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향]

경제성장』명분으로 성까지 판 유신독재자

『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은 이미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서 많이 알려진 얘기인데 아버지의 그늘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박근혜씨가 안철수씨의 룸살롱 출입 논란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외화획득을 위해서라면 기생관광도 애국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여성의 성을 도구화했다.

기생관광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적극 장려된 일본인 관광객 전용의 의사(疑似)공창제이자 국가매춘이다. 국가가 성 매매를 장려하는 발상은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의 식민지 공창제 및 일본군위안부와 이어진다.

박정희 정권기 집권층 대부분이 일제의 황민화 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세대이다.』

(이준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유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의 메이지유신, 쇼와유신에서 따온 것이며 유신체제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구조와 통치제제의 근본원리, 수많은 정책들이 일본 파시즘의 그 것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도입한데는 그의 사고와 통치 방식에서 일제 강점기 학생이나 교사, 제국군인으로 체득한 일본군국주의 파시즘의 논리와 행동법칙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유신체제는 반공에 입각한 통일을 내세우고 총력안보와 국민총화를 강조하면서 고도국방체제를 표방한 일제말 전시 총동원체제와 유사한 경향으로 나아갔다.』

(박한용 민족문제 연구소)

『1963년 야권에서 선거직전에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과 일본군 장교 출신이라는 점을 폭로해 박정희의 친일 경력이 공론화됐다. 경제성장의 효과를 바탕으로 박정희의 독재체제가 강화됐고 독재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친일세력의 지배구조 또한 안정화됐다.

결국 유신체제는 친일세력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박정희 정권이 친일세력을 근간으로 설립했고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해 유신체제까지 이르게 됐다』

(박수현 민족문제 연구소 책임연구원)

『1975년 2월 12일 유신체제하 국민투표에서는 대통령의 연임을 묻는 국민투표일에 공명선거는 말살하고 대리투표가 전반이며 현 정부의 홍보활동으로 개표는 하나 마나다. 참다운 민주주의는 어디 가고 부정투표의 현황이다.농민들의 동의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농촌사회의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의 이면에는 조직적인 선거부정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 김영미 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