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평등사회에서만 바로 《본다》

  

흉악범얼굴 공개할건가 말건가

 

련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할것인가 말것인가? 《한국》언론재단이 2 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쎈터 12층에서 언론의 범죄피의자얼굴 공개와 인권에 관한 토론을 벌렸다. , , 동 등 《한국》의 보수신문들은 강력범들의 얼굴공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진보성향의 언론 및 방송들은 이를 반대하고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선 이런 론쟁이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흉악범들자신들이 자기들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는것을 개의치 않기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피의자자신이 먼저 얼굴을 들지 않고 혹은 못하고 스스로 감추려 하는데서부터 문제의 원인이 생긴다. 얼굴공개반대에 대한 가장 큰 리유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흉악범과 인상착의가 같은 사람이 선의의 피해를 입을수도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리유모두가 《한국》과 서양에서 얼굴을 《본다》는데 대한 인식차이때문이라는것이 분명해진다. 즉 동양에서는 흉악범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가족공동체와 동일시하거나 같은 인상착의의 모든 인간을 같은 동류로 보는 이것, 모두가 결국 《나》라는 개인의식이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에 제압당하기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문제의 관건은 근본적으로 《본다》는 말의 의미의 차이에서 생각을 정리하는것이 순서일것이다.

 

동양의 《본다》와 서양의 《본다》의 차이

 

서양에서 흉악범들이 자기 얼굴공개를 꺼리지 않는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말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영어의 see look watch 등은 모두 주객이 선명하게 나뉜 상황을 전제한다. 보는쪽과 보이는쪽이 분명하게 나뉘여져 그사이의 혼동이란 있을수 없다. 그래서 내 얼굴이 네 얼굴일수 없고 네 얼굴이 내 얼굴일수 없다.

《판옵티콘》은 《옵티콘》의 《본다》와 《모두(pan)》의 합성어이다. 서양철학에서 《본다》는 기능은 지금 혐오와 청산의 대상이다. 그리스의 《에이도스(eidos)》로서 이 말에서 플라톤의 idea 즉 관념이란 말이 유래한다. 옵티콘은 눈이 대상을 일방통행적으로 보는 행위로서 이 말은 결국 서양철학을 주객이원론의 함정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다. 사실 푸코의 판옵티콘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서양철학의 이러한 본다는 행위의 감시자기능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감시자가 피감시자를 일방통행적으로 본다는, 다시말해서 감시한다는데 그 리유가 있다. 이에 대하여 프랑스의 녀류신학자 일리가리는 보는 《시각》을 《촉각》으로 대치할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있다

서양의 이러한 《본다》에 대하여 한문의 본다에는 《견(), (), (), 《망(), 《간()》 등이 있다. 한의사가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진단하는것을 망진(望診)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본다는 말이 한문에 많은것은 인간이 보는 시야의 범위와 차이때문이다. 견은 주견이나 견해에서 보는바와 같이 보는 주체에 방점을 두는것이고 시는 주시나 감시같이 보이는 대상에 방점을 두는것이다. 바로 판옵티콘의 본다에 해당하는것은 시이지 견이 아니다. 그러나 견이나 시모두 일방통행적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주에서 객으로 향하든 그 반대이든 비대칭적일방통행적이다.

서양에서는 본다에서 주객을 상호교통시킬수 있는 본다라는 말이 없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를 본다고 할 때에 본다는 말의 비대칭적인 구조라 한다. 범시가 진화를 하면서 대칭적구조로 바뀌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생긴다. 대칭성이란 보면서 동시에 보이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감옥에서 간수가 죄수들을 보는 동시에 죄수들에 의해 간수가 보인다는것을 두고 대칭적이라고 한다. 이제 범시 혹은 판옵티콘이 벤담과 푸코를 넘어 또 다른 진화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는것이다.

그런데 동양에는 본다는 의미의 관()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와 견을 상호련관을 시켜 비대칭적구조를 파괴하는 구조를 암시하고있다. 불교 반야심경 첫 구절인 《관자재(觀自在)》라고 할 때에 이 말은 《스스로의 자기를 본다》를 의미한다. 여기서 견이나 시를 사용하지 않고 관이라고 한것이다. 관은 시와 견과 달리 자기가 자기자신을 본다는것이다. 그럼 객관적대상을 보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자기가 자기를 먼저 대상화하여 먼저 보고 다시 그렇게 본 자기를 대상과 겨냥하는것을 두고 관이라고 한것이다. 시와 견과는 달리 중층구조를 가지고있는것이 관이다.

이러한 관은 360°전체 방향을 다 보는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시와 견은 그 반정도의 시야를 갖는 말이다. 시와 견은 자기자신의 봄, 자기 공동체안의 봄이라는 내재화를 할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재화는 범시의 의미를 벤담이나 푸코를 넘어서게 한다.

지금까지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판옵티콘》이란 말은 《범시(凡視)》라고 하는것이 적합하다고 본다. 판옵티콘은 《다봄》이라는 뜻이지만 비대칭적으로 보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서양언어의 본다는 말의 일방통행적비대칭성은 판옵티콘의 진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즉 범시로서 판옵티콘은 1990년대이후 감시로서의 판옵티콘이 전자통신의 혁명과 함께 초()-범시(superpanopticon), ()-범시(synpanopticon) 그리고 역()-범시(reversepanopticon), ()-범시(postpanopticon) 등으로 진화한다.

이렇게 말을 비교해놓고보면 우리가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 못하는 리유도 분명해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저 흉악범의 얼굴이 다름아닌 나자신의 얼굴이라는 주객비분리적 관의 립장에서 보면 흉악범얼굴공개는 나자신의 얼굴공개와 같기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관이 없는 서양에서는 나-너의 분리가 분명하기때문에 너를 나와 동일시할 아무런 리유가 없다. 심지어는 아버지와 아들의 얼굴이 아무리 닮았다 하더라도 서양에서는 아들이 범인이라고 해서 아버지도 그럴것이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가족이라도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같은 가족성원이 고발한다. 동양은 이미 일찌기 주객이 쌍방향적으로 보는 역-범시와 등-범시에 익숙해져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탈-범시의 순간에 서있다.

 

자본주의사회에 먼저 찾아온 《1984년》

 

오웰이 1948년 소설을 쓴 곳은 먄마였고 당시 먄마는 《사회주의》체제였다. 그래서 그는 먄마《사회주의》체제를 눈으로 목격하면서 이 1984년을 썼다고 한다. 1984 1948을 뒤집은 수자이다. 소설에 나오는 태형(Big Brother)은 공산주의사회의 독재자라고 하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오웰이 예언한 1984년은 자본주의사회에 더 먼저 찾아왔다. 그의 예언이 적중한 곳은 차라리 자본주의국가에서였다. 소설을 쓴 직후인 1950년대부터 콤퓨터에 의한 자료감시(dataveillance)라는것이 가능해졌고 이런 감시망은 자본주의정부, 기업, 은행 등에 적용되였고 심지어는 상용화까지 된다. 미국의 경우는 이런 전자감시망을 FBI가 리용하기 시작한다. 이런 콤퓨터에 의한 감시이외에 1984년의 원거리감시경(telescope)에 근접한것은 전자기기에 의한 감시이다. 그 대표적인것이 바로 페쇄회로감시 CCTV이다.

지금 우리는 거리의 CCTV가 련쇄살인범을 잡는데 수훈을 세운 이후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고 공감대를 이루고있다. 이에 《정부》 여당은 박차를 가하고있다. 지금 리명박《정부》의 독재가 성공 못할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그 반대로 성공할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금 거리데모현장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소위 채증이라는것이 있어서 시위군중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카메라에 잡힌다. 채증에 의해 불법시위고지서가 집에 날아올 때에는 시민들이 앞이 캄캄해진다고 한다. 100만원 내지 200만원은 보통이고 단체 같은 경우는 수천만원의 고지서에 시달리고있다. 19601990년대 시위는 차라리 랑만적이였다.

공산주의사회가 아닌 자본주의사회에서 오웰의 예언은 적중하고말았다. 2001년 《남한정부》는 한 개인의 혈액형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는 전자건강보험증을 만들려 하다 거센 여론에 직면하여 포기하고말았다. CCTV란 일명 페쇄회로TV이다. 1967년 포토스캔회사에서 발명했다. 한자리에 고정돼있으면서 근거리를 감시하는 TV이다. 그러나 GPS 즉 위치추적장치는 24시간 지구주위를 도는 24개의 위성으로 우리가 어느곳에 있든지 모두 감시할수 있어서 2002 3월 미국 남가주에서는 처음으로 성폭행 가석방범을 24시간동안 이 항법장치가 감시할수 있었다. 거기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언젠가 자기도 당할지도 모른데도 말이다.

영국에서는 500개이상 도시에 모두 2백만대이상의 CCTV가 작동중이다. 9. 11이후 미국은 지하철과 학교에만 500만대이상의 CCTV를 설치하였다. 이제 남《한》에는 뻐스기사의 삥땅까지도 감시할 정도이고 병원은 간호원의 손놀림까지도 감시하고 공장에서는 RF(Radio Frequency)라는것을 도입해 50m이내에서 인간이 움직이는 모든 행동을 감시할수 있다고 한다. 벤담이 꼭 중앙감시탑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필요없다. 례를 들어 기동순찰경찰은 길거리에서 차량번호만 입력을 하면 그것이 도난차량인지 아닌지를 그자리에서 확인할수 있다. 모든 곳이 중심이 되여버린 범시가 등장한것이다. 이 정도면 서울이 아닌 평양을 가야 더 자유를 만끽할수 있다는 소리가 나올법 하게 되였다.

 

역-범시의 등장과 초-범시

 

조지 오웰도 예측하지 못했던것은 그의 텔레스코프가 적어도 3단계로 진화하고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디스토피아적인것만은 아니라는것도 암시하고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감시를 당하면서 감시를 해달라고 자기 정보를 감시자에게 스스로 주고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벤담도 푸코도 알지 못했던 점이다. 지금 휴대전화나 인터네트를 사용하자면 가입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때에 나의 많은 정보를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해킹을 당할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감시당하는 사람이 감시에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주는것》, 이것을 소위 수퍼-판옵티콘 혹은 초-범시라고 한다.

초-범시는 벤담과 푸코의 판옵티콘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는다. 두사람은 모두 감시자의 립장에서 보는것에만 관심을 기울였지만 1960년대이후부터 전산 그리고 전자산업의 발달로 피감시자의 립장에서 보는 혹은 감시하는 기능도 함께 발달등장하기 시작한다. 거듭 말해 피감시자가 자발적으로 감시행위에 참가하는것이다. 감시를 즐겨 받음으로써 돌려받을 리익이 더 크다고 생각하여 자기에 관한 신상정보모두를 감시자에게 즐겨 넘기는것이다. 이런 초-범시를 정의하면 《보는것에 심취한 나머지 보이는것에 신경쓰지 않음》과 같다. 디즈니랜드 놀이터나 유명연예인을 보기 위해 깔려죽을 각오를 하고도 모여드는 《리얼리티 쇼》같은것이다. 이를 《중인환시(衆人環視)》 혹은 《스펙터클(spectacle)》이라 하며 초-범시라 번역한다.

오웰이 못본것 가운데 하나가 인간은 스스로 감시당하고 보이기를 원하는 본능이 있다는것이다. 이런 감시당하고싶은 본능에서 스펙터클이 가능해진다. 연예인들일수록 중인환시에 환장이 날 정도이다. 그래서 사생활을 고의로 언론에 흘리기도 한다. 푸코는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들어 스펙터클사회가 감시사회로 변했다고 했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는 전자, 전산사회로 변하면서 스펙터클과 감시의 사이가 불분명해지고말았다고 한다. 둘이 하나로 뭉개지면서 범시는 등-범시가 된다. 등-범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난것이 바로 역-범시이다.

이번 룡산참사에서 용역깡패의 살수장면촬영은 역감시의 좋은 례이다. 백인경찰의 로드니 킹이란 흑인구타장면을 촬영한 장본인은 일개 시민이였다. 이 사진 한장이 없었더라면 이 사건은 덮여지고말번 하였다. 역감시의 좋은 례이다. 《청와대》에서 이메일발송발각도 모두 역감시의 덕분이다. 벤담도 쇠관을 통해 간수가 죄수와 통화하는 통로를 만들려 했지만 역으로 죄수가 간수에게 말할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페기하였다. 벤담의 판옵티콘은 결코 이런 역감시를 허용하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감시는 있어도 역감시는 없다. 그러나 전자산업은 역감시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그의 판옵티콘은 비대칭적일방통행적이였다. 역감시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려 출발했지만 지금 조, , 동은 오히려 감시의 대상이 되고말았다. , , 동을 감시하는 언론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서프라이즈》 등 전자매체언론은 역감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한국》의 《참여련대》나 《경실련》같은 시민단체의 역감시역할은 세계적이다. 리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역감시장치의 뿌리를 뽑으려고 지금 서두르고있다.

 

《우리가 오히려 당신 태형(Big Brother) 감시하고있다》

 

범시가 감시자에서 피감시자에로 향하는 일방적감시라면 역감시는 그 반대로서 일방적이다. 여기서 쌍방향적보기와 감시가 자연히 대두될수밖에 없다. 이런 쌍방향적인것을 바로 《신-판옵티콘(synpanopticon)》 혹은 《등-범시》라고 한다. 역감시는 공개되는 정보에 한에서만 감시를 할수 있다. 힘과 권력을 모두 가지고있는 상황에서 역감시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2001년 정보공개법개정안을 놓고 론난이 된적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찬성할리 없었다. 미국 FBI의 도청장치를 카니보어나 에쉘린이라고 하는데 시민들은 이의 공개를 강력히 요청했지만 FBI가 말을 듣지 않자 1999 10 22일을 《에쉘린파괴의 날》로 정하고 전세계해커들이 총동원하여 인터네트를 마비시키고 주요정보를 파괴하고말았다.

《한국》에서 리명박《정부》가 지금 시도하고있는 《정보통신법》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앞으로는 《한국》내뿐아니라 전세계전자시민들(네티즌)이 공동으로 등-범시를 만들어나갈지는 큰 과제가운데 하나이다. 등-범시는 결국 힘의 균형과 권력과 경제력 등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가 평등해야 하고 평균적이여야 함을 전제한다. 다시말해서 서로 쌍방향으로 감시하자면 감시도구와 장치조직력 등이 균등해야 하는데 지금 《실용정부》는 이를 파악, 시민단체들에게 돌아가던 모든 예산을 삭감 내지 페기하고있다. 그리고 초불시위에 참가하였다고 하여 무려 1 400여 시민단체들을 불법집단으로 규정하고있다. 쌍방향감시의 균형이 엄청나게 무너져내리고있는 순간이다.

2009년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역-감시를 해낼수 있느냐의 시금석의 해이다. 지금 MB가 점점 태형으로 변해가고있다. 1998년 메히꼬에서 반군지지자들은 《우리는 당신 태형을 감시하고있다.》라는 구절로 정부전자집을 해킹해버렸다. 시위현장에서 경찰들의 한무리는 시위자를 채증한다. 시위자들도 역으로 채증을 한다. 그러나 한쪽은 힘을 가지고있지만 다른쪽은 그렇지 않다. 이런 힘의 불균형속에서 쌍방향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결국 범시의 문제는 한 사회의 평등과 균등의 문제로 귀착되고만다.  

 

중인환시속 《아리랑》축제

 

여기까지와 우리는 벤담이 18세기말에 좋은 의미로 구상한 판옵티콘이 결국 《본다》는 철학의 근본문제와 우리 사회의 구조문제와 련관이 되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오웰의 《1984년》은 사회주의국가가 아니고 차라리 자본주의국가에 해당되는 예언이라는것도 새삼 알게 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1984년》의 영사라는 사회는 북 사회, 태형(Big Brother)은 수령 그리고 평양거리에는 텔레스코프로 치장되여있을것이라 생각했을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반대로 되여가고있다.

이 마당에 북의 생각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이란 말을 판옵티콘과 련관시켜 한번 생각해보자. 감시와 처벌이 가장 심한 사회는 군대병영사회일것이다. 병역기피를 하려는 가장 큰 리유는 아마도 개인의 사생활이 감시당하고있는것이 싫어서일것이다. 그러나 보라. 항일유격대원들은 징병도 모병도 아닌 본인들스스로가, 남녀로소가 자진해서 참가한 대원들이다. 심지어는 10살전후의 소년대원들은 부모의 만류와 유격대장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유격대에 합류한 대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항일유격대는 초-범시 혹은 수퍼-판옵티콘의 사회였다. 해방후 이런 유격대원들이 입국하여 이들이 주축이 되여 나라를 세웠다. 그런 의미에서 초-범시적 대스펙터클사회이다.

이들이 만드는 정치는 그래서 《리얼리티 쇼》와 같았다. 깔려죽을 각오를 하고 공연장에 몰려드는 젊은이들같이 인민대중들은 나라세우는데 신명나있었다. 《아리랑》축제에 어린아이들을 강제동원했다고 하지만 이들은 공연을 초-범시적으로 자기 정보를 주고 스스로 관람하고 공연도 하는 중인들의 환시속에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들이 과연 감시속에서 공연을 하는 벤담의 원형감옥 혹은 판옵티콘속에 있는 광대라고는 보지 않는다. 마치 서커스단의 단원같지는 않다고 본다.

 

정치생명공동체와 탈-범시

 

그리고 수령과 인민대중은 얼마나 쌍방향적인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에서와 같이 전체와 하나는 서로 상호교호작용을 하면서 서로 바라보는 수평적관계이다. 하나는 전체를 하늘같이 여기는 《이민위천》의 정신으로 그리고 전체는 하나를 태양같이 여기는 그래서 등-범시 혹은 신-판옵티콘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전체와 하나를 묶는 띠는 《일심(一心)》이다. 일심단결, 그것은 전체와 하나가 다시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있는 단위생명체라는것이며 이를 두고 《정치생명체》라고 한다.

《본다》의 문제로 결국 다시 돌아왔다. 감시이든 주시이든 환시이든 본다는 문제는 이미 주관에 중점을 두는 견과 객관대상에 중점을 두는 시사이의 관계도 애매하고 확정을 지을수가 없다. 그리고 감시주체와 감시대상의 한계도 결정지을수 없다. 전산, 전자시대의 《본다》의 의미가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감시와 스펙터클의 관계도 서로 불가분리적이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본다의 구조는 전체와 하나의 관계로 귀결되고만다.

벤담은 자기의 판옵티콘구상이 실현되지 못함을 비분강개하면서 생을 마쳤지만 푸코는 말년에 와서 자기의 감시리론의 한계를 절감한 나머지 주저 《감시와 처벌》이후 결국 문제는 인간의 주체문제라는 착안, 《자기 개발(technologies of the self)》에 열중하다 생을 마쳤다. 그래서 푸코는 자기의 기술을 《통치의 기술(technologies of government)》과 조화시키려 노력했지만 결론을 보지는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푸코의 《자기 개발》은 고대밀교에 해당하는 령지주의에서 영성개발하는 기술과 류사한것으로 결국 《본다》는 문제가 자기를 본다는 내면화와 대상을 본다는 외면화와 분리될수 없음을 발견하고 주객합일의 자기 개발없이 통치의 기술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는 결국 공자가 이룩하려는것이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로 요약될수 있을것이다. 수신제가(자아의 기술)와 평천하(통치의 기술)를 조화시키는 요체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이다.

이것을 두고 푸코사상의 전진인지 후퇴인지는 속단할수 없다. 다만 그의 사상에 잘못이 있었던것이 아니라 이 글의 모두에서 본바와 같이 《본다》의 감각이 가지고있는 구조적인 숙명이라고 할수 있다. 본다의 애매성은 판옵티콘 그자체를 해체시키고만것이다. 그러나 이 해체의 자리는 공백이지만 거기서 주체가 움터올라오고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자아의 기술과 통치의 기술을 조화시킬것인가. 인간내면의 주체를 개발하는 기술과 천하국가통치의 기술을 어떻게 련관시킬수 있을것인가?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해져 감시하는자와 감시받는 그자체가 없어져 판옵티콘자체가 무용지물이 된 상태를 사회학자 보인은 《탈-범시》 혹은 《포스트-판옵티콘(postpanopticon)》이라 했다. 탈-범시가 나오는 배경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힘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전제로 해야 하기때문에 결국 등-범시를 이룬다는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벤담이 구상한 판옵티콘은 이러한 자본주의사회구조를 그대로 전제하고야 가능한 구조이다. 거의 250여년간 그 수명을 유지해오면서 지금 해체에 직면한 리유도 쌍방향적감시가 가능한 전자매체때문이다.

판-범은 전체와 하나의 관계의 문제 그리고 옵티콘-시는 전체와 하나사이의 관계작용이다. 그래서 판옵티콘의 철학적문제성은 전체와 하나사이의 작용의 문제이다. 판옵티콘이 문제가 되는것은 다름아닌 하나와 전체가 분리되여 서로 객관시하면서 보고있기때문이다. 하나가 전체를 감시하는 범시 그리고 그 반대인 역-범시 그리고 서로 쌍방적인 등-범시로 진화했다. 결국 하나와 전체가 력동적상호작용을 하는 관계는 전체가 하나를, 하나가 전체를 위하는 작용관계이다. 이는 이미 본다는것자체도 없어진 작용 그자체만 남는 관계이다. 이를 탈-범시라 한다.

이러한 탈-판옵티콘은 《유격대가 고기라면 인민은 바다》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될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였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였다.(1권 머리글 2페지)

1937년 천도교 교령 박인진은 김일성사령관에게 《장군도 숭상하는 대상이 있느냐?》고 묻자 《…물론 나에게도 신처럼 숭상하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이다. 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왔고 인민을 하느님처럼 섬겨오고있다. 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이다.(5 369페지)라고 대답한다.

남《한》보수들과 세계렬강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북의 진정한 힘은 핵무기도 미싸일도 아닌 지도자는 한없이 낮은 곳에 림하고 인민을 하늘같이 모시라는 이 《이민위천》, 《통치기술》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주체사상은 다름아닌 《자아의 기술》이며 《이민위천》은 《통치기술》이다. 이러한 《이민위천》과 주체사상의 결합은 인민과 지도자가 일심동체가 되게 하여 이 지구상의 무적함대로 등장하고있다.

로작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는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하자면 반드시 지도와 대중이 결합되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은 력사의 창조자이지만 옳은 지도에 의하여서만 사회력사발전에서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할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지도자의 통치기술과 인민의 주체간의 력학적관계가 설정돼있으며 이에 대한 규명이 주체사상연구의 근간이라고 할수 있다. 지도자와 인민사이는 결코 감시와 처벌이란 판옵티콘적관계가 아니다. 인민과 지도자는 상호작용 그자체만의 관계이다.

통치의 기술과 자아의 기술의 어우러짐,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사회의 눈의 가시이다. 벤담의 범시이든 전자시대의 등시이든 그 자체가 이미 인민과 대중으로부터 유리와 괴리를 전제한것이다. 《하나》와 《전체》사이의 균렬을 전제한것이다. 그 균렬자체가 없어진다면 이미 그것은 범시자체가 없어진 탈-범시이다. 인민대중을 하늘같이 여기지 않고 소모품같이 여기고 선거철만 되면 여론 조작의 수단으로 당선만 되면 공권력의 이름으로 인민대중을 폭압하는 구조속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그런 곳은 감옥의 구조이다. 감옥이 없는 곳엔 사회자체가 감옥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차별자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생명유지가 불가능한 자본주의는 병든 사회이다. 리처드 윌킨스는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2005)에서 인간의 평등과 불평등은 수명과 질병의 종류까지 결정한다고 하면서 평등하지 않으면 건강한 사회가 될수 없다는것을 주장하고있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감시받아야 하는 구조속에 우리는 지금 로출돼있다. 누가 누구를,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두고 지옥같은 동토의 나라, 감옥이라고 하는가? 인민대중이 지도자와 원쑤지간이 되고 나아가 이것이 내면화되여 인민이 인민을 서로 감시하는 그곳이 지옥이고 감옥이다.

그래서 북의 사회는 초이든 역이든 공이든 《판옵티콘》자체를 적용하는것이 무의미하다. 하나와 전체의 경계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누가 누구를 감시한다는것자체가 없기때문이다. 그곳에서 감시와 처벌의 대상은 이런 정치생명체 그자체를 파괴하려는 그 모든 외부세력과 내부세력이다. 그래서 북에서 말하는 감시라는 말자체가 남과는 다른것이다. 남에서 지도자가 국민들을 감시하거나 국민들(시민단체)이 당국자를 감시하는것으로서의 역-감시로서의 감시이지만 북에서는 그런 감시가 아닌 생명체로서의 정치공동체를 지켜내는 의미의 감시이다. 범시자체를 감시하는 메타-범시같은 CCTV가 평양에 없으라는 법은 없을것이다. 이를 체제유지라고 비난하는것은 자본주의가 보는 또 다른 눈일뿐이다. 이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뿐이다.

 

 

 

밀림이 설레인다장군님 오신다고!

 

《민생단》문제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함께 그리고 동시에 바라보는 안목이 없는 그 누구도 풀수 없는 성격의것이였다.

회고록전반에 흐르고있는 주요내용의 하나는 김일성사령관의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량면성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민생단》혐의자들을 조금만 동정을 해도 마녀사냥의 겨냥이 되는 마당에 이 혐의자들을 변호한다든지 심지어는 갇혀있는 이들을 일거에 풀어 해방시킨다는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수 없는 일이였다.

김일성주석이 1935 2월말∼3월초 다홍왜회의(일명 동만당단특위 련석대회)에 달려가 담판을 지은것은 이미 앞에서 소개하였다. 이번은 마안산으로 달려가 《민생단》혐의로 잡혀있던 아동단원들을 모두 풀어 한품에 안고가는 그 장엄한 행진에 관한 기록을 소개하려 한다. 회고록에 담겨있는 수많은 장면가운데 가장 멋있고 감격적인것으로 여겨진다. 이날을 기억하여 아마 《밀림이 설레인다》(리범수 작/유명철 곡)가 지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로 그날은 백두밀림이 설레였고 밀림의 긴긴밤은 밤새도록 노래하였다. 그리고 마안산은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이런 영웅이 또 있느냐고 울음울었다. 회고록에 적혀있는 그이상의 표현을 할수 없어서 애쓰다 결국 그대로 여기에 전재할수밖에 없었다.

  

《밀림이 설레인다》

 

1936년 초봄 아직 마안산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었지만 밀림은 설레기 시작하였다. 마안산밀영에는 《민생단》혐의로 몰려 이름도 얼굴도 없는, 그래서 인격이 없는 어린 아동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있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마안산 서쪽밀영에서 좌경분자들이 <민생단>보따리를 뒤적거리고있을 때 새봄의 눈석이조차 시작되지 않은 마안산 동쪽밀영의 음달밑에서는 수십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병마와 기한에 떨며 울고있었다.(4 354페지)

이 소식이 김일성장군이 이끄는 유격대에 알려진것은 4월 상순이였다. 유격대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백두밀림은 파도쳐 설레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장군이 다가오고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밤부터 낮까지 끝없이 밀림은 설레였다.

김일성사령관의 유격대일행이 밀영에 도착하자마자 제일먼저 달려나온 아동들은 《장군님!》 하고 부르며 앞을 다투어 귀틀집에서 쏟아져나왔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밀영의 하늘에 부딪쳐 은방울처럼 굴러가는 아이들의 웨침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불길처럼 확 타오르는 격정에 온몸과 마음을 송두리채 내맡기며 아이들앞으로 바삐 걸어갔다. 저 아이들, 저 아이들이다. 적에게 맞아죽고 찔려죽고 불타죽은 부모형제들의 원쑤를 갚으려고 천산만악과 림해설원을 지나 천신만고의 가시덤불길을 헤치며 혁명군을 따라온 아이들, 바로 저 아이들이 철조망없는 수용소와도 같은 이 몰인정하고 을씨년스러운 산중에서 <민생단>련루자의 억울한 감투를 쓰고 겨우내 설음속에서 우리를 기다려온 아이들이다.(4 364페지)

당시 마안산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부대에 의하여 건설된 밀영이 있었다. 이 마안산밀영에는 유격구가 해체되면서 갈데올데없이 문전걸식하다 찾아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온 아이들을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유격활동에 부담이 된다고 귀찮게 여기면서 돌봐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민생단》원 련루자로 몰아 박해하였다.

이를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인민의 리익우에 초혁명적인 <원칙>의 구호, <계급성>의 구호를 올려세우고 대중을 우롱하고 학대하는데 습관된 민족배타주의자들과 좌경기회주의자들은 혁명군의 짐이 된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외면하였다. 그 아이들이 가까이에 있으면 적들에게 밀영의 위치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고 자기들만의 보신을 위한 소왕국을 따로 짓고 깊은 수림속에 들어가 별거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수림언저리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 이붓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엄동설한에 풀뿌리를 우려먹으며 기한에 떠는것을 보면서도 쌀 한토리 가져다주지 않았고 의복 한벌 해입히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련민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아이들의 상처에 고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사람들, 아이들의 언손과 언 볼을 입김으로 녹여주는 사람들, 아이들이 귀엽다고 쓰다듬어주는 사람들, 아이들이 설음에 겨워 울 때 함께 붙안고 우는 사람들은 례외없이 <민생단>명부에 오르고 박해를 받았다.(4 364365페지)

이 아이들을 돌본 녀성유격대원이 바로 김정숙녀사였다. 김정숙녀사는 자기 몫으로 돌아오는 밥을 먹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이 아이들에게 밤에 몰래 먹이군 하였다. 김정숙녀사는 해방후 그때를 기억하며 자주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한다. 조국에 돌아온 이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였지만 김정숙녀사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런데 남쪽에서 혹자들은 이를 김정숙우상화라 한다. 진실은 만주벌 눈바람과 백두밀림만 알고있다. 밤은 노래한다. 무엇이 거짓인가를. 마안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이 산만이 진실을 알고있을것이다.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처럼 분노에 설레인다

 

눈덮인 마안산밀림은 폭풍처럼 분노에 설레였다. 좌경사대주의자들은 이 아동들에게 조금의 동정의 련민을 보내면 《민생단》으로 몰아 가차없이 처단해버렸다. 윤창범이 죽은 후 대리련대장이며 명사수인 김락천은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마안산으로 들어오다가 아이들의 헐벗은 몰골을 보다 못해 련대후방부 일군들이 간수하고있던 군복천으로 그들에게 옷을 해입혔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련대장에게 감사를 드리였다. 그러나 이런 선행으로 하여 김락천은 《민생단》의 모자를 쓰고 처형되였다. 아이들을 동정하는것이 죄가 되고 랭대하는것이 오히려 공으로 되는 이 밀영에서는 참다운 인간적향취, 공산주의적향취를 느낄수 없었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주먹을 부르쥐고 내앞으로 밀물처럼 육박해오는 수십쌍의 눈물에 젖은 눈동자들은 인간성을 저버리고 초보적인 인간적도리마저 저버린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고있었다.(4 365페지)

《나는 아이들의 옷차림에 주의를 돌리였다. 옷이란 명색뿐이였지 사실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나 다름없었다. 불에 타고 찢겨지고 닳아떨어진 그들의 옷은 옷이라기보다도 차라리 넝마나 걸레짝에 가까운것이라고 말할수 있으리만큼 람루하였다. 수개월동안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주림과의 싸움을 부단히 벌려온 아동단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백지장처럼 창백하였다.(4 366페지)

《그런데 혁명을 하겠다고 이 산중에까지 따라온 아이들에게 어떻게 <민생단>의 껍데기를 함부로 뒤집어씌워놓을수 있단 말인가. 그래 그 모지락스럽고 얄미운 인간들한테는 저 아이들이 <민생단>이 아니고 <민생단>일수도 없다는것을 판단할 능력조차 없으며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돌보아줄 한가닥의 자비심이나 동정심마저 없단 말인가. 인간해방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결심이라고 맹약한 사람들이 인간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자립성이 약한 어린이들을 어쩌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방임해둔단 말인가.(4 367페지)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쳐 설레인다/ 백두의 밀림이 폭풍쳐 설레인다/ 수령님품에 자란 억만의 대오처럼/ 대지를 뒤덮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밀림이 설레인다》 3절중에서)

 

밤이나 낮이나 끝없이 설레인다!

 

밀림은 고발한다. 몸속에 피 한방울 없는 좌경사대주의자들을 고발한다. 《어른은 아이의 아버지》인것을,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저 자칭 공산주의자들은 혁명할 자격이 없다고 고함친다. 저런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이라면 저런자들과는 혁명은커녕 한상에 밥도 같이 먹지 않을것이라 다짐한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사령관이 다른 공산주의와도 스스로 차별화하는 진정한 주체사상의 유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아이들이 없는 세계는 태양이 없는 세계>라고 한 명언속에는 후대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격조높이 고동치고있는가.(4 368페지)

《인류가 기억하고있는 동서방의 모든 위인들은 누구나 다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미덕중의 미덕으로 간주하여온 아이들의 진정한 벗이였고 스승이였고 어버이였다.

그런데 귀족도 아니고 부르죠아지도 아닌 마안산의 주인들, 입만 벌리면 인간성을 운운하고 인간해방을 념불처럼 외우는 이 밀영의 공산주의자들은 어찌하여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는단 말인가!

《나는 치미는 분노를 걷잡을수 없었다. 혁명 그자체를 생명보다도 더 신성시해온 어린것들의 깨끗한 신념이 망울채로 저렇게 무참히 짓밟힌다는것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였다. 나는 저 아이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저 어린것들이 처창즈에서 어른들과 함께 어떻게 기아를 이겨냈고 내도산에서 인민혁명군을 도와 어떻게 주먹밥을 날랐고 어떻게 철야보초를 섰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아이들이 엮어온 그 개개의 자서전은 소설의 줄거리처럼 내 머리속에 죄다 선명하게 새겨져있었다.(4 369페지)

큰 아이들의 겨드랑이밑에서 비에 젖은 햇병아리처럼 온몸을 오들오들 떨며 언 손으로 무르팍의 살을 가리고 서있는 백초구출신의 아홉살내기 리오송의 경력만 보아도 마안산의 아이들이 겪어온 천신만고의 준엄성을 능히 판단할수 있을것이다. 그 아이는 벌써 처창즈에 있을 때 집단적인 아사를 체험하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리오송도 배가 고플 때마다 동면중의 개구리를 잡아먹든가 봄파종을 한 밭들을 돌아다니며 씨종자를 파먹었다. 김정숙녀사는 그때에도 처창즈현장에서 이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 하도하도 먹을것이 없어서 처창즈일대의 식물이든 동물이든 살아있는것은 다 잡아먹었다고 한다. 처창즈산하의 풀뿌리를 후벼잡고 흘린 눈물은 강물이 되여 흘렀다.

리오송의 아버지도 처창즈에서 아사로 인생을 마쳤다. 오송이가 밭에서 보리이삭을 잘라다가 거스러미를 비벼없애고 줌에 채 차지도 않는 낟알을 아버지의 입에 놓아드리였지만 죽음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리오송은 어린 누이동생과 함께 초근목피로 보리고개를 넘기다가 내도산으로 철거하는 인민혁명군을 따라 처창즈를 떠났다. 그러나 그도 김락천의 처남이라는 리유로 《민생단》혐의를 받고있었다.

 

밀림이 설레인다 폭풍처럼 설레인다

 

백두의 밀림이 폭풍쳐 설레인다. 대지를 뒤엎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 손명직을 단장으로 하는 14명의 아동단원들은 내도산으로 가는 수백리 로정에서 조직생활을 통하여 부단히 련마해온 백절불굴의 투지와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앞에서는 허리를 치는 눈무지와 가파로운 산고개들이 길을 막아나서고 뒤에서는 《토벌대》의 무리들이 발목을 물고 늘어졌다.

행군의 첫날에 먹을것은 바닥이 나고말았다. 배고프면 솔잎을 뜯어 씹든가 눈빵을 빚어 그것을 한입씩 떼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군 하였다. 강냉이떡 한개를 가지고 14명이 한끼를 굼때는 날은 그래도 잘 먹는 날이라고 할수 있었다. 밤에 야숙을 할 때마다 손명직, 주도일, 김태천을 비롯하여 체통이 큰 상급반 아이들은 10살미만의 나이어린 아동단원들을 엄지닭처럼 품고 앉아 몸으로 바람을 막아주며 잠간씩 눈을 붙이고는 교대로 주변을 감시하군 하였다. 이들은 여기서 동지애를 길렀으며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이때에 안은 동지애는 동포애로 변하였고 민족애로 승화되였다. 《우리 민족끼리》가 결코 한갖 관념에서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죽어도 혁명군을 따라다니다가 죽겠다고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이 깊은 산중에까지 찾아온 아이들, 부자집 아이들이 자개를 박은 밥상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풍청거릴 때 우등불옆에서 가랑잎을 덮고 쪽잠을 자면서도 광복된 조국을 그려온 이 아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과연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 귀여운 꽃봉오리들에게 금의옥식은 마련해주지 못할망정 왜 수수한 광목옷같은것이야 못해입히며 콩죽같은것이야 못해먹이겠는가.

회고록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얘들아, 얼굴을 들어라. 너희들이 헌옷을 입고있는건 너희들의탓이 아니다. 어서들 이리 오너라!>

나는 두팔을 크게 벌리면서 아이들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나를 둘러싸고 엉엉 소리를 내며 목놓아울었다.

나는 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며칠째 병에 걸려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는 네댓명의 아이들이 모포도 없이 방 한쪽구석에 쪼그리고 누워있었다. 무슨 병인가고 물었으나 아이들은 하나같이 대답을 피하였다. 밀영을 지키고있던 대원들도 골병이라고만 하였지 정확한 병명은 대주지 못하였다. 그것이 마음속의 병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박포리밖에 없었다. 아무 죄도 없는 청옥같은 아이들에게 <민생단>이라는 표쪽을 달아놓았으니 무슨 병을 앓는다고 대답하겠는가.

나는 전령병을 불러 배낭에서 모포를 꺼내라고 하였다. 그것은 왕청시절에 일본군수송대를 치고 로획한 나의 단매모포였다. 그 한장이나마 앓고있는 아이들에게 덮어주면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것 같았다. 나의 의도를 알아챈 대원들이 저마다 자기의 모포를 꺼내느라고 부산스럽게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포들을 임자들의 앞으로 밀어놓았다.(4 371372페지)

 

대지를 뒤엎으며 장엄하게 설레인다

 

《나는 오늘 여기서 혁명가의 가치관을 두고 다시한번 심각한 음미를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혁명을 시작했고 지금도 무엇때문에 만난을 무릅쓰고 혁명을 계속하고있는가. 우리는 그 무엇을 파괴하고싶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기때문에 혁명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온갖 불의와 페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인간적인것을 옹호하며 인간이 창조해낸 모든 부와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하여 우리모두가 이 저주로운 세상을 향해 반기를 든것이 아니겠는가. 학대받는 계급에 대한 동정이 없고 망국의 설음속에 울고있는 민족에 대한 련민이 없고 가난과 무권리속에서 헤매는 부모처자들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곤난을 하루도 참아내지 못하고 따뜻한 온돌방으로 돌아갔을것이다.(4 372373페지)

《후대들은 계급의 꽃이고 민족의 꽃이며 인류의 꽃이다. 이 꽃을 잘 가꾸는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신성한 임무이다. 후대들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따라 혁명의 장래가 결정된다. 혁명은 한세대에 끝나는것이 아니라 여러대를 두고 완성되게 된다. 오늘은 우리가 혁명을 담당한 주인으로 되고있지만 래일은 저애들이 자라서 혁명을 떠메고나가는 주력군으로 될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선혁명에 끝까지 충실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후비대를 튼튼히 키워야 한다. 더구나 저애들은 우리의 전우들이 남기고간 유자녀들이 아닌가. 우리는 그 전우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저 아이들을 아끼고 따뜻이 돌보아주어야 하는것이다.(4 373페지)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나는 지금이야말로 어머니가 림종을 앞두고 나에게 유산으로 남긴 그 20원을 소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였다. 금전이 없이는 도저히 뚫고나갈수 없는 역경에 처했을 때에만 쓰라고 당부하시던 20원이였다. 손끝에 피가 나도록 삯일을 하여 한푼두푼 힘겨웁게 벌어들인 로력의 열매였다.

나는 어렸을 때 돈을 모르고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한평생 자식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학습장이나 연필을 사는것도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를 상점이나 장마당같은데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다. 어려서부터 돈맛을 알기 시작하면 사람이 자라서 수전노가 되고 조국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는 속물로 될수 있다는것이 돈과 관련된 아버지의 지론이였다.(4 377페지)

《나는 어머니의 풍랑세찬 일생이 몇장의 지전으로 압축된것 같은감을 느끼며 그 돈을 소중히 받아안았다. 20,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호신부와 같은것이였다. 그 돈을 품고있으면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항상 내곁에 계시면서 온몸과 넋으로 나를 지켜주는것 같았다. 내 개인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쓰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던 20원이였다. 가능하다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표적으로 영원히 남기고싶었던 돈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준엄한 현실은 이 결심을 여러번 뒤흔들어놓았다. 나는 그 돈을 쓰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뺐다하며 동요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우리에게는 돈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황이 수없이 생기였다.(4 380페지)

《그 돈으로 헐벗은 아동단원들에게 옷을 해입힌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것이다. (어머니, 이 돈을 가지고 어머니의 곁을 떠난지도 네해가 되였습니다. 그동안 딱한 고비를 여러번 겪으면서도 장래를 생각해서 그럭저럭 보존해왔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이 20원을 소비해야 할것 같습니다. 세상에 살붙이가 하나도 없는 저 불쌍한 아이들에게 옷을 해입혀야겠습니다. 장차 이보다 더 험한 고비가 있을수 있으리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마음먹고 택한 결심이니 어머니도 지지해주십시오. 아이들을 류달리 좋아하는 저의 성미를 어머니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멀리 토기점골의 차디찬 산등성이에 홀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향해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였다.(4 381페지)

 

밀림에 차고넘쳐 소리높이 설레인다!

김일성사령관은 《어버이》라고

 

《사실 20원이 무슨 큰돈이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때 후련한 심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 다음에 우리는 마안산을 떠나갔다.

새옷을 입고 기뻐서 어쩔줄 모르던 밀영의 아이들이 모두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여러 사람의 반대를 물리치고 아이들의 그 청을 쾌히 받아들이였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우리를 따라다닐수 없는 유년기의 아이들과 병든 아이들 약간명을 내놓고는 대부분이 남하하는 우리 대오와 함께 간고한 장정의 길에 들어섰다. 유격전으로 동분서주하는 혁명군이 10대의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데리고다닌다는것은 일종의 모험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비록 유격전의 력사에 없고 상식에 어긋나는 처사라 하더라도 아이들을 데리고다니면서 불길속에서 단련시켜 그들전부를 강철같은 인간들로 키우려고 결심하였다. 제일 힘든것은 진대나무를 넘고 강을 건느는것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할 때와 행군할 때 아이들을 보호할데 대한 분공을 따로 주었다. 우리 대원들은 실로 아이들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였다. 진대나무는 안아넘기고 강물은 업어건늬였으며 적들의 총알은 몸으로 막아주면서 그들을 자래웠다.

그때 나를 따라 백두산지구로 나왔던 아이들은 그후 빠짐없이 혁명군에 입대하였고 가렬처절한 유격전을 통해 훌륭한 군정간부들로 성장하였다. 종군이 허락되지 않아 얼마간 대첨창밀영에 가있던 9살내기의 리오송까지도 손장상의 전령병으로 복무하다가 후에는 장백에 나와 나의 전령병으로 되였다. 1939 5월에 우리가 부대를 이끌고 무산지구로 진공할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2살이였다. 그는 물이 깊어 강을 건느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안고 강을 건네주었다. 그때 그렇게 병아리처럼 품에 안아 키운 아이들이 지금은 우리 당과 국가와 군대에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하고있다.

마안산에서 헐벗은 아이들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던 그때의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조국이 해방되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에게 국가가 무료로 옷을 해입히는 제도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령락된 나라를 재건하던 1950년대 후반기에 벌써 우리는 국가가 옷을 지어 공급하는 력사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안산에서의 고뇌를 체험한 조선공산주의자들만이 창조할수 있었던 하나의 기적이였다. 우리는 해마다 아이들의 옷을 해입히는데 수천수억원의 돈을 지출한다.(4 382383페지)

그래서 한홍구교수는 《민생단》사건이 남긴 《트라우마는 주체사상, <어버이수령>과 인민들간의 독특한 혈연적뉴대관계, 자주로선, 정치적생명론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것이라 본다.

2004년 개천절행사로 평양에 가 우리 일행은 보통강호텔에 머물렀다. 호텔에는 다른 호텔과 달리 노래방이 있었다. 우리가 《아침이슬》을 부르고 북 도우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을 한곡 불러달라고 하니 《장군님 찬 눈길 걷지 마시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노래말은 다음과 같다.

 

1. 눈오는 이 아침 우리 장군님/ 그 어데 찾아가십니까/ 찬눈을 맞으며 가시는 길에/ 이 마음 따라섭니다/ 이 땅의 눈비는 우리가 다 맞으리니/ 장군님 장군님 찬 눈길 걷지 마시라

 

2. 우리를 잘살게 하여주시려/ 수령님 한생 맞으신 눈/ 오늘은 장군님 헤쳐가시니/ 이 가슴 젖어옵니다/ 충효를 다하여 맡은 일 더잘하리니/ 장군님 장군님 눈바람 맞지 마시라

 

3. 장군님 찬눈비 맞으시면서/ 험한 길 더는 걷지 않게/ 날마다 기쁨을 드리는 길에/ 이 한몸 바치렵니다/ 우러러 바라는 간절한 소원입니다/ 장군님 장군님 부디 안녕하시라

 

마치 교회에서 찬송가 71장을 부르는듯 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진정성을 의심도 하였다. 노래말그대로 한 정치지도자에 대하여 이렇게도 진정어린 생각을 가질수 있을가 하고 의심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치인들은 다 사기군들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회고록은 정확한 답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노래말이 차라리 모자랄 정도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