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동족 대결 5년 심판하여 10.4선언 되살리자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한계령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밀리미터의 차이로 동해와 서해로 흐르는 것은 자연 세계의 법칙성 때문이다. 그러나 5년 전, 남북사이 화해 협력 10년을 뒤집고 동족대결 5년을 자초한 것은 잘못된 선택의 유권자 의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평화 통일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외세 공조와 반북 대결을 이어가며 자칫 끔찍한 동족상잔의 되풀이를 감당할 것인지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 바로 돌아오는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어떠한 참정권 행사를 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할 것이다.

되새겨보는 10.4 선언의 의의

이러한 역사적 판단을 눈앞에 두고 다시 10.4 평화 번영 선언 5돌을 맞게 되었다.

7천만 온 겨레에게 벅찬 감격과 희망을 안겨주었고, 전 세계가 기립박수로 지지 환영했던, 그리하여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위험성은 가시고 평화와 통일로의 민족적 슬기와 자긍심을 갖게 했던 합의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한 미 동맹 강화와 동족 대결정책에 깔려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아니 10.4 선언이 있기까지의 선행합의들이었던 7.4 남북공동성명도 남북기본합의서도 6.15 남북공동선언도 하나같이 갈갈이 찢겨 내팽개쳐졌다.

10.4 선언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란 조국통일 3대원칙과 상대의 제도와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약속 그리고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연합 연방제’로, 평화적 통일을 하기로 한 앞서의 통일 대강에 대한 실천강령이었다. 남북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없애고, 우발적 충돌조차 미리 막으며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의 구체적 기구와 실천방안들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또 다시 서해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대결이 이어지는 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우발적 충돌조차 대결국면에서는 전면전으로 당겨질 수 있다. 이미 이명박 정부 들어 대청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이 있었다. 또한 천안함 침몰사건을 과학적 또는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북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있는가 하면 양측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이 겹쳐지고 있으며 첨단무기의 집중배치와 새로운 전투부대 창설 등으로 서해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되고 있다.

10.4 선언의 합의 가운데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합의가 실행되었다면, 서해5도 주민들뿐만 아니라 온 겨레가 가슴 쓸어 내리는 전쟁의 위험성은 영원히 사라졌을 터였다.

그러나 앞서의 모든 남북합의와 함께 10.4 선언이 동족대결의 보수 집단에 의해 잠시 빛을 잃고 있을 뿐, 민족의 존엄과 이익,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민중들의 가슴속에서는 더욱 굳건히 더욱 깊숙이 뿌리를 내렸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오는 대통령선거의 참정권 행사에서는 지난 5년 동안 이어진 반동의 시대를 준엄하게 심판하여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으로 가는 실천강령으로 이 선언을 다시 8천만 온 겨레 앞에 우뚝 세워야 할 것이다.

10.4 선언의 주요 내용과 실천 과정

이제 이 역사적 선언에 대해 이미 다 알려졌지만 반드시 되살려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요약하여 점검하고 그 진행과정을 알아보며 평화통일 지향의 차기정권이 남북관계 발전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몇 가지 과제(현안)를 짚어보기로 한다.

남북(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 선언(10.4 선언)’은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남북 최고 수뇌가 합의한 8개 항목과 별항으로 되어 있다.

8개 기본항목은 △6.15공동선언 구현과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상대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통일지향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 정비, △불가침 의무 준수―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추진―11월 중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 추진, △현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3자 혹은 4자(국) 정상들의 종전 선언 추진,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사업,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와 각종 경제협력 사업 추진, 남북(북남) 경제협력 추진위원회를 남북(북남)경제협력 공동위원회로 격상, △사회문화분야의 교류 협력―백두산 관광과 백두산 직항로 개설, △인도주의 협력사업 적극추진과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 확대(금강산 면회소에서의 상시 면회), 자연 재해 등에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 원칙에서 적극 협력,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존엄과 이익, 해외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별항에서는 남과 북(북과 남)이 이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남북(북남) 총리 회담(1차)을 11월 중 서울에서 갖기로 했고, 남북(북남) 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했다.

이러한 합의는 곧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2007년 11월 14일 서울에서는 ‘남북(북남, 이하 남북으로) 총리 회담’이 열려 ‘남북관계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에 관한 제1차 남북총리합의서’를 채택했다.

8개조 48항에 이르는 각종합의에는 6.15를 민족공동기념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채택, 2008년중 공동어로 사업 실시, 해주 경제특구 건설,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 보수 착수, 남포와 안변의 배수리공장 설비 현대화기술 협력사업, 2008년 안에 개성공단 2단계 공사 착공,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열차 운행에 관한 기본합의서 채택, 개성공단 3통문제 해결, 단천지구 광산 등 지하자원 개발협력 사업추진,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채택,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사회문화 협력추진위원회 구성, 금강산 면회소 준공, 2008년 새해를 맞아 흩어진 가족 친척 영상편지 시범적으로 교환 등을 합의했다.

또한 2007년 11월 27~29일까지 평양에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열고, 7개조 21항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장관급회담합의서’를 채택했다. 바로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긴장완화 평화 보장을 위한 실제적 조치, △전쟁 반대―불가침의무 준수를 위한 조치, △서해 해상충돌방지 평화보장을 위한 실제적 대책, △현 정권체제 종식―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군사적 상호협력, 남북교류협력사업 군사적 보장조치 등이다.

이밖에도 2007년 12월 4~6일까지 서울에서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를 열고 ‘남북 경제협력 공동위원회 1차 회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9조 17개 항으로 된 합의 내용에는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성-신의주 철도 개 보수 적극 추진, △안변, 남포지역 조선협력단 건설―해주직항로 적극 협력, △개성공단 활성화 추진, △자원개발 협력사업, △농업, 수산업 협력사업, △보건 의료 환경 분야 협력사업, △수출 및 투자확대를 위한 다양한 협력 방안 등의 세부 사항을 합의했다.

또한 2007년 12월 29일 남북은 개성에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추진위원회’제1차 회의를 갖고 5조 12항으로 된 합의서를 채택했다. 여기서는 △해주특구 건설, △해주항의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공동개발,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설정 문제, △한강 하구 단계적 개발 공동이용문제의 세부사항과 해주특구 해주항 개발협력, △한강하구 협력, 공동어로 협력 등 각분과위를 구성했다.

이처럼 6.15 공동선언으로 활짝 열릴 남북사이 화해와 단합, 교류 협력 사업은 10.4 선언으로 더욱 구체화되면서 총리급 회담을 비롯한 부총리급, 장관급 등 고위 당국자 대화가 이어졌으며, 당국 차원의 위에서 밝힌 각종 협력 사업이 봇물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민간부문의 경제협력사업, 6.15 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를 축으로 한 각 부문단체 등 사회문화 교류사업과 인도주의 협력사업이 실천되고 있었으며, 금강산 개성관광이 활성화되고 개성공단에서 남과 북 근로자들이 만든 제품이 서울에서 불티나게 팔리곤 했다. 한 해 동안에만 수십만 명이 북과 남으로 오가는 가운데 불신의 벽은 깨어지고 동포애 넘치는 신뢰가 쌓여지며, 같은 피와 문화로 수천 년을 살아왔던 민족 고유의 동질성도 회복되고 있었다. 사실상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의 자주통일 염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10년 공든 탑 무너뜨린 이명박 정부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10년간 쌓아온 교류 협력의 공든 탑이 무너지게 되었다. 6.15, 10.4 선언을 전면 부정 백지화시켰고, 당국간 대화가 끊겨졌다. 남북사이 모든 합의는 차례로 파기되었으며 민간 부문의 경제협력사업, 사회문화교류사업, 인도적 협력사업조차 제동이 걸렸다. 금강산 개성관광길이 끊겼고, 남북으로 흩어져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 친척들의 상봉사업도 금강산 면회소도 문을 닫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인수위 때부터 통일부를 아예 없애려다 사회여론에 못 이겨 겨우 존속을 시켰지만, 반통일대결부 역할을 하게 하였다. 한 예로써, 2008년 2월 5일 대통령직 인수위가 이명박 당선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3차 국정과제 보고에서 국정과제의 핵심 10개 항목의 첫째가 북핵폐기의 우선과제였고, 둘째는 비핵-개방 3000구상이었으며, 셋째는 한미동맹 강화였다.

이처럼 이명박 한나라당(새누리당도 같음)은 ‘비핵 개방 3000구상’,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 ‘기다리는 것도 전략’,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말하면서 앞선 정권의 남북합의를 짓뭉개면서 반북대결 정책으로 집권 5년을 일관했다.

그 정도만이 아니었다. 입만 열면 북의 변화를 말하고, 급기야는 북정권 붕괴와 비상통치계획인 ‘부흥’, 북의 급변사태를 상정한 ‘통일대비 탐색연구’, ‘남북공동체 기반조성 사업’, ‘통일세’, ‘통일대비교육’ 등 노골적인 흡수 통일 망상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경제적으로 압살하기 위해 금강산 관광과 경제협력 차단, 인도적 협력사업과 일체의 식량지원을 끊었다. 군사적 압박으로는 작전계획 5027, 5029 등 북정권 붕괴를 노린 외세와의 공조 속에 북침전쟁 연습을 쉴 새 없이 감행했다. 이전 정권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배치된다 하여 유보하고 있었던 국제무대에서 북인권 문제를 공동제안하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직접 참여 주도하기까지 했다. 대북체제 비방방송과 삐라 살포 등으로 남북사이 합의를 깨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 같은 동족대결정책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에 대한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을 짓밟은 반민족 범죄 행위이면서 남북 모두에게 엄청난 대결비용을 떠안게 했다. 특히 5 24 조치 이후 남북 사이의 모든 교류와 교역이 차단되면서, 북측뿐만 아니라 남측의 경제적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남북경제협력 연합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남측의 경제손실액이 82억7026만 달러라고 했으며(2012년 8월1일), 5 24 조치 이후 지금까지 800여개의 경협업체가 도산했거나 폐업위기에 몰려있다고 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4년 동안 현대아산은 5천600억 원 협력업체는, 2천200억 원, 고성지역경제는 1400억 원의 총손실을 보고 있다(현대경제연구원).

이처럼 남북합의를 무시, 외면하면서 남북관계를 파탄 낸 이명박-새누리당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유권자의 올바른 참정권 행사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세공조, 동족대결의 사대매국정권이 아니라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지향하는 통일대통령을 반드시 뽑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역사의 반동을 허용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평화통일 지향 정권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몇 가지 과제

다만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차기정권이 들어서고, 남북사이의 모든 합의를 이어간다 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과제(현안)를 염두에 두고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먼저 국가보안법 폐지이다.

10.4 선언 둘째 항목에서도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하기로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상대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지적한 것이다.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수많은 통일애국인사들을 사법살인하고, 감옥에 보내며, 자주통일운동 자체를 탄압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규약, 그리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 양심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학문 예술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한국진보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평화와 통일운동 단체에 대한 공안탄압이 이어졌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통일의지를 표현한 수많은 사람들이 법정에 세워졌다. 6.15 공동선언을 지키기 위해 방북했던 한상렬 목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조의방북했던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도 철창 속에 갇혀있다.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서는 자주통일도 민주주의 발전도 인권개선도 바랄 수 없다.

다음으로 서해 해상 경계선 확정 문제이다.

남북사이 화해 협력 관계가 이어진다 해도 분단 상태로 있는 이상 서로 다른 해상 경계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보아왔듯이 분쟁의 소지가 남게 된다. 10.4 선언에 따라 어로공동수역과 평화수역 등,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가 설정된다 해도 기본적인 해상경계선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서해에는 1953년 8월 30일 당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남측 선박의 북으로의 항해를 제한하기 위해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연안을 따라 일방적으로 그은 이른바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ed Line)이 있고 북측이 주장해온 ‘서해5도통행질서’에 따른 임진강 하구를 기점으로 북측의 등산곶과 남측의 굴업도, 북측의 옹도와 남측의 서격결비도, 서엽도 사이의 등거리 점을 선으로 그은 서해 해상경계선이 있다. 이 같은 서로 다른 주장은 두 번에 걸친 연평대전(1999년과 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 그리고 연평포격전(2010년)이 벌어지게 했다. 남북은 앞으로 있어야 할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정과정(또는 그 이전에) 서로의 주장점과 국제해양법 등을 참고한 평화와 통일 지향의 슬기를 모아 해상경계선을 확장하여 더 이상 서해에서의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핵문제 해결방식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5년 동안 단 한 차례의 남북당국사이 대화를 못한 것은 이른바 ‘북핵폐기 우선과제’란 비현실적인 고집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의 핵문제의 본질은 핵을 가진 미국의 핵을 갖지 않은 이북에 대한 핵공격 위협에 맞서 방어적 핵 억제력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전쟁 시기부터 핵공격 위협을 했고(맥아더 회고록), 1958년에는 정전 협정을 어기고 휴전선 남쪽에 핵무기를 배치했으며, 1987년 이후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는가 하면, 팀스피리트 등 잇단 핵선제공격 연습을 해왔다.

특히 부시 정부는 북을 ‘악의 축’이라며 핵공격 계획을 세웠고(2002년 - 핵태세검토보고서 : NPR), ‘핵없는 세계’를 주장해온 오바마조차 2010년 4월 6일 NPR 보고서를 다시 발표하면서 유독 이북과 이란 만을 핵무기 불사용 대상국에서 제외시켰다.

핵무기는 만들거나 그것으로 위협하거나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이상이다. 그러나 주권국가로서 존엄성과 자주권 그리고 생존권을 지키는 것은 유엔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주권 평등의 원칙, 국가의 영토 보존이나 정치적 독립, 무력위협으로부터 방어해야 할 정당한 권리이기도 하다.

남과 북, 미 중 러 일은 2005년 제4차 6자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은 한반도에서의 핵문제 해결의 가장 합리적 방법이라고 평가되었다. 요약하면 북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무기 비확산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기로 했고, 미국은 한반도에 핵을 갖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 없음을 확인했으며, 남은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북 미간 상호 주권 존중, 평화적 공존, 관계정상화를 약속했고, 북 일은 평양선언에 따라 관계정상화 조치를 약속했다. 참가국들은 북에 대해 에너지 지원, 남한은 북에 200만 kW 전력지원 등을 합의했다. 그리고 6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으로 이행하기로 했다.

이 약속대로만 했다면, 이미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6자회담 2단계 조치를 이명박 정부와 일본이 결정적인 훼방을 한 이후, 아직도 회담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 새 정권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에서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고, 6자 회담을 통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다만 한반도 핵문제의 열쇠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관계정상화를 하는데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현안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돌아오는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의 동족대결정책을 엄중히 심판하고, 평화와 통일지향의 참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