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입]

헌정질서에 반하는 한국군 정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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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연출한 촌극 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군부대들에서 요즈음 집중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른바 ‘종북세력 실체인식 정신교육’이라는 것은  현행 헌법 제5 2항을 위반하는 위헌행위다. 헌법 제5 2항은 군이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는데, 지금 군이 수구우파세력의 ‘종북모략소동’에 적극 가담함으로써 자기의 정치적 중립성을 파기한 것은 헌정질서에 반하는 심각한 위헌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선열기가 달아오른 요즈음 군부대들에서 ‘종북세력 실체인식 정신교육’이 집중적으로 실시되는 것에 대해 군이 대선에 개입하여 수구우파정권의 재집권을 도와주려는 게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 내막을 파헤치면 대선개입 수준을 넘어선 충격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우선 사건개요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간지 <한겨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2 1 17일 한국군 제6군단 군단장은 예하 부대에 ‘종북 사이트 및 정부 비방 스마트폰 앱 삭제조치 공문’을 내려보냈다. 그 공문은 제6군단 소속 장교 및 부사관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일제히 점검하여 ‘종북성향’의 웹싸이트/앱이 들어있는 경우 이를 삭제하고,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런 지시에 따라, 6군단 소속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느닷없이 자기들의 스마트폰을 검열받는 ‘봉변’을 당했다. 스마트폰을 검열하고 삭제하는 해괴한 조치는 전 세계가 실소를 금치 못할 촌극이다.

 

그런데 촌극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스마트폰 검열 및 삭제는 촌극 제1막이었다. 군부가 펼친 촌극 제2막은 군부대들에서 진행해오던 기존의 ‘안보의식’ 고취 강연이 ‘종북세력’ 적개심 고취 강연으로 대체된 것이다. 국방부는 ‘종북세력’ 적개심 고취 강연에 들어가는 2012년도 예산을 2009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난 113,000만 원으로 증액하였다. 얼마 전 육군본부가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육군의 경우 2010년에는 ‘종북세력’ 적개심 고취 강연이 한 차례도 없었는데, 2011년에 21차례를 실시하더니, 2012년에는 6월 말까지 무려 155차례나 실시하였다. ‘종북세력’ 적개심 고취 강연이라는 촌극 제2막에 출연하는 강사는 현대사상연구회,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한국자유연합,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 등에서 활동하는 극우성향인사들이다. 

 

촌극은 군부대 강연회로 끝난 게 아니라, 시험까지 치르는 제3막으로 이어졌다. 2012 9 3 <한겨레>가 입수한 군부대의 ‘종북시험’ 관련 내부문서에는 150개 항목의 ‘종북세력’ 관련 문답집이 들어있는데, 그 문답집을 군부대들에 배포하고 공부하게 한 다음, 시험을 치러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종북시험’에서 간부와 병장은 80점을 받아야 하고, 병사는 70점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성적이 목표점수에 미달하면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시험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났던 이 땅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도 무슨 ‘종북시험’이라는 것을 또 치러야 하니, 촌극 치고 너무 기가 막힌 촌극이 아닌가. 

 

‘종북세력 실체인식 정신교육’이라는 촌극이 절정에 이른 날은 2012 10 10일이었다. 그 날 국방부는 ‘사상전의 승리자가 되자!’는 제목으로 작성된 18쪽 분량의 ‘종북실체 표준교안’을 전군에 내려보내면서, 그것을 군부대 정신교육시간에 교재로 사용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사상전의 승리자가 되자!’는 구호는 북에서 쓰이는 중요한 정치구호인데, 북을 주적으로 규정한 국방부가 북의 정치구호를 따라하다니 이것 또한 웃지 못할 촌극이 아닌가.

 

그런데 국방부가 연출한 촌극의 절정에 이르러 경악과 충격을 관객에게 안겨준 명장면이 나왔다. 국방부가 ‘종북실체 표준교안’에서 ‘종북세력’을 “국군의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군부가 어떤 대상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정쟁에서 상대를 정적으로 규정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국방부가 어떤 대상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군이 그 대상을 군사행동으로 제거하려는 적의를 드러낸 것이다. 군이 어떤 대상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행동은, 단순한 감정표출이 아니라 군사작전에 연관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매우 심각하다. 올해 들어 수구우파정권이 ‘종북모략소동’을 광란적으로 벌이더니, 이제는 군부까지 나서서 ‘종북세력’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헌정질서를 위협한 엄중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