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백두밀림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광화문초불로 오늘도 타오른다

 

《찢기는 가슴, 이 땅에 피울음안고 우린 다시 모였다》

 

2008 5 2일 처음 초불집회가 열리던 날 나는 과연 성사나 될수 있을가, 그래도 MB《정부》등장이후 답답하던 마음이나 달래려, 그리고 자리나 채우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기 시작하여 벌써 40여일이 지나가고있다. 집이 《청와대》뒤 세검정이라서 비오던 날은 사방에 길이 막혀 밤 자정까지 탈출구를 못 찾아 생비를 그대로 맞으며 헤맨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경우 경찰들이 이상한 방법으로 막아 빠져나가는 사람도 못 나가게 한다. 전두환, 로태우시절은 개구멍을 만들어 한두사람은 새나가게는 했는데. 아마 이렇게 불편을 느끼게 하여 데모대에 혐오와 증오를 갖게 하려는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오산이다. 아마 서울시내 택시기사들한테 물어보면 과거같이 데모대를 원망하는 기사들은 찾아볼수 없다. 거리상인들도 식당가주인들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초불집회를 보는 평균적인 정서이다. 《리문세》(리명박《대통령》이 문제라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라는 류행어가 이상할것 없다. 집회에 나가면 오래동안 만나지 못하던 얼굴들도 보게 되고 무엇보다 나이어린 학생들, 특히 10대 중고등학생들의 재롱은 귀엽기가 이루 말할수 없다.

첫날 청계천 하늘광장에서 모임이 시작되던 시간, 난데없이 학교에서 갓 하교한듯 한 아직 중3, 1정도밖에 안돼보이는 주로 녀학생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광장은 불꽃바다가 되였다. 하늘의 별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광장은 별빛바다가 되였다. 한편 안타까운것은 지금 학교에서는 0교시 수업 그리고 우렬반을 나누어 공부를 하고있는 마당에 저렇게 밤이 이슥하도록 밖에 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앞섰다. 주최측이 빨리 끝내 돌려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었다. 자식둔 부모들은 누구나 나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그러나 이 작은 별들이 일을 냈다. 큰일을 해냈다. 며칠째부터는 이 작은 책가방부대수자가 줄어들다 6 10일 전후가 되자 다시 이젠 열명, 스무명씩 같은 학교 교복입은 학생들끼리 무리지어 대렬의 주류를 이루고있다. 후날 력사가가 이날을 력사에 기록한다면 무명의 이들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그러나 력사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아무도 지금 모른다. 6 10일 같은 날 보수단체집회에서는 주로 이 학생들의 배후가 누구다 누구다 하는것 그리고 그 배후를 성토하는것이 주류였다. 북이 배후세력이라는것이 그날 조갑제발언의 골자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배후가 없다. MB에게 상처받은 찢기는 가슴 안고 한자리에 모였다. 어린 중고등학생들, 저 생기발랄한것들이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시계에도 없는 0시에 일어나 0시에 돌아간다. 화이트헤드란 철학자는 저 나이에는 아이들에게 랑만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단에 올라가 MB가 갈가리 짓이겨놓은 감정을 서슴없이 토로한다. 내 경우 다 치유돼가는 분단의 병이 다시 도지여 아픔을 견딜수 없어 나간다. 이렇게 구석구석 리명박에게 상처 안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배후는 리명박이고 그가 문제인것은 개와 소들도 다 알고있다. 그래서 우리 10대들의 랑만은 찢기는 가슴안고 피울음으로 피여오르고있다.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나는 그동안 몇차례 여름감기가 왔다갔다하였다. 밤중에 길가에서 걷다보니 온몸에 땀이 났다가 식으니 찬 밤공기에 한기를 견디지 못해 몸이 성할리 없다. 그러나 초저녁만 되면 마치 아편중독쟁이같이 초불중독증에나 걸린듯이 광화문으로 나간다. 10시가 넘으면 갑자기 집에 돌아갈 걱정이 나기 시작한다. 의례 길이 또 막힌다. 그러면 온몸은 땀에 목욕을 한듯 하고 몸은 다시 식고 아침이면 기침이 나고 그러면 동네 보건소에 가 감기약을 벌써 네차례나 지었다. 의사가 이젠 보건소에 오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초불에서 난 병, 초불만이 약이라고 본다.

6 10일 길은 다 막혀 서대문을 지나 홍제동을 통해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형무소 앞길을 지나 무학재고개를 넘는 순간 나는 만주벌에서 긴긴 행군을 하던 항일유격대원들 그리고 이 형무소에 갇혔던 박달과 리제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죽은, 수많은 독립운동하다 죽은 령혼들, 고난의 행군동안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가. 라자구등판에서, 무송원정에서 고생한 젊은이들, 감기에 걸려도 따뜻한 국 한그릇 제대로 끓여주는 사람 있었을가. 약은 어디서 구해먹고. 상상의 이런 비교마저 외람돼보이고 부끄럽기만 하다. 인류력사상 이런 어려운 고난의 행군은 없었을것이다. 남아메리카나 동남아 쟝글에서나 유격활동을 하지, 북위 40°가 넘는 한벌판에서 유격활동이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15년이란 성상이 지나는 동안.

그나마 이 나라 력사는 이들을 아직도 《공비》의 력사, 《비적》의 력사로 기록하고 가르치고있다. 아마도 오늘 밤 이 초불의 력사도 그렇게 기록될지도 모른다. 뉴라이트, 그들은 지금 우리 현대사를 완전히 다시 쓰고있다. 김구는 테로리스트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통치를 《조국근대화》로 다시 쓰고있다. 이런 력사책이 바로 우리가 모이는 옆 대형서점가에 진렬돼 뻐젓이 팔리고있다. 그리고 이들이 지지한 사람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되였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이것만은 아니다. 우리 력사가 이렇게 되여서는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생각속에 화가 나고 가슴속에 분노가 치밀면서 온몸은 열기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거역해야 한다. 이들의 손에서 권력을 다시 찾아와야 하고 이들의 손에서 붓을 다시 빼앗아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유격활동의 시작이고 연장이다. 이에 생각이 미치면서 며칠째 날인가부터는 항일유격대가 밝힌 백두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초불이 하나로 겹쳐지기 시작한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한달이상 웨치고 부르짖었건만 우리앞에는 항만 부두에서나 본 이상한 물체가 솟은듯이 나타났다. 《명박산성》. 6. 10시청앞 광장 한구석에 보수의 무리들이 다시 모여 초불을 든 우리를 모두 사탄의 무리들이니 이들로부터 장로《대통령》 지켜달라고 손발 다 흔들며 새벽 3시까지 빌었다. 나는 하루에 두곳을 오가며 볼것 다 보았고 들을것 다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력사가 옳을것인가를 판단하였다. 내가 설 땅이 어디이고 내가 지킬 력사가 무엇인가를 똑똑히 판단하였다.

그러면서 남북의 두 노래가 뒤범벅이 된채 입밖으로 나오지 못한 음들이 내홍(內訌)이 되여 목구멍속에 남은 가래와 함께 목을 메운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울음 운다/ 압록강 굽이굽이 피줄기 흐른다/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 밤아 이야기하라/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청진동 해장국집 마지막불 꺼지고/ 보신각 종도 울지 않을 때/ 이 땅에 새벽을 깨우는자가 누구인가를/ 만고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오늘 밤 다시 이 거리 초불 켜지고 하늘의 별은 다시 뜨리라/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부둥킨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피줄기 있다

 

감기에 목이 잠겨 나오지 않는 음들을 대신하여 내 눈앞에는 항일유격대의 갈길을 밝혀주던 우등불과 광화문의 초불, 이 두 불빛이 간섭(干涉)하면서 제3의 새로운 불빛이 되여 내가 가는 북한산 보현봉 밤하늘을 어지럽힌다. 간섭하는 불빛이 서로 동조를 하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광화문 네거리, 낮이면 자동차경적소리만 요란하던 거리가 해가 넘어가기가 바쁘게 여기저기서 초불이 뜨기 시작한다. 갑자기 숙연하고 애잔한 거리로 변한다. 언젠가 귀전에서 사라졌던 애잔한 노래 《아침이슬》 그리고 《광야에서》, 《님을 향한 행진곡》.

도저히 낮의 이 거리하고는 어울리지 않을듯 한, 이런 때늦은 곡들이 진혼곡같이 들린다. 민주주의가 죽어가고있기때문인가. 통일이 멀어져가고있기때문인가. 6 11일 밤에는 리병렬선생행렬 지나가는 상여소리도 들렸다. 왜 이 나라의 저항곡들은 이렇게 슬프고도 애잔할가? 내가 좋아하는 곡은 《광야에서》이다. 특히 이 노래속에 있는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이란 가사때문이다. 만주땅,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그리고 독립군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피를 뿌린 곳. 나는 이 가사와 함께 성내운선생의 시 《민족이 부르는 소리》를 함께 좋아한다.

동포의 배를 가르고 지나간/ 분계선 날카로운 철조망에 찔린 가슴/그 피토하는 호남벌의 아픔이 있는 한 민중들의 웨치는 소리…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피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이젠 노래방 가사책에나 실린 박물관가락인가싶더니 차경적소리 사라진 광화문대로에서 밤이면 다시 울려퍼진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령혼이 또 이 거리에서 산화했다. 산자여 따르란 웨침도 없이 또 한 령혼을 보낸다.

 

우등불은 《세기와 더불어》 탄다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는 《우등불》이란 말을 국어사전은 《화로불》 혹은 《모닥불》로 풀이하고있다. 그러나 《우등불》은 주로 야영지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나무토막이나 땔나무를 쌓아놓고 피우는 불을 말하며 우등불모임은 우등불을 피워놓고 갖는 모임을 뜻한다. 남《한》에는 강원도 삼척 전기가 안들어가는 산간지대에 아직 우등불이 남아있다고 한다. 방안에 굴뚝같이 솔가지를 지펴 만들어 조명용으로도 난방용으로도 쓰이는것이 우등불이다. 겨울이면 우등불앞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길쌈도 함께 삼고 정담도 나눈다.

그러나 북에서 《우등불》은 이와 같은 사전적의미보다는 주로 《항일혁명시기 유격대원들이 우등불가에서 투쟁의 결의를 굳게 다진것을 본받아 어떤 일을 기념하거나 대중의 정치적열의를 높이려고 할 때 갖는 모임》의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북에서는 주민들의 결속을 도모하고 당의 정책수행을 위해 수시로 개최하는 각종 결의를 할 때에 이를 일반적으로 《우등불모임》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군 한다. 그래서 우등불노래도 있고 영화도 있다. 다시말해서 모두 항일유격대시절 갖고있던 각별한 의미가 각색이 되여 말의 기표보다는 기의가 풍부해진것이다. 남에서는 사라져간 우등불이 이렇게 북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등불은 사라진것이 아니고 초불로 다시 살아나고있으며 둘은 같은 의미를 찾아가고있다고 본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8권 모두에 이 말이 나온다. 모두 60회나 나오는 말이다. 1권에 1, 2권에 6, 3권에 2회, 4권에 2회, 5권에 15회, 6권에 18, 7권에 8, 8권에 8회 나온다. 5권과 6권에 33회나 나오니 반이상이 집중돼있다. 56권은 19361937년 유격활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고보면 《우등불》과 유격활동과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 말이라 할수 있다.

회고록 5권에는 《우등불피우는 법》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장작을 밑에서부터 5, 4, 3개로 피라미드형으로 쌓고 우에서 불을 지피는 방법이다. 이것은 유격대가 개발한 특이한 방법인데 밀림속에서 귀틀집과 우등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남을수 있었다고 하니 우등불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수 있다. 김일성항일유격대의 우등불피우는 법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져 중국인 위증민이 김일성장군부대에 가면 우등불피우는 법부터 배우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5 231페지)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회고록속에는 우등불에 얽힌 많은 일화들이 실려있다. 우등불 피우다 불빛이 적에게 새여 위기를 당하던 일, 김성국이 우등불에 언 발을 쪼이다가 적이 들이닥쳐 맨발로 기관총을 쏘다 발이 동상에 걸릴번 한 일, 소탕하전투때는 적들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 피운 우등불이 오히려 적들의 전략을 로출시켜 지난 회에 소개한 유격대가 일행천리 대로행하게 만든 일은 특히 이를 두고 《우등불지도》라 불리우게 되였다. 그 무엇보다 유격대원들이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고 지휘관과 부대원사이에 격의없는 형제애를 돈독하게 만들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문예활동의 한마당이 우등불주변에서 이루어진것이다. 해방후 북의 그 수많은 연예와 문예활동이 모두 우등불주변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될것이다. 《피바다》 그리고 《아리랑》공연도 이 우등불없이 생각할수 없고 이것은 우리 민족 고유한 마당에서 피우는 모닥불문화와 멀지 않다. 그렇다.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매일 밤 이 모닥불이 지펴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백두밀림의 우등불과 광화문초불사이에는 류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한국》에서 시작된 초불집회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여 저항과 평화의 상징이 되였다. 그러나 사실은 초불문화에 공헌을 한것은 초가 아니고 종이컵이다. 종이컵이 없었더라면 과연 초불집회가 가능했을가. 어지간한 바람에도 그 약한 초불을 보호해주는것은 종이컵이다. 우등불지피는 법과 함께 초불을 서로 붙이는 법. 이것 역시 기술이 필요하다. 불을 서로 붙이자마자 빠르게 초를 종이컵속으로 집어넣지 않으면 안되는 이 기술은 집회참가회수와 비례한다.

초불을 서로 붙여줄 때에 무언에 전달되는 감정, 그것은 련인간의 에로스와 친구간의 필리아를 포개놓은것과 같다. 북에서 부르는 노래중에 우등불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속에서 광화문초불집회에서 느꼈던 에로스와 필리아사랑이 하나되는것을 보았다.

달밝은 숙영지에 우등불이 타는 밤/ 사향가 부르네/ 아 우등불, 우등불불빛에 떠나온 고향산천 어려왔어라/ 만경대이야기에 이깔숲은 설레고 겨레의 눈빛처럼 별들도 반짝이네/ 아 우등불 우리들의 우등불/ 우등불타는 밀림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어라…

광화문에서 우리도 초불을 서로 붙여주면서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하고 노래불렀다.

우등불과 초불은 하나되면서도 하나가 되지 않는다. 두 불빛이 서로 만나 간섭을 하면서 동조를 하다가도 안된다. 이것이 내 눈앞에서 반복에 반복을 한다. 빛의 파장은 서로 간섭을 할 때에 골과 골이 만나면 더 낮아지고 봉우리와 봉우리가 만나면 더 높아진다. 골과 봉우리가 만나면 동조가 되여 이를 《동조성빛(coherent light)》이라 한다. 우리의 통일도 이렇게 동조가 될 때에 어느날 갑자기 오는것이 아닐가. 그런데 리명박《정부》등장이후 이 땅의 보수우익들은 골을 더 패이게 했고 봉우리는 더 높아지도록 만들어버렸다.

리근교수(서울대)는 이번 초불집회는 《대한민국민족주의》라고 하면서 인터네트를 통해 상호수평적으로 련계된 《우리》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한다.(《프레시안》 6 14)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라고 할 때에 《우리》는 북을 아우르는것이 아닐가? 리근교수는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우리 《생활민족주의》라고 하면서 먹는 음식에 걸린 생활에서 형성된 《우리》라고 한다. 그럼 과연 생활민족주의속의 《우리》는 과연 남과 북이 하나되는 우리가 아닌가? 과연 초불이 갖는 의미가 우리 《대한민국민족주의》에만 해당되는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생활건강권을 넘어선 우리 민족주의는 민족자주권과 맥락을 같이하는것이라고 나는 본다. 양초에 처음 불을 붙인 10대들의 가슴속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아직까지 확인이 되지 않고있지만 그들은 자기 나이또래였던 효순이, 미선이를 생각하고있는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장갑차와 소고기는 그들에게 별개의것이 아니라고 보고있는것 같다. 매일매일 이렇게 초불은 색갈을 달리하면서 타고있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이렇게 우등불과 초불은 서로 동조가 되였다 안되였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들고있는 초불은 바람에 견딜수 없어 흔들린다.

나는 14일 밤에 나가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주적》, 바로 이 말이다. 그렇다. 이번 광우병파동은 차라리 미국 NYT 12일 정확하게 지적한대로 소고기이상의것이 있다. 그것은 리명박《대통령》이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것에 분노하고있다는것, 《한국》이 왜 강대국 미국에 휘둘려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 미국이 이것을 리해해야 한다는것, 효순이, 미선이때도 두 녀학생을 장갑차에 깔아죽이곤 재판을 하는척 하고는 살인범인 미병사를 미국에 빼돌려보냈다. 우리의 분노는 그 이후 부쉬의 사과와 《한》미관계 재정립을 통해 그나마 개선되는듯 하였다. 효순이, 미선이때 겨우 회복하는듯 하던 자존심의 상처를 리명박《정부》는 소고기협상으로 덧나게 한것이다.

추가협상, 추가의 추가를 백번 해도 소용없다. 우리의 찢겨진 자존심을 《대통령》이 치유하고 회복시키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자존심회복과 MB가 자주적이지 않는 한 이번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것이다. 이 덧난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 뉴라이트이다. 이들의 력사외곡과 민족문화에 대한 모독적발언은 《대통령》과 한통속이 되여 우릴 지금 더 괴롭히고있다. 우리는 지금 이 덧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오늘 밤에도 광화문으로 나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우린 다시 섰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다시 섰다.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6 13일 보수신문들은 집회군중도 지쳤고 10일 대형집회다음이라서 초불도 시들해질것이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래서 보수단체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조금도 줄지 않은 집회군중들의 주류는 서대문을 통해 KBS로 향하고 광화문에 남아있던 모임은 주로 《10대련대》가 주도했다. 이번 초불은 10대들이 처음 달군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죽을 때 초등학교 다니던 학생들이 이제 벌써 고등학생들이 되여 이들이 만든것이 《10대련대》이고 이들이 이번 집회의 주인공들이다. 7명이 들고있는 피켓에는 《미군없는 세상에서 고운 넋으로 피여나소서》였다. 자기들이 작사작곡한 곡들이 수없이 많았으며 이것들을 모두 광장에서 선보일 때에 관광온 외국인들도 함께 춤추지 않을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10대들에게서 그 어느 가치보다 《자주》라는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미친소고기 기성세대나 먹어라, 우린 못 먹겠다》는것이다. 이들의 구호가운데는 《차라리 부쉬의 똥이 더 안전하다》도 있었다.

1930년대 항일유격대원들가운데는 10대소년병들이 있었다. 그래서 소년중대까지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남《한》보수들은 10대들이 어떻게 유격활동을 하느냐며 이를 조작이라고 한다. 지금도 같은 소리를 한다. 이들 배후에는 분명히 검은손이 있을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배후찾기에 혈안이 되여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보수들이 자기들 장신년령을 맞추어 평가절하하고있는 일고의 상대할 가치가 없는 발상이다. 기성세대는 차라리 이들의 놀이에 구경군들이고 이들로부터 자주를 학습하고있다. 나는 이들 10대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였다. 자존심있는 자주정신의 지킴이가 이들에게 싹트고있고 우등불과 초불은 그래서 만날수 있고 서로 두 불빛이 동조하여 어떤 광풍앞에서도 꺼지지 않을것이라 나는 믿는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작고 약한 초불이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있다. 오스트랄리아방송국은 알콜과 마약에 중독이 된 오스트랄리아청소년들을 향해 《한국》의 청소년들을 배우라 하고 미국시민들은 자기들이 먹는 소고기에 문제가 있다고 의식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초불집회를 찾는것은 외국관광의 필수코스가 되여가고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세기와 더불어》 살아가고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청춘이 그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이것은 남북이 마찬가지이다. 영원한 청춘인 겨레가 바로 우리이다.

철없고 어린것들이라 하지만 이들에게 모든 세대가 갖지 못하는 감수성이 있다. 이 감수성은 벌레의 촉각과도 같으며 이 촉각은 우주의 변화를 감수할만큼이나 강하다. 감수성은 신경의 중추에서 생기며 이 중추는 《자주성》없이 발달하는 법이 없다. 괴로운것은 이 자주성은 《청춘의 비애(tragedy of youth)》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 가능성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과 《세기와 더불어》는 다른것이 아니다. 이 땅의 뜨거운 흙을 움켜쥐고 우리는 이렇게 지금 하나가 되였다. 광화문초불들이 긴 밤 지새우고 백두밀림 풀잎마다 아침이슬로 맺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