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4.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5)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주체43(1954)년 8월 어느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평안남도 대동군 금천리(오늘의 평양시 만경대구역 금천동)를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농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시다가 이해 농사가 잘되여 식량이 먹고 남게 되였다는것을 아시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해마다 식량이 모자라던 이 마을이 농업협동화가 된 첫해에 벌써 식량이 먹고 남는 고장으로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합원들의 생활을 높일 방도에 대하여 의논하시다가 시장에서 개인장사군들이 농민들이 피땀으로 가꾼 식량을 눅은 값으로 사서 착취해먹고있는 현상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개인장사군들에게 쌀을 파는것이 좋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국가에서 유일적으로 사주는것이 좋겠는가고 농민들의 의향을 물으시였다.

농민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이 국가에서 사주는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대답을 들으시고 웃으시며 그럼 토의하고 국가에서 유일적으로 사주게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여기에는 국가에서 농민들의 여유량곡을 집중적으로 수매하여 농민들의 수입을 높일수 있게 하며 식량이 모자라는 농민들과 도시주민들에게 국가에서 수매한 량곡을 적당한 값으로 팔아주어 그들의 생활상안정을 보장하여 주시려는 수령님의 깊은 의도가 있었다.

농민들은 모두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사실 그때까지 이곳 농민들은 돈을 써야 할 딱한 사정이 생기면 쌀을 마을에서 가까운 시장에 내다 팔군 하였으며 가을에는 쌀을 눅게 팔고 여름에는 장사군들에게서 비싼 값으로 사먹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의논해주신대로 쌀을 나라에서 사준다면 쌀장사군들이 없어질것이고 농민들의 생활도 보다 안정될것이였다.

기쁨에 휩싸여있는 농민들을 정겹게 둘러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활에서 또 애로되는것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누구도 얼른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있었다.

나라의 형편이 아직 어려운데 별치 않은 문제로 위대한 수령님께 걱정을 끼치랴싶어서였다.

그들의 심중을 헤아리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거듭 애로가 있으면 제기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제서야 한 농민이 용기를 내여 다른 물건값보다 쌀값이 눅어서 입는 문제가 좀 곤난하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쌀 한말에 얼마나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쌀 한말 팔아서 광목 3m 샀으면 좋겠습니다.》

그 농민이 이렇게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쌀 한말을 팔아서 천 2.5∼3m 사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그후 소비품가격이 인하되고 물가가 조절되였으며 농민들이 농사지은 쌀은 어디서나 나라에서 유일가격으로 사들이여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하게 되였다.