 림하기때문이라고 판단되여 여기에 한 사례를 소개한다. 실로 한 나라 지도자의 지략과 지혜 그리고 용기와 결단은 그 개인뿐만아니라 국가의 행불행과 운명을 좌우할만큼 중요하다.

항일유격대의 전술가운데 대표적인것이 적을 교란시키는것이다. 매복전, 유인전, 기습전, 야간습격전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전술을 구사하여 적을 우선 피동으로 몰아넣는것이다. 이를 두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고 한다. 동에서 소리를 내면서 서에서 치고 서에서 소리내면서 동에서 치는 전술말이다. 이를 동성서격(東聲西擊)과 서성동격(西聲東擊)이라 한다.

일제도 김일성항일유격대의 이런 전술에 맞서서 오가작통(五家作統), 십가련좌법, 보갑제도수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일제가 김일성항일유격대와 인민들을 격리시키기 위하여 사용한 수법으로 5가정단위로 조직을 만들어 서로 감시하도록 하고 만약에 어느 한 가정이라도 유격대원을 숨겨주면 10가정을 련좌법으로 처형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견벽청야(堅壁淸野)는 토성을 쌓고 들에는 집 하나 없이 깨끗이 불태워버리는것이다. 이 수법은 지난 전쟁중 《공비토벌》이라 하여 산간벽지의 집들을 소개시키고 불태워버린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이에 맞서 김일성유격대는 이정화령 그리고 이령화정의 전술을 구사한다. 있는것 같은데 사라지고 없는것 같은데 갑자기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출귀몰이라고 한것이다. 백전백패한 일본은 김일성사령관의 이름만 들어도 혼쭐이 나 도망치고 막대한 현상금까지 걸었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은 신출귀몰하는 전술과 전략으로 건재하였고 동지들도 살아남아 해방과 함께 그들은 조국에 들어왔다. 이렇게 세운 정부와 외세에 의존한 사대주의근성이 바탕이 된 《정부》하고는 질적으로 다른것이다. 우선 외교전략과 협상술에서 그 차이는 심대하다. 협상하는 대상국을 사대하고 무슨 협상이 제대로 되겠는가. 차라리 그것은 협상이 아니고 조공이지.

 

일행천리 이신작칙

 

1936 6월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지역에로의 진출을 앞두고 김일성사령관은 그 백두산서북부일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하여 무송현쪽으로 진공을 명령한다. 이 전략을 두고 이정화령 이령화정이라고 한다. 대원들은 모두 왜 느닷없이 북행길이냐고 의아해한다. 그러나 만약에 남행길을 앞두고 남으로 바로 내려가면 그곳으로 적의 병력이 몰릴것은 명확하지 않는가? 국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남행길을 위한 북행전략을 세운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의 이런 전략은 적중하여 장백지역에 결집돼있던 적의 병력은 사방으로 분산되였고 초점을 잃고말았으며 이 일대에 있던 지하조직들은 조직망을 단단히 다져 후일 유격대가 왔을 때에 큰 힘이 되였다. 이런 전술전략을 두고 이정화령이라고 한다.

1937년 춘삼월 만주에도 봄이 들어 버들이 싹을 틀무렵. 이름도 양목정자, 버들이 많은 고장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게 되였다. 만강부근의 양목정자에는 동서로 나뉘여 두개의 밀영이 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유격활동가운데 이곳을 잊을수 없는것은 이곳에서 가장 사랑하던 동지들을 잃어버렸기때문이다. 리동백, 리달경동지를 모두 이곳에서 잃어버렸다. 오른팔, 왼팔하던 동지들이 모두 이곳에서 산화하였다.

일명 소탕하전투라 하는 전투가 바로 이 양목정자밀영부근에서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적들이 포위하여 하늘에 나는 새가 아니고야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정도였다. 적들이 피운 우등불불빛이 가히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당에 나올수 있는 전술이란 누구나 한번 싸우다 죽는 《결사항전(決死抗戰)》뿐이였다. 이것은 일종의 자포자기에 가까운것으로서 유격활동의 력사를 여기서 막내리고마는 절박한 순간이였다. 적은 대략 수천명, 유격대원은 고작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다.

련대장 손장상이 주장한 전략이 결사항전이였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은 《… 동무들, 살아남는다는것은 죽는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을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서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6 28페지)고 상상밖의 제안을 한다. 많은 동지들이 자루안에 든 쥐와 같은데 마지막 죽기 전에 결사항전이나 하고 죽자고 하는 마당에 사령관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이 순간 김일성사령관은 기발한 하나의 전술을 구사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면 김일성사령관이 구상하고있었던 전술은 도대체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일행천리(一行千里)》였다.

전광석화같이 아니, 령감같이 머리속을 스친 이 생각은 김일성유격대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그것도 큰길을 통해 한사람의 희생도 없이 말그대로 일행천리로 내닫게 하였다.

 

큰길을 택한 정공법은 이렇게 성공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나는 크고작은 우등불로 가득차있는 골안을 굽어보며 포위망을 뚫고나갈 묘책을 궁리하였다.

문제는 어느쪽으로 어떻게 뚫고나가 적의 포위를 멀리 벗어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만일 소탕하골안에 널려있는 <토벌대>의 병력이 수천명으로 추산된다면 적의 후방은 지금 텅 비여있을것이다, 적들은 우리가 포위환을 벗어나는 경우 분명 더 깊은 산속으로 빠지려 할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적의 포위가 비교적 약한 큰길쪽에 붙어서 살짝 빠져나가는것이 상책이다, 그다음에 큰길을 따라 일행천리하자, 이러한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6 2829페지)

여기서 김일성사령관은 적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것인가를 먼저 추리한다. 즉 적들은 유격대가 깊은 산속을 빠져나가리라 생각할것이라고 적의 머리속에 먼저 들어간다. 유격대가 대로행한다는것은 유격대전술의 기본을 어기는것이기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김일성사령관은 적이 이렇게 생각할것이니 그 반대의 선택, 다시말해서 큰길로 대로행한다는것이다. 적의 머리속에 들어가 한번 생각하고 다시 내가 생각하고 다시 그것을 적이 어떻게 생각할것인가를 생각하고 … 바로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수가 높아져가는것이다.

《지휘관들은 <큰길>이라는 말에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이동할 때 은밀성을 보장하는것은 유격대의 활동에서 철칙으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적들의 대병력이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때에 주민지대에 나가 대도로를 따라 행군하라고 하니 그들이 놀랄수밖에 없었다.

손장상이 내곁에 다가와 지나친 모험이 아닌가고 불안스럽게 말했다. 그가 나의 탈출작전을 지나친 모험이라고 우려한것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어느모로 보든지 그것은 모험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작전이였다. 왜냐하면 적들이 큰길을 지키고있을수도 있고 또 저들의 후방에 일정한 병력을 남겨놓았을수도 있기때문이였다.(6 29페지)

소탕하의 장대우에서 결심한 주민지대로의 탈출과 대로행군전술은 승산이 확실한 모험이였다. 김일성사령관이 승산이 확실하다고 본것은 바로 그 모험속에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피동에서 주동으로 넘어가려는 투철한 공격정신이 깃들어있고 적의 약점을 최대한으로 리용하기 위한 과학적인 타산이 깔려있었기때문이다. 싸움이란 결국 지혜와 지혜의 대결인 동시에 신념과 신념의 대결, 의지와 의지의 대결, 용기와 용기의 대결이기도 하다.

《적들은 소탕하 수십리골안에 우등불의 바다를 펼쳐놓음으로써 자기들의 력량이 얼마만큼 된다는것과 어떤 전술로 인민혁명군을 섬멸하려 한다는것을 죄다 로출시키였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작전문건을 탈취당한것과 같은 실수를 한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실수로 하여 그들은 벌써 우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셈이였다.(6 3031페지)

다시말해서 김일성사령관은 적들이 지금 여기 다 모여있고 큰길을 지키고있지 않을것이라 판단한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적중했다. 적들은 자기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다 로출시키고있었고 이 로출된 모습을 김일성사령관은 본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먼저 8련대가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뒤를 경위중대가 따르고 7련대가 따랐다. 행군종대는 불무지들을 피해가며 큰길쪽으로 소리없이 움직이였다. 집단의 생사를 판가리하는 복잡한 정황이나 위기가 조성되였을 때 지휘관이 취하는 자세와 개개의 언행이 전대오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그때 나는 크게 절감하였다. 지휘관이 태연하면 전사들도 태연하고 지휘관이 당황해하면 전사들도 당황해하는 법이다.(6 31페지)

《예견했던바대로 신작로에는 개미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마을어귀에 불무지자리만 남아있을뿐이였다. 우리는 궤도우를 질주하는 급행렬차처럼 여러개의 마을들을 거침없이 통과하면서 동강으로 행군하였다.

우리는 총 한방 쏘지 않고 텅 빈 적구를 무사히 통과하였다.(6 3132페지)

《소탕하에서 실현한 대로행군전술을 우리는 후날 조국에 나와서 베개봉을 떠나 무산지구로 진출할 때에도 적용하였다. 그 전술을 일행천리전술이라고 한다.(6 32페지)

적들은 소탕하전투때 일본, 만주국, 도이췰란드 등 3국의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까지 끌고왔다고 한다. 김일성이 과연 인간인지 신인지 보여주려고 작심을 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언론플레이를 하려 했던것이다. 《철심》에 실린 《동변도토비행》이라는 기사에 의하면 그때 모인 기자단은 일본의 주요신문들인 《도꾜니찌니찌신붕》, 《요미우리신붕》, 《호찌신붕》의 기자진과 함께 신경방송국 국원들과 만주국의 외교부 관리들, 나치스도이췰란드의 국가통신사 통신원인 요한 네벨로 구성되여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 , 만 출판보도계와 언론계의 련합진에 외교관들까지 합세한 어마어마한 참관단이였다. 아마도 적들은 무송지구<토벌>작전을 전세계에 자랑할만 한 시범작전으로 판단하고 이 작전에서 달성하게 될 저들의 <혁혁한 전과>를 만천하에 널리 소개하고싶은 열의로 퍼그나 들떠있었던것 같다.(6 33페지)

회고록의 글이다.

 

제갈량을 찜쪄먹을 도사라야 미국에 이긴다

 

항일유격대가 수천명에 달하는 대병력의 포위를 성과적으로 돌파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통보를 받은 적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적들은 혁명군의 행방을 가늠하지 못하여 갈팡질팡하였다. 적사병들속에서는 여러가지 괴담들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의 전술은 귀신도 곡할 전술이다., 《조선빨찌산에는 제갈량을 찜쪄먹을 도사가 있다.》 이런 말들이 민간에까지 흘러나와 농촌 마실방에 모여드는 늙은이들의 화제거리로도 되였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이 행군을 통하여 우리 부대에 대한 민화와 전설은 더욱 풍부해졌다.(6 35페지)

제갈량이 얼마나 수가 높은 전략가인지는 《삼국지》에 잘 기록돼있다. 여기 제갈량과 조조사이의 두뇌싸움의 경우를 한번 례로 들어보자. 《삼국지》에서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지나갈것인가 안 지나갈것인가를 놓고 관우와 제갈량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자. 제갈에게 관우가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오느냐?》 묻자

제갈: 《반드시 온다.

관우: 《화용도의 한켠엔 산길이 또 한켠엔 평지가 있다. 오면 어느쪽으로 오느냐?

제갈: 《내가 말한대로 조조가 오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겠다.

관우: 《두갈래중 어느쪽으로 오느냐?

제갈: 《산길로 온다. 조조가 오게 하자면 산길쪽에서 연기를 올리라. 그러면 조조가 틀림없이 산길쪽으로 온다.

관우: 《될말이냐? 연기를 올리면 조조는 군대가 있는줄 알고 평지로 갈것이 아니냐?

제갈: 《그것이 병법의 허허실실이란것이다.

제갈량의 허허실실이란 상대방의 아는것을 아는것을 의미한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 그러니 적이 연기있는쪽으로 오지 않을것이다. 아주 초보적인것이다. 다음단계는 연기가 있다는것은 군대가 《없다》를 위장한것일수 있다. 그러니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것이다. 바로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은 그 다음단계의 높은 사고를 하여 그러니깐 조조의 이런 사고를 하는것을 리용하여 사로잡는다는것이다. 조조는 메타적사고를 했지만 제갈량은 메타의 메타적사고를 한것이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 량자가운데 상대방이 후자를 생각하도록 만들어 연기도 있게 하고 군대도 있게 한다는것이다. 결국 허의 허는 실이 되는 전법인것이다.

제갈량이 이렇게 전략을 세운것은 조조의 사고구조를 훤히 파악하고있었기때문이다. 뇌가 단순한 사람의 경우 즉 일차원적사고를 하는 사람의 경우는 연기가 있는 곳에 군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준에 맞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할 때에 사용한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은 모두 이 정도 차원으로도 우릴 속일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대중들과 지도자들은 일본의 이 정도 속임수에도 모두 속아넘어가고말았다. 그러나 조조의 머리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고까지 사고한것이다. 이는 상대방이 자기를 속인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경우이다. 우리가 이 정도의 사고만 했어도 일제에 당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제갈량은 조조의 사고구조를 다시 파악하여 연기를 피우고 군대도 머물게 한것이다. 제갈량은 산에 불을 피우면 조조가 이렇게 생각할것이라 생각한것이다. 《산지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기때문에 불을 피우고 사람이 있는것처럼 위장한다. 그것에 속아 평지를 택하면 적은 습격을 할것이 뻔하다.》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을 한다는것이다. 이에 제갈은 《그러므로 불을 피워 사람이 있는것 같이 보이면 도리여 그켠으로 온다.》는것이다. 관우가 《당신 말이 틀림이 없느냐?》고 하니 제갈은 《틀림없다. 틀리면 내 목을 베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조조가 제갈의 이런 사고구조를 《아는》 경우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시말해서 산으로 오지를 않고 평지로 가고말것이고 제갈의 목은 달아나고말았을것이다. 이 두뇌싸움에서 제갈이 이겼다. 이와 같이 무기들의 전쟁보다 더 무섭고 중요한것은 의식의 전쟁이다.

김일성유격대가 련전련승할수 있었던 비결은 모두 의식의 전쟁에 있어서 한수 우에 있었기때문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런 높은 의식의 수준이 하늘로부터 주어진것도 아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인민들보다 현명하고 똑똑한것은 없다는것이 기본인간관이고 철학이였다. 이렇게 철두철미 대중속에, 군중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혜를 구했던것이다.

 

일행천리전술과 탈현대의 론리

 

인간은 의식의 수준이 한단계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진화해왔다. 《탈현대》란 현대보다 한수가 높은 의식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원시-봉건-근대-현대-탈현대로의 발전은 그대로 의식수준의 진화라고 할수 있다.

여기에 탈현대철학자들이 그들의 론리가 현대와는 다름을 말할 때에 약방의 감초같이 사용하는 례가 하나 있다. 그것은 에드거 앨런포우의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편지》(일명 《도둑맞은 편지》)이다. 이 편지가 범죄의 단서이기때문에 수백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범인의 집에서 이 편지를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 리유는 머리좋은 범인은 그 편지를 거실책상우 눈에 잘 띄는 다른 편지나 서류속에 그냥 내버려두었기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범죄자의 이런 수법마저 눈치채고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냈다는것이다.

수사관과 범죄자사이의 머리싸움에서 수사관이 찾기 어려운 곳에 편지를 숨긴다. 그러나 수사관이 이 사실을 안다. 여기까지가 모던(modern)의 론리이다. 그러면 범인은 수사관이 안다는 그 사실을 알고 눈에 잘 띄는 아무 곳에 편지를 둔다. 그런데 수사관은 범인이 안다는 그것을 알고있다. 이는 안다는것을 아는것을 다시 아는 구조이다. 3중구조가 바로 탈현대의 론리이다. 그러면 범인은 수사관의 안다는것을 알고 그것을 다시 알고 그리고 다시 그 안다는것을 아는 4중구조를 가져야 할것이다. 물론 수사관은 5중구조를 가져야 하고.

 

항일유격대의 일행천리전략식으로 재협상하라

 

먼저 미국은 4 18일 협상에서 자기들이 양보하려고 한것까지 2MB가 양보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나오고있다. 이 마당에 우리가 할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큰길로 일행천리하는 전술적비법을 꺼내드는것이다. 이 전략이 먹혀들자면 《대통령》과 국민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다 준비가 되여있다. 《대통령》과 여당지도부가 문제이다.

먼저 미국은 우리가 소고기재협상하자고 하면 FTA비준거부라는 카드를 들고나올것이다. 그 다음카드는 우리의 안보를 문제들고 나올것이다. 즉 주《한》미군철수 운운하며 겁을 줄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의 문제가 따른다. 과연 리명박《대통령》이 미군철군하면 해보라고 당차게 나올 용기와 결단이 있느냐가 문제이다. 우리가 이렇게 나와도 생각키로는 100% 미국은 상상 이외의 반응을 보일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말것이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은 우리의 안보가 아닌 자기들 목적과 필요에 의해 존재하고있기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우리를 궁지에 몰고 완전 포위하고있다고 자신만만해할것이다. 우리를 내몰면 산골짜기로밖에는 퇴로가 없다고 압박할것이다. 마치 1937년 초봄에 항일유격대가 겪었던것 같이. 그러나 여기에 대담하게 큰길로 일행천리하는 전술을 펴보라는것이다. 거듭 말해 미군철수가 미국이 던질 마지막카드인데 이에 대해 해볼테면 해보라고 말할수 있는 용기있는 지도자의 태도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것이 우리 현실이다.

미국의 여야는 자기들의 기득권보다 국가의 리익이 항상 앞선다. 그래서 우리는 오바마의 말도 부쉬의 말도 믿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국내에선 싸워도 대외정책에선 언제나 짜고 고스톱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보수우익들은 국가리익보다 자기 집단의 기득권이 앞서는데 체질화돼있다. 우리의 《정부》와 국민이 일심단결 일행천리할수 없는 진정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민초들의 초불은 애타게 타들어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